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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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것이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고발장이 학교에 도착한다. 그 고발장은 그 학교의 유명한 불량학생 세 명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1,2권은 떨어져 죽은 학생과 고발장을 보낸 학생, 그리고 불량학생과 그 외 다른 학생들의 각자의 고독 혹은 아픔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이 책의 3권에서는 그 사건의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학생들이 재판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나는 여전히 중학생들이 이렇게 재판을 '잘'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재판 자체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잘 해내다니, 이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회의적이랄까. 이것은 작가의 무리수가 아닐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라면 좀 지나친 소설적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반드시 이 장치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치를 통해서, 다시 말해 이 재판을 통해서야 비로소 속으로만 곪았던 아이들의 각자의 심정을 토로해낼 수 있게 되니까. 재판은, 그들에게 증인 혹은 피고인등의 역할을 부여하면서 그들의 심정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외롭고 고독한 그들이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또 답함으로써, 그렇게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이 재판의 목적은 애초부터 '잘잘못을 가려내 나쁜놈을 벌 주자' 가 아니었던만큼,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했던 것인 만큼, 우린 모두 각자의 사정 혹은 제 몫의 진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두에게 알려지면서 이 재판은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3권에서는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출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도 내리기 직전까지 눈물이 자꾸 나서 코를 훌쩍였다. 그제서야 나는 미미여사가 대단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래야만 했구나, 이래야만 했어. 이렇게 해야만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어. 이것은 지나친 장치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그래야만' 하는 장치가 되었구나. 재판을 함으로써 이 책은, 할 말을 하게 되고 가야할 곳을 가게 되고 봐야할 것을 본다. 그리고 책 속의 모든 인물들과 나는 모두 들어야 할 것을 듣게 된다.



"결국 자살방지 특효약이란 건 없는 거네."
눈에 깃들었던 분노의 빛을 지우고 야마노 가나메가 중얼거렸다. "음악가의 세계에도 비극은 무척 많아. 예술은 어떤 사람은 구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궁지에 몰아넣으니까." (p.630)


나를 구원해준 방법이 다른 사람도 반드시 구원해준다고는 보장할 수 없다. 내 방식의 문제 해결이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 방식이 될 수도 없다. 누군가는 자신안의 깊숙한 곳에 숨겨둔 고독과 외로움을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털어놓고자 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그것을 털어놓았을 때 외려 나로부터 더 멀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말할 수 없게 된다. 


나라면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도망쳤을지 모른다. 저 간바라 가즈히코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나 하며 겁을 집어먹었을지 모른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멀어졌을지 모른다. (p.571)


나는 언제나 죄책감에 약해진다. 죄책감이 인간을 인간이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죄책감이란 게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시 또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고 남을 도울 수 있게도 된다. 그러나 그것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것이라서 한 번 자리잡은 이상 도저히 자리를 떠날 생각을 않는다. 이 책에서도 중학생이 세상을 떠났고,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마음들중 누군가의 것에 죄책감은 가서 박힌다. 그 죄책감은 그들을 후회로 이끌고 사슬이 된다. 이 책에서의 재판이 미처 말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발언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면, 거기엔 외로움과 고독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과 더불어 죄책감을 드러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죄책감, 그것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학생들은 '친구가 되어' 재판에 열중한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이 책을 읽었지만, 그렇다해도 나는 여전히 이 재판이 '현실성'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 여기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해서 중학생들이 재판을 한다면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잘해낼 수 있을까? 공정한 판결이 나올까? 아니 판결이 아니라 진실에 다가설 수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털어낼 수 있다는 건 '소설이기에' 가능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재판이 혹여라도 열린다면, 이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과 방청인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우울하고 나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비로소 주변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될 거라고. 혹여 우울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사람이었다면 세상에 나같은 사람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현실에서의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이런 재판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랄테고, 또 학생들 스스로도 그러려고 하지 않겠지만, 분명 참가하는 사람들중의 일부는 성장할 것이다. 어제와는 다른 내가 또 오늘과는 다른 내가 미래에 되어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을 하기 위해 재판을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 재판에서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면 그렇게 듣게 된다면, 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 녀석은 악마다. 나는 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그런 인간이 있다. 남들과 공존하지 못하는. 항상 자신이 특별한 존재여야 직성이 풀리는. (p.635)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특별하길 원한다. 가끔은 특별하다는 착각도 하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되면 좌절감과 절망감에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하다.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다,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특별한 인간이 아닌 것 같아 좀 더 깊은 고독속으로 침잠하게 될 때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결국 미미 여사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내가 태어난 의미를 찾는 건 나 자신이다. '시시한 인간'인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찾아낼 것이다. (p.638)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임을 아무리 인식시키려고 해도 부족할 때가 가끔은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을 때, 그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해 우리가 절망하고 외토리가 되어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이 책속에서 가전제품점 아저씨의 괜찮냐는 말 한마디가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물어주면 좋을텐데, 괜찮냐고, 정말 괜찮은거냐고, 그렇게 한 번 더 보아주고 물어주었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고독하고 덜 외롭고 죄책감도 줄어들 수 있을텐데.


"너, 괜찮겠니?"
고바야시 슈조가 질문을 던진 '너'는 후지노 검사가 아니었다.
"정말 괜찮겠어? 응?" (p.536)



<모방범>, <마술은 속삭인다>, <낙원>, <이유>, <화차>, <눈의 아이>, <스텝파더 스텝>, <이름 없는 독>, <스나크 사냥>, <지하도의 비> 까지, 내가 그간 읽어온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꼽아보니 몇 권 되는데, 이 책, <솔로몬의 위증> 1,2 권을 읽으면서 이 책들중 어딘가에 끼어도 억울하지 않을 그동안의 미미여사의 책들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 <솔로몬의 위증> 3 권을 읽으면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 그간 내가 읽어온 미미여사의 책 중에 이 책이 최고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내 귀로 정확히 들어왔고 그리고 정확하게 마음에 스몄다. 가장 많이 내 마음을 움직였고 가장 많이 울었다. 등장인물들의 그 마음들에 공감하는 내 자신이 미울 정도로 나는 그들이 되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책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해줘서.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해줘서.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바였으니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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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 2014-01-15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거 제 일정상 읽는 데 좀 걸렸는데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보고 재밌어서 본가에 가져다 드렸더니 엄마가 이런 걸 좀 써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4-01-15 17:17   좋아요 0 | URL
오, 어머님이 이걸 다 읽으셨어요? 멋져 ♡.♡

1,2권까지는 무섭고 좋고 그랬는데 3권에서 아주 그냥 사람을 훅 빨아들이네요.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이야, 라고 말이지요. ㅎㅎ

유부만두 2014-01-1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래요? 전 1, 2권을 읽고 나서 3권은 포기했어요.... 3권 출간이 늦은 탓도 있지만 2권에서 이야기를 너무 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아, 어쩌나...

다락방 2014-01-15 17:17   좋아요 0 | URL
아니, 어떻게 포기할 수가 있죠? ㅎㅎㅎㅎ 저는 3권이 너무 궁금했는데요. 그리고 읽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요. 유부만두님, 3권 도전하세요!

얼음장수 2014-01-1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바빠서 못 읽던 차에
누나한테 빌려준 책이네요.
어서 받아서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14-01-16 08:47   좋아요 0 | URL
저는 사놓고 남동생이 먼저 읽었어요. 남동생은 <모방범>이 더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이 훨씬 더 좋았어요. 책장은 모방범이 더 빨리 넘어갔던 것 같긴 하지만.. ㅎㅎ

어서 읽으세요. 그나저나 잘 지내고 계신겁니까?!
 
모든 삶이 기적이다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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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에게 연애란 언제나 1프로쯤 부족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에이포 용지에 가득 채울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게 아닌 이상, 상대가 내게 '완벽할'리 없으니까. 설사 에이포 용지에 가득 찬 그 사람이 바로 나타난다 해도,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치명적인 단점 혹은 약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연애란 게 완벽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무엇인가는 포기해야 하는 것, 그나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꼭 지켜줘야 하는것들을 지켜주는 상대라면, 어떤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포기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 연애라고 생각해왔다. 뜨거운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 꼭 맞는 상대가 나타나면, 그 사람에겐 언제나 불안한 마음도 동시에 생겼다. 이 뜨거운 열정을 그가 다른 누군가와 나눌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열정 대신 안정감을 선택하면 그건 그것대로 지루했다. 격하게 뛰는 가슴을 느끼고 싶은데. 그래서 그 둘을 저울질 해보니 불안함이 더 큰 걸 견디지 못하겠기에, 나는 늘, 약간은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상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게 지나치리만큼 잘해주고 한없이 다정하다. 내가 싫다고 하는 걸 듣고 외우고 그대로 실천해주고자 한다. 더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매너와 예의, 다정함을 갖추고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 부족함을 채워줄 다른 사람을 다른 식의 포지션으로 여기저기에 놓아두어야 했다. 연애에 있어서 나는 만족할 줄도 몰랐고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으며 다만, 이렇게 일프로쯤 부족한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이 책을 읽게 됐고, 처음부터 이런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내가 꼭 끌어안아도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침대에서 나오려고 할 때만 깨어난다. 그는 나의 육체와 나의 불면증, 나의 악몽에 익숙하다. (p.11)



이사벨 아옌데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익숙한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연애란 건, 상대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인거라고, 부족하다 넘치다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인 거라고 익숙해지는 바로 그 과정. 나는 그 과정들을 받아들이기에 훈련이 덜 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해지기 보다는, 혹여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구속하지나 않을까, 그게 두려웠다. 나를 잡으려고 하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어, 내 안에는 언제나 날카로운 송곳이 여러개쯤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이사벨 아옌데는, 이런 나에게 또 말했다.



격정적인 열정보다 매일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를 더욱 단결시킨다. (p.12)



반복되는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은 무엇보다 내가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질려간다면, 그건 얼마 안되 무너지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지칠거야, 난 끊임없이 다른 곳을 보겠지. 그는 내가 원하는 걸 전부 채워줄 수는 없어, 난 얼마 되지 않아 그로부터 돌아설테니,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함께 하지 않아야 해. 나는 언제나 돌아서는 것을 생각했다. 언제쯤 이별을 말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사벨 아옌데는 반복적인 일상이 우리를 더욱 '단결' 시킨다고 말했다. 맙소사. 단결이라니! 난 왜 단결에 대해서는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단결은 식구들이랑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고보니 가족들과 단결할 수 있는것도 일상을 오랜시간 반복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반복되는 일상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연인으로부터 단결을 부를 수도 있겠구나. 그 단결은 열정보다는 익숙해짐이 불러오는 것일테고. 책을 펼치자마자 이토록 파고드는 글이라니. 



이사벨 아옌데는 딸을 잃었다. 딸의 죽음을 보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한 데 모아 부족을 이루며 살고자 하는 그녀의 꿈이 내게는 좀 지나치게 보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는거란 생각이 들었다. 손녀 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병실에 가득찰 수 있다니, 그 누구도 아픈 환자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상으로 단결하고, 그 단결을 좀 더 단단히 하고자 부족을 이루며 살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자식 그리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보내면서, 그녀는 틈틈이, 당연하게도 죽은 딸을 떠올린다. 죽은 딸에게,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말해준다. 레즈비언을 경멸했다가 레즈비언이 되어버린 며느리를, 남편에게 맞고 살던 친구를, 마약 중독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남편의 손녀를, 그리고 죽은 딸의 남편에 대한 일까지도. 그들 모두는 거친 인생을 헤쳐나가며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힘들어하는 과정들을 겪었고, 이사벨 아옌데는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며 언제나 그 중심에서 그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고자 한다. 그러나 엄청난 사랑에서 나온 행위는 때때로 지나친 간섭을 불러 오기도 하고, 싸움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점을 보고 그 점에 대해 맹신하는 것이, 한 사람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내 함께 사는 것만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나와는 좀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자꾸만 사람들에게 짝을 찾아주려고 엄청나게 애를 쓴다-, 그녀는 이 한 권의 책에서 몇 번이나 코끝을 찡하게 만들고, 



두려움은 어절 수 없었다.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마비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었다. 네가 죽은 이후 나는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니면 어딘가에 글로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파울라,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까 봐 두렵고 그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게 될까 봐 두렵고 늙어서 망가져 가는 게 두렵고 날로 증가하는 이 세상의 빈곤과 폭력, 그리고 부패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네가 없다는 슬픔을 견뎌 내며 그 슬픔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 너의 부재와, 내가 살면서 잃은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달콤한 추억이 되어 가는구나. (p.153)



그리고 그 횟수만큼 피식- 웃게도 만든다. 




"오늘은 너무나도 불행한 날이에요!" 안드레아가 훌쩍이며 나에게 말했다.

"안드레아, 하루 종일 좋았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니?"

"아니요, 있었어요. 한 여자아이가 넘어져 이가 부러졌어요."

"하지만 맙소사, 안드레아, 그게 왜 좋은 거니?"

"내가 아니니까요." (p.128)



하하하하. 안드레아는 그녀를 꼭 닮은 손녀임에 틀림없다.



키 1미터 50센티미터는 땅바닥에 떨어진 것을 쉽게 줍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때 아버지 넥타이 네 개로 치마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제외하면 아무런 장점도 없다. (p.359)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가 대화를 시작하려는 듯 내게 물었다. (중략)

"소설가 입니다."

"우와! 아주 흥미롭군요! 나도 정년 퇴임하면 소설을 쓸 생각입니다."

"정말요? 그러면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데요?"

"치과 의사입니다." 그가 내게 자기 명함을 건넸다.

"나는 정년 퇴임하면 어금니를 뽑을 생각입니다." 내가 그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코끝이 찡하게 한만큼에 피식 웃게 한만큼을 더해서, 반복되는 일상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좋을지도 보여준다. 그녀가 강제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생각과 또 그녀가 주변 사람들(하다못해 어린 손주들까지도!)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레한드로, 너를 슬프게 하는 건 뭐니?" 내가 물었다.

"안드레아하고 싸우는 거요. 하지만 전 우리 관계를 개선해 보기로 했고, 꼭 그렇게 할 거예요. 각자 자기 고통에 책임져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그건 늘 진실은 아닌 것 같구나. 난 파울라의 죽음에 대해 책임질 수 없고 로리 역시 자신의 불임에 대해 책임질 수 없어." 내가 반박했다.

"어떤 고통은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고통에 대한 반응만큼은 우리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요. 위예 할아버지한테는 제이슨이 있어요. 할머니는 파울라 고모가 죽고 나서 재단을 만들어 우리 기억 속에 고모의 생상한 모습이 영원히 남아 있도록 해 주셨고요. 그리고 로리는, 친자식을 가질 순 없지만 우리 셋이 있잖아요." (pp.433-434)






이사벨 아옌데는 칠레의 전(前)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의 조카이다. 그녀는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인해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가게 되었고, 현재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책을 읽고있을 즈음, 신문에서는 '미첼 바첼레트'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기사를 읽다가 칠레의 정권의 역사가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



이사벨 아옌데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었는데, 이사벨 아옌데를 알고 나니 칠레의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유독 눈에 띄고, 그렇게 그 기사를 읽고났는데 이 책의 뒷부분에서도 미첼 바첼레트에 대한 언급이 된다. 이사벨 아옌데의 망명과 미첼 바첼레트의 대통령당선에 대한 소식과는 별개로 하나의 책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맞물려 연결지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더 깊은 독서로 이어지고 그 독서가 다시 신문 기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가 보호하고 지켜야할 대상이 있다는 뜻이다. 그건, 내게 약점이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나는 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렵고 소중한 사람이 다칠까 두렵다. 하지 않아도 좋을 걱정으로 잠자리에서 뒤척이기도 수차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이런 걱정들과 염려로 일상을 보내고 있을텐데, 그들중 누군가가 지나친 걱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이성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어한다해도, 어떻게 마냥 화를 내고 싸울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서로에게 또다시 익숙해지며 대화를 해야할 것이고, 너무 사랑하는 마음을 다스려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방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이사벨 아옌데가 깨달은 것도 결국 그것이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를 정면으로 공격했고 결국 문명화된 합의에 이르렀다. 그는 내 삶에서 좀 더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나는 그의 삶에서 좀 더 부재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p.225)



그녀는 죽은 딸 파울라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영혼을 느낀다. 그녀가 느낀다면, 그녀가 느끼는 것이 맞다. 그것을 기적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역시 기적일 것이다.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면, 그건 운명일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일, 그것을 내가 무어라 부르든, 그것은 내가 부르는 그대로가 맞다. 내 삶에 기적이 찾아든다면, 그 기적이 내게 오도록 내가 만들었고, 이것이 내 운명이라 생각이 든다면, 이것이 운명이 되도록 매순간 내가 결정한 일이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며 보낸 세월들이 모두 합쳐지면, 그게 우리의 운명이 된다. (p.471)




이즈음은, 내가 이 책을 읽기에 적절한 타이밍이었고, 결국 이 타이밍은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일상에 또 하나의 기쁨과 슬픔을 보태주었다. 이 역시 내 선택이었다.




갑작스럽게 노화가 진행된 일다 할머니의 말년은 우리가 아닌 딸이 맡아 돌봤다. 의사들은 그녀가 담배를 오래 피워 거듭 폐렴에 걸리면서 노화가 심각해졌다고 했다. 그 후 점점 할머니에게서는 살아왔던 삶이 잊히기 시작했다. 일디타는 자기 어머니의 마지막 단계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거라고 이해하고, 두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인내심을 무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여든 살 노인에게 그 인내심을 아낄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일디타는 어머니가 목욕하고, 식사하고, 비타민을 복용하고, 침대로 자러 갈 수 있도록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봤다. 일디타는 계속되는 똑같은 질문에 열 번을 똑같이 대답했고, 노인네가 무의미한 얘기를 막 끝낸 다음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몇 번이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듣는 척해 줘야 했다.(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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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12-2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크리스마스!

다락방 2013-12-26 08:28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 크리스마스 잘 보냈어요? 전 <변호인>보고 눈물만 줄줄 흘렸네요 ㅠㅠ

단발머리 2013-12-24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햐~~~ 좋아요.
역시 크리스마스엔 다락방님 리뷰를 읽어야돼!!!
메리 크리스마스~~

다락방 2013-12-26 08:29   좋아요 0 | URL
우앙 단발머리님이 좋아해주셔서 제가 다 좋으네요. 히히.
크리스마스 잘 보냈어요? 벌써 지나버렸다니, 이제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니...흑흑. 아쉬워요. ㅜㅜ

달팽이 2013-12-2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벨 아옌데의 운명의 딸 읽어보세요. 좋아하실거예요.^^

다락방 2013-12-26 08:29   좋아요 0 | URL
저는 영혼의 집을 한 번 읽어볼까 생각중이었는데 운명의 딸이 더 나을까요? 흐음.

레와 2013-12-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며 보낸 세월들이 모두 합쳐지면, 그게 우리의 운명이 된다."


이 문장 참 좋군요..

다락방 2013-12-26 11:40   좋아요 0 | URL
좋지요? 이 에세이가 참 좋았어요. 에세이는 이렇게 써야하는구나, 라는 깨달음도 동시에 얻었답니다.

주태백 2013-12-3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도 되나요? 출처는 확실히 밝혀두겠습니다.!!

다락방 2013-12-30 08:15   좋아요 0 | URL
옙! 아침 일찍부터 오셨네요!!
 
버림받은 그녀 - HQ-666
린 레이 해리스 지음, 정성희 옮김 / 신영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그녀가 관심 없다고 하면 어쩌죠?"

"관심 없으면 그렇게 떠나지도 않았을 거다."

바비가 대답했다.

"여자들은 뭔가 겁나지 않으면 달아나지 않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네 재산과 이름뿐이었다면 결혼 서약을 하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을 거야. 내가 장담한다." (pp.229-230)



1. 겁나지 않으면 달아나지 않는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의무감에 결혼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자신은 그를 사랑하는데. 그래서 그녀는 도망쳤다.


2. 부자 남자들이 가난한 여자를 두고 서로 좋다고 싸우는 걸 볼 때도 짜증났는데, 완전 부자남자가 완전 부자여자랑 사랑하는 걸 봐도 짜증이 나네.


3. 난 그냥 내 남자가 아닌 부자 남자가 짜증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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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2-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3-12-17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8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7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12-17 11:3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2013-12-17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7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7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8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12-19 10:56   좋아요 0 | URL
우히히히 고맙습니다. 잘 볼게요!

2013-12-2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3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he Kinfolk Table 킨포크 테이블 one The Kinfolk Table 킨포크 테이블 1
네이선 윌리엄스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혼자 하는 식사는 자유로워서 좋다. 내가 원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메뉴를 정할 수 있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이 식사에 투자할 것인지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식사를 하는것이 즐거울 때가 있다. 좋은 사람과 좋은 메뉴, 그리고 함께 하는 이야기와 웃음들이 행복을 선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같은 메뉴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충족된 기쁨을 준다. 내가 맛있어 하는 이것을 당신도 맛있어하고, 함께 이것이 맛있으니 이야기는 더욱 무르익을것 같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자와 나와 비슷한 입맛을 가진자와 동시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면, 어쩔 수없이 후자로 기울고야 만다. 먼 길을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 나는 언제나 그 길을 내 친구 D와 함께하고자 한다. 그 친구가 지도를 잘 보고 내가 길을 묻는등의 역할 분배도 그렇지만, 우리는 그 낯선곳에서 '이것 먹자' 라고 했을 때 '그래 좋다'라는 답을 서로 할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잘도 먹는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는 즐거움이 이 책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자랄 때는 외가나 친가의 온 가족들이 브런치를 먹으러 모일 때가 많았어요. 베이글과 훈제 연어, 참치, 다른 훈제 생선과 키쉬를 먹었지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모두들 모여 있다는 건 참 좋아요." -일라이 서스맨 (p.30)


언젠가 [무한도전]의 '못친소'에서 김제동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시시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는데 김제동이 '아 좋다' 한거다. '다같이 모여서 아침을 먹으니까 좋다' 며. 혼자 먹는게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이지 가끔은, 소중한 사람 여럿과 함께 먹고 싶어지니까. 그 때 행복함이 물씬 생겨나기도 하니까.


언젠가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파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내 집으로 초대하는 것. 그들이 내 집에 도착했을 때, 초대받은 모두가 서로를 아는 사이인 건 아니지만, 이 파티를 계기로 서로 알게되고 친근해졌으면 좋겠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면, 그들이 서로를 싫어할 리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한데모여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거창한 파티를 준비하려는 게 아니다. 한 테이블에 모인 사람 모두가 둘러 앉아 술과 음식을 한껏 즐기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거다. 따뜻하고 정겨운 저녁 식사 한 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책장을 넘기다가, 내가 꿈꾸던 바로 그런 식사 장면이 등장하는 것 같아서 행복해졌다. 아, 이렇게 말이야, 이렇게.





내가 초대할 인원은 열명이 조금 넘어갈 것 같은데, 그렇다면 흐음, 음식을 서빙할 도우미가 있어야 할까.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우린 서로가 서로의 도우미가 되는 것이 파티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이 테이블에 어떤 음식들이 놓이면 좋을까. 이런 음식들이면 정말이지 좋지 않을까.









하아- 이 사진들은 예술이며 고문이다. 음식 사진만 화면에 꽉 찬 게 아닌데도 얼마나 맛있을까 침을 흘리게 만드니 고통스러워. 이 모든 음식들을 내가 다정한 벗들을 초대할 저녁 식사 메뉴로 내고 싶은데, 나는 요리 머저리..도무지 자신이 없다. 이 책에는 당연히 혹은 친절하게도 레시피가 나와있다. 그러나 나와있다고 다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재료중에 한두가지 이상씩은 꼭 외계어(다진 붉은 러시안 케일 1다발 p.32, 아루굴라 4컵 p.74)같은 게 등장해서 멘탈이 잠시 멈추고, 그나마 이건 가까스로 준비할 수 있겠다 싶으면 무슨 오븐을 몇 도로 예열을 해놓고 어쩌고 해야하고...



위의 사진은 <스페인 오믈렛 토르티야>인데, 이건 큰 마음 먹고 언젠가 한 번 만들어 보리라, 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러다 이내, 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저 남자의 거친 손을 보며, 아 젠장, 이런거 만들어주는 남자가 나 좋다고 하면, 그 때는 앞뒤볼것 없이 확- 결혼해 버리는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나는 늦잠자고 부시시 일어났는데, 아침에 저렇게 스페인 오믈렛 토르티야를 내게 내민다면, 우와- 진짜 짱행복할 것 같다. 마음놓고 잘난척할 수도 있겠지. 나, 이런거 아침마다 먹어, 라고.



사진 한 장 한 장이 아름다운데, 오, 아름다운 문장들도 툭툭 튀어나온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툭, 툭.



색깔이 예쁘고 맛이 신선한 이 샐러드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송가와도 같아요. (p.35)


이런 낭만적인 문장의 주인공인 샐러드는 이런 비쥬얼이다.



뭔가 진짜 여름의 송가 같다. 크-  몇 개의 문장을 더 옮겨보자면,


어느 날 로마의 노천카페에서 완벽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이 오래된 열망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삶은 머그잔과 프렌치 프레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p.50)


매년 7월 말, 뉴햄프셔야 있는 호수 주위로 야생 블루베리가 익을 때가 되면 우리 가족은 블루베리를 따서 잼을 만들었어요. (중략) 아침에 리코타 치즈와 함께 통밀 토스트에 발라 먹거나 요거트에 넣어 먹어보세요. 일 년 내내 여름을 간직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p.60)



브루클린과 코펜하겐에서의 저녁 식사 모임을 찾아간 이 책의 저자 '네이선 윌리엄스'는, 그러나 '여유있는' 사람들만 찾아갔던 건 아닐까 싶다. 가끔 그들이 요리하는 환경이 혹은 거주하는 환경, 밥을 먹는 그 환경이, 지나치게 '환상적' 이란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들과 내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공간은, 그림속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안살어서 그렇지, 사실 저게 그렇게 꿈의 공간은 아닌건가. 얼마든지 저렇게 살 수 있나? 암튼 이쁘다. 


아, 저녁 식사를 초대하게 되면 빠지지 않고 꼭 생굴과 연어를 차려두고도 싶다. 화이트 와인과 함께하면 대박이지 않을까. 이렇듯 정갈한 연어를 보노라니 당장이라도 집어 먹고 싶어..



물론 내가 가장 먹고 싶은건, 바로 이 구운 토마토 였다.



이건 뭐 보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아. 술도둑..될 것 같다. 와인도둑.. 하아- 이런것들을 차려두고 멋진 남자들을 단체로 불러서 함께 술을 마시고 깔깔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들을 초대할 때, 내 집에는 방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화장실도 물론 여러개 였으면 좋겠고. 그나저나 저 토마토 옆의 메뉴는 레몬을 올린 닭가슴살인가, 뭐 그런 이름인데. 저것도 좋아 보인다. 히융 ㅠㅠ 매일 이것들을 먹기만 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아름다운 음식과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진들이 책장을 넘길때마다 펼쳐져서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책장에 꽂아두고 간혹 꺼내보면 훈훈한 기분이 될 것 같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보다 더 좋은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을 다 보고나서야 2권을 예약판매중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아, 이게 앞으로 계속 나오는 시리즈라면, 나는 이제 어쩌면 좋아. 계속 정기적으로 돈을 지불하게 되겠구나. 이 사진들을 보느라고.


아 빨리 돈 모아서 커다란 집을 하나 사야겠다. 방이 많은 커다란 집. 부엌도 커다란 집. 그래서 파티를 하고 싶다.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싶다. 웃다가 너무 좋아서 울고 싶을것 같은, 그런 밤을 만들고 싶다. 내 시선이 어딜 향해도, 그곳에 소중한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를 줄 게 아니라면, 이 책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두 권 다 줘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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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12-1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베트의 만찬이 떠오르네요.

다락방 2013-12-16 18:04   좋아요 0 | URL
저 메피스토님의 이 댓글 보고 으응 이것은 뭣이냐 싶어 검색하고 책을 오늘 구매했습니다. dvd 는 책을 본 다음에 생각해볼 예정입니다. 메피스토님이 말씀하신 건 책인가요 영화인가요?

Mephistopheles 2013-12-17 10:09   좋아요 0 | URL
둘 다지요.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책을 나중에 접했지요...

레와 2013-12-1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븐온도는 내가 맞출테니, 락방은 얼른 집을 사도록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 책 소개글에 보면 나무가지에 빵반죽을 말아서 모닥불에 둘러앉아 구워먹는 장면이 나와요.
만드는 과정이 너무너무너무 간소한거야!! 이게 말이돼!!!! 어!!!!!
나는 빵 한번 만들라치면 부엌이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되는데...ㅡ.ㅜ


무튼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다락방 2013-12-16 18:05   좋아요 0 | URL
나무가지에 빵반죽..모닥불..난 못봤는데 ㅎㅎ

음식이 잔뜩 차려지면 냄새도 정말 좋겠죠? 모두들 술마시고 꽐롸되는 밤을 만들자 움화화화홧
 
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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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비행기와 기차 혹은 배나 버스를 탈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오랜 시간을 들여 갈 수도 있다. 걸어서 도착하는 것도 한 방법일텐데, 이렇듯 다른 여러가지 방법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나는 누군가에게 '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 으로 보이겠지만, 실상 내가 누구인지 가장 잘 말해주는 건, 이 목적지에 '어떻게' 왔느냐 일것이다.

 

나는 이 책, <얼음공주>를 읽으면서 목적지와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보게 됐다. 이 소설의 배경은 작은 어촌마을이고, 이곳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 책속의 주인공 에리카는 희생자가 자신과 어린시절 각별했던 친구였던지라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형사와 함께 이 사건을 풀어나간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것, 이 이 책의 목적지라고 했을 때, 그러니까 이 책을 단순히 '추리' 라고 봤을 때 이 소설은 그다지 대단할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작가는 살인사건 하나를 풀어내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했으면서, 실상 더 많은 사소한 일상들을 곳곳에 심어놓았다. 부인에게 질려서 언제고 부인 곁을 떠나고 싶어하는 남자가 그 마을에 있고, 사랑이란 감정만 믿고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가 있다. 결국 그 살인사건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면서도, 한 여자에게 호감을 품고 설레임을 받아들이는 남자를 보여주고, 와인을 입안에 넣고 굴려 그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여자를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인물들과 이야기들 사이사이, 나는 이 작가를 점점 더 마음에 들어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거다.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건, 내가 지금 여기 서있다는 자체가 아니라, 여기에 오기까지 어떤 길을 걸었느냐 하는 것이라는.

 

게다가 주인공 에리카는 너무나 나를 닮아서 정이 팍팍 든다.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즐기다가 몸무게를 재고 절망하는 게 그렇다. 와인을 입안에 넣고 굴리면서 행복해하는 것도 그렇고, 남자를 초대해놓고 어떤 속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것도 그렇다. 호감이 가는 남자와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문제들에 직면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그렇다. 물론 그녀의 해결이 언제나 올바르고 타당한 건 아니다. 때로는 무례하고 때로는 좀 지나치다는 감이 들지만, 그녀는 문제들과 사건들 앞에서 당당하게 마주하고자 한다.

 

대단할 것 없는 추리소설이었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는데, 덮고나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자꾸만 생각난다. 결국 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끝에 있었던 거겠지만, 이 작가가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방향을 보고 있는지는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에 나와있었던거구나. 주인공 에리카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물론 다른점도 많다. 이를테면 끼니를 잊을 때가 더러 있다는 것 따위- 정다운 소설이었는데, 마지막, 결국은 아내로부터 몰래 도망치는 데 성공하는 남자를 보는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촌 마을의 한 사람인 조연이 지긋지긋한 아내로부터 도망가는 내용은, 이 소설의 사건과 끝에 이르기까지 연관이 없다. 쓰지 않았어도 내용 전달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적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이 작가를 조금 더 잘 알 수있게 된거다. 묵묵히 걸어서 혹은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서 우리 모두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일들을 마주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 각자의 몫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한 작가에 대해 궁금해져서 다음 작품을 찾아 읽어보려는 것도 결국은, 결말에서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 작가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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