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도착했으므로 나는 더이상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건만, 어찌어찌하여 또! 책을 사버렸다. 그래도 양심의 존재로 인해 초큼.. 샀어요.



















《How to be you》는 생일선물로 받은 것인데 원서라 그런지 늦게 도착했다. 하드커버에 색도 예쁘고 보부아르! 아, 번역본이 있다면 옆에 나란히 두고 보고 싶은데 아직 번역본도 없는 것 같고, 언젠가 영어 실력이 막 어마어마해져서 이거 그냥 술술 넘기면서 보고 싶다.


《자유죽음》에 대해서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한다.. 

이건 다른 분의 댓글에 대한 답으로도 적어둔 것인데, 

그러니까 나는 지난주의 어느 늦은 밤, 술을 마시다가, 한 알라디너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의 리뷰를 읽게 된다. 으응? 얼마전에 다른 분도 이 리뷰 올리셨던데... 설마? 하고 찾아보니, 리뷰대회가 있는거다! 내가 알게된 시점에서 리뷰대회는 당장 이틀후 마감이었고, 나는 술을 마시고 있었고, 게다가 나는 진작에 리뷰대회는 더이상 참가하지 않으리! 마음 먹었더랬다. 리뷰대회..의 리뷰.. 각잡고 쓰는 리뷰는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성질의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리뷰대회 리뷰 썼다가 언제나 다른 분들 리뷰 읽고 나따위... 이렇게 되어버리고 게다가 나는 언제나 1등을 하게쒀!! 도전하지만 수상권에 들지도 못하고... 한 번은 만원 받은 적 있는데, 되게 허탈했다. 뭣이여... 책 값도 만원이 넘었는데 만원 주다니.. 여하튼 리뷰대회는 나랑 어울리지 않아! 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살아왔는데, 아니 그런데 리뷰대회 열린다는 책이... 내가 이미 사둔 책인거에요. 가슴속에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꿈틀.. 이틀 만에, 내가? 가능한 부분? 하고 책을 찾아왔는데, 오, 분량도 괜춘. 좋아쒀! 1등 가자!!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아, 이것은 내가 리뷰를 쓸 수 있는 성질의 책이 아니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이거 한 두 장 읽다가 다른 분들 리뷰 읽고서 와 대단하다..이런 책의 리뷰를 도대체 어떻게 쓰지? 막 이렇게 되어버려가지고 됐다 포기할까 하다가, 어차피 내가 진작에 읽고 싶어서 사둔 책이고 그렇다면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이니, 펼친 이상 지금 읽자, 하게 되었고 읽었으니 쓰게 되었는데, 쓰고 등록한 날이 아마도 마감이었던가 그래가지고, 리뷰대회가 열리면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마감 날 리뷰들이 다다다다다다다닥 올라왔고, 아아, 역시 쪼렙 리뷰가 되어서 나는 나의 리뷰쓴 것을 후회하게 되는데...


내가 아 리뷰 괜히 올렸어 올리지말걸 후회된다, 했더니 친구가 갑자기 그렇다면 이거 참가해라, 하고 링크를 주는데, 그 날은 목요일이었나 금요일이었나... 리뷰대회 마감일은 월요일, 그 책은 자유죽음, 나는 아직 책이 없네.... 됐어, 책도 없어, 하고 멀찌감치 밀어두려다가 아니 잠깐만, 분량은? 하고 봤더니 300페이지가 안되네, 흐음, 그렇다면... 내가 토요일에는 술약속이 있다, 월요일은 회사를 가야한다, 그렇다면 내게 책 읽을 시간은 토요일 오전과 일요일이며, 리뷰도 일요일까지 마쳐야한다! 나는 금요일 저녁에 부랴부랴 교보문고 드림.. 그 뭐더라, 여하튼 드림스 컴 트루 나를 지켜줄거야~ 그걸로 책 주문해서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부랴부랴 또 서점에 걸어가서 찾아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먹을거 잔뜩 사가지고 집에 가서 또 부지런히 먹은 다음에 책을 챙겨 나오는데... 약속 시간까지 두세시간 남았으니 책을 읽게쒀! 완전 정복! 이렇게 된것이다.


잠실에서 약속이 있던 터라 잠실의 한 까페에 도착했다. 날이 더워 시원한 쥬스를 마시고 싶었는데 오늘 아직 한 잔의 커피도 안마셔서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절실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것인가.. 둘 다 선택한다!! 예전에 엘에이 리치걸이라는 로맨스 영화가 있었는데(별 거 다 본 사람), 나는 그렇다면 서울 리치걸...



그러나 약속 시간이 다 될때까지 책을 다 읽지 못했고, 나는 다음날 다시 책을 들고 나간다. 더웠다. 시원한 음료가 먹고 싶은데 아메리카노도 마셔야겠고.. 그래서 또!! 둘 다 선택한다!! 이것도 원하고 저것도 원한다면, 다 가져버렷!!



1인 2음료를 시켜두고 부지런히 읽고 메모도 하고 그렇게 나는 책을 다 읽어낸 것이다. 만세!! 

그리고 책이 좋아서 이건 재독할 예정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롱~
















완전히 다른 얘긴데, 

나 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제목이 안외워질까. 미치겠다. 이거 절대 제목 안외워지고 자꾸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라고 하고 있어 ㅠㅠ 날 어떡하면 좋아요? ㅜㅜㅜ







《시민의 한국사1》은 국사와 세계사를 정말이지 전혀 모르는 내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도움이 될 것같다는 생각에 샀는데 사이즈에 놀라버렸네.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으로 사둔 국사랑 세계사 책이 집에 많이 쌓여있다는 건 비밀이다..아무에게도 말하면 안돼.....


《지금 여성》은 이 인터뷰를 보고 사게 되었다.


오 이 학자가 쓴 책이 있어? 하고 검색해서 사게된 건데, 인터뷰에 나온 것처럼 정말 지도와 그래프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이렇게 네권의 책을 샀는데, 아이참, 또 이런 책들이 갖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 왜 이런책 갖고 싶지? 사실 아직 상품권... 십만원 정도 남아있어서 충분히 살 수 있긴 하지만, 이 책들.. 단가가 너무 세서(단가 is strong) ㅠㅠ 이거 사면 너무 내 상품권 훅 끝나버려 (the end)ㅠㅠ 

살까

말까

살까

말까



이래서! 리뷰대회 1등이 시급하다. 1등 해야하는데, 그런데 자유죽음 읽고 참 좋았지만.. 역시 나는 각잡고 리뷰는 쓸 수 없다 생각하게 되었고, 또 마감날 리뷰 올라오는거 보니까 절망이 내게 닥쳐와... 1등......... ㅠㅠ 킨포크........ ㅠㅠㅠㅠㅠ 진짜 뜻대로 되는게 너무 없는가......


그리고 이런 책도 사고 싶다.


















맨날 뭐가 사고 싶고 읽고 싶고...

왜그래?


한국에서는 지난주에 책 샀다고 이번 주에 책 사기를 중단합니까?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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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8-24 11: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역시 서울 리치걸..
음료를 한 번에 두 개 시키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에요.

그에 비하면 책 사는거야 뭐.

다락방 2022-08-24 11:38   좋아요 4 | URL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자! 1인 2메뉴를 주문할 때면 언제나 그 문장을 생각하곤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8-24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에 진심이신 분!!ㅋㅋㅋ
1인 2 음료의 열정처럼 뜨겁고 시원함의 반전을 다 가지신 분이니 분명 좋은 결과 있을껍니다.
잠냥님 아마도 긴장하고 계실지도??ㅋㅋㅋ
저는 <자유 죽음> 리뷰 좋았었어요^^
그 제목 길고 이과 천재들 나온다는 책은 다른 리뷰어들도 만만찮아 심사위원들의 취향이 어떠실런지 모르겠지만 전 그것도 괜찮았어요.ㅋㅋㅋ
전 무조건 괜찮았어요!!!ㅋㅋㅋ
전 영원한 다락방님 리뷰 딸랑이랍니다^^
제가 심사위원 자리에 앉았더라면...무조건인데!!!!
결과가 기대됩니다. 힘 내세요♡

다락방 2022-08-24 11:37   좋아요 4 | URL
이번 리뷰를 쓰면서 생각했습니다. 리뷰는.. 내 길이 아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안되겠다, 리뷰는.. 난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 전... 아닌 것 같아요, 책나무 님. 이렇게 가끔 도전하면서 아 역시 나는 이쪽은 아니구나, 깨달아 가는 것도 인생의 한 과정이라고.... (응?)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8-24 1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한꺼번에 리뷰가 쫙 올라온 거였군요. 저는 비록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리뷰만으로 좋은 책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더 사시기 위해서라도 리뷰대회 1등하시길 기원합니다~
<시민의 한국사> 사신 걸 보니 흐뭇하네요. 읽어도 주시면 좋구요~ㅎㅎㅎ

다락방 2022-08-24 11:36   좋아요 3 | URL
아니 책 사면 다 읽어내지도 못하면서 왜이렇게 책을 또 사고 싶죠? 지금도 또 정신을 잃고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어요. 저 어떡해요? ㅠㅠ
시민의 한국사 기필코!! 읽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저 진짜 역사 공부 해야되는데요 ㅠㅠ

blanca 2022-08-24 1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러다 정말 1등 가는 거 아닐까요? 저는 이런 욕망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다락방님의 모습이 좋더라고요.

다락방 2022-08-24 11:26   좋아요 2 | URL
아.. 저는 수상할만한 리뷰를 쓰는 사람은 못되는 것 같아요 ㅋㅋㅋ 역시 저의 적성은 페이퍼인듯 합니다. 껄껄.
그래도 도전하지 않는 것보다 나았다, 라고 스스로 쓰다듬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하하하하

mini74 2022-08-24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죠 이렇게 재미있는데!! 1등 줍시다 다락방님 ㅎㅎㅎ 넘 재미있게 읽다가 마티스 수첩에 침 좀 흘리며...그 수첩에 제 침 묻었을거예요 죄송해요..넘 예뻐요. ㅎㅎ

다락방 2022-08-24 12:32   좋아요 2 | URL
역시 저는 이렇게 막 쓰는 페이퍼가 체질에 맞아요. 아주 딱 맞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마티스 수첩은 알라딘 연말굿즈였어요!!

얄라알라 2022-08-25 15:05   좋아요 1 | URL
글쵸 글쵸 넘 재밌어요 ㅋ

잠자냥 2022-08-24 1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는 지난주에 책 샀다고 이번 주에 책 사기를 중단합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알라딘 서재 명언으로 남겨둡시다. ㅋㅋㅋㅋㅋ
아, 빵빵 터지네요. 단가 is stron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감날 올라오는 리뷰 홍수 보면서 절망하는 다부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24 13:53   좋아요 0 | URL
자유죽음은 정말이지 제가 쓸 때만 해도 리뷰가 별로 없었단 말이지요. 마감날 올라오겠지...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마감날 정말 또 미친듯이 올라와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헉 스럽고 말입니다?

여하튼 제가 또 책을 사가지고 말이죠 오늘 배송될 예정입니다. 책을 샀고 배송될거란 건 알겠는데 뭘 샀는지는 모르겠네요? 껄껄..

잠자냥 2022-08-24 15:16   좋아요 1 | URL
진짜 마감날 올라오는 리뷰들 보면 허걱-스럽죠? <자유죽음>은 저도 책이 소설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가... 생각했는데 세상에나.......... 30개는 거뜬히 넘더라고요? ㅎㅎ

다락방 2022-08-24 15:20   좋아요 2 | URL
자유죽음은 진짜 ㅋㅋ 몇 개 안되길래 오호라~ 이건 좋았어~ 미달로 되겠다!! 막 이러고 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아- 리뷰들이 다 작정하고 썼더라고요? 왜 안그렇겠어요. 50만원인데.... 그러니까 나도 썼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아~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공쟝쟝 2022-08-24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베뤼 리치 걸! 베리 스트롱걸! 고정관념 없는 걸!ㅋㅋㅋㅋㅋ 사랑해요💕부장님💪 자신의 멋진 길을 가✌🏻

다락방 2022-08-25 07: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베뤼 리치 걸 다락방은 양꼬치 먹고 이제 집에 간다 둠칫 두둠칫 ㅋㅋㅋㅋㅋㅋㅋㅌㅋ

공쟝쟝 2022-08-24 22: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베뤼 배부른 걸 ㅋㅋㅋㅋ 두두둠칫!!

바람돌이 2022-08-24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틀 연속 1인 2메뉴를 시킬 수 있는 다락방님의 경제력과 담대함에 감동받았습니다. ^^

다락방 2022-08-25 07:53   좋아요 1 | URL
제가 세상을 다 가져버리겠습니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2-08-25 15:07   좋아요 1 | URL
1인 2메뉴 동시 주문에 모두 놀라셨으나
콕 집어 경제력까지 말씀하신 분은 바람돌이님 ㅋㅋㅋ
아, 여기 너무 재밌어

다락방님은 활자로 즐거움을 주시는 분,
적성 재능 특장점
확실하심 ㅋ

거기에 리뷰까지 가져가시면 넘 욕심쟁이 되시는 거 아닌가요

2022-08-25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8-25 11:01   좋아요 0 | URL
아니, 이게 누굽니까! 잘 지내고 있어요?

2022-08-25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씨의 화면보호기에서는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05:37 이었다. 사실 나는 오후 시간을 쓸 때 17:37 로 쓰는 쪽이 더 편하다. 오전인지 오후인지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건 대학시절 편의점 아르바이트 할 때 습관이 들어서 그렇다. POS의 시간이 항상 저렇게 표기됐던 것.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오후는 12시 이후에 숫자를 계속 붙여나간다.  13시, 14시. 그런데 지금 하려는 얘기는 그 얘기는 아니고. 05:37 나는 숫자로 사람을 떠올린다. 05:37 이라고 하면 5와 3과, 7이라는 숫자가 누군가를 화악- 기억나게 했다.


그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아마도 소설 속 표현이었으려나. '낮은 웃음소리'가 뭔지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 언젠가 수화기 저쪽 너머에서 웃는데 그 소리가 정말 낮은거다. 근데 그게 너무 좋은 거다. 같이 마주보고 대화를 나눴을 때, 그는 나의 목소리가 좋다고 몇 번 얘기했었지만,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좋다고 생각했던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그렇게 낮게 웃는 소리를 듣는데 가슴 속에 몽글몽글 어떤 따뜻함이 싸악 퍼져나가면서, 그 웃음소리를 더 듣고 싶다, 또 듣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눈을 질끈 감았었다. 그는 혼자일 때도 있었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있었는데, 직장내에서는 직급이 있는 편이라 나랑 통화를 하다가도 업무적으로 어떤 일이 생기면 목소리와 말투가 확 달라지곤 했다.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좋았다. 그가 지금 저쪽 세계에 있는데 이쪽 세계에 있는 내게 접근하고 있다고, 접속하고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내게 더러 '너랑 이야기 할 때만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라고 말했고, 키우는 금붕어에 내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말했다. 그 금붕어는 지금쯤 이미 죽어 흔적 조차 사라졌겠지? 그 금붕어가 육체적으로 먼저 사라졌을까, 나의 존재가 그의 마음에서 먼저 사라졌을까? 5와 3과 7은 그를 생각나게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5와 3과 7은 그 사람이 떠오른다. 아마 그조차도 알지 못하게 나는 그를 그 숫자들로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려고 기억한 게 아니라 그 숫자들과 자동연상이었다. 나는 그의 꿈을 꾼 적도 더러 있었다. 


한번은 뉴스를 보다가 그 사람 생각이 났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관련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그 당시에 있었고, 그래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물으면 그가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 한가운데에 있을것이니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물어야 할까. 그렇지만 안부가 궁금한데, 하던 차에, 바로 그 때 그로부터 문자가 왔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간단한 문자였고, 나는 그 문자를 받자마자 벽에 기대어 선 뒤에 스르륵, 주저 앉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 



5와 3과 7이 나로 하여금 그를 생각하게 하였다면, 그를 생각하면, 아아, 어쩔 수 없이, 레몬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 떠오른다. 신호등, 횡단보도, 부겐빌리아 넝쿨.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그때까지도 건널목에서 꼭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건넜다고 했다. (중략)오크우드 애비뉴에서 모퉁이를 돌면서 나는 충동적으로 조지 오빠의 손을 잡아 버렸다. 곧바로, 내 손을 꽉 잡는, 손가락들. 태양. 진분홍 무더기를 이루며 창문 위로 드리워진 더욱 탐스러운 부겐빌레아 넝쿨. 그의 따뜻한 손바닥. 인도에 웅크리고 앉은 오렌지색 줄무늬고양이. 낡은 검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활짝 열리는, 도시.

우리는 인도에 도착했고, 손을 놓았다. 얼마나 바랐던가, 바로 그때, 온 세상이 건널목이기를. (p.88)



바로 그 때문에 온 세상이 건널목이기를 바랐던 때가, 내게, 있었다. 

도시가 활짝 열렸던 적이, 내게, 있었다.

치킨을 앞에 두고 심장이 펄떡 거렸던 때가 있었다.

그는 내 앞에 마주 앉아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아주 많이 흘렀다.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이벤트로 당시에 5천원권 파리바게트 상품권을 주었더랬다. 나도 책을 사고 그 상품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SPC 불매하는 사람이 되어 파리바게트의 소세지빵이 먹고 싶지만 사먹지 않고 있다. 시간은 이렇게나 많이 흘러서 파리바게트 불매하는 사람이 되었어, 내가. 너는 어때? 파바 불매하니?



종종 생각했다. 우리가 조금 멀었을 때가 더 좋았다고. 우리가 가까웠을 때, 하루에 가장 많이 대화를 하는 사람이 서로였을 때, 그 때에는 그게 그렇게 좋았는데,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멀어졌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 조금 전으로, 그렇게까지 대화를 많이 하진 않는 쪽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출근해서 말을 걸고 퇴근할 때 인사를 하는, 그런 식으로까지 친해지지는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는 그쪽 세계에, 나는 이쪽 세계에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좋았던 것 같아. 우리가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이 말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가슴 속에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부겐빌레아 넝쿨을 품은 채로, 우리의 손이 서로에게 닿아있었던 것만 기억하면서 조금쯤 긴장하고 조금쯤 먼 사이로 그렇게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멀어지고나면 가장 가까웠던 시간이 없는 편이 나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나였어서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생각한다. 받아놓고 좋아했던, 가슴 뛰는 사진이지만, 그걸 갖고 있는 건 어쩐지 그러면 안되는 일 같아서 바로 삭제했던, 바로 그런 사람이어서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아마도 네 인생의 복이었을 것이다. 그 사진, 으윽, 안타까워하면서 지웠다. 우리가 가까웠을 지언정, 내가 너의 그런 사진을 갖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와, 진짜 잘 늙고 있다. 대단한 중년이야, 나는. 한때 너와 가까웠던 나는 이렇게나 더 근사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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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8-23 16: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사람 금붕어 이름 다락방이었어요? 어머나.. 지금쯤 다부장 되어 있을 듯.

아른 글에 이런 댓글 달아서 미안합니다. 그럼 이만-

다락방 2022-08-24 08:06   좋아요 0 | URL
금붕어는 죽어 사라진지 오래일거예요. 금붕어의 상태는 없음...
나도 그에게 없음.....

얄라알라 2022-08-23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윽...아름답고 슬프고 레몬케이크.새콤시큼하고.달달하고

다락방 2022-08-24 08:06   좋아요 2 | URL
아, 저 책에 진짜 엄청 빠져서 살았더랬어요. 책과 나의 상황이 맞물리는 경험들이 종종 있는데, 저 책을 읽을 때가 그랬네요. 크-

거리의화가 2022-08-23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예전 추억 하나쯤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문단, 그리고 문장 정말 멋져요!!!

다락방 2022-08-24 08:07   좋아요 1 | URL
저는 추억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답니다. 후훗.

미미 2022-08-23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좋네요! 뉴스에 어떤 일에 관련되었을지 모를 그 사람이 염려되었는데 마침 그에게서 문자가 온다면 일단 문제적 상황은 배경이 되고 설렘이 클 것 같아요. 소설 한 토막을 읽은 것 같습니다. ^^* 다락방님 목소리도 근사함요!

다락방 2022-08-24 08:0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미미 님. 내가 상대를 걱정하는데 상대는 내가 걱정할 것을 알아채고 말해주는 것. 이것은 설렘이고 벅참이지요. 그 불안한 상황속에서도 제 마음은 좋았습니다. 오래전 일이네요. 후훗.

책읽는나무 2022-08-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였어서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생각한다.
.......
저도 마지막 문장들 속 다락방님 생각들과 그런 선택들이 넘 좋네요.

다락방 2022-08-24 08:08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사람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인생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삶의 질이 가장 높았던 때가 나를 알고 지내던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후훗.

단발머리 2022-08-23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인생의 복이었던 나를… 너도 지금 생각하고 있니? 흐미….

다락방 2022-08-24 08:08   좋아요 0 | URL
정작 그사람은 나를 잊었을 뿐더러 한 번도 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요? 하하하하하 (낭만 파괴)

바람돌이 2022-08-2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어진 옛 애인에 대해서는 짜증밖에 안 남은 저에게는 너무 너무 부러운 추억과 마무리!!! 아 질투나잖아. 아직도 온 세상이 건널목이기를 바라던 그 마음이 되살아나기도 하는거 말이죠.

이 글 읽는데 왜 제 맘이 설레죠? 아 나 좀 있으명 중년도 아니고 노년이야...ㅠㅠ

다락방 2022-08-24 08:10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 님, 저는 헤어진 구남친들을 좀 끔찍하고 징그럽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남자에 대해 애틋할 수 있는 건, 저랑 애인이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구남친들이란 원래 끔찍하고 지우고 싶어지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후훗. 아주 가깝지 않아야 아름다운 관계로 남는 것 같아요. 하아-

얄라알라 2022-08-2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시 이 글 읽어봐도, 벽에 기대어 주르르 앉은....그 대목, 저는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지라 그렇게 누군가와 연결되었을 때 바로 기억이 몸짓으로 표현되는 관계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부러운 거죠 ...

다락방 2022-08-24 11:47   좋아요 1 | URL
아, 저는 그런 식의 기억이 몇 개 더 있어요.
누군가가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일요일 한낮에 소파에 앉아서 울었거든요. 그 사람은 그런 몸짓으로 기억돼요.
 















수치는 누군가가 사회적 존재로서 처참히 실패했음을 나타내며,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감정이다. 수치스러워하는 주체는, 스스로 인지하는 자기와 이상적 타자, 즉 되고 싶은 자아상 사이의 단절을 겪는다. 그는 그 자아상을 향해 가려는 한편, 자기를 거기에 반한다고 평가한다. -p.177-178



어젯밤 자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수치에 대한 가장 적확한 설명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스스로 인지하는 나와 되고 싶어하는 나 사이의 단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드는 감정, 수치. 수치야말로 그런 것이다. 수치는 그럴 때 쓰는 단어이다. 맞아, 바로 이게 수치야! 아, 너무 수치스러워 할 때의 나는, 현재의 나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이상과 지금 다른 식의 상황이 나에게 펼쳐졌으므로. 덧붙이자면, 그래서 성희롱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은 잘못된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희롱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입히는 단어가 아닌가. 내 이상은 성희롱 당하지 않는 나인데 현실은 성희롱 당한 내가 있어 수치스러운 것인가? 이것은 너무나 이상하다. 수치 라는 단어가 대단히 잘못 적용된 상황이라 보겠다.



비혼 이면서 자녀가 없는 친구들과 때로 우리가 이렇게 싱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우리는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지 않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살것인가와 더불어 만약 혹여 지금 임신이 된다면? 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이제 나이가 나이니만큼 임신 자체가 힘들기도 하겠지만, 임신을 한다면 출산 자체도 힘들어질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만약 비혼모로 아이를 낳게 된다면, 사실 지금이 제일 적당한 때가 아닌가 말이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비혼모에 대한 시선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고, 게다가 내 경우엔 가족 구성원들도 모두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아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축복해주고 예뻐해줄 터였다. 혹 이십년 전쯤이었다면 우리 엄마도 딸이 결혼도 안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을런지 몰라도 지금은 당당해져 있는 것 같다. 낳으면 키워줄게! 라고 하시니까. 모든 사회적 여건이 이제 아이를 낳아도 좋을 때라고 말하는데, 그런데 육체적으로 노쇠하여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 내가 조카들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해보니 아이를 낳는 것뿐만 아니라 키우는 것도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체력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하도 조카들을 예뻐하니까 어느 하루는 이모가 내게 물었더랬다. 너 그렇게 아이 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예뻐하는데 네 자식은 안낳고 싶니? 이미 성인 아이 둘이 있는 이모인데, 내가 "이모, 조카랑 내 아이는 다르잖아, 나는 걔한테 붙들려 있어야 되고 너무 힘들잖아" 했더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모든 면에 여유가 있어서 지금이라면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러나 아이 낳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 여행도 다니고 싶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다. 간혹 텔레비젼 틀어두고 와인도 마시고 싶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떨면서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싶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얼마간은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할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아이 낳기는 역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 얘기가 나오면 엄마, 나는 구속 받기 싫어 자유롭고 싶어! 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러면 엄마는 내게 말씀하신다. "너 여태 계속 자유로웠잖아!" 


그렇다. 나는 여태 계속 자유로웠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자유로워도 되는거잖아?

지금까지 자유로웠고 앞으로도 자유롭기를 택하는 나는 이기적 쌍년인가?



에리카 밀러는 이 책의 초반에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에 만족했던 여성에 대해 얘기한다. 임신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임신중지를 했고, 그래서 좋았던 여성에 대해서. 이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자연스런 수순이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지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임신중지라면 얘기는 다르다. 피임하지 못한 여성, 생명을 죽인 여성에 대한 비난은 반임신중지 입장의 것이라면, 아이를 지금 키울 형편이 안되니까, 모성을 포기하고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선택하는 거니까 라며 임신중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임신한 여성에게 불편한 마음을 강요한다. 네가 낙태를 했다면, 그것이 어떻게든 너에게 좋을 리 없지. 그것은 고통스럽고 트라우마를 남길 거야, 그게 아무렇지도 않을 순 없는거야, 네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으니까. 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어쩔 수 없이 지운거잖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 그래서 사람은 사회화 된다. 온전히 나로서 존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내가 주체적이라고 해도 아무리 내가 내 고집대로 행동한다 해도, 거기엔 이미 이 가정에서 자라 이 학교, 이 직장, 이 나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아왔던 내가 있다. 차곡차곡 사회가 내게 보여주는 것들은 내 안에 쌓여서 내 생각이 되고 내 기준이 된다. 만약 내가 이십대에 임신을 했다면 임신중지를 선택했을 것이고,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그것에 대해 엄마를 비롯한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로 처리(?)를 한 후, 내내 가슴에 담고 살았을 것이다. 혹여 누군가에게 그걸 들키기라도 할까봐 걱정했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자라면서 보아왔던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책에서는 그것을 감추지 않으면 사회에서 매장 당하는 것처럼 그려왔으니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 스타킹 훔쳐보기 시리즈 중에서도, 결혼 전 낙태했던 여자가 결혼 후 유산을 하게 되었는데 그걸 남편이 알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야기가 나왔더랬다. 결혼 전 임신사실, 임신중지의 사실은 결코 결혼할 남성에게는 밝혀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사회화 되었었다. 뭐, 지금은 배째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건 이만큼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의 4장 <수치스러운 선택> 에는 임신중지를 줄이고자 하는 호주의 정치인들 얘기가 언급된다. 그들은 무엇보다 '십 대 엄마'를 비난하며 그 수를 줄이고자 했다.



1970년대부터 '십 대 엄마'라는 인물형은 유독 '과도한 재생산적 신체'로 비난받았다. 십 대 엄마는 성적 미성숙이나 무책임과 연결되며, 특히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확산됨에 따라 복지에 의존하는 계층화된몸이 되었다(2장 참고). 임신중지 법의 자유화가 진행된 이래 십 대 임신중지 ·모성 이라는 국가적 '수치'를 해결할 방책으로는 성적 억제라든지 피임기구 사용을 다루는 도덕교육이 제안됐다. 

십 대 임신을 막겠다는 발의들은 임신한 십 대가 아이를 낳든 임신중지를 하든 상관없이 실패자라고 전제한다. 임신중지를 사회문제로 구성하곤 하는 토니 애벗은 이런 수사를 사용했다. "십대의 난잡한 성생활을 억제하고 '속도위반'하는 십 대를 막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면 임신중지도 줄고, 따라서 트라우마를 겪는 젊은 여성도 줄고, 역기능 가정dysfunctional family도 줄어들 것이다." 여기서 애벗은 모든 십 대(여성)의 성적 행동을 '난잡'하다고 보면서, 순결을 옹호하고 피임을 회피하는 듯하다. 이는 보수적이고, 반임신중지적인 발화의 전형이다. 애벗은 여성의 무책임한 성적 모험이 임신중지로 이어져 트라우마 경험(3장 참고)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건조하게 '역기능'으로 프레이밍한 십 대 모성으로 이어지리라고 전제했다. 그는 임신중지를 십대의 몸과 연결함으로써, 나아가서는 임신중지를 미성숙과 무모함에 연결했다. -p.198



최근에 읽었던 책 '콜린 후버'의 《어글리 러브》에는 아직 고등학교 졸업전에 임신을 해버린 여자와 남자가 나온다. 여자와 남자는 사랑했다. 당시에 그들은 뜨겁게 사랑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사랑을 그들이 한다고 믿었다. 조심하느라고 했지만 어쨌든 여자는 임신했다. 남자는 임신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착하고' , '책임감있는' 남자여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고민해서 해결책을 마련해 여자 앞에 들이민다. 여자는 두려웠다. 함께 사랑했지만 혼자 임신하고 그래서 남자가 떠나버릴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이 '착.한.' 남자는 함께 고민해줬다. 그는 아이를 낳자고 한다, 그리고 같이 키우자고 한다, 우리가 함께 갈 대학에서 가족을 받아주기도 한다고, 그런 숙소를 알아왔다고. 그래서 여자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낳는다. 남자는 낳지 않았다. 여자는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고 엄마가 되었다. 남자는 섹스를 하고 아빠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은 빠져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여자랑 섹스를 했기 때문에, 그 여자가 남자랑 섹스를 했기 때문에 임신했다. 십대에 임신한 여자는 호주의 토니 애벗 말대로 문란하다면, 십대에 임신하게 만든 남자는 문란하지 않은가? 여자는 난잡하고 남자는 난잡하지 않은가? 여자는 속도위반 했는데 남자는 하지 않았는가? 여자는 무책임했다면 남자는 무책임하지 않았는가? 여자랑 남자가 함께 한 일인데 여자는 무모했고 남자는 무모하지 않았는가? 여자는 미성숙했고 남자는 미성숙하지 않았는가? 




내가 임신을 했다면 그건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사정을 한 남자가 반드시 있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면 걱정도 내몫이고 임신중지를 하려고 병원에 가는 것도 내 몫이고 혹여라도 이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도 내몫이고, 내 뱃속의 생명을 내가 죽였다고 트라우마를 가져가는 것도 내 몫이다. 그러나 이 내 몫의 것들 중에서 내가 '정말' 내 것으로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것들 모두 내가 사회화로 인해 갖게 되는 것들이 아닌가. 혹여라도 내 안에 죄책감도 없고 아이를 죽인다는 것에 대한 고통도 없고, 수술 후에 트라우마도 없다면, 나는 아마도 그런 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임신중지 하고 나면 다들 괴롭다는데, 그거 죄책감 든다는데, 그거 트라우마 있다던데, 그런데 나는 왜 속이 시원하기만 하지? 나는 역시.. 이기적인가?

사회화는 내게 일어나는 자연스런 감정을 이상한 것으로 몰아가고야 만다. 그래서!


에리카 밀러의 임신중지를 읽는 일은 의미 있다. 나는 여성들이 안전한 섹스를 하고 굳이 임신중지 까지 가기를 원하지 않지만, 혹여라도 그런 상황이 됐을 때, 내 것이 아니어도 될, 수치심을 포함한 과도한 감정들을 품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에리카 밀러가 쓸데없는 고통과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이 책을 젊은 시절에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아 제기랄.. 내가 젊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나는 임신중지 하는 여자들의 병원에 같이 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아마 다른 식의 대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때 나는 그 자리에 내가 있도록 한, 부재한 정자들의 주인들을 욕하기만 했다.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들.. 왜 여기에 안나타나냐 씨부럴것들.... 여기 왜 내가 있냐, 내가 사정했냐, 개새끼들...  그 때의 그 여자들을 포함한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모든 여성들이 혹여라도 자신의 것이지 않아도 될 과도한 고통을 끌어안고 산다면(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아주,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수치에 대해 썼지만 선택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책인데, 그런데 이 좋은 내용으로 가득찬 책이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 무슨 뜻인지 단번에 파악이 안돼 재차 읽어야 되는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읽다가 문장들이 툭, 툭 끊긴다. 거기에 스트레스 받아 원서를 구입해 옆에 두고 함께 읽어야 하나도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어느덧 4장을 읽고 있다. 그래도 원서 살까? (사고싶구나...) 



아주 좋은 책이다. 뒷부분 계속 읽을 것이고, 많은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도 읽었으면 좋겠다. 임신도 안하고 그래서 임신중지도 안하는 남성들이지만 임신중지에 말은 보태는 남성들이야말로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거기에 말 보태는 새끼들이 책 한 권 읽는다고 달라지진 않겠지요........



이만 총총.



원서.. 너를 어쩌면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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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8-23 0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십대 이야기 다시 읽어도 화가 나네요!-_- 임신과 출산 과정에 항상 함께 참여해야 할 남자들의 역할이 빠져있다는 것...!!!
좋은 책인데 저도 제가 좀 더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고통이나 두려움, 죄책감 등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기적인 여자인가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것은 제 선택이었으나 어쨌든 그것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저를 제 우선순위에 둔 것은 분명했으니까요.
저도 원서를 읽으면 나았나 싶었어요. 하지만 시간 관계상...ㅋㅋㅋ

다락방 2022-08-23 11:18   좋아요 2 | URL
제가 저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 세상에서 사회화 되기를 저를 우선순위로 놓으면 이기적인 게 되잖아요. 부모를 위해, 남편을 위해,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여성에게 그동안 너무 당연시되었던 것 같아요.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디에서든 일단 ‘그 다음에‘, ‘나중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여성에게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또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고통과 트라우마를 가져가라고 하죠. 후아-
거리의화가 님, 여자들이 아무리 이기적으로 생각해도 이미 이기적으로 세상을 조정하려 드는 남자들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것 같아요. 우린 더 이기적이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이기적이 되어야 정치에서도 법에서도 매체에서도 여자들이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더 이기적이 됩시다. 더 드러납시다.

얄라알라 2022-08-27 17:20   좋아요 0 | URL
˝Happy˝
에리카 밀러가 의도를 담아 작정하고 뽑아 쓴 형용사인데 번역판에서는 밋밋하게 요 ˝happy˝를 빼버린 건 아쉬워요
저는 원서 없이 번역판만 읽었지만, 중간중간 ‘나라면 이보다 더 잘 옮길 수 있을까?‘하는 표현이나 문장들이 많았답니다. 원어가 궁금한 부분은 있어요

* ‘문화적 수행자‘로서의 태아. 수행자 원어는 performer일까? actor일까?
* 태아적 모성은 ˝fetal motherhood?˝ ˝embryonic motherhood?˝

일단은 몰라도 그냥 지나가야겠어요^^ 8월은 끝나가는 데 갈길이 머네요

이번에 3번째 다시 읽는 셈인데 넘 재밌어요
다락방님께서 판 깔아주신 덕분에 잼나게 공부합니다

다락방 2022-08-29 12:18   좋아요 0 | URL
오 알라딘 세번째 읽는 중이시라니, 너무 대단하세요!
저는 단어 선택 자체보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내가 제대로 이해한건지 혹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때문에 한 문장을 두세번 읽는 경우가 허다했답니다. 덕분에 속도도 느리고요. 원문과 비교해보고 싶지만 막상 사두면 비교할 시간은 없을 것 같아 안사려고요. 흐흐

잠자냥 2022-08-23 1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가운데 중간중간 역시 유머를 잃지 않은 명페이퍼군요.
저도 자유롭게 사는 이기적 쌍년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자유롭게 살 계획인데, 돌봐야 하는 고양이들이 여럿 생기면서 완전하지 않은 자유에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아, 애를 낳아 키우는 여자들은 정말 여러 가지로 대단하다 이런 생각도 들고, 왜 임신과 육아는 늘 여성의 몫인가.. 역시 무자식 상팔자다 이런 결론으로 돌아가고는 합니다.

다락방 2022-08-23 11:15   좋아요 3 | URL
아 맞아요. 내가 혼자가 아닌 일단 다른 존재와 함께 산다면 구속력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여행 좋아하던 제 친구도 고양이 때문에 이제 장거리 여행도 못하고 하룻밤 외박도 마다하더라고요. 그 순간 나의 여행보다 나와 함께하는, 내 돌봄이 필요한 고양이가 우선인 것은 집사들의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역시 누군가 돌봐줘야 할 대상이 있다면 구속은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 조카들 예뻐하면서 살려고요. 조카들 예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조카들 너무 예뻐요 ㅠㅠ 너무 사랑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갑자기 조카예찬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8-23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에 이 책을 읽으면서 별로 어려운 책이 아닌데 왜 이렇게 읽기가 힘들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일단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것도 분명 있고요. 거기에 더해 원저자가 중언부언이 많아요. 하나의 일관된 주제아래 논리정연하게 딱 떨어지지 않고 얘기하다가 아 맞다 앞에서 이거 얘기했지만 그 부분 좀 부족했지? 그게 뭐냐면 말이야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읽는 독자로서는 정신사나운 글이 되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 말은 원서를 읽어도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ㅎㅎ 그냥 제 생각이고요. 그럼에도 좋은 책이라는 것도 제 생각입니다.
다락방님 말씀하신 죄책감 수치에 대해서는 저는 엄청 할말이 많은 느낌이라 저도 오늘 이 책 끝내고 리뷰든 페이퍼든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

다락방 2022-08-23 11:12   좋아요 2 | URL
저도 번역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서 턱턱 걸렸거든요. 이게 번역의 문제인걸까 원문이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걸까 생각했고요. 그런데 바람돌이 님 댓글 읽고 보니, 맞아요, 그것도 있어요. 얘기하다가(이건 4장에서) 또 얘기하닥(이건 2장에서) 이렇기도 하죠 ㅎㅎ 저는 내용 자체가 엄청 좋았거든요. 반드시 읽어야 할 내용이라 생각했고 사실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어서 내용면으로 너무 좋았는데, 문장 자체가 읽기 힘들더라고요. 음.. 원서를 사서 번역본 옆에 똭 두고 읽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저도 뒤에 조금 남았어요. 오늘 다 읽고 싶은데 할 수 있을지.. 바람돌이 님의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빠샤!!

얄라알라 2022-08-27 17:21   좋아요 1 | URL
아...바람돌이님 거리의 화가님 다락방님 모두 번역문체 불편하셨군요?
저는 제가 이런 분야 글에 친숙하지 않아서 어려운가 했어요^^;

제목만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열배는 재밌었던 책^^

다락방 2022-08-29 12:20   좋아요 1 | URL
저는 정말 문장이 어렵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너무 좋았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도 했고, 젊은 여성들이 이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더라고요. 혹여 갖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마음들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말예요. 무엇보다 콘돔 사용 안하는 남자와는 성관계를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ㅠㅠ

미미 2022-08-23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서문에서부터 기분좋게 머리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어요. 임신 중지에 대해 수치, 불쾌함, 죄책감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감정들이 모두 사회적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니...감정의 정치라는 말도 딱인듯하고요. 글이 읽기 힘듦에도 그래서 이미 별5개라고 생각하고 읽어나가는 중입니다. 요 바로 위의 다락방님 말씀에 공감100(완전 제 생각이라 깜놀함요ㅎㅎ)

이런 어려운 책도 자꾸만 원서와의 비교를 고민하시는 다락방님 늘 존경입니다.*^^*

다락방 2022-08-23 14:16   좋아요 3 | URL
문장이 자꾸 튕겨져나와서 오히려 더 이해가 힘든 것 같더라고요. 내용 자체는 너무나 좋고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 문장 때문에 자꾸 튕겨져 나간다니 짜증이 나서 원서 까지 생각한건데, 거의 다 읽어가는 지금은 안사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나중에 영어 실력이 좋아진다면(그런 날이 올까요?) 그 때 사서 보든지 해야겟어요. 지금은 한글책도 사두고 쌓아두기만 하는데 영어책은 무슨.. ㅠㅠ

저도 아주 당연하게 수치, 죄책감, 트라우마를 가져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순수하게 그게 속이 시원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걸수도 있고 또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것에 당황하면서도 어쩐지 분했어요. 도대체 세상이 그동안 여자들한테 뭘 어떻게 한거야! 하고 말이지요. 오늘 내로 다 읽고 싶은데 집에 가자마자 잘 것 같아 조금 더 미룰 것 같아요.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얘기하고 부지런히 알아나갑시다, 미미 님.

책읽는나무 2022-08-23 1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장들이 얽히고 설켜 이 말을 주장하려는 것을 내가 똑바로 이해한 것이 맞는 것인가? 계속 의심하다 보니 자꾸 진도가 안나가고 계속 머리 식힌다고 다른 책 들게 되고, 이 바쁜 시기에 영화를 몇 편이나 봤는지 모르겠네요^^;;; 약간의 나의 자존감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구요.(어려운 책 읽을 때는 내가 똑바로 독해하고 있는 것인지? 늘 문해력을 의심하게 되더라구요ㅋㅋ)
그런데 중언부언 한다는 바람돌이님의 말씀에...으응??^^;;;;; ㅋㅋㅋ

<나의 블루스> 란 드라마에서 십 대 시절에 임신을 한 경우의 배우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서는 노희경 작가는 여학생은 임산부로 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하고, 남학생은 자퇴를 해서 미래 아기의 분유값을 모으려고 일을 한다는 설정으로 해결했는데 작가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십 대들의 임신 이야기가 읽히니 갑자기 드라마 생각이 났네요.
이 책은 정말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책이에요. 그럼에도 진도가 잘 안나간다는 의견들에 공감 백퍼입니다^^;;;
이제 반 읽었으니 앞으로도 남은 부분들 부지런히 읽어야죠.
잘 읽고 갑니다. 이 책 읽는 동안 많은 도움 얻고 가네요^^

다락방 2022-08-24 08:11   좋아요 3 | URL
저는 다 읽었습니다, 책나무 님! 오늘 출근길에 다 읽었어요. 아주 좋은 독서였습니다. 에리카 밀러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도 당연히! 듣고 생각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쓸데없이 여성들에게 많은 죄책감과 수치를 안겨주었으니까요. 그런 당연한 주장을 듣는 것은 너무 짜릿한 일인데 문장이 툭툭 걸려서 읽는데 예상보다 오래 걸렸네요. ㅠㅠ

책나무 님, 남은 부분 열심히 읽으세요. 저는 맺음말 도 참 좋더라고요. 화이팅!!

공쟝쟝 2022-09-1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르으로고 계속 여태 자유로워지실 다락방님께… 수치심!!의 정의 외워야겠어요 ㅋㅋ 맞아 저게 수치심이구나? ㅋㅋㅋ 내가 생각한 수치심은 좀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함 정도 였는 데, 조금 더 수치심 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둬야하겠습니다 ㅎㅎ
 
나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지만















있어서 안 되는 것은 실제로 있을 수 없다! 바이닝거는 유대인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었다. 가정부는 가수의 관심을 절대 받지 못하는 무명의 인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가수의 눈에 가정부는 이름 없는, 가난한 처녀일 뿐이었다. 그래서 탈출구는 죽음뿐이었다. 있을 수 없는 것은 실제로도 있어서는 안 되니까. 혐오스러운 유대인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유대인이 아닐 수 있는 현실의 길은 죽음이었다. 가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수의 눈길 한번 받을 수 없는 인생을 사느니,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부정의 길이 곧 자살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길이 아니다. 그 어디로도 이끌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바이닝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하던 불쌍한 처녀가 죽었다고 가수의 품 안에 안길 수야 없지 않은가. 결국 자유죽음은 ‘무의미‘하다. 이 말은 모든 경우에 남김없이 적용될까? - P61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희미하긴 한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는 화자가 어린 아이다. 늘 같은 시간에 공원을 걷는 좀머씨를 이야기하는 어린 화자. 이 화자는 피아노학원에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데, 어느날 선생님이 코를 판 손으로 건반을 누르는 바람에 코딱지가 피아노에 묻어있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자신이 다음에 쳐야할 건반이 바로 그 건반이 아닌가. 저 건반을 누르기 싫다, 그렇다면 코딱지가 손에 묻게 된다. 그 건반을 치길 망설이노라니 선생님은 자꾸만 윽박지른다. 얼른 치라고, 치라고! 하는수없이 이 소년은 그 건반을 치고 학원이 끝나는 길에 너무 치욕스러워 죽고자 나무를 타고 오른다. 죽자, 죽어야 된다, 선생님의 코딱지라니, 수치스럽다, 치욕스럽다, 죽어야 한다! 아마 그 올랐던 나무 위에서 또다시 걷는 좀머씨를 소년은 봤던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소년은 죽으러 올라갔으나 죽지 않고 살아 내려온다. 내가 왜 코딱지 때문에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 왜 코딱지 때문에 죽어야 해?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코딱지 때문에 죽고자 했다면 그 코딱지는 내가 생각하는 코딱지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코딱지에 대한 치욕과 수치의 정도가 달랐던 것일테다. 야 코딱지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고? 말도 안돼, 살아! 그러나 그 사람은 코딱지를 건드린 자기 자신을 도저히 이 세상에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다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장 아메리의 책 《자유죽음》에서 가져온 인용문 61페이지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유대인인데 유대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가수의 관심이 없는 삶이라면 내게 그 삶은 의미가 없다. 유대인이라는 것은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고 내가 뜯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존재이며 정체성이니까. 가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삶을 가치없다고 말하는 것은 가정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인데, 그러나 가정부에게 그것은 너무나 크다. 자신의 삶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장 아메리의 책에 이런 사례는 실제 인물과 소설속 인물들을 포함하여 몇 가지 더 나오는데, 시험 성적이 안좋아서 죽기를 결정하는 소년이 나오고, 소위라는 명예를 잃게 되는게 너무 치욕스러워 죽기를 결심하는 인물이 나온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사실은 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살다 보면 그 일은 그렇게 큰 게 아니고 다른 더 큰 기쁨이 찾아올 수도 있고 미래는 예측불허 이므로 살다보면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었구나 깨달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런데 그들에게도 정말 그럴까? 이미 내 앞에 닥친 이 어떤 것이 나에게 너무 큰데, 이것은 내 삶을 더이상 유지하지 않고 싶을 정도로 만들었는데, 그런데 견뎌내야 할까? 이런 내가 이런 삶이 싫어서 나는 없음을 택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존중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죽음 일 것이었다.



나는 장 아메리가 말하는 자유죽음의 의미를 알겠고, 그것이 자신을 살해하는 자살과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자신의 치욕 자신의 수치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없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도 알겠다. 리뷰에 썼던 것처럼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것이 많은데, 그건 '나 자신을 학대로 밀어넣음으로써 나 자신의 주체를 확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였다. 샐리 루니의 소설 《노멀 피플》에서 메리앤이 자신을 때려달라고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말했던 일이 그렇다. 아빠와 오빠가 어린시절부터 나에게 가했던 폭력은 내 통제 밖의 일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 맞닥뜨린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나랑 섹스하는 남자에게 '나를 때려줘'라고 말하는 일은 내가 시킨, 내가 정한,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때리는 일을 통제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서 내가 나의 주인임을 자각하고자 하는 일을, 그전보다 나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 이런 일들을 듣거나 읽거나 보게 되는 것은 그저 고통이기만 했다면 이제는 거기에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너의 존재에 주체성을 부여하는구나, 라는 인식이 스며들게 된것이다. 


강간판타지 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아주 오래 그리고 늘 생각해왔다. 강간당했던 그 폭력의 시간은 고통이었고 통제할 수 없는 갑자기 일어난 사고였다면, 그러나 내가 지금 섹스하면서 강간을 당하는 설정을 만든다는 것은 그 통제할 수 없었던 시간을 벗어나 자신의 통제 안에 그것을 두려 함이겠구나, 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학살 속에서 견디어 냈으면서도 종국엔 죽음을 선택했던 사람들에게도 나치의 학살은 내 통제 밖의 일이었지만, 그러나 내 생명을 끝내는 것을 나는 내가 통제하겠다, 는것. 그 지점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거다. 그러나,



이해했다고 해서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거'가 없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 아메리의 책을 읽고 이 지점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책을 읽고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것을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러나 메리앤이 선택한 것, 강간 피해자들과 전쟁의 피해자들, 역사적으로 학대의 생존자들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자유죽음' 보다는 자살에 가까운 게 아닌가. 그러니까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에 그 일이 없없다면, 그들이 선택하지 않았을 일이라는 거다. 메리앤에게 아빠와 오빠의 폭력이 없었다면, 메리앤이 굳이 주체성을 가져오기 위해 섹스중인 남자에게 '나를 때려줘'라고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성폭력 생존자에게 성폭력이 없었다면, 굳이 섹스중인 상대에게 '나는 강간판타지가 있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전쟁이나 민족학살이 없었다면, 그들이 내 죽음을 내가 선택한다고 죽음에 이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결국 내 죽음을 선택했으므로 이것은 자유죽음인가? 하면 나는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다. 그 죽음이 그들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존중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의 죽음 자체에 대해 존중을 보낼 수 있을 지언정, 그러나 그것이 자유죽음인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데에는 순전히 자기가 결정했던 일들만이 채워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좀머씨의 소년과 그리고 가수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가정부와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코딱지를 눌렀던 나, 가수를 좋아하는 나, 시험을 망친 나, 좋아하는 여자가 나를 좋아하지 않음 같은 것들은 설사 본인에게 엄청난 치욕이었을지언정 그것이 누가 나에게 해를 입힌 것은 아니다. (아 코딱지는 좀 다르겠다) 그러나, 폭력은, 강간은, 학대와 학살은 다르다. 그것은 누군가 나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힌 것이고 그것은 내 통제 밖의 일이었으며, 그것이 '나의' 치욕이 되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피해자가, 생존자가 그것을 치욕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아빠가 나를 때린게 치욕스러워, 강간범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게 치욕스러워, 나는 이 삶을 끝내고 싶다, 는 그것이 내가 결정해야 하는 나의 수치가 아니라는 거다. 그 수치는 그들의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가해자의 것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폭행을 가한 폭행자의 것이 되어야 하고 강간을 한 강간범의 것이 되어야 한다. 학대와 학살을 일삼은 가해자들이야 말로 수치와 치욕을 느껴야 했는데, 그런데 피해자와 생존자가 그것을 느끼고 이런 삶을 버틸 수 없다, 고 죽어버리는 것은 그것은 자신을 살해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든 약을 먹었든, 그것을 '행한' 것은 나일지언정, 나를 그렇게 행하게 만든 것은 '나의 수치'가 아니라는 거다. 그것을 행하게 만든 것은 '가해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그것이 자유죽음이 아니라 자살, 자신을 죽인것이 되지 않나. 그러나 여기에서의 자신을 죽인것이, 정말 '나 자신'인가? 이것은 자살인가? 그래서 나는 자살과 자유죽음은 그 사이에 아주 먼 거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자살은 자유죽음이 아니고 자유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다시, 올리브》에는 공부를 잘하고 인기도 많았던 여학생이 대학에 들어가서 자살하게 된 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알고보니 어린 시절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것. 결국 집으로부터 멀어졌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에게 죽음을 내린다. 이것은 자유죽음일까? 한 여성의 삶이 중간에 끝나버려 없음이 되는 것,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 것, 그러나 그 죽음을 그녀에게 행한 것이 그 자신이기 때문에, 이것은 자유죽음인가? 장 아메리도 자유죽음을 자살과 구분한다. 처음부터 그걸 다르다고 언급하고 시작한다. 자유죽음은 자살과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나 역시 동의한다. 이것은 이렇게나 다르니까.



But he remembered where he was-right outside the main gorcery store here in town-when he found out that she had vinished Vassar and then killed herself. It was Trish Bibber who told him, a girl they had been in school with, and when Denny said, "Why?, " Trish had looked at the ground and then she said, "Denny, you guys were friendly, so I don't know if you knew. But there was sexual abuse in her house."

"What do you mean?" Dinny asked, and he asked because his mind was having trouble understanding this.

"Her father," said Trish. And she stood with him for a few momints while he took this in. She looked at tim kindly and said, "I'm sorry, Denny." He always remembered that too: Tisht's look of kindness as she told him this.

So that was the story of Dorie Paige. -p.144-145



하지만 그녀가 바사를 졸업하고 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했다-타운의 큰 식료품점 바로 앞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녔던 트리시 비버였다. 데니가 "왜 그랬대?" 하고 물었을 때 트리시는 땅을 내려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데니, 너희 둘이 친하게 지내서 혹 알았는지도 모르겠는데, 집에서 성적 학대가 있었대."

"무슨 뜻이야?" 데니가 물었다. 자신의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랬대." 트리시가 말했다. 그리고 데니가 그 말을 이해하는 동안, 잠시 그와 함께 서 있었다. 트리시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참 안됐어, 데니." 그는 그것 역시 늘 기억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할때 트리시가 보여준 다정한 얼굴.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책 속에서



















아침부터 이 긴 글을 꼭 써야했다. 혹여라도 수많은 어떤 여성들과 남성들의 자살이 자유죽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까봐, 그렇게 가해자들이 빠져나갈까봐. 너네 죽음을 너네가 선택한 거잖아, 라고 제삼자가 말하게 될까봐. 그렇게 그 사이에 있던 폭력과 학대를 못본 척 할까봐.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서. 이 생각이 내게 내내 있었다. 어떤 '살아야 해!'는 그것이 단지 내 기준에서의 삶이 더 나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어떤 '살아야 해!'는 그 수치가 네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당신의 것이라 생각해서 죽음으로 걸어가는 일을, 당신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 말하고 싶다. 그 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Mauritshuis 를 갔을 때 본 사진이 생각나 가져온다. Morad Bouchakour 의 작품 <Traces (part2)>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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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8-22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복 강박(혹은 강복적 반박) : 프로이트가 발견, 확립시킨 개념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괴롭고 고통스런 과거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을 가리킨다. 이런 충동을 지닌 개인은 자신이 그와 같은 사건이나 경험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들은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사건들을 개인의 성격이나 행동과는 상관없이 불운이나 운명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유사한 삶의 비극들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운명 신경증 환자 또는 반복 강박 환자로 불린다.(출처는 나무위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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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딱 이렇게 달아놓으면 되게 멋있어... 보일 것 같은데
사족 붙이자면, 인간이 겪는 고난과 상처와 고통에 대해서 라벨링하고 유형화하는 제 습관 말예요, 이건 mbti가 아닌 것 같아요. 다락방님은 긴 글이 필요하고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하셨는 데, 저는 개념이 필요했거든요. 제가 겪은 것들을 빨리 상대화 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버튼 누르면 나오는 기계처럼요. 이런 상처에는 이런 방어기제, 이런 종류의 경험에는 이런 반응. 그래야 나 자신이 설명되고 설명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지금은 아녜요. 이게 확 잡히지는 않는데, (채집하고 싶다 ㅋㅋㅋ) 아무튼 그런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사유해볼게요. 지금은 플래그만 붙여두고 ^^

다락방 2022-08-22 13:58   좋아요 3 | URL
출처가 나무위키라니 ㅋㅋㅋ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이긴 하지만, 신뢰와 별개로 반복 강박과 제가 언급한 지점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음 반복 강박 이라는 프로이트가 발견, 확립한 개념은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것인듯 하고요, 저는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원인을 생각하고 쓴 것 같아요. 결국 어떤 사건을 맞닥뜨리고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느냐로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반복 강박 이라 부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음, 말씀하신 것처럼 분류하고 유형화 하는 것으로는 닿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놓치고 지나치는 것들이 분명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놓치고 지나치는 것들에 또다시 이름 붙이고 세분화하게 되겠지만요. ‘반복 강박 환자‘라는 네이밍은 설사 그것이 강박이라 할지라도 좀 가혹하게 느껴지네요. 이 부분은 제가 전혀 모르는 지점이라서 계속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에서 저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고 납득하게 하는 구절들을 만나게 되겠죠. 역시 계속 읽는게 답인 것 같아요.

공쟝쟝 2022-08-22 18:27   좋아요 1 | URL
네, 계속 읽으실 다락방님!
자해/자살이라는 자신을 해치는 행위를 통해서 (박탈당한 자신의 통제권) 자유를 확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 그렇다고 한들 최초 고통 유발자(?)들에게 고통이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를 질문하는,그 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거칠게 줄여 죄송합니다)이 글에서 제가 ‘반복 강박‘이라는 간단한(?) 프로이트의 개념을 떠올렸던 건. 중간에 노멀피플 등으로 인용해 놓으신 자해같은 섹스 혹은 강간 판타지 때문예요.

그들은 계속 자신을 상처 주는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이 그걸 반복하고 있다거나 오히려 그런 경험을 유발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요. (나쁜 남자만 찾아서 만나는 것 같은 여자들이 떠오르네용)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자신의 불운과 박복함을 탓하기도 하고요. 만약 내가 그걸 반복하고 있는 행위의 이면 뒤에 무의식적인 오랜 상처가 있다는 걸 의식화 하면 반복하지 않겠죠? (말이 쉽죠. 너무 어렵습니다.) 악몽처럼 그 고통을 반복하는 일 보다 (어쩌면 고통의 원인일)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기가 더 어렵다는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 존재의 생겨먹음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같은 상황을 계속 반복해서라도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애처로운 ㅜㅜ 개인의 삶에 대한 노력일 수도 있고요.

저는 ‘강박 ‘환자‘‘라고도 ‘우울‘증‘‘ 이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게 (병리적으로 다루고 싶지가 않아요... 이런 인간 심리의 작동 방식들을요) 환자가 아니고... 증이 아니고........ 그냥 우린 그렇게 생겨 먹은 거(?) 같거든요. 시간을 다시 돌려서라도, 상황을 다시 똑같이 만들어서라도.... 그 때의 나를 구원하고 싶은 건 너무 당연한 것 같거든요. 그렇지만 상처에서 빠져나와 더 좋은(그게 무언지 모르겠지만.. 그런게 있다면) 삶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건 병리적인 현상으로 다뤄서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되기도하고요. 근데 그건 개인적인 차원이고, 또..... 애시당초 그런 구조가 안만들어지게끔 해야하는 것도 우리가 물어야 할 거 같고요.

마지막에 햇빛을 피하는 다락방 속 여자 그림을 첨부하셨잖아요. 빛을 몰라서가 아니라, 빛이 싫어서가 아니라 빛보다 중요한 어둠을 해결해야만 하는 아주아주 깊은 나도 모르는 내 소망이 있는 거죠. 그런데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은 그 억압된 욕망들을 ‘의식화‘해서 ‘포기‘하라고해요. 그 상황으로 똑같이 돌아간다해도 애초의 상처가 만들어진 상황과 절대 똑같을 수가 없으니, ‘포기‘하라고요. ... 포기.... 포기가 안되는 거죠.

길고 긴 글의 말미에. 그 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살아야 한다! 그 수치는 네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말씀은 아주 강한 정신이고, 똑바른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너무 원론적예요. 가운데의 무언가가 더 필요해요. 다락방님 말씀대로 우리는 긴 글이 필요해요. 왜냐면 상처는 유형화 될 수 있을지라도 고유하니까. 상처에서 빠져나오는 방식 역시, 고유한 거고요. 전 또 여기서 에바일루즈 생각나는 데요. 현대의 심리학이 그렇게 상처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그 상처로부터의 ‘회복-치유‘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해결을 못하느냐고 묻는 거예여. (제가 장아메리 글 읽지 않아서 다락방님이 책에서 받은 인상과는 너무 다른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같네요.)

수치와 치유를 만들어내는 사회적인 원인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 반대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할거예요. 저는 해야한다고 생각하고요. 가해자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것도 좋아요. 그게 건강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역시 충분하지가 않아요.

저는 어쨌든 사람을, 삶을, 죽음을 계속해서 더 사색하게 하고 저를 또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 페이퍼가 좋아요. 저는 이 페이퍼를 보면서... ‘반복 강박‘이라는 인간의(나자신의) 생겨먹음이 떠올랐어요. 왜냐면 전 메리앤을 길고 긴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이...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미미 2022-08-22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에게 이런 긴 글을 쓰게 만든책 장바구니에 쏙 담아갑니다. 올려주신 작품은 다락방같아 보여요. 구석에서 울고 있지만 공간이 그녀/그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느낌 ^^*

다락방 2022-08-22 13:59   좋아요 2 | URL
저 그림을 보는데 되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저 들어오는 빛은 희망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어떻게든 거기에 닿지 않으려고 숨으려고만 하는 인간이 보이기도 하고요. 저는 사실 우울한 그림 같은거 안좋아하는데 저건 너무 인상깊었어요. 저 그림의 어느 지점에 끌린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mini74 2022-08-2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해자의 몫이어야 할 수치.ㅠㅠㅠ 남성에 비해 여성들은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는 글을 봤어요. 속에 담아두고 자신의 탓도 있다 자책하다 가해자가 아닌 자신을 파괴한다고..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란 말, 올려주신 작품, 미미님 말씀처럼 위로가 되어주는 느낌입니다.

다락방 2022-08-22 14:19   좋아요 2 | URL
어떤 죽음이 잘못된 대상을 찾아 들어온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것이 자살이란 형태로 일어나고요. 그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요. 죽긴 왜 죽어, 악착같이 살아야지! 하는건, 주변인들의 말인 것 같아요. 당사자는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없는데, 더 이어나갈 힘이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도 너무 선을 넘어버리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그들을 그렇게 죽게두는 것은 답이 아니잖아요. 그것이 순수한 선택은 아니니까요. 분명 그전에 어떤 가해가 있었으니까요. 이런 일들을 우리는 살면서 어떻게 극복하고 또 해결해나가야 할까요. 에휴..

단발머리 2022-08-22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지 않아서 장 아메리가 말하는 자유죽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다락방님이 이 글에서 의문을 제시하는 지점, ‘자살과 ‘자유죽음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저는 장 아메리가 수용소 생환자라는 지점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프리모 레비도 겹쳐져 보이구요. 세상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그 사람의 삶 속에 있었다고, 전 그렇게 봐요.
책을 읽고 댓글 달러 다시 오겠습니다. 무거운 책이라 쉽사리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속에.....

다락방 2022-08-22 15:08   좋아요 2 | URL
저는 삶이란 무엇인가 묻고 또 죽음이란 무엇인가 묻는 것 자체가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에게 철학책이었고 그래서 읽기에 좋았어요.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좋더라고요. 덩달아 저도 생각해보게 되고요. 제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서도 또 생각하고 있었던 지점에 대해서도 계속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 올라온 다른 리뷰들을 보노라니 다른 분들의 리뷰에서는 자살과 자유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 같아서 내가 잘못읽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마도 속히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장 아메리가 ‘자살‘이란 단어를 굳이 밀어두고 ‘자유죽음‘을 택한 이유가 있다고 보거든요.

단발머리 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유대인 생존자였던 장 아메리가 이 책의 저자라는 거, 그런 그가 자유죽음에 대해 썼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아무 정보도 없이 책을 펼쳤다가 저는 작가 소개를 읽고 놀랐거든요. 저는 음 한 단어로 말하자면 이 책에 대해서 ‘무겁다‘ 보다는 ‘철학적이다‘ 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단발머리님께 꼭 읽어보시라 말할 수는 없는 책이지만, 혹여 읽게 되신다면 단발머리 님은 어떤 글을 쓰실까 궁금합니다.

독서괭 2022-08-22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야기를 잠자냥님에 이어 다락방님 것까지 연달아 읽으니 더 흥미롭네요. 자유죽음과 범죄 등 트라우마가 쌓여 생긴 ‘자유롭지 못한‘ 죽음을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그걸 면죄부 삼으면 안 되지요, 암요. 나쁜 놈들은 자기한테 유리한 건 잘도 끌어다가 아전인수 하는 데 선수니까요.
그런데 밑에 리뷰도 엄청 길게 쓰셨군요? ㅎㅎㅎ 이따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분이 동시에 이 책을 읽으셨어요? (놀람)

공쟝쟝 2022-08-22 18:44   좋아요 2 | URL
리뷰대회 (속닥속닥)

잠자냥 2022-08-22 22: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그럼요 그럼요 물질주의자에 사대주의자인 저희에겐 외국책 리뷰 대회가 딱입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8-23 07:02   좋아요 0 | URL
앗 그런거군요 ㅎㅎㅎ 리뷰대회 저는 능력부족을 실감하고 관심을 접어서요^^;;

다락방 2022-08-23 08:59   좋아요 2 | URL
이게 그러니까 히스토리가 있습니다... 그 긴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저는 지난주 어느 늦은 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에 대한 리뷰를 읽게 됩니다. 응? 이거 바로 얼마전에 *** 님도 리뷰 쓰셨는데, **** 도?..... 혹시? 하고 보니 리뷰대회가 있었던거죠. 마침 마감이 다음날이고 나는 책이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 리뷰가 너무 똥망인거에요... 하아- 저는 후회합니다. 나는 틀렸어, 글러먹었어, 후회한다... 라고 했더니 친구가 <자유죽음> 도 리뷰대회가 있다고 알려주는데, 월요일 마감이고 그 소식을 금요일에 들은 저는 음................ 하다가 토요일에 부랴부랴 책을 사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읽다가 술을 마시고 다음날 또 읽고 그렇게 리뷰를 쓴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마감인 어제 우르르르르르르르르 리뷰들이 몰려오더니 저는 또 침울해집니다. 쓰지말걸....


리뷰 대회 능력부족으로 관심을 접은지 오래이고 그래서 다 모르고 있다가 괜히 마감전날 들어가지고 이런 일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물 좀 닦고 올게요.

독서괭 2022-08-23 09:12   좋아요 0 | URL
아니, 이삼일만에 책을 읽고 써내신 리뷰라는 거죠? 능력자 인증 아닌가요??😳
 

어제 엄마 아빠 모시고 영화 <헌트>를 보고 와서 이정재가 이 영화를 왜 만들었나 궁금해졌다. 영화는 나에겐 별로였는데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의도가 뭘까. 그렇게 검색을 해보노라니 시나리오를 사게 됐고 그걸 자기가 직접 고치게 됐고... 뭐 이런 기사가 있더라. 특별히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어떤 생각이나 마음이 있는 건 아닌건가, 하고 있는데 엄마가 유퀴즈에 이정재가 나왔다는 거다. 오, 거기서 그 얘기를 풀어냈으려나? 하고 검색해보니 이정재가 유퀴즈에 출연한 건 1월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가 아니라 오징어게임으로 나온 것. 어쨌든 어제 실컷 먹고 배도 부른 터라 그거나 보면서 쉴까, 하고 다시보기로 유퀴즈를 재생했다. 이정재는 맨 마지막 순서였고, 덕분에 앞출연자들을 보게 됐는데, 거기에는 덕업을 일치시킨 한 남성이 나왔다. 신발을 너무 좋아해서 신발을 파는 곳에 취직했다는 남자였다. 남자는 나와서 신발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신발장으로도 모자라 신발만 넣는 룸이 있는데 이젠 거기도 모자라서 서재에까지 신발을 옮겨둔다고 했다. 이에 아내분은 그걸 받아들이시냐, 진행자들이 물었고 남자는 아내랑 취미가 같다고 했다. 신발은 엄청난 고가의 것들이었고, 한정판도 있고.. 여튼 이게 참 돈이 드는 취미일 것 같았다. 신발을 모은다는 건 돈이 많이드는군, 역시.. 책이 좋아. 책이 짱이다, 하다가, 그런데, 정말 그런가? 갸웃하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최근 <윌라>를 통해 토지를 듣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는데 한 번쯤 다시 읽어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21권이나 되는 책을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던 차에 오디오북으로 듣는다는 친애하는 알라디너 님의 얘길 듣고 오오, 그런 방법이? 하고 윌라를 구독하면서 토지를 듣기 시작한거다. 

근 이십년만에 다시 듣는 토지는 너무 재미있었다. 성우들이 연기를 해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내가 변한 탓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인지 이제 고작 1권의 절반쯤인데도 막 불끈불끈 하고 싶어지는 얘기가 많은 거다. 

오디오북에 밑줄긋기가 되나 보았더니 내가 찾지 못하는건지 그건 없는 것 같다. 하는수없이 나는 종이책을 꺼내와야 했다. 토지라면 내가 버리지 않고 다 가지고 있지. 심지어 어디 있는지도 안다. 그러니까, 여기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어디? 나는 여기 있는 걸 '알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나나 알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그러나 안다고 다 되느냐 하면, 보이질 않으니 꺼낼 수가 없어. 어디 있냐? 아아 나는 꺼낼것이냐. 이 앞에서 한참 망설인다. 뭔가 할 말이 있고 밑줄을 그으려면 종이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 종이책을 내가 손에 쥐려면 저 책탑들을 치워야 해 ㅠㅠ 

치울까 말까, 들어낼까 말까, 토지 이야기 할까 하지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저 책들을 조금 치웠다. 1권만 꺼내면 되니까.

자, 보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만큼만 치워도 꺼낼 수 있어! 나는 그렇게 1권을 꺼냈다. 

이정도라면, 내가 고가의 물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괜찮은 것인가? 정말 고가의 신발을 모으는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가? 정말 그런가?



인생..


토지 1권을 펼쳤다. 하하하하. 정말 나는 내가 귀엽다. 그 당시엔 이거 읽은 날짜를 적어두었네?




귀요미.. 나는 정말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치수는 양반이고 부자이다. 그의 집에서 거느리는 하인만 해도 여럿이다. 이 커다란 집의 대장이며 우두머리이다. 모든 종들은 그의 눈치를 봐야 한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부터 더욱 흐느끼는 듯 꽹과리 소리는 여전히 마을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밤을 지샐 모양이다. 하기는 마을 처녀들의 놀이는 이제부터, 달 뜨기를 기다려 강가 모래밭에서 호작거리는 물 소리를 들으며 시작될 것이다.

"진지상 올릴까요."

방문 앞에 계집종 귀녀가 와서 묻는다. 벌써 두 번이나 물어보는 말이다. 방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등잔에 불을 켜야겠습니다."

하며 귀녀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최 참판댁 당주(當主)인 최치수(崔致修)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오래 묵은 한지(韓紙)같은 저녁 빛깔이 방안에 밀려들고 있다. 등잔불이 흔들리면서 밝아온다. 어둑어둑한 방에서 정말 글을 읽고 있었는지, 최치수 콧날에 금실 같은 한줄기 불빛이 미끄러진다. 수그러진 그의 콧날이 날카롭다. 이 세상 온갖 신경질과 우수(憂愁)가 감도는 옆모습,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서서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칠 것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가 방안 가득히 맴돈다.

"자리나 깔아."

"예."

거들떠보는 것도 아니었건만 귀녀는 눈웃음치며 도토롬한 입술을 오므린다.

병약한 치수로서는 번거로웠던 명절날 집안 행상에 어지간히 시달리어 피곤했던 것 같다.

"저녁은 안 드시겠습니까?"

아랫목에 자리를 깔아놓고 다시 확인하려 했으나 귀녀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방에서 물러난다. (토지, 제1부 1권 p.43-44)



아 진짜 최치수 답답이.. 정말 너무 싫다. 저 장면 듣는데 너무 화딱지가 나서. 야 이 자식아, 먹으면 먹겠다 안먹으면 안먹겠다, 말을 해라! 종인 여자아이가 도대체 거기서 뭘 어쩌라는거냐. 니가 대답을 해줘야 밥을 차리던지 아니면 오늘 밥을 안차려도 되는구나 하고 그 다음 자기 볼일을 보러 가지 왜 사람 전전긍긍 만들어, 만들기를? 아주 너무 고약한거다. 그래, 사람이 피곤하고 우울하고 그러면 말하기 싫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저기서 한 마디 말이라면 '오늘 저녁 안먹을래' 라고 한마디만 해줬다면 귀녀도 자꾸 묻는 일이 없었을 거 아닌가. 확실한 대답을 알지 못해 도대체 밥을 먹겠다는건지 아니겠다는건지 몰라서 재차 물어야 하는 마음, 그렇게 재차 물으면 또 상대가 그만좀 하라고 화낼 수도 있잖아?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론 최치수의 입장이라는 것은 그런 것을 알아도 그만이요 몰라도 그만이요 이겠지만, 너무 괘씸한거다. 괘씸한 새끼.. 

그러나 최치수의 이 괘씸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단 방에 들어온 뒤에는 나가도 좋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서희는 일어설 수 없다. 숨소리를 죽이며, 그래서 가냘픈 가슴이 더 뛰고 양 어깨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는데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것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가.

이따금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길상아!"

별안간 귀청을 찢는 것 같은 고함에 서희는 용수철같이 앉은 자리에서 튀었다.

"길상아!"

"예에!"

대답과 함께 급히 뛰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뜰 아래서

"나으리마님 부르셨습니까."

앳된 소년의 목소리였다.

"방이 왜 이리 차냐!"

"곧 불을 지피겠습니다."

"내가 지금, 방이 왜 이리 차냐고 묻지 않았느냐!"

푸른 정맥이 이마빼기에서 부풀어올랐다. 서희의 얼굴이 질린다.

"예, 지금 곧, 곧 불 지피겠습니다."

"이놈! 방이 왜 이리 차냐고 물었겠다! 고얀 놈!"

"잘못했습니다, 나으리마님."

소년은 겁을 먹은 소리를 냈으나 매양 당하기 때문인지 길들은 사냥개처럼 뒤쪽으로 달려가서 장작 한아름을 안고 뛰어온다. (토지, 제1부 1권 p.54-55)



'방이 왜 이리 차냐'는 물음에 정확한 답은 '아직 불을 지피지 않았다' 라든가, '불을 지피는 걸 깜빡했어' 등등이 올 수 있겠다.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해결을 답하는 것은 정확히 오고가는 대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친구와 하는 대화였다면 '방이 왜 이리 차?' 라고 물었을 때 '아 그래? 불 지펴줄게' 라든가 '아이쿠 이런 불 지피는 걸 까먹었네' 등의 대화로 마무리 될 수 있을 테지만, 최치수와 길상의 처지는 다르다. 밥을 먹겠냐는 종의 물음에 자신은 이렇다저렇다 답을 한 마디도 해주지 않고 '자리나 깔아!' 해놓고서는, 그러나 자기가 묻는 물음에 정확히 대답하지 않았다고 고얀 놈~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최치수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양반이고 이 집의 주인인 어른 남자이다, 나는 너네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나 너네의 대답을 강제할 수 있다, 는 자세, 태도, 생활 습관은 그에게 어릴 때부터 새겨져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되니까, 그래도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까. 만약 친구들 사이라면, 그러니까 평등한 사이라면, 저녁 먹을래? 재차 물어도 대답 없는 상대에게 '야 먹겠다는거야 아니라는거야 대답을 해!'라고 나도 같이 쏘아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야, 나는 배고프니까 혼자 먹을게 애새끼 대답을 안해..' 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귀녀는 종이었으므로 재차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묻는 말에 대답을 안하는 것, 대답을 기다릴 상대의 초조함이나 답답함을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

자신이 기대하는 답이 아니기에 윽박 지르고 고얀 놈이라고 욕하는 것.

이것은 최치수의 화법이다, 최치수에게만 가능한 화법이다. 토지 속 다른 인물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화법. 저 혼자 잘난 화법. 최치수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걸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이 최치수였다. 그래서,


최치수의 화법이 싫다.

저런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사람과는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

묻는 말에 대답 안하는 사람,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면 윽박지르는 사람.

최치수 같은 사람.



한편 길상이에겐 손재주가 있다. 눈대중으로도 근사한 탈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림도 그린다. 그걸 알게된 구천은 어린 길상에게 너 혹시 글공부도 했냐 묻는다.



"자비상이구나."

"야."

길상이 기뻐서 얼른 대답했다.

"어디서 배웠노."

"절에서 맨날 그렸소."

"절에?"

"연곡사 혜관 스님이."

구천이의 눈빛은 더 얘기할 것을 바라는 것 같았다.

"장차 저도 금어가 될 기라 하심서 맨날 초화를 그리게 했심다."

"글공부를 했느냐?"

말씨가 달라져 있었다.

"예, 조금."

저도 모르게 길상이 역시 '야'에서 '예'로 말이 달라져 있었다.

"안 하면 잊어버린다."

"노스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싰습니다."

구천이 눈이 순간 흔들렸다.

"세상이 달라질 거라 하시믄서."

흔들리고 있던 눈에 조소가 지나갔다. 그후 구천이는 틈이 날 때마다 길상을 손짓하여 불러다가 남몰래 글을 가르쳐 주었다. 혜관 스님은 성미가 급하고 변덕이 심해서 꾸짖기를 곧잘 했으며 잘못도 없는데 쥐어박곤 했는데, 그러나 길상은 글을 가르칠적에 말이 적고 엄격해 보이는 구천이가 혜관 스님보다 더 두려웠다. (토지, 제1부 1권 p.143)




어릴 적에 당연하게 주어졌던 공부는 '공부하라'는 잔소리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을 수도 있다. 왜 글자를 알아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신이 모른다면, 공부가 재미있을 수 없다. 그게 뭐가 됐든,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이유, 목적을 알아야 한다. 그 목적이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이걸 '왜'하는지 안다면, 그걸 할 의미도 생기고 재미도 생긴다. 공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던 학창시절이 나는 그래서 너무 후회된다. 어릴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후회는 아무리 하고 또 해도 끝나지를 않는다. 세상에 알아야할게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정말이지, 잘도 살았네.. 하아- 혜관스님도 그리고 구천이도 글공부가 중요하다는 것,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었고, 그래서 어린 길상이에게 글을 알려주려 했을 것이다. 양반집에 소속된 종이지만, 그러니 종의 신분으로 살아갈테지만, 글을 모르는 종도 많을 것이고, 자신의 신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보이질 않는다면 딱히 글을 배우려는 생각이나 의지도 없을테지만,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들에게 모두 글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당시에 내가 태어나 어느 큰 양반집의 종이었다면, 그 때에도 내가 '나는 글자를 깨우칠테야!' 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현실에 안주하며 이것이 내 삶이다, 하고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그 때에 태어났다 해도 내가 글을 알고 싶어햇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글자를 알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책을 읽으렴. 설사 네 신분이 변하지 않는다해도, 그렇게 모르는게 많은 상태로 모든게 당연한거라는 상태로 살다가 죽지는 마.. 라고 말해주고 싶다. 과거의 어느 때에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도 글은 알려고 했으면 좋겠다. 글을 알려는 생각과 의지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기꺼이 글을 가르쳐주려는 어른도 길상이에게 구천이 있었던것처럼,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혜관스님이, 그리고 나중에는 구천이가 '안 하면 잊어버린다'며 글공부를 시켜줬던게 나는 진짜 너무너무 좋다, 너무 좋다.



사실, 내가 별당아씨였어도 최치수랑 사느니 구천이랑 도망갔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서희는 어쩌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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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8-1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치수 무척 공감합니다ㅋㅋㅋ 너무 싫어요. 가면 갈수록 싫습니다ㅠㅠ 저 못된 심보와 기고만장함. 에효~ 누구든 깔보는 그 위선적이고 고압적인 태도!

˝안 하면 잊어버린다˝ 저 문장 기억납니다! 공부는 반복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어차피 까먹는데 왜 해?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공부야말로 재미있고 그래서 하는 거라 답합니다! 잊어버리지만 반복하면 덜 잊어버리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쌓이는 것 같아요^^

근데 토지 책 저 와중에 꺼내신게!ㅎㅎㅎ 어디 있는지 알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다락방 2022-08-16 09:50   좋아요 0 | URL
거리의화가 님, 혹시 최명희 의 <혼불> 읽어보셨나요? 제가 그거 읽다가 너무 빡쳐서 이게 대체 뭐야,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이 빡침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될까? 이래서 페미니즘 공부 시작했거든요. 거기 나오는 남주가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요. 세상 미친 민폐놈이에요. 나는 종갓집의 장손이다~ 이런 나도 힘들어~ 하면서 온갖 행패를 부리는 유약한 남자인데요, 와 진짜 너무 싫어요. 거리의화가 님이 최치수 가면갈수록 싫어진다 하시는데 갑자기 혼불 생각나면서 ‘아무도 그보다 더 싫어질 순 없다‘ 싶어져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어휴.. 빡쳐.. 이름이 뭐더라, 준모 였나...

그게 공부든 운동이든 뭐가 됐든, 자기가 깨달아야 시작하고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알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조언은 조언이 아닌 그저 잔소리가 될 뿐이죠. 그래서 공부의 재미와 중요성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제 스스로가 야속합니다. 공부하라고 엄마가 그렇게 일렀는데 흑흑 ㅠㅠ

거리의화가 2022-08-16 09:58   좋아요 0 | URL
앗 페미니즘 공부의 계기가 된 작품이 <혼불>이었군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저도 읽으면 분명 빡치겠네요ㅋㅋㅋ 언젠간 읽지 않을까요? 한국문학 작품은 시간이 걸려도 역사 공부하면서 함께 읽어나가게 되니까요.

깨달음의 시간이 언제가 되든 본인 스스로가 절박해질 때 오는 경우일 때인것 같아요. 저도 그걸 많이 늦게 깨달아서 아쉽지만 그럼에도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생각합니다ㅎㅎㅎ

다락방 2022-08-16 10:56   좋아요 0 | URL
거리의화가 님, 혼불에는 진짜 최치수보다 더한 놈이 나옵니다. 심지어 유약하고 부드러우나 이기적인 정말 혼합 잡종말종의 자식이... 그가 주인공이고 그는 여러 여자를 괴롭힙니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저는 역사공부를 하면서 읽는게 아니라 역사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읽기 때문에 아마도 깊이 있는 읽기가 안되고 또 기억도 잘 나지 않는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왜 역사에는 딱히 흥미가 없는건지. 학창시절에도 국사 세계사 되게 못했어요. 저에게 그건 다 암기과목이었고 암기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고 그래서 못하는 것... 국사, 세계사를 알면 역사 소설은 더 재미잇을텐데 말입니다. ㅠㅠ

맞아요, 거리의화가 님. 저도 진작 깨달았다면 더 좋았겠다 싶지만 이제라도 깨달은게 어딘가 싶어요. 그러니 우리 열심히 해봅시다. 훗.

persona 2022-08-16 15:48   좋아요 0 | URL
어릴 때 혼불이 대작이긴 한데 다 읽기 전에 지치거나 미쳐버릴 수도 있으니 수능 보기전엔 읽기를 조심하라는, 당시 페미니스트 조직에 가입하셨던 남자 국어선생님이 귀띔해주셔서 아직도 못 읽겠어요. 😅

그레이스 2022-08-16 22:08   좋아요 1 | URL
혼불 재밌게 읽었어요.
넘 디테일해서 토할것같은 느낌도 받았었구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엉성하니 큰 버선!

아! 토지는 사람들의 그 기질이 바뀌지도 않고 질기디 질기다는 생각때문에 진저리가 났구요
암튼 둘 다 정말 대작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락방 2022-08-17 08:20   좋아요 2 | URL
혼불에는 살아있는 한국 토종 남성 바로 그 자체가 나오죠. 장손이라는 것은 나에게 너무 스트레스야~ 라면서 온갖 패악질에 집안 돈 뜯어먹고 주변 여자들 신세 다 조져버리는 ... 휴..... 자기 힘들다고 다른 사람들 죄다 더 힘들게 만드는.. 저는 진짜 인간 말종 보는 것 같았어요. 제 친구였으면 쌍욕하다가 주먹 날아갔을 것 같아요. 너무 싫음요.

맞아요, 저는 사실 혼불 읽기 전까지 페미니스트에 대해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페미니스트는 저랑은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혼불 읽다가 시방 이게 뭐하는 짓이여? 하고 ‘이 미친 부조리함을 페미니즘 공부하면 알 수 있을까?‘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너무나 고맙고 대단한 작품이죠. 왜 하필 그 때 너는 내게 왔니..

그레이스 2022-08-17 08:45   좋아요 0 | URL
ㅎㅎ
다락방님;;
저는 그런시대에도 세상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여인들을 더 주목해 보았던것 같아요. 물론 시대적 한계가 있겠지만요. 제가 큰 버선을 기억하는 것은 그 여인이 사는 방식때문이었을 것 같아요. 시어머니도 포기하게 하는 마이웨이! 여인의 발은 작고 예뻐야하는데 답답하게 조이는 버선대신 크고 헐렁하게 만들어 신고 아무렇지도 않게 빨랫줄에 걸어놓던 며느리...! 여기에 상징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희와 같은 여인도 있고 혼불에서 이 며느리처럼 허허실실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여인도 있구요.
남자들은 알아서 살라고 하세요...ㅋㅋ

blanca 2022-08-1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방법 좋네요. 토지를 오디오북으로...따라해야겠네요. ^^ 저 어제 영화 <사도> 봤는데 거기에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조선은 공부가 국시다.˝라고 해서 우리나라 공부 집착은 진짜 역사가 길구나 했는데 마침 딱 다락방님 서재에서 공부 얘기를 읽으니 신기해요. 저 그리고 요새 왜 이리 작가들의 여성 묘사, 이야기 등이 거슬리는지...시대상을 반영했다치더라도 그래요. 제가 유일하게 여자를 위한, 진짜 여성을 제대로 그린 작가는 개인적으로 톨스토이와 윌리엄 트레버라고 생각해요.

다락방 2022-08-16 10:58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 사실 저는 좀 고지식한 편이라 종이책 말고는 다른 수단으로 딱히 흥미를 가지거나 지속하게 되지 않는데, 토지 오디오북 들으니 신세계더라고요. 각자 다른 성우가 맡은바 역할을 해주니 라디오드라마 같고 재미있어요. 특히나 토지는 그렇게 듣기에 최상의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훗.

저도 고전 읽으면서도 여성에 대한 부분에서 냅다 까게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자꾸 한심한 백인 남자 작가들 같으니라구... 이렇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8-1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공감합니다~ 최치수 진짜 오만하고 성질 더러운 양반님네죠.. 최치수에게 당하는 저 장면이랑 엄마가 구천이랑 도망간 아픔 때문에, 서희가 성질 나쁘게 자랐어도 미워할 수 없는 것 같아요.ㅜㅜ 근데.. 나중에 나오는 최치수를 삼켜 버리는 놈은 더 싫다는 거 ㅎㅎㅎㅎ 이놈에 대한 다락방님 페이퍼도 기대됩니다 ㅎㅎ

독서괭 2022-08-16 10:35   좋아요 0 | URL
근데 사진 첨에 숨은그림찾기인 줄 알고 열심히 들여다봤잖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2-08-16 10:59   좋아요 1 | URL
어린 서희가 엄마 데려오라고 막 떼쓰는데 너무 안스럽더라고요. 아니 엄마, 가려면 서희를 데려가지.. ㅠㅠ 물론 서희 엄마가 서희 데려갔으면 서희에겐 고생길이 열리는 것이겠지만, 부잣집 애기씨로 엄마 없이 외롭고 슬퍼하는거, 그게 더 나은 삶인지 잘 모르겠어요. ㅠㅠ 서희 아직 너무 어린데 할머니랑 아버지는 너무 엄하고 ㅠㅠㅠ 어린 서희 보니까 막 구천이랑 밤에 만나고 낮에는 그냥 서희 엄마로 살아주지, 이런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어휴 ㅠㅠㅠㅠ

저니까 알 수 있는 숨겨진 토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ersona 2022-08-1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거에요. 불러놓고 말 똑바로 안 하는 거. ㅋㅋㅋ 저희 아빠가 그래요… ㅋㅋㅋㅋㅋ 맨날 제가 승질 내는 게 사람 불러놓고 세워두지 말고 지시할 거 지시하시라고 막 뭐라고 해요. 상사가 이러면 30초 정도 기다리다가도 계속 세워두는 거 같다 싶으면 지금은 바쁘신 거 같으니 정리되시면 부르세요.^^ 아니면 메신저로 지시하세요. 하고 제 자리 가 버립니다. 너무 싫어요.저는 상대가 기다릴까봐서라도 전화 오면 나중에 내가 자리로 가겠다고 하게 되고, 하던 일 중단하고 지시사항 간단하게 결론부터 말하게 되던데 말이죵. 왜 세워두는 걸까요.

다락방 2022-08-16 11:00   좋아요 1 | URL
자기가 머릿속에 정리도 안됐는데 부르는거 진짜 너무 싫죠! 저도 업무중에 그런 일 발생하면 ‘정리되면 부르세요‘, ‘생각나면 부르세요‘ 이러고 와버려요. 왜 불러놓고 생각하고 불러놓고 정리하죠? 너무 싫어요. 바보들. 너무 싫어요. 그렇게 살아왔을 걸 생각하면 더 싫고요. 징그럽고요. 쳇.

단발머리 2022-08-16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있다,에 제가 얼마나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지요 ㅋㅋㅋㅋㅋㅋ 막 찾으려고 했다니까요. 근데 그 속에서 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ㅋㅋㅋㅋ저는 20년 전에 읽었잖아요, 토지를... 다시 한 번 읽어야되는데 하면서도 마음 준비하는데 너무 오래 걸리네요. 오디오북도 좋은 선택이기는 한데 오히려 더 훅!! 빠져들것 같고요. 자신은 없는데 자꾸 여러 이웃분들이 토지 이야기 하셔서... 어쩔까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나올 때마다 책탑 헤치고 책 꺼내서 그 이야기 꼭 써주세요, 다락방님!! 최치수 같은 사람, 우리 같이 욕해요!!!

다락방 2022-08-16 13:55   좋아요 0 | URL
토지1 권만 꺼낸 후 저 자리에 다시 책 그대로 갖다 쌓아놔서 ㅋㅋㅋ 앞으로도 제가 꺼낼 의지가 생길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 귀찮음을 물리치고 저는 토지를 꺼낼 수 있을까요? 이번에 1권 꺼내기가지도 정말 오래 걸렸거든요. 처음 최치수 답답할 때 꺼내야지 하고 책장 앞에 섰다가 안꺼내야지 하고 돌아섰고 두번째 최치수 빡칠때 다시 갔다가 아니야 뭐하러 써 이러고 돌아섰는데 이번에 구천이가 길상이 글공부를 가르치는 바람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저는 왜 토지를 저기다 박아놔가지고 세상 귀찮아지는 걸까요 ㅠㅠ 단발머리 님, 저 넓은 집 좀 사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2-08-16 14:23   좋아요 1 | URL
쫌만 기다려봐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16 14:28   좋아요 0 | URL
쫌만 기다리면 되는거죠? 쫌만요?

단발머리 2022-08-16 15:25   좋아요 1 | URL
뒤에 ㅋㅋ 안 붙이시면 내가 좀 부담되는데… 그래도 그건 그대로 사실입니다. 쫌만 기다려봐요!!

Forgettable. 2022-08-1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북으로 10년 대여 해놨는데 10년 안에는 읽겠지? 했으나 ㅋㅋㅋㅋㅋ 1권 보고 5년 지났네요. 대여 기간 끝나기 전에 빨리 읽어야지..

다락방 2022-08-16 13:56   좋아요 0 | URL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권 보고 5년 지났다니. 시간은 정말 빠르네요. 10년 엄청 길것 같지만 벌써 반이 지나가버렸다니... 뽀님, 얼른 읽어요, 얼른! 이거 21권이나 된다구욧!!!

공쟝쟝 2022-08-16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 처럼 책을 파고 파내면 토지가 나와요^.^토지로 향하는 광맥 ㅋㅋㅋ
그런데 토지 2005년이요? 너무 아련한데요?
최치수 개 짜증나네요. 와 그런데 세상에 저런 인간이 있다니까요? 있어요 ㅋㅋㅋㅋ 있다??? 다 한방에 넣어놓고 이날 씨에 온돌 때주면서(?) 방문 숟가락으로 잠가버리고 놀러가고 싶네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2-08-17 08:21   좋아요 0 | URL
저 안에 있는걸 알지만 파헤치기 너무 귀찮아서 미루고 미룬.. 그래서 책정리는 이렇게 하면 안되는거에요. 아니, 책을 이렇게 정리 안하면 안되는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제가 주인이니까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지 뭐에요. 토지는 21권이나 되니까 저기에 있다는 걸 제가 알지만, 그러나 단행본 이라면... 저는 있는지 없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인생... 이것이 독서 라이프!!

감은빛 2022-08-1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북이 집중이 잘 되나요? 저는 바로 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면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몇번인가 시도해봤는데 얼마 못 가서 다 포기했어요.

다락방님 스스로 인정하시는 다락방님의 귀여움은 정말 치명적이군요. ㅎㅎㅎㅎ

다락방 2022-08-17 11:57   좋아요 0 | URL
저도 관심없다가 최근에 점심 먹거나 걸으면서 들었는데 성우들이 연기해줘서 그런지 드라마처럼 재미있게 듣고 있어요. 특히 토지는 정말 라디오드라마 느낌이에요. 아주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짧게 끊어 읽어서 언제 완독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