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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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출근 17시간 만의 휴식

눈 좀 붙이려고

신문지로 가린 형광등

 

"100만 원이라도 일정한 수입이 생기니까‥‥

사실 경비의 '경'자도 몰랐어요."

 

아파트 경비원 대다수 60대 이상 남성

 

본래업무인 감시, 단속 외에

분리수거

주차관리

택배관리

환경미화

‥‥

 

 

"눈이 오면 밤새 치워야 하죠.

아이들 넘어지면 경비원 탓이 되니까‥‥

아파트 경비원이 슈퍼맨이라니까요."

 

화장실 변기가 고장났다고

형광등 나갔다고

TV가 안 나온다고

수시로 울리는 인터폰

 

"한국의 아파트 경비원은

낮은 임금에 고용된 하인에 가깝다."

-데니스 P. 렛(미국 인류학자)

 

 

24시간 중

점심,저녁식사 2시간

야간휴식 4시간

무급휴식

 

월급 120만원 안팎

시간당 임금 4,122원

(2012년 최저임금 4,580원)

 

 

2010년 10월

주민의 폭언과 폭력을 견디지 못한

한 경비원의 자살

 

 

'아파트 경비원'

 

늙은 아버지의

생애生涯 마지막 노동 

 

-for the people 21 슈퍼맨의 비애 中 인용

 

 

 

아버지가 경비 일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경비란 직업은 내게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회사에 출퇴근할 때 경비아저씨들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지나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고, 아파트에서는 경비실이 집과 멀리 떨어진 관계로 굳이 인사할 일도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층의 어떤 남자 주민이 새벽에 술을 마시고 자신의 집 문을 발로 차며 시끄럽게 굴었을 때, 나는 경비실에 인터폰을 해서 저 사람 좀 어떻게 해보라고 했다. 내가 그랬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경비가 경찰의 역할까지 한다고 생각했다. 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한테 뭘 어떻게 합니까, 라고 경비 아저씨가 되물었을 때, 그 무기력한 답변에 화를 냈었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아버지가 경비 일을 시작하셨고, 다른 아파트의 경비아저씨가 되셨다. 온갖 사람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한 번은 아파트 주민회의 무슨 임원 아주머니가,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놀러 오는 걸 막으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당연히 놀이터에 오는 애들을 어떻게 주민인지 알것이며 설사 아니라 해도 어떻게 그걸 막겠냐고, 놀러 오는 아이들을, 이라 대응하셨고,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개똥을 구해다 놀이터에 뿌리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단다. 세상에 온갖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경비 일이 단순히 가만히 서있는 단순 노동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고충이야 이것 말고도 어마어마했다. 잠을 잘 수 없는 것도 그랬고, 새벽에 놀이터에 오는 불량배들, 불량 학생들을 쫓아내라는 인터폰은 수시로 왔다. 그 아이들을 쫓아내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을 뿐더러, 외려 복수한다고 경비실에 돌을 던지고 도망가기 일쑤고, 주차관리나 교통관리를 제대로 못한다고 욕을 들어먹는 적도 많았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식사 하셨냐며 맛있는 반찬을 포장해다 주는 주민도 있었고, 명절 때마다 꼬박꼬박 선물을 챙겨주는 주민들도 있었다. 오며가며 지나치다 살갑게 인사하고 또 들고 있던 가방에서 빵이며 우유 아이스크림을 꺼내 하나 드세요, 내미는 주민들도 있었다. 자주 내려와 경비실의 문을 두드리며 음식과 선물을 건네주는 주민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언제부터 경비에 관심을 갖게 된것일까. 나는 우리 아버지가 경비 일을 하시고 나서, 그 고충들을 다 겪고 나서야 그들이 월급이 내 월급의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4시간 동안 근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됐고, 그 사이사이 아주 많은 고충에 휩싸인다는 걸 알게됐는데. 나는 이제 간혹 경비실에 들러 음료수며 찐빵을 드리기도 하고 우리 식구들 모두 경비란 직업을 인식하게 됐다. 이건,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일이다. 만약 경비와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 그랬듯이 무관심한채로, 때로는 무리한 요구를 해가면서 경비를 대할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경비에 대해 말해줬다. 노동착취를 당하고 무리한 요구에 언제나 힘들어하는 경비를. 이제 식구들 중 누가 경비로 일하는 게 아니어도, 이 책을 읽으면 경비가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책은 경비에 대해서만 말하는 건 아니다. 지식e 의 시리즈가 여태 그래왔듯이, 우리가 어쩌면 내가 알지 못했던 것, 알고 나니 불편했던 것들에 대해 알려준다. 길지 않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깊은 울림을 주면서. 예전에도 지식e 를 읽고 눈물이 글썽인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나는 지식e 를 통해서야 내가 몰랐던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FC 바르셀로나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동안 협동조합으로 유지되어오며 유니폼 협찬을 받는 대신 유니세프 로고를 달고 뛰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국제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로부터 우리는 '언론자유국 free' 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되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친일세력과 미군정을 배후에 둔 이승만이 남한단독정부를 찬성하고, 이에 반대하는 제주도 남로당의 집회에 경찰과 미군정이 그들을 학살한게 제주 4·3 항쟁이란 것도 알게됐다. 스웨덴에서는 총리가 나라를 바꾸기 위해 국민 모두와 목요일마다 만났다는 걸 알게됐고, 자살이 사회적 타살인 것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윤리적 책임을 가장 잘 이행하는 세계 100대 기업중에 우리나라의 기업은 당연하게도 한 곳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됐다. 그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어마어마하게 내면 뭐하나, 데리고 있는 근로자들을 무시하는데. 학생인권조례의 내용도 이 책에서야 알게 됐다. 그 부분을 읽다가 울컥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나는 인권이 무시당했었다는 걸 알게 되서. 머리도, 머리핀도, 머리 색깔도, 종교도 학교는 내게 강요했다. 고등학교시절 윤리 교사는 수업시간 전에 찬송가를 부르게 시키기도 했으며,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와서 주보를 가지고 오면 오천원을 주겠다고도 했다. 이런 일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아 이것들이 다 잘못된 것들이었는데, 하고 분노에 떨었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시절에 나는 교실에 들어가기전에 운동장에 멈춰 국기를 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들어가야 했다. 매해 6.25에 대한 스크랩을 해야했고 포스터를 그리기도 해야했다. 일요일에는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모여 청소를 해야했다. 나는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에 길들여졌던건지, 그 당시의 나는 교단에 나가 상장을 받기도 하는 모범생이었다. 나는 반항할 줄 몰랐고, 당시에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불편한 감정도 들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편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읽고 나면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불편한 감정이, 때로는 아픈 감정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작은 힘이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의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앞으로 나가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꾸자, 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그 중에 누군가가 이건 바꿔야 하지 않을까, 라고 내뱉었을 때, 조심스레 그래 나도 도울게, 하고 손을 내밀 수가 있으니까. 이런 손이 모이고 모이면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좀 작을지는 몰라도 지금과는 다른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알고있는 이상 무관심하기란 그전만큼 쉽지는 않다.

 

 

이 책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관심을 갖자'고 말해주고 있다. 그것이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수용하기에 어렵지도 않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은 조금 더 넓어진다. 고마운 책이다. 작지만 울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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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7-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경비 아저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군요.
저는 경비 아저씨가 일하는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에 얼마나 왜곡이 많은지 깨닫게 되면 끔찍하죠!
정부와 기업과 언론이 숨기는(알리지 않거나, 알 수 없게끔 만드는) 사실들이 참 많죠!
그런 것을 알려주는 책이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지 모릅니다.

다락방님의 이 글도 참 소중해요!

다락방 2013-07-13 09:15   좋아요 0 | URL
이밖에도 아주 많아요. 신문 돌리는 사람한테 신문 하나 받아서 가지고 있다가 자기 오면 그 신문 달라고-그러니까 구독하지 않을테니 신문 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주민도 있더라고요. 하아..

네, 왜곡이 많은것도 끔찍하고 아이들에게 교육을 잘못하는 것도 끔찍해요. 아직 옳고 그름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배우는 것을 그대로 쭉쭉 빨아들이잖아요. 그게 너무 속상해요. ㅠㅠ

Mephistopheles 2013-07-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부터 8권까지 활자 하나하나, 사진 하나까지 버릴 것이 없고 어투루 넘어갈 수 없는 책이에용

다락방 2013-07-13 09:15   좋아요 0 | URL
네, 1권부터 8권까지 책장에 나란히 꽂힌걸 보면 참 묘한 기분이 들어요. 고마운 책입니다.

아무개 2013-07-1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 알게되면 완전히 무심하기는 정말 쉽지 않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말이에요.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그래서 더욱 더 소중한게 아닌가 싶네요.

다락방 2013-07-13 09:17   좋아요 0 | URL
알게되면 완전히 무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고 싶어지는 그 마음, 그게 바로 불편한 마음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건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어떤 불편한 상황에 놓여있나, 어떤 입장에 처해있나, 하는거요.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자작나무 2013-07-12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젠 신기한 꿈을 꿨어요. 다락방 님의 집에 초대되는 꿈이었는데, 건물 이름이 <나래네 빌라> 였어요. 다락방 님의 아버지는 건장하고 몸에 문신이 가득한 분이셨어요. 남동생은 꽃미남이었던 것 같고, 아주 생상한 꿈이었는데 정작 다락방 님은 어땠는지 생각이 안나네요.

다락방 2013-07-13 09:17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나래네 빌라는 대체 어디서 왜 나오게 된걸까요?
저희 아버지는 건장하시나 몸에 문신이 전혀 없으시고
남동생은 꽃미남이라기보다는 튼튼한 미남입니다.
저는...저는.어.......음........패쓰. ㅎㅎㅎㅎㅎ

따라쟁이 2013-07-1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이 너무 불편해서, 때론 이토록 돌직구로 불편한 사실을 알리는 책을 열기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읽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지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장마철인가봐요.
후... 비오는 밤을 꼬빡 세웠네요.

다락방 2013-07-15 11:34   좋아요 0 | URL
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은 좀 괜찮았나요 따라쟁이님?
안그래도 새로운 글이 올라왔길래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요즘엔 어떻게 지내요? 누구를 만나고 무얼 먹고 누구를 사랑하며 지내요? 그리고 여전히 직장생활에 충실하고 있나요?

2013-07-1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5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이런 2013-07-14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군인이던 저희 외할아버지도 퇴직 후엔 경비로 일하셨어요. 그 땐 제가 어려서 저런 고충이 있을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었는데... 이 글을 읽노라니 마음이 짠해오네요. 저도 분명 한 달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왜 그 때는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을까요 ㅠㅠ 다락방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미처 몰랐던 것들' 에 대해 생각하고 갑니다.

다락방 2013-07-15 12:00   좋아요 0 | URL
물론 환경이 좋은 곳도 있긴해요. 아주 적지만 말예요. 저희 회사 경비아저씨들은 일찍 출근하시지만 주5일제 근무이고, 6시 칼퇴근이에요. 이래도 물론 8시간 근무 이상을 하지만요.

경비들의 근무환경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겠어요. 그저 그들의 근무환경이 나쁘다는 것을 꾸준히 알릴 작정입니다. 으휴..

가연 2013-07-1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요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제가 거의 서재를 안들어와서..ㅎㅎ 이렇게 늦게 글을 끄적거립니다.
다락방님의 서재에 제법 오랜 기간 들른 저의 눈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 끄적거리지는 않아도 읽기는 많이 읽고 있답니다, 풋. - 이렇게 만점을 주는 책은 정말 드물었던것 같네요. 상당히 좋은 책인가 봅니다.

다락방 2013-07-17 12:54   좋아요 0 | URL
가연님, 그러고보니 제가 다섯을 주는 일이 드물었던 것 같긴 하네요. ㅎㅎ
저는 참 좋았어요. 제가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고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울컥울컥하게되네요. 어휴..

아, 그리고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훗
 
이진우 - 정규 1집 주변인
이진우 노래 / 파스텔뮤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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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가끔은 그게 너였으면

가끔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가끔은 그게 너였으면

우리는 반갑다는 말도
못한 채 돌아서겠지

어젠 네 생각이 많이 나서
우리 함께 듣던 이 노래를
온종일 들으며

홀로 너와의 추억에 잠겨
하루 종일 혹시 하는 맘을
간직한 채 있었지

이렇게 멀어지는 걸까
참 많이 좋아했었어 너를

오늘도 네 생각에 잠겨서
우리 함께 듣던 이 노래를
온종일 들으며

홀로 너와의 추억에 잠겨
하루 종일 혹시 하는 맘을
간직한 채 있는 나            - 새벽 정류장 中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역시 그런 추억이 있다. 이 땅 아래 함께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어디에서 우연히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진채로 일상을 보냈던 날들. 우연히 만났을 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늘 예쁘게 입고 싶었고 예쁜 구두를 신고 싶었다. 혹여라도 그가 나를 부르면 달려나갈거라고 준비했던 그 때의 나는, 매우, 피곤했다. 


그래서 그 일을, 그를 사랑하는 일을 끝내자고 생각했다. 이거 이래가지고서야 원, 사람 사는게 사는 게 아니다 싶었던거다. 그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훨훨 날아갈 수 있을것 같았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날 수 있을만큼 가벼운 육체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어쨌든 그 힘든 시간들에 작별을 고하고자 나는 그에게 이별의 편지를 썼고, 당연하게도 그 편지를 부치지 못한채로 그 뒤로도 한동안 그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을 사귀면서도 내내. 그댈 잊는것보다 그댈 인정하는 게 조금 더 쉬운 것 같아요, 라고 박정현 언니도 노래했듯이. 아, 떠올리자니 머리가 아프구나. 



누가 뭘 어쩌든간에 시간은 흘렀고 파도치듯 했던 격렬한 감정들은 다시 잠잠해졌다. 나는 이제 그를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지 않고, 그가 만나자고 해도 거절할 만큼의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앨범에서 제일 처음 이 곡을 재생시켰을 때, 그래, 이 노래가 내가 이진우의 앨범 중에서 가장 처음 듣게 된 노래였다, 아, 그래 내게도 이런 적이 있었지, 하고 슬며시 웃었다. 누구나 다 그렇구나, 이건 보편적인 감정이야, 하면서. 그렇게 설핏 웃고는, 



그게 다였다. 



이 앨범이 딱 그만큼이다. 격렬하게 추억을 끌어내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흥, 하고 무시할만큼의 멍청한 앨범도 아니다. 아, 그 때는 그랬었지, 하고 웃게 됐던 딱 그 만큼의 앨범. 나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노래들을 불러주다니 완전 땡큐야 할 만큼 감사한 마음이 드는 그런 앨범도 아닌 것이다. 그저 보통의 앨범. 그저 보편적인 노래들이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한숨이 늘었어'를 불렀던 가수라고만 그를 기억하던참에, 그 목소리와 느낌에 끌려 그의 솔로 앨범을 듣게 됐는데, 아쉽게도 내게는 좋다고 팔짝 뛸 만큼의 앨범이 되지 못했다. 뭔가가 부족한 데,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고, 그러면서도 뭔가가 더 있다면 이대로 넘쳐버리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적당하게 느껴지기도 하니, 나로서는 딱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거다.



한 사람을 알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하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비밀을 감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수키김, 「통역사」pp.462-463)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게다가 그 사람안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모습이 숨겨져 있는가. 그러니까 나는 지난주 심규선의 콘서트에 갔다가 게스트로 나온 이진우를 본 것이다. 그가 수줍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그리고 그가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춤 춘거에요' 하던 그 말을 들은 것이다. 그 순간 내게는 뭐랄까, 그에 대한 애정이 조금, 아주 조금, 쏘옥- 하고 싹텄고, 그래서 그의 앨범을 그 뒤로 다시 한 번 들어보게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다시 들어도 딱히 그 전보다 더 좋아지거나 하진 않았고, 역시나 그저 보통의 보편적인 노래들이었지만, 그의 수줍은 모습은 역시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이 앨범에 별을 셋 밖에 줄 수 없지만, 이름 때문에, 그의 이름 때문에, 이름이 너무 멋져서 별을 하나 더 준다. 이진우, 라니. 이름이 참 남자답고 멋지잖아?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별을 넷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리뷰란, 역시 편파적이며 주관적이며 순전히 내 마음대로 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이번 앨범에 내가 딱히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해도 그가 또 앨범을 낸다면 나는 또다시 들어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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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7-0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3-07-02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2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2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3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13-07-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그렇게 짜게 굴면서 이름 때문에 별 하나를 더 주다니, 이 편파적인 양반아. 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3-07-03 17:47   좋아요 0 | URL
그게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 음, 실제로 눈 앞에서 보니까 뭔가 새록새록 정이 생기는 게 이름도 한 번 불러보고 싶고 말이지. ㅎㅎㅎㅎㅎ
 
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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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일을 하신다. 아침 여섯시 반에 일을 시작하고 다음날 아침 여섯시반에 일이 끝나는 24시간 근무를 하고 계시는데, 24시간동안 잘 수 있는 건 고작 두 시간 정도 뿐이다. 텔레비젼 시청도 안되고 신문을 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자는 것도 겨우 두어시간 허락해줄 뿐이니 침대 따위를 기대하는 건 사치고, 에어컨도 준비되어 있질 않다. 이 열악한 근무환경에 치를 떨고 밤에 잠도 자지 못하게 하는 부당한 처사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원래 경비는 자지 않고 지키는 게 임무다' 라는 답만 돌아온다.


그래, 맞다. 경비는 말그대로 아파트 입구에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을 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24시간 근무라고 잠을 자지 않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지 않은가? 감시와 보호 일을 제대로 잘 하게 하려면 근무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덟 시간이어야 하는게 아닐까. 나는 보통의 사무직이지만 여덟시간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운도 빠진다.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파트 경비의 특성상 그들은 오십대 이상의 남자들인데, 그들이 여덟시간이 아니라 이십사시간을 한결같이 순찰하고 감시한다는 게, 그게 합리적이라고 정말 생각하는걸까? 게다가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은 고작해야 백만원 남짓. 그마저도 일자리가 없어  보수가 적고 근무환경이 열악해도 그들은 '자르지만 말아달라'의 심정으로 그 환경을 견디어낸다. 거기에서 잘리면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니까. 여덟시간씩 일하고 교대하게끔 삼교대로 돌려줬으면 하는 게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인건비 문제로 아파트에서는 그런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했을 경우 지금 두 명에게 나가는 인건비를 세 명에게 나눠준다고 하면, 지금 일하는 사람들은 고생스러워도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할 것이다. 아파트는 그걸 알고 있다.



왜 누군가에게 일은 고되고 힘들고 열악하며, 왜 누군가는 그런 일조차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할까?




버트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다가, 그에게 감탄했다. 이 책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보라 권하고 싶었다. 특히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고용주들에게 필독하게 하고 싶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시점에서 일정한 수의 사람이 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하루 (이를테면) 8시간 일해서 세상에 필요한 만큼의 핀을 만들어 낸다. 그때 누군가가 같은 인원으로 전보다 두 배의 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다. 그러나 그 세게에선 핀을 두 배씩이나 필요로 하지 않을 뿐더러 이미 핀 값이 너무 떨어져서 더 이상 낮은 가격으론 팔 수도 없다.

이때 지각 있는 세상이라면 핀 생산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의 노동 시간을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조정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 종전처럼 잘 굴러갈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 세게에서 그렇게 했다간 풍속 문란 행위쯤으로 여길 것이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8시간씩 일하고, 핀은 자꾸자꾸 남아돌고, 파산하는 고용주들이 생겨나고, 과거 핀 제조에 관계했던 인원의 절반이 직장에서 내쫓긴다.

결국 모두 4시간씩 일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만큼의 여가가 창출된 셈이다. 그러나 인력의 절반이 완전히 손놓고 노는 동안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과로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불가피하게 생긴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 커녕 온 사방에 고통을 야기시킬 뿐이다. 이보다 더 정신나간 짓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p.22)



경비 뿐만은 아니다. 이 나라의 많은 근로자들이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기도 하고, 연월차수당을 받지도 못하면서 쉬지도 못하는 채로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많은 '일'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건 일자리가 있는 사람의 문제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자리조차 없어 늘 불안과 가난에 시달린다. 이 환경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직원을 더 뽑아서 야근을 없애고 실직자도 없애는 것은 가장 당연하고 뻔한 해결방법인데도, 기업은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사람을 더 채용하면 그만큼의 인건비가 더 나가니까. 기업이 노동력 착취로 벌어들이는 이익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 그래서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일에 치이거나 가난에 치일 수 밖에 없다.


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눠서 함께 일하면 안되는걸까.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p.33)



러셀 아저씨의 말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우리는 뉴스를 보며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말하는데, 그 험악함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우리 모두가 힘들게 하루하루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선한 본성의 발현만을 기다리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소리 아닌가. 




러셀이 주장했던 것처럼 '모두 다 네시간 근무 그리고 여가활동' 이 도무지 꿈같기만 하다면, 모두가 8시간 근무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24시간 근무하고 누구는 365일 일을 하지도 못하는 이사회는 확실히 비정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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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6-2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면서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캔디는 '선함'을 대변하지 않았나요?
저는 그'선함'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네요.

제가 십년전에 투잡 뛸때 아침 8시부터 5시까지 한 타임, 오후5시 부터 새벽 1시나 2시까지 두타임.이렇게 16시간 정도 일을 했었는데 참...힘들었어요. 특히나 앉아서 일보는 사무직이 아니라 더 했겠지만 여하튼....젊었어도 힘든건 힘든거였죠.
일의 능률? 그런거 없죠. 그냥 버티는거에요. 시간제니까......
아버님 참...힘드시겠어요....

다락방 2013-06-26 15:03   좋아요 0 | URL
지금 우리가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게 배부른 자들의 배를 더 부르게 해주는 일인것 같아요. 모두 다 같이 좀 덜 힘들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배부른 자들의 주머니가 지금보다 약간 가벼워질지도 모르고, 그건 배부른 자들이 도무지 감당하려 하질 않고요.

힘드시죠, 힘드신데 별 수 없는거에요, 이 상황에서. 답답하죠. 그런 직장 때려쳐, 라고 말한다면, 그런 저야말로 배부른 소리 하는게 되는거죠. 에휴..

L.SHIN 2013-06-26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적 여유는 경제적 여유, 시간적 여유가 뒷받침 되어야 제대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한 본성이 나오는 것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
그만큼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씁쓸하고 안타깝습니다.

다락방 2013-06-26 15:05   좋아요 0 | URL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여유'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자기들은 여유로우면서 말이지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왜 마음에는 여유가 없는지 답답하기만 해요. 답답한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네요, 엘신님.

blanca 2013-06-2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정말 몰랐어요. 두 시간 자고 24시간 근무라니요. 에어콘도 신문도 책도 안 된다고? 눈물이 핑 도네요. 이 책은 친정에 남동생이 사 두었던데 당장 들고와 읽어볼게요. 아버님 파이팅!

다락방 2013-06-26 15:06   좋아요 0 | URL
그뿐만이 아니에요, 블랑카님.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를 찾아와 한마디씩 하죠. 그 중엔 별의별 사람들도 다 있어서, 아버지가 전에 근무하신 아파트의 한 아주머니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에 오는 걸 막으라고 했대요. 그걸 어떻게 막냐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더니, 개똥을 모아서 놀이터에 뿌리라고 하더래요...허...참..................

열악한 근무환경에 꼴불견인 사람들까지. 참, 어렵네요, 블랑카님.

마노아 2013-06-2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보리 출판사는 6시간 근무해요. 대한민국에선 경이로운 숫자예요.

저 어저께 시험 감독을 60분씩 세번 했는데 수당을 세시간만 쳐준다는 거예요.
다른 교사들은 30분씩 6교시 수업한 걸로 해놓고 강사는 이렇게 대접하네요.
원래 45분 수업니까 한발 양보해도 4시간은 인정해줘야 하는데도 말이지요. 완전 더럽고 치사해요. 흥!

다락방 2013-06-26 15:08   좋아요 0 | URL
여섯시간 근무라뇨, 마노아님. 대박이네요.
요즘 제 남동생도 매일 야근하거든요. 사람 하나만 더 뽑아주면 되는데, 그걸 안 뽑아주고 있는 직원들을 야근시키네요. 있는 직원들을 좀 더 여유롭게 해주고 실직자를 한 명 줄이는 것이 회사로서는 정말 못할 짓인걸까요?

그리고 아니, 강사에 대한 취급은 왜 그렇게 개떡같답니까? 덜 가진 사람들을 아주 초라하게 만드네요, 사회 구조가...

아무개 2013-06-26 15:27   좋아요 0 | URL
에? 뭡니까...거참 정말 빵꾸똥꾸 같네요!

그런데 다락방님이 우리가 쓴 글 못봤나봐요 오호호

마노아 2013-06-27 09:17   좋아요 0 | URL
담당 선생님과 교무부장님께 부당하다고 말씀 드렸더니 안 된다고 했는데, 나중에 교장샘이 6시간 인정해 주라고 변경 지시 내려왔어요. 그나마 교장샘(여자분)이 상식적이어서 다행이에요. ㅠ.ㅠ

다락방 2013-06-27 15:33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저 오늘 오전에 읽었지 뭡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노아님, 제일 높은곳에 계신 분이 상식적이라 다행이네요. ㅠㅠ 밑에 사람들이 다 상식적이어도 윗 사람이 꼴통이면 그게 더 문제. '손아람'의 [소수의견]에서 배심원은 상식적으로 판결했지만 판사가 뒤엎어 버리는 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그래서 욱 치밀었는데. ㅠㅠ

2013-06-27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7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ㅈㄷㄱ 2013-06-2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radio.ddanzi.com/index.php?mid=broadcast&category=1176709&page=2&document_srl=582993

들어보시면 해결책까진 아니라도 이런 사회가 된 이유정도는 알 수 있으실듯
(처음부분이 부담스러우시면 중간이후부터 들으셔도)

다락방 2013-06-27 15:37   좋아요 0 | URL
아, 조만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 창비세계문학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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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스물다섯살에 발표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운의 사랑과 자신의 쓰라린 실연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청년 괴테는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중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임을 느끼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괴테는 수습 근무를 중단하고 낙향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차에 결혼한 여성을 사랑한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한 괴테는 죽음의 충동과 싸워가며 4주 만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완성한다. “나는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중에 써내려갔다. 작품을 통해 폭풍우처럼 격렬한 격정에서 구제되었고, 일생일대의 고해를 하고 난 후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괴테에게 이 작품은 실연의 고통과 치명적인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절대적 사랑을 희구하는 순수한 영혼과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예리한 지성을 지닌 청년의 영원한 상징, 베르터. 베르터의 자아실현 욕구는 감성과 이성의 전면적 발현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갈구하던 당대 청년들의 집단적 열망을 대변했고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베르터 씬드롬을 일으키며 당시 유럽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전인적 이상을 추구한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운동의 구심 역할을 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가들에게 찬탄과 매력의 대상이 되어왔다. 서구문학사 최초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대를 뛰어넘어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여전한 울림을 주는 명실상부한 고전이다. (책소개 中)




중학교 시절, 내가 아는 베르테르는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낭만적이고 순애보를 펼치는 남자였다. 로테라는 여자를 짝사랑하며 괴로워하는 남자.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 설정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이라 이 남자의 슬픔과 자살을 읽어보자 생각하고 책을 펼쳐 들었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지루해. 이게 대체 뭐그리 위대하단 말야? 십대의 내게, 베르테르는 지루했다.



그로부터 이십년 가까이 지났구나. 나는 다시 베르테르를 읽는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이 책에서는 베르터)를 따라 많이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나의 소설이, 그것이 위대하다고 칭송될지언정, 문학이, 사람들을 자살로 이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건 말도 안돼, 나는 그런식의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책 속에서 로테를 향한 사랑에 애를 끓이는 베르테르를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짝사랑의 아픔을 넘어, 왜 어떤 이들에게 자살은 마지막의 선택일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닫는다. 자살은 사람이 해서는 안될짓이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이제 베르테르를 읽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 선택밖에 남은 것이 없었을거야,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둑질이 악덕인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인 가족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 도둑질한 사람은 동정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처벌을 받아야 할까? 바람을 피운 아내와 저열한 유혹자를 의분을 삭이지 못해 죽인 남편에게 누가 먼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지없는 환희의 시간을 맞아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희열에 몸을 맡긴 처녀에게 누가 먼저 돌을 던지겠는가? 우리나라의 법률 자체도, 아무리 냉혹하고 고지식한 법관이라도, 감동을 받아서 처벌을 철회할 걸세."

"그건 전혀 그렇지 않아." 알베르트가 대꾸했다.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일체의 분별력을 잃고 취한이나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니까."

"아, 자네처럼 이성적인 사람들이란!" 나는 웃는 얼굴로 소리쳤다. "격정! 도취! 광기! 자네 같은 사람들은 아무런 동정심도 없이 느긋하게 지켜보기만 하지. 자네처럼 윤리적인 사람들은 술꾼을 나무라고 정신 나간 사람을 혐오하고 성직자처럼 그냥 지나쳐버리지. 그러면서 하느님이 자신을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바리새인처럼 감사하지. 나도 가끔 취해본 적이 있고 나의 격정은 광기에서 멀리 떠어져 있지 않지만, 나는 그 두가지를 후회해본 적은 없네. 왜냐하면 뭔가 위대한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비범한 사람들은 모두 예로부터 취한이나 광인으로 지탄받았다는 것을 내 나름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지.

그런데 평범한 생활에서도 어느정도 자유롭고 고귀하고 예기치 않은 행동을 하면 어김없이 '저 인간은 취했군, 바보같이 굴잖아!' 라며 흉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야. 자네처럼 냉정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니까! 똑똑한 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pp.76-78)




베르테르는 로테의 남편인 알베르트의 장전되지 않은 권총을 이마에 가져다대본다. 그 모습을 본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결국은 자살에 대한 이 논쟁이 시작된다. 베르테르가 이성적인 알베르트에게 맞서는 그 모든 말들, 그 말들에 담긴 절절한 감정과 흥분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고, 다른 상황이 하나의 사건 사이에 숨겨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인데, 지금 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므로 그 감정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그 자신이기도 하고 이 세상의 모든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자살에 대해 변호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 기쁨과 괴로움과 고통을 어느 한도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그 한도를 넘어가면 곧바로 쓰러지고 말지. 그러니까 나약한가 강인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간에 과연 어느 한도까지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가의 문제야. 그래서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해. 마치 고약한 열병에 걸려 죽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야."

"그건 궤변이야!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알베르트가 소리쳤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터무니없지는 않아." 내가 대꾸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는 데는 자네도 동의할 걸세.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심신이 극심한 타격을 받아서 기력이 소진되고 작동을 멈춰서 다시는 기력을 회복할 수 없고, 제아무리 획기적인 소생술을 써도 생명의 정상적인 운행을 복구할 수 없게 되지.

그런데 이런 경우를 인간의 정신에 적용해보세. 제한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고 특정한 생각에 고착되어서 마침내 격정이 점점 크게 자라나 차분한 사고력을 잃고 파멸로 치닫는 것이지.

느긋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그런 불행에 빠진 사람의 상태를 위에서 내려다보았자 아무런 소용도 없어. 그런 사람에게 뭐라고 설득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환자의 병상을 지키는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기력을 아픈 사람에게 조금도 불어넣어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pp.79-80)




베르테르의 고양된 말들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의 모든 면면이 이해되어, 나는 그가 이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 작품도 위험하구나, 생각한다. 이제는 이 책을 읽고 베르테르처럼 자살했다는 젊은이들이 생겼다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그들 모두를 변호해줬고, 정신과 마음의 고통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자살이란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베르테르 역시 자신의 고통을 그런식으로 끝냈듯이. 아, 이 책은 얼마나 위험한가. 나는 이제 하나의 소설이, 하나의 문학 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처절하게 이해한다. 




이것은 사랑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 '빚을 진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걸 갚으려고 생각하기 때문'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베르테르가 앓는 것도 같은 이유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다른 남자의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점점 커져만 가는 마음을, 끓어오르는 격정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기 위해 노력한다.그래서 그는 힘이 든다. 그가  참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주인 아가씨를 사랑하다 그녀와 결혼할지도 모를 남자를 살해한 머슴을 이해하고 그를 변호한다. 그가 그동안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베르테르는 알고 있다. 결국 그가 살아야 자신의 존재가 합당해진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를 변호하는 사람이 자신 뿐임을 알고 자신에게도 이제 절망뿐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아파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아파하는 한 남자가 아파하는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해주고 아파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변호해주는 이야기이다. 베르테르가 결국은 울며 로테의 발 앞에 무릎 꿓었듯이, 그러다 참지 못하고 결국은 입을 맞추었듯이,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접했던 이들이 선택하게 되는 최종적 결말 앞에, 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이 어리석다 말할 수 있을것인가. 그 안의 그 고통에 대해 우리는 차마 짐작하지도 못하면서.



베르테르의 면면이 이해돼 아픈 소설이고, 그 아픔이 책 바깥으로 넘쳐 흘러 모두에게 위험한 책이다. 사춘기 시절의 내게 베르테르는 지루함의 책이었고, 표면적으로 짝사랑에 대한 슬픔의 책이었다면, 지금 내가 읽은 베르테르는 위험한 책이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누군가 지금 내게 베르테르를 읽었냐고, 그 책이 어땠냐고 물으면 나는 단 한마디로 대답할 것이다.



매우 위험한 책이에요.



나는 이 책을 읽을 모두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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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6-1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거(danger)군요.

다락방 2013-06-19 13: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네, 단거. ㅎㅎ

아무개 2013-06-1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페이퍼를 읽을 모두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매우 위험한 페이퍼에요.

아무개 2013-06-18 11:58   좋아요 0 | URL
덧. 저도 십대에 집어 들었다가 지루해서 집어 던진 기억이 있어요 .

다락방 2013-06-19 13:37   좋아요 0 | URL
왜 십대에 그렇게 고전을 읽으라고 이 나라가 난리일까요. 십대에 고전을 읽고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어른이 되서 읽는 고전이 훨씬 더 재미있는데, 책은 즐기면서 읽게 놔뒀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무개님. 아무개님도 지금 다시 읽으면 꽤 놀라실 거에요!

Jeanne_Hebuterne 2013-06-1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전 제과 브랜드 롯*가 이 소설 여자 주인공 이름 '로테'에서 왔다는 걸 알고 혼자 크게 놀랐습니다.

(특히 야구장 함성 소리를 들을 때마다 깜짝!!!)


다락방 2013-06-19 13:38   좋아요 0 | URL
아 정말입니까?
저는 롯데와 로테는 무슨 상관일까, 베르테르의 여자가 로테인걸 알고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맙소사, 거기서 가져온 거군요!!

페크pek0501 2013-06-1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세 번 읽었어요. 쭉 이어서 읽은 게 아니라 십 년쯤 간격으로 읽었어요. 20대에, 30대에, 그리고 몇 년 전에...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저도 처음엔 명작이란 생각이 안 들었는데 몇 년 전에 읽었을 땐 명작답게 좋았어요.
어떤 책이든 깊게 느끼며 읽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 영국 귀족이 (베르테르)에 의해 야기된 자살 전염병에 대해 괴테를 비난하자, 괴테는 순전히 '경제' 용어로
이렇게 답변하는 것이었다. "당신네들의 상업 체계가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낳게 했는데, 왜 그 중 몇 명을
(베르테르)에게 허용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 128쪽.

다락방 2013-06-19 13:40   좋아요 0 | URL
저는 20대에 읽지는 못했는데, 그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지금처럼 감동을 받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왜 하필 자살이람, 어쩌면 이런 식의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책은 지금 만나는 게 제게는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고 혼자 합리화를 해봤어요.

옮겨주신 롤아 바르트의 인용문은 와, 좋은데요!! 감탄이 절로 나와요. 그러게요, 상업 체계에게는 왜 책임을 물지 않고 괴테에게만 그러는거죠? 괴테님은 멋지네요, 역시.

프레이야 2013-06-1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위험한 책! 그래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왔겠죠. 이 책 표지 에쁘네요. 저도 두세번 오랜 사이를 두고 읽었는데 격한 감정에 휘말려 써뒀던 글도 생각이 나요. 베르테르가 말하듯 실제로 열병에 걸려 죽을 것 같은 사람한테 조금만 참으라고 참아보라고 위로 아닌 위로, 종용을 하는 건 정말 참지 못할 일이지요. 당시 베르테르는 냉정한 이성만을 우위에 두는 사회에 일종의 신인류가 아니었나 싶어요.

다락방 2013-06-19 13:42   좋아요 0 | URL
책 표지가 저도 무척 마음에 들어요. 확- 튀는 표지에요. 색깔이 너무 좋지요?

프레이야님의 이 댓글이 무척 좋으네요. 무척 반갑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성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보기 좋게 반박한 케이스, 신인류라 칭해도 좋을 그런 인물이었어요. 지금 읽는 저도 베르테르에게 감탄하는데 당시에는 얼마나 논란이 됐을까요. 허약하다는 이유로 더 강하지고 더 잘 견뎌내라고 말하는 것도 무책임한데, 견디다 견디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서, 과연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을 살아 있는 자들의 입장에서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프레이야님.

2013-06-19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9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9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9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작나무 2013-06-1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견디는 자에게 고통은 지나갑니다. 베르테르도 조금만 더 견뎠다면 로테를 세월 속에 묻을 수도 있었을 것을.

다락방 2013-06-19 13:49   좋아요 0 | URL
안타깝죠. 안타까운데, 그게 베르테르의 선택이었으니까요. 지금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한테 '조금만 더 견디면 다 지나가' 라고 말한들 그게 그의 귀에 가 닿지를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안타까워요.

turnleft 2013-06-1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소설으로 대표되는 "낭만주의(로맨티시즘) " 사조라는게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맨틱" 하다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요.

낭만주의를 좀 거칠게 정의하자면, "도덕, 이성 등의 논리적 사고의 제약에서 벗어나 감정, 충동의 극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 정도로 정의될 수 있는데, 베르터(베르테르가 저는 입에 익는데.. Werther의 독어식 발음은 베르테르 아닌가요?)가 추구한 것은 그런 극단(사랑에서건 혹은 허무주의에서건)이었다고 봐야겠죠. 예컨데, 매우 치렬하게 싸운 적장에 대한 평가가 고전주의적 입장에서는 "나쁜 놈", 이지만 낭만주의적 입장에서는 "어느 편이건 상관 없이,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 이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는거죠. 덕분에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범죄라고도 할 수 있는 스토킹 등도 낭만주의적 입장에서는 칭송받을 수도 있는 열정입니다 ㅎㅎ 어쨌건 베르테르가 자살한건 나쁜거다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고전주의적 입장에서의 접근이 되겠구요.

시대적으로 보면 낭만주의의 태동은 새로운 사고를 억누르던 카톨릭 교회의 영향력 감퇴와, 항로 개척 등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권의 사상이 흘러들어오면서 형성된 다원주의적 사고 등으로 인해 가능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다수의 한국 청소년들이 이 소설을 읽고 거부감(?)을 보이는게 얼마나 이 사회가 교조적인가를 보여주는 지표일 수도 있어요. 온갖 도덕률과 터부와 규율에 길들여진 이들이 낭만주의적 감수성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어요. 진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이유도 마찬가지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테구요...

다락방님이 "위험하다"라고 느낀 이유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시대를 불문하고 사회의 규율을 비웃는 청춘은 불온한(그리고 섹시한) 매력을 풍기기 마련이죠 :)

다락방 2013-06-19 13:57   좋아요 1 | URL
우와, 턴님의 긴 댓글이다. 완전 짱좋아욧!! >.<


일단 제가 위험하다고 느낀 이유는 베르테르의 말이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말이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이고요. 이성주의자들에게 반박 함으로써, 베르테르는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앓기만 했던 이들의 공식적인 대변을 해준 것 같달까요. 그래서 그 당시에 이 책을 읽고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난걸텐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책 읽고 자살을 실행해, 라고 넘기지는 못할만큼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르테르처럼-그러니까 베르테르와 같은 이유,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고통에 휩싸인 젊은이들에겐, 그래서 자살을 생각해보고 있는 자들에겐, 등 떠미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살에 대해 합리적인 변명을 해줌으로써 실행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걸 실행하게 되는, 일종의 자극제 같은, 그런거요. 그게 제게는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고통스럽고 휘청거리는 영혼에게 이 책은 피해야 할 책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위험하다고 느낀건 베르테르 자체에 대한 거기도 해요. 그가 고통스러워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격정적이 되는 그 매 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이거야 원, 이 남자 이러다 일내겠군, 싶어지기도 하고요. 베르테르의 심리를 따라가노라니 나조차 휘청이는 것 같더라고요.


청소년들에게도 물론 그렇고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학교 교육은 우리를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쇠뇌시켰고, 그런 사람들에게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라고 하면 그것은 불륜한 여자의 최후가 될테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라고 하면 허약한 낭만주의자 쯤이 되겠죠.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과 학교에서 읽으라고 추천해주는 고전 문학작품들 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것 같아요. 비단 우리나라 학교 뿐만은 아니겠지요. 안나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친구 하나 없이 지냈고, 베르테르도 알베르트로부터 지탄을 받으니까요.

그래서 문학작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손가락질 당하는 자들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고발하기 위해서, 우리가 학교 교육으로 얼마나 많이 편협해져 있는지를 끊임없이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지요. 고전은 위대합니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들어요. 베르테르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ㅜㅜ

blanca 2013-06-1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아류인 줄 알았어요. 다락방님이 별 다섯 개를 준 소설이라면 신뢰가 가는데요.

다락방 2013-06-19 13:59   좋아요 0 | URL
저도 베르터 라는 이름이 익숙하질 않아서 초반에 베르터, 라고 할 때는 이건 누구? 했어요. 새로운 등장인물인가 보다, 하고. 익숙해지기까지 한참 걸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때는 또다시 베르테르 라고 말하게 되네요.

블랑카님, 이 소설은 블랑카님이 읽으시면 아주 감정이 격해지는 리뷰를 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읽어주세요, 부디.

단발머리 2013-06-2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문학동네 판이 50% 세일할 때, 사두었는데 다락방님 페이퍼 보니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또 사야할 것 같은데요. 어쩌죠???

다락방 2013-06-21 09:04   좋아요 0 | URL
오, 문동에서 50프로 할인을 했었습니까? ㅎㅎ
단발머리님, 삼십대중반에 읽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정말 감정을 격하게 움직이더군요. 단발머리님도 꼭! 도전해 보세요.

2013-06-22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5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6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6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6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6-2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롯데 신격호 회장이 젊은 시절 이 책을 읽고 감명받아 회사 이름을 지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아마 중학교땐지 고등학교땐지 선생님이 했던 얘기였던 것 같아요.
저도 10대 때 열심히 읽었는데, 그리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나이 때는 유부녀를 좋아한다는 상황을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 읽으면 재미있을까요?
사실 30대 초반에 찾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지루해서 그만둔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베르터'라고 쓰나봐요.
발음따라 쓴 걸까요? 표준어 표기법을 지킨 걸까요?

다락방 2013-06-25 17:33   좋아요 0 | URL
저도 십대에는 지루하더라고요. 그 지루함만이 기억에 남아 다시 읽을 생각도 못하다가 최근에 한 번 다시 읽어볼까, 대체 왜 이 책을 읽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었다는거지? 했는데, 와, 삼십대 중반에 다시 읽는 이 책은 정말 ㅠㅠ 위험하더라고요.

아마도 발음따라 쓴 게 아닐까 싶은데, 왜 저렇게 쓴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ㅎㅎ어쨌든 익숙해지질 않아요. 베르테르가 너무 익숙해서 말이지요. 하핫;;
 
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정말 놀랍다. '한 노인이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는 식의 뻔한 이야기일거라 짐작했지만,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보다 더한 성찰과 성장이 담겨 있어서 내내 감탄하고 감동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게이츠 길'은 잘나가는 광고회사의 중역이었고 당연히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일했었다. 그러다 오십대 중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혼자 일해보려 하지만 그조차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외도로 아이를 낳기도 해서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했다.  더이상 아무도 자기를 만나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때,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마시던 그에게 스타벅스 매니저가 자신들과 함께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로서는 정기적인 수입이 생길 수 있는 일자리니 고맙긴하지만 영국 여왕과 차를 마시기도 했고 헤밍웨이와 대화를 해보기도 했으며 시나트라와도 인사했던 그가, 막스앤스펜서와 비엠더블유의 광고를 따내고 능력을 인정받던 그가 하기엔 한없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하나하나 성실히 일을 배워나간다. 빠지는 날도 없이 청소부터 커피를 만드는 일까지 열심히 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그곳에 적응하려 하고 자신보다 훌쩍 어린 상사의 밑에서 기초부터 배워나간다. 그 기초란 손님의 주문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는 기초를 말하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기초.



"제 영업장에서는, 우리 영업장에서는 ‥‥‥누구든 반갑게 맞이해야 합니다. 누가 됐든 화장실 사용을 막지 마세요. 특히 다른 사람의 환영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더더욱 반갑게 맞이하세요. 그들을 무시할 사람들보다는 그 사람들을 더 많이 신경 쓰세요." (p.99)


노숙자로 보이는 돈없는 노인이 화장실을 쓰려고해서 그가 사용을 금지시켰는데, 그 모습을 본 크리스털이 그에게 하는 말이다. '그들을 무시할 사람들보다는 그 사람들을 더 많이 신경 쓰세요' 라고. 



그곳에서 파트너들(스타벅스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를 파트너라 부른다)과 함께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온 그 모든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는 것도 인식하게 된다. 그간 자신의 딸이 그렇게 목이 아프게 부르짖어도 흘려넘겼던 말인데.



로라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서 내 호사스러운 생활방식을 비난했다. (p.57)



게다가 이곳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또 스타벅스 자체가 그의 성장을 돕는다. 무릇 인간이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십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는데도, 아직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니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순네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깨닫고 또 여전히 성장할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그가 호사스럽게 누려왔던 모든것들을 주었던 대기업, 그곳의 경영이 그간 얼마나 '인간'을 무시하는 것이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고작 커피를 파는 회사에서. 이건 미국의 이야기지만, 한국이라고 뭐가 다를까.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라 부속품 취급을 받게 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에 반해 스타벅스의 경영진들은 '직원이 즐거워야 우리가 즐겁다'는 자명한 이치를 깨닫고 그걸 몸소 실천하려고 한다. 이 경영방식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세상 대부분의 커다란 기업들이 이 당연한 걸 해내지 못해서 이 기본적인 일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일이 된다. 



대기업의 중역으로 있을 때에도 시력검사 혜택까지 무상으로 지원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조앤이 시간제 직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스타벅스의 직원복지 제도는 정말이지 특별하다 할 만했다. 솔직히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p.172)




"대학에 진학해서 역사 강의를 들어보려구요. 스타벅스에서 학비를 대 주거든요." (p.232)


시간제 직원들에게까지 학비 지원을 해 주는 스타벅스의 복지제도는 훌륭하다. 그러나 그 훌륭한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려는 파트너에게는 남다른 열정과 인내가 요구된다. 앤서니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크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목표를 이루는 데 스타벅스의 도움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p.233)



스타벅스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안과와 치과를 찾을 수 있는 직원들, 듣고 싶은 강의를 스타벅스의 지원 덕에 들어볼 수 있는 직원들. 이건 사실 우리가 일하면서 받아야 하는 당연한 복지가 아닌가. 


이 책은 시종일관 스타벅스와 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이고 밝은면, 칭찬으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삐딱하게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질 않는다. 그건 이 책의 저자가 진심으로 그곳과 그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그가 성장하는 모습이, 점점 달라지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가 경비일을 처음 시작하실 때, 간식이라도 싸들고 아빠한테 갈까, 했더니 아빠가 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다. 아빠는 경비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이 책에서 주인공 마이크도 딸 앞에 부끄러워했다. 카운터를 보게 된 지 얼마 안되서 한창 긴장하고 있었는데 주문을 받고서야 자신의 딸임을 알아챘던 것.


"안녕, 아빠."

애니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딸오 달아보지 못한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거기다 초록 앞치마를 두르고 검정색 모자를 쓴 채 일이 손에 익지 않아 쩔쩔매고 있었으니‥‥‥.(p.133)


그러나 나는 경비일을 하는 아빠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외려 자랑스러웠다. 이 책속에서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본 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


"멋졌어요. 까만 스타벅스 모자를 쓰신 아빠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어요." (p.141)


2교대인 경비일은 24시간 꼼짝없이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하므로 지독하게 고단한지라 지금 아빠는 일을 쉬고 계신다. 그래서 더더욱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아빠가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일하지도 않고, 시간제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미 프리젠테이션과 광고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고, 커피를 사랑하며 커피맛을 구분할 줄 아는 마이클과는 준비되어 있는게 다른 분이신데,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돈계산, 커피에 대한 상식까지, 아빠가 새로 배우기 시작해야 할 게 한두개가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예순 넘은 분에게 일하기 위해 이 많은것들을 배우도록 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 아닐까 싶어졌다. 지금의 나라면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것 같지만, 우리 아빠에게는 가혹한 일이 되겠지.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를 훌쩍이면서,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성장이 내게는 눈부시게 느껴졌다. 




읽다가 정말 당장이라도 스타벅스에 가서 취직하고 싶어졌었는데, 그건 내가 이런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패스트리에 이상이 없는지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봤다. 그 과정에서 라즈베리 스콘 하나가 깨진 걸 발견했다.

"같이 나눠 먹어요."

조앤이 웃으며 말했다. (p.173)



그러니까, 본사에서는 깨진 스콘이나 부서진 패스트리에 대해서 교환을 해준다는 것. 그러니 깨진 걸 먹어도 되는거다. 꺄울!! 나는 스콘을 정말 좋아하는데! 따뜻한 스콘을 쪼개어 거기에 버터를 듬뿍 바르고 그 위에 딸기쨈까지 발라서 입 안에 한가득 넣고 씹으며 그 뻑뻑함을 커피로 넘기는 걸 엄청 사랑하는데!! 


그리고 이런 부분에선 좀 미안해졌다.

손님들은 냅킨을 한움큼씩 집어간다. 소비하는 설탕의 양도 엄청나다. 가끔은 스타벅스에서 더 많이 나가는 게 커피보다 냅킨과 설탕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pp.276-277)



스타벅스에서 한움큼씩 냅킨을 집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나다. 스타벅스 냅킨(을 비롯하여 다른 까페의 그 누런냅킨들도)이 얼굴 기름 닦는데는 정말 탁월한 효과가 있거든. 기름종이보다 낫다. 쿨럭.



내가 미국에 가게 된다면, 마이클이 일하는 스타벅스를 찾아가보고 싶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혹은 차가운 캬라멜마끼아또를 주문해야지. 그에게 싱긋, 미소지어주고 싶다. 책 표지속의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손님들이 좋아하는 직원이 된 것도 당연해보인다. 참 좋은 할아버지란 인상을 준다. 그 인상은 그의 성장이 빚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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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05-2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이야기입니다. 책도, 다락방님 글도...

다락방 2013-05-27 10:26   좋아요 0 | URL
책이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괜찮더라고요.
비 오는 월요일이네요..출근하기 정말 싫었어요. orz

수이 2013-05-2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어요. 그렇고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락방님 글 읽고나니-

다락방 2013-05-27 10:26   좋아요 0 | URL
저도 안읽어도 알 수 있는 뻔한책,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으로 놓치기에는 아까운 책이더라고요. :)

Kir 2013-05-2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을 보니, 상사의 영향도 크겠지만 미국 스타벅스는 기본적으로 한국와 영 딴판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신세계가 들여와서 그 모냥일까요?
제가 일해본 바 한국 스타벅스는 파트너 (알바생)의 안녕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뭐, 몇년 전이라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 손상되거나 유통기한까지 팔지 못한 패스트리나 케이크를 마감 타임 파트너들이 나누어 가져가긴 해요.
폐기해야되는 거라 그게 여러모로 나은 방법이니까요.

다락방 2013-05-27 10:27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면서 과연 우리나라 스타벅스도 직원들의 건강보험과 교육비 혜택을 당연하게 해주고 있을까? 생각했지만 절대 그럴리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역시나 한국 스타벅스는 직원들의 안녕에 조금도!! 관심이 없군요. 흐음. 안타깝네요.

자작나무 2013-05-2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는 부업으로 스타벅스를 차렸는데, 퇴근후 매장가서 주문도 받고 청소도 하고 아주 즐겁게 하더라구요. 월수입이 3천이라더군요.
제 목표도 스타벅스 하나 차리는 거예요. 까만 모자를 쓰고 주문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락방님 오면 휘핑 듬뿍 얹은 카라멜 마끼아또 한잔 공짜.

다락방 2013-05-27 10:28   좋아요 0 | URL
부업으로 스타벅스를 차리고, 월수입이 3천이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부업으로 월수입 300이라도 가져가면 좋을텐데요..꿈같은 얘기에요. 로또나 사야겠어요. ㅠㅠ

그나저나 비도 오고 습도도 높아서 아이스캬라멜마끼아또 생각이 간절하네요. ㅠㅠ

관찰자 2013-05-2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책에 나오는 마이클,
그리고 이 페이퍼를 쓴 다락방님의 글을 읽다보니

흠.
역시 난(?)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는.
해고당하고, 좌절하고, 진상이 될 수도 있는데 마이클은 또 그 와중에서도 배우고, 성장하네요.
다락방 님이 어떤 책에서든 찾아내는 의미들처럼요.

다락방 2013-05-27 10:2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책 속의 마이클은 단 하루도 결근을 하지 않아요. 두려워하면서도 일을 배워나가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깨달음도 얻을 수 있고 또 다른 직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은 환경에서 근무한다고 모두가 다 같은 걸 느끼고 생각할 순 없을테니까요. 저는 저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어른의 깨달음을 보는게 아주 즐거웠어요.

단발머리 2013-05-2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이야기 너무 감동적이예요. 제목과 표지로 봐서, 딱 '스타벅스'에서 만든 책 같은데, 내용은 다르다는 거죠.
나두 읽어보고 싶어요.

스콘이야기랑, 냅킨이야기랑 둘 다 내 얘기예요.

뻑뻑한 스콘에 커피 한 모금 넘긴 후, 냅킨으로 입 닦고.... ㅋㅎㅎ

다락방 2013-05-27 10:31   좋아요 0 | URL
네, 스타벅스에서 만든 책은 결코 아니지만, 이 책이 나와서 스타벅스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됐을것 같긴해요. 긍정적인 내용이 가득하니까요. 일반적으로 누군가 열렬하게 빠가되어 찬양하면 듣는 사람은 오히려 역반응이 생기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책속의 마이클이 정말 즐기고 있어서일까, 거부반응이 들질 않더라고요. 아마도 그런 점 때문에 손님들도 마이클을 좋아하게 된 거겠죠. 독서가 즐거웠어요.

꺅, 스콘을 좋아하시는 단발머리님, 반가워요! >.<

마노아 2013-05-2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 참 좋네요. 이렇게 더운 날에도 이렇게 따뜻한 글 때문에 가슴이 훈훈한 게 나쁘지 않아요. 다락방님 멋진 사람~♡

다락방 2013-05-27 10:31   좋아요 0 | URL
뭐 멋질것 까지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만간 만나서 우리 실컷 먹어요, 그게 뭐든. ㅋㅋㅋㅋㅋ

감은빛 2013-05-2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콘이 뭔지 몰라 이미지 검색을 해봤습니다만,
사진을 봐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네요.
과자나 케익 같은 거겠죠?
아마 평생 먹을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그 이름을 들으면 다락방님을 떠올리며,
무슨 맛일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저 스타벅스는 우리나라 스타벅스랑 많이 다르네요!
아니 스타벅스의 문제가 아니겠죠.
기업 문화와 산업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것이겠죠.

애초에 우리나라였다면,
잘 나가던 광고회사 중역이 커피숍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테니까요.

역시 다락방님 글은 참 좋네요!

다락방 2013-05-27 10:34   좋아요 0 | URL
저는 언젠가부터 감은빛님을 자꾸 검색하게 만드네요..하핫;;
스콘은 빵종류에요. 굉장히 뻑뻑해요. 물이나 우유 없이 먹기는 좀 곤란한 빵이죠. 따뜻하게 데워진 스콘을 쪼개서 거기에 버터와 딸기쨈을 바르고 먹으면 진짜 환상적이에요! 아, 혹시 KFC 에서 '비스켓'을 드셔보셨다면,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 스타벅스는 네, 우리 스타벅스랑 다르죠. 말씀하신대로 기업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나겠죠. 시간제 직원들의 건강보험까지 책임지다니, 교육비도 책임지다니, 여기에 있는 저로서는 그저 꿈같고 환상 같기만 해요.

세실 2013-05-2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퇴직하고나서 스타벅스에 취직할까?하는 생각을 했어요.ㅎ
다락방님 알수록 매력있어요^^

다락방 2013-05-27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스타벅스에 취직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세실님.
그렇지만 우리나라 스타벅스는...................................................곤란하겠죠, 많은것이.................이 글에 나온 스타벅스와는 아주 많이 다르겠죠...................

G.Ego 2013-05-25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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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3-05-2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
이 책은 여러모로 '무스탕'이랑 관련이 깊은 책이군요.
옮긴이가 '수정'이고 글 중에 크리스털이 나오고 저도 수정이고... ㅎㅎㅎ
(막 우깁니다. 비가 내려 그런다고 또 우깁니다)

다락방 2013-05-27 14: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나저나 비가 내려서 습도가 너무 높은가봐요. 끈적끈적해서 기분 나빠요. 오늘 점심에 백반집엘 갔는데 오늘 메뉴는 김치찌게라는 거에요. 도무지 이 습도에 앞에서 찌개를 끓일 수가 없어, 저는 그냥 제육볶음을 시켰어요. 배가고파 허겁지겁 먹었더니 이젠 배부르네요. 히히.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무스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