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에는 조용한 마을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남자가 나온다. 그러나 식당에서 우연히 건달들과 싸우게 되고 이 일로 뉴스에 얼굴이 알려지면서 그가 과거 몸담았던 폭력조직의 일원이 그를 찾게 된다. 그가 과거에 폭력조직에 몸담았었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도 그리고 가족도 모르고 있기에 그는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지금 이대로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그를 찾아온 폭력배를 죽인다. 그를 죽이면 그의 과거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그의 폭력적인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 그 한사람 뿐이겠는가. 그의 과거를 아는 조직원들이 또 그를 찾아오고 또 그를 찾아오고 그는 계속해서 그들과 싸우면서 자신의 과거를 없는 척 하려고 한다. 폭력적 과거를 지우기 위해 다시 폭력을 쓰면서 자신과 가족을 모두 위험에 노출하고 있는데, 그는 대체 어디까지 파고들어가 죽이고 지워내야 그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가 몸담았던 그가 살아냈던 과거는 이렇게 훌쩍 먼 미래에서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과거가 중요하다. 미래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나의 모습을 만든 것도 과거이며 미래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게 그리고 옳은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한다. 지금은 미래의 과거가 될테니까. 내가 지금을 나쁘게 살고 있다면, 지금은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되어 미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내가 오래전에 본 영화 《폭력의 역사》를 떠올린 것은, 어제 본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때문이었다.



1994년, 고등학생이던 현우(정해인)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현장에 있었다. 그가 그런 게 아닌데도 그는 친구를 죽인사람이 되어 소년원에 다녀왔다. 소년원에 다녀온 뒤 그는 동네 작은 빵집에 아르바이트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미수(김고은)를 만나게 된다. 둘은 75년생으로 동갑이었지만, 미수는 자신이 '빠른 75' 여서 자신의 친구들 모두가 74년생이라고 한다.

그들은 매일 보고 함께 일하면서 점점 더 친해지게 되는데, 현우가 거기에서 일한다는 걸 알게 된 그의 고등학교시절 친구들이 이 빵집으로 찾아와 마치 아지트처럼 그곳을 점령한다. 그들은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을 하나씩 불러모아 자리 잡고 앉아서는 거칠게 욕을 하며 시끄럽게 군다. 이에 빵집에서 빵을 만들던 은자(김국희)는 그들에게 빵을 쥐어주며 이곳에서 나가라고 한다. 여기서 나가라고. 현우는 가불을 해서 그들과 함께 나간다. 현우는 은자에게 변명하듯 '나쁜 애들은 아니에요'라고 하지만, 그들이 거기에 그렇게 거칠게 자리잡고 있는데 어떤 손님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현우는 그렇게 친구들과 나가고 미수와 은자는 아마도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돌아오지 않을거야, 기다리지만.


현우는 현우대로 그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시비가 붙어 다시 소년원에 간다. 1994년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지만 1997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미수는 대학생이 되었고 현우는 군대에 가야한다. 입대 바로 전날 만나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맥주를 마시고 미수네 집에서 다정한 시간을 보낸다. 일찍 일어난 미수는 천리안에 들어가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서 헤어지기 전 현우에게 건넨다. 이제 이메일로 연락하자고.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헤어졌지만, 뒤늦게 미수는 깨닫는다. 자신이 만든 계정은 알려주었으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음을. 그렇게 미수는 상대가 읽지도 못할 이메일을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고 또 보내고...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서 현우는 제대하고 헬쓰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안하면서 돈을 벌게 되는데, 헬쓰장은 회원권을 구매하라며 돈을 받고는 튀어버려서 현우는 또 경찰서에 가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라고 하지만 이미 그는 헬쓰장 직원이었고, 그리고 그 헬쓰장은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들이 소개해준 것이었다. 그는 그 친구들과 연결되면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쁜 일에 휘말린다. 그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제발 제대로좀 살자고, 제발 제대로 좀 살자고.



이메일의 비밀번호를 알아냈다는 감격으로 몇 년만에 미수와 현우는 기뻤고, 연락이 닿았고, 짜릿했고, 울것처럼 감동했지만, 그래서 전화통화도 했지만, 만나기로 한 그 날이 바로 그가 경찰서로 끌려간 날이었기에 미수는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현우도 차마 미수에게 연락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그들은 직장에 다니면서 우연히 재회한다.



이 인연은 도대체 어떤 인연이길래 그렇게 한결같이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서로만 보는지 모르겠다. 이 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서 그들이 다른 이성과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그들은 그렇게 서로만 생각하고 서로만 기다린다. 그리고 드디어 서로에게 닿았다. 이제 그들은 작은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같이 밥도 해먹고 만화책도 빌려보고 옷도 같이 입으면서 행복한 때를 보내지만, 또, 현우는 그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그 날, 집에 돌아온 현우에게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평소에 현우에게서 나지 않던 담배 냄새.



나는 나쁜 친구들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라고 부르기엔 어쩐지 적절하지 못하지만,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끊어낼 수 없는 그 악연에 대해서. 현우는 제대로 살고 싶었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지만, 그가 과거에 저지르지 않았으면서도 저지른 일과 그 때 함께 있었던 사람 때문에 자꾸 발목을 잡힌다. 그들로부터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우연히 만나는 일도 있다. 나는 현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동네에서 사는걸까 의아했다. 물론 떠나는 것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이 지독한 과거가 발목을 잡고 있는데, 우연히 만나기도 하는 곳에 그 악연들이 있는데, 왜 그곳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을까.


폭력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다른 마을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일원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러니 현우가 어디로 도망친들 어쩌면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우야말로 얼마나 답답했을까. 과거가 자꾸만 자기를 찾아오고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그들이 찾아오면 그는 지금까지 평화롭고 조용하게 이루어낸 일상을 파괴해야만 한다. 앞으로 가려고 해도 앞으로 갈 수가 없어. 과거의 친구들은 그들 나름대로 현우가 얄밉다. 자신들은 그 일을 잊을 수 없고 이렇게 괴로워서 그래서 이런 나쁜짓 저런 나쁜짓 다 해보는데, 현우 혼자 용서받고 잘 사는 것 같아서. 우리가 괴로우니 너 역시 계속 괴로워야 해, 라는 그 마음은 악의일까. 그들에게 설사 악의는 없었다한들, 그 과거는 나쁜 과거다. 그리고 나쁜 과거는 질기다. 나쁜 과거를 지니게 만든 인연은 악연이라 불러야 할 것이고, 악연은 나쁜 과거와 마찬가지로 질기고도 질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현우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으니까. 현우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도 당연하게 그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알게 된다.



나는 이렇게 나쁜 과거와 악연을 지닌 사람에 대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해야 했다. 그 과거의 멤버중 한 명은 태권도학원의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픽업하고 데려다주는 일인데, 저런 사람을, 폭력적이고 나쁜 과거를 가지고, 다른 친구도 함께 괴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하는 일을 해도 될까.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쁜 영향을 미칠텐데. 아니나다를까, 화가 나고 괴로운 현우가 밤중에 찾아와 태권도 학원 차를 망가뜨린다. 현우에게도 그들은 악연이었지만, 이런 식의 인연이 나쁘게 흘러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닐까. 현우는 현우대로 괴롭지만, 그렇다면 미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극복해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상처들은 도저히 극복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 다정한 시간을 보내면서 상처가 조금은 옅어지는 일들도 더러 생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를 감싸안아줄 의지가 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으면서 우리는 상처받고 아픈 가슴을 묻어둔채로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역시,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악연에 대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감당할 수가 없다. 나에게 있는 악연으로부터도 달아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연이 있다면 역시나 나는 달아나고 싶다. 미수는 현우에게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불안해하는 현우를 보는 미수 역시 불안할 것이다. 나였다면? 나 역시 불안할 것이다. 그들이 젊은 시절 빵집에 찾아와 함부로 말하며 행동하던 일, 폭력이 잠재되어 있음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던 그 말투와 행동. 언제 어떻게 어디서 나타나 어떤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채로 내가 내 상대를 끌어안으며 앞으로 갈 수 있을까? 보통 어떤 문제가 닥친다면 해결방법을 찾아야한다. 나쁜 사람이 앞에 있다면 맞서 싸워야한다. 그리고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명이 나의 과거로, 나쁜 인연으로 자리잡고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닌다면 다른 도리가 없다. 도망치는 것밖에. 도망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고 도망치다는 말 자체에 어떤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있는 듯하지만, 그렇지만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일 때가 있고, 나는 이 끈질긴 악연은, 죽일 수 없다면,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수라면, 나는 현우로부터 도망쳤을 것이다. 너의 과거가 이렇게 계속해서 우리를 지금까지 불안하게 따라오고 있고 그리고 또 그것이 미래에도 있을 거라면, 나는 너로부터 도망칠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므로 너의 과거를, 상처를 감싸안아줄 의향이 충분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그것이 응당 네가 기대하고 내가 기대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악연에 관한 것이라면, 게다가 끈질기게도 자꾸 따라붙어서 폭력을 부르고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면, 나는 그런 악연을 가진 너를 떠날 것이다.


내가 현우라면, 역시 도망쳤을 것이다. 미수랑 함께하는 결정을 한다면 더더욱이나 도망칠 것이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전라도로 간다면, 제주도로 간다면, 그렇다면 이 악연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는 게 가능할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또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일테다. 내가 내내 생각한 건 해외였다. 어쩔 수 없다. 이 악연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면 외국으로 가야한다. 누구나 갈 수 있고 모두가 갈 수 있는 유명한 곳 보다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기어코 도망을 가야만한다. 이 악연을 끊어내고 싶다면.



나이가 좀 더 들면, 좀 더 들면 괜찮아질까?

사십대가 되고 오십대가 되면, 그러면 폭력적인 성향이 수그러들고, 우리가 이렇게 괴로운데 너는 멀쩡하면 안되지, 하는 악의가 사라질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장담할 수가 없어. 역시 답은 도망치는 것뿐이다. 그래서 괴로웠다. 어떤 삶은, 도망쳐야만 보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과거가 앞에서 나를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그리고 청소년들이 단지 지금만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얼마나 좋을까, 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순간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취직을 하고 애인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는 그 모든 순간순간마다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거는 그저 과거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 순간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악연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나쁜 과거라면,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해를 입혔던 과거라면, 그건 어떤식으로든 나에게 돌아온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고 해보고 싶은 거 해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라면 정말이지, 앞으로의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누군가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고 상처주는 그 모든 순간들, 자신의 욕망이나 기분대로만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그 순간들은, 본인의 과거가 되어서 미래에서 떡하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웬만해서는 과거니까, 하며 버려둘 수가 없다. 나쁜 과거는, 악연은 정말이지 끈질기고 힘이 세다. 자신이 한 일을 과거의 철없던 일이라 치부하기엔, 피해당한 사람들에겐 평생이라, 저질러놓고 그저 돌아서면 그뿐이 아니다. 반드시, 발목을 잡는다.




현우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거기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그의 운명은 '나쁜애들이 아니지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과 악연이 되어 1994년에도, 2001년에도 자꾸 손을 내민다. 게다가 그 손을 뿌리치는 게 불가능해. 우리는 지금 이순간도 과거를 살고 있다. 이 순간은 과거가 되어 또 미래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잘 살아내야 한다. 악의 없이 살아가야 해. 그래야한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행동은, 반드시, 잘 살아보고자 하는 그 때에, 나를 괴롭히러 찾아온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있을까? 치료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아픔은 옅어지는 일이 분명 가능하다. 사랑 때문에, 사람 때문에. 그러나 어떤 것들은 결코 지워낼 수 없다. 나 역시 진창으로 같이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미수라면, 악연을 가진 남자와의 희망보다는, 도망을 택하겠다.





 






시간이 무척 빠르다. 벌써 11월이야. 나이먹을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나 역시 상처가 있고 또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 어떤 과거는, 그것이 내 과거라는 사실이 몸서리처지게 싫은 것들도 있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과거가 거기 있다. 어쩌면 어느 순간 누군가 나타나 나에게 '이 과거가 너의 것이잖아' 들이밀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안하겠다는거야.... 탈탈 털리겠지, 털리면 내가 쓰레기였던 거 다 나오잖아..


그리고 지금 역시 과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정말 좋았던 과거도 있었다. 정말이지 어떤 과거는 '이것이 내 과거라니 졸라 좋아 ㅠㅠ' 막 이렇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을까, 어떻게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하는 일들이 내게 있었던 것이다. 그 과거는 나에게 '추억'이 되어 남을 것이고, 앞으로 십년후에도 이십년 후에도 오십년 후에도 백년 후에도 나에게 아름다운 일들로 계속 기억될 것이다. 날이 좋으면 날이 좋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빗소리를 들으면서 내리는 눈을 보면서도 슬며시 웃으면서 '아, 좋았어, 좋은 시절이었지'하는 그런 아름다운 과거들.



시간은 흐르고 앞으로 2개월 후면 나는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 윽.

시간이 흐르고 앞으로 2개월 후면, 당신은 마흔을 살겠구나, 라는 생각을 어제부터 하고 있다.

당신의 스물일곱에 나를 만났고, 이제 당신은 마흔이 되는구나.

당신의 이십대에,

당신의 삼십대에 내가 있었고, 내가 그런 당신을 지켜보았는데,

당신의 사십대 역시 내가 지켜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당신의 이십대에, 삼십대에, 사십대에, 나는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가 되어 함께할 수 있을까.

오십대,육십대, 칠십대, 백살까지도 그런 삶이 가능하면 좋을텐데.



다음해, 그다음해도 항상 함께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은 인연이 아닌, 함께하고 싶은 그런 인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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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정해인을.. 따뜻한 글 잘 읽고 가요🥰
 

다람쥐처럼 귀엽고 당나귀처럼 고집스럽다. p.275


















피의 수확 읽다보면 해리와 이비기 서로의 웃음에 신경을 쓰고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상대가 웃어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자기 마음 들킬까봐 미소를 숨기려고도 하고. 그러니까 호감 가는 상대 앞에서 웃게 되는건, 상대가 개그를 쳐서가 아니야... 그것은 그냥 웃게 되는 뭐 그런 거잖아. 뭔지 알죠?


귀여움도 마찬가지. 상대가 무슨 커다란 눈망울에 장화신은 고양이 표정.. 같은 거라서 귀여운 게 아니라, 아 몰라 그냥 막 귀여운 거잖아. 그리고 귀여우면 그냥 끝난거잖아? 이비가 무슨 다람쥐처럼 생겨, 다람쥐랑은 거리가 멀다. 그래도 해리는 이비를 보면서 다람쥐처럼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이미 그렇게 생각한 이상 이거슨 끝난것이여.. 그런데 다람쥐, 다람쥐라니... 이비가 다람쥐처럼 생긴 게 아니지만 다람쥐처럼 귀엽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감정, 감정이 들어있는 것인데, 다람쥐란 무엇인가.. 다람쥐란 작고 귀엽고 잽싸고 도토리 돌돌돌돌 까먹는 그런 동물이 아니던가. 다람쥐..


저 문장을 보면서 나는 수천번 생각했다. 방금 전에 화장실 다녀오면서도 또 생각했어.



나는 한번이라도 다람쥐..같았던 적이 있었을까?

나도 다람쥐처럼 귀여웠을까, 어느 순간에는?

다람쥐..라면 나랑은 거리가 멀고도 먼데..나는 ....


나도 다람쥐였니?? 그랬니?

나보고 다람쥐 느낀 적 있니?????







당나귀처럼 고집스러운 적은 많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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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11-0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다람쥐... 다람쥐...

다락방 2019-11-06 13: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람쥐라니, 저랑 너무나 안어울리는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돌진하는 돼지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9-11-06 13:46   좋아요 0 | URL
저는, 저는,.. 소파 위에 퍼진 도야지라 ㅜ

다락방 2019-11-06 13:49   좋아요 1 | URL
뭐가 됐든 어쨌든 저랑 비슷한 과... 로군요. ㅋㅋㅋㅋㅋ

비연 2019-11-06 13:49   좋아요 0 | URL
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

2019-11-06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6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1-0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움 장인이신데 이런 글을 남기시면 남기시면...(소외 계층은 등을 돌려 사라짐...)

다락방 2019-11-06 17:42   좋아요 1 | URL
귀여움 장인이라뇨, 아이쿠 이런 ㅋㅋㅋㅋ 전 그냥 다람쥐일뿐..... =3=3=3=3=3=3=3=3=3=3=3=3=3=3=3

반유행열반인 2019-11-06 18:2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닉네임 바뀌었다는 소문 듣고 오는 길입니다. 다람쥐님.

다락방 2019-11-06 22:23   좋아요 1 | URL
어휴 소문 빠르고 정확하네요 ㅋㅋ

syo 2019-11-0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람쥐가 갑자기 어느 숲에서 튀어나왔나 했더니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1-06 22:22   좋아요 0 | URL
안녕? 다람쥐입니다. 방실방실 🤗
 

누군가가 내게 필요한 일이 살면서 얼마나 될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원하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것이 필요할까? 어떤 사람들에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겐 필요로 누군가를 원하는 일은 좀처럼 없을것이다. 나의 경우엔 필요하다는 걸 사람에게 잘 쓰지 않는 편인데, 필요라는 것은 메모를 해야 할 때 펜이 필요하고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이 필요한 것.. 정도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 역시도 아주 가끔, 정말이지 아주 가끔은, 아주 소박하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어떤 절박함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가끔 튀어나오는 외로움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에는 며칠전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그 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럴 때는 누군가 필요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 소식을 듣자, 누군가 내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그러니까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 소식을 접하고는 어? 락방이가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왔네, 알려줘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는 쪼르르 나에게 와서 "마사 누스바움 신간 나왔던데, 알았어?" 하고 말해주는 순간이 필요한거다. 그러면 뭐랄까 인생의 소소한 행복이 찾아올 것 같았어.

















그렇지만 그런 순간은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훅- 하고 사라졌다. 내가 아니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온 거, 내가 이렇게나 잘 아는데 뭘. 게다가 마사 누스바움 책은 집에 여러권 있는데 쌓아두고만 있다. 무릇 독서인생이란 그런것이 아니던가...


아무튼 그런 순간이 내게 있었음에...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 또 평온한 날들을 살다가, 바로 어제, 어젯밤에, 아, 너무 누군가 필요해서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건, 내가 자기전에 이 책을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어제 이 책 너무 읽고 싶어서 내가 요가도 안갔다. 월요일도 안갔는데 화요일도 안갔어. 일요일도 안갔고 토요일도 안갔는데.... 아무튼 어제 어쨌든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침대로 훌쩍 뛰어 올라가(응?)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가도 안갔겠다, 일찍 자야지, 열시.. 아니 늦어도 열시 반에는 자자. 책읽기 똭! 멈추고 그 때 자는거야.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하는 사람이니까... 하고 읽었지만, 아아, 우리는 알잖아요. 책이 너무 재미있으면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고, 열한시가 넘어버리고 말았고, 그러면 책장을 덮자마자 바로 잤느냐 하면, 또 그게 안됐어.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고 슬픔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 나를 너무 후려패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내가 요가 대신 독서를 하기로 선택했던 순간을 후회했다. 차라리 요가를 갈걸, 이 책을 자기 전에 끝까지 읽지 말걸, 이게 지금 뭐야, 나 어떡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너무 아파서. 아프다. 슬프다고 썼는데 아프다고 읽어야 해. 트윗에서도 이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했고, 그리고 이 공간에서도 그러했고, 나는 역시 샤론 볼턴을 사랑하지만, 이 책이 너무 아파서 지금은 추천하지 않겠다. 여러분 읽지 마요, 슬픔과 아픔이 여러분을 후려갈긴다.


어제 그 감정에 너무 허우적거려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을 때처럼, 아, 이 책을 읽고난 뒤의 나에게 누군가 필요하다. 누군가 옆에서 나를 좀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어쩔 줄을 몰라 침대위에서 허우적거리고 뒤척거리는 나의 어깨를 좀 다독다독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괜찮다고 책일 뿐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볍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아, 누군가 필요하다, 절실해졌다.



그러나 그 감정도 이내 훅- 가버렸다.

이 책을 읽은 것도 내가 혼자 한 일이고, 그러니 이 슬픔과 아픔도 나 혼자만의 감정이다. 누가 옆에서 쓰다듬어주고 다독여준들 그 슬픔과 아픔은 시간이 지나야 나을 것이었다. 누가 나를 만져준다고 해서 응 슬픔이 뿅하고 사라졌어, 하게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온전히 내몫이었다. 견뎌내야 할 내 몫. 이건 누가 나눠가질 수도 없고 대신해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대신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잠도 못자는 감정을 어떻게 누군가에게 대신 해달라고 해. 게다가 이걸 나눠가지다니, 말도 안된다. 나 하나로 족하다. 충분히 허우적대고 뒤척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야. 내가 읽은 책으로 내가 힘든데 누가 어떻게 나를 달래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해줄 일이 아니었다. 내가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어. 나는 내 안의 이 감정을 침대의 내 옆자리에 누울 사람에게도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아 여러분, 이 책을 읽지 마세요.




샤론 볼턴의 소설 속 배경이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이 소설의 배경 역시 한적한 시골이다. 이 시골에 목사와 한 가족이 새로 이사왔다. 이곳 역시 대부분의 시골들이 그런것처럼 이 지역 전체를 가지고 있다해도 좋을만한 부자가족이 살고 있다. 이 지역의 실세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비는 거기에서 조금 차타고 가면 있는 동네의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는 자신의 옆마을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엄마 '질리안'과 상담 중이다. 시간이 지나도 질리안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게 있는 것 같고 좀처럼 질리안에 대해 명확히 무언가 잡히질 않아 질리안이 사는 동네에 말을 타고 가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마을에 새로 부임한 목사 '해리'를 마주치게 되고,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해리의 부임 얼마 전에는 플레쳐 가족이 이사를 왔다. 플레쳐 가족에게는 톰,조,밀리 라는 삼남매가 있다. 톰과 조는 어느날부터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소녀를 본다고 말하고 그녀가 자신들의 귓가에 계속해서 말을 한다고 얘기한다. 톰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혹시나 조현병인걸까 의심하는 톰의 엄마는 이비에게 톰을 보내 치료를 받게 한다.


톰은 '밀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행동한다. 실제로 누군가 데려가려는 밀리를 구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의 무덤이 붕괴하면서 묘지가 파헤쳐지고 그곳에서 영아 세 명의 시신이 나온다. 무덤은 하나인데 시체가 셋. 게다가 다 어린 소녀들이다. 경찰들은 신원 파악에 나섰고, 그 세 명이 몇해에 걸쳐 사라졌거나 화재로 잃었던 어린 여자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톰과 조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소녀를 본다는 것, 해리 역시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기척을 느낀다는 것, 한 무덤에 시체가 셋이라는 것들은 모두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런 초자연적인 이야기로 이 소설이 시작되고 진행되지만, 나는 그간 샤론 볼턴의 책을 읽어왔던 사람이라, 이것이 초자연적인 것은 아닐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이것은 현실적이고 또 실제적인 누군가가 관련된 일일것이다. 유령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샤론 볼턴은 그런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로 시작하지만, 그러나 인간이 그러한 것이라고 계속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책도 그러할 거라는 걸 짐작하며 읽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시체라는 점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만, 그러나 이정도의 스포일러는 괜찮겠지, 책을 읽는 동안에는 어린아이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이게 샤론 볼턴에게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물론 시체도 있었고 그 시체들이 왜 발생했는지도 말하지만, 소설속의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지 않게 해줘서. 살아있게 해줘서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여자아이'들이라는 것 때문에 짐작되는 고통이 있어 그게 너무 아팠다. 샤론 볼턴의 책을 읽다보니 나는 초반부터 '아마 범인은 이들일 것이다'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된건지, 왜 그렇게 된건지 그 사연은 모르지만, 분명 이들이 관련되었을거야, 생각한것이다. 샤론 볼턴은 항상 그런 얘기를 해왔으니까.


내가 읽어온 샤론 볼턴의 전작 《뱀이 깨어나는 마을》,《희생양의 섬》과 이 책이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스였다. 해리와 이비의 달달한 사랑의 투닥거림 때문에 나는 미치는 줄 알았네? 샤론 볼턴이 어쩐 일로 로맨스를 넣었을까, 뭔가 생뚱맞지만, 그런데 너무 로맨스 잘 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막 좋아하면서 읽었단 말이야? 아아, 이것은 여느 로맨스 소설보다 더 좋다, 아니 이렇게 로맨스 잘 쓰는데 왜 그렇게 항상 쿨싴했나요, 샤론 볼턴님. 히죽히죽 하면서 읽었는데, 아, 샤론 볼턴이여.. 나한테 이러기 있긔없긔...


샤론 볼턴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면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해리와 이비의 이야기가 흐르면서 이 마을의 사건이 같이 흐르는 것.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는가. 내가 쌍으로 슬퍼하는 일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슬펐던 것은, 이 책의 살인범 때문이었다. 살인범이 살인범이 된 이유가, 물론 그런 이유로 그렇게 다 영아살해범이 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아파서 울고 싶었다. 그 사람이 살아왔을 시간들은 .. 생각해보려고 해도 이미 너무 아파서 내 몸을 한껏 쭈구리고 싶어지는 거다. 그런데 ㅠㅠ 이비 때문에, 해리 때문에도 내가 아파야 했어. 슬퍼야 했다. 아니, 샤론 볼턴 이렇게 잔인하면 어떡하나...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고 살인범 때문에 아프고 이비 때문에 아프고 해리 때문에 아프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국 졸라아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되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눙무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난번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샤론 볼턴은 희생양의 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쎄, 이곳에선 적응을 잘 못한 것 같고,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말이 맞아요. 이곳 섬들은 작지만 강력한 패거리가 다스리고 있거든요. 체격이 큰 금발의 남자들 말이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스코틀랜드 대학을 다녔고, 노르웨이 부족의 침략이 있던 시절부터 가족끼리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 말이에요. 토라, 생각해봐요. 병원의 아는 의사들이나, 학교의 교장이나, 경찰이나 치안판사, 또 상공회의소, 지역 시의회까지, 그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요."

그 점에 관해서는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꽤 많은 섬 주민들이 눈에 띄게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여러차례 실감한 터였다. (p.249)





뱀이 깨어나는 마을에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고.




˝어머니가 술을 드셨어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요. 음악가셨던 어머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시골의 성직자와 결혼하면서 경력을 포기하셔야 했죠. 나중에야 성직자 아내로 사는 게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셨고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숀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둠이 더욱 짙어진 까닭에 나는 그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도 힘드셨겠죠. 치료도 받으시고, 몇 년동안 병원도 다니셨죠.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몇 달을 버티기도 했는데,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하셨어요.˝- p.424







그리고 이 책, 《피의 수확》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이비,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부와 권력을 위해 딸들을 팔아왔어요. 20세기가 되었다고 그게 멈출 것 같아요?" (p.532)



그렇다.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딸들을 팔아왔고 여자들을 팔아왔다. 어제 점심 식사 하면서 들은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꿈의 제인> 편에서는 온라인채팅앱에 대해 이수정 박사님이 공공연한 미성년자 성매매 통로라는 얘길 하셨다. 남자들은 유료이지만 여자들은 무료라는 것. 남자들이 돈내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급되는' 여자가 많아야 했다. 이건 클럽 문화와 마찬가지다. 나는 버닝썬 때문에 클럽에서 여자들이 돈을 내지 않고 심지어 맥주가 무료로 제공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됐다. 클럽에 자주 가는 동료가 '물 좋은 곳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런 클럽이 많다'고 얘기해준 거다. 나는 그걸 들으면서 너무 이상했다. 그건 불공평하잖아? 한 쪽은 돈을 내고 한 쪽은 돈을 안내? 이거 너무 이상하잖아? 아, 그건 클럽에 남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자들이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참... 이렇게 여성의 성을 팔고 있는 거였다. 샤론 볼턴이 자신의 소설을 빌어 말한것처럼, 20세기가 되었다고 그게 멈추지 않았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폭넓게 진행되고 있을 뿐.



샤론 볼턴은 이렇게, 해야할 말들을 늘 하고 있었어.



소설 읽고 어떻게든 수습이 안되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보부아르 언니가 랩하는 책, 《제2의 성》2권을 들고 왔다. 지하철에서 꺼내 읽기 시작하는데, 마침 이런 구절이 보인다.





전보다 더 불안정하고 더 불확실한 현대생활의 조건 때문에 젊은 총각의 결혼 부담은 매우 가중되었다. 반대로 결혼의 이득은 오히려 감소되었다. 남자는 쉽게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고, 성적 만족도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결혼하면 물질적 만족-'음식점보다 자기 집에서 먹는 쪽이 더 낫다'-과 함께 성적 만족-'남자는 집에 상주하는 매춘부를 갖게 된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개인은 고독에서 해방되고, 가정과 아이를 얻음으로써 공간과 시간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것은 그의 생존을 위한 결정적인 목적 수행이다. 그렇지만 역시 전체적으로는 결혼을 바라는 남성의 요구가 청혼을 기다리는 여성의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딸을 준다기 보다 치워버린다. 남편을 구하는 젊은 처녀는 남자의 부름에 응하는 식이 아니다. 남자를 성적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p.540)





젊은 처녀는 완전히 수동적이다. 그녀는 부모를 통해 혼담이 '이루어져서' 신부로 '주어진다.' 총각은 결혼'하'고 아내를 '얻는다. (p.537)




여자를 사고 파는 남자들, 그러나 그 돈은 여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여자는 그저 여성성을 가진 수단으로 존재할 뿐.



첫째, 지참금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 가족에게 전달된다. 시부모는 지참금의 분배에 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는다. 둘째, 내가 아는한, 토지는 절대 지참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여성에겐 재산이 없다. 이른바 그녀의 재산으로부터 아무런 부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젠더에 따라 특정된 성격이 만들어진다. 남자들은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생계비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자녀양육과 가사에 몰두한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지참금 마녀 사냥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다. (p.231-232)




딸을 팔아치우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건 딸만 팔아치운걸까? 인간이기를 팔아치운 것이기도 하다. 돈에 딸을 넘기고, 자신의 영혼을 넘긴것이나 다름없다. 단언하건대, 그런 남자의 영혼은 딸의 육체보다 가치가 없다.




이렇게 나를 아프고 힘들게 만든 책이지만 언제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희생양의 섬도 다시 사서 재독해야지. 끝까지 읽으면서 너무 아팠지만, 아, 역시 샤론 볼턴은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구나,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 이비랑 해리 때문에 아프게 할것까진 없잖아요. ㅠ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잖아요? ㅜㅜ 세상은 역시 장밋빛이 아닌것이야.. ㅠㅠㅠㅠㅠ


더 슬픈 건 내가 정확히 이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비의 끌리는 마음, 그리고 '그러나 이것은 이러면 안되는거야' 라며 스스로를 자제하려는 마음, 지킬 것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 윤리적으로 옳은 걸 선택하려고 자기의 욕망을 애써 죽이려는 그 마음이, 내게는 정말이지 생생하게 손에 잡힐듯해. 서른한살 그 날의 내가 꼭 이랬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이 책을 읽지 마세요. 슬픔과 아픔이 여러분을 후려갈길겁니다.. ㅠㅠ




"여긴 웬일이시죠?"
그가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뺐다. 대화가 시작된 지 십 초만에 그는 벌써 에비 작전까지 꺼내 들었다.
"이거, 당신건가요?" 그가 물었다. 파란색 돌로 장식된 작은 은팔찌가 빛에 반짝 빛난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뇨." 고개를 흔들며 그녀가 대답했다. 관자놀이 주변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축축했고 승마 모자에 눌려 머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가 손을 머리로 올려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얼굴은 분홍빛이었다. 닷새 전에는 낙마로 창백했던 얼굴이었다.
"길에서 찾았나요?"
"아뇨. 이틀 전쯤에 로튼스털 시장에서 제가 산 겁니다." 그가 실토했다. 뭐, 조금 많이 위험한 고백이었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여자 입가의 꿈틀거림이 미소에 가까울 정도로 커졌다.
"조금 성급하셨네요. 당신하고는 색깔이 안 맞는 것 같은데."
"맞는 말씀입니다. 저는 뭐랄까 연한 레몬색이 더 스타일에 맞는 남자죠. 하지만 구실이 필요했어요."
됐다! 미소였다. 확실히 그랬다. - P99

해리는 제니를 따라 옛 양치기의 벤치로 갔다. 이비와 함께 앉았던 그 벤치. 그녀는 아직도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 P184

두 사람이 경사 지대의 정점에 다다를 무렵, 해리는 이비가 지쳐가는 걸 느꼈다. 말수가 줄었고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여기까지 차로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어째서 못 하게 한 걸까. 잠시 멈춰서 쉬자고 제안하면 화를 낼까?
"잠깐 앉아서 쉬어도 될까요?" 이비가 물었다.
다람쥐처럼 귀엽고 당나귀처럼 고집스럽다. 정말로 골칫거리인 여자였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걸까?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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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1-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만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은 전에 제가 알려드렸는데요..... 정확히는 곧 나온다고 알려드렸지만.....😟

다락방 2019-11-06 09:21   좋아요 1 | URL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내 말은..... 그게 그게 아니고..... 뭐 그렇다는 거에요. 응? 알죠?

아 댓글 읽고 육성 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11-06 09:23   좋아요 0 | URL
네.... 알죠.... 뭐.... 알죠. 알아야죠.... 제가 뭐.... 🙁

다락방 2019-11-06 09:45   좋아요 0 | URL
표정 좀 어떻게 해봐요. 미안해 죽을 것 같잖아 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1-0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지 말라는 페이퍼가 이렇게 근사하면, 어쩌란 말입니까ㅠㅠㅠㅠㅠ
다락방님 진심은 뭐예요? 읽지 말라는 거예요, 읽으라는 거예요? (feat. <제2의 성>)

다락방 2019-11-06 10:06   좋아요 0 | URL
뒷일은 제가 책임질 수 없다... 정도로 요약하겠습니다. 엣헴-

마음이 너무 아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별은 다섯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19-11-0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0쪽이 넘는 책을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으신 것 같아서 대단한 흡인력의 책인가보다 했어요.
예전에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다락방 2019-11-06 10:05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 샤론 볼턴을 읽어본 적이 없으시다면 정말이지 추천합니다.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먼저 시작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짜 압권이에요, 압권!!

비연 2019-11-0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2의성 ‘II’ 만 눈에 들어오네요 ㅜㅜ

다락방 2019-11-06 13:4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시작한 것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비연 2019-11-06 13:47   좋아요 0 | URL
샤론 볼턴 책을 보관함에 숑숑 밀어넣으며 생각합니다. 제2의성을 끝내야 읽을텐데.. 나는 전체 1000페이지 중 이제 겨우 200....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9-11-06 13:50   좋아요 1 | URL
오오 그래도 열심히 오고 계시네요, 비연님. 한 400까지 오시면 스스로에게 상을 좀 줘도 되지 않을까요? 일단 샤론 볼턴의 뱀이 깨어나는 마을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9-11-06 13:51   좋아요 0 | URL
앗 좋은 생각인듯!

카스피 2019-11-0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피의 수곽이라 더쉴 해밋의 작품인줄 알았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네요^^;;;

다락방 2019-11-08 17: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 책 검색하다가 대실 해밋의 작품도 있다는 걸 알았네요.
 
피의 수확
샤론 볼턴 지음, 김민수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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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을 학대하고 팔아먹었다. 그런 세상에서 여자가 미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렇지만 샤론 볼턴님, 너무 슬프잖아요. 잠들기 전의 제 이마음을 어쩌실거에요. 아ㅜ미치겠네 ㅜㅜ 일찍 잘라고 했는데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자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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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은 만남에 앞서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아니, 진작 만들걸, 이 단톡방을 통해 수시로 어디까지 읽었냐 서로 체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단톡방 개설을 한 후로 나는 계속 일등을 달리고 있다. 학창시절에도 못해본 일등.. 내가 그것을 하고 있는데, 아아, 나란 여자, 겸손이란 것을 모르므로, 한없이 잘난척 뿜뿜중이다. 게다가 나란 여자, 정말이지 겸손이란 것을 모르므로, 2,3등을 상위권으로 쳐주지도 않아, 나란 여자, 2등부터 모두 하위권으로 후려치기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매번매번 새로운 잘난척을 해, 멤버중 1인은 "(잘난척)어쩜 그렇게 잘하냐" 라고도 내게 물었던 것이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잘난척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잘난척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괜히 그래서 사람들한테 미움 받을까봐 신은 나를 학창시절 일등 못하게 하셨는가보다. 울아빠도 진작에 내가 이런 걸 알아보고, 너는 잘난척을 심하게 할 사람이라서 자만하지 말라고 외모도 요정도로 태어나게 한 거라고 하셨지.. 네, 아빠... -.-



아무튼 계속 일등하고 있는 나는 하위권들이 따라오느라 애를 쓰고 있는 지금, 잠시 여유를 부리느라,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설을 읽고 있다. 이야- 소설 원래 재미있었지반, 보부아르 님의 속사포같은 랩을 읽다가 소설 읽으니 세상 재미있는 것. 그렇게 엊그제는 《우먼 인 윈도우》를 읽었는데, 어휴, 이 여자가.. ㅠㅠ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어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 자꾸 술과 약을 함께 먹어서 취해버린다. 이웃집 살인까지 목격했는데 그걸 신고했지만 이 여자가 술과 약에 의존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는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지구상에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1도 없다, 1도.. 별거중인 남편 조차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내가 책 읽으면서 술 좀 그만 마셔 이 여자야 ㅠㅠ 이런 잔소리를 얼마나 했던지, 그 약 술하고 먹지 말라고 닥터가 그랬잖아 왜그래 ㅠㅠ 이런 잔소리까지... 휴....



(지금 사무실 책상에 소세지빵 있는데 너무 한 입 깨물고 싶은데 먹을까 말까 내적갈등중..)




그리고 어젯밤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꺅 >.< '샤론 볼턴'의 《피의 수확》이다.

















샤론 볼턴이니까, 샤론 언니 좋을 줄 알았지만, 아니 세상에 너무 좋고요. 어제 자기 전에는 30페이지 가량 읽고서도 흑흑 초반 긴장감 쩔어, 밤에 악몽 꾸면 어떡하지 무서워 ㅠㅠ 막 이렇게 되었더랬다. 샤론 언니의 전작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읽고도 나는 무서워했더랬는데. 뱀 나오면 어떡해 으악 진짜 집안에 뱀 들어오면 개무서움 ㅠㅠ 막 이러면서 ㅠㅠㅠ 진짜 긴장감 쩐다. 게다가 초반에 등장하는 아이 둘이 학급의 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거 너무 힘들고 ㅠㅠ 어떻게 이렇게 긴장감을 잘 쓰나 진짜 천재천재 이러면서 어제 잤는데, 오늘 출근길에도 또 새삼 샤론 언니의 천재성에 내가 감탄을 한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주인공을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 좋다. 애초에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 라고 던져주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 사람의 일상을 드러내면서 나중에 이런 특징이 있지, 를 보여주는 식인데, 이게 너무 좋은 거다. 게다가 주인공의 성격, 결코 사교적이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성격, 그러나 일에는 열중하는 성격을 보여주면서 그 성격 안에 메세지까지 담고 있어. 진짜 세상 좋다. 이 책, 피의 수확에서는 정신과 상담의인데 그러고보면 샤론 언니는 다 의사인 사람을 주인공으로 썼네. 뱀이 깨어나는 마을에서 주인공은 수의사였고 《희생양의 섬》에서는 산부인과 의사였지. 아아, 희생양의 섬 읽고 팔아버렸는데 다시 사야겠다. 책장 한 칸을 샤론 볼턴 전용으로 만들어둬야겠어. 오만년전에 하루키 책장 두 칸 만들었다가 한 칸으로 줄여뒀는데, 샤론 볼턴을 위한 책장도 만들어야겠다.



자, 오늘 읽은 부분을 가져와보겠다.




'미안하지만, 아가씨' 라고? 이비는 길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러면 그를 노려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녀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다친 사람은 화를 낼 자유도 없다는 점이었다. 비장애인이 화가 날 때 짜증을 낸다 해도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면 뭔가 문제가 있고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p.73)



이비는 말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말을 놀래켜주려는 짓궂은 장난을 치는 소년들 때문에(사실 이건 짓궂은 장난이라기보다는, '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떤 소년들은 악을 품고 있는 걸까.)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그 때 근처에 살고 있는 남자가 와서 그녀를 일으켜주고 도와주고 물을 가져다주는데, 그는 키가 크고 강인하고 사지를 모두 잘 쓸 수 있는(p.73) 남자였던 것. 이비는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짜증나고 그렇지만 도움을 받고 있고 뭐 여러가지로 빡치는 상황에서 이 남자가 너무 얄미워..

그래서 이 남자한테 좀 뭐랄까, 틱틱거린다고 해야하나.




이비가 항복의 뜻으로 양손을 들어올려 보이고 다시 앉았다. 남자는 교환원에게 사과를 하고 주머니에 전화를 넣었다. 이비는 시간에 관심도 없었고 자신이 유치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란 듯이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그녀 옆에 앉았다.

"차 한잔할래요?" 그가 제안했다.

"아뇨, 괜찮아요."

"물 한 잔 더?"

"가져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부탁할게요."

남자가 겸연쩍은 듯 낮게 킥 웃었다. "나 참. 사촌 결혼식에 갔을 때 잔뜩 취해서 목사 들러리한테 토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숙녀분께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 건 처음인데요."

"아, 그래요. 그 숙녀분만큼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 숙녀와 저는 열여덟 달 동안 사귀었는데요?"

침묵. 이비는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p.7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는 이런거 너무 좋다. 투닥투닥대는 거. 사실 이 뒷이야기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저 남자가 이야기가 흐르면서 어떤 남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저 장면 너무 좋았다. 뭔가 서로 갈구는데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쓰벌 연애의 시작은 갈굼이련가... 



아무튼 그래서 엄청 재미있게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샤론 볼턴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갈지 너무 흥미진진하다. 묘지에서 발견된 시체가 아주 어린 아이의 그것이었다는 것 때문에 내내 좀 마음이 안좋지만 ㅠㅠ 전체적인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흘러갈까. 정말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샤론 언니만 믿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것은 순전히 그냥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인공의 이름이 '이비'인 것은 매우 불만이다. 개인적으로 그 이름을 매우 싫어하므로.. 왜 하필 이비인 것일까. 쩝..

그러나 주인공이 락방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그것은 내가 직접 써야하는 것이겠지.

지난번에 조 올로클린 책에서 '비비안' 이란 이름 보고도 확 빡이 쳤는데 이비 라는 이름에도 딥빡이 올라온다..

진정하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아직 초반이라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얼른 이 책 읽고 다시 제2의성 하권으로 돌아가야만 나는 계속해서 일등도 유지할 수 있고(빼앗기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이 잘난척하는 걸 볼 수 없어!!), 완독도 가능해지겠지. 자, 부지런히 책을 읽자. 그러나 여기는 사무실... 시무룩.........




회사 그만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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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11-05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 그만두고 싶습니다!! 2


다락방 2019-11-05 15:15   좋아요 1 | URL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요? 에휴..
열심히 돈벌어서 더덕구이나 사먹읍시다 ㅠㅠ

단발머리 2019-11-05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평생 소설 읽고 쓰는 이런 리뷰를 이렇게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feat. 일등의 맛)

다락방 2019-11-05 15:16   좋아요 1 | URL
일등은 해볼만한 것 같아요. 잘난척하는 맛이 일품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9-11-05 19: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동감!! 다른 책 맘놓고 읽는 모습 넘나... 부러워요! 물론 저도 다른책 엄청 두리번 거리고 있지만 뭔가 압박이...(꼴지의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