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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들! 반갑습니다.

'다윗의 서재'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dvaid_library)을 오픈했습니다.

상기 링크를 클릭하시거나 유튜브에서 '다윗의 서재'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유튜브 영상을 통해 좋은 책과 작가를 소개하겠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 는 믿음과 도전으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낯뜨겁지만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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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오랜만에 아이들과 책장 정리를 했습니다. 추가되는 책은 많아지는데 순서에 맞게 꼽아놓지 않아 체계 없는 중구난방의 책장이었지요. 차일피일하다가 아이들이 도와준다고 하여 잽싸게 작업했습니다. 제 책장은 양면으로 되어 있는데 침대가 있는 전면은 문학으로 채웠고 장롱이 있는 후면은 비문학으로 채웠습니다. 이마저도 공간이 부족하여 첫째 딸 방에 별도 책장을 설치해 제가 가장 아끼고 영향을 준 명저들, 즉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카뮈, 위고, 폴 존슨의 저작들을 따로 구분해두었지요.

문제가 되는 건 안방 책장의 한국문학이었습니다. 가나다순의 작가명 배열이 완전히 파손되어 공선옥부터 현기영까지 순서대로 맞췄고 제가 좋아하는 공지영, 신경숙, 오소희, 김훈 작가는 별도 구획으로 모아놨습니다. 그리고 문학 내에서도 소설과 비소설을 나누어 일반적인 에세이, 즉 여행후기와 산문집 같은 책은 작가명과 무관하게 별도로 묶었습니다. 아이들이 도와주어 금방 끝날 수 있었지요. 이제 남은 건 후면의 비문학 도서―주로 인문학 서적―를 손보는 일입니다. 워낙 책이 많고 먼지도 많아 하루 반나절을 소요해야 할 듯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즐겁게 도와주겠지요.

한국문학을 정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참 많은 한국 작가들을 만났구나. 결혼 전 가장 많이 읽은 게 한국소설이었습니다. 비 오는 금요일 밤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누워 김훈의 『남한산성』을 벌벌 떨며 한달음에 읽은 기억은 아직도 선연합니다. 박민규는 한국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작가이고, 공지영은 내가 관심 갖지 않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김별아의 에세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힐링'이었고 『달의 제단』을 위시한 몇 권 안 되는 심윤경의 소설은 나에게 하나의 독특한 '브랜드'로 심어졌지요. 신경숙의 문체와 이문열의 무게는 여전히 저를 압도하지요. 한국소설은 여전히 찬란합니다.

고전과 인문학으로 이탈했던 제 독서를 응시하면서 이제 한 달에 한두 권씩은 꼭 한국문학을 만나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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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끝장이자 극한'으로 평가받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작년에 완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희영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10년간의 혼신의 번역이 출판사 민음사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는 뉴스를 통해서다.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에 딱 맞춰 완간했으니 무덤에 있을 작가가 손뼉을 칠만한 절묘한 타이밍이다. 잘 알다시피 이 소설은 끊임없이 확장되는 긴 문장으로 유명하다. 한 문장이 페이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고, 한 페이지를 꽉 채우기도 한다. 가장 긴 문장은 931단어나 된다. 김 교수는 한글과 어순이 다른 프랑스어를 원문의 흐름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10년 동안 매일 같이 6시간씩 번역 작업에 매진했다고 하니 과히 노학자(老學者)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일반 독자보다 작가와 평단에게 더 박수를 받는 작품이다. 모두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7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이 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서 한 소년이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술을 향유하면서 한 시대를 살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T.S. 엘리엇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20세기 2대 걸작으로 꼽으며 "이들을 잃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없다"라고 했다. '타임스'와 '르몽드'는 이 소설을 20세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모루아, 발레리, 베케트, 보부아르 같은 거장들뿐만 아니라 들뢰즈, 리비에르, 베냐민 등의 비평가, 철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실 이 소설은 읽기가 정말 쉽지 않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이 소설을 완독한 자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나는 완독주의자(完讀主義者)다. 웬만해선 완독하는 편이다. 도중에 그만둔 책은 많지 않다. 지루하고 난잡하기 그지없는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도 완독한 나였다. 읽었던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이었던 32권의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짧은 시간에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껌이었다. 그러나 정말 끝까지 읽기 힘든 책이 있다. 읽다가 중도 포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루함'이고 다른 하나는 '난해함'이다. 물론 둘을 동시에 갖춘 텍스트는 정말이지 한 장조차 넘기기 힘들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기 위해 수차례 도전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긴 호흡을 좋아하는 장편소설 마니아인 나에게 프루스트의 대작은 과히 넘사벽이었다. 나와 잘 맞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소설을 스킵 없이 완독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물음은 매번 실패할 때마다 드는 나만의 정신승리였다. 앙드레 모르아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라고 말했다. 모르아의 말대로라면 나는 프루스트를 읽지 않은, 아니 못한 사람이다. 

이 소설에 대해 할 얘기는 많지만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왜냐면 매번 실패하면서도 재차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들 정도로 이 기묘하고 거대한 텍스트는 매력적인 완역본으로 내 앞에 우뚝 서 있다. 최근 내 독서는 방향을 잃었다. 기준과 박력, 도전과 일관이 필요하다. 23년에 반드시 읽어내고야 말 것이다. 이 다부진 도전의 가슴 뛰는 부담감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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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최근까지 고 이어령 교수의 저작을 두루 탐독했다. 그중 먼저 하늘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 딸을 키우는 나에게 공감이 될만한 부분이 많아 여러 부분에서 실제적인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딸을 향한 그리움을 표출하는 감성도 좋았지만 딸에게 보내는 편지지에 넘실거리는 아버지의 거대한 지성이 인상적이었다. 니체, 사르트르, 보부아르, 데카르트, 볼테르 등 여러 인문학적 토막을 인용해 고인 자신의 철학을 딸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하나의 지적(知的) 로망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 인생 최고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딸과 함께 읽고 토론해 보는 것이다. 안나의 선택을 진정한 사랑의 용기로 볼 것인지 순간 욕망에 빠진 불륜의 비극으로 볼 것인지. 톨스토이의 작품 속 분신인 레빈의 삶과 사랑을 현시대에서 어떻게 리뷰할 것인지.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에서 천착한 톨스토이의 사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먼저 쓰인 또 다른 걸작 『전쟁과 평화』와 비교했을 때 어떤 소설이 더 뛰어난 작품인지 등. 나눠보고 싶은 얘기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내 로망을 교육적 욕심이나 지적 허례의식의 발로로 보지 않기 바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을 함께 읽고 서로 간 견해의 차이를 나눠보기 위함,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딸과 함께 스키를 타거나 여행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빠가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고전문학을 딸이 함께 읽기를 바라는 동시에 읽은 후 자기만의 사유 속에서 아빠와는 분명히 다를 딸만의 감상을 경청해 보기 위함이다. 삶과 사랑, 연애와 결혼, 정치와 예술, 노동과 경제 등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다루는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작년 초 나에게 영향을 준 양서만 모아놓은 책장 하나를 큰딸 방으로 옮겼다. 본래 거실에 있던 것을 아내의 피아노 레슨을 이유로 마땅히 옮길 데가 없어 딸 방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 책장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찬연한 작품들, 알베르 카뮈 전집, 빅토르 위고의 소설들, 폴 존슨의 인문학 저작들, 이근식 교수의 자유주의 사상총서 5권,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시리즈 등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찬탄스러운 책들로 가득 차 있다. 내 딸이 그 책장에 꽂힌 책만 읽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와 토론하고 서로 간의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아빠일까, 생각했다. 

가끔 훗날 딸에게 물려줄 유산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얼마 안 되는 돈.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 형성된 성격과 기질.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가풍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내가 수십 년에 걸쳐 읽은 거대한 책 더미를 딸에게 물려주고 싶다. 톨스토이와 헤밍웨이, 카뮈와 위고의 세계를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서울 도심의 어느 대형서점 입구에 쓰인 글귀처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 비전이 내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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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3-02-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붉은돼지입니다. 자칭 전집선집특별판한정판 수집가입니다.ㅎㅎㅎ
서가에 꽂힌 1~7권 전집이 무엇인가? 처음보는 것 같아서 찾아보니
위에 말씀하신대로 까뮈 전집이네요...전집수집가로서 부끄럽게도 처음 보는 물건이라..
제가 뭐 까뮈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니 사실 별 관심이 없지만...저 전집은 탐나는군요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한권 한권씩 구입해야겠습니다. 혹시 그사이에 절판되지는 않겠죻ㅎㅎ

다윗 2023-02-21 11:01   좋아요 0 | URL
붉은돼지님 반갑습니다. 전집 수집가라 하시니 멋집니다. 제대로 보셨습니다. 카뮈 전집(특별판)이 맞습니다. 당시 마누라 눈치 보면서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관련 블로그 포스팅 참고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https://blog.naver.com/gilsamo/90195533140/

붉은돼지 2023-02-21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더.. ‘거대한 책더미를 딸에게 물려주고 싶다‘ 고 하셨는데 저하고 똑 같은 생각이십니다요. ㅋㅋㅋ 하지만 제 딸은 책에는 전현 관심이 없다는 것이 함정 ㅜㅜ 제가 나름 괜찮은 귀한 책들 많이 모아 놓았거든요..몇 번 이야기했는데 전혀 관심무...ㅜㅜ 안타깝습니다......
 

최근 내 주변에서 리더십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두 곳인데 하나는 회사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다. 전자는 오랜 시간 동안 동고동락한 내 바로 위 팀장이 회사를 떠난 것이고 후자는 교회 후임목사 청빙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두 곳이 가정과 더불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시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변화는 전회(轉回)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거대한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대전환에 내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게 가장 놀랍다. 회사에서는 조직 최고 선임이 되었고 교회에서는 청빙위원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작년 연말부터 리더십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리더십 전환기에는 큰 혼란이 따른다. 제국이나 왕조가 바뀔 때마다 또는 왕 한 명이 바뀔 때조차도 엄청난 변화와 혼란이 있었다. 간혹 좋은 변화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변화가 뒤따랐다. 중요한 건 어떤 변화든지 간에 인간 역사는 끝내 발전했고 그 변화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명을 도약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도, 가장 지능이 높은 종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라는 찰스 다윈의 말에 공감하는 편이다.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내고 그것을 기회로 하여 한두 단계 도약해 내는 지혜와 용기는 신이 인간에게 준 고결한 선물이다.

가장 먼저 손에 집어 든 책은 진 에드워드의 『세 왕 이야기』이다. 젊은 시절에 다윗이라는 고대(성경) 인물에 빠져들게 한 이 얇은 책은 왕권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한다. 가끔 삶에 지치고 영혼이 목마를 때마다 펴서 읽곤 했는데 이번에는 작정해서 연속 3독을 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꾹꾹 누르며 읽었다. 놀라운 건 이 책을 처음 선물한 사람이 교회 담임목사님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나와 동갑인 그 친구는 현재 국내 모 대학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래전 교회 청년부 리더가 된 나에게 리더십의 정수를 도전 주기 위해 선물했던 것이다. 그런 책을 2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의 아버지의 목사 은퇴를 준비하며 다시 읽고 있다는 점에서 전율을 느낀다.

그다음 읽은 책은 『왕들의 이야기』 1, 2권과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이다. 전자는 한국교회에 리더십 도전을 강조해온 한홍 목사의 <열왕기서> 안내서이며 후자는 김진수 합동신학원 교수가 쓴 <사무엘서> 깊이 읽기이다. 잘 알다시피 <열왕기서>와 <사무엘서>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스라엘 왕조사를 다루는데 과히 술술 읽힌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면 『삼국지』보다 재미있고 『초한지』보다 감동적이다.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이사야와 같은 불세출의 인물들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주·조연으로 등장한다.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으며 느낀 건 <열왕기서>는 결국 <사무엘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구도적으로 조망하면 <사무엘서> 이전의 이야기는 <사무엘서>로 빨려 들어가고 <사무엘서> 이후의 이야기는 <사무엘서>로 회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중심에 다윗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서 있다. 이곳 블로그 '다윗의 서재'의 명칭이 되기도 한 인물이다. 다윗에 대해서는 후일 다른 지면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후임목사 청빙위원으로 임명된 후 며칠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청빙이라는 사명이 가진 거대한 무게 때문이다. 개신교에서 목사는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목사는 장로이면서 강도자(講道者)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목사의 영적 권위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성경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직(職)이기 때문에 성도는 존경과 순종의 마음으로 목사를 대해야 한다. 지난 40년간 오직 한 분 목사님에게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았다. 삶이 힘들고 영혼이 고달플 때마다 목사님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별다른 묘수를 얘기하지 않았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셨다. 바로 그 정공(正攻)의 힘이 비록 흔들렸으나 멸망하지 않은 비밀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그 목사님의 후임을 청빙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된 것이다. 실로 충격이자 도전이다.

작년 11월 28일 발족된 교회 후임목사 청빙위원회는 지금까지 총 여덟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열띤 논의와 토론을 벌였다. 장로, 권사, 집사 할 것 없이 소위 계급장 떼고 민주적·수평적으로 토의했다. 이제 대략 청빙 심의의 마지막 지점에 와 있다. 청빙위원으로서 비밀유지 서약서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겠다. 다만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건 청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성경적 리더십의 궁극을 새삼 공부하고 일깨워 갔다는 것이다. 환언하자면 나 스스로 교회 왕직에 관한 성경적 원리를 학습하는 중심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교회 공동의회를 통과해 후임목사 청빙이 완료되면 본건에 대한 내 소회를 후술하겠다.

회사로 시선을 돌려보자. 오랜 기간 동안 리더의 자리에 있던 팀장이 사정에 의해 회사를 떠났다. 그와 나는 18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위다. 과거 소(小) 부서의 팀장-팀원 관계였던 것이 회사가 성장하면서 조직이 커졌고 그에 따라 팀장은 영업과 무역을 총괄하는 마케팅 팀장으로 나는 영업파트 내부를 단속하는 중간관리자(부팀장 격)로 역할을 분담했다. 각기 성격이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달랐다. 정말 많이 달랐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하며 켜켜이 쌓인 시간의 세례는 우리 사이에 큰 신뢰를 쌓아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간의 믿음과 의지가 더 커졌다. 그 신뢰의 최고점에서 팀장은 회사를 떠났다. 이후 조직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팀장의 부재는 곧바로 사장님의 친정(親政) 체제ㅡ직접 팀을 관리ㅡ로 이어졌다. 자수성가한 사장님은 실력과 효율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분이다. 미국식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를 지향하는 경영인이다. 결단이 빠르고 의사결정이 시원하며 직원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교회 담임목사님이 나의 영적 스승이었다면 회사 사장님은 나에게 물적 원리를 가르친 교사였다. 지난 18년 동안 사장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삶 측면에서 결단과 냉정을 배웠고 철학적으로 이성과 합리를 배웠다. 사장님이 결정한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역사가 쌓인 시공간 위에 내가 직립해 있다. 언제까지 회사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으나 단언하건대 남는 건 감사뿐이리라.

이 대목에서 내가 집어 든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노벨상으로 이끈 『노인과 바다』와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이다. 두 권 모두 예전에 읽은 것을 다시 집어 든 것인데 세밀히 재독했다기 보다 의미를 반추하는 선에서 스킵 하며 빠르게 훑었다. 두 소설의 공통점은 외연 면에서 노벨문학상 작가의 책이라는 점과 주제 면에서 인간 삶의 의미와 세월의 본질을 탐구한 메시지에 있다. 40대 중반의 영업차장으로서 조직 내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삶과 시간, 타자와 세계에 대한 보다 농밀한 곱씹음이 갈급했다. 두 권의 고전은 이런 내 갈증에 가장 적확히 반응하며 울림을 주었다.

헤밍웨이가 말년에 쓴 『노인과 바다』는 어른 됨의 궁극을 관통한다.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가진 근원의 매력은 며칠 동안 청새치와 씨름하고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는 데 있지 않다. 산티아고의 진정한 위대함은 물고기와의 죽음을 건 혈투가 끝난 후 별일 없다는 듯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는 데 있다. 강렬하고 지독한 삶의 순간순간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노인 산티아고가 가진 생명력의 본질이다. 삶이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이 듦에 관한 깊은 의미를 관통하지 못했더라면 헤밍웨이는 노벨상 문턱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은 더 구체적이다. 이 작품은 삶의 최선에 대해 질문한다. 주인공 스티븐스가 끊임없이 질문한 주제는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였다. 이는 결국 '품격'에 관한 것으로 귀결되는데 스티븐스의 철학은 명징하다. 위대한 집사란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 복종, 이를 넘어선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완벽했음을 자부한다. 또한 주인 달링턴 경이 순수했던 나머지 나치 정권에 이용당한 사실에 대해서도 자기 영역(책임) 바깥에 있는 것임을 강조하며 개인의 죄의식과는 거리를 둔다. 이는 위대함과 품격에 관한 본질적 의미를 묻는 지점인데 이 부분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답변을 강요하거나 선악의 가치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소설의 메시지는 현재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병렬된다.

이 글을 쓴 목적으로 돌아가자.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 훌륭한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 한 곳은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라 말하고 한 곳은 생존과 효율을 우선하라 말한다. 서로 다른 것인가. 내가 조금만 어렸더라면 즉시 답을 냈겠다. 선언했겠다. 자신감 넘치는 필치로 리더십의 정수를 기술했겠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리더십의 전환을 실감 나게 목도하면서 외롭고 보잘것없는 한낱 쓸쓸하기 그지없는 성도(직원)의 현존을 직시할 뿐이다. 그러면서 앞서 소개한 책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주제에 맞닥뜨린다. 그것은 바로 '겸손'과 '현실 인식'이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장엄한 파도에 올라타 있을 때 정작 할 수 있는 건 그저 겸손한 자세로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하는 것뿐이다. 그 파도에 나를 맡길 뿐이다. 시인 류시화의 말대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나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항상 독서는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책 읽기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사유한다. 거대한 리더십 교체기의 중심에 서있음으로 새삼 왕직의 본연을 심도 있게 천착한다. 이 흥미로운 탐구와 학습 과정에 이 졸필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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