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근길에 읽는 책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 이다. 일본이 천주교를 박해했던 시기에 고문을 당해 배교했다는 페레이라 신부에 대한 소문은 사실인지, 그렇다면 신부가 하나도 남지 않은 일본의 천주교도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고자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인 로드리고 신부가 오랜 시간 항해를 거쳐 일본으로 간다. 혹여 정부에 들켜 고문 당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천주교 신도들은 자신들끼리 조용히 신앙 활동을 이어가며 언젠가는 우리를 이끌어줄 신부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던 터, 그 때 로드리고 신부를 맞이하고 다들 환영하고 감사한다. 우리는 신부님이 필요했어요. 그러나 일본의 감시는 철저했고 로드리고 신부도 결국 악명 높은 순사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이 주는 물음은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라는걸 알고 있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것은 신을 믿는 이나 안믿는 이나 간혹 묻게 되는 것일테다. 단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사망까지 하게 되는데, 그들이 고통으로 내몰리고 죽어가는 상황에 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구원하지 않는가, 이대로 죽어가면 정말로 더 행복해지는 것인가, 죽고 나면 천국은 있는가. 로드리고 신부 조차도 다른 이들이 고문과 고통속에 죽어가는 걸 보면서 자기가 믿는 신을 의심하게 된다. 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좀 검색하다 보니 '그러나 신은 우리 주위에 항상 계셨다' 는 얘기로 끝날 것 같긴한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신념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를 읽을 때에도 신념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더랬다. 나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내가 확신해도 그것은 언제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왜 옳다는 걸 믿고 행했는데 결과는 악인 것인가, 에 대해서. 그렇다면 신념을 계속 굳건하게 지키고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침묵> 을 읽으면서도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이 믿는 것, 거기에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믿는 게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나를 살피실 것이고 그 믿음은 어떤 형태로든 내 눈에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힘은 내 믿음이고 내 믿음은 곧 내 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게 자연의 힘이라면, 그 자연으로부터 힘을 받을 것이다. 내가 믿는 게 무속인이라면, 그 무속인은 나에게 힘을 가질 것이고, 그리고 그 무속인의 말대로 삶의 기적들이 순간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건 내 운일 수도 있고 내가 믿는 건 그저 내 힘일 수도 있다. 내가 무얼 믿건, 내가 믿는 건 나의 힘이다. 


이미 천주교라는 종교를 택해 그것을 믿고 그것으로 위안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힘을 가질 것이고, '너의 신을 부정해라' 라거나 '너의 종교를 버려라' 는 말에 '아니' 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무엇을 믿건 그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고 나만의 이유가 있었을 터, 게다가 믿고 보니 그것이 나에게 힘을 주고 내 삶에 기둥이 되어준다면, 누군가 '그것을 버려' 라고 할 때 당연히 '싫다' 라고,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것을 버리라는 강요에는 맞설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버리라고 고문이 가해진다면? 내 믿음을 버리라는 고문은 고문하는 가해자가 당연히 나쁜 것이지만, 그 고문은 일단 나에게는 괴로움이고 고통이다. 책 속에서는 일단 네가 살고 싶으면 성화를 밟으라고 시작한다. 그러나 이 천주교도들은 그들의 그동안 신앙이 마음 속에 있는 터라 차마 성화를 밟고 지나갈 수가 없다. 그럴 경우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나무 기둥에 묶어 바닷물에 며칠간 세워두기도 하고(죽음에 이르게 된다), 구멍 매달기 고문도 한단다. 구멍 매달기 고문이 뭔지 찾아봐도 잘 모르겠는데, 이것 때문에 페레이라 신부는 배교를 했다는 거다. 로드리고 신부는 아무리 감추려해도 천주교도인게 들통나 잡혀가는 사람들에게 '성화를 밟으라'고 얘기한다. 그래야 살테니까. 그러나 신도들은 그걸 잘 할 수가 없다. 성화를 밟는 것을. 그것은 어쩐지 안되는 것 같은 그 마음.


일본의 천주교 박해는 오랜 시간 이어졌다고 한다. 오랜 시간 신부였던 사람까지 배교시킬 만큼 고문은 처참하고 끔찍한 것이었고. 여기엔 성화도 밟고, 천주교도가 있다고 신고도 하는 비열한 캐릭터 '기치지로'가 나오는데, 그가 중간에 그런 말을 한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고문 같은 걸 견딜 수 없다, 나는 약하다, 만약 내가 박해 받지 않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누구보다 열정적인 신자가 될 것이다, 라고. 나는 기치지로가 하는 말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나도 잘 믿을 수 있어, 하는 그 마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약하지 않을까. 내가 아는 인간은 부조리하고 불완전한데.



나는 이 고통스런 고문 앞에서도 결코 자신의 종교(혹은 신앙)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이 복잡해졌다. 믿음은 무엇인가. 나는 책 속에 고문이 등장할 때면 고문 당하는 게 나라면? 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라면? 만약 나라면 고문 당할 때 정치적 이념이 같아 함께 반정부 활동을 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대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맞닥뜨리게 될까? 만약 나라면 고문 당할 때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대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나라면 고문 당하면서 내 믿음을 버리지 않겠노라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처참한 고문 속에서도 끈질기게 자신의 믿음 혹은 신념 혹은 의리를 지켜낸 사람들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지만, 내가 그런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조지 오웰'의 <1984> 에는 자유연애 하던 남자가 잡혀 취조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연애와 연애 상대를 부정하던 남자는 그러나 그의 눈앞에 쥐를 놓자 하는 수 없이 다 불어버린다. 그에게 쥐는 정말 너무나 너무나 무섭고 끔찍한 것이었고, 그는 다른 건 몰라도 쥐는 견딜 수 없었던 거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이 본다면 '어떻게 쥐 때문에 다 불어버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에게 쥐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남자에겐 쥐였지만 다른 사람에겐 그 쥐 대신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을테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 누구보다, 내가?


나는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건 하지 않아' 라고 하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내 경우엔 그걸 바꿔 말하겠다. 나는 그걸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목에 칼이 들어오면' 달라진다고. 나는 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까지 내 신념을 지켜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나에게 나의 삶이, 앞으로의 남은 삶이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내가 그 삶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걸 잃어가며 지켜야 하는 신념이란 무엇인가 싶어지는 거다. 그 어떤 이념이나 믿음이 내 목숨보다 소중할까?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다는 것을 안다. 신념을 부정하는 것은 그간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굳세게 맞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나는 내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들로부터 약속을 지킨다,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그것에 어떤 커다란 위협이 가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절박한 상황에서라면 나는 내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나는 절대로 동료의 이름을 불지 않아' 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지독한 고통이 내 눈 앞에 놓인다면, 글쎄...내가 그렇게까지 강한 사람일까?



자신이 약하다고, 그렇게 끝까지 반항할 수 없노라고, 다소 비열하고 비굴해 보이는 기치지로 쪽이 오히려 내가 닮은 인간 아닐까? 



이제 절반 조금 넘겨 읽고 있는데 이 책 너무 좋다. 참 좋다. 일본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서도 좋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통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어떤 사람들은 고통 앞에 자신을 부정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역시나 소설이 줄 수 있는 앎이고 깨달음이다. 인간이란 무릇 그런 것이다. 고통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인간이 다른 사람과 섞여 살면서 마땅히 늘 좋은 사람이라는 법도 없는 것, 그것이 세상 아닐까. 로드리고 신부가 고통 당하는 신도들을 보면서 그리고 자신에게 닥칠 고통을 상상하면서 신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것, 그러다 다시 신에게 매달리고 안도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흐름일 것이다. 


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세례를 받았지만, 게다가 아주 충실하게 교회를 다니며 피아노 반주도 하고 주보도 나눠주고 전도도 했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갑자기 교회를 끊었다. 도나 해러웨이가 <해러웨이 선언문>에서 인터뷰를 하며 '신(교회였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을 믿었던 사람의 증오는 믿지 않았던 사람의 증오보다 훨씬 크다' 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었는데, 나는 그것이 뭔지 너무나 잘 안다. 그렇게나 열심히 다녔기 때문에 나의 교회에 대한 증오와 미움은 더 큰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미워한다고 해서 종교와 신앙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걸 믿고 싶다, 라는 것과는 다르다. 여성학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언어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졌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결국 공부해야 할 궁극적인 학문은 철학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 사이에 신학 혹은 종교학이 있지 않나 싶어졌던 거다.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불평등과 부조리를 인지하고 알아나가면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면서 신학은 자연스레 함께 공부해야 할 것이 되어가는 거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그런 사람들은 다들 종교인을 꿈꾸는 건줄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 자체가 학문이며 어떤 이들은 그걸 공부하고 파헤쳐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푹 빠져 공부하게 되는 건 아니라도 여성학으로 시작해 철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종교에 대한 것도 알고 싶다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종교인도 비종교인도 이 책 읽어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소설, 이야기가 가진 힘도 충분하지만 아마 읽는 중간중간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해볼 것들이 많지 않을까. 나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우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해? 그건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어? 이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면 거기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설사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충분히 좋은 물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이 책 읽자요!!




어제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고 퇴근 무렵에는 너무 지쳤더랬다. 와인 한 잔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침 거래 증권사에서 방문해 내게 와인을 주고 갔다. 와인 냉장고에 와인이 가득 차있지만, 선물 받은 와인이 내가 산 와인보다 좀 더 좋겠지.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 와인을 마셨고, <뜻밖의 여정> 을 좀 보았다.

윤여정은 지금 다른 젊은 여성들에게 아주 좋은 롤모델이 되고 있다. 젊은 시절 엄청난 고생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우리가 그의 삶을 잘 알지 못해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터, 그런 시간을 겪고 지금 이렇게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왔을 것이다. 어떤 여자든 일을 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테니까.

그 시간은 저렇게 커다란 미국의 집을 렌트할 수 있게 했겠지. 윤여정을 좋아하고 아끼고 존경하는 지인들이 윤여정을 만나기 위해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하고 맛있는 걸 나눠 먹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나도 꼭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나도 꼭 하고 싶다고. 윤여정 처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진 않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윤여정 쌤은 넘나 넘사벽..) 그래도 몇 명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을 내어 다정한 이들을 만나면서 지나온 시간을 얘기하고 현재를 얘기하고 또 미래를 얘기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노래를 들었다. 아이유의 <밤편지> 였는데, 어제 들었기 때문인지 오늘 출근길에도 생각나 계속 들었다.






오늘은 걸으면서 들으니 자연스레 가사에 더 집중하게 됐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나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

그럼 언제든 눈을 감고

음 가장 먼 곳으로 가요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여기 내 마음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어떻게 나에게

그대란 행운이 온 걸까

지금 우리 함께 있다면

아 얼마나 좋을까요



크-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리면 가장 먼곳으로 간다는 가사를 듣는데, 그렇지, 뭔지 알지, 그렇지, 알아 알아, 하다가, 음.. 그렇지만 나는 가장 먼 곳으로 가진 않아, 강남역... 세상 가깝다. 지금은 서초구 그 때는 강남구... 가까워. 그리 멀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다가 '어떻게 나에게 그대란 행운이 온 걸까' 에 또 꽂힌다. 나는 이 생각을 정말 정말 많이 해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함께 했던 시간들 중에도 하고 한참 후에도 계속 그렇게 돌이킨다. 어떻게 너같은 사람이 나한테 왔을까, 하고. 지금 우리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사에서는 최근에 SNS 에 올려진 좋은 풍경들을 함께 떠올린다. 저렇게 좋은 곳에 나는 너랑 같이 갈 순 없는 거지, 내 삶에 그건 없는 걸까. 크- 


와인 마셔서 겁나 피곤해가지고 아아 역시 평일에 술 먹지 말자고 결심하기가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던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가 아니고, 여튼 그랬는데, 또 밝은 해가 있고 너와의 첫 입맞춤을 떠올렸다가 가장 먼 곳이 아니라 엄청 가까운 곳에 가고, 허밍으로 아이유를 따라 부르고.. 그러다보니까 또 다 괜찮아지는 것 같다. 


여동생은 언제나처럼 오늘 나의 컨디션이 어떠냐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 P136

"선교사들이 그렇게까지 괴로움을 끼쳤습니까?"
"받고 싶지도 않은 물건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을 고마운 폐라고 하오. 그 뜻은 고맙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곤란해지는 것을 말하오. 가톨릭의 가르침은, 이 강제로 밀어 넣은 고마운 폐와 매우 흡사하단 말이오. 우리에게는 우리대로의 종교가 있소. 새삼스럽게 이국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소. 나도 신학교에서 신부들의 학문을 배웠지만 결국 우리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소."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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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도 <침묵>을 읽고 있다.
    from 지상의 다락방 2022-06-10 12:56 
    나도 <침묵>을 읽고 있다. 어쩌다 보니 다락방 님과 함께 읽는 책이 되었는데, 다락방 님은 출근길에 읽는 것에 비해 나는 퇴근 후 방 안에 틀어박혀 조금 읽다가 잠들.....(기 일쑤이다). 이 책이 지루하다거나 해서는 아니고 요즘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읽어도 금방 잠이 들고 있다. 이사 때문에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퇴근 후 이 집 저 집 보러 다니고, 그러고 나서 집에 오면 냥이들 챙겨주고 뭐 이런 다음 책
 
 
다락방 2022-06-10 08: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내가 꼭 자뻑할라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오늘 페이퍼는 어쩐지 라파엘 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 흠흠. (앗, 이것은 좋아하라는 압박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6-10 12:06   좋아요 4 | URL
자냥이가 좋아합니다.

다락방 2022-06-10 12:17   좋아요 5 | URL
부끄러워요.. (수줍)

공쟝쟝 2022-06-10 13:09   좋아요 3 | URL
쟝쟝이두 좋아합😌

다락방 2022-06-10 13:51   좋아요 3 | URL
수줍수줍. ㅋㅋㅋㅋㅋ

라파엘 2022-06-11 00:04   좋아요 2 | URL
저는 물론 이 페이퍼를 좋아합니다만... 저는 사실 기본적으로 다락방님과 다락방님의 글을 아끼고 좋아합니다 😄

다락방 2022-06-13 07:43   좋아요 2 | URL
라파엘님이 제 글을 아끼고 좋아해주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훗. 좋은 월요일이네요. :)

웽스북스 2022-06-10 08: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를 어쩐지 웽님이 좋아합니다. 저 침묵 완전 좋아하는 책이거든요. 다락방님이 쓴 침묵 리뷰를 읽는 날이 다 오네. 아니 근데 이 책 내가 좋아할 것 같지 않았나요? (뭐래 자의식 ㅋㅋㅋ)

다락방 2022-06-10 10:26   좋아요 1 | URL
웽님 알라딘 글도 읽는군요! 저는 웽님 요즘 알라딘 글 읽는다고 생각을 못했어요. ㅎㅎ
이 책 정말 좋네요, 웽님. 웽님이 좋아할만 합니다. 저는 너무 늦게 알았네요. 그런데 진작 알았다면 제가 지금처럼 좋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좋은 책입니다, 웽님. 어서 끝까지 보고 싶어요. 결국 로드리고 신부는 신이 자신과 늘 함께 있었다는 걸 어떻게 깨닫게 되는지 궁금해요! >.<

mini74 2022-06-10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이 믿는것 거기에 힘이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밤편지 무지 좋아하는 노래. 아이유 가사도 참 잘 쓰는거 같아요 문학소녀 ㅎㅎ

다락방 2022-06-10 10:27   좋아요 3 | URL
저는 아이유도 아이유의 노래도 다 잘 모르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저 <밤편지>는 유독 쏘옥- 들어오더라고요. 뭔가 흥얼거리기도 좋고요. 그리고 가사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리면 저 먼 곳으로 간대요. 캬 - 소주 감성 아닙니까? (그렁그렁)

잠자냥 2022-06-10 13:18   좋아요 3 | URL
먹는 걸로 빠지는 다부장.....

다락방 2022-06-10 13:51   좋아요 3 | URL
ㅋㅋㅋ 사람 어디 안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6-10 0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기 시작하셨군요^^ 저도 조만간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는 책입니다!

다락방 2022-06-10 10:27   좋아요 3 | URL
거리의화가 님, 이 책 정말 좋네요. 저는 역사 쪽으로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어서 이 책을 제가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햇는데, 그거랑 별개로 아주 좋습니다. 거리의화가 님은 아마 저보다 더 잘 읽어내실 것 같아요. 이 책 좋아요 ㅠㅠ

persona 2022-06-10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엔도 슈사쿠를 명동에 바오로딸 서점있을 때 갔다가 알게 됐어요. 노벨문학상 후보 작품이라서 저도 궁금한데 침묵이라는 단어가 어째 너무 적막하여 한번도 구매해본 적이 없어요. ㅋㅋㅋ

다락방 2022-06-10 11:18   좋아요 3 | URL
저 아직 침묵 다 읽진 않았지만 참 좋아서 방금 전에 <깊은 강>도 주문해버렸습니다. ㅎㅎ
참 좋네요, 페르소나 님. 좋아요.

persona 2022-06-10 11:21   좋아요 2 | URL
사해부근에서랑 단편 몇개 밖에 모르는데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깊은강도 흥미로워보여요.

다락방 2022-06-10 11:48   좋아요 3 | URL
저는 엔도 슈사쿠 처음 읽어요. 앞으로 계속 읽어보려고 합니다. :)

새파랑 2022-06-10 11: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다락방님 세번째 작품에 실리겠군요~!! 저도 침묵 너무너무 좋더라구요 ㅜㅜ 인생책입니다 ㅋ 깊은 강은 더 좋아요~!!

다락방 2022-06-10 11:43   좋아요 6 | URL
오 깊은 강은 더 좋다니 기대가 큽니다. 침묵 너무 좋네요. 제가 신앙을 갖고 있느냐의 유무와는 별개로 참 좋은 책입니다. 소설 읽는 재미를 주는 책이에요. 크-

잠자냥 2022-06-10 12:07   좋아요 5 | URL
다부장님 깊은 강 정말 좋아요. 꼭 읽어보셈....
아니 엔도 슈사쿠 작품은 다 좋아요. 전 <침묵> 아껴둔 거였다능. 국내 출간된 엔도 슈사쿠 작품 다른 건 거의 다 읽음

다락방 2022-06-10 12:17   좋아요 5 | URL
네네. 리뷰 보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이거 읽으면서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크- 너무 기대가 큽니다. 이미 샀다구요. 주말에는 또 책탑 인증하겠네요. 껄껄..

라파엘 2022-06-12 14:36   좋아요 1 | URL
저는 도서관에서 <깊은 강>을 빌려왔습니다!! 오는 주말 쯤에 읽게 될 것 같아요 ㅎㅎ

다락방 2022-06-13 07:43   좋아요 2 | URL
저는 주말에 <깊은 강>을 배송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헝거 게임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좀 더 나중에 읽게 될 것 같아요. 라파엘 님, 읽고난 후 감상 남겨주세요!!

미미 2022-06-10 13:0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침묵>을 다른 책들과
연관해 이야기하신 부분들 특히 공감됩니다. 평화로울때 자신있게 외치던 신념이 얼마만큼 자신에게 깊이 뿌리내린것이었는지 시험당하는 순간들이 있죠. 그런 두려움을 엔도 슈사쿠는 너무 잘 아는것같고요.

<사무라이>도 비슷하지만 제생각에 더 뛰어난 작품이예요
다락방님도 분명 좋아하실듯합니다.
ㅡ침묵, 사무라이 읽고 울었던 미미*^^*

다락방 2022-06-10 13:53   좋아요 5 | URL
제가 미미 님 리뷰 읽고 이 책을 산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이 정말 좋습니다. 오랜만에 소설 읽는 맛을 주는 책이에요. 바로 이 맛에 소설을 읽는다! 하게 됩니다. 캬-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미미 님.
안그래도 엔도 슈사코 책을 더 읽어 보고 싶어서 검색했다가 <사무라이> 살까 <깊은 강> 살까 하다 <깊은 강>으로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민음사 책이길래 민음사 책장에 꽂아두기 더 나아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읽고 나면 사무라이도 사야겠네요. 아 좋은 책을 읽고 있어서 너무 기뻐요! >.<

단발머리 2022-06-10 14:14   좋아요 2 | URL
저도 미미님 <침묵> 리뷰 보고 엔도 슈사코에 관심 생겼거든요. 근데 저는 관심에서 끝나고 락방님은 지금 읽고 계시네요.
사무라이, 깊은 강으로 이어지는 추천 릴레이 어쩔까요? ㅎㅎㅎㅎ

다락방 2022-06-10 14:18   좋아요 3 | URL
최근에 되게 별로인 소설책들을 읽었었는데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게 되니 넘나 좋네요,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님도 엔도 슈사코 월드로 이제 합류하세요! ㅎㅎ

미미 2022-06-10 14:31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도 읽어보신다면 슈사쿠에 반하실거예요*^^* 다락방님도 말씀하셨듯이 소설읽는 맛이 있고 소설을통해 삶의궁극의 가치는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작가예요 추천릴레이는 계속되어야합니다ㅎㅎㅎ

공쟝쟝 2022-06-10 14: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읽는데 왜 영화 자산어보 생각나죠? ㅠㅠㅠ
저는 종교나 신의 존재 보다는 어떤 믿음에 대한 자기최면적 태도에 대해 생각이 많아요.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특히 비트코인. 그걸 믿는 자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 ㅋㅋㅋㅋㅋ. (아놔 지금 숭고한 어떤 미학에 다가 이상한 욕망 들이댄거지?) 하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과 이것(종교적 신앙)이 다를까요? 같을까요? (네 다를거 같네요 ㅋㅋㅋ 적어도 전자는 순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체험 만큼은..?.. 응?

잠자냥 2022-06-10 13:20   좋아요 4 | URL
악 비트코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10 13:32   좋아요 2 | URL
루나2.0에게 쓸쓸한 애도를.
참고로 저는 미약한 믿음을 철회하고 ㅋㅋㅋ 이제 비트코인을 둘러싼 이들의 심리 조절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주식도…)

다락방 2022-06-10 13:56   좋아요 5 | URL
저는 그것이 뭐가 됐든 나에게 좋다고 확신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걸 남에게도 굳이 주입하려고 하는게 진짜 너무 싫거든요. 위에 제가 인용해놓긴 했는데, 굳이 왜 일본까지 와서 자신의 신을 믿으라고 하고 있는것인가, 라고 생각하면 역시나 종교엔 회의적이게 돼요. 물론 ‘그런데 사람들이 믿겠다는 신이 누가 됐든 그들을 왜 박해하고 고문하고 굳이 못믿게 하려고 하나‘ 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어요. 이 모든것들은 행하는 자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걸 선이나 타인을 위한 마음으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냥 자기 삶 강요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굳건한 신념 이라는 것, 그게 대체 뭘까요. 그것은 왜 얼핏 좋아보여도 자기 파멸에 이르기도 하는걸까요. 아무튼 좋은 책입니다...(비트코인..... 에는 관심 없는 1인)

독서괭 2022-06-10 16: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크.. 지금 북플의 대세는 엔도 슈샤쿠인가요! 대화에 참으로 끼고 싶지만 이미 6월달 두권을 사버린 저는 손가락 빨며 지켜만 봐야겠군요.. ㅠㅠ 저는 무신론자 내지 불가지론자이지만 종교를 믿는 건 또 별개의 문제라고는 생각해요. 종교가 아니더라도 어떤 신념.. 신념을 가진 사람은 강해지지만 그게 좋은 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저는 약한 인간이라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기치지로에 역시 공감합니다.
다락방님 베트남에 정착하시면 저 찾아가도 되나요?>ㅁ<

잠자냥 2022-06-10 17:02   좋아요 5 | URL
엄허 거기서 정모 ㅋㅋㅋㅋ 예약한 사람 자냥, 라파엘, 괭... ㅋ

다락방 2022-06-10 17:11   좋아요 6 | URL
신념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거죠. 사실 저도 신념은 반드시 지켜야한다 그것을 내던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요, 필립 로스 읽다보니까 ‘그런데 그게 항상 선인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너무나 약한 인간...

독서괭 님, 물론입니다. 베트남에 정착하면 찾아오세요.
제가 괭님과, 잠자냥 님과, 라파엘 님과의 정모를 위해서라도 베트남에 정착하는 시간을 인생에서 꼭 갖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여정쌤이 미국 가서 친구들 불러 모았듯이 베트남 가서 친구들 불러 모을게요. 단, 내 친구들은 한국에서 와야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6-10 18:01   좋아요 5 | URL
씐난다~~😆😆😆
 
사랑은 왜이렇게 어려운가














코넬은 렌트비가 없어서 집에서 나와야했고 메리앤이 기꺼이 함께 있자 할 줄 알았지만 메리앤은 '너 그럼 고향으로 가겠네?' 라고 말을 했더랬다. (먼댓글 연결된 어제 페이퍼 참고) 나는 그들 사이의 빈부의 격차가 야속했고 서로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해 떠나는 상대를 두고 보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런 한편, 코넬은 코넬대로 자신에게 돈이 없다는 걸 말하는 게 싫었겠지만, 메리앤은 자신과의 관계를 감추고 싶어했던 코넬이란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랑 함께 머물고 싶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것 때문에 안타까웠고. 그래도 더 다가가보지, 한 걸음만 더 내디뎌보지, 했던게 어제였다면, 오늘은 '메리앤은 그럴 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메리앤은 자신있게, 혹은 거절의 두려움을 감당한 채로, '나랑 있을래?'를 물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메리앤의 삶은 위축되어 있었기에. 예쁘고 똑똑해도 가족들로부터도 사랑 받지 못하고 친구도 없었다. 사랑받지 못하는게 다 뭐야.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고 큰 마당이 있는 집에 살지만, 그녀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살았고 늘 그 폭력의 대상이 됐다. 엄마는, 그런 메리앤을 알면서도 내버려두었다. 


2011년 8월의 어느날, 오빠는 메리앤의 앞에 서서 메리앤을 한참 무시하다가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Don't tell Mam about this, he says. Marianne shakes her head. No, she agrees. But it wouldn't matter if she did tell her, not really. Denise decided a long time ago that it is acceptable for men to use aggression towards Marianne as a way of expressing themselves. As a child Marianne resisted, but now she simply detaches, as if it isn't of any interest to her, which in a way it isn't. Denise considers this a symptom of her daughter's frigid and unloyable personality. She believes Marianne lacks 'warmth', by which she means the ability to beg for love from people who hate her. Alan goes back inside now. Marianne hears the patio door slide shut. -p.65


엄마한테 입도 뻥긋하지 말고. 메리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알았어. 하지만 메리앤이 말한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을 것이다. 데니즈는 이미 오래전에, 남자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로 메리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메리앤은 어린 시절에는 저항했지만, 지금은,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마치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 그냥 거리를 둘 뿐이다. 데니즈는 이것이 자기 딸의 냉담하고 애교 없는 성격에서 비롯된 반응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메리앤에게 '따뜻한 마음'이 부족하다고 믿는데, 그녀에게 '따뜻한 마음'이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해달라고 애원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앨런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메리앤은 파티오의 미닫이문이 스르륵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책속에서



왜 엄마 데니즈는 메리앤을 향한 폭력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을까. 왜 메리앤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걸까. 그것도 어린시절부터.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사는 남자들은 메리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함께 사는 여자는 그것을 받아들였는데, 스무살의 메리앤이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마음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코넬이 아닌 남자친구에게 '나를 때려도 돼' 라고 자신도 모르게 얘기해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메리앤은 자신과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코넬 조차도 받아들이고 견뎠다. 코넬을 만나고 코넬과 섹스하면서 그러나 코넬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사이를 말하지 말라고 할 때 그렇게 했다. 메리앤이 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2013년 1월.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돌아온 메리앤은 긴장한다. 집에 손님이 오면 오빠 '앨런'은 예민해지는데, 손님들이 돌아간 후 설거지하는 메리앤에게 와서는 시험 잘봤다고 잘난척 하는 꼴이 볼만했다고 하는거다. 메리앤에게는 오빠랑 싸울 의지도 없고 오빠의 기분을 건드리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오빠 말이 맞다고 응수하는데, 한순간 오빠의 말에 웃었더니 오빠는 메리앤에게 침을 뱉어 버리는거다. 하아. 매리엔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역겹다고만 말하지만, 그러나 오빠가 부엌을 나간 후 계속 설거지를 하던 메리앤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메리앤에게 다가와 용돈이 든 봉투를 내밀고 네 앞날이 걱정이라 말한다. 아직 대학생인 메리앤에게 앞날이 걱정이라니. 게다가 시험 점수도 좋은 메리앤인데. 메리앤은 아직 자신에게는 많은 길이 열려있다고 하지만, 대학은 너를 보호해주지만 사회(workplace)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거다. 



Well, I doubt anyone in the workplace will spit at me over a disagreement, said Marianne. It would be pretty frowned upon, as I understand. 

Denise gave a tight-lipped smile. If you can't handle a little sibling rivalry, I don't know how you're going to manage adult life, darling, she said.

Let's see how it goes.

At this, Denise struck the kitchen table with her open palm.

Marianne flinched, but didn't look up, didn't let go of the envelope.

You think you're special, do you? said Denise.

Marianne let her eyes close. No, she said. I don't. -p.143


글쎄, 직장에도 의견이 다르다고 나한테 침을 뱉을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 상식으로는, 그건 꽤 비난을 살 일인데.

데니즈는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남매간의 사소한 경쟁심도 감당 못하면, 성인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꾸려나가려고 그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죠.

이 말에 데니즈가 활짝 펼친 손바닥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메리앤은 움찔하기는 했지만, 엄마를 쳐다보지도, 봉투를 놓치지도 않았다. 

너는 네가 특별한 줄 알지?

메리앤은 두 눈이 스르르 감기게 내버려두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책속에서



어릴때부터 자라온 집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이 끊임없이 '넌 니가 똑똑한 줄 알지?', '넌 따뜻하지 않아', '넌 니가 특별한 줄 알지?' 하고 말해오는데 어떻게 거기서 '나는 빛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다' 같은 걸 생각할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 있으면 긴장하고 위축되고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서 손을 떠는데, 움찔하게 되는데, 그런 틈에서 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특별히 사랑할 수 있다고, 나를 그저 나라는 이유로 좋아할 수 있다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 이 부분을 읽는데 메리앤이 코넬에게 '그러면 너 집에 가겠네?'라고 말한게 갑자기 너무 훅 다가오는거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겠어. '나라면 이럴텐데' 라는 말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내가 아닌데. 한 사람에게는 나름의 역사가 있고, 그것이 지금의 그 사람을 만들었고 그래서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건데. 아 너무 아프다 진짜.

대체 왜그래, 왜.  이미 충분히 똑똑한 아이를, 학교에 가면 모두들 똑똑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왜 집에서는 너는 안똑똑해 너는 안특별해 하면서 기를 죽이고 위축되게 만드는거냐고.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메리앤은 자기가 충분히 사랑받아도 된다고 생각을 못하잖아. 네가 아무 이유없이 나를 선택할 수 있다, 네가 아무 이유없이 나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을 못하잖아. 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 오늘 부분 읽다가 저 첫번째 인용문, 그러니까 이 책의 초반에, 엄마가 메리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받아들였다는 부분이 자꾸 생각나서 오늘은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주 분량이 많아서 오늘 좀 읽어둘라 그랫는데 너무 아프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기분을 폭력으로 표현하고, 메리앤의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받아들이고. 이게 자꾸 생각나서 미치겠는거다. 어떤 생각들은 금세 잊혀지면 좋겠는데 그렇질 않다. 책을 읽는 내가 이렇게나 생각나는데, 심지어 그걸 겪고 살아온 메리앤은 그걸 어떻게 자기 몸에서, 마음에서, 머리에서 지워낼 수 있을까. 지금의 메리앤을 형성한 것들 중에는 그런 폭력의 기억들이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할텐데. 한 걸음 내딛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물론 용기지만 메리앤에게는 더 큰 용기다. 너는 너네 집으로 가고 싶겠지? 라고 말하는 메리앤의 마음이 너무 아프다. 


메리앤은 괜찮아질까? 서른이 되면 좀 나아질까? 마흔이 되면 나아질까? 얼른 독립해서 더이상 집에 가지 않는 생활을 살았으면 좋겠다.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오빠가 있는 곳으로, 그런 폭력을 내버려두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서도 너무나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나는 충분히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어제 꾸었던 꿈(역시 먼댓글 연결 페이퍼)의 한 장면 역시 계속해서 생각난다. 

꿈속에서 만나지도 않았고 대화하지도 않았지만, 친구를 통해 그가 했다는 어떤 말을 듣고 그 순간 그에게 반했었던 기억이 계속 났다. 현실에서도 나를 수차례 반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꿈에서도 나를 반하게 하는구나. 현실에서 매력 터지면 꿈에서도 매력 터지는건가. 오늘은 이게 자꾸 생각나서, 그런데 꿈이라서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꿈인데 대체 왜 현실에서 잊혀지질 않아 나를 이렇게 만드는걸까.


나는 오늘 잘 수 있을까?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구나 ㅜㅜ

잘 시간 지났잖아. 우앙 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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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7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리엔 너무 불쌍해요. 아 진짜 저런 망할놈의 집구석은 빨리 탈출해야 하는데....

다락방 2022-06-08 08:08   좋아요 1 | URL
독립이 가장 간절하지만 그런만큼 독립이 또 가장 힘든 상태인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가족이라니, 너무 절망적이죠 ㅠㅠ

persona 2022-06-07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눈 꼭 감고 잘 자요!
가정폭력 너무 아프네요.

다락방 2022-06-08 08:09   좋아요 2 | URL
어휴 어제 잠들기 너무 힘들었는데,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게 부랴부랴 밤에 글을 쓴 이유입니다. 어떤건 쓰지 않으면 내내 안에 있어서요 ㅠㅠ
고마워요, 페르소나 님.

2022-06-0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8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8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8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부분 읽기 너무 힘들어서 엄청 빨리 책장을 넘겨버렸던 기억이 나요.. 다른 몇몇 장면들도요. 올라오는 노멀 피플 글 보면서 원서로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읽는 내내 힘듦을 감당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ㅠ

다락방 2022-06-08 08:12   좋아요 1 | URL
저는 몇해전 번역본 읽었을 때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거든요. 서로에 대한 확신 없음, 빈부격차, 가정폭력에 대한 키워드를 다 알고 있었고 안타까웠지만 이렇게까지 가슴 아프진 않았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번역본과 원서라서 다른건가 아니면 그 사이에 시간이 나를 다르게 만든건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시 읽기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라파엘 님. 아픈거 알면서 또 갈 필욘 없지 않을까요?
조만간 샐리 루니 신간이 번역되지 않을까요? 샐리 루니의 신간을 읽는 쪽이 어떨까, 조심스레 제안해봅니다. 왜냐하면 저도 읽을 거라서요. 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2-06-08 0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코넬 용서했다가.... 다락방님 이 페이퍼 읽으니 다시 코넬이 미워지네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 이해하지만... 전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투명인간 취급 받았던 여자 마리앤보다 돈 없는 남자 코넬이 훨씬 유리한 위치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에 마리앤이 당한 육체적, 정서적 학대를 포함하자면.... 아, 코넬 원망하고 싶네요. 흐미

다락방 2022-06-08 08:15   좋아요 3 | URL
제가 어제 단발머리 님의 이 댓글을 그대로 페이퍼에 썼다가 지웠어요. 코넬이 안됐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네, 하면서요. 그래서 적었다가, 아니 그런데 누구나 다 자기 손에 가시가 제일 아픈거 아닌가 싶으니까 지우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 당시에는 코넬이 아직 메리앤의 이 상황을 모르죠. 가족 얘기를 하지 않고 사이가 안좋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요. 번역본을 먼저 읽었던 제가 살짝 스포일러 하자면 그러나, 가정폭력의 생존자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나중에요. 어휴.. ㅠㅠ

단발머리 님, 저 왜이렇게 아프죠? ㅠㅠ 어휴 이 댓글 쓰는데 너무 눈물이 나네요 ㅠㅠ 힝 ㅠㅠㅠ

단발머리 2022-06-08 08:1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코넬도 파랗게 젊고 마리앤의 사정을 모르고… 그렇게 사랑은 오해를 타고 빗나가네요. 울지 마요, 다락방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ㅠㅠㅠ from 김광석 ㅠㅠ

다락방 2022-06-08 08:31   좋아요 3 | URL
그래서 사랑은 그저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세상을 받아들이는 일인것 같아요.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어긋나고 그래서 고통스럽고... 역시 사랑은 비효율적이라는 오늘 트윗에서 본 구절이 생각나네요. 그런데도 다들 열심히 사랑하고 살고 있네요....

거리의화가 2022-06-0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전 글 읽고 돌아와서 이 글을 읽는데 흠... 메리앤이 코넬에게 했던 말이 이해가 되고도 남네요. 에효~ 둘 사이에 빈부격차가 문제도 크지만 메리앤이 저런 환경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엄마도 오빠도 답이 없네요. 저런 집은 있어봤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소모만 될 뿐일텐데요ㅠㅠ 그렇다고 가족인데 탈출도 못하고. 휴... 더 못 읽으실만하네요ㅜㅜ

다락방 2022-06-08 09:2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거리의화가 님. 어제 이 부분 읽는데 그간 메리앤의 행동이 다 이해가 됐어요. 충분히 똑똑한 사람임에도 가까운 사람들이 계속 너는 못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을까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 한편, 코넬의 엄마는 매우 좋은 분이신데, 그런 코넬의 엄마를 보면서 부러워도 했을 거고요. 메리앤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지점을 코넬의 엄마는 알아봐줘요. 그래서 멍청한 코넬에게 잔소리하죠. 너 메리앤한테 그렇게하지 마, 라고요. 물론 그건 인간적인 도리로도 그러면 안되는 거였고요.
아휴 어제는 정말 너무 힘들었네요. 나중엔 메리앤이 어떤 환경 속에 자라왔는지 코넬이 알게 되는데, 그걸 알고 싶어서라도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06-0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아픈 소설이군요??ㅜㅜ
완독하고 나서도 한참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시겠어요.
행복하게 결론이 맺어져야 그나마 속 편한데...^^
요즘은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잔상이 남아, 다음 책을 잡고 읽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다락방님은 푸욱 빠졌다가 또 다음 책에도 순식간에 몰입해서 푸욱 빠지시고...또 다음 책에도...아마도 공감대와 사고 확장의 폭이 넓으신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도서관에 가면 이 책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예전에 책 제목을 보긴 했었는데 빌려 오려다 대출 책들이 너무 많아서 읽길 포기했었는데 아쉽군요^^

다락방 2022-06-08 13:43   좋아요 1 | URL
저 이미 번역본으로 다 읽은 책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네요. 다 아는 얘긴데도 왜이래요 진짜 ㅠㅠ
얼른 읽고 다른 좀 더 밝고 통통 튀는 걸로 읽고 싶어요. 행복하고 싶고 기쁘고 싶네요. 에휴..

제가 지금 이걸 읽을 때가 아닌데, 가부장제의 창조 읽어야 되는데, 머릿속엔 가부장제의 창조를 넣어두고 몸은 다른 책들 읽고 있고.. 초조합니다, 책나무 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읽는나무 2022-06-08 18:39   좋아요 0 | URL
초조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락방님은 할 수 있어요!!!
이제 겨우 9일이에요^^
이번 주는 원없이 다른 책 읽으셔도 무방하실 거에요.
다음 주부터 시작하셔도 진도 빡~~!!!!
일찍 시작하여도 세월아 내월아~ 전 그렇네요?ㅋㅋㅋ
하지만 다락방님은 할 수 있어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반드시 내가 처리해야 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일 때문에 저기 먼 데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러나 회사에 휴가를 길게 낼 수 없어 그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은 회사 일이 아니라 그렇다고 내 일이 아니라, 내가 아는 그 사람에 관련된 일이었다. 그게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데 반드시 내가 해야 했다. 나만이 할 수 있었다. 내가 그 능력과 내가 그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훌쩍 그곳으로 급하게 갔지만 그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그는 큰 빌딩의 한 층에 살고 있었고 그곳에는 나의 상황과 나의 마음을 알아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친구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알라디너였다.) 친구는 나를 맞아주고 내가 일을 해결하게 도와주었다. 나는 그곳에 있었던 만큼 그를 만나고 싶고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여기에 있음을, 여기에 와 있음을 그에게 알리는 것 뿐이었다. 우연인 척 내가 여기 있음을 그에게 알릴 수는 있었지만, 한순간 우리는 마주쳤지만 인사도 할 수 없었고 나는 얼른 두려운 마음에 돌아섰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그가 내일 캠핑을 가서 하루 자고 올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내일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더이상 만나지 못하는건가. 내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기에 다시 오게 될지도 알 수 없고 온다면 언제 올지도 알 수 없는데, 오늘이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데 이렇게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건가. 나는 초조해졌다. 그와 나 사이에는 문이 있었다. 나는 문 밖에 있었고 그는 문 안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너무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은 나에게나 용기이지 상대에겐 실례일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문을 두드릴 수도 열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문을 열고 나온다면 우리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오늘을 이야기로 마무리 할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우연을 기대했다. 그와 내가 마주칠 우연. 그것만이 우리를 잠깐의 만남으로 혹은 대화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연에도 의지는 필요했다. 우리가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을 위해서는 문 안의 그가 문을 열고 나오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필요했다. 그 의지는 그러나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것이 아니라 그의 것이었으니까. 그의 의지까지 내가 어쩔 순 없는 것이었다. 어쩌지, 이 밤이 끝이다. 이 밤이 지나면 우리는 영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주하지도 못한 채로 나는 잠에서 깼다.




깨고 나서 한참을 마음이 아팠다. 조금만 더 시간을 줘보지 왜 벌써 깼을까. 조극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어쩌면 만났을지도 모르는데. 너무해. 언제 꿈을 깨버릴지 모르니 나는 진작에 용기를 냈어야 했던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용기는 너무 늦다. 너무 늦으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다.


이 슬픔 꿈을 꾸며 뒤척이게 됐던 것은 최근에 읽은 <NORMAL PEOPLE>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난주 분량을 읽으면서 너무 아팠는데, 아마도 그래서 나는 이렇게나 슬픈 꿈을 꾸게 된 건 아닐까.

















대학에서 재회한 메리앤과 코넬은 다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누가 니네 같이 자는 사이지? 물어도 부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메리앤도 코넬도 서로와 있을 때 자신이 가장 자신다워진다는 것도 안다. 우린 역할극을 할 필요가 없이 서로에게 편하게 녹아든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코넬이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코넬에게 근무 시간을 줄일 것을 요청했다. 장사가 잘 안돼 언젠가 문을 닫을 것이라 짐작 했지만 이렇게 코넬의 근무 시간을 줄여버리면 버는 돈이 더 적어진다. 지금도 친구랑 사는 방값을 간신히 내는데 이를 어쩐담. 대부분의 날들을 메리앤의 집에 가서 시간을 보냈고 그 때 메리앤이 식사값도 댔고 맥주도 샀다. 영화티켓도 메리앤이 결제한다.

메리앤은 이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한 적도 없고 불만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걸 코넬도 안다. 그리고 지금 방값을 더이상 낼 수 없어 메리앤에게 '나 다시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너랑 좀 지내고 싶은데'하면 메리앤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그러라고 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말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둘이 만나고 또 오래 함께 지내는 사이여도 좀 어렵다. 메리앤은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사람이고, 계층이 다르다고 코넬은 느끼는 터라, 그 말을 꺼내는 것은 큰 마음먹기가 필요하다.


나는 롯데리아에 앉아 미숫가루를 시켜 먹으면서 이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의 노동자모드가 장착되는 걸 느꼈다. 이상하다, 이것은 너무나 이상하다. 왜 어떤 사람은 일을 하는데도 방값을 낼 수 없을까. 왜 어떤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데도 맥줏값이며 밥값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을까. 돈을 쓰려면 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벌려면 노동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왜, 노동하는 코넬은 돈이 없고 노동하지 않는 메리앤은 돈이 있는걸까. 왜. 왜 노동하면서도 비참함을 느껴야 하지? 왜?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세상은 이따위지? 


이건 비단 코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그걸 '금수저'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돈을 갖고 있다. 굳이 노동하지 않아도 매일 노동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더 좋은 것을 사고 더 맛있는 것을 먹는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아도 게속 큰 돈이 들어오고 어떤 사람들은 노동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다.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열심히 노동하는데 왜 비참해야 하지. 열심히 노동하는데 왜 아쉬운소리 해야 하고, 열심히 노동하는데 왜 빈부격차를 느껴야 하지? 왜?



자, 코넬은 어렵지만, 메리앤에게 얘기한다. 코넬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나는 룸메의 집에서 나와야 하고 렌트비를 벌 때까지 너랑 좀 있고 싶은데, 였다. 그러면 다음 수순은 당연히 메리앤의 '그렇게 해' 였다. 


Hey, listen. By the way. It looks like I won't be able to pay rent up here this summer. Marianne looked up from her coffee and said flatly: What?

Yeah, he said. I'm going to have to move out of Niall's place.

When? said Marianne.

Pretty soon. Next week maybe. -p.123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있잖아, 나 이번 여름에는 렌트비를 댈 수가 없어. 나의얼의 집을 나와야 해. 다음주에는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아, 라고 코넬이 말한다. 그러나 그 다음의 상황은 코넬의 짐작대로 되질 않는다.


Her face hardened, without displaying any particular emotion. Oh, she said. You'll be going home, then. -p.123


메리앤은 코넬의 말에 '우리집에서 있어'라고 하질 않고 '오, 그러면 너는 너네 (엄마가 있는)집으로 가겠네' 라고 하는거다. 이에 코넬은 당황한다. 이게 아닌데. 그런데 거기다 대고 이제와 자신의 뜻을 밝힐 수가 없다. 코넬은 숨이 막히는 걸 느끼면서 '응 그렇겠지' 한다. 메리앤은 자신이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보면서 '너 그러면 9월에 돌아와야겠네' 하고 코넬은 그렇다고, 학교는 계속 다닐거라고 말한다. 



So you'll only be gone three months.

Yeah.

There was a long pause.

I don't know., he said. I guess you'll want to see other people, then, will you? -p.124



너 3개월 동안 없네, 하는 메리앤의 말과 이어지는 잠깐 동안의 침묵. 그리고 코넬은 자신이 옆에 없을 그 3개월의 시간동안 메리앤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을 한다. 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을 수도 있겠지? 


Finally, in a voice that struck him as truly cold, Marianne said: Sure. -p.124



그래서 둘은 헤어진다. 둘다 헤어질 생각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는데 한순간에 헤어지게 된다. 둘다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것도 알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너같은 사람은 없어' 라고 하면서도 헤어지게 된다. 코넬은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울고 싶어한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진행되었지? 너무 울고 싶다. 이게 아닌데. 그런데 너무 늦었어. 아니, 언제 늦어버린거지? 왜 늦었지? 울고 싶다. 그리고, 나도 울고 싶다. 이 짧은 대화가 진행되는 방식이, 흐름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마음과 다른 말들을 하게 되는 그들이 너무 아파서. 이미 벌어진 일이니 '만약'은 부질없다지만, 만약 코넬이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면, 만약 코넬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돈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도 된다. 굳이 힘들게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사실 나 렌트비가 없어, 라고 말을 꺼내는 일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그런데 상대가 '그러면 너 집에 가겠네?' 라고 해버리는데에야 더 어떻게 대응한단 말인가. 


메리앤으로서도 당황했다. 메리앤이라고 이 모든 일들이 쉽고 좋았던 게 아니다. 만약 메리앤이 들은 말이 '나 렌트비가 없어서 나와야 돼' 가 아니라, '나 렌트비가 없어서 머물 곳이 필요한데 너랑 같이 있어도 될까?' 였다면 메리앤은 거침없이 고민없이 그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리앤이 들은 말은 렌트비가 없어서 집을 나와야 한다는 거였고, 메리앤으로서는 그 말에서 '나랑 있고 싶어한다'는 걸 캐치할 수가 없다. 왜? 메리앤으로서는 이미, 코넬이 자신을 부정했던 시간들을 갖고 있다. 자신을 만나면서도 자신을 만난다는 걸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코넬을 알고, 자신을 만나면서도 졸업파티에는 다른 여자를 데려갔던 코넬을 안다. 메리앤은 코넬을 좋아하지만 코넬이 자기가 좋아하는 크기만큼 자기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랑 있자' 라고 하는 데에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감히 거기까지 생각할 수도 없다. 코넬이 나랑 머물고 싶어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메리앤으로서는 할 수가 없다. 그들에겐 그들을 감추고자 했던 코넬이라는 과거가 있다. 


결국 서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들은 어긋난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그만큼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것 같아. 따지고보면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같이 자는 사이냐, 만나는 사이냐에 '그렇다'를 할 뿐, '우리는 연인이다' 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네 연인이지?' 라는 물음에는 '아니야' 라고 말하니까. 오픈 릴레이션십? 하아- 그건 결국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게 만든다. 어디서 쿨한 척이야 쿨한 척은. 세상에 쿨한건 없다니까? 쿨한 척 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만약 코넬이 메리앤의 사랑을 확신했다면 그리고 메리앤이 코넬의 사랑을 확신했다면 이들은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이들이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한마디를 더 할 수가 있었다.


나 갈 곳 없는데 너랑 있게 해줄래? 였다면 메리앤은 응, 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코넬에겐 좀 더 자신감과 확신이 필요했다.

나 갈곳 없는데, 라는 말을 들은 메리앤이 코넬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걱정하지 말고 나랑 있어' 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랑 있자는 제안이 그에게 부담이 될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나랑 있는 걸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거기에서 거절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없었을 테니까. 그들이 진작부터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더라면 이야기의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고, 코넬은 아이처럼 울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이제 그들은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기로 한것이다. 맙소사.

게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 라니. 만약 코넬이 3개월간 기다려줘, 라고 했다면 메리앤은 응 이라고 했을 거다. 메리앤으로서도 다른 사람 만나고싶지? 라는 말을 들은게 얼마나 아팠을까. 물론이지, 라고 답을 하는 그 마음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그런 말을 들을거라고 메리앤도 생각하지 못햇을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잘못했고 그런데 서로를 탓한다.


메리앤은 헤어지고난 후 결국 '내가 맥주며 밥이며 다 사줬는데 날 차버리네' 라고 생각하고

코넬은 헤어지고난 후 결국 '다른 사람 만나고 싶어서 나랑 헤어지길 기다렸네' 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이렇게나 어긋날 일인가. 그런데 이 어긋남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보면, 거기엔 빈부의 격차가 있는 거다. 이 사랑이 헤어지는 것은 서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인게 아주 크지만, 그러나 애당초 서로에 대한 확신을 확인할 필요가 뭐가 있느냔 말이다. 같은 정도의 경제적 상황이었다면 확인하고 점검하는 순간 조차 필요가 없었을텐데. 사귀는 동안엔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 헤어지고 나면 너무나 명백한 헤어지는 이유가 된다. 코넬은 렌트비를 댈 수 없었고 결국 그 일은 '너 다른 사람 만나고 싶겠네?' 라는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아 너무 아프다. 진짜 너무 아프다. 나는 너무 아팠다. 코넬이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울고 싶다고 했을 때,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됐지? 라고 절망할 때 같이 절망했다. 게다가 롯데리아의 미숫가루라떼는 너무너무너무너무 맛이 없었다. 정말 맛없었다. 여러분 먹지마요, 비추비추. 



사랑이 너무 어렵다. 사랑은 너무 어렵다. 사랑은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더 어렵다. 우리의 모든 상황이 비슷했다면 이렇게까지 어렵지 않았을텐데. 한쪽은 돈이 너무 없고 한쪽은 돈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든 삐끗한 결말을 맺고야 만다.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 사이가 나빠지면 바로 그 문제가 된다. 내가 돈 다 썼는데 날 버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렇지만 사귀는 동안 너무 좋았잖아. 일 끝내면 내 집으로 와서 나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섹스도 하고 서로를 품에 안고 잠드는 시간들이 좋았잖아. 그러면 그냥 응 맞아 우리 사귀어, 우리가 연인이야, 라고 했으면 좋았잖아. 그랬으면 우린 연인이야 라는 서로에 대한 소속감이 있었을 것이고, 나는 저 사람의 연인이고 저 사람은 나의 연인이다 는 이야기의 흐름을 완전히 다르게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고 이 빵꾸똥꾸들아.


코넬은 왜 일을 해도 돈이 없을까. 왜. 세상은 뭘까.

그리고 이 철없는 젊은이들이여. 너네 연인이야? 라는 물음에는 왜 계속해서 아니라고만 해? 심지어 코넬은 엄마가 너네 헤어졌니? 라는 물음에 우리 사귄적 없다 라고 해버린다니까. 도대체 뭐하는 시추에이션이니, 너네... 그런 한편, 그러나 우리가 사귀는 것을 메리앤의 집에선 허락하지 않을거야, 우리에겐 계급 차이가 있으니까, 라고 코넬은 생각한다. 너가 부자이고 내가 가난한 것, 이것은 사랑이라고 해도 극복하기 힘든 문제이다 나는 우린 계층이 다르다고 생각할만큼 부자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어마어마한 부자, 그러니까 그레이 같은 부자를 만난다면 어떤 마음일까? 계속 일할 것이다. 사랑이란 건 어느 순간 돌변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얘들아, 부자 연인 만나도 일을 놓지마. 무인도에 떨어져도 살아갈 길을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해!!



자, 이들 관계의 종료는 누가 말한걸까. 이 관계의 끝은 누가낸걸까?

코넬로서는 이 관계의 종료를 메리앤이 선언한 셈이다.

메리앤으로서는 이 관계의 종료를 코넬이 선언한 셈이다.

'우리 그만 만나자' 라는 말을 한 사람이 상대를 찬 게 아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면, 종료의 말은 내가 했을지언정 종료 자체는 상대가 한 것일 수 있다. 게다가 그 상황도 그 말도 모든게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코넬로서는 이 관계의 종료를 메리앤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메리앤이 원한건 이 관계의 끝이 아니었다. 메리앤으로서도 이 관계의 종료를 코넬이 했다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러나 누구보다 메리앤과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이 코넬이다.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더 오해를 자주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오해는 결국 우리를 아프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를 아프게 만든건 상대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이 행한 우리의 오해이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의 후속편 <일곱 번째 파도> 생각도 났다. 에미에게 좋은 게 무엇인지, 에미의 행복을 위한게 무엇인지 레오는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에미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다. 이 점을 레오는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을 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 자신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어요. 유감이고 불행이에요. 기회를 놓쳤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p.242)








메리앤과 코넬은 상대에게 가장 좋은 길을 생각한다면서 결국 상대에게 가장 좋은 길을 내던지고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그들 자신이 가장 좋은 길이다. 그런데 아직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 점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지만, 그러나 그들은 아직 젊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빨리 그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고작 대학생이잖아. 아직 대학생이잖아. 나를 봐, 나는 여전히 기회를 놓치잖아.



나 역시 어떤 오해로 상대의 손을 놓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아마 상대 역시 어떤 오해로 나와의 관게를 종료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에미는 자신에게 좋은 길을 알았다. 나 역시 나에게 좋은 길을 알았다. 에미의 상대도 그걸 몰랐고 나의 상대도 그걸 몰랐다. 유감이고 불행이다.



샐리 루니를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러고보면 샐리 루니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빈부 격차를 표현했다. 이미 모든 걸 다 갖춘 삼십대의 남성과 아버지가 용돈주는 걸 까먹으면 밥값도 없는 대학생 여주인공. 어쩌면 샐리 루니가 천착하는 것은, 이 사회의 빈부격차로 인해 어긋나는 관계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빈부격차이지만, 그 빈부격차로 인해 우리가 서로를 오해하고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결국 관계의 종료를 선언하는 일. 종료를 바란 적 없으나 종료가 되었던 일.



메리앤과 코넬이 너무 슬프다. 바보들, 이 바보들아!!!




토요일에는 친구들을 만났다. 코로나로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해 지적인 대화가 늘 그리웠던 터, 친구1은 자리에 앉자마자 한나 아렌트 얘기를 꺼냈고, 친구2는 헤어지는 순간에 양자 역학 얘기를 했다. 저기, 친구들아, 내가 지적인 대화를 원했지만 이렇게까지 지적인 걸 원한 건 아니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잔나비 최정훈을 좋아하게 되었다. 너무 어려서... 좀 거시기하지만 소울메이트에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이 노래 들어보니 이 가수는 아마도 시집을 종종 읽는가보다 싶다. 감성은 나랑 결이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좋은 소울메이트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소울메이트 필요하면 (비밀)댓글 달아주세요. 저는 진짜로 엄청나게 좋은 훌륭한 소울메이트가 된답니다? ㅋㅋㅋㅋㅋ 세상 천지 다 뒤져봐라, 나같은 소울메이트가 있나. 없다. 

물론, 당신도 괜찮은 사람이어야만 우리 사이에 소울메이트가 가능하다.


비도 멎었고 낙지볶음이나 포장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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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대가 아닌 고독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강인한 우정(혹은 이상주의)에 대하여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06-07 10:26 
    자리에 앉자마자 왜 한나 아렌트에 빠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각자의 치임 포인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이데거 쓰레기!를 도합 열 번 씩은 외치고… 벤야민 이야기를 하다 갑작스럽게 도나 해러웨이로 대화의 주제가 이어지면서 우리 앞에 구워지고 있는 것이 삼겹살이라는 사실에 잠시 아이러니를 느끼다가… 또… 에 … 그러니까 도나의 심오함은 너무도 심오해서 <육식의 성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입장과는 핀트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고
  2. 마음이 너무 아프다 ㅜㅜ
    from 마지막 키스 2022-06-07 22:26 
    코넬은 렌트비가 없어서 집에서 나와야했고 메리앤이 기꺼이 함께 있자 할 줄 알았지만 메리앤은 '너 그럼 고향으로 가겠네?' 라고 말을 했더랬다. (먼댓글 연결된 어제 페이퍼 참고) 나는 그들 사이의 빈부의 격차가 야속했고 서로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해 떠나는 상대를 두고 보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런 한편, 코넬은 코넬대로 자신에게 돈이 없다는 걸 말하는 게 싫었겠지만, 메리앤은 자신과의 관계를 감추고 싶어했던 코넬이란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
 
 
singri 2022-06-06 1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잔나비 최고

다락방 2022-06-06 13:21   좋아요 1 | URL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하아-

미미 2022-06-06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혹시 저 또 출연한건가요?(기대ㅎㅎ)
어떻게 꿈이야기가 이렇게 흥미진진한거죠? 다락방님
책에서도 느꼈지만 소설가적
재능이 있으시다고 생각해요!
속독하게 만드는 흡입력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재능.
저는 꿈이 제법 스펙타클한 편인데 기억이 잘 안나요😭

다락방 2022-06-06 13:22   좋아요 4 | URL
네, 맞습니다, 미미님! 미미님 왜 자꾸 제 꿈에 나오시는거죠? ㅋㅋㅋ 저 이거 쓰면서 ‘미미님은 아마 본인 얘긴줄 아실 것이다‘ 했어요 ㅋㅋㅋㅋ 이상한 촉이랄까 ㅋㅋㅋㅋㅋ 꿈에서 저를 도와주셨어요! 감사한 분 ㅠㅠ
저는 소설가가 오래 되고 싶었으나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잘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므로 소설가가 되는 꿈에는 세이 굿바이를 합니다.. 흑흑. 그렇지만 말씀 감사해요!!

공쟝쟝 2022-06-06 14: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같이 절망하다가 미숫가루 라떼 맛없어서 더 절망스러운 거 너무 알 것 같다... 근데 태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잔나비씨... 당신...... ㅋㅋㅋㅋㅋ 다락방의 소울메이트가 되시려면 나이 마흔 넘어서도 죽을 때까지 매일 일기를 쓰셔야해요. 거기에 전완근 등근육 있어야하는데... 쟈긴 목소리가 좋으니까 일단 근육 잠시 빼놓고 뇌근육부터.. 단련.... 헝.. 근데 혹시 같은 업계 너드커넥션 서영주랑 친해요? 난 그분이 좋은 데..혹시 소울 메이트 되면 나 다락방 친구니까 나 서영주 소개시켜줘. 난 소울메이트는 필요없고 고막 남친... .
코넬, 매리엔.. 이 미련한 애들아......... 근데............. 니들은 나이라도 어리지....... 왜 우린... 나이 먹고도 비슷한 짓(자기 기준대로 상대방을 생각해버리는 일)을 반복하니.. 에미와 레오처럼 ㅋㅋㅋ 사랑 어렵다. 계급 어렵다. 역지사지 어렵다. 노동 어렵다. 그리고.. <말과 사물>.. 어렵다............

다락방 2022-06-06 14:42   좋아요 5 | URL
잔나비 최정훈이래요. 아놔 ㅋㅋㅋ 좋아한다면서 이름도 제대로 모르다니, 나야말로 빵꾸똥꾸다 증맬루! ㅋㅋ 페이퍼도 최정훈으로 수정했어요. 그런데 최정훈이 이름이 더 낫다 ㅋㅋㅋ 뭐래 ㅋㅋㅋㅋ 근데 목소리 좋더라고요. 오늘 시장 가는 길에 노래 몇 곡 들었는데 목소리가 좋았어요. 노래 부르는 목소리. 저는 노래 부르는 목소리 권인하 스러운 건 너무 싫어가지고 ㅋㅋㅋ 근데 잔나비 노래 목소리 좋더라고요. 아오 ㅋㅋㅋㅋ 아 몰라 ㅋㅋㅋㅋㅋㅋㅋ 부끄럽다 ㅋㅋㅋㅋㅋㅋㅋ 서영주는 또 누구람? 있어봐, 내가 최정훈 하고 소울메이트 되면 우리 쟝쟝이한테 서영주 좀 소개시켜주자, 할게요. 딱 기다리고 있어봐요.

사랑 어려워. 코넬 메리앤 아직 넘나 젊어. 젊고 빈부의 격차가 있으니 사랑이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나이 들어도 어려운데 ㅠㅠ 사랑도 어렵고 노동도 어렵고 공부도 어렵고 인생이 어렵다... 에휴.........

공쟝쟝 2022-06-06 14:40   좋아요 3 | URL
아 못살아 진짜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잔나비야 미안하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근데 이름 어차피 못외울거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서영주...!!! 너도 (이 댓글 달려고) 검색해서 알았어 ㅋㅋ 곧 까먹을 이름임 ㅋㅋㅋㅋ 아마 내일은 기억 못할거야.. 미안하다..증멜루...ㅋㅋㅋ
내가 라가슈, 뒤메질, 이폴리트, 캉길렘 이런 사람들 이름은 외워도 (누구냐고요? 푸코의 스승들입니다) ..... 가수 이름은 절대 못 외우지... 노래를 100번 들었어도...... 가수가 누군지를 몰라 나는... 하아.... 미쳐버릴 정도로 고급진 뇌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6-06 17:51   좋아요 2 | URL
잔나비.. 가방 속에 언제나 시집 넣고 다니는 청년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넣고 다니는 쪽을 더 선호하긴 하지만..
잔나비야, 잘 살자. 흠흠.

공쟝쟝 2022-06-07 10:15   좋아요 1 | URL
그래 잔나비.. 되도 않는 시인 되겠다고 깝치다가 박읍읍 같은 관종 되지 말고 응?! 조심해!!! 가사 잘쓰니까 그거 계속써~ 누나도 오늘은 니 음원으로 스밍간다.

다락방 2022-06-08 08:07   좋아요 2 | URL
앗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인데요. 글 쓴다고 깝치지 마라, 그게 인생 똥칠하는 지름길이다... 하는 거요. ㅋㅋㅋㅋㅋ

2022-06-06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6-06 13:02   좋아요 1 | URL
으앗 감사합니다! 지금 최정훈 으로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mini74 2022-06-06 13: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헤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격차ㅠㅠ자격지심에 무시하는 것 같아서 차마 말을 못해서 자존심에. ㅠㅠ 왠지 사랑마저 돈이 있다면 쉬워질거 같아 씁쓸하지만 또 돈이 넘쳐나도 헤어지고 울고 죽고 하니 … 사랑에 딱 알맞은, 이별에 돈은 상관없을 수 있는 재산정도는 얼마일까요 . 전 예전 모대학대나무숲 게시판에 너무나 가난했던 여자애가 자신과 헤어진 남친에게 그동안 너무나 고마웠다고 밥값 영화비 다 내주고 네덕에 회도 먹어보고 뷔페도 가보고 했다고. 좋은 선물 하나 못해줘 미안하다는 글 보고 넘 슬펐던 기억이 다락방님 글 읽으니 떠오르네요 붙잡고 싶어도 잡지 못하는 마음엔 더 잘해줄 수 없음을 , 짐이 될거란 맘도 있겠지요. 잔나비 노래 좋지요 *^^*

다락방 2022-06-06 17:10   좋아요 3 | URL
맞아요. 자격지심이라는 걸 갖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죠. 그들 사이에 커다란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자신의 약점들을 극복하고 함께 앞으로 갈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어려운 일인것 같아요. 가난은 사람을 참 못나게 만들어요. 남들 다 경험한 것을 나는 경험해보지 못하게 하니까요. 렌트비가 없어서 사는 집에서 나와야 하는, 그리고 갈 곳이 없는(물론 엄마 집이 있지만) 젊은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너무 속상해요. 너와 나의 마음만 굳게 챙기기도 어려운데 상황까지 방해를 하다니 ㅠㅠ

잔나비 노래 너무 좋네요. 사실 노래가 너무 좋다기 보다는 잔나비가 더 좋지만요. 그러니까 잔나비보다는 최정훈... 럽..

단발머리 2022-06-06 17: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난이 솔직하게 못하는 하는, 연인에게조차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전 코넬과 마리앤을 원망하고 싶네요. 더 깊은 관계, 더 나은 관계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건,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건데. 내가 좀 못나 보이더라도, 말할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요. 막 무릎꿇고 50장짜리 편지 쓰고 집앞에서 기다리고 그런 거 아니어도, 물어볼 수는 있을텐데. 내 맘에 꼭 맞는 사람 만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특히, 섹스에서는 더욱) 안타까움이 뭐 절절히 사무칩니다.
롯데리아에서 미숫가루 안 먹을게요. 글고 잔나비는 사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6-06 17:17   좋아요 5 | URL
맞습니다, 단발머리 님. 그들에게 더 큰 확신이 있었다면 빈부의 격차를 끌어 안고 앞으로 함께 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코넬은 충분히 자신이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둘이 함께 더 깊이 이야기하고 한걸음만 더 내디뎠어도 그들은 함께 했을 것인데, 그들은 상대를 사랑하지만 상대의 사랑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빈부의 격차는 그들의 발목을 잡아버리게 된거죠.
단발머리 님 댓글 읽고나니 정말 그러네요. 섹스가 잘 맞는 사람은 마흔 넘어서도 찾기 힘든건데 뭐 이십대 초반에 찾아버렸으니... 그후에 메리앤은 연애에서 역할극을 하려고 하잖아요. 자신을 시험해보려고 하고. 그냥 자기 그 상태 온전하게 있어도 되는 상대를 놓쳐버린게 그러나 또 완전히 놓고 싶진 않아서 어정쩡하게 유지하는게 안타깝고 또 안타까워요. 휴..

단발머리 님 덕에 최정훈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되었어요. (이 팁을 알려준 쟝님께 감사) 너무 오랜만에 젊은 남자사람에 대한 호감이 생겼네요. 어떤건지............잊고 살았는데요..............가슴 속에 사랑이 자라납니다. 무럭무럭..

새파랑 2022-06-06 16: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곱번째 파도 읽어야 하는데 깜빡하고 아직 못 읽었네요 ㅋ 잔나비 저 노래 좋던데 다시 가사를 보니까 정말 감수성이 엄청나네요~!!

다락방 2022-06-06 17:22   좋아요 3 | URL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니 그대 쓰윽 훑고 가래요. 아니 무슨 감성이에요 이게 대체... 시집 읽는 청년일 것 같습니다.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써내는 청년 같아요. 그 감성은 제 감성과는 좀 많이 다르지만... 뭐 그래도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blanca 2022-06-06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샐리 루니 <노멀피플> 저도 정말 좋았어요. 작품이 편차가 좀 있긴 하더라고요. 잔나비 와 저도 팬인데...그 유튜브에 인마이백 보셨어요? 알라딘 서재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던데요. ㅋㅋ

다락방 2022-06-06 17:47   좋아요 3 | URL
제가 노멀피플 읽은게 블랑카 님 리뷰 덕이었어요. 블랑카 님 리뷰 읽고 너무 좋아서 책 읽었는데 전 그 당시엔 딱히 좋지 않았거든요. 근데 이번에 원서로 읽으면서 보니 그 때 블랑카님 리뷰 생각나면서, 아 블랑카 님은 이걸 보셨던거구나! 했어요. 새삼 블랑카 님이 얼마나 책을 잘 읽는 분이신가에 대해 감탄했습니다. 블랑카 님은 진짜 짱이에요!!

그나저나, 인마이백.. 이 뭐죠?( 라고 쓰고나서 검색하고 보고 왔습니다)

in my bag 말씀하신 거군요! 아니, 시집을 읽는 청년일거라 짐작은 했는데 시집을 세 권씩 넣고 다니고 언제나 넣고 다니는 그런 청년이었네요. 게다가 노트까지. 아... 알라딘 서재 이미 하고 있는거 아닌가 몰라요. 정훈씨, 알라딘에 와요. 여기 당신 같은 사람들이 잔뜪이에요. 안그래도 엊그제 친구들 만나서 제가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 꺼내 보여주며 여기다 메모한다고 그랬는데, 잔나비 저랑 같은 류의 사람이네요. 껄껄.
아, 시집 가지고 다니는 잔나비 너무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07 10:13   좋아요 1 | URL
ㅋㅋ 저도 그거 유튜브 보고 왔어요 (이 대화에 낑기고 싶어서) 참고로 잔나비 팬 아니고 다락방 팬입... 그 잔나비가 들고 있던 노트 다락방님 노트랑 크기랑 필기 형태가 비슷하던 데!! (제가 증인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2-06-08 08:07   좋아요 2 | URL
잔나비가 단어 적는다는 패드 나도 있다 ㅋㅋ 집에서 그거 펴두고 메모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다이어리에 메모하고 다니지. 핸드폰 덜 볼라고 수첩 작은거 넣고 다닌다는 것도 너무 좋아요. 그냥 쓰는 청년이라는 게 너무 좋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2-06-06 1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서로 책을 읽고 계셨군요! 멋져요!
지낼 곳이 없어서 나와야만 하는 상황을 저도 겪어봤어요. 정말 다행히도 당시 제 여자친구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해주었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고시원으로 들어갔을텐데.

이 글 읽으니 갑자기 옛날 생각 나네요. ㅎㅎ

다락방 2022-06-07 08:32   좋아요 0 | URL
헤어짐의 원인은 반드시 빈부의 격차는 아니지만 주요한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책 속의 주인공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들도 함께할 수 있었을텐데요. 감은빛 님의 여자친구처럼 나랑 함께 살자, 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너랑 함께 있어도 될까? 할수도 있었을텐데요. 안타까워요.

번역서 옆에 두고 읽고 있습니다. 원서를 온전히 읽을 실력은 아니라서요. 후후

독서괭 2022-06-06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심각하게 읽다가 미숫가루라떼 너무너무 맛없다는 이야기에 갑자기 개그가🤣🤣🤣 잠깐 마음 가다듬고 다시 읽을게요..

다락방 2022-06-07 08:32   좋아요 0 | URL
롯데리아 미숫가루 너무 맛없어요. 아 너무 짜증나요. 절반 이상 남겼네요. 삼겹살 먹으러 가기 전에 살짝 배고파서 먹은건데 살짝 배고픈 채로 먹어도 맛없는 미숫가루... 히융 ㅠㅠ

독서괭 2022-06-0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는 영상이 안 보여서 잔나비의 무슨 노래일까, 역시 ‘주저하는 연인들‘일까 했는데 맞네요 ㅎㅎ 저는 ‘가을밤에 든 생각‘을 우연히 듣고 넘 좋아서 몇곡 들어봤던 가수예요.
둘이 헤어지는 과정이 너무 안타까운데 이해도 되네요. 저런 식으로 서로의 진정을 모르고 어긋나는 일들이 참 많죠.. 이렇게 샐리 루니에 대한 다락방님 평가는 달라지나요?^^

다락방 2022-06-08 08:04   좋아요 1 | URL
제가 이 페이퍼를 올릴 당시에는 저 노래밖에 알지 못했는데요, 그 뒤로 다른 노래들을 들어보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잔나비의 노래는 <사랑하긴 했었나요> 입니다. 아 이 노래 너무 좋아서 완전 반복청취 했어요. 세상에, 쉼보르스카 시집을 들고 다니는 청년이래요. 맙소사. 이런 청년이 있답니다, 독서괭님? 시집을 들고 다닐 것 같은 청년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쉼보르스카 라니. 크- 치인다 진짜. 크-

독서괭 님, 샐리 루니에 대해 평가가 달라질 뿐더러 샐리 루니를 더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빈부의 격차에 대한 것도 그렇고, 제가 ‘확신 없음‘이라고 했던 것도 그 안에 다른 것들이 더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신간 나왔다는데 그것도 읽어봐야겠어요. 휴..

persona 2022-06-07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리앤은 소외당한 경험이 있으니 저럴 수 있다 싶어졌는데요. 그래도 이 커플 너무 의지가 없네요? 너무 흘러가는대로인데요? ㅠㅠ
그건 그렇고 코넬은 좀 다리몽댕이 감인데요? 일단 저라면 오 집에 가게? 라고 물었을 때 올타쿠나, 내가 염치가 모기 똥만큼도 없는 거 아는데, 니 신세 좀 져도 될까? 의 부탁으로 시작해서, 베란다도 좋아, 구걸을 하다가, 니가 날 구해주지 않는다면! 난 길바닥에서 죽을지도 몰라,라는 협박이라도 다시 했을 거 같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서로가 전혀 쪽팔림을 감수하지 않으려하고, 너무 플로우에 상황을 맡겨버리네요? 그게 정말 슬프네요.
물론 경제적 격차에 지쳐서 그런 말이 안나오는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코넬에게 좀 미안해지네요. ;; 근데 사랑하는데. 으아.
거기다 여친에게 3개월이면 다른 사람에게 반할 수도 있는 긴 시간인데 나 안 잡아? 가 아니고, 3개월이면 딴놈 만날 수도 있겠네? 그럴 거지?, 이 말을 왜 상황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암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너의 의지를 묻는 표현으로 물어버리면 어떡해요. will you라니! 바람의 의지를 확인하려는 듯한 저 태도. 아 증말.
저런 말까지 하는데 매리엔 입장에서도 내 집에 있어란 말 안나올 거 같은데요. Sure 옆에 왠지 새꺄,가 붙어야 할 거 같은;;
참 슬프네요. 그러고보니 급발진 죄송합니다.

다락방 2022-06-08 08:06   좋아요 2 | URL
페르소나 님. 맞아요. 소외당한 경험이 메리앤에게 있습니다. 게다가 무시받고 학대 받았던 경험도 있고요. 이 페이퍼를 쓸 때만 해도 그래서 그렇겠지, 하면서도 ‘그래도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용기를 내!‘ 했었는데, 어제 학대에 대한 부분 읽고 나니, 여기서 더 어떻게 한걸음을 더 내디딜 수 있단 말인가.. 하게 되어서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느냐가 그 사람을 완전히 결정짓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고정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각을 못하게 하거나 뒤로 늦추게 하는 것만큼은 틀림 없는 것 같아요. 어휴, 어제 밤에 조금 읽다가 너무 힘들었네요. ㅠㅠ

페르소나 님, 급발진 할만합니다. 저는 어제 너무 휘청거렸어요 ㅠㅠ
 
그 단어를 쓰는 당신이 그런 사람이다

'릴리스'의 책 《내 팔자가 세다고요?》를 읽다 보면 '폴리아모리'(두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를 할 수 있는 사주팔자가 있고 그걸 할 수 없는 팔자가 있다고 했다. 오, 이것도 사주팔자로 가능한 것이구나. 나로 말하자면 폴리아모리는 내 얘기로 만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여 상대가 내게  제안한다면 오, 그렇다면 다른 사람하고 폴리아모리를 하든지 뭘하든지 나는 너랑 쌩~ 이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인데, 내심 내가 그걸 싫어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충족된 교감을 나눈다면 다른 사람과 굳이 또 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릴리스의 책을 읽기 전에는 '사랑이 늘 부족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폴리아모리를 생각했다면, 릴리스의 책을 읽고나니 폴리아모리를 할 사람 따로 있고 안 할 사람 따로 있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를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졌다. 뭐가 됐든 자기들끼리 쇼부쳐서 하면 되는거니까. 난 아님. 그러니까 폴리아모리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왔냐면, 어제 지하철안에서 읽은 샐리 루니 때문이다. 

















원서로 먼저 읽었던 샐리 루니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일부일처제의 부조리함? 같은 얘기가 언급되고,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자기랑 연애하는 유부남이 집에 가면 아내랑도 잘까? 뭐 이런거 걱정하는 거 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오픈된 관계를 여러명과 가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내가 반응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볼 일이다. 여하튼 그랬는데, 이번 노멀 피플 에서도 역시 오픈된 관계, 독점적이지 않은 관계를 얘기하면서 스리섬 제안이 나오는거다.


스리섬은, 혹시나 모를 사람들을 위해 친절히 설명해주자면 세 명이 섹스하는 것을 말한다. 무슨 에로틱 영화 이런 거 보면 가끔 스리섬 하는거 나오는데, 나는 그게 어떻게 세상 에로틱한건지 이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이다. 여튼 스리섬에 대해서라면 사실 친밀한 관계(연인이나 친구들)에서 농담으로 간혹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바, 나는 언제나 절대 안돼 절대 안돼 무조건 안돼를 말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너랑 섹스하는데 왜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스리섬을 할 수 있겠냐 못하겠냐 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남자 한 명 여자 두명(나 포함)'이 가능하냐 에 나는 싫다고 했고 '그렇다면 남자 두명에 여자 한명(바로 나)'은 가능하냐 고 했을 때 그것도 절대 안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건 남자가 두명이라 나를 물고빨고 해주든 여자가 두명이라 한 남자를 나누든 그런거랑 별개로 결코 할 수 없는, 하기 싫은 것이란 말이다. 도대체 그걸 왜 해야되나, 나는 그거 싫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왜' 냐고 물어보면 그저 내가 독점적인 사람인가? 라고만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샐리 루니가, 내가 그걸 싫어하는 이유를 코넬의 입을 빌어 설명해준다. 



그러니까, 대학에서 코넬과 메리앤은 또다시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된다. 이들의 사이를 짐작한 친구 '페기'는 너네 같이 자니? 물었더니 망설임없이 메리앤은 그렇다고 한다. 여기에 코넬은 만족감을 느낀다. 고등학교때 숨겼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이렇게 드러낼 수 있는 게 좋은거다. 페기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너네 연인이야? 그 말에는 연인이 아니라고 메리앤은 말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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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인이 아니라는 메리앤의 말에 당황했는데 코넬은 딱히 당황하지 않고 페기는 오히려 멋지다고 말한다. 독점적이지 않은 관계로구나, 너희들은. 나도 오픈된 릴레이션쉽을 갖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싫어해!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러다가 페기가 제안하는 거다. 스리섬을...

코넬은 맥주 라벨을 뜯고 있었고 딱히 페기가 하는 말에 귀기울여 듣고 있지 않다가 그제야 자신에게 뭔가 묻는 줄 알고 잘 못들었는데 뭐라고? 한다.


Well, whatever you call it, she says. A threesome or whatever. -p.100

글쎄, 네가 뭐라고 부르든. 스리섬 아니면 그 비슷한 뭐든 말이야. -책속에서



자, 코넬은 그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He can‘t do it. He‘s not indecisive on the question of whether he‘d like to do it or not, he actually can‘t do it. For some reason, and he can‘t explain it to himself, he thinks maybe he could fuck Peggy in front of Marianne, although it would be awkward, and not necessarily enjoyable. But he could not, he‘s immediately certain, ever do anything to Marianne with Peggy watching, or any of her friends watching, or anyone at all. He feels shameful and confused even to think about it. It‘s something he doesn‘t under-stand in himself. For the privacy between himself and

Marianne to be invaded by Peggy, or by another person, would destroy something inside him, a part of his selfhood, which doesn‘t seem to have a name and which he has never tried to identify before. - P100


그는 그런 행위는 할수 없다. 하고 싶은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확고하게 대답할 수 있고, 정말로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이 메리앤 앞에서 페기와 섹스를 할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불편하고꼭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페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혹은 메리앤의또 다른 친구든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든지켜보는 가운데, 메리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즉시 확신한다. 생각만으로도 수치스럽고 혼란스럽다. 왜 그런지 그자신도 본질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와 메리앤이 공유하는 사생활을 타인이 침범하면 그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 그러니까 마땅히 부를 명칭도 없고 그가 전에는 한 번도 확인해본 적도 없는, 그의 자아의 일부가 파괴될 것이다. -책속에서



그래, 만약 단순히 섹스의 쾌락만을 위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뜻이 맞아 한다고 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나의 친밀한 누군가와, 섹스도 나누지만 섹스 전과 후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연인인 그 사람과, 그 관계에 누군가가 더해져서 뭔가를 더 주려고 한다는 것은 내게는 파괴이다. 우리의 친밀한 사생활에 대한 파괴. 코넬의 destroy 가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코넬이 그래서 좋았다. 코넬이 타인과의 사이에 친밀함이 형성되고 그들 관계만의 사생활이 형성됐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게 좋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정말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The conversations that follow are gratifying for Connell, often taking unexpected turns and prompting him to express ideas he had never consciously formulated before. They talk about the novels he‘s reading, the research she studies, the precise historical moment that they are currently living in, the difficulty of observing such a moment in process. At times he has the sensation that he and Marianne are like figure-skaters, improvising their discussions so adeptly and in such perfect synchronisation that it surprises them both. She tosses herself gracefully into the air, and each time, without knowing howhe‘s going to do it, he catches her. Knowing that they‘ll probably have sex again before they sleep probably makes the talking more pleasurable, and he suspects that the intimacy oftheir discussions, often moving back and forth from the conceptual to the personal, also makes the sex feel better. Last Friday, when they were lying there afterwards, she said: That was intense, wasn’t it? - P97


코넬은 그 뒤에 이어지는 대화들이 마음에 든다. 대부분의 경우 대화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가 전에는 한 번도 신경 써서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을 표현하도록 유도한다. 그가 읽고 있는 소설, 그녀가 하고 있는 연구 조사, 그들이 살아가는 바로 그 순간의 역사, 그런 순간이 진행 중일 때 그것을 관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끔씩 그는 자신과 메리앤이 마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사람은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면서, 아주 능숙하게 즉석 토론을 해나간다. 그녀는 우아하게 공중으로 몸을 던지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모르면서 매번 그녀를 받아낸다. 아마 잠들기 전에 다시 한 번 관계를 가질 것을 알기 때문에 대화가 더욱 즐거운지도 모른다. 그는 개념적인 것부터 개인적인 것까지 넘나드는 그들의 토론에서 비롯되는 친밀감 덕분에 그 섹스가 더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지난 금요일, 그들이 일을 다 치르고 나서 누워있을 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정말 강렬했지? -책속에서



대화도 마음에 들고 섹스도 좋은데 대체 다른 누구가, 다른 무엇이 왜 더 필요한가? 필요없다. 필요 없어.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이의 단단함과 친밀함에 굳이 다른 걸 끼울 필요가 정말 없다. 원하지 않는다. 원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코넬과 메리앤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젊은이들이여, 방황하는 것은 젊은이의 특권이지만,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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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5-31 09:42   좋아요 2 | URL
네, 저는 코넬이 되게 어리석었지만 성장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반면 샐리 루니는 오픈된 관계, 독점적이지 않은 관계에 계속 신경 쓰는 느낌이고요. 샐리 루니 가 젊은 작가여서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그렇기 때문에 저랑 안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앤드류 책은 저도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요. 좀 어렵기도 했어서 나중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미미 2022-05-31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들 이 책을 읽는 이유가 있었군요?! 미드에서도 스리섬이 한번씩 등장하던데 저도 그게 전혀 로멘틱하지가 않고 어떤 면에서 폭력적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범죄수사물에서 스리섬을 악용해(?)연인으로 하여금 모델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미성년자를 끌여들이게한뒤
결과적으로는 남자만 즐기는 형국이되어 수사에 들어간걸 봤거든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것도 충분히 있을법한 일인것 같아요.

다락방 2022-05-31 11:44   좋아요 2 | URL
스리섬은 로맨틱 한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성적 쾌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음, 아무튼 저는 아닙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것처럼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고 폭력적인 성향도 갖고 있죠. 그건 일대일 섹스에서도 마찬가지지만요. 여하튼 제 생각은 친밀한 두 사람 사이에는 굳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입니다. 뭔가 이런 식으로 자기 안의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라고 생각해요. 그게 뭐가 됐든요. 전 영 정신 사나워서... 흠흠.

잠자냥 2022-05-31 1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스리섬 설명 안 해줘도 되는데! ㅋㅋㅋㅋㅋ
전 스리섬 생각하면 그거 정신 없어서 어떻게 하나 싶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정신 없다 정신 산란해......
암튼 스리섬 하고 싶은 분들은 방에 거울을 잔뜩 놓아두세요... 네 사람+a의 효과가... ㅋㅋㅋㅋ

다락방 2022-05-31 11:45   좋아요 3 | URL
저는 또 다정하고 친절하여 혹여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봐 ㅋㅋㅋ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정신 사나워서 생각도 하기 싫어요. 일대일에서도 가끔 집중 안되는데 세 명이 하면.. 아 안됩니다. 아오 스트레스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5-31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스리섬이란 그런 것이었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그런 것이 있었군요! 참으로 성애의 세계는 다양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6-02 08:02   좋아요 1 | URL
아아 공쟝쟝 님, 스리섬.. 을 이 페이퍼를 통해 알게되셨단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봐, 이래서 내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뭐 저로서는 딱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것인가 봅니다. 흠흠.

공쟝쟝 2022-06-02 14:00   좋아요 0 | URL
평생 몰라도 될 tmi의 지식…* 인터넷은 왜 발달해서 자꼬 필요없는 호기심을 생성한단 말인가….

단발머리 2022-05-31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음... 코넬은 메리앤과 섹스할 때 진짜가 나오는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자기 모습, 원초적인, 동물적인 그런 모습이 표출되는구나, 그걸 아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걸 알면 물러나지 말아라, 코넬. 메리앤이랑 케미스트리 리딩도 되는데 왜 그렇게 자꾸 움츠려드느냐!!!

저는 이 노래 ‘헨리 & 수현‘ 버전 좋아해요. 수현 좋아해서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6-02 08:07   좋아요 0 | URL
결과적으로 이 책은 자신에 대해 불확신한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코넬은 자기의 느낌도 알고 감정도 알고 또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그런데 뭔가 자꾸 흔들리는 것 같거든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고 잘 맞는다면 이 사람과 내가 만나는 사이다, 라는 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도 될텐데 그것에 대해 주춤하는 것도 그렇고요. 아마도 젊은 시절이기 때문에 방황을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 세상의 남자들에게는 특히나 더 연인을 트로피 삼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고요. 고등학교 때는 인기도 없고 친구도 없는 메리앤이라 몰래 만났지만 지금은 메리앤이 더 인기 많은 대학시절이니 관계가 드러나는 것도 좋아하고요. 아무튼 이들의 오랜 인연을 계속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헨리랑 수현이 이 노래 부른건 몰랐지만, 헨리랑 수현이랑 그 ..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에서 친하게 잘 지내는 건 되게 보기 좋더라고요? 후훗.

바람돌이 2022-05-31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섹스가 가지는 다양한 면이 있을테고 그 중의 어느 면에서는 스리섬도 가능하겟죠.
하지만 또 섹스가 가지는 기능 중에 두 사람 사이에 뭔가 특별한 교감을 느끼는 기능도 있잖아요. 물론 모든 섹스가 그런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스파크가 확 일어나듯 느껴지는 그런게 있어요. 그건 셋이서 하는 놀이로서의 섹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 저는 세상에는 놀거리가 천지인데 굳이 섹스를 하면서 놀고 싶지는 않아서 스리섬은 패스하고 싶지만 문제는 아무도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하지 않는다는거군요. ㅠ.ㅠ

다락방 2022-06-02 08:10   좋아요 0 | URL
네, 섹스가 주는 쾌락에 있어서 스리섬을 원할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채우고 싶은 사람들이 뜻이 맞는다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몸과 몸으로 하는 행동이 이렇게나 쾌락을 준다, 는 것이 목적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책 속의 코넬이 말한것처럼 섹스를 나누는 상대와 내가 그저 일시적이거나 지나가는 사이가 아닌, 친밀한 사이라면 스리섬은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걸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 자체가 안들것 같아요. 우린, 우리 끼리 이미 너무나 충분하니까요.

바람돌이 님, 인생은 깁니다. 미래는 예측불허. 스리섬의 제안은 앞으로도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독서괭 2022-05-31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스리섬을 논하셨군요 ㅋㅋㅋ 저도 본능적인 거부감이 듭니다. 남들이 하는 거야 딱히 상관없지만 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그 사람과 단둘이 그전과 같은 섹스는 못할 것 같아요.
코넬, 맘에 드네요 ㅎㅎㅎ

다락방 2022-06-02 08: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독서괭 님. 한 번 경험하고 난 이후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 사이의 친밀함이 여전할까, 라고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물론 그것을 놀이로써, 우리 쾌락의 한 수단으로써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삶에서 어떤 신념을 갖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걸 뜻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고 들여다보니 이건 안되겠다, 이쪽으로 가야겠다 하는 방향성도 생기는 것 같고요.
아무튼 독서괭 님, 우리는 성실히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살아갑시다.
 
hard body 와 로맨스, 그리고 균형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은 번역서로 읽었을 때에도 나쁘진 않았지만 막 좋지도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짜증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고(그것은 주인공들의 성격 때문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현재에 필요한 젊은 작가로구나 하기도 했는데, 원서로 만나는 샐리 루니는 번역서로 만난 샐리 루니보다 더 좋다. 감정들이 더 섬세하게 와 닿는다. 코넬이 메리앤과 정서적으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교감을 느끼면서 그것을 숨기고자 하는 것,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코넬이 그렇다는 것에 대해 코넬의 엄마가 아들에게 실망하는 것. 이 감정들이 더 잘 느껴진다. 그리고 성추행을 당했을 때에도 그 분위기가 너무 와닿아서 괴로웠다. 파티에서, 남자 동급생이 메리앤의 가슴을 공개적으로 한 번 쥐었다 놓는다. 이에 메리앤은 당황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가 주저앉는다. 다른 아이들은 그 장면에서 웃었다. Karen 은 메리앤을 따라나와 너 괜찮냐고 묻는다. 메리앤은 미안해,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셧나봐, 라고 한다. 왜 자신을 추행한 놈이 아니라 자신을 탓해야 하는가. Rachel 이 따라나온다. 코넬을 좋아하는 래이첼은 메리앤이 성추행한 그 곳에서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함께 웃는다. 코넬이 어쩌면 신경쓰는지도 모를 메리앤의 편에 서지 않는다. 여러 가능성이 있다. 래이첼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자신의 경쟁 상대일지도 모를 여자로 우습게 만들고 싶었거나, 래이첼은 어쩌면 너무 남자들의 관점에 길들여졌던 걸지도 모른다. 남자애들이 웃어? 나도 웃어. 래이첼은 그 때 모두 웃었다고 말한다.



We were all laughing at the time, says Rachel. -p.41


모두가 웃었으면 괜찮아지는건가. 모두가 웃었으면 그 장면은 일종의 농담이 되는건가? 성추행을 '당한'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고 주저앉아도 모두 웃었으면 다 괜찮은 일이 되는건가. 그리고, 정말, 그 장면에서 모두 웃었는가. 그게 웃긴가. 코넬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That's not true, says Connell.

Everyone looks around at him then. Marianne looks at him. Their eyes meet.

Are you okay, are you? he says.

Oh, do you wnat to kiss her better? says Rachel. -p.41


코넬은 메리앤에게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며 데리고 나간다. 이 장면에서 코넬은 메리앤의 구원자인가? 

아니다. 사실 코넬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 가장 우선적으로 했어야 할 일은, 그 장소에서 그 일이 벌어질 때 '안돼', '그러지마', '아니야' 라고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거기의 일원이었다. 비록 웃지 않았다고 해도. 


어쨌든 코넬은 메리앤을 데려다준다고 했고 그리고 그들은 그날 함께 자고, 그런데 코넬은 졸업파티에 레이첼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미친놈이다. 용서할 수 없는 놈이다. 이 일에 대해 코넬의 엄마는 코넬을 비난한다. 메리앤은 상처받는다. 버림받은 느낌마저 든다. 메리앤은 학교가기를 그만둔다. 졸업파티에 래이첼을 데려간 코넬은 졸업 파티가 즐거울까? 래이첼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래이첼은 인기 많은 여자아이이니 졸업 파티에 데려가고(이거야 말로 트로피 파트너다), 정작 자신이 항상 자신을 알고 또 너를 알겠다고 느끼는 상대인 메리앤에게는 졸업 파티에 대한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다. 메리앤이 그 뒤로 코넬의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메리앤 없는 졸업식을 마치고, 코넬은 메리앤을 그리워한다. 졸업식에 메리앤이 오지 않아 유감이네, 친구가 코넬에게 말하고, 그리고 말한다. 너가 걔랑 자는 걸 알고 있었다고. 아마 모두들 알았을 거라고.



Eric grinned and his teeth glittered wetly in the light.

Do you think we don't know you were riding her? he said. Sure everyone knows. -p.77



이에 코넬은 충격을 받는다.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보다, 그 사실을 알았어도 자신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그래서 뒤늦은 후회를 한다. 이거 별거 아니었는데 그냥 말할걸. 그랬다면 우리는 손잡고 걸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데 그게 뭐라고 감춰서 결국은 메리앤을 떠나게 만들었다.

코넬은 학교의 인기 많은 남자애였고 그런 만큼 친구라곤 아무도 없는 아웃사이더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밝힐 수는 없었다. 자신이 사귀는 사람으로 자신까지 그렇게 이상한 애가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졸업파티에 마음에도 없는 인기 많은 여자애를 데려갔다. 뒤늦은 후회를 해봤자 자신은 이미 메리앤에게 큰 상처를 입힌 터다.


그런데 나는 위의 문장에서 ride 를 보고 당황했다. ride ? 이건 내가 아는 뜻으로는 '타다' 이다. 말을 타다, 오토바이를 타다, 할 때 그 타다. 나는 어학연수를 가본 적도 없고 미국에서 생활해본 적도 없으니, 어쩌면 ride 가 '타다'라는 동사이면서 동시에 '섹스를 하다' 라는 뜻을 품고 있을까 싶어 검색해보았다.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저 동사는 '타다'의 뜻이었고, 저 문장에서는 섹스하는 걸 뜻했다. 번역본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에릭이 씩 웃자 그의 이빨이 불빛에 젖어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네가 걔를 올라타고 있었다는 걸 우리가 모를 줄 알아? 다들 알고 있어. -책속에서



그러니까 에릭과 코넬은, 친구였고, 남자라는 같은 성별을 가지고 있었다. 저기에서는 '섹스하다'를 '올라타다'로 쓰고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천박하고 상스러운 단어. 섹스를 비하하고 마치 여자를 정복했다고 말하는 듯한 단어. 남자들끼리는 상스럽고 천박한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는 터다. 한국에서는 '따먹었다'고 자기들끼리 쑥덕대니까. 물론 '올라타다'라는 것도 쓰고 있고. 그러니 영어권 남자들이 ride 를 쓴다고 해서 더 천박한 것도 아니다. 더 비하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남자들이 비하하는대로 저기에서 또 자기네들 언어로 섹스를 비하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일 뿐. 이게 너무 지긋지긋한거다. 게다가 '올라타다' 라거나 '따먹다' 는, 남성이 주체적임을 뜻한다. 남성이 주체이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저 말들의 상대어를 반영하는 여자들은 수동적이 된다. 여성을 놓고 저 단어를 쓰려면 '따먹혀야' 하고 '태워야' 한다. 아, 대주다 라는 것도 있다. 이 모두가 여성은 남성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는 수동성을 의미한다. 남자들끼리는 역시 이런 말들을 웃으면서 한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럽고 또 자랑스럽다는 듯. 익숙하게. 너 걔 올라탔냐? 그리고 듣는 남자는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말에 사람이 올라탄다면, 그 말의 방향과 속도를 정하는 이는 사람이다.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먹을' 때 그것을 열매가 정하지 않는다. 열매는 다만 탐스럽게 열릴 뿐, 그것을 따서 먹을지 말지는 그것을 따는 사람이 결정한다. 지배하고 주체가 되는 남성. 섹스에서 남성은 지배가 되고 주체가 되고, 그래서 여성은 지배를 당하고 수동적이 되고, 저런 말들이 여성인 내가 없는 곳에서 수도 없이 오고갈 것이고, 나는 그렇게 성적 대상이 된다. 징그러운 것들. 주체이고 지배이고 그걸 또 누구보다 잘 아는 것들. 징그러운 것들.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그렇다면 '여성들끼리' 있을 때 섹스에 대해 상스럽고 천박하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일단 남자들의 주체 용어인 저 단어들은 여자들에게로 오면 절대 주체가 될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나는 내 의지로 '따먹히지' 않고 내 의지로 '태우지' 않으니까. 그러면 여자들인 우리들끼리는 어떤 말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가장 속되게 표현하는 건 '잤지?' 밖에 없는 것 같다.


"너 그남자랑 잤지?"


이것밖에 생각이 안났다. 나의 여자친구들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 우리 여자들끼리는 어떻게 속되게 말할까, 어떻게 비하하며 깔보며 말할까. 친구들도 대답했다. 잤지, 섹스했지, 밤을 보냈지. '사랑을 나누다'는 말도 나왔는데 실질적으로 현실에선 사랑을 나누다를 쓰지는 않는다. 친구에게 '어제 그 남자랑 사랑을 나눴니?' 처럼 물어보진 않으니까. 왜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까. 그것은 우리에게는 침략의 도구인 고추가 없기 때문일까? 나는 일전에도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던 침략, 지배, 고추에 대해 생각하고, 그 당시 친구가 댓글에 달아주었던 (먼댓글 링크 참조) 인용문이 실린 단편 소설을 꺼내 읽는다.


















'정찬'의 소설집 《두 생애》에 실린 단편소설 <희생>은 여자가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한다고 편지를 시작하고,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편지가 이끄는대로 여자의 집을 찾고 여자의 딸을 만나 또다른 편지를 건네받고, 그녀의 딸이 여자가 고문당시 강간을 당해 낳은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영서의 아버지죠? 남성이에요. 단순하고 막연한 대답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에겐 단순하지도 않고 막연하지도 않아요. 생명의 문제에서 여성은 가해자가 될 수 없어요. 신은 여성에게 남성의 발기된 성기와 같은 폭력의 무기를 주지 않앗어요. 이런 점에서 여성은 숙명적으로 희생자예요. 저는 영서가 여성이었음을 알았을 때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어요. 기쁨의 이유는 가해자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며, 슬픔의 이유는 희생자적 존재라는 사실 때문이었어요. 모든 남성이 가해자라는 뜻은 아니에요.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죠.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이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지요. 저는 어떤 집단이나 사회를 평가할 때 이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아요. 나쁜 집단, 나쁜 사회는 가능성을 방치해요. 더 나쁜 집단, 더 나쁜 사회는 가능성을 확장시키죠. -<희생>, p.115~116



'타다', '따먹다' 모두 폭력의 무기를 가진 자신을 인지하는 단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단어를 사용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리고 그걸 듣고 있는 것 보두, 정찬의 소설대로라면, 가능성을 방치하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나쁜 사회로 나쁜 집단으로, 더 나쁜 집단으로 더 나쁜 사회로 가는 것을 돕는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나를 말한다. '타다', '따먹다'를 말하는 자는 정말로 '타고' '따먹는' 사람일 따름이다.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인 것이다. 거기엔 어떤 다른 이유도 핑계도 그리고 다른 모습도 없다. 타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타는 사람이고 따먹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따먹는 사람인 것이다. 고작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고작 그따위 것들인 것이다. 그 말을 직접 내뱉지 않는다고 해서 그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느냐. 아니다, 그거 듣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사람, 나쁜 사회가 되는것을 내버려두는 사람, 가능성을 방치하고 확장하는 사람이다. 고작 그따위 인간인 것이다. 그 언어를 쓰는 당신은, 바로 그런 사람인 것이다.




책을 샀다. (갑자기 분위기 전환)

















<댈러웨이 부인>은 이십대 중반에 아주 힘들게 읽은 기억이 있다. 며칠간 질질 끌었고 다 읽고 나서는 다른 느낌보다도 '드디어 다 읽었다'는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어땠냐고 묻는 친구에게 지루했다, 그리고 동성애 코드가 있다, 라고 답했던 기억만 나고 사실 다른 기억은 전혀 없는 바, 일전에 독서괭 님 리뷰보고 내가 완전히 잘못 읽었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읽어봐야지 하던 참에, 이번에 《우연한 생》읽다가 당장에 질러버렸다.

《침묵》은 친애하는 알라디너 님의 리뷰를 읽고 오오~ 하던 차에 '같이 읽자'고 ㅈㅈㄴ 님이 뽐뿌 넣으시는 바람에... 샀다.











































사진 맨 밑의 학회지 두권은 친히 발행처에 연락해 구입한 책이다. 논문 읽어볼게 있어서 샀다. 이젠 사다사다 별 걸 다 사네..

그나저나 ,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이걸 사버렸으니 나를 어쩌면 좋은가.. 박정자 님 책이라서 읽어볼라고 샀다. ㅋㅋㅋ 도나 해러웨이 읽고 데리다 궁금해졌는데, 데리다 입문서 다른 것보다 박정자 님의 글로 읽으면 이해가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른 책들은 뭐 다 이차저차 이러저러해서 샀다. 이제 그만 살거다.



점심엔 마라탕 먹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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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 can‘t do it.
    from 마지막 키스 2022-05-31 09:19 
    '릴리스'의 책 《내 팔자가 세다고요?》를 읽다 보면 '폴리아모리'(두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를 할 수 있는 사주팔자가 있고 그걸 할 수 없는 팔자가 있다고 했다. 오, 이것도 사주팔자로 가능한 것이구나. 나로 말하자면 폴리아모리는 내 얘기로 만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여 상대가 내게 제안한다면 오, 그렇다면 다른 사람하고 폴리아모리를 하든지 뭘하든지 나는 너랑 쌩~ 이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인데, 내심 내가 그걸 싫어하는 이유가
 
 
공쟝쟝 2022-05-30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진짜 이거 다 읽으니까 식사 끝났어요 ㅎㅎㅎㅎㅎ 아 댈러웨이부인 저도 계속 읽고 싶다고 말만 하는데, 저 빨강책이 최신 번역일랑가요? 머지 않은 시점에 읽어보아야겠습니다…

다락방 2022-05-30 15:23   좋아요 0 | URL
저게 최신번역인줄은 모르겠는데 저 시리즈로 제가 두 권 가지고 있더라고요.(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남) 그래서 이왕이면 깔맞춤.. 으로 샀습니다. ㅋㅋㅋㅋㅋ

수이 2022-05-30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찬 소설 읽어봐야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대! 맛점하세요.

다락방 2022-05-30 15:24   좋아요 1 | URL
정희진 샘으로부터 극찬만 들어왔던 작가인데 저 인용문 실린 소설은 단발머리 님이 댓글로 알려주셨어요.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와 엄청 폭력에 대한 얘기들이라 읽기가 쉽진 않네요.

잠자냥 2022-05-30 1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갑분전책에서 빵 터짐요~ ㅋㅋㅋ
근데 진짜 다부장님 이젠 정말 사다사다 별걸 다 사는군요? ㅋㅋㅋㅋ

그나저나 ride...... 이 색휘들아 여자들도 너놈들 올라탈 수 있거든! -_-;
(이게 아닌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5-30 15:25   좋아요 2 | URL
ride 얘기도 써야했고 책 산 얘기도 써야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님, <침묵> 6/7 에 시작할까요? 어떠세요?

잠자냥 2022-05-30 15:44   좋아요 1 | URL
연휴 끝나고 시작 아주 좋습니다!

다락방 2022-05-30 15:50   좋아요 1 | URL
굿굿 그러면 그 때부터 시작하는 걸로 합시다. 훗.

건수하 2022-05-3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ric grinned 하는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올라오더니.. ride에서 역시 했다는.
고딩들이긴 한데.. 그걸 감안해도 별로네요.

갑분전 책샀다에서 저도 깜놀... :)

건수하 2022-05-30 16:47   좋아요 1 | URL
(학술지 궁금해서 사진 클릭)

젠더와 문화는

https://kiws.jams.or.kr/co/com/EgovMenu.kci?s_url=/sj/search/sjSereClasList.kci&s_MenuId=MENU-000000000053000&accnId=null

여기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건수하 2022-05-30 16:50   좋아요 1 | URL
문화과학은 여기서 (100호까지만)

https://culturescience.kr/51/?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NDt9&page=1


다락방 2022-05-30 16:58   좋아요 1 | URL
아마도 고딩들이니까 더 허세에 가득차서 저런 용어들을 썼겠지요. 저런 말을 하는 고딩들이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면 어느 순간 달라질까요? 달라지는 인간들은 소수겠지요? 답답합니다.
페이퍼에 쓰진 않았는데 저 친구들 중 한 명은 여자친구 사진 몰래 찍어서 돌려보기도 합니다. 휴.. 불법촬영은 세계 모든 남자들의 공통인가봐요.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

오오, 학술지 전체 다운 가능한지 전혀 몰랐어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저는 책으로 읽고 싶어서 사긴 했지만 ㅋㅋ 앞으로는 다운 받아야 겠네요. 감사드려요! 저는 넘나 아날로그라 일단 책으로 사고 보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05-30 17:00   좋아요 0 | URL
혹시? 해서 찾아봤어요. 물론 종이책이 더 보기 좋지만? 빨리 읽고싶을 땐 다운로드해서 읽으셔도 좋을거예요.

다락방님 덕분에 모르던 학회지들을 알아갑니다. 읽을 일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

바람돌이 2022-05-30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라탕은 잘 드셧나요? 저는 저녁에 봉골레파스타를 조개랑 오징어 잔뜩넣고 해서 너무 많이 먹어버렸습니다. 배가 빵빵.....ㅠ.ㅠ 부담스러워요. ㅠ.ㅠ ㅎㅎ
혹시 논문 볼 일있으면 요 사이트 검색 먼저 한번 해보세요.
https://www.kci.go.kr/kciportal/main.kci
왠만한 논문은 거의 검색이 가능해요. 공짜구요. ^^

다락방 2022-05-31 08:18   좋아요 1 | URL
오오 바람돌이 님, 링크 감사드려요. 지금 들어가보고 소리 지르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알고 있는 논문 검색 사이트는 대학에 소속되어 있어야 무료더라고요. 아니, 이런 감사한 일이. 덕분에 잘 볼게요! 안그래도 구하지 못한 학술지 중에 읽고 싶은 논문이 있었거든요. 후훗.
감사합니다!!

에이바 2022-06-01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서재 들어와서 이웃들 글을 보는데 노멀 피플 글이라서 더 즐겁게 읽었습니다.ㅎㅎ 먼 댓글 페이퍼에 써야하는 댓글이긴 한데 저도 폴리아모리나 오픈 릴레이션십 정말 이해할 수 없어서 더 공감하면서 봤네요. 엔도 슈샤쿠 침묵 저도 읽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던 책이라 다락방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져요. 예전에 제가 썼던 리뷰도 찾아봐야겠어용 ㅎㅎ

다락방 2022-06-02 08:22   좋아요 0 | URL
에이바 님의 침묵 리뷰 잘 읽고 왔습니다. 오랜만에 오셔서 좋은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좀 자주 오세요, 에이바 님 ㅠㅠ
제가 침묵 읽을 때 에이바 님의 리뷰를 읽은게 도움이 될듯 합니다. 침묵을 얼른 읽고 싶네요. 저는 6/7 부터 읽을 계획입니다. 호홋.
노멀 피플은 원서로 읽는게 번역서로 읽는것보다 더 좋네요. 아마 다른 책들도 그렇겠지만요. 얼른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 번역서 도움 없이 쭉쭉 읽어나가고 싶어요.
에이바 님, 자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