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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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이 신간을 냈다. 꾸준하게 들려오는 그의 신간소식이 반갑다. 이제 유시민에게 '작가'라는 호칭은 낯설지 않다. 몇 년 전 공식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본업을 작가로 갈음한 그였다. 당시 자신을 작가로 불러달라고 했을 때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정서와 감회가 있었다. 이후 그는 성실한 집필과 강연으로 대중에게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어필해왔다. 그간의 비블리오그래피는 작가 유시민으로서의 안정된 아우라를 잘 담아내고 있다.

   유시민의 신간 <표현의 기술>은 글쓰기 관련 책이다. 전작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도 전업작가가 된 저자가 대중에게 글쓰는 방법론을 안내한 책이다. 이번 책은 글쓰기 자체에 관한 안내서라기보다 여러 형태의 글을 쓰면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담론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담았다. 유시민 특유의 쉽고 간결한 서술은 독자를 편안하게 자신의 논증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선술한 바와 같이 저자는 글쓰기와 관련해서 다양한 얘기들을 들려준다. 자기소개서, 논문, 보고서, 회의록, 비평 등 각기 다른 형태의 글들이 갖는 구조와 성격, 특징에 대해 언급하고 저자 자신만의 노하우를 여러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특히 글 곳곳에 배치된 공저자 정훈이의 만화는 글의 본류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유머와 풍자를 선사한다. 유시민의 글과 정훈이의 만화는 교차적으로 편집되어 독자의 가독성을 돕는다. 두 공저자의 콜라보레이션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바를 맛깔나고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표현의 기술'이 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맑이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조건은 합당하다. 많이 읽어야 문장 쓰는 기술을 증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등의 다양한 글감을 무리없이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배우는 책읽기'보다 '느끼는 책읽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시, 소설, 에세이 등의 문학장르뿐 아니라 기사와 비평 등의 모든 형식의 글을 감상함에 있어 글쓴이의 주관과 목적을 헤아리기 위한 고민과 탐구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순수한 독자가 되어 텍스트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느끼려는 노력은 거꾸로 자신이 온전한 필자가 되었을 때 자기 글을 읽을 독자에게 유의미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양방향적 피드백이라는 측면에서 저자의 조언은 경청할 만하다.

   잘 읽히지 않는 난해한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한다. 저자는 칸트의 명저 《순수이성비판》을 예시로 들어 '텍스트(text)-콘텍스트(context) 관계'에 대해 자신의 논증을 풀어낸다. 위선과 허영은 좋은 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책읽기와 글쓰기에도 겉멋과 허세가 작용한다. 글쓰는 능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문장을 자주 다듬다 보면 글을 화려하게 쓰고 싶은 충동에 빠지곤 한다. 사유의 추출물이 아닌 현란한 기교로서의 글쓰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유혹받고 함몰된다. 자기자신조차 무슨 뜻인지 모를 애매한 문장으로 겉멋을 부리는 건 좋은 글쓰기가 아니다. 칸트의 명저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자는 글쓰기와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다양한 담론에 대해 언급한다. 악플에 대한 입장과 태도, 표절에 관한 견해와 해석, 베스트셀러의 조건, 훌륭한 글쓰기에 전범이 될만한 작품 등 저자는 글을 쓰면서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종류의 고민에 대해 자신의 주관을 풀어낸다. 특히 7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직면해 자신의 감정을 언급한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저자는 당시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됐다고 기술한다. 바로 그때 소설가 김형경의 에세이 <좋은 이별>을 만났고 그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그 길었던 여름을 견디게 됐다고 고백한다. 가슴 짠한 대목이다.

  
나는 과거의 여러 글을 통해 유시민에 대한 따뜻한 긍정을 피력한 바 있다. 다른 정치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시민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지식인으로서 그가 가진 내재적 아우라에 상당 부분 동의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렵지 않게 말한다. 또한 쉽고 간결하게 쓴다. 그의 글에서는 지적 허영심이나 과잉된 좌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민하고 난해한 지식을 명료하게 재구성하여 대중에게 쉽고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지식인 유시민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서평을 마무리하자. 신간 <표현의 기술>은 작가 유시민의 발군의 역량이 잘 반영된 책이다. 유시민이란 이름 석자에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글쓰기에 고민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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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 케빈 드영 시리즈 3
케빈 드영 지음, 김수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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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확하고 간결하며 거침없는 책이다. 미국 개혁파 교회의 담임목사인 케빈 드영은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경적 지침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 얇은 책을 통해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어떤 관점과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성경적이고 능동적인 방법으로 정리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뜻에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전제한다. 하나는 '작정하신 뜻'이고 다른 하나는 '바라시는 뜻'이다.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은 불변하며 확정적이다. 작정하신 뜻이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것이라면 바라시는 뜻은 '사물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저자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사물을 정하신 방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명령하신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는 것을 일깨운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파고드는 인간의 지나친 호기심이 왜 발생하는지 그 이유를 저자는 먼저 제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지금까지 접근해왔던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설파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잘못된 방식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경계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방법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성경'과 '상담'과 '기도'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하나님 중심적 방법으로서 우리를 지혜의 길로 안내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다른 이들에게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위기의 순간뿐 아니라 생명의 길로써 최상의 행동방침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일을 행하면서 늘 지혜 가운데, 늘 자유롭게, 때로는 빠르게 결정내리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저자는 정리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갖는 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소소한 일상의 디테일에까지 지나친 신성적 메시지를 소망적으로 전제하여 결국 수동적인 삶에 함몰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나도 젊은 시절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기도만 하다가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한 적이 꽤 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말씀해주실 것으로 믿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갈망했다. 시간은 흘렀으나 아무런 코멘트도 듣지 못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며 아무런 행동과 결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우스운 시간낭비였던가.

   시간에 관한 인간의 지독한 무지 중 하나는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한 과학의 시간대에 올려놓고 고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원은 동일선상에서 논증될 수 없다. 인간은 아주 극미세한 차원에서만 하나님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시간은 영원히 정지한 과거와 총알처럼 날아가는 현재, 그리고 머뭇거리면서 오는 미래로 수렴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직 현재적 시간대에서 통합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천 년같이 천 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며 기다리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초월하되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드시지 않는 것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케빈 드영의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아야 하는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하는 이들에게 성경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힘있는 책이다. 짧고 시원하며 명확한 전달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젊은 크리스천 청년들에게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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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서재' 운영자 다윗입니다. 블로그에서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 블로거로서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곳은 책과 작가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토론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웃들에게 꼭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몇 자 적고자 합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도 아닙니다. 성숙한 시민의 책임과 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내일은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각 당의 공천과정에서 국민들은 우리정치의 온갖 추함과 후진성을 목도했습니다. 제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의 실망과 분노를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됩니다. 대개 극한 분노는 비아냥으로 치환됩니다. 투표를 안 한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소중한 권리이며 의무인 투표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도 않으면서 '헬조선'이라 외치고 위정자를 비판하며 국가권력을 조소하는 것은 결코 건강한 모습이 아닙니다. 자유와 책임이 하나의 셋트이듯이 권리와 의무도 한 셋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거를 하지 않는 행위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유이자 권리라고 말합니다. 일견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옹호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현실이 있습니다. 한국의 투표율은 상당히 낮습니다. 낮아도 너무 낮습니다. 대한민국은 투표 안 하는 민주공화국입니다. 선진국이 투표율이 낮다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5세 때부터 실전에 가깝게 투표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각자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합니다. 1인당 GDP 5만 불의 북유럽 복지국가 스웨덴의 지난 국회의원 투표율은 85,8%였습니다. 스웨덴은 의무투표제를 시행하지도 않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평균 투표율은 71.4%였습니다. 2010년 5월 유엔 공인 ‘민주주의·선거 지원 국제기구’(IDEA)가 발표한 수치입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56.9%의 투표율로 최하위권인 26위에 머물렀습니다. 한국보다 투표율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56.1%), 슬로바키아(55.0%), 폴란드(50.5%), 스위스(46.8%) 뿐입니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호주(94.8%), 벨기에(91.4%), 덴마크(86.1%) 등입니다. 미국이나 일본도 68.9%와 62.6%도 한국보다 높았습니다. 요컨대 선진국일수록 투표율은 높습니다. 투표 안 하는 게 자랑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함을 선택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각 개인으로부터 발현된 개별성 가운데 가장 나은 것을 지향하며 찾아가는 제도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수를 주목하고 패자를 위로하는 제도입니다. 인간사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이성은 불완전하고 인간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은 오류와 한계를 갖습니다. 그렇기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차선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하고자 하는 실시간적 고민이 유권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완료가 아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뽑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투표하기 전에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기'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1번을 찍거나 자동반사적으로 2번을 찍거나 하는 등의 관습적·수구적·비사유적 투표행위는 올바른 주권행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행동과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생각하기'라는 인간 유일의 숭고한 차원을 관통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 경험, 양심, 신앙, 비전, 사상, 이념, 철학 등을 총동원하여 깊이 고민하고 사유하며 자기만의 최고의 선택을 추출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행된 선택이라면 1번이든 2번이든 몇 번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건 죄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진실과 거짓 등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은 채 구조적이고 편견적인 무지에 빠져 있는 인간의 양심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철학적 기제로 비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량학살을 주도했던 나치스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재판에서 그는 "자신은 단지 공무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하면서까지 자신의 무죄를 변론했습니다. 이러한 아이히만의 모습에서 아렌트는 악의 기운을 엿봅니다. 아렌트는 결국 자신의 명저를 통해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어떤 구조로 악을 평범화하고 비속화하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합니다. 아렌트의 선언은 20세기 가장 시원하고 냉철하고 위대한 고발로 인류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자들의 '악의 비속성'으로 인해 어두웠고 암울한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사유'는 권리가 아닌 의무입니다. 인간의 도리입니다. '생각하기'는 인간 품격의 바로미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난 존귀한 존재입니다. 보다 행복한 개인, 보다 화목한 가정, 보다 나은 사회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용단하는 개인의 책임있는 선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십시오. 그리고 또 생각하십시오. 행동은 그 다음입니다. 이 끊임없는 개인의 사유과정 속에 우리 정치의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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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는 33한 책
송복.복거일 엮음 / 백년동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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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소개하는 책을 좋아한다. 좋은 책은 많이 소개되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 인간의 수명은 세계의 모든 책을 읽을 만한 능력을 담지 못한다. 인간은 유한하고 책은 무한하다. 인생은 짧고 독서는 길다. 좋은 책을 골라 인간의 유한성 안에서 녹여내야 한다. 반드시 책을 골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를 깨우는 33한 책>은 여러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자신만의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입문서 33권을 소개한 책이다. 송복 교수와 복거일 작가가 33편의 리뷰를 엮었고 그외 많은 지식인들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자유를 바라지만, 자유주의가 싫은 당신이 진짜 자유와 가짜 자유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는 이 시대 최고의 자유주의 입문서'라는 부제는 매력적이다. 각 저자마다 다른 개성과 문체로 안내하는 총 33편의 책들을 소개받는 건 독자로서 큰 기쁨이다.

   이 책은 제작년에 출간된 <나는 왜 자유주의자가 되었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나는 왜 자유주의자가 되었나>가 여러 공저자의 자유주의로의 여정을 담은 책이라면 <나를 깨우는 33한 책>은 저자 자신이 자유주의자가 되는데 큰 보탬을 준 책들을 소개한 책이다. 그렇기에 두 책 공히 공저자가 서로 겹치며 엇비슷한 내용을 공유하기도 한다. 두 권을 같이 읽으면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국내 자유주의 지식인의 현재적 계보를 훑는데도 도움이 된다.

   자유주의 입문서를 표방한 책이기 때문에 여러 자유주의 고전들이 눈에 띈다.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과 <노예의 길>, 바스티아의 <법>,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와 <자본주의와 자유>,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오웰의 <1984> 등은 전체주의의 악마성을 고발한 자유주의의 명저로 꼽히는 책들이다. 각 공저자는 본인이 소개하는 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각자의 입장과 방식으로 리뷰한다. 각기 다른 시각과 개성으로 책을 소개하기 때문에 그 다양성을 맛보는 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백미다.

   소개된 책 중에서 눈에 띄는 책들을 몇 권 소개한다. 이영훈 교수의 <대한민국역사>는 해방 이후부터 1987년까지의 역사를 다룬 현대사 책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있게 수록한 명저이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전체주의 비판의 교과서로 불리는 불멸의 저작이며,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저작들도 경제적 자유주의의 올곧은 가치를 설파한 명저로 꼽힌다. 오웰의 <1984>는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며 다쿠오의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도 스미스 경제학을 일반인 수준에서 읽는데 가장 적확한 책으로 꼽힌다. 주옥같은 책들의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의 자유주의 향연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는 책의 존재적 한계는 특정사상의 어느 일면만을 다루는 오류를 포함한다. 집필 사정상 공저자 대부분이 우파 경제학자와 교수인 점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에만 일관한 점은 아쉽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대한 도전이 어느때보다 맹렬한 시점에서 이에 대한 문제점과 그림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부재한 점은 씁쓸하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소위 미국식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어느 한 사상의 일면만 부각한 한계를 제외하고는 이 책의 매력은 꽤 유효하다. 선술했듯이 주옥같은 명저들을 소개받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책임을 다했다. 자유주의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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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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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베스트셀러를 집었다. 일본 철학자 겸 작가인 기시미 이치로가 쓴 『미움받을 용기』는 올 한 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이다. 이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동시에 최장기 베스트셀러 기록을 경신하며 지금도 1위에 올라 있다. 주변에서 이 책에 대한 내 호오를 묻는 질문들이 적지 않이 쏟아졌다. 신념적으로 자기계발서를 멀리해온 나에게 이 책은 이러한 주변의 화려한 요소를 배경으로 들어왔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이라는 부제를 단 『미움받을 용기』는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이야기 형식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책 속의 '청년'과 '철학자'는 저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단 두 명의 화자다.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는 식으로 구성된 이야기 구조는 독자에게 친근함을 준다. 삶의 저변에서 힘든 싸움을 하는 어느 청년이 아들러 심리학의 전도사인 한 철학자를 만나 여러 인생의 가치에 대해 토론하고 배우는 내용이 이 책의 기본 얼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아들러 심리학의 견해에서 기존 프로이트 학문의 보편적 속성을 재단한다. 심리학계의 정론으로 보편화된 프로이트의 "원인론'은 인간의 삶을 과거에 예속시키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반면 아들러의 '목적론'은 오직 현재에 충실한 개념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의 삶을 추동케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타자의 평가에 구속되지 않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저자는 책 속 철학자의 목소리를 빌어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것이 곧 인생의 과제임을 제시한다. 철학자가 인생의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목표로 '자립할 것'과 '사회와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하는 대목은 되새길 만하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제목이
마치 외부의 사회적 관계와는 무관한 '절대적 나'로서의 삶을 촉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위험한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좋은 책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내용은 좋은데 A4용지 두세 장이면 설명할 것을 지나치게 길게 써놓았다.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대화 형식의 구도를 취한 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청년과 철학자 둘만의 대화에 사실성이 결락되는 측면이 있다. 이에 작위적이란 느낌이 몰입을 방해한다. 근래에 자존감이 깍인 채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조아리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따뜻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인간 삶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설득의 부재로 인해 단선적 주문에 머무는 전달력도 아쉽다. 공동체 정신이 곧 행복이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취급하든지 대가 없이 공동체에 기여하고 복무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는 중국 전국시대의 묵자의 가르침과 같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상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맹자는 묵자 사상을 두고 듣기에는 좋은 소리로 들리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니 세상의 질서가 없어지고 실질적인 사랑은 도태될 것이라며 경계한 것이다. 이상세계에 대한 당위를 모호한 선언으로 희석하여 디테일의 결핍을 초래한 현실인식은 과잉된 자아만 부추기는 꼴이다. 이러한 현실도피적 경향은 이 책이 심리학의 탈을 쓴 자계서라는 비판을 받는 가장 적확한 논거다.

   이 책에 대한 소원한 평가는 평소 자계서를 멀리해온 내 태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 책을 감수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책의 첫 장을 여는 '감수 및 추천의 말'에서 "어설프게 위로하고 빤한 인생과 꿈을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는 질색"이라며 이 책은 그런 부류와는 구분된다고 추천사를 남겼다. 동의할 수 없다. 이 책도 자기계발서의 구조적 모순에 자유롭지 못하다. 교묘한 선동, 저자만의 기준, 무의미한 합리주의, 뜬구름잡는 달콤한 소리 등으로 인간의 행복을 이상세계에 대한 잠시성(暫時性, transiency)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는다는 점에서 여느 자계서와 본질의 차이는 없다는 게 내 총평이다.

   얼마전에 교회 후배가 나에게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적인 주관을 일반화하지 말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사람마다 책을 고르는 기호는 다른 것이며 혹자는 계발서 한 권으로 유의미한 삶의 긍정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접근은 독서의 질을 하향평준화로 몰아가는 기제다. 모든 가치기준에 자신만의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다양성의 환원으로만 후퇴하는 방식은 비평의 영역에서 가장 비겁하고 치졸한 짓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읽어야 할 책은 많다. 꼭 읽어야 할 책을 고르고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남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책읽기의 밀도 차원에서 『미움받을 용기』는 그리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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