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a(심규선) - 꽃그늘 EP - 2곡의 보너스트랙(CD Only) + 스페셜 패키지
심규선 (Lucia) 노래 / 파스텔뮤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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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의 이번 앨범에는 무려 [서문] 이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나는 당신을 마치

4월의 상아빛 봄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낮술 한 잔 하고 싶어지는 서문이 아닌가.

 

심규선의 앨범이 나오자 그렇게 팔짝 뛰며 좋아했는데 처음 앨범의 노래들을 듣고서는 어어, 예전처럼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잖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고 나자 자꾸 심규선의 노래들이 생각나는거다. 그래서 다시 듣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뿔싸, 심규선 노래의 가사들은 이제 마치 그녀 앨범의 서문처럼, 그렇게, 가슴에 날아들어 콕콕 새겨진다. 햇빛이 유독 좋은 날, 손으로 이마 위에 그늘을 만들어도 눈이 부신것처럼, 외면하려해도,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노래들을 그녀가 불러주고 있어서, 제기랄, 같이 흐느끼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그녀의 노래중에 4번트랙 「5월의 당신은」을 볼까. 거기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대가 웃는 웃음소리

걸음걸이와 너의 모든 것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아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하아- 이런 가사들을 대체 이 뜨거운 봄날에-대체 왜 봄날이 뜨거운걸까?- 어떻게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기억속으로,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하지 않는가말이다. 나는 감상에 쩌는 리뷰를 쓰고 싶지 않았는데, 감정이 절절절절 묻어나게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심규선을 듣는 요즘의 나는 누가 툭, 치기만 해도 감성을 줄줄 뿜어낼 것만 같다. 그리고, 떠올리고야 말았다.

 

 

그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를,음식을 반드시 다 삼키고 말해야 하는 그의 습관을, 불쑥불쑥 내 몸에 닿던 손을, 가끔은 아이같고 가끔은 오빠같았던 말투를,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잠시동안 내 손을 꽉 쥐던 그 순간을, 차마 묻지도 못했던 질문에 먼저 대답해주던 그 순간순간들을, 나를 향해 뛰어오던 그 모습을, 책을 읽다 고개를 들었을 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을, 그의 모든 것과 그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나를 쥐고 흔들었는지를. 당신은 나를 가만히 두질 않았지.

그러나 우리는 왜그렇게 가까워지는게 힘들었을까. 심규선은 5번트랙 「담담하게」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 맘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대가 말한 온갖 작품을

가슴 속에 새기고 듣고 보고 외워도

우리의 거린 좀처럼 좁혀지질 않네요

 

 

나는 자꾸 우리 사이에 거리를 느꼈고, 같이 걸을 때 역시 선명히 떨어져 있던 두 어깨를 기억한다. 그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도. 오, 심규선은 나를 정녕 무너뜨리려고 작정했단 말인가. 게다가 이 절절한 가사들을 어찌나 잘 불러내는지. 나는 이 봄, 금세 사라질 봄, 여름같은 봄에 심규선에 푹 빠져서 헤어나올 줄을 모른다.

 

 

반복해 듣다보니 좋아서 별 넷을 줘야겠구나, 했는데, 오, 이 앨범의 모든 곡을 심규선이 작사 작곡했다는 걸 안 순간 나는 그녀에게 거의 존경심이 생기며 별 다섯을 기꺼이 받아 마땅하다 생각하게 되버리고 말았다. 노래도 잘 부르고 작사 작곡까지 하다니, 무엇보다 저런 가사들을 그녀가 써낸거라니!!! 버틸래야 버틸수가 없어, 나는 오늘 그녀의 콘서트를 예매하고 말았다. 규선씨, 내가 갈게. 당신은 예술가야!

 

 

 

 

 

 

 

 

 

 

 

 

 

 

 

 

 

처음 시디를 받았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알라딘 노트보다 약간 더 큰 사이즈. 시디장에 어떻게 꽂으라고 저런 케이스야...난 이런거 싫어. 시디 케이스가 그 안에 담겨있다면 가사집인 이 노트를 빼버리고 시디케이스만 진열할텐데, 아뿔싸, 시디는 저렇게 뒷 표지에 꽂혀있다. 힁. 어떻게 보관하라고. 그러나 이 불만도 잠시, 시디케이스(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겸 노트를 한 장씩 펼쳐보노라니, 오, 이건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탄생한 앨범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목차가 나오고,

 

 

 

 

 

 

 

 

 

 

 

 

 

 

 

 

 

 

이렇게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꽃 그림이 나오기도 하고

 

 

 

 

 

 

 

 

 

 

 

 

 

 

 

한 귀퉁이에 가사가 적혀있기도 하고, 나나나나~ 하는 게 흩어져 있기도 해서

 

 

 

 

 

 

 

 

 

 

 

 

 

 

 

 

 

어디를 봐도 빈 공간이 많아서 내가 무언가를 적을 수도 있겠는거다. 심규선 노래의 가사들을 다시 한 번 써봐도 좋을테고, 전혀 다른 글들을 내 마음대로 적어도 좋을테고. 물론, 아무것도 적지 않아도 한 권의 시집 같기도 할테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다.

 

 

 

툭, 개화開花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노래의 가사와 제목은 이렇게.

 

 

 

 

 

 

 

 

 

 

 

 

 

 

 

 

 

 

 

앨범의 노래들이 노래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럽지만, 이 앨범은 만족할만한 선물이 될 수도 있을것 같다. 이 앨범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도 좋을것이고-그대가 웃는 웃음소리 걸음걸이와 너의 모든 것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아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5월의 당신은 中)-, 이별 선물(그런게 있다면!)-수 많은 약속들이 하나 둘씩 햇빛에 산산이 부서져 벚꽃잎처럼 허공에 멍들고 시선 가 닿는 곳마다 터뜨려지는 저 눈부신 봄망울 입술 깨물고 길 걷게 만드는 형벌 같은 이 봄(그런 계절中)- 로도 적절할 것이다. 이별 선물이라니, 써놓고 나니 꽤 근사하네.

 

 

봄은 항상 노랑빛이거나 파랑빛, 연두빛이거나 분홍빛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봄은, 붉은빛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빛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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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5-13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여태껏 심규선을 남자로 생각했을까요? @@

다락방 2013-05-14 08:50   좋아요 0 | URL
음, 아마도 이름때문에? ㅎㅎ
드림아웃님 아직도 심규선을 안들어보신겁니까, 네?!

주말에는 어디에서 무슨책을 읽으셨어요?

dreamout 2013-05-15 22:29   좋아요 0 | URL
특성 없는 남자를 간간이 읽고 있어요.
주말 없이 회사를 나가고 있어요. 모레가 연휴 시작인데 또 회사 나갈 생각하니 화창한 날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ㅎㅎ

다락방 2013-05-16 08:11   좋아요 0 | URL
앗 저도 특성 없는 남자 읽다가 멈춘 상태에요. 아주 조금요. 하핫;;

그런데 주말마다 회사 나가시면서 대체 어떻게 지내고 계신거에요? ㅠㅠ

2013-05-14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4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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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평야


군장(軍裝)을 메고 금학산을 넘다보면 평야를 걷고 싶고

평야를 걷다보면 잠시 앉아 쉬고 싶고 앉아 쉬다보면 드러

눕고 싶었다 철모를 베고 풀밭에 누우면 밤하늘이 반겼다

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렸다



오열종대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는 사람이, 별들을 짠지 무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군대 생활을 하는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힘들진 않을까. 속안에 자라나는 그 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눌러가며 조직생활에 충실할 수 있을까. 매순간 가슴속의 무언가가 끓어오르진 않을까. 그렇다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을, 그렇다는 이유로 특별하게 취급할 순 없겠지만, 군장을 메고 드러누워 별을 바라보는 젊은 군인이라니, 그것을 콱- 쏟아져 내린다고 표현하는 사람이라니. 나에게 힘이 있다면 거기 그저 네 마음대로 한껏 드러누워있다 내려오라 하고 싶어졌다. 만약 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옆에 드러누워 쏟아지는 별들을 같이 바라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리지? 응, 정말 그래. 하는 대화 뒤에 우리는 얼마간 침묵을 지키겠지.



시집의 제일 앞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나는 연화라는 이름을 잘도 마음에 들어한다.



이 한 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연화는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여름 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연화라는 이름이 단어 자체로 마음에 든다는건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고 어디서든 그 이름을 찾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연화란 사람이 좋아서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게 된 건지, 이 아름다운 문장에 또한 시적인 문장에 깊이 스며든 뜻은 무엇일까. 나는 친구로부터 이 시집이 좋다는 추천을 받고서도 선뜻 사기가 망설여저 일단 미리보기로 한 장씩 넘겨본다. 그러다 나는 연화라는 이름을 잘도 마음에 들어한다, 때문에 더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문장은 다음 시의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와 닮아 있다.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

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

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

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

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

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

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언젠가 한 친구가 이 시집을 읽으며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이란 문장 때문에 시를 사진 찍어 보내준 일이 있다. 그리고 나는 시집을 넘기다가 그 시를 찾아낸다. 아니, 거기 있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렷던

당신의 스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시를 시로 만들어주는 것은 어쩌면 단 하나의 문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스럽지 않게 가만 읽다가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에서 이 글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에서 역시나 시로 완성된다.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마르고 허약한 사람,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 있는 사람, 외출하는 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무엇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그가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못해 아프다. 




미인의 발



반디미용실에서 처음 낙타를 보았습니다 미용실 누나는

쌍봉낙타 봉 같은 가슴 사이에 제 머리를 묻고 비뚤어짐을

가늠했고 저는 실눈만 떴다 감았다 했습니다 왼쪽과 오른

쪽을 맞춰 다듬다 머리는 새싹처럼 짧아지고 쥬시후레시를

건초처럼 씹는 미용실 주인의 잔소리에 미숙한 누나는 푹푹

발이 빠졋습니다 누나는 동네 아저씨들 술자리의 기본 안주

가 되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의 커피 잔에서 설탕과 함께 휘

저어졌습니다 엄마보다 동네 형들이 반디미용실에 더 많이

들락거렸고요 낙타가 떠난 날은 감나무집 형이 소주를 댓병

으로 마신 날이었습니다 형 가슴보다 까맣게 그을린 반디미

용실 건물, 석유 말 통과 담뱃불이 반딧불이처럼 날아들어

왔다는 미용실 주인은 양귀비 염색약처럼 까맣게 울었습니

다 낙타는 불이 다 꺼진 뒤에야 미용실에서 나와 삼거리 지

나 일방통행로로 천천히 걸어나갔습니다 낙타가 사하라로

갓는지 고비로 혹은 시리아 사막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

만요 마음을 걷던 발자국은 아직도 남아 저는 요즘도 간혹

그 발자국에 새로 만나는 미인들의 흰 발을 대어보기도 하

는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춥지만 엄연한 봄밤이 아닌가. 봄밤에는 잠들기 전에 왈랑왈랑 거리는 시를 한 편씩 읽어줘야 하는건 아닌가. 꽃이 피는걸 보고 돌아오고 꽃이 지는걸 보고 돌아오고, 발을 깨끗이 닦고 자리에 눕기 전, 시집을 펼쳐들고 천천히 그리고 가만가만 시를 한 편 읽고 자야 봄밤은 봄밤으로 완성되는 건 아닌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시를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엔 이 시가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당신이라는 세상



술잔에 입도 한번 못 대고 당신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 많

은 술을 왜 혼자 마셔야 하는지 몰라 한다 이렇게 많은 술

을 마실 때면 나는 자식을 잃은 내 부모를 버리고 형제가

없는 목사의 딸을 버리고 삼치같은 생선을 잘 발라먹지 

못하는 친구를 버린다 버리고 나서 생각한다



나를 빈방으로 글고 들어가는 여백이 고맙다고, 청파에는

골목이 많고 골목이 많아 가로등도 많고 가로등이 많아 밤

도 많다고,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고, 북방의 굿

에는 옷(衣)이 들고 남쪽의 굿에는 노래가 든다고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

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

니라는 생각도 한다



술이 깬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버리지 못한다 술이 깨고

나서 처음 바라본 당신의 얼굴이 온통 내 세상 같다





조금 더 날이 좋아지면, 이제 바람은 자신의 숨결을 좀 죽일 때면 당신의 손을 잡고 소풍을 가고 싶다. 우리의 손에는 이 시집이 들려있을 것이고 얼마만큼의 술이 들려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달이 뜨기 전,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시를 한 편 씩 골라 읽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더이상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지면 땅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겠지.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리는 별들을. 그 밤을 그렇게 별들을 바라보다 지내도 좋을 것이고 근처의 여관방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다음날 햇빛이 들면 당신 얼굴의 볕을 만질 수 있도록, 그렇게. 시를 읽고 별을 보고 당신 얼굴의 볕을 만지고나면, 아마도 세상은 온통 내 것 같을 것이다. 당신의 얼굴이 온통 내 세상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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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5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5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3-04-1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준'이란 시인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참, 여러모로 무식한*^^*

시집 권해주는 친구 너무 멋있어요. 나도 친구들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요. 친구들이 읽을랑가?!? 모르겠지만요.

좋은 시가 너무 많아요. 빨리 읽기 아까워서 천천히 읽어보고 가요.

다락방 2013-04-15 15:32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알게된 시인이에요. 시를 잘 읽을줄 모르는데, 이 시집의 몇몇 시들은 참 좋아요. 말 그대로 시적이라고 해야할까요. 봄밤이잖아요, 단발머리님. 우리 잠들기 전에 시 한 편씩 읽고 자요. 헤헷 :)

테레사 2013-04-1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의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나는 연화라는 이름을 잘도 마음에 들어한다...에서...

다락방 2013-04-15 15:33   좋아요 0 | URL
오, 테레사님 저도요! 저랑 똑같아요. 저는 그 문장에서 이상을 느낀건 아니고, [꾀병]이란 시에서 '이상'의 [날개]가 겹쳤어요. 완전 겹치더라고요. 테레사님도 그랬군요!!

(바뀐 프로필 근사해요!)

테레사 2013-04-15 16:55   좋아요 0 | URL
으히히, 다락방님이 바꾼 걸 보고, 또 오늘 기분도 그렇기도 하고, 또또 봄은 영영 이렇게 시시하게, 골난 처녀처럼, 뭐 하여간 너무하다 싶어, 술이나 한잔....순전히 다락방님에게 영감을 얻었다는...
 
가을방학 - 정규 2집 선명 [디지팩]
가을방학 노래 / 윈드밀 이엔티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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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을방학의 앨범을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목소리부터 가사와 음악까지 모두 색다르고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의 내 상황과 맞물려서인지, 가사도 내 마음 같았고 그렇게 가을방학의 음악은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이 되었다.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잠깐 갈등하며 가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었고. 그래서 그들의 2집 소식을 듣자마자 앨범을 구입했다. 그런데 웬걸, 처음 그들의 노래를 들었을 때의 상황과 지금의 내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인걸까. 이제 더이상 그들의 음악이 새롭게 느껴지질 않는다. 여전히 가을방학다운 노래들이지만, 반갑거나 독특하다는 느낌보다는 지난 노래들의 그 싱그러움에서 가사만 바뀐것 같다. 더이상 참신하지도 독특하지도 않고, 이제는 그렇게까지 좋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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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4-14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외부의 자극은 내부 상태에 좌우되어 수용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모든 것에 무덤덤해진 생활 속에서 마음을 잡아끄는 것을 만났을때, 지난 시절이 생각나 더욱 푹 빠지게 될지도 몰라요.

다락방 2013-04-15 08:49   좋아요 0 | URL
네 제 상황이나 감정이 바뀌어서 음악을 듣는것도 달라진걸지 몰라요. 며칠전 만난 친구는 제게 음악을 듣는 취향이 달라진 것 같다고 하던데, 어쩌면 저는 취향이 달라진걸지도 모르겠어요.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요.

자작나무 2013-04-15 10:01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변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인정할 수만 있다면....

다락방 2013-04-15 11:05   좋아요 0 | URL
인정하는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닌데, 인정한다고 해서 씁쓸하지 않은건 아닌것 같아요.

치니 2013-04-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말할 수 있다, ㅎㅎ 전 처음부터 가을방학이 그냥 그랬어요.

다락방 2013-04-15 11:05   좋아요 0 | URL
이번에는 듣는데 보컬 목소리도 좀 듣기가 싫더라고요;; 제가 변한것 같아요. 하핫

애쉬 2013-04-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
그러다 또 어느날 꽉.하고 어느 대목이 마음을 쥐어 짤지도 몰라요.
그 정도의 준비는 늘 하고 있자, 그게 저한테 갖는 가을방학의 의미지요~
다락방님께도 어느 날 꽉.

다락방 2013-04-15 15:33   좋아요 0 | URL
네, 음악이란 게 그런것 같아요. 이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어느 노래가 듣고 싶어 꽉,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토요일 밤에는, 편애하는 대상에게 이메일을 쓰면서 편애를 들었어요. 그 순간엔 적절한 선곡이었죠.
:)
 
파리 vs 뉴욕 - 두 도시 이야기
바랑 뮈라티앙 지음, 최하나 옮김 / 새움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왼쪽은 파리, 오른쪽은 뉴욕에 대한 그림으로 두 도시에 대한 상징을 보여준다. 그 상징들은 누가 봐도 고개 끄덕일만한 것인데, 그래서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책장에 꽂아두고 간혹 꺼내볼만한 책과는 (나의 경우엔)거리가 멀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파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프루스트가, 뉴욕을 대표하는 작가로 샐린저가 등장했으며 파리의 휴식을 대표하는 것은 pause(멈춤)이고 뉴욕의 휴식을 대표하는 것은 go(달리기) 인것이 무척 인상깊다. pause 의 그림으론 담배피는 것이, go 의 그림으론 헤드폰을 쓰고 뛰는것이 그려져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재미있고 설득력있으며 강하게 다가오는 건 짝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파리는 콰지모도 뉴욕은 킹콩. 아..진짜 확- 다가오지 않는가. 작게 찍힌 글자들을 써보자면 아래와 같다.



파리: 파리의 대성당 '노트르담 드 파리'.

그곳에서 펼쳐지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꼽추인 카지모도는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남몰래 사랑한다.

카지모는 에스메랄다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p.78)



뉴욕: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펼쳐지는 영화 [킹콩]

비록 짐승에 불과하지만 킹콩은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헌신을 다한다.


"킹콩 그 녀석은 총에 맞아 죽은 게 아니오.

사랑 때문에 죽은 거지요." -[킹콩] 중에서  (p.79)




한편, 파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장 뤽 고다르는 '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오늘날 내가 할 말은 아주 간단하다. 영화를 만들라.'(p.98) 고 했고, 뉴욕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우디 앨런은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잘 만들면 관객, 적어도 특정한 관객은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고 애쓰거나 관객이 좋아하게끔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잘못이다. 그럴 바에는 관객을 촬영장으로 불러서 감독을 시키는 게 낫다.'(p.99) 고 했다. 둘 다 멋지네.



재미있고 귀여운 책이다. 앉아서든 엎드려서든 다리를 흔들며 즐겁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다리를 흔들면서 본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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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3-30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디 앨런의 말에서 '영화'의 자리에 다른 말들을 넣어도 마찬가지겠죠.
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맨날 까먹는 말.

다락방 2013-03-30 08: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드림아웃님. 저기엔 영화 말고 글이나 음악을 넣어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아주 유익한 말이었고, 우디 앨런이 더 좋아져요. 그러고보면 전 우디 앨런의 영화도 대체적으로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 책도 역시 저는 드림아웃님 덕에 읽고싶어졌던 책이었어요. 훗 :)

mira 2013-03-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같네요. 영화감독 이야기는 참 맘에 와닿네요

다락방 2013-03-31 19:47   좋아요 0 | URL
네, 영화감독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와닿았어요. 위에 드림아웃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우디 앨런의 말에는 '영화'라는 말 대신 다른 무얼 넣어도 성립하니까요.
 
소멸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류은희.조현천 옮김 / 현암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와 미움만으로 500 페이지나 채워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에겐 어떤 것들이 필요했을까. 나를 낳아준 나의 부모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 나라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형제들은 내가 자라면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다니고 친구를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쁜일도 있었을 것이고 또 많은 슬픈 일들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어떤것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로 이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기도 할 것이고. 이 책속의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증오하고, 자신이 살았던 거주지인 볼프스엑을 혐오한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리고 자신과 너무나 달랐던 형을 미워하고 비열한 웃음 말고는 가진게 없다고 생각되는 여동생들도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꿈꾸는 도시 로마에서 그를 살도록 도와주는 것은 자신이 증오하는 아버지가 벌어들인 돈이 아닌가. 로마에서 자신을 정착하도록 살아갈 장소와 친구를 소개해준 사람은 어머니의 연인이 아니던가. 내가 혐오한다고 해서 그 대상들로붙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내가 된 건 그들의 영향이 아니던가. 지금의 이 나라, 이 부모, 이 형제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가치관을 최고로 믿고 살고 있을까. 그 삶이 분명 지금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케빈에 대하여』를 케빈의 입장에서 쓴다면 이런 소설이 되지 않을까,잠깐 생각했다.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도 생각났다.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을 잊지 못할 찬란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그가 이 책의 끝에 언급했듯이,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함으로 인해서 결국엔 소멸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이 글로써 나는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며, 이 소멸에서 쓴 것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p.414) . 책에 실려있는 '조현천'의 이 책에 대한 해설은 나의 경우,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몇 부분을 옮겨두며 마친다. (굵은 글씨체는 책 그대로를 가져온 것)




그들은 식사하면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말을 해도 못마땅해 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구나, 하며 비난하고 말을 하면, 너는 쉬지 않고 말하는구나, 하며 비난했다. 집에 있으면, 너는 왜 밖에 나가지 않니, 하고 밖에 나가면, 너는 왜 집에는 안 붙어 있니, 했다. 내가 밝은 색 양복을 입으면 어두운 색을 입길 원하고 어두운 색 양복을 입으면 밝은 색을 입길 원했다. 마을 의사와 얘기를 나누면, 너는 언제나 의사에게 우리의 험담만 하니, 하고 의사와 얘기 나누지 않으면, 너는 의사와 얘기도 안 하니, 했다. 내가 파리보다 로마가 더 좋아, 하면 대번에 자기들이 로마를 싫어해서 내가 로마를 찬양한다고 했다. 디저트를 먹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들은 디저트에 대해 내가 한 말을 자기들과 연결시켰다. 디저트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힌 것은 그들과 아무 상관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무슨 말을 하든 언제나 내 말을 그들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볼프스엑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호수에 가고 싶다고 하면 늘 호수에만 가려 한다고 비난했다. 늘 호숫가로 가는 형과는 달리 나는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쯤 그곳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형은 2~3일마다, 여름철에는 더 자주 호숫가에 갔지만, 그들은 형을 비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숲에 가면 미친 사람 취급하고 형이 그러면 지극히 정상으로 여겼다. 식당에서 내가 마티니를 주문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곧바로 언제나 비싼 마티니만 시킨다고 했다. 어디엔가 가서 그들에게 그림엽서를 보내면, 그들은 대번에 내가 그들으 속을 뒤집으려고 그랬다고 했다. (p.56)



사람들의 약 90퍼센트가 그렇듯이 형도 최종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인생이 절정에 달했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이 사람들을 미칠 지경으로 몰아간다. 그들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자기 발전이 멈춘 다음에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 속으로 오그라든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역겨울 수밖에 없어서 이런 인간들을 볼 때마다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인간들은 처음에 우리를 우울하게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불행하게 하고 끝내 화나게 한다. 이런 인간들에게 모종의 조치를 취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p.62)



시간이 지나면서 형이 좋아하는 단어는 오로지 곡물, 돼지, 가문비나무, 소나무 등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파리, 런던, 카우카수스, 톨스토이, 입센 등이되었다. 형은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날 계속 열광시키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형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p.65)



하녀들 중 제일 나이 많은 이는 이제 일흔넷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하녀이고, 또한 임종할 때에도 하녀로 눈을 감게 될 것이며- 우리 집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하녀들이 그렇듯- 어쩌면 여든 넘은 노인이 되어도 여전히 하녀로 불릴 것이다. (pp.272-273)


소수 혹은 개인은 다수에 비해 훨씬 더 시류에 부응하며 행동한다는 이유에서 다수의 압력을 받는다. 시류에 부응한 생각은 언제나 시대에 부적절한 생각이다. 시대에 적절한 생각은, 실제로 시대에 적절한 생각인 경우라면, 언제나 당대를 앞지른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따라서 시대에 적절한 것은 으레 시대에 부적절한 것이다. 이에 관해 차키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대에 적절한 사람이다 함은 생각에서 앞질러 간다는 뜻이지 시대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것은 시대에 적절치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차키와 여러 날을 보냈다. (p.282)



나는 이 국가를 증오한다, 나는 이 국가를 증오할 수밖에 없으며, 이 국가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고, 불가피한 경우라면 절대 필요한 선에서만 관계할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이 국가는 더 이상 국가로 인정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개성을 잃은 비굴함을 종종 입증해 보였고, 매일같이,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모든 기회에 사회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나라이며, 언제나 하는 말처럼 민주주의 국가라고 떠들어대지만, 실은 가공스럽고 비굴하며 수치심을 모르는 국가이고, 자신의 가공스러움과 비굴함, 수치심을 모르는 철면피함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끔찍함을 대외적으로 자랑하기 까지 한다. 살인마에게 터무니없는 연금을 송금하고 공로 훈장을 떠안기면서, 셰어마이어와 같은 사람은 잊어버린 국가가 도채에 무슨 국가란 말인가, 나는 의문스러웠다. 살인마에겐 사치스런 삶을 영위하게 하고 셰어마미어와 같은 사람은 잊어버린 국가가 도대체 무슨 국가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p.341)



형제 중에서도 유독 나만 항상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부모님의 마음에도 쏙 들지 않았고, 부모님이 진심으로 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 후로는 차츰차츰 부모님의 마음에 들려는 노력까지도 포기하고 말았다. (p.386)




『양철북』에서 가해자인 독일인은 이 악몽을극복하기 위해 성장을 멈추었고, 케르테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서 피해자는 자식을 낳지 않음으로써 아우슈비츠 경험을 대물림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데, 베른하르트의 무라우 역시 이런 선상의 인물에 속한다. 무라우는 출생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그가 출생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이유는 자신의 부모가 과거 나치였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 때문에 무라우에게 고향집 볼프스엑 성은 나치 시절의 기억으로 얼룩진 곳이었다. 더구나 과거 나치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라우의 부모는 지방의 유지로 존경받고 있고, 이런 현실에 대한 거부감으로 무라우는 로마에 거주하는 중이다. (작품 해설,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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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3-1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읽어 보려고 했었는데, 생각한 것 보다 더 무겁네요.

다락방 2013-03-17 13:37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은 저보다 더 잘 읽으실것 같은데요? 저한테는 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더라고요. 책장이 더디게 넘어갔어요. 이 책 한 권을 일주일이나 붙들고 있었어요. 휴..

이진 2013-03-16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책이 끌리는 걸요. 음, 지금은 무리고 언제고 외국 고전을 시작할 때 이 책도 함께 읽으면 좋겠네요.

다락방 2013-03-17 13:40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이 책은 분명 매력적이고 굉장히 똑똑한 책이에요. 그렇지만 읽기가 정말 쉽지가 않더라고요.

단발머리 2013-03-17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으로만 봐선 약간 어려워보이지만, 으흠~~~ 다락방님 페이퍼를 읽어보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저는 장바구니에 넣지 않고, 제 책장으로 가져갑니다. 휘리릭~~~~~

다락방 2013-03-17 13:4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네, 어려웠어요. 저도 일주일이나 붙들고 있었답니다.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해보긴 했지만 끝까지 읽고나니 다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요일 오후인데, 잘 보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