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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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전, 엄마가 내가 행복해지는 걸 방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게 분해서, 그게 분하고 속상해서 내 방에 틀어박혀 반나절 내내 울기만 했던 그때가. 시간이 훨씬 지나고나서야 '엄마 때문에' 했던 선택이 결국은 내 자신에게 최선이었음을 인정하게 됐었다. 종국엔 그때 나를 막아줘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지. 나를 위해서도 엄마가 나의 선택을 가로막고 나선건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그때 내 말대로 했다면 내가 지금 굉장히 우울증에 걸려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만 엄마의 의도는 순수했던걸까, 하는 의문은 든다. 정말 '딸의 행복'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였을까. 여기에 대해서라면 나는 어느쪽이라고 아직 대답을 할 수가 없는것이다. 


엄마가 그 일에 대해 내게 한번쯤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그 얘기를 꺼내려고 할때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듣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으니 다른 얘기를 하라고. 그래서 결국엔 '다행이었고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아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건, 그걸 인정하는 내 자존심이 다칠까봐서가 반, '딸의 행복'때문이었다고 답하는 엄마의 말을 의심하는 마음이 반, 을 차지해서가 아닐까. 



'너의 행복을 위해서' 라는 의도라 하더라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상대의 인생에 개입하는 건 옳지 못한게 아닐까. 나는 얼마나 많이 '너를 위해서' 라는 말을 했을까. 나의 의도는 정녕 순수했던걸까. 거기엔 '너의 불행을 보며 슬퍼할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조건이 생략된 게 아닐까.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님은 여성심리 묘사에 있어서는 진짜 타고난 것 같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필명으로 여섯편의 장편을 썼다는데 나는 그 모두를 읽어볼테다! 물론, 번역되어 나온다면.



"스물여섯 살 때였나, 사실 아주 화기애애했던 가족 모임 도중에 그런 순간을 맞았어. 나는 섬뜩했고 두려기도 했지만 결국 받아들였어. 진실을 부정하지 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에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P.21)

"하지만 소유욕은 나쁜 거잖아요!"
"물론 그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매일같이 접하지. 아들을 앞치마 끈에 매달고 사는 엄마, 딸을 독점하는 아빠, 하지만 항상 부모들만 그러는 건 아냐. 예전에 내 방 앞에 새 둥지가 있었어. 대가 되자 새끼들이 하나둘 떠났는데 한 마리가 계속 남아 있는 거야. 둥지 안에 계속 있으려 하고, 먹이를 받아먹으려 하고, 둥지 밖으로 굴러떨어지는 시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지. 녀석은 어미를 몹시 걱정시켰어. 어미는 새끼에게 보여주려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짹짹거리고 날개를 퍼덕였지. 그러더니 결국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지 않더군.먹이를 물고 와 둥지 한끝에서 부르기만 하더라고. 그래, 그런 인간들이 있어.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 어른의 삶에 있을 고난을 피하려고 하는 자식들. 그렇기 길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냐. 그들 자신이 그런 거지." (p.22)

"잘 들어, 앤. 내가 봐줄 수 없는 일이 두 가지 있어.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고결한 인간인지 자기가 한 일에 무슨 도덕적인 이유가 있는지 떠들어대는 일, 또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계속홰서 후회하는 일이야. 양쪽 말 다 사실이겠지, 자기 행동의 진실을 깨닫는 거라는 점에서는. 그래야 하는 거고. 하지만 그랬으면 넘어가야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어. 계속 살아가야지."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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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5-23 14:16   좋아요 0 | URL
저도 '아가사 크리스티'가 익숙한데 이 책에 보면 저자 이름이 애거사 크리스티로 되어 있어요. 뭘로 발음해도 사실 좀 어색해요, 저는. 그간 이 여사님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말이지요.

아 그리고 오타 지적은 감사. 저는 어디에 써놓고 수정해서 옮기는 게 아니라 알라딘 글쓰기 화면 열고 다다닥 쓰는거라 오타가 엄청 나와요 ㅎㅎㅎㅎㅎ 지난번에 친구가 '니가 쓴 글을 한글에 그대로 갖다 붙이니 수정해야 될 데가 백 군데가 넘어' 라고 말하더라고요. 하하하하하 ㅠㅠ

자작나무 2014-05-2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딸의 불행은 엄마의 불행입니다.
좋은 엄마 두셨네요.

다락방 2014-05-26 08:32   좋아요 0 | URL
엄마의 행복이 딸의 행복과는 다를 수도 있고요. 각자 추구하는 행복의 방향은 다르니까요.
같이 살기 위해서는 추구하는 행복의 방향이 같아야 되는 것 같아요.

네, 좋음 엄마를 뒀습니다, 저는.
아마도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일은 없겠지만 말이지요.

2014-05-23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6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4-05-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다락방님이 별 다섯 개 주시니 기분이 왠지 더 좋네요. 제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광팬입니다.^^;; 추리소설도 좋지만 이런 좋은 작품들도 있었다는 게 너무 좋고 기대되어요. 엄마와 딸의 애증의 관계를 너무 잘 그린 작품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14-05-26 08:36   좋아요 0 | URL
교묘한 강요 같은 것들도 굉장히 묘사가 잘 되어있죠. 딸의 선택에 맡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딸이 그 나쁜 남자랑 결혼하도록 부추기는 것 같은것 말예요. 너무 잘 그려서 불편해지기도 하는 그런 소설이었어요. 암튼 그녀의 다음 작품들을 저도 엄청나게 기다립니다, 블랑카님!!

단발머리 2014-05-2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읽을 책이 많은데, 많고도 많은데,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정말 읽고 싶네요.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락방님과 다락방님의 어머니와
나와 우리 엄마와
딸과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넘 진지해질까요? 저한테는 진지한게 안 어울리는뎅~~~

다락방 2014-05-26 10:01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을 책이 많고도 많은데...자꾸 책을 사서 큰일이네요 진짜. 흑흑

너무 진지해진다기 보다는 음, 딸과 엄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에 읽어보시라 권합니다. 비단 딸과 엄마 사이 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나 모든 가족 구성원이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친하거나 사랑한다고 하는 인간관계 전반에 대해서요. 그 모두에 대해서 우리는 '널 위한거야'라고 거짓말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달까요. 전 확실히 저를 제일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Michael Rosen's Sad Book (Paperback) - 『내가 가장 슬플 때』원서 느리게100권읽기_2022년 1학기 27
Rosen, Michael / Walker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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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은 극복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녹아드는 것 같다. `나`와 더불어 함께 가는, 그런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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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5-23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나'를 만든건 어제의 '나'

다락방 2014-05-23 12:49   좋아요 0 | URL
이 책속의 주인공은 어린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남자에요. 어머니에게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고 싶지만, 어머니도 떠났어요...그런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요. 어휴..

아무개 2014-05-23 13:12   좋아요 0 | URL
다락님은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가 가장 견딜수 없이 슬펐던거 같나요....?

다락방 2014-05-23 13:16   좋아요 0 | URL
왜 이런 질문을 하시나요 아무개님......생각하기 싫은 몇가지가 떠올라버렸잖아요.......

아무개 2014-05-23 13:39   좋아요 0 | URL
그러게 왜 그랬을까요 저는? ㅠ..ㅠ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지음, 허봉금 옮김 / 민음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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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속에 빠져 허우적 거릴때는 누구의 말도 들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책이 있다고 한들 그들이 이 책을 펼쳐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깊은 절망속에 있을 때 펼쳐보지 못하더라도 그 전과 후에 이 책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처한 상실의 아픔,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일에 대한 것이든 사물에 대한 것이든, 그 아픔을 대면하게 하고 잘 보내줘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이 책에선 거듭 말해주고 있으니. 


물론 이미 그런 과정들을 잘 거쳐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저 알고 있는 사실들의 나열에 불과할 뿐이다. 아직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에게 매일 네 가지 이상의 기쁨을 찾는 노력을 해보라는 건, 사실 숙제처럼 느껴져 그게 그렇게 큰 위로가 될까 싶기도 하고. 또한 나의 경우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찾는 것쯤은 별다른 노력없이 저절로 해낼 수 있으니, 그런 방법쯤은 안 읽어도 된다. 다만,


지금의 내가 지금을 잘 버텨낸다고 해서 앞으로 닥치게 될지도 모를-분명히 그런일은 일어나겠지만- 상실과 슬픔들까지 제대로 극복해낼 수 있다는 걸 장담할 수는 없다. 지금의 나는 건강하고, 밝고, 자신감이 있고, 당당하지만, 그러므로 나는 다른 누구보다 고통을 극복하는 걸 더 잘해낼지도 모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지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럴때 어쩌면 이 책 내용의 몇몇 부분들을 기억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상실을 겪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늘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이별을, 상실을 어린 아이들에게는 대체 언제 어떻게 알려주는 것이 좋을지, 도무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가급적 아이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조금 더 컸을 때, 다시말해 그들이 좀 더 극복을 잘 해낼 수 있을때까지 이별과 상실이 기다려주길 바라지만, 그것들이 가급적 늦게 찾아와주길 바라지만, 혹여 그렇지 않은 경우에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 솔직히 말하는 것이 더 좋겠구나, 하고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조너선 사프런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도 생각이 난다. 끊임없이,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했던 소년. 그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그 죽음에 대해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



어쨌거나저쨌거나 가장 중요하며 또 기억해야 할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우리가 떠나보내게 될 모든것들에게, 그것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지금 솔픔에 잠겨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일상속에서 발생하는 작은 기쁨을 찾고 발견하고 느끼고 깨닫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도무지 그런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훈련을 거듭하기를. 밝은 햇빛과, 평화로운 음악과, 투명하게 내리는 빗소리와, 맛있는 음식과, 피식 웃는 순간들까지도, 모두 잡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를, 그것이 그들에게 켜켜이 작은 행복들로 쌓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자주 '눈물의 바다'에 빠져 들어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물을 '삼키고' 마음속에 간직해서는 안 된다. 혼자 숨어서 우는 것은 치유 효과가 없기에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애도 작업을 철저히 하고 나야만 비로소 우리는 곪은 상처를 짜낼 수 있고 상처는 서서히 아물기 시작한다. (p.10)

우리가 말을 할 때 누군가 그 말을 자르면 감정 표현이 갑자기 멈추어지면서 감정을 억누르게 된다. 그러면 (중단되거나 끝마치지 못한 다른 모든 작업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앞으로 오랫동안 마음을 후벼 파고 우리의 몸과 머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기억하게 된다. 상실을 겪고도 애도 작업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p.11)

충고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사람에게 충고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 충고가 당신에게는 적절한 것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에게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브르타뉴 지방에서 나온 재떨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나에게 충고하지 마십시오. 나는 혼자서 실수할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 이 순간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슬픔에 빠져 있는 그 사람이다. (p.20)

사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진 빚을 갚는 방법은 기회가 주어질 때 자기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부모가 우리한테 해 준 만큼, 우리가 낳은 자녀이든 낳지 않은 자녀이든, 자녀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부모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자녀들에게 대가를 원한다면 더욱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런 부모는 자신이 희생자임을 자처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해진 부담을 덜기 위해 자녀들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서 박해자의 역할을 한다. (p.51)

자신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 확실한 단 한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구나 그렇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나면 우리는 웃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행복과 삶의 기쁨은 쉽게 전염되기 때문이다.(p.56)

『오늘날 죽는다는 것은 Mourir aujourd'hui』에서 미셸 아뉘스Michel Hanus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들의 잘못 때문에 그들의 부모나 형제, 자매가 죽은 것이 아니며, 그들은 그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죽은 사람의 추억을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는 것도 말해 주어야 한다." (p.130)

카트린 돌토(Catherine Dolto)는 2004년 3월 14일 토요일에 주제 발표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때,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을 동시에 갖추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을 때,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빠른 속도로 상대의 근육과 내장, 감정과 숨결, 생각과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이 강렬한 대화가 어떤 결과에 이를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이 자유롭고 온전하다고 느껴서 상대방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을 나타낼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상대방에게 지배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따라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몸을 움츠리게 될 것입니다. 정신분석 전문가 조엘 클레르제(Joel Clerget)는 아주 예쁜 표현을 사용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을 만져주는 말이 있고, 마음에게 말하는 행동이 있다.'라고 했습니다."(프랑수아즈 돌토 심포지엄, 파리, 2004) (p.128)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을 새로 사랑하게 된다고 해서 죽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점을 슬픔에 잠긴 사람이 인정하면 고통은 가라앉게 된다고 J.-D. 나시오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클레망스에게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지금은 죽고 없는 형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시오는 설명한다. 태어날 아이는 자기만의 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아이의 바람과 부모의 바람 그리고 아이의 운명이 그 아이를 위해 예비해 놓은 자리는 따로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로랑은 여원히,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첫아이로 남을 것이다. (p.131-132)

캄보디아 영화감독 리티 판Ritty Panh은 행동을 통해 치유해 보려고 노력하는 좋은 예를 보여 준다. 크메르 루즈 정권 아래서 지옥을 경험했던 그는 2004년에 「크메르 루즈의 죽음의 조직, S21-S21, La Machine de Mort Khmere Rouge」을 찍는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이 작품에서 그는 희생자와 (진짜)살인자들에게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애도 작업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애도 과정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유령들이 아직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철저히 검토해 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깊은 곳에 묻어 버리지도 말고 입을 틀어막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큰 트라우마를 입고 난 후에는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사는 법까지도 새로 배워야 하는 거지요. 이것은 고통을 어루만지는 힘든 작업입니다. 다음 세대들이 더 이상 이 문제로 괴로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아픈 역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p,138)

부모(나 배우자)들 중에는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아예 자식이나 배우자의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다.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어머니가 예를 들어 찢어진 인형(이나 눈이 없거나 팔이 떨어져 나간 곰 인형)을 처분해 버린다. 어머니는 인형이 낡고, 닳아 떨어지고, 더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어머니는 아이가 얼마나 슬퍼하고 얼마나 화를 낼지 고려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이에게서 단순히 장난감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감마저 빼앗아 버렸다는 사실을 아예 알지도 못한다. 엄마가 버린 인형(이나 곰 인형)과 함께 아이는 자기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조용히 잠들게 해 주었던 친숙한 냄새와 따뜻한 촉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엄마가 자기의 너덜너덜한 낡은 인형을 불에 던져 태워 버리고 난 후에 정신 질환에 걸린 어린 소녀와 같은 극단적인 예도 있다. 그 아이는 심리극에서 자기 이야기를 재현해서 화형을 당하는 인형에게 상징적으로 작별 인사를 고할 때까지 인형의 재를 꼭 간직하고 있었다. (p.163-164)

밤은 긴 터널이고 우리의 목표는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며 잠들기 위해 긴장을 내려놓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 각자가 호흡을 평온하게 만들어 긴장을 풀어 주고 잠들게 해 주는 자기 나름의 비결을 찾아내는 것이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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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5-2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드, 그레이아나토미 지난 시즌 마지막회 이야기중 하나가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해야한다'였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락방이 다했네. ^^

다락방 2014-05-23 12:48   좋아요 0 | URL
나중에 나도 찾아봐야겠어요. 오늘 집에 가서 와인 마시면서 볼까..흐음..

자작나무 2014-05-2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은
아무 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다
또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작자미상의 이 시는 내 삶의 모토랍니다.
모든 형태의 바램은 고통의 기원이 됩니다. 심지어 그것이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다락방 2014-05-23 13:44   좋아요 0 | URL
모든 형태의 바람은 고통의 기원이 되는게 사실일테지만, 저도 알지만,
그래도 저는 계속 사소한 것들을 욕망하며 살것 같아요.
필요해서 욕망하는 게 아니라, 내가 기쁘고 행복해질 것 같은거죠, 그 욕망이 실현된다면.

그러나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니, 또 어떻게 마음가짐이 달라질지도 모르죠.

지금 현재의 저는,
좋은 사람들을 오래오래 친구로 두며 살고 싶어요.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죠.

자작나무 2014-05-23 16:19   좋아요 0 | URL
근데 사람은 다 떠나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게 사람이죠.

2014-05-23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5-26 08:36   좋아요 0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샌드위치입니다! 햄치즈루꼴라샌드위치!! ㅋㅋㅋㅋㅋ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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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앙리 피에르, 그리고 나, 이 세사람 중에 우리 어머니 헬렌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바로 나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내가 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주 일찍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의무라도 지우듯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언젠가는 정신분석 전문가한테서 이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신인줄 아시나 보네요"라고. 물론 이건 농담이겠고, 아무튼 어머니의 사랑과 행복으로부터 큰 힘과 희망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훗날 어떤 곤경에 처했을 때도 이 힘과 희망만은 결코 잃은 적이 없습니다. (p.54)

참여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중에 가장 간단한 것은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확실히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으려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자기 뜻에 맞는 정당에 투표를 통해 지지를 표명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권하지 말고 꼭 투표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형태의 참여입니다. (p.66)

언론이 점점 더 부자 주주들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의 손에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나는 언론 독립을 수호하려는 노력에 있어 언론 종사자들이 제몫을 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프랑스인들이 해방 직후 얻어냈던 것, 즉 독자와 국가가 적극 뒷받침하는 능동적 언론은 지금 너무도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진정 독립적인 언론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참여하는 일, 그 일이 다시금 정치하는 사람들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비단 정치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전투이기도 합니다. (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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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5-2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해야죠. 암요 꼭 해야죠!



근데, 경남 하고도 창원시... 찍을 사람이 없어. 없어도 너무 없어. 돌아버리겠어..
보온상수, 막말 꼴통 준표. ㅡ.ㅡㅋ
여론조사는 압도적이라 절망스러움.

다락방 2014-05-21 10:56   좋아요 0 | URL
나도 꼭 할건데 사실 꼭 뽑고 싶은 누군가가 있는건 아니네. 뽑기 싫은 정당은 있어도.. ㅠㅠ

아무개 2014-05-2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찍고 싶은 사람이 전혀 없는데도 해야하는건지..
요샌 대의민주주의도 이젠 끝이란 생각이 들어 투표도 시들합니다.



다락방 2014-05-21 13:06   좋아요 0 | URL
찍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안찍으면.. 더 멍청한 나라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시들하긴합니다만..Orz

유부만두 2014-05-2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려워 보여서 .....

다락방 2014-05-26 08:37   좋아요 0 | URL
어렵더라고요, 저도 ㅠㅠㅠㅠㅠ
쪽수는 얼마 안되는데 머리가 팽팽 돌았어요. 지금도 제가 뭘 이해하기는 한건지 알 수가 없어요. ㅠㅠ
 
빅 피쉬 일반판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팀 버튼 감독, 이완 맥그리거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한결같은 사랑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둘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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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5-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보단 셋이지요.

-글루미 선데이-

아무개 2014-05-20 12:46   좋아요 0 | URL
전 홀수엔 반대!

다락방 2014-05-20 12:50   좋아요 0 | URL
전 글루미 선데이 보다가 재미없어서 포기했으므로 반대.
그리고 셋은 골치아파요... 감정소모전은 딱 질색이에요. -_- 반대.

자작나무 2014-05-20 13:04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 딱 한명만 선택할 수 있단말?

다락방 2014-05-20 13:08   좋아요 0 | URL
당연하죠. 설거지 잘하는 사람으로 선택해야죠. 설거지 잘하고 설거지 좋아하고 돈도 많은 남자로다가.. ( ")

자작나무 2014-05-20 14:23   좋아요 0 | URL
돈도 많아야 하는 거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