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독서법 - 마음과 생각을 함께 키우는 독서 교육
김소영 지음 / 다산에듀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은 유독 독서기록장이나 독후감 쓰기를 어려워합니다. 글쓰기라는 건 많은 생각과 집중력, 물리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부모님께서 직접 해보면 더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골라 연필로 독후감을 적어보세요. 짐작으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 해보셔야 합니다. 다 쓴 독후감을 '윗사람'에게 검사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됩니다. 어른보다 글쓰기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마주하는 상황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p.17-18)





국민학교 2학년(어쩌면 3학년? 4학년?)이었나, 방학 숙제로 독후감 쓰기가 있었다. 당시 내 모든 숙제는 엄마가 봐주셨는데, 엄마도 독후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셨던 것 같다. 친척언니에게 놀러오라고 해서 나에게 독후감을 가르쳐주라 하셨다. 친척 언니는 나보다 두 살 더 많았는데, 나는 언니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줄거리를 요약하고 내 감상을 쓰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줄거리 요약'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거다. 다만 그 당시 내가 이해한바로는, 책 한 권을 읽고 책보다 더 적은 분량으로 요약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요약.. 요약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진짜 모르겠는거다. 언니는 나한테 몇 번이나 반복해 설명한 것 같은데, 결국 나는 언니 없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책 한 권을 통째로 베껴냈다. 나름 똑같이 베끼면 안되고 어쨌든 분량은 달라져야 하니 내가 요약할 수 있는 건 문장의 맺음말과 접속어를 하나로 만드는 거였다. 이를테면, 


'~ 한 것이다. 그러나~'


라는 문장이 있다면 '~ 했으나' 라고 바꾼것. 내가 할 수 있는 '요약'은 그게 전부였다. 결국 내 독후감의 원고지 매수는 매우 많았다. 나에게 독후감은 그렇게 매우 어려운 숙제였다. 이게 나한테는 잊을 수 없는 일로 남아있고 또 심지어 부끄럽기까지 한데, 이 책, '김소영'의 [말하기 독서법]을 읽으면서 그 때의 내가 생각나 매우 안타까웠다. 그 때의 내게 김소영 선생님이 있었다면, 김소영의 독서교실에 다녔다면 나는 독후감 숙제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을텐데, 김소영 선생님은 나를 잘 지도해주었을텐데... 그리고 그 어린 시절 그런 독서지도를 받았다면 지금의 나는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아, 너무 슬프다. 김소영 선생님, 선생님은 왜 지금 거기에 계신건가요? 과거의 내게 선생님으로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책, [말하기 독서법]은 김소영의 전작 [어린이책 읽는 법] 처럼 어른들에게도 매우매우매우매우 유용하다. 읽으면서 '글쓰기는 너무 어려워서 쓸 수가 없어' 라고 말했던 내 주변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예 글 쓰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어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시도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제법 잘 써낼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다. 물론 이미 글쓰기에 능숙한 사람이라 해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읽지 않는 것보다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거의 매일 글을 쓰는 나같은 사람도 이 책의 어느만큼에는 '으음, 내가 잘하고 있군' 하였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앗, 이런 방법이!' 하면서 온 몸으로 새로운 배움을 흡수한것이다. 김소영 독서교실에 성인반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반이 있다면 제가 먼 곳에 있어도 다닐 의향이 있습니다, 김소영 선생님.



이 책은 책을 읽고 감상을 얘기하고 글쓰기를 진행해가는 과정에 대해 아주 좋은 방법들이 들어가있지만, 비단 그것만이 이 책의 장점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김소영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몇 번이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독서지도 혹은 글쓰기 지도를 하는 게 김소영 선생님이 독서교실에서 맡은 역할이겠지만, 그러나 그 전에 선생님은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고자 하는 사람. '이렇게 좋은 어른이 저기 숨겨져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지구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이렇게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나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어른이 있다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좋은 일 아닌가. 



'기욤 뮈소'의 책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렇긴 해도 이 불안한 세상에서 제시를 돌봐주는  어른이 셋이라면 그리 많은 게 아니잖아." (기욤 뮈소,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p.367)



김소영 선생님 혼자서 지구상의 모든 아이들을 상대할 순 없으니, 또다른 김소영 선생님들이 여기에도 또 저기에도 숨겨져 있는 거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로 대화상대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뉴스를 보면 온갖 나쁜 어른들이 경쟁하듯 내가 더 나빠 내가 더 나쁘지 튀어나오지만, 이렇게 좋은 어른들이 있구나, 저기 어디에 자신의 존재를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로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어. 김소영 선생님이 하는 일은 글쓰기와 말하기, 책읽기에 관련된 지도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있었어. 예로 드는 많은 책들을 읽고 싶어져서 장바구니에 넣지만, 또 예로 드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대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 같다. 그 어느 소설을 읽을 때보다 김소영 선생님과 아이들의 대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훌륭한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




나는 몇 번이고 이 공간을 통해 언급했지만 시를 읽는 것이 어렵다. 시를 읽는 것이 어렵고 어쩌다 좋은 시에 감탄하면서도 외우기가 잘 안됐다. 나는 사람들 전화번호는 기가 막히게 잘외우는데, 어째서 시는 외우지 못할까. 좋아하는 소설속의 문장들은 기가 막히게 잘 외우는데{그는 내게 무리와 부조리의 상징이었다, 아아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그에게서는 항상 비누 냄새가 났다, 뚫어지게 보시구랴, 프라납 삼촌은 엄마에게 순전한 기쁨이었다), 어째서 좋아하는 시는 한 편도 외우지 못하는걸까.


이 책의 <언어의 힘을 배우는 동시 말하기>는 그래서 내게 매우 유용한 부분이었다. 시를 잘 읽지 못하고 외우지 못하는 내가 이 책을 읽고나니 다시 시집을 읽기를 시도하고 싶고 또 좋아하는 시 몇 편은(겨울 휴관, 많은 물, 오십 미터) 외우고 싶은 욕망이 '다시' 생겼다. 머릿속에 갑자기 시 세 편쯤은 외우는 내가 그려지면서 멋있어졌다. 아 시 외워서 암송하는 나 짱 멋져! 나중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앞에서 불쑥, 시 한 편을 읊어야지. 아, 짱멋져...



필사에 대해서라면 사실 좀 심드렁했다. 그게 책 읽거나 글 쓰는데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니 필사도 한 번 해보고 싶어졌다. 꾹꾹 눌러쓰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나에게 어떤 것들을 가져다줄까?



나는 이미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는 사람이니까, 하면서 한껏 잘난척 하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읽기와 쓰는 것에대해 더 나은 방법들을 알아간다. 무엇보다 시에 대해 다시 무언가 해보고 싶어진 게 너무 좋았다. 보리국어사전도 살까, 지금 계속 고민중이다. 국어사전을 새로 사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가끔 펼쳐보는 일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필요하며 또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국어사전 조금 비싸지만......(내적갈등중)


물론 이 책은,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가 어려워서 좀처럼 쓸 수 없는 어른들에게도 매우 좋다. 진짜 좋다. 내 말 믿고 한 번 이 책을 읽어봐, 쓰지 못했던 사람들이 쓰게 될것이다. 




뜻과 활용을 가르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이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어휘를 섞어서 씁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일일이 그 말들을 가르치기보다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었을 때 칭찬하고 뜻을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르쳐줄 기회는 늘 있으니까 조바심 내지 안아도 됩니다. 아이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 표현 좋다", "그 부분 잘 못 들었어. 미안하지만 다시 얘기해줘" 같은 말로 지금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것은 듣는 태도를 가르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 P57

앞에서 작가는 어떤 장면을 그리고 어떤 장면을 그리지 않을지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렇다면 그려지지 않은 장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대부분 독자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스무 장면의 그림들이 서로 연속적이지 않더라도 독자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채워 넣습니다.
그림책 독자는 누구나 능동적인 참여자입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와 나눈 대화가 특별하지 않아도 실망할 것 없습니다. 읽는 일 자체가 창조적인 일임을 잊지 마세요. - P83

동화가 어른에게는 단순해 보일지라도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동화 전체의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제를 파악하는 건 더더욱 더딜 수 있고요. 어른은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겪고, 더 많이 생각한 사람입니다. 아이가 서툴다는 것은 경험이 적다는 것이지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를 채근해서도 얕잡아 봐서도 안 됩니다. - P138

독서가 마음과 생각을 살찌운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즐겁게 하고 세상으로 안내하는 콘텐츠는 너무나 다양하지만 책만큼 자기 마음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게 하고, 자기 힘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온전히 자기 힘으로 몰입하는 시간은 귀하기까지 합니다. 독서가 그 시간을 만들어내고요. - P207

아이들이 유행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서 금방 떠오르고, 상대(주로 친구)도 잘 알아듣죠. 물론 언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고, 그러면서 사회의 어휘가 풍부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말들은 감정이나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 때가 더 많습니다. 말의 품위도 떨어집니다. 비속어를 종종 사용하던 아이가 글을 쓸 때 만큼은 되도록 다른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는 걸 보면 스스로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합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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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9-10-06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소영 선생님 죠아요!

다락방 2019-10-07 07:44   좋아요 1 | URL
저는 김소영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단발머리 2019-10-06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말만 믿고 읽기는 하겠지만, 그렇게해서 읽게 된 책이 너무 많.....ㅠㅠ

다락방 2019-10-07 07:44   좋아요 1 | URL
알라딘이 그래서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책읽기를 권장하고 뽐뿌받고...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님, 출판계를 우리가 먹여 살립시다!! 불끈!!!

syo 2019-10-06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독후감을 쓴 적이 있었어요. 생명공학과를 가서 인간복제 기술을 연구할 걸, 그럼 김소영 쌤을 복제해서 각급 초등교육기관에 배치할텐데- 이런 거요 ㅎㅎㅎ

다락방 2019-10-07 07:4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제 인생의 흑역사에요, 그 독후감은. 그것도 반공독후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용은 생각 안나고 진짜 열심히 옮겨 적은 기억만이...(눈물이 그렁그렁)
김소영 쌤같은 쌤은 세계의 모든 어린이에게 필요합니다!!

네꼬 2019-10-0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편애... 감사 드리며 뻔뻔하게 댓글마다 하트를 찍고 갑니다. 사람은 편애를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으허허헝 저는 그만 웁니다.

다락방 2019-10-07 14:33   좋아요 1 | URL
편애.. 하면 또 다락방 아니겠습니까. 편애에 살고 또 편애에 사는 다락방인 것입니다.
그리고 책 정말 좋아요, 네꼬님.
이런 책을 쓴 스스로를 아주 자랑스러워해도 돼요. 이런 책을 커리어에 한 줄 더 하다니.. 인생 진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네꼬님...

블랙겟타 2019-10-0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 보관함에 넣어놨습니ㄷ....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10-07 14:33   좋아요 1 | URL
열심히 읽고 쓰며 살아갑시다, 블랙겟타님!!

심술 2019-10-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겠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마워요.

하나 맞춰볼게요. 다락방님은 타미에게 김소영 선생님 어린이 독서교실 수강권을 선물했어요, 맞죠?

비누 냄새랑 프라납 삼촌은 저도 아는데

그는 내게 무리와 부조리의 상징이었다.
아아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뚫어지게 보시구랴.

이 셋은 금시초문이(거나 제가 읽었는데 잊은 거)네요.
어디서 나온 문장이죠?

다락방 2019-10-10 17:44   좋아요 0 | URL
타미에게 김소영 선생님 독서교실 수강권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으나, 거리가 멀어서 도저히 다닐 수가 없답니다 ㅠㅠㅠㅠ

그는 내게 무리와 부조리의 상징이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이 두 문장은 모두 비누냄새와 같이 <젊은 느티나무> 이고요,
뚫어지게 보시구랴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입니다. ㅋㅋㅋ 에미가 레오에게 가슴 큰 여자 좋아하지 않냐고 해서, 가슴 큰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자기가 뭘 어쩌겠냐고 했더니 에미가 답하는 거에요. 뚫어지게 보시구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9-10-11 14:55   좋아요 0 | URL
인용문 5분의3이 <젊은 느티나무>네요. 락방님이 이 책을 참 인상깊게 읽으셨군요.

요즘 에미 충고대로 했다가는 ‘시선 강간‘에 걸려서 된통 고생하죠.

기억하시나 작은 시험 하나 볼게요.

리아의 젖꼭지는 ‘분노의 포도‘처럼 뽈딱 솟았다.

어디서 나왔죠?

다락방 2019-10-11 14:57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때 <젊은 느티나무> 읽고 너무 좋았거든요. 여러차례 읽었었어요. 크- 비누냄새에 대한 환상도 그 때 생겼죠. 지금은 사라졌지만... ㅋㅋ

말씀하신 문장은.. 모르겠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아는 책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9-10-12 12:18   좋아요 0 | URL
blog.aladin.co.kr/fallen77/9592337 가셔서 복습하시고 오세요. 댓글에 나와요.

저도 락방님 덕분에 오랜만에 어제 <젊은 느티나무> 다시 읽어봤어요. 결과적으로 어제만 두 번 읽었네요.

‘그는 내게 무리와 부조리의 상징이었다.‘랑 ‘아아,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둘 다 나오는군요.

‘아아,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는 ‘그에게는 항상 비누 냄새가 났다.‘ 처럼 위치 때문에 기억하기 쉬운데 왜 잊었을까 스스로 의아했어요.

‘그는 내게 무리와 부조리의 상징이었다.‘는 첨 읽을 땐 놓치고 이 문장만 찾아 다시 읽으며 찾아냈죠.

근데 이현규가 이야기 속 ‘나‘인 윤숙희 뺨 때리는 대목이 있더군요. 옛날 작품은 옛날 작품이다 싶어요.

2019-10-14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0-14 15:10   좋아요 0 | URL
링크해주신 글 들어가서 댓글 봤는데, 댓글 완전 기억도 안나네요. ㅎㅎ 게다가 제가 읽은 게 아니라 심술 님이 읽은 작품에서 나온 거였으니 더 기억안날 밖에요. ㅎㅎ

네, 젊은 느티나무는 나이 들어 읽고 깜짝 놀랐어요. 그게 오빠 친구한테 받은 편지를 오빠가 보고나서 ‘그 편지를 거기 둔것은 날 보라는 건가?‘ 이런 뉘앙스로 얘기하다가 뺨 때리는 거였죠? 으으 맞아요, 제가 그 장면 읽으면서, 아니 그게 이 여자가 뺨 먖을 일인가 하면서 어리둥절 했던 기억이 나요. 아마 작가는 그 때 요즘말로 하면 츤데레... 표현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절레절레.

전 모르겠어요. 자기도 좋아했잖아요, 여동생을. 그리고 좋아하고, 계속 좋아하고 싶어서 ‘우리에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미국엘 가든지‘ 이렇게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때릴까요? 전 그게 너무 이해가 안돼요..

심술 2019-10-17 16:40   좋아요 0 | URL
저도 딱 그 대목에서 옛날 작품이라 느꼈어요.
 
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현재 102 세의 할머니 '베르트'는 옆집 남자를 총으로 쏘아 부상을 입힌다. 이 일로 경찰서에 가게 되는데 형사와 마주 보고 앉아 그를 왜 쏘았는지를 얘기하다가 결국 자기네집 지하실에 몇 구의 시체가 있음을  자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체들이 왜 거기에 쌓이게 된건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자신의 어린시절부터의 인생 얘기를 시작한다.


한 여자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나쁜 남자의 총량은 얼마일까? 혹은 좋은 남자의 총량은 얼마일까? 과연, 있기는 있을까?


 


베르트는 젊은 시절부터 숱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여러차례 결혼하게 된다. 여러차례 결혼한다는 건 여러차례 남편과 헤어졌다는 걸 뜻하는데, 놀랍게도 아니 놀랍지 않게도 그 남편들 모두는 괴물이었고, 베르트는 괴물 앞에 참지 않았다. 그들을 그냥 다 죽여버렸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에 감탄해 결혼한 남자는, 결혼 후에는 그 몸매 때문에 그녀가 다른 남자들의 관심을 받는 걸레라고 욕을 하며 함부로 대한다. 춤을 잘 추어서 그녀를 매혹시켰던 다른 남편은, 자신의 작은 고추로 만족하지 않는  아내에게 화를 내며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휘두른다. 그녀를 뮤즈라며 따라다녔던 한 화가는 돈벌이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팔리지 않는)예술에 도취되어 그녀가 번 돈으로 먹고 마시며 그녀의 집에서 산다. 그런 주제에 그녀를 가르치려 들어(흥, 니가 보부아르 읽고 기고만장하구나!). 그녀의 옆집 남자는 미성년자만 골라서 성매수를 하고, 전쟁이 한창일 때 그녀의 집에 찾아온 나치는 그녀를 강간한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브누아 필리퐁'이 써낸 프랑스판 '82년생 김지영'이구나, 했다. 김지영이 살면서 겪었던 사소한 사건들을 그냥 읊기만 했을 뿐인데 거기에는 한심한 한국 남자들이 등장한다. 베르트 할머니 역시 그저 자신의 삶을 얘기했을 뿐인데 거기엔 지독한 괴물들이 가득했다. 김지영은 체념과 울분으로 살아가 영혼이 아픈 고백을 시작했다면, 베르트 할머니는 참지않고 그냥 다 쏴죽여버렸다. 


그녀가 직접 총으로 그 나쁜 짓을 응징한 건 비단 전남편이나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에게만 향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흑인을 집단린치한 남자들에게도 자신의 총을 꺼내들었다. 필요한 상황에서 그녀 곁에 없었던 혹은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경찰이나 형사들 때문에 그녀는 혼자서 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한다. 그녀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마음이 가득하다. 아이와 여자들에겐 한없이 다정하며 남자들의 폭력으로부터 그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소녀들의 편이 되어준다. 역시 그녀들 곁에 의사가 있어주지 않기 때문에.




"설마 세상이 공평하다는 헛소리를 주절거릴 만큼 바보는 아니겠지?"

"네, 물론이에요. 그런 흰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도 법은 믿는다?"

"법을 수호하며 살아온 지 삼십 년입니다. 네, 전 법을 믿어요."

"그럼 날 지켜줘야 할 순간엔 어디 있었니?"

베르트의 두 눈에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멀리 지나가는 구조선에 필사적인 신호를 보내는 표류자의 씁쓸함이 어렸다.

"그때 전 태어나지도 않았는 걸요."

"능청 떨래? 너나 다른 경찰, 네가 죽고 못 사는 그 헌법을 지키는 모든 자들, 정작 행동해야 할 땐 눈을 씻고 봐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어. 오래오래 천천히 죽이는 건 살인으로 치지들 않지. 아내를 때리고, 고문하고, 파괴하는 남편은 법으로 처벌받지 않아……."

"증거만 있다면, 처벌받습니다."

"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내보일 수 있니? 정의와 법은 정략 결혼처럼 서로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야." (p.197)







그녀가 겪었던 그 괴물같은 남자들은 그녀가 유독 운이 나빴기 때문에 그녀의 인생이 끼어들었던걸까?


김지영이 겪었던 삶이 유별난 게 아니었듯, 베르트가 지내온 삶 역시 유별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이 늘 만나던 바로 그런 남자들을 만났다. 결혼 전에는 달콤하고 다정했으나 결혼 후에는 돌변하는 그런 남자들. 대화보다는 주먹을 쓰면서 여자를 쥐고 살려던 남자들. 여자의 섹스에, 가사노동에, 감정 노동에 기생하면서 여자를 소유하려던 남자들.



그 와중에 만난 잊지 못할 사랑, 인생 남자, 102세가 되어서도 눈물 흘리는 사랑. 이건 작가가 그녀의 삶이 안쓰러워 보내준건지 혹은 모든 남자가 나쁜 건 아니라는 변명을 하기 위함인건지는 모르겠다.



프랑스판 82년생 김지영 베르트 할머니의 이야기를 쓴 작가는 남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남편들을 죄다 쏴죽여버린 이 이야기에 프랑스 남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했다. 이 나라에서 그렇듯이 작가의 SNS 에 달려가서 득달같이 댓글을 달았을까? 모든 남자가 이런건 아닌데 남자를 나쁘게 그려놨다고, 페미 묻었다고 작가를 욕했을까? 이 책을 읽은 연예인들을 가혹하게 비난했을까? 이런 남자들이 어딨냐며 과장됐다고 야유했을까? 설사 그렇게 욕했다한들 이 남자 작가의 커리어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 책은 특별할 게 없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듯이 이 책 역시 큰 상상력으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특별할 건 없는 내용, 귀를 기울이면 누군가로부터든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의 나열일 뿐. 

벤투라 형사가 그랬듯 베르트 할머니의 살인에도 할머니에게 감정적 동의와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처벌한 남자들은 사실 누군가 대신 처벌해줬어야 할 나쁜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참지 않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은가.

별다른 상상력 없이 그저 여자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 썼다해도 충분할 소설이라 별은 셋을 주려고 생각하다가, 그러나 베르트가 서른한살에 인생 남자를 만나서 3.5가 됐는데, 알라딘 별점에는 반개짜리가 없으므로 넷을 준다. 



어쨌든,

베르트 할머니는 참지 않긔!!


"내가 그렇게까지 역겨운데 왜 나랑 결혼한 거야?"
자신의 위선에 말문이 막힌 뤼시엥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내가 지붕 위에 올라갔을 때 이 굴곡진 몸매에 반했잖아, 아니야? 충분히 당신 취향이었으니까 나한테 청혼까지 한 거 아냐? 그런데 왜 지금은 이걸 감추길 바라는 거야? 내가 당신을 창피하게 하는 거야, 아니면 이런 날 바라보는 당신이 창피한 거야?"
베르트는 당대를 뒤흔드는, 최소한 대화 상대를 뒤흔드는 현대적인 가치관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뤼시엥은 설득력 있는 반대 논리를 펼치는 대신, 보다 충격적인 논리를 선택했다. 즉 베르트의 따귀를 갈겼다. 부족한 지성을 크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여자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선조들의 방식이었다. 남자들은 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바꾸겠는가? - P101

"휴! 드디어 자유군!"
베르트는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상반신이 나체인 채로 삽질에 박차를 가했다. 삽질에 따라 덜렁거리는 젖가슴 사이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음산해보일 수 있는 순간이 어떻게 이토록 도발적일 수 있는 것일까?
"자, 이제 알겠지? 아내에게 응당 자상하게 대하는 대신 구타를 일삼으면, 아내가 당신 무덤을 파면서 신바람이 난다는 걸? 이래도 자기가 얼마나 잘못된 남편인지 깨닫지 못한다면야." - P111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라니. 베르트는 절대 믿지 못했으리라. 그 믿음을 위해 루이지애나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독일군의 융단폭격에서 살아남은 남자, 그것도 흑인이 필요했다. 루터는 그녀에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심어주는 중이었다. 서른한 살에, 생각지도 못한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발견은 받아들이는 것이 이롭다. 특히 그것이 폭넓고 탄탄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루터의 품처럼 우리를 단단하게 감싸준다면, 그것은 매우 이로웠다 - P145

수프 맛이 고약했다. 베르트가 회복하려고 애쓰며 침대에 못박혀 있던 나흘 이레로 마르셀이 그녀에게 음식을 떠먹이고 있었다. 마르셀은 형편없는 요리사였으나 강력한 주먹꾼이었다. 베르트는 뤼시엥에게 당했던 폭력을 되씹으며 조용히 클클거렸다. 만만치 않은 선수. 마르셀은 상위 그룹에 속했다. 후유증을 남기는 그룹. 베르트는 질이 부어오른 것도 모자라 꽁무니뼈도 부러졌다. 의사에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마르셀은 계단 추락사고라고 둘러대며 잘도 빠져나갔다.
‘아니, 아랫도리는 브로콜리가 되고 엉덩이는 두 동강이 났는데, 계단을 헛디뎠기 때문이라니. 그런데 그 핑계가 먹혔어. 다들 한패인거지.‘
베르트는 불만이었고 속단했다. 지폐 몇 장과 칼바도스가 진단서 작성에 힘을 보탰다. - P220

"어, 그래, 우리 여자들은 말이야, 선택의 호사를 누리지 못해. 우린 무엇보다 애 낳는 기계라고. 물론 그곳도 모든 기능이 정상일 때 얘기지만! 출산과 살림, 우린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지만 난 달라, 이젠 시대가 바뀌었고 난 평등을 원해. 그러니 당신도 집세를 분담해."
"이 집은 당신 거잖아."
"상징적인 제스처를 하란 거야."
"난 도무지 당신네 여자들이 이해가 안 가. 여자들이 살기가 얼마나 편하냐고. 먹여줘, 입혀줘, 재워줘. 책임은 죄다 남편들이 지고. 거기에 발목엔 어떤 족쇄도 없는데도 오늘날 평등을 떠들어대니."
"은행에 계좌를 트고 자기 돈을 자기가 쓰려고 해도 남편의 동의가 필수적인 건 어떻게 생각해? 그게 발목의 족쇄가 아니면 뭐야? 투표권을 얻기 위해 애걸복걸해야 했던 건, 그건 자유야? 바지를 입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건, 그건 어떻게 설명할래? 예술가라고 해서 꼭 바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달에 당신 주기가 언제지?" - P284

베르트가 목제 식탁에 포크를 꽂았다. 열이 올랐다.
"아, 젠장! 나한테 생리 핑계 갖다 붙이지 마. 당신만은 제발!"
"그게 당신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정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신의 너절함이야."
"천박하게 굴어서 이로울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여자가 권리만 주장했다 하면 그 즉시 생리대를 들고 나오니, 이거 원. 저질에, 비루하고, 생산적이지 못하기 짝이 없네."
"생산적이지 못한 건, 당신이 잘 알겠구나."
궁지에 몰렸다고 느낀 노르베르가 비겁한 무기를 선택했다.
"그 부분은 건드리지 마, 노르베르, 특히 그건 하지 마."
"난 그저 당신이 보부아르를 읽고서 들떴을지 모르겠지만, 단신은 크게 불평할 처지가 아니란 얘기를 하는 거야. 이렇게 아늑한 집도 있고, 가게도 잘 굴러가잖아. 난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내 예술을 팔고 있어. 누가 더 불평을 해야겠어? 이건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생존자와 그 밖의 사람들의 문제야." - P285

"왜, 당신이 보기에 난 생존자가 아닌 것 같아서?"
방 안의 온도가 핵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은 그리 고생스러워 보이지 않는데?"
"내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해." - P285

"지금 저 협박하러 온 거예요?"
어조가 매서워졌다.
"그럴 리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럼요?"
"제 좋은 평판으로 당신의 나쁜 평판을 희석해주고 싶어요."
‘남자들이란. 죄다 똑같아. 우리의 구세주들. 내가 또 황홀해해야 하는 걸까.‘
"전 당신의 좋은 평판이 필요 없어요, 밥티스트. 전 지금의 제가 부끄럽지 않거든요."- - P308

"너흰 그를 죽여서 얻은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 난 ……난 모든 걸 잃었지."
그녀의 입에서 말들이 새나왔다. 공허하고 싸늘한, 유령의 말들이었다.
탕!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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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건강검진을 받고 왔다. 이맘때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면 병원에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연초에 해야해, 그래야 사람들 많지 않을 때 한가하고 여유롭게 할 수 있어, 다음엔 연초에 할거야, 다짐해 보지만, 그 다음이 되면 '음.. 몸무게를 좀 더 줄이고 해야지' 하고 자꾸 미루고 미루다가 별로 줄 생각 없는 몸무게 때문에 다시 연말이 되어버려... 늘 되풀이 되는 못낫이 회전..


사실 6월에 수술도 했겠다, 딱히 건강검진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안해도 되지 않나, 라고 이백번쯤 생각했다. 하지 말까, 하지말자, 까지도 계속 생각했는데, 딱 하나 걸리는 게 갑상선이었다. 갑상선..갑상선 때문에 해야될 것 같다... 2년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초음파를 했을 때, 갑상선에 혹이 있다고 했던 터였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6개월마다 한번씩 점검을 받으라 했었는데, 나는 그 뒤로 검사를 받지 않았고... 그렇게 2년이 되어버린 것. 이번에 하자, 이번에. 그래, 귀찮아도 검진 받는거야!


그렇게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일단 닥터를 만나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닥터는 자연스레 유료 혈액검사를 권했다. 70가지의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여름에 수술도 했고, 그 전과후에 이래저래 혈액검사를 차고넘치게 했으니 그건 하지 않겠다 말했다. 그래도 기본적인 혈액검사는 해야했는데, 팔뚝에 주삿바늘 들어가는 걸 보면서, 와, 2019년은 진짜 피검사의 해구나,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피검사를 했는가. 수술 전에는 수술 전이라 해야했고, 수술 직후에는 직후라 해야했고, 퇴원한 뒤에도 몇차례 가서 갈 때마다 피검사를 해야했다.


주삿바늘을 꼽는 건 단지 피검사 때문은 아니었다. 연초에도 곧 쓰러질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병원에 가 수액을 맞았고, 지난 토요일에도 병원을 찾았다가 드러누워 수액을 맞아야 했어. 간호사쌤은 수액을 놓기 위해 바늘을 꽂으면서 "어머, 바늘을 꼽자마자 피부 색이 파랗게 변하네요" 했다. 아직도 수액 맞았던 자리는 누런 멍이 남았는데, 이 상태로 또 오늘 피검사를 한거다. 내 팔에 주삿바늘이 2019년에 정말 많이 들어가는구나. 이것이 바로 나이들어간다는 것인가...



가장 걱정됐던 갑상선 초음파 검사. 크기와 모양의 변화를 본다고 했는데, 하아- 크기가 좀 커졌다고 했다. 그러나 모양이 딱히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그러니 6개월 뒤에 꼭 다시 재검을 하라는 거였다. 알겠다고 말하면서 물었다. 혹시 갑상선암이라면 이 초음파 검사로 알 수 있는거죠? 의심이 되면 조직검사를 하자고 할텐데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는 꼼짝없이 6개월 뒤에 갑상선 검사를 다시 해봐야겠구나. 혹은 왜 거기에 있고 혹은 그리고 왜 커진 것인가... 혹아...........


모든 검사가 끝나고 병원을 나섰다.

건강검진을 해야 해서 오늘 아침을 굶은 터다. 게다가 갑상선에 있는 혹이 좀 커졌다고 해서 울적했다. 나는 병원 가까이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렀다. 텀블러는 이미 준비해왔지. 그렇게 따뜻한 베이글을 주문했다.





배가 고팠고 울적했는데 베이글은 따뜻하긴 했으나 생각처럼 맛있진 않았다. 여름에 뉴욕에서 먹었던 베이글 생각이 났다. 베이글 먹고 싶어 뉴욕 간거였는데 진짜 맛있게 먹었더랬지. 안에 크림치즈가 꾸덕꾸덕 잔뜩 쳐발라져있고 양파와 토마토와 또 뭐더라.. 아무튼 뭐가 들어가서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스타벅스의 베이글은.. 그냥..... 베이글이었다. 물론 안에 치즈와 햄과 계란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베이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를 깨달았달까.



나는 잘 쉬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잘 멍때리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 있는 시간을 잘 견뎌내지를 못하는 사람이야. 회사에 출근했다가 건강검진 받으러간거라 가방은 두고 갔는데, 그래도 나에겐 스맛폰이 있지. 이 맛없는 베이글을 먹으면서 나는 전자책을 펼쳤다. 읽다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는데, 그렇게 책을 읽는 내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 하다못해 스맛폰에도 읽을 책이 있어서 이렇게 뭔가 먹는 시간을 도와준다. 나를 가득 채워주는 느낌. 내가 나를 채워주기 위해 내가 미리 준비하는 나... 이렇게 멋진 나라니. 장난 아니야 ㅠㅠ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사실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너무 못일어나겠는 거다. 어젯밤 열두시 넘어 잤으니 너무 당연하지.

아니, 나는 일찍 자려고 아홉시부터 드러누웠단 말이야? 졸려서 누웠는데 으윽 잠이 안온다. 그래, 책 읽다 보면 잠이 오겠지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재미있어서 자기가 싫어지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아니 그런데 몇시나 됐지? 하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어버린 거다. 으이크 이런. 내일 피곤하겠군, 하고 그제서야 잠을 청했는데 흑흑 ㅠㅠ 오늘 아침에 알람 한 번 끄고 ㅠㅠ 두번째 알람에 일어났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면서 어찌나 힘들던지. 아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진짜 그만하고 싶다고 이천번 생각했다. 나 20년간 돈 버느라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왔어. 딱히 아침형 인간인 것도 아닌데. 그런데 몸이 아침형 인간에 맞춰져버리고 말았어.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그만, 그만하고 싶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그만하고 싶어.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꾸역꾸역 회사를 나왔다가 건강검진을 받고 베이글 먹으러 간 것이다. 갔다가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 책이 준비되어 있는 멋진 나란 녀자... 하트뿅뿅.....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




여동생과 대화중에 여동생이 그랬다. '언니는 언니가 살고 싶은대로 잘 살고 있잖아, 하고 싶다는 거 다 하면서.' 라고. 엄마가 내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너는 니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다들 그렇게 말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살고 싶은대로 살고 있잖아, 필요한 거 니가 다 가져가며 살잖아, 라고.


그러고보니 그랬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고 있었다. 어릴적부터 뉴욕에 가고 싶었는데 뉴욕에 벌써 세차례나 다녀왔다. 십이년전에 만나 한결같이 좋아했던 남자와 뜨거운 연애도 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거야, 라고 오래전부터 말하고 다녔는데, 그것도 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었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십년간 꼬박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싫다, 중얼거리면서 출근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졸려 죽겠는데, 그만두고 싶다고 칠만번쯤 부르짖으면서도 꾸역꾸역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나는 책을 사서 읽고, 여행을 가고, 풍요로운 연애도 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내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고, 많은 것들을 하지 못했겠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내가 있었다.



이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기 위해 당분간 아침형 인간의 삶을 더 감당해야지. 동남아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아침형 인간의 삶을 좀 더 견뎌내야지.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진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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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0-0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기운 내요.

다락방 2019-10-04 12:1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
지금은 다시 뿜뿜하고 의욕 생겼어요.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 이 얼마나 좋습니까!!

단발머리 2019-10-0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상으로는 무척 맛있을거 같은데 생각보다 이 베이글은 별로군요. 전 스콘 베이글 둘 다 좋아하거든요.

건강검진 받으셨군요. 바쁜 아침이었겠어요. 갑상선은 잊지 말고 6개월뒤 다시 검사해보셔야겠어요.
이러는 저도 건강검진 안 한지 어언 3년째... ( “)
기운내요, 다락방님 2!!

다락방 2019-10-04 15:37   좋아요 0 | URL
전 베이글은 별로 안좋고요 스콘은 완전 사랑해요. 따뜻한 스콘에 버터 쳐발쳐발하고 딸기쨈도 쳐발쳐발한 다음에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으면 으앗 거기가 천국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내일 그렇게 먹어야겠다. 오늘은 베이글 먹었으니까 내일은 스콘 먹으러 가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이제 건강검진 잘 받고 살아야겠어요. 사실 저 근 십년간 건강검진 안받고 살았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근데 이제 나이 들고 여기저기 이상이 나타나고 그러니까 검진 잘 받자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단발머리님도 검진 잘 받고 건강 신경쓰세요. 우리가 건강해요 오래오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수다도 떨죠!!

다락방 2019-10-04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진짜 졸라 멋진 것 같다.
베이글과 아메리카노 먹으면서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읽는 여자...

blanca 2019-10-0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와 이것 동감, 공감 천 개 정도 누를 수 있음 좋겠어요. 6개월 혹, 이 여자도 가지고 있습니다. --;; 참고로 저는 두 개입니다. 그게 꼭 육개월마다 검진하라는 그 말, 그리고 그 거 안 지켰을 때 그 껄쩍지근함, 촘파 보고 의사가 말할 때 와, 정말 잘 살아야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하고 다짐. 그리고 또 잊어버림.

다락방님 아주 잘 살고 있어요. 난 요새 자아성찰 중이랍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결국 돈벌이가 핵심이구나, 하고 씁쓸한 진실을 깨닫는 중이랍니다. 오늘 저는 자기 작업실을 가진 사람을 보고 왔어요. 너무 부러웠어요. 그런데 나는 작업실이 있음 뭘 작업하지?ㅋㅋㅋ 뭔가 작업을 해야 작업실의 명분이 설 텐데. 말이에요. 무엇보다 우린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한 할머니가 되기 위하여 검진도 게을리하지 말자고요.

다락방 2019-10-04 16:18   좋아요 1 | URL
아니, 블랑카님도 6개월 혹... 을 가지고 계신단 말입니까, 두 개나요? ㅠㅠ
안 지켰을 때 그 껄쩍지근함을 가지고서도 저는 2년이나 안지키고 넘어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서 오늘 가서는 꼭 해야지, 아 두렵다.. 이러고 있었어요. 그러면 진작에 했으면 됐을 것을... 하아-

저는 매일 자아성찰 중인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돈벌이가 핵심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내가 살아갈 돈을 내가 마련하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그래서 좀 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에 대한 아쉬움도 참 커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학교를 나와 스펙을 단단히 쌓았다면, 그러면 지금보다 더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고 그러면 더 좋은 집에 진작부터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다 부질없죠. 그저 지금 제가 가진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돈벌이는,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육체를 가진한 계속해야 할 것 같고요. 결국 저를 끝까지 지켜줄 건 제가 번 제 돈인것 같아요...

작업실..을 갖는 건 저도 꿈인데요. 크- 그런 날이 올까요?
저는 작업실을 따로 갖는 것도 너무 좋을것 같고, 혹여 따로 갖지 못한다면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한 공간을 작업실로 꾸며두어도 좋을것 같아요. 책과 노트북과 큰 책상이 있는 작업실... 크- 상상만 해도 너무 좋은데, 아아, 그러나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 머네요.


블랑카님, 건강검진 게을리하지 맙시다. 건강합시다. 건강한 할머니가 됩시다.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서 오래오래 여기에서 책읽고 글쓰면서 살아요, 우리!

건조기후 2019-10-0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더할 수 없이 멋진 여자에요! 뭘 더 바라나요? ㅎㅎㅎ

다락방 2019-10-04 17:24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님은 정말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9-10-0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남아 한 달살기 응원합니다!

저 가끔 관공서 같은데서 한참씩 기다려야 할 때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야하나, 그냥 폰으로 SNS나 살필까 고민해요.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읽다가 중간에 흐름이 끊기고
다음이 궁금한 상태로 다시 몇 시간씩 일해야 하는 거 너무 싫더라구요.

다락방 2019-10-04 21: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베이글 먹는 동안 읽었더니 얼마 못읽어서 흐름 깨졌어요. 그건 좀 안좋은 것 같아요. 이럴 때 영화를 다운 받아놓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넷플릭스에서 지금 <툴리> 다운 받고 있답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으흐흐흐흐

동남아 한 달 살기, 너무 해보고 싶어요! 일단 한 달 살아보면서 괜찮으면 두어달쯤 연장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꿈을 이루게 되면 나중에 잠깐 놀러오세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syo 2019-10-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다락방처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쯤은 진심이라구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4 21:37   좋아요 0 | URL
음... 반쯤만 진심이군요.. 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9-10-04 22:03   좋아요 1 | URL
저는 반이 아니라 온 마음 가득 다락방처럼~

다락방 2019-10-04 22:05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분들이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9-10-0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란 (여/남)자‘라는 유행어를 듣거나 볼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거 어디서 나온거냐고 묻겠다
다짐만 하다가 만날 잊어버리는 사람이 접니다.

검진받아야지 하며 만날 미루는 락방님과 비슷하군요.

혹시 어디서 나온 건지 아세요? 광고? 드라마? 영화? 책?
사람들이 많이 쓰는데 전 어디서 나온 건지 늘 궁금하더라고요.

좋은 주말 되세요.

다락방 2019-10-07 07:49   좋아요 0 | URL
음.. 글쎄요?
저도 어디선가 들어서 쓰는 거겠죠? 그런데 출처는 잘 모르겠네요? 흐음...
아마도, 딱히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라서 늘 묻기를 미루게 되는 거 아닐까요? 너무 궁금해 미치겠으면 어떻게든 네이버에라도 물었을 것 같아요.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니까 걍 미루고 마는 것 같아요 ㅎㅎ

심술 2019-10-10 13:28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도 모르시는구나. 더 알아보고 알게 되면 락방님께도 알려드릴게요.

다락방 2019-10-10 17:44   좋아요 0 | URL
네 ㅋㅋ

심술 2019-10-11 15:00   좋아요 0 | URL
정확한 출처는 아직 모르겠고
아마 노래 제목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쩌면 노래도 다른 데서 인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MC몽의 ‘나란 남자‘가 있고 CN Blue도 동명이곡을 불렀네요.

전 두 노래 다 첨 들어 보고 CN Blue는 가수도 오늘 첨 알았어요.
MC몽은 그런 가수 있다는 것만 알고 뭔 노래 불렀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새천년 뒤 나온 음악 가운데 제가 아는 게 거의 없어서요.

제 음악취향은 아직 지난천년에 머물러요.

다락방 2019-10-11 15:02   좋아요 0 | URL
음.. 그 노래 제목도 원래 출처는 아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저는 그 둘의 노래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혀, 전혀요.. 가수들은 알지만 노래는 전혀 모르네요. 그리고 어쩐지 그걸 유행시킬만한 힘이 그들에게 있었을지도 모르겠고요. 흐음..

저도 언젠가부터 신곡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아 이제 내가 늙었구나, 해요. 심지어 요즘엔 노래를 아예 안들어요. 어릴 적엔 제가 음악을 몹시 사랑하는 줄 알았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심술 2019-10-12 12:3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도 ‘나란 (남/여)자‘가 먼저고 두 노래가 뒤따랐다고 생각해요.
제 취향이 지난천년에 머무르지만 요새 흥행한 노래면 가수랑 노래 이름은 몰라도 들으면 ‘아 이거!‘ 하긴 하거든요. MC몽과 CN Blue 동명이곡은 금시초문이었어요.

저도 20대 초반까지 듣던 음악만 그 뒤로도 줄창 듣게 되더군요.

요즘 월드스타 된 방탄소년단도 하도 언론에서 떠들기에
궁금해서 찾아 들어봤는데 방탄에겐 미안하지만
80,90년대 언니오빠들이 더 낫다는 게 제 생각이예요.
이크, 아미가 보면 클날 소릴 제가 했군요.

보슬비 2019-10-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을 가른 시나몬 베이글을 바삭하게 구워 크림치즈 드뿍바르고 얇게썬 사과 얹어서 쉬원한 스파클링 와인과 마시면 환상 궁합이예여~~ ㅎㅎ 확실히 체중계를 포기하는 맛이 정말 맛있는것 같아요.

동남아 한달살기를 위해 화이팅~!!!!

다락방 2019-10-07 07:52   좋아요 0 | URL
사과를 얹어먹을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네요.
베이글은 역시 크림치즈인것 같아요. 크림치즈 진짜 넘치게 바르고 거기에 케이퍼,양파,토마토 넣으니까 너무 꿀맛이더라고요. 으윽 또 먹고 싶어요. 베이글 먹으러 뉴욕 가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남아 한달살기를 꼭 실현하고 싶어요. 그곳에서라면 뭔가 여유로운 일상이 가능할 것 같아요.

치니 2019-10-06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개월 뒤 제가 지켜봅니다. 재검 꼭 받아야 돼요! 약속!

다락방 2019-10-07 07:56   좋아요 0 | URL
네, 재검 꼭 받을 생각입니다. 이번엔 귀차니즘으로 뒤로 미루지 말아야겠어요. 나이 드니까 챙길 게 많네요. ㅜㅜ

clavis 2019-10-0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동남아 여기로 gogo

다락방 2019-10-10 17:45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님, 저 한 달 살기는 일단 치앙마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몇 년은 지나야 가능할듯요.. 일단은 먹고 사는 게 급해서 돈 벌어야 해요 ㅜㅜ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몇 년전만 해도 나는 한국소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한국 소설 읽는 게 참 좋다. 애초에 나의 모국어로 쓰여진 걸 읽는 재미와 기쁨은 번역서가 결코 줄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한국 여자작가들의 작품은 다 저마다의 매력으로 좋은데, '문목하'는 이야기 쪽에서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와, 우리나라 여성작가들 글 잘쓰네, 라고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감탄했다. 며칠전에 '한국문단은 죽었다'고 말하던 누군가도 떠올랐다. 어떤 책을 읽어왔기에 또 어떤 책을 읽을 생각을 하길래 한국 문단이 죽었다는 거야. 이렇게나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구먼!!


별 다섯의 0.5 정도는 사실 응원과 기특한(?) 마음 같은 걸로 덧붙이게 된건데, 뭐 아무래도 좋다.



윤서리는 초능력을 가진 비원과 초능력을 가진 경선산성의 싸움이 못마땅하다. 분명 이 깊은 싱크홀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윤서리의 능력을 얘기하는 건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사랑이 어떤 부분에서는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사랑은 모든 것의 답이 될 수도 없고 모든 것의 길이 될 수도 없겠지만, 아주 많은 선택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살아있기를 원하는 마음, 당신이 잘 지내기를 원하는 강렬한 마음은, 모든 선택들을 다시, 다시 뒤로 돌리게 만들기도 하니까. 내가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감당할만한 타인의 안녕에 대한 바람이 대부분의 이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책의 윤서리가 그랬고 정여준이 그랬고 최주상이 그랬다.



읽다보면 '애쉬톤 커쳐' 주연의 영화 『나비 효과』가 자꾸 생각나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 애쉬톤 커쳐는 다른 이들에게 일어난 불행을 막기 위해 결국은 자신의 태어나지 않음을 선택하기로 한다.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 책은 헐리우드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할리우드에 판권 팔린 토종 SF


기사 중간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라는 어느 독자의 평은 적확했다. 읽으면서 서너번쯤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고 또 이렇게 풀어갔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고, 그래서 와, 우리나라 여자 작가들 글 잘쓰는구나, 했다. 작가가 출판사 아작을 알게 되어 원고를 투고했다는데, 작가의 그 시도와 용기가 감사하다. 이런 글이라면 투고해야함이 마땅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가영이 …… 윤서리를 저기 살려두려고 왜 그렇게까지 견디는 거야?"

정여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주상을 보았다. 그리고 먼 바깥에 환영처럼 스쳐 지나가는 윤서리의 모습을 보고,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겠어요?"

정여준은 미소 지었다.

최주상이 그를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이로 느낄 만큼 찬란한 미소였다.

"왜겠어요."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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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0-11-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덧글이 하나도 없다니 ㅠㅠ 저도 중반에 흐느끼면서 읽음 ㅠㅠ 너무 재미있었네요. 글 참 잘쓰고 소재도 이렇게 잘 풀어나가다니.. 아 이 여운!

다락방 2020-11-25 07:57   좋아요 0 | URL
여운 장난 아니죠? 위의 인용문처럼 ˝왜겠어요?˝ 너무나 압권인 것....
저 이 작가의 다른 책(해마.. 뭐였는데 ㅋㅋ)도 사뒀는데 아직 안읽었어요. 그 책도 어렵지만 좋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퇴근 후에 약속이 있고 가방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 잃던 책을 두고 나왔다. 그래, 스맛폰에 다운 받아둔 영화를 보면서 출근하자, 라고 어젯밤에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아침이 되니 그러고 싶질 않은거다. 출퇴근 시간에 책 읽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데, 퇴근 시간에야 지하철 안에 사람도 많고 앉지 못할 때도 있어 스맛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지만, 출근 시간은 너무 집중이 잘된다. 이렇게 집중이 잘 될 때 영화를 보는 것은 아아 어쩐지 시간이 아까워. 책을 보자. 나는 집을 나서기 전 부랴부랴 크레마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크레마 안에도 책이 많다. 뭐가 됐든 읽을 것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 안에 자리잡고 앉아 크레마를 딱 열었는데,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언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셋트를 사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읽으면 좋겠구먼, 재밌겠어, 하다가 아아, 나는 보았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결혼에 관한 책을. 어? 맞다! 나 이것도 사뒀었지!!


















마침 10월, 11월에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가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아니던가. 좋다, 이걸 읽자. 제2의 성을 읽기 전에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오 재미있다. 이십대 초반에 그들이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는데, 사르트르는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 두 명이 있었다. '니장'과 '마외'가 그들인데 이 셋은 몰려다니면서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단다. 또한 보부아르의 소문을 듣고 친해지고 싶었지만 자기들처럼 잘난이들이 보부아르에게 먼저 다가서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다고. 이야.. 진짜 공부잘하는 남자들이라는 거 하등 쓸모없구나. 너무 찌질 오브 찌질이야.. 하아- 다들 철학교수시험을 준비중인 사람들이었는데 쩝...


자, 이걸 보자.





아주 지랄들을 한다. 지들끼리 있으면서 자기들은 가장 높은 신분 다른 애들은 낮은 신분 눈누난나~ 이러고들 있어. 하아- 철학한다는 사람들이 이러고들 다니고 있다... 철학은 다 무슨 쓸모, 배움은 다 무슨 쓸모인가...


그뿐인가.

이들중 마외가 보부아르와 가장 먼저 친해졌다. 마외는 이미 아내가 있어 보부아르가 좋아도 뭘 어떻게 할 순 없고, 그런데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만나는 순간이 다가오자, 자기 없을 때 만나지 말라며 그 만남을 뒤로 미루라고 한다. 욕심은 똥구멍에 차가지고...

지는 결혼해서 아내도 있으면서 자기 없는 동안에 자기 친구가 보부아르 독차지할까봐 전전긍긍.. 야, 사람이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가 없어. 뭔가 하나를 놓아야 한다.. 철학하면서 그것도 모르냐.



아무튼 이 몰려다니는 세 명의 철학하는 남자들 너무 싫고... 하아- 철학하는 남자만 싫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둘다 철학 교수 시험에 합격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자, 여기서 우리는 며칠전에 읽었던 《미친 사랑의 서》보부아르 편을 떠올릴 수 있겠다. 거기서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대한 언급이 있던 터다. 내가 친히 가져와보도록 하겠다.






스물한 살 때 보부아르는 역대 최연소로 철학과 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후보에 올랐는데, 프랑스의 대학 체제에서 교수 자리를 따내려면 반드시 그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판정단은 보부아르가 철학과 최고의 학생이라는 점에 만장일치로 동의했지만(해당 학위를 받은 여학생으로서는 아홉번째였다), 그녀는 2등으로 만족해야 했다. 최고의 영예는, 아마도 남자라는 이유로, 사르트르에게 돌아갔다. (보부아르)- P155









《미친 사랑의 서》에서는 판정단 모두가 만장일치로 보부아르가 최고의 학생이라고 생각했다는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는 한두명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판정단이 몇 명이나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보다 뛰어난 학생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는 작가가 사르트르 쪽으로 좀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철학사 학위를 받은 뒤 교직을 얻기 위해 철학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이던 1929년 6월, 3살 연상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80)를 만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해 교수자격시험에 1,2등으로 나란히 합격했으며, 당대의 스캔들이었던 2년간의 계약결혼에 들어갔다. 영혼의 정절과 관계의 투명성을 지키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나 일, 앞으로의 계획, 지난 경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고 전적으로 상대방과 공유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 이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2년 기간을 약정한 계약결혼이었지만 2년 뒤에 30세까지로 연장하고, 이후로는 종신계약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각자 애인을 사귀면서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였고, 지적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였다. 보부아르는 마르세유, 루앙,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12년간 철학 강의를 하였으며,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같은 해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Les temps modernes)지를 창간했다. (p.278)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에서 보부아르 부분을 읽다가 저 계약결혼은 그들의 뜻대로 진행되었을까, 를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 지금 읽는 계약결혼책을 구입하게 된거고. 그들이 서로에게 좋은 지적 동반자가 되어준다한들, 그리고 상대의 연애의 자유를 인정한다 한들, 그것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많이 괴로웠을 것 같은데, 했던 것. 그들이 '계약'을 했고 당시로서는 그것이 파격적인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가장 좋은 지적 상대 임을 인정한만큼 헤어지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자유 연애를 허락한다?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 연애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 사랑을 응원해' 가 과연 될까? 심지어 그들이 '계약'일지언정 '결혼'이란 관계로 맺어진 사이인데?

그건 그들이 아무리 지적인 사람이라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되는 게 아니야.


사람은, 하다못해, 생명이 없고 감정이 없는 사물에 조차도 함께 하다보면 정이 가게 마련이고 내 것이라는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끼는 물건을 누가 달라고 하면 차라리 새 걸 사줄지언정 내가 쓰던 걸 못주겠는 그런 마음 것들이 우리에겐 있으니까. 그런데 심지어 사람이다. 그것도 내가 욕심 냈던 사람. 애초에 욕심내서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 나랑 세상에서 대화가 자장 잘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자유와 연애를, 자유 연애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을 읽다보니 이 둘은 서로의 자유연애를 인정하는 바람에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이 '우리는 서로 함께하지만 서로의 자유연애를 인정해'라고 하면서 가슴 아프지 않으려면,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 상대에 대한 사랑 혹은 애착이 없다면, 그러면 가능해진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가 관심없는 다른 사람들이 연애를 하든 쓰리썸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든지 말든지, 니 마음대로 해라, 하게 되어버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많은 것들이 치고 들어와. 왜 당신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 이렇게나 자꾸 쑥쑥 들어와야 해? 하는 기분이 되어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뭐 철학으로나 결혼으로나 연애로나 뭐로든, 나는 보부아르처럼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 물론 저서를 쓰는 것에 있어서도.




이 관계는 당사자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게만 위기를 가져다준 것도 아니고, 당사자들에게만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다. 이들은 계약결혼의 당사자임과 동시에, 그들이 하는 연애상대의 파트너였다. 그들의 연애상대는,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계약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지만 사랑하므로 행복하였네라~'할 수 있을까? 아니. 그들 역시 자신의 사랑이 커지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 그 관계로부터 나와서 내 옆에 있었으면'하는 바람을 너무나 당연히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자신들의 계약결혼 관계를 죽는 순간까지 지켜온 만큼, 몇몇 사람들은 그 관계 때문에 가슴 찢기는 고통을 겪었어야 해. 하아, 계약결혼과 자유연애란 무엇인가.





올그런은 보부아르와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돌로레스와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삼각관계에 발을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더군다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에 굴러들어온 돌 취급당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졌다. 올그런을 향한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 결혼에 반대하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사트르트와 자신의 자유 둘 다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끝내주는 잠자리도 아주 오래전 맺은 계약을 깨뜨리게 만들지는 못했고, 그래서 때를 잘못 만난 두 연인은 결국 이별의 수순을 밟았다. 올그런은 이후 두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했지만 끝까지 보부아르를 용서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어느 기자에게 그녀를 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섀넌 매키넌 슈미트& 조니 렌던,《미친 사랑의 서》보부아르 편, p.163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서로를 괴롭히자고 계약결혼을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자고 자유연애를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보부아르는 계약결혼 전에 사르트르와 성관계를 가졌었고, 그 뒤에도 여러차례 다른 연인들과 자유 연애를 했다. 그러나 '앨그렌'을 만나면서 '육체의 쾌락에 눈뜨게' 됐다고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는 곳도 옮기고 자신의 커리어도 포기할 생각까지 했을만큼 그를 사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는 대신 이별을 하고 사르트르의 곁에 머물렀다. 괴로움은 이제 앨그렌의 몫...



그렇다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그렇게나 오래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지적인 동반자, 그것이 그토록이나 강한 것인가. 육체의 쾌락을 뒤로 넘길 수 있을만큼. 보부아르는 그렇다고 말한다. 나 역시 보부아르에 동의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에게 지적인 동반자이며 동시에 쾌락의 동반자이기도 하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 둘을 모두 가지기는 사실 좀 힘이 들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인 것도 쾌락으로도 크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채로 그냥 그냥 살고 있지 않나.. 아무튼,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삶에서의 '성공'이라고까지 말을 한다.




쓰여지는 모든 글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글도 아니고 뱉어놓은 말들 역시 대부분은 무용하기도 할터이다. 그러나 대화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같다는 것, 결국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무시하지 못할만큼 아주 달콤하고 강력한 매력이다. 사르트르는 앨그런 같은 쾌락을 주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대화의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일찍 깨달아 스무살부터 그런 상대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칠순에야 비로소 대화 상대를 찾고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정말 중요한 것은 대화였구나, 하면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도 결국은 대화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궁극적 대화상대를 이미 찾았기 때문에 위기의 계약결혼과 가슴 아픈 자유연애들을 끌어안으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했으니까.




나는 항상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그건 '내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끊임없이 상대에게 묻고 싶다.


너는 좋아?

당신은 괜찮은가?



일전에 MBTI 검사를 해준 친구가 내게 그랬다. 모임에 나갔을 때 자신의 성향은 '이 사람들이 나로 인해 즐거워졌으면 좋겠다'는 거지만, 다락방의 성향은 '이 사람들이 각자 여기서 즐거움을 찾아야할텐데' 라고.


나는 정말 그렇다.


그러니까 만약 보부아르랑 사르트르를 만났다면, 보부아르가 내 친구라면, 나는 보부아르가 계약결혼과 자유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 보부아르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거 너 괜찮아?"


만약 보부아르가 앨그런을 떠나보낸다고 했을 때도 역시 물었을 것이다.


"그게 너한테 좋은거야?"


나는 물론 그런 친구의 결정 자체를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물었다고 해서 친구가 갑자기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을테지만, 그러나 그 질문을 받고 친구가 잠깐동안이나마 다시 생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잠깐동안 자기 자신에게 묻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이거 좋은가?



나는 이 물음을 언제나 당신에게 하고 싶다.


당신 괜찮은거야? 다 좋아? 좋아? 오케이? 당신 지금 그렇게 하는 거, 지금 당신의 선택 그거, 좋아? 괜찮아?



당신은 정말 괜찮은건지. 당신은 괜찮은가.

나는 당신의 선택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선택이나 결정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싶다.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가급적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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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0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는 쟤네가 지적 동반자 연애질하는 거 디립다 까놨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11   좋아요 0 | URL
가서 페이퍼 봤어요. 깔만합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원래 댓글 수정해버림)

syo 2019-10-02 14:11   좋아요 0 | URL
그치만 쟤네는 후설 이야기해요. 다락방님 초원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는데 문득 후설의 어디가 끌렸는지 물어오는 사람 좋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12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쇼님 댓글 다는 동안에 내가 댓글을 고쳐버렸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syo 2019-10-02 14:13   좋아요 0 | URL
이겼다!! 이 영광을 후설에게 돌립니다....

다락방 2019-10-02 14:14   좋아요 0 | URL
나는 심지어 후설이 뭔지 몰라서 검색했어요. 하아-
나는 지적이지 않아....나는 지적인 동반자고 뭐고 다 필요없다. 그냥 혼자 책 읽으면서 살래............

syo 2019-10-02 14:16   좋아요 0 | URL
후후후후후후설과 헤헤헤헤헤겔이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락방 2019-10-02 14:17   좋아요 0 | URL
저는 일단 제가 오늘 점심에 왜 과식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syo 2019-10-02 14:24   좋아요 0 | URL
그건 이해가 필요없는 부분입니다.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 같은 거 아닌가요??

다락방 2019-10-02 14:26   좋아요 0 | URL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생각에 그게 바로 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 같은 게 없는가 봐요. 씁쓸합니다.

syo 2019-10-02 14:30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저는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맛있는 걸 많이 먹는 것이 우리가 가진 최초의 의식입니다.
다락방님의 오늘 점심 과식이 바로 그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의 발현이었던 거죠.

참 흥미롭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3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의식이...욕망하는....모든 대상은.....

밥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10-02 14:40   좋아요 0 | URL
하하하! 또 말하고 싶었던 건 다락방님이 베트남에 가면 당신은 순대국밥을 몹시 그리워할 거라는 거예요.

다락방 2019-10-02 14:42   좋아요 0 | URL
아냐, 쇼님. 나는 의식이란… 환경에 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에 갔다면 쌀국수로 충분할거에요.

syo 2019-10-02 14:46   좋아요 0 | URL
그렇다 해도 ‘삼겹살‘은 육즙, 그 겹겹의 깊은맛의 생산자예요. ‘김치‘가 있어야만 자의식의 문제를 풀 수 있을 거예요.

다락방 2019-10-02 14:47   좋아요 0 | URL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가 어디라도, 저는 삼겹살과 김치를 만난다는 거에요?

syo 2019-10-02 14:52   좋아요 0 | URL
아니요. 삼겹살과 구운 김치는 베트남에 갔다고 해서 잊어버리고 살기에는 넘나 맛있는 녀석들이 아니냐는 거죠.....^ㅠ^

다락방 2019-10-02 15:03   좋아요 0 | URL
삼겹살.... 너무 먹고싶네요..................

감은빛 2019-10-04 20:40   좋아요 0 | URL
저도 삼겹살과 김치가 먹고 싶어졌어요!
음, 누굴 불러낼 수 있으려나.
안되면 혼자 가서 먹어야겠군요.

다락방 2019-10-04 21:38   좋아요 0 | URL
삼겹살 혼자 먹는 곳은 좀처럼 없지 않나요? ㅠㅠ 저도 가능하다면 혼자라도 가서 삼겹살 먹고 싶어요. 그렇지만 혼자 고깃집 들어가는 건 어쩐지 잘 안되더라고요. 음.. 가서 2인분 시키면 눈치없이 먹을 수 있으려나요? ㅠㅠ

아무쪼록 제 몫까지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흑 ㅜㅜ

감은빛 2019-10-04 21:59   좋아요 0 | URL
다행히 담배 피우러 올라간 옥상에서 만난 선배님께 삼겹살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은 이미 저녁을 드셨지만 제게 사주겠다고 어서 가자 하셔서, 지금 열심히 삼겹살에 김치를 먹고 있어요.

다락방님과 쇼님 덕분에 맛있게 먹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