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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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어를 가져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먼저 가져가 내뱉으면 세상이 뒤틀려 버린다. 노동력 착취, 혐오. 그 단어를 당신이 그 때 써야 하는 게 아니야.

다른 사람을 위한 글쓰기와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임솔아는 철저하게 후자인데,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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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대 시절, 뉴욕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뉴욕을 좋아했고 20대와 30대에 뉴욕을 가보고서는 사랑했다. 그 찬란한 도시가 왜그렇게 좋던지. 거리를 걸을 때면 좋다는 생각말고 다른 생각은 들질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또 뉴욕에 가고 싶었다. 뉴욕을 내집처럼 만들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해두었고, 갔던 곳에 다시 가는 그 반가움과 익숙함을 몸소 체험하겠다! 했다.


그렇게 뉴욕행을 일주일 앞두고서는, 뉴욕에 대해 뭔가 몰랐던 걸 더 알고 가자 싶어 마침 나온 뉴욕관련 신간을 읽었다. 그게 '한대수'의 [나는 매일 뉴욕 간다] 였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결론부터 간단하게 말하자면, 굳이 읽지 않아도 좋다. 이 책을 읽는다고 뉴욕에 대해 남달리 특별히 더 알게되는 것도 거의 없을 뿐더러, 심지어 이 70세 할아버지의 꼰대같음에 책 자체가 재미가 없다. 한대수가 젊은 시절 음악으로 얼마만큼 이름을 날렸는지 나는 관심이 없어서 모르지만, 이 할아버지의 일대기는 나에게 전혀 흥미가 없고 게다가 짜증이 난다. 그렇게나 일찍부터 대도시를 알고 경험했으면서도 그는 딱히 페미니스트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성을 인간 보다는 여성으로 보는 것 같다. 어디에서 살든 뿌리박힌 생각은 고쳐지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뉴욕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이 재미있지를 않았어.


한대수는 음악에서도 재능을 보인 사람이지만 사진으로도 그랬다. 예술쪽으로도 아는 것이 많아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는데, 그가 칭송하는 예술가의 사진을 보다가 도대체 이런 사진을 왜 찍고 앉았나 싶어지는 것이다. '아라키 노부유시'란 작가의 묶인 여성이 보여지는 작품은 도대체 이런 작품을 왜 만든건지 노이해 되는 것이다. 이런 사진을 보는게 너무 끔찍해. 안그래도 오늘 읽은 2016년 신문기사에서는 남성이 섹스 도중 여성의 목을 졸랐다가 여성을 살해했다는 게 있었다. 남자는 살해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행위 도중 목을 졸랐을 뿐이라고 햇는데, 왜 영화 같은 거 봐도 나오지 않나. 더 큰 쾌감을 원해서 여성의 목을 조르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고. 아 진짜 너무 끔찍해. 아 너무 싫다 싫어 진짜. 쾌감이 뭐라고 목까지 졸라가며 그지랄들을 해. 내 목을 졸라가며 얻는 쾌감 같은 거, 나는 바라지 않는다. 행위 도중 목을 조르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원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 나는 그것은 두렵고 싫다. 무분별하게 그러면 좋대, 이러면서 아무거나 다 따라하고 그러지좀 마. 그런데 한대수가 소개한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품에서는 여자가 교복을 입고 끈에 묶여 천장에 매달려 있다. 정말이지 씨발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이걸 굳이 뭐하러 작품이라고 찍어 놓는건지 모르겠고, 이걸 작품이라고 해놓은 걸로 그냥 모든게 다 설명되는 것 같다. 이걸 작품이라고 만들고 전시하고 이 작가가 유명해지는 건...뭐야?? 책에 나온 사진 올릴까 하다가 관두기로 한다. 나는 이 사진 보는 순간 너무 짜증이나서, 아직 책의 절반도 읽지 않고서는 책읽기를 그만둘까 어쩔까 고민했다. 끝까지 다 읽었지만, 뭐 좋은 건 없었다.




앤디워홀 전시는 나도 가본 적이 있는데, 앤디 워홀이 페미니스트로부터 총을 맞았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한대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워홀의 가장 큰 비극은 1968년에 일어났다. 남자들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 발레리 솔리나스로부터 총을 맞았던 것이다. 목숨이 위독할 정도였다. 가슴을 열고 대수술을 한 결과 겨우 살아남았다. (p.48-49)




그러니까 한대수는 페미니스트는 남자들을 혐오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고 있구나, 라고 저 구절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1987년, 워홀은 담낭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도중에 합병증으로 죽었다. 나이 58세였다. 항상 병원 공포증으로 검진과 치료를 기피해온 결과였다. (  p.49)



아 이부분 읽는데 너무 무서웠어. 내가 받은 수술인데... 요즘 나는 부쩍 피로를 잘 느끼는데, 관리 잘해야겠다. 과식하지 말아야지 ㅠㅠ 과식하면 힘들더라 ㅠㅠ 그런데 오늘 저녁도 또 과식했어 ㅠㅠ 맛있는 게 너무 많았어 ㅠㅠ 과식하지 않을게요. 건강하자. 아프지말고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한대수는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녔는데 영문학에 큰 재능을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한대수가 쓴 이 책을 보면서 몇 번이나 '글 되게 못쓰는구나' 생각했다. 역시 문학에 관심있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구나, 새삼 깨달았네. 한대수는 여러 소설가를 좋아했지만 그중에서 에드거 앨런 포를 가장 좋아했다는데, 하아, 나는 포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좋았을뻔한 것을 이 책을 통해 또 알게 되어버려서 입맛이 쓰다.



그런데 1836년, 그는 사랑에 빠진다. 상대방은 14세 버지니아 클렘. 결혼할 때 아내의 나이가 21세라고 거짓말을 한다. 인생 처음으로 포에게 '가족'이 생겼고, 그는 행복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같이 마실 수 있는 동반자, 처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그에게 생긴것이다. (p.67-68)





........... 어제 내게로 동화책을 가져오며 읽어줘, 라고 말한 나의 조카가 열 살이다. 나는 원래도 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저 사실을 알았다면 포를 버렸을 것 같다. 열네살... 열네살 아내와 커피를 같이 마시는 동반자...행복......... 그만두자.........




칠십세의 한대수이기 때문일까. 아내를 마누라라고 칭하는 것도 듣기 싫고, 큰 딸같다고 얘기하는 것도 읽는게 괴로웠다. 아내는 22살 연하인데, 아내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아파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큰딸 같은 젊은 마누라와 초등학생 꼬맹이, 두 딸이 편히 살 수 있는 뉴욕의 첫번째 아파트, 어디로 갈까? 인터넷과 뉴욕 타임스를 뒤지니 가격이 장난 아니었다. (p.231-232)



위의 문장은 두 번 읽었다. 어? 계속 딸 하나라 그랬는데? 젊은 마누라가 큰딸같아 두 딸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정말....하아.....



환갑이 다 되어 아내랑 사이가 안좋아 헤어질 생각을 하게 됐었는데 그 때 아이가 생겨 다시 사이좋게 같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일을 이렇게 써놨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대하는 옥사나의 태도가 바뀌더니 "I love you." 하면서 육탄 공격을 했다. 그녀는 임신을 간절히 원했다. 내 생각엔, 나 혼자 태국으로 이주한다고 의심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기적이 일어났다. (p.242-243)




.................... 만약 내 앞에서 누가 저렇게 얘기했다면, 듣기싫어 그만 말해, 라고 햇을 것 같다.



한대수는 본인이 대학을 중퇴했고 자신의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걸 이해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너무 공부를 많이 한다는 걸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나도 물론 그 점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고 인정하는 바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 곧 훌륭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것 역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일 수 있다. 더 공부하고 싶고 더 많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다. 그러나 한대수는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이외의 삶 혹은 사고방식에 대해 이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친한 친구 부인은, 나이 60세에, 갑자기 박사학위를 받겠다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가 말했다. "대수 형, 나 죽겠어. 생활하기도 힘든데, 학비가 부담스러워."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우리는 학교, 학벌, 지위, 권위, 직책, 너무 따진다. 이것은 열등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꼭 박사 모자를 써야 자신감이 생기고, 별을 달아야 장군이 된 기분이고,  CEO가 되어야 성공한 기분이고, 또 그래야 상대방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참 촌스런 생각이다. (p.267)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의 평소 생활이나 생각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서 작게나마 공감하는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에세이의 가장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생각과 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에세이이기 때문에 나랑 가장 다른 점도 들여다볼 수 있다. 60세에 박사학위를 받겠다고 한 아내 때문에 신랑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할 수 있고, 그것이 고민이 되어 누군가에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열등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 이라고 치부하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꼭 타이틀이 있어야 되다니 촌스럽다, 라고 하는데, 박사학위를 받고 싶다는 것을 타이틀 따는 거에 연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생각안에 갇힌 거 아닌가.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시야가 넓어지는 건 아닌것 같다. 젊은 시절 다양한 경험을 했어도 나이 들어서 딱히 더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야. 첫번째 아내와 이혼하기 전까지 외도도 많이 했다는데, 만약 내가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 이 책을 읽고, '그래도 음악의 천재니까' 하면서 끄덕일 수 있었을까? 내 경우엔 그의 음악을 좋아했었다 한들 이 책을 읽으면 으으, 별로다... 사요나라~ 했을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추천사는,


김훈이 썼다. 



김훈과 한대수는 동갑이라는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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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7-29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왜 그러셨어요. 이런 책을 그 좋은 여행을 앞두고 ..... 암튼 즐거운 여행!!

다락방 2019-07-29 08:30   좋아요 0 | URL
이게 이런 책일줄을 제가 몰랐지 않았겠습니까... 하아-
일주일만 버티면 저는 휴가입니다. 꺅 >.<

지나 2019-07-2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욕좋아요 이제까지 가본곳 중 최고
해질녁 메트로폴리탄 덴두르 신전이 넘 멋졌어요.이집트를 못가본 저에게 이집트에 온듯한 느낌을 줬어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다락방 2019-07-29 14:17   좋아요 1 | URL
저도 뉴욕이 너무 좋아서 뉴욕을 내집처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사실 중학생 때부터 언젠가 미국에 터를 잡고 사는게 꿈이었는데... 아주 현실적이 된 지금은 제가 그곳에서 거주하는 건 좀 힘들거란 걸 알겠더라고요. 대신 자주 가서 내집삼자..(응?) ㅎㅎ
이번엔 세번째 방문이니만큼 아마도 더 익숙하고 더 반갑겠죠.
잘 다녀오겠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slobe00 2019-07-2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느낌의 표지인데 ㅡ뉴욕 생활 예술 유람기ㅡ를 보셨음 좋았을 것을..
김훈과 동갑...하아..안 봐도 알것같습니다^^;;

다락방 2019-07-29 14:19   좋아요 0 | URL
오, 존재를 몰랐던 책인데 슬로브 님의 댓글 덕에 검색해 봤습니다. 말씀하신 책이 훨씬, 훠어어어얼씬 더 나을 것 같네요. 사서 비행기 안에서 읽어봐야겠어요. 후훗. 추천 감사해요!! >.<

단발머리 2019-07-29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읽지 말랬는데요, 난 이 책 읽고 다락방님이랑 저자 욕을 같이 하고 싶어지지 말입니다.
읽으면서 중간중간 배경음 넣었어요. 제기랄... 뭐, 이런 종류요.
잘 읽고 갑니다^^

참, 잘 다녀오세요. 멋진 시간, 멋진 추억 되시길요~~~~

다락방 2019-07-29 14:30   좋아요 0 | URL
나이든 남자들은 되게 징그럽다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든 남자들에게 지면도 잘 주고 마이크도 잘 주는 것 같아요. 이제 그들의 말과 글을 더이상 읽지 않아도 되는데 말예요.

저는 지금 위에 슬로브님 추천으로 뉴욕 책을 하나 더 주문했지 뭡니까! 후딱 또 읽고 또 뭔가 써야지요. 가능하다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단발머리님,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는 잘 읽고 계신겁니까? ㅎㅎ

단발머리 2019-07-29 14:34   좋아요 0 | URL
네에~ 제가 45~57%만큼 읽었는데, 내일 반납인데 정리를 아직 못 하고 있습니다요.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쪼금 아껴주고 하다보니까요 ㅠㅠ
다락방님은 다 읽으셨잖아요?! 부럽...

다락방님도 아직이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07-29 14:37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저의 목표는 오늘 다 끝내기인데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현재 엥겔스, 콜론타이, 버틀러... 남겨두고 있습니다. 사실 베벨, 이리가라이...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어쨌든 읽기는 읽었습니다. 버틀러 읽는 중이었는데..... 단발머리님, 저는 버틀러 책은 앞으로 안읽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버틀러 책 읽으면 저 독서의 흥미를 잃게될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이 책에서 버틀러 읽으면서 지금 뭔가 핑핑 돌고 있는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 어머니를 사랑하는데 그것은 동성이라 안돼 거부되고 근친이라 안 돼 한 번 더 거부되고 동성 우울증... 뭐라는건지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9-07-29 14:46   좋아요 0 | URL
전, 이번에 다 못 읽으면 (흐흑.... 남은 시간 23시간) 며칠 뒤에 다시 대출해서 읽으려고요. 엥겔스, 콜론타이 책은 못 읽더라도 정리해준거는 읽어야된다는 심정으로... 맘 같아서는 정희진샘이 여성주의 고전을 다 정리해 주시면 좋을것을.
어쩌면 그러면 ‘정희진의‘ 여성주의 고전이 될 수도 있겠네요.

버틀러는.... 흐흠.... 그 나라 말로 읽는 사람들도 넘 어렵다고 한다고 하더래요. 저는 어렵게 쓰는 것도 재주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 분야, 여성학은 그냥 다 쉬워야한다는 생각, 만만하다는 생각이 많잖아요.
하나의 학문으로서 인정받고 자리 잡기위해서는 그런 도전도 괜찮다는 생각이에요.
그래도 사양하고 싶네요, 버틀러는.... 좋아하지만, 사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아가 경험하는 두 번의 좌절을 다룬 이론은.... 그러게요. 어렵더라구요,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9-07-29 14:54   좋아요 0 | URL
저는 버틀러가 하는게 뭔가... 싶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이것이 페미니즘하고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싶으면서.. 아 너무 어려워서 지금 버틀러 뒤에 좀 남아 있는데 ㅠㅠ 아아 엄두가 안나고. 아무튼 저는 그래도 7월안에 반드시!! 다!! 읽어서!!!! 읽었어요!! 에 체크하겠습니다. 빠샤!!!!!

다른 얘긴데 저는 이 책 읽고나니 베티 프리단이 궁금해졌어요. 여성성 신화는 꼭 사겠어요!(불끈!)

단발머리 2019-07-29 15:00   좋아요 0 | URL
저도 버틀러를 들었다 놨다만 몇 번 째라서, 사실 앞으로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인생은 짧은데 읽을 책이.... 좀 많잖아요~~~~~~~~~~~~
근데 전 그래도, 누군가 이론을, 페미니즘 철학 이론을 다듬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윤김지영 선생님처럼, 그래도 좀 쉽게 설명해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버틀러는 어렵기는 해도 그래도 주류에서 좀 먹히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바로는요.

다락방님은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군요. 꼭 읽었어요!!! 성공하시길 바래요.
<여성성의 신화>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다락방님의 또 다른 불끈을 기다리겠어요!
 

선생님이 정해 준 자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맨 앞자리라서 선생님 목소리도 잘 들렸다. 나보고 아무 데나 앉으라고 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쩔쩔맸을 거다. 보나마나 자리를 못 고르고 땀만 흘리고 있었을 게 뻔하다. 그렇게 계속 망설이다가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3학년이 된 첫날인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제 자리가 정해졌으니 걱정할 일이 하나 줄었다. (p.7)


















어제는 안산에 있는 여동생네에 갔다. 조카들과 라이언 킹을 보고 제부와 함께 술을 마셨다. 늦은 밤, 일곱살 조카는 제 엄마와 자러 들어갔는데, 열 살 조카는 제 방에서 책을 한 권 뽑아 내게로 가져왔다. 이모 이거 같이 읽자, 하고는 내게 이 책을 내민다. 이모가 읽어줘, 말하며 조카는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자 조카는 내 어깨에 제머리를 기댔는데, 그 때의 행복감은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거야.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있는 그 기분...


나는 제목도 처음 보는 그런 책을 펼쳐 읽는데, 아아, 그러나 첫부분부터 나의 마음이 요동친다. 나는 딱 위의 인용문만큼을 읽다가 한숨을 쉬고 말았다. 조카는 이모 왜그러냐고 물었고, 으응, 이모 3학년때가 너무 생각나서, 라고 답했다. 어땠는데? 왜? 말해줘! 조카가 내게 요구했고 나는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타미야, 이모가 초등학교(사실 국민학교였다, 나는)3학년때는 반 아이들이 60명이 넘었거든.

응.

그때 남자아이들을 쭉 키 순으로 세우고 여자아이들도 키순으로 세워서, 제일 작은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짝이 되어서 앞에서부터 앉았어.

응. 이모, 우리도 그래.



그랬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번호는 가나다 순이었지만 짝은 키 순으로 됐다. 새학기가 되어 반을 배정받고 나면 복도에 쭈욱 일렬로 세워서는 제일 작은 아이들끼리 맨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앉아가며 짝이 되었다. 나는 항상 3,4번째 줄에 앉았는데 그 때는 내 키가 보통 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보통보다는 약간 작은 키가 아니었나 싶다. 인상적인 건 6학년 때였다. 6학년 때에는 여름방학이 끝나니 선생님이 다시 복도에 줄을 세웠던 거다. 그 때 너무 놀랐던 게 내 앞에 앉았던 남자 아이가 내 훨씬 뒤에 앉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 방학동안 녀석은 훌쩍 커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방학 끝나고 다시 자리 배치를 한것이겠지. 방학 끝나고 훌쩍 커버린 애는 그 아이 하나만은 아니었을텐데, 내가 그 아이를 기억하는 건, 그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철수였지만, 뭐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어쨌든 3학년 때의 나는 매우 수줍은 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수줍은 아이었어. 조카가 읽어달란 책 속 주인공처럼, 선생님이 뭔가 정해주는대로 하는 게 내게는 세상 편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나 역시도 선생님이 '네 마음대로 앉아' 라고 했으면 어디에 앉을지 몰라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그 3학년 때. 


선생님은 어느 날, '내일 하루는 여러분 앉고 싶은 사람과 같이 아무데나 앉도록 해' 라고 말씀하셨다. 요지인즉, 앉고 싶은 남녀 아이가 짝이 되어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라는 거였다. 아이들은 즐겁다고 소리를 질렀고, 하교할 때는 매우 시끄러워졌다. 아무개야 내일 나랑 앉을래? 좋아, 아무개야 우리 같이 앉을까?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서로 자기가 함께 앉고 싶은 아이를 알고 있는가 보았다. 거침없이 같이 앉자 제안하고 응하는 아이들을 보는 게 매우 부러웠다. 나는 전혀, 전혀 그런 제안을 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감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다음날 원하는 아이와 짝이될 수 있다는 마음에 신났는지는 몰라도 나는 전혀 아니었다. 나는 학교에 다시 와야 하는 내일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싫었다. 



기다리지 않았지만,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김없이 다음날은 왔다. 나는 학교에 갔고, 미리 온 아이들이 저마다 신나게 떠들고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어디에 앉아야할지도 모르겠고 누구랑 앉아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그래서, 하는수없이, 그저 원래 내 자리에 가 앉았다. 내가 늘 앉던 그자리. 그리고 내 옆자리에 누가 올지는 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얼른 이 하루가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수업 시간이 가까워오고, 내 빈자리는 누가 와 앉았다. 바로 어제까지도 내 옆에 앉았던 그 남자아이었다. 계속 내 짝이었던 아이. 하아-



선생님은 반을 한 번 휙 둘러보고는 아이들에게 저마다 그 아이와 왜 앉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너는 왜 그 아이랑 앉았니? 물으면 아이들은 잘도 대답했다. 얘랑 앉고 싶었어요, 얘가 앉자고 했어요, 라고. 그리고 선생님이 내 짝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왜 걔랑 앉았니? 라고. 그러자 짝은 이렇게 답했다.



"아침에 오니까 얘가 여기 그대로 앉아있더라고요."



아이들은 모두 와- 하고 웃었다.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내 짝이 말하는 그 때 당시의 뉘앙스는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마치 얘가 내가 여기 앉아달라는 듯이 앉아있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그래서 웃었다. 나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얼른 이 하루가 끝나기를 바랐다. 나는 지금 이 짝과 짝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른 애들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창피함이, 그 수줍었던 시간이, 어제 조카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확 떠오르는 거다. 지금이라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행동이지만 나는 그 때의 내 수줍음과 창피함이, 얼른 집에 가고 싶었던 그 마음이 생각나 너무 안스럽다. 왜그랬니, 왜그랬어.



그 당시에 나는 y 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했다. 우리반 부반장이었다. 그 아이를 좋아했는데, 그 아이는 다른 여자아이와 거침없이 '나랑 앉자' 이러면서 서로 좋아서 앉았단 말이야. 나는 감히 말을 꺼낼 엄두도 안났다. 남자아이들에게 말을 걸지도 못하는 수줍은 아이었어. 물론 이러다가 5학년 때는 남자애들 패고 다니는 애가 되었지만.... 졸라 패고다녔다 그 때.  남자애들이 하도 괴롭히는데 하지말라고 해도 말을 안듣고 선생님한테 일러도 말을 안들어서, 그냥 내가 패버리고 다녔어...인생....깡패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아니, 5학년때 그렇게 돌변할 아이었는데 3학년 때 왜 수줍음의 왕이었나...


하아.

그 때의 그 수줍은 내가 생각나 너무 짠하고 안타깝고 책 속 주인공이 이해되었다. 아아, 선생님이 자리 정해주는 게 제일 편해요,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마세요..



지금의 나는 그 때와는 성격이 완전히 변해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되었다. 미용실에 가서도 내가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느날은 원장 선생님이 결정이 빠르고 확실해서 너무 편하다고 하시더라.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침이 없다. 좋으면 좋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만약 성인인 지금의 나에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같이 앉고 싶은 상대에게 '앉을래?'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잘못도 아니고, 내 마음을 숨겨서 상대가 모르는 것도 싫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기를 나는 원하고,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다만, 이 생각을 하다보니, 그러나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앉고 싶은데 앉을래? 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어떤 수줍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거절을 당한다면, '아니'라는 답을 듣게 된다면, 아, 너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아마도 나는 그렇게 청하진 못할거야. 다만, 거절 당해도 가슴이 아프지 않을만큼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을까. 나랑 같이 앉을래?



그 어린 날, 그 수줍고 부끄러웠던 날이 지나고 며칠 뒤. 여자아이들 몇 명이서 학교 운동장 정글짐 앞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때 y의 원래 짝이었던 여자아이가 내게 말했다.


"y가 너 좋아한대. 너랑 앉고 싶었대. 근데 너한테 말을 못하겠더래. 그래서 h한테 같이 앉자고 했대. 근데 이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래."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 밥통아, 니가 진작에 나한테 말했으면 나는 그 수줍은 날을 보내지 않고 즐거이 보낼 수도 있지 않았겠니?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도 너를 좋아했는데.....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용기가 없으면 안된다, 여러분. 용기가 없으면 내가 원하는 사람과 앉지 못해. 용기가 없으면 사실은 딱히 원하지 않는 상대와 앉게 되는 것이야. 여러분. 용기를 내자, 용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너를 좋아한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속으로 아무리 외쳐봤자 상대는 내 말을 듣지 못하고, 상대도 나도 다른 사람을 택해서 앉게 된단 말이다. 물론, 거절의 답이 올 수도 있다. 그러면 아파, 많이 아프지. 아아. 아프면 안되는데...아프지말고 행복하자 우리..




몇 해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년만에 만나는 남자를 앞에 두고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미 다 지나버린 일이고 또 앞으로도 아무 가능성 없는 사이이니, 이럴 때나 얘기하자, 하는 마음으로 묵혀두었던 얘기를 했었다.



"나 그 때 당신 되게 좋아했었어."

"그럼 말을 했어야지. 왜 바보처럼 말을 안했어?"

"말한다고 어떻게 될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말했으면 어떻게 됐을 수도 있지."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시간이 지난 다음에 하는 고백은 무슨 소용이람. 그렇게 그 만남이 있은 후에 우리는 각자의 갈 곳으로 갔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었지, 5년간은...... 




아아, 조카는 어제 왜 하필 저 책을 가져와서 30년 전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나. 왜 그 수줍던 나를 불러냈나. 나는 이제 더이상 수줍은 아이가 아니야.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아는 어른이 되었어. 그리고 이제는 딱히 숨기고 싶은 마음도 없어. 거절은 여전히 아플 것 같아 망설이게 되지만, 이제는 어떤 아픔은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안다.



늦기 전에 얘기하자. 나는 너랑 앉고 싶다고. 그거 말하지 못하면 이렇게 삼십년 지나서 내가 그 때 왜그랬지 하게 된다.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수줍음과 안타까움으로 보내게 된단 말야. 그러니까 말해야 돼. 설사 거절당하는 아픔을 무릅쓰고라도 말해야 한다고. 나는 너랑 앉고 싶다.



나는 너랑 앉고 싶다. 이것이 나의 진실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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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2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심이 다락방과 주먹 다락방 사이의 4학년 다락방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걸까요!!

다락방 2019-07-29 14: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요. 저도 그게 생각이 나질 않아요. 정신차려보니 저는 주먹 다락방이... 그렇지만 제가 먼저 애들 때리고 다닌 건 아니에요. 굳이 저 괴롭히는 애들만 무지막지하게 팼어요. 왜괴롭혀, 왜,왜,왜 이러면서 ........................( ˝)

감은빛 2019-07-2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6학년때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제 뒤에 앉았었어요.
저 역시 당시에는 소심하고 수줍은 아이여서 졸업할 때까지 그 아이에게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제 뒤에 앉아 있었던 것이 좋았어요.
그 아이의 목소리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앉아 있었던 것이 좋았어요.

다락방님 글 읽으니 괜히 저도 어린시절이 떠오르네요.

다락방 2019-07-30 08:34   좋아요 0 | URL
저는 학년 올라갈 때마다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언제나 한 명씩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나름 금사빠... 였던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린 시절이라니, 아, 정말이지 너무 오래전의 이야기에요. 아주 오래전입니다. 휴..

띠롱띠로리 2019-08-12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투가 너어무 좋아 새벽 세시가 넘너서도 다락방에서 나가질 못하네요

띠롱띠로리 2019-08-12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것이야 라고 하실 때 특히요 박준 시인 리뷰다신거 우연히 보고 들어왔어요 좋은 글들 감사합니당

다락방 2019-08-12 07:43   좋아요 0 | URL
우아 감사합니다.
새벽 세시까지 제 공간에 머무셨다니, 게다가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너무 좋네요.
제가 오래전부터 글을 써서 아주아주 글이 많으니까 언제든 오셔서 충분히 머물다 가셔요. 히힛
반갑습니다!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평화로울 수 있었던 금요일은 분노의 금요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어. 이 책은 단편집인데, 여기에 실린 <추앙>이란 단편을 읽다 보면 정신이 확든다. 아, 한남문학인이란 무엇인가.. 한남에게 문학을 주지말자.


대학생이자 습작생인 정원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대학 강사이자 유명 시인인 B 강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이에 B 강사에게 항의메일을 보냈는데, 그로부터 이런 답장을 받게 된다.





와, 어쩌면 이렇게 찐한남문학인의 글 같을까. 진짜 한남문학인이 쓴 글 같다, 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편소설집에 실린 '소설' 이니까. 그런 한편 아아, 얼마나 유치한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사과를 해야하는데, 저렇게 유체이탈화법을 쓰다니, 진짜, 글 왜배우냐. 어디서 쌉스런 글만 문학이라고 배웠냐, 하고 한심해 했다.



정원은 같은 과 선배인 '현석' 에게 이 일을 얘기한다. 현석은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고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그는' 문학계에 뿌리박힌 여성혐오의 오랜 역사를 한탄(p.91)' 했지만, 가장 존경하는 시인에 B 강사의 이름을 적는다. 그 이유는


'그 시인들은 매 순간 시인이며 그들의 인생 자체가 시(p.91)'



이기 때문이었다. 결코 평등한 입장이 아닌 학생에게 입을 맞추려는 강사가 매 순간을 시적으로 살고 있었다니,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원은 현석의 진심이 궁금했다. 성추행범을 욕하고 여성성의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동시에 성추행범을 추앙하며 그들의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성향을 찬미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걸까. 강직하거나 점잖다고 정평이 나 있는 수많은 교수와 시인 중에서 현석은 어째서 A교수와 B강사를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꼽았을까.

사회적 변두리에 있는 것만을 지지하며 깨어 있는 젊은 지식인 행세를 하는 현석의 고매한 취향에 해임당한 적이 있는 교수와 가난하기로 소문난 B 강사가 가장 적합했던 것일까. 자유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며 반항아라는 가면을 쓰고 사는 그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현석은 자유롭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지하는 자의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권위가 없는 척하는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그들의 권위를 지지하며 자신은 권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p.93-94)




소설같지 않다, 너무 있을 법한 일이다, 너무나 생생하다 생각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한남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계속 의문을 가졌었으니까. 왜 그들은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여성의 젖가슴과, 자궁과, 제왕절개까지 가져오는가. 맥락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단어들을 가져다 쓰면 쿨해보이나. 그것이 문학적으로 인정 받는 길인가. 문학, 참 못하는 구나 한남, 이라고 생각했다.



다같이 냇물에 발 담그고 막걸리를 마시고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하는 기분을 학생들에게 들게 한 이 책 속의 A교수는 정원에게 남자 잡아먹을 상 이라고 말한다. B 강사와의 일을 알기 때문일테지. 성추행은 B 강사가 했는데, 그걸 학교에 신고하고 항의메일을 보낸 학생은 '남자 잡아먹을 년'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문학을 한다. 성추행범은 나쁜 거지만 매순간 시적으로 사는 그들을 존경한고 말하는 남자와, '너를 따먹고 싶었다'고 학생에게 말하는 강사와, 학생에게 남자 잡아먹을 상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교수가,



문학을 한다.


문학을 하면서,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아마 이렇게 된 것이라고 보네' 라면서, 마치 자기가 자기가 아닌 듯이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렇지만 너를 예뻐해, 너에겐 재능이 있지, 라고 쌉소리 하는 새끼가 하는게 바로, 문학이란 것이었다.



분노하며 읽다가, 아아, 이 생생한 소설을 어쩌면 좋아, 한남에게 문학은 독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나는 이 소설의 끝에서 이런 덧붙임을 읽게된다.







그렇다.

저 메일, 저 유체이탈 화법을 쓴 메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저런 글을 썼다. 저런 글을 쓰면서 학생을 가르친다고 한다. 한남에게서 문학을 빼앗아와야 한다. 한남에게 권력을 주면 안되고, 문학을 주어서도 안된다. 문학은 한남에게 주기에 너무 아깝다. 그들에게 가는 순간 아주 부끄러운 것이 되고야 만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기의 순간에 문학이 있었다고 했다. 문학이 그를 살려주었다고 했다. 문학이 그의 감정을 건드려주었다고 했다. 문학이 하는 일은 작게도 크게도 누군가를 움직이는 일이었고, 내게도 역시 그렇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내가 문학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이지, 문학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문학을 보고싶지 않다.


문학하는 남자들의 쌉소리를 읽고 싶지 않다. 저들끼리 추앙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 




B강사는 대학 강사이자 유명 시인이었다. 정원은 대학생이자 습작생이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진 자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자의 대화는 평등할 수 없었다. 정원은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고, 일방적으로 수긍해야 했다. 정원은 매번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했고, 내 생각은 다르다는 말이 안에서 쌓여갈수록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꼈다. B강사가 취한 행동의 저변에는 자신이 ‘시적 영혼‘의 소유자라는 합리화가 깔려 있었다. 또한 ‘시적 영혼‘의 저변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학적 추종 그 자체와 현석과 같은 충직한 추종자들이 있었다. - P93

아프다는 게 뭔지 아니.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감각이야. 인간은 항상 회복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어. 정상일 때에는 자기가 정상인 데 둔감하지만, 비정상이 되고 나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는 법이야. 갈망이 신호를 보내는 게 아픔인 거야.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았겠지. 가장 나쁜 건 아픈 사람은 자기 아픈 것에만 골몰한다는 거야. 비정상인 상태가 괴로운 건 자기만 아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회복되고 싶었어. 아프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어. 아프지 않으려면, 정상으로 돌아가야 했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P102

언니는 정상이 되고 싶댔지. 나도 언니가 생각하는 정상이 되고 싶어한 적이 있다는 걸 언제고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정상이라 여겨지는 그 영역 안에 종속되어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P118

다음주에 팸플릿 인터뷰 잡았다. 대본은 내가 준비해뒀으니까 너는 하던 대로 간단하게 사진만 찍으면 돼.
제가 말하고 싶어요.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실장은 가방을 집으며 반쯤 감긴 눈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다 써놨는데. 그거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 지 알아? 너 이러는 거 노동력 착취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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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에 대한 부분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었다. 이 책에 실린 저자들중 몇 안되는 남성인데, 그를 다룬 꼭지의 앞부분에는 그가 '빅토리아 시대 여성운동의 절정기를 이끈 지도자' 라고 되어있다. 그가 썼다는 책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은 물론 일찍부터 사두었지만, 다른 많은 책들이 그러한 것처럼 아직 읽지는 않았...으니 이 책으로 예습을 해보자. 그러니까, 밀은 여성의 종속을 왜 썼고, 어떻게 쓸 수 있었으며, 어쩌다가 여성운동의 절정기를 이끈 지도자가 되었나. 남성이란 성별로서.


페미니스트를 지지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남성들이 있어왔다는 걸 알고 또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으로 태어나서 온전하게, '스스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가능한가. 밀이 다른 남성들과는 달리 이렇게 여성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 있었을까. 이 책을 읽노라면 그가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본젹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은 '해리엇 테일러'라는 여성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언급된다. 오, 나는 그가 여성의 종속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가 그걸 써내는 배경에 다른 '여성'이 있었던 줄은 몰랐던 터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1830년 스물다섯 살의 밀은 존 테일러의 부인인 스물세 살의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 1807-~58) 를 만나 첫눈에 "깊고 강한 감정, 투철하고 직관적인 지성, 그리고 남달리 명상적이고 시적인 성품을 가진 여성"임을 알아본다. 밀과 해리엇의 우정은 이십 년 동안 유지되었고, 결국 존 테일러가 죽은 지 2년이 흐른 1851년에 (밀의 가족의 반대를 감수한 채)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생활은 1858년 해리엇의 죽음으로 마감된다. 이듬해 밀은 해리엇과 함께 저술해왔고 마지막 교정까지 함께 보려고 준비해두었던 원고를 정리해서 발표하는데, 이것이 『자유론』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밀은 영혼의 반려자였던 해리엇을 기리며 "진리와 정의에 대한 높은 식견과 고매한 감정으로 나를 한없이 감화시켰던 사람, 칭찬 한마디로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해주었던 사람,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의 영감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글을 나와 같이 쓴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 함께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그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나의 친구이자 아내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애정 어린 헌사를 남긴다. (p.89-90)



자유론을 먼저 쓰고 나중에 여성의 종속을 쓰게 되는데, 그러니까 그는 스물다섯에 알게된 여성과 깊은 우정을 유지하면서 생각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는 거다. 그가 저런 헌사를 남길만큼 그녀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바, 물론 밀이 원래 가진 여성에 대한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해리엇과의 대화들로 인해 팡팡 터지면서 화악 열린 것 같다. 밀은 그러니까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보기 드문 개념남이지만, 그 혼자 스스로 개념남이 되었다기 보다는 단단한 조력자가 있었던 셈.




여성참정권을 핵심적인 의제로 삼고 밀고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성의 종속』이 생생하게 웅변하는 바, 평등이 인간의 자유로운 삶에 필수적이라는 평생의 신념에서 나왔다. 이는 걸출한 여성 해리엇을 흠모한 영민한 청년 밀의 순수한 열정에서 싹텄고, 사회개혁이 진정으로 자유를 향유할 줄 아는 평등한 개인들에 의해 완성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믿으면서 그녀와 함께 『자유론』을 집필했던 원숙한 사상가 밀의 통찰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1860년대 말 영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은 밀의 자유주의 사상 그리고 그것의 완성에 영감의 원천을 제공한 해리엇 테일러라는 탁월한 여성에게 철학적 원리를 빚진 셈이다. (p.93)




밀의 여성의 종속, 자유론에 대한 내용도 궁금해졌지만 해리엇과의 관계가 너무 흥미로웠다. 혹시 이것만 다룬 책이 따로 있을까? 해리엇이 지성을 가진 여성이었다는 것도 흥미롭고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밀이 그런 여성임을 알아보았다는 것도 그렇고. 그가 해리엇을 한눈에 알아보았는데 그것이 지성이나 감성 때문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지성과 감성에 반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너무 좋다. 지성과 감성에 반하는 사람들은, 그 지성과 감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도 뜻한다. 밀이 그런 사람이었기에 해리엇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더 쭉쭉 뻗어나갈 수 있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다른 보통의 남자들이었다면, 해리엇 백명하고 우정을 지속해봤자 자기 사고의 테두리안에 머물렀을 것이다. 뭐, 그런 남자라면 해리엇이 우정을 지속할 리도 없었겠지만.



해리엇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20년이나 밀과 우정을 지속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남편인 자신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생각과 사상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의견을 교환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해리엇은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우정을 지속하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역시나 값싼 호기심인걸까? 나는 이들이 그 우정을 지속했던 그 시간동안 닥쳐왔을 감정의 변화가 너무 궁금하고 그 얘기들을 들어보고 싶다. 아울러 그 시간동안 유지했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그들은 이십년동안 '우정'을 지속했다 말하지만, 해리엇의 남편이 죽고나서는 결혼을 하잖아. 결혼은 십년도 채 안돼 해리엇의 사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밀이 자유론에 그런 어마어마한 헌사를 쓸만큼, 그렇게나 지성을 나누는 우정(혹은 사랑)관계를 가진 사람의 마음 상태는 어떤 것이었을지도 궁금하다. 나는 지성을 나누는 파트너가 섹스 파트너 구하기보다 이천배쯤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섹스 없이 살아도 삶에 별 지장은 없지만 지성을 나누는 파트너가 없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밀은 나름의 행복을 충실히 쌓으면서 살았던 게 아닐까.... 라고 혼자 너무 멀리 나가고 있나.......




지성을 가진 여성을 알아본 것처럼, 밀은, 우정에 대해서도 인지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을 인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던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밀이 그리는 이상적인 부부관계는 "높은 수준의 능력과 소질을 비슷하게 갖추고 그 생각과 지향하는 목표가 똑같은 두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 일정 정도 비교 우위를 지닌 까닭에 서로를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특혜를 누릴 뿐 아니라 자기 발전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지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도받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는 상태이다. (p.104)



밀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생활은 자유로운 두 영혼이 결합하여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 발전하도록 보살피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잠자리에서부터 재산관리에 이르는 결혼생활의 모든 국면에서 일방적인 권력행사에 위한 억압, 복종, 희생이 추방되고 상호합의를 기반으로 한 신뢰, 배려, 호혜가 통용되는 관계를 추구한다. 이렇게 완벽한 평생의 반려자와 맺는 관계는 아마 최고 수준의 우정일 것이다. (p.106-107)




이렇게 우정과 평생의 반려, 그리고 결혼까지 그는 오래 생각하고 들여다본 것 같지만 '비혼 여성에 대해 철저하게 무심하다(p.108)'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밀이 19세기에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한 이상, 그에게 완벽한 개념남이 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밀은 아마 자신이 가진 한도 내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한껏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껏 말했을 것이다. 그는 애초에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남자였고, 그래서 해리엇을 만나 열릴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남편과 아내 역시 그런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가장 좋은 반려가 어떤 건지도 알았지만, 그러나 비혼에 대해서는 무심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걸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서만 열렬히 생각하게 될거다. 밀의 주변에 해리엇이 있어서 밀이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고 참정권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 그가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비혼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아마도 또 그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비혼 여성이 있어야 했을 수도 있다. 아, 비혼 여성은 그런 삶을 살고 있어? 하고 그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가 '더' 개념남이 되기 위해서는 또다른 조력자가 필요했던게 아닐까. 우리가 볼 수 있는 데까지 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더라도 분명 부족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가급적 오류를 잡아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오류도 있으니까.



밀의 비혼 여성에 대한 관심의 한계, 여성관의 한계 같은 걸 잡아낼 수 있는 것도 그 시기를 지난 후에야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때문에 밀은 '후대의 비평가들에게 표적이 되었(p.109)'다는데, 후대의 비평가들이 할 일이 바로 그런 거 아닐까. 앞서 나왔던 생각들의 오류를 잡아내고 보완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



밀에 대한 부분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밀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삶이 즐거움의 연속은 아니었겠지만, 그가 존경하는 여성이 있었다는 것, 그녀가 그의 생각과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된 건 이 책을 읽으며 얻은 큰 수확이다.


메리 울스턴트래프트, 존 스튜어트 밀,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을 읽었고 아우구스트 베벨, 프리드리히 엥겔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뤼스 이리가라이, 주디스 버틀러가 남았다.





그가 말한 자유는 남성과 여성을 아우르는 ‘인간‘의 자유였다. 밀은 법조항 속에서 ‘사람‘으로 통용되던 단어인 ‘man‘을 중립적인 단어 ‘person‘으로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 ‘인간‘이라 써놓고 ‘남성‘으로 읽는 구습을 정면에서 비판한 드문 남성지식인이었다. - P88

밀은 세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고전어, 역사, 문학, 철학, 경제학을 배웠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일종의 영재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는 당연히 밀 개인의 놀라운 재능에 대한 주석이지만, 나아가 밀의 시대가 누렸던 비옥한 지적 풍토를 암시한다. - P88

유망한 저술가들과 토론회를 주도하면서 런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무렵, 밀은 심한 신경쇠약을 앓게 된다. 이때 무기력과 우울을 문학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일화는 『자서전』의 가장 유명한 대목 중 하나인데, 그는 이 시기가 인생 최대의 위기였으며 문학을 통해 ‘감정‘에 눈뜨지 못했더라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없었으리라고 술회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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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2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 멋쟁이... 밀 잘 써... <자유론> 밀나좋음...

다락방 2019-07-26 12:43   좋아요 0 | URL
나 자유론 있지롱~~~~ ㅋㅋㅋㅋㅋ

syo 2019-07-26 13:05   좋아요 0 | URL
읽었나요? 읽었나요? 읽었나요?

다락방 2019-07-26 13:36   좋아요 0 | URL
안읽었다!!!!!!!!!!!!!!!!!!!!!!!!!!!!!왜!!!!!!!!!!!!!!!!!!!!!!!!!!!!!!!!!!!!!!!!!!(내가 안읽고 내가 분노한다)

잠자냥 2019-07-2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존 스튜어트 밀에게 저런 별과도 같은 존재가 있었군요. 처음 알게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도 늘 읽기만 해야지 했던 밀의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을 이 참에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감사한 포스팅.

그나저나 지성 파트너가 섹스 파트너 구하기보다 이천배쯤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다락방 님 말씀에 저도 이천배 동감합니다! (혼자 너무 멀리 나간 이야기 늘 그렇듯 재밌어요 ㅋㅋㅋㅋㅋ)

그럼 즐거운 불금토일 되시길.

다락방 2019-07-26 16:43   좋아요 1 | URL
우앙. 제가 긴 포스팅을 한 보람이 느껴지는 댓글이네요.

저도 밀에 대해 알게된 게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잖아요. 저도 사두었지만 안읽은 책을 일단 어디있나 찾아봐야겠어요. 하하하하. 분명히 자유론 샀는데... 아하하하. 아닌가? 모르겠다. ㅋㅋㅋㅋㅋ

저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 보니까 자꾸 멀리 멀리 가게 되는데, 이렇듯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기쁩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글쓰기는 계속됩니다.


잠자냥 님도 즐거운 불금토일 되세요. 우리는 곧 또 만납시다. 잠자냥 님의 글로 그리고 제 글로.
:)

- 2019-08-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론은 실제로 해리엇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ㅠㅠ 아 그런 여성들 진짜 천지 삐까리겠죠?? 맴찢....
밀과 해리엇의 ‘여성의 종속’ 이 될때까지 !!!

livebeautifully0707 2020-01-3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엇처럼 능력이 있어도 빛을 발하지못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