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디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이 말해준 것들
리사 나폴리 지음, 김유미 옮김 / 수이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동안의 내 삶을 크게 후회하거나 하진 않지만,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다. 어릴적에도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 대학엘 진학하고 직장을 선택하는 그 과정들 속에서도 나는 크게 내 삶의 방향을 고민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늘 현재에 만족하고 그렇게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해서 하루하루 지내다가 지금에 이르렀고, 그리고 지금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아마 크게 욕심이 없는 것도 현재에 만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런 내가 요즘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서울 생활이 답답하다거나 인간들이 지긋지긋하다거나 하는것과는 좀 다르다. 최근에 뉴스를 보며 매일 울었던 것도, 직장에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것도 너무 한꺼번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보았던 대전의 수목원은 도심속의 한가로움을 보여주는 듯해 꿈의 장소로 여겨졌다. 막연히 그곳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나는 양재동이 지긋지긋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 양재동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미칠 정도로 싫다. 양재동으로 일주일에 다섯번 출근해야 하는 삶을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달라지고 싶은것, 더 행복해지고 싶은것. 제주에도 부산에도 여러차례 갔었지만 내가 더 마음이 끌리는 곳은 부산이었고, 최근엔 대전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의 저자가 부탄을 택했던 이유로 나는 대전을 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부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부탄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지도 않은채로 무작정 옮겨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며 혹여 나는 부탄에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역시 나는 부탄엔 갈 수 없겠구나, 싶어졌다.

 

 

 

 

 

 

 

 

 

 

 

아무것도 결정하지도 못하고 확실하지도 않은채로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삶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런 일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이런 고민은 좀 더 일찍 했어야 했던건 아닌가, 하고.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마흔 한 살에 부탄으로 떠났다. 물론 그녀는 부탄에 거주지를 정해 그곳에서 정착하진 않는다. 다만 한 번 다녀온 부탄을 자신에게 안락함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 가끔 찾곤 하는 것이다. 그곳에 친구를 만들고 자신이 도와줄 일을 만들고, 부탄 혹은 부탄 사람들을 돕기 위해 현재 자신의 거주지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그녀의 귀와 눈과 마음은 부탄을 향해 열려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그녀가 그 나이에, 자신이 모든것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진채로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며 방황한다는 게, 동질감이 느껴져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이 나이에 고민한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이 책은 내가 중년에 겪은 위기와, 우연히 아시아의 신비로운 왕국을 방문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해 낸 과정을 적은 이야기이다. 나는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을 때까지 삶의 고비마다 후회와 회환에 시달리면서 정신없이 쫓기듯 달려왔다.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뒷북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

 

 

왜 나는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을 이루는 데 실패했을까.

왜 나는 젊은 시절을 그렇게 함부로 낭비했을까.

왜 나는 그렇게 나를 분노하게 하는 직업에 매달렸을까.

어떻게 하면 앞으로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우아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 (pp.12-13)

 

 

 

나를 비롯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순간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더 의미있기를 바라고 우아하게 나이들기를 바라는 것. 아마 그것이 매시간 매일 나이들어가는 우리들이 하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그 답을 젊은 시절 찾는 사람도 있고 나이 들어 찾게 되는 사람도 있을것이며, 그 답을 금세 찾는 사람도 있고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나는, 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승려에게 답했던 바로 그처럼, 그걸 찾는 과정에 놓여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가 완벽한 영어로 물었다.

성직자가 그런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가 내 정확한 답변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의례적인 인사를 건넨 것일까? 그는 내가 힘든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을까? 라마의 현신이라는 이 영험한 승려는 내가 몇 년 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가 앞으로 이끌어야 할 직원들 앞에서 어리석은 답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에요." 적당한 답변을 떠올리지 못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애매하고 가식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 순간의 솔직한 내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몰랐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일 수도, 나 자신을 정화하는 일일 수도, 마음의 평화일 수도 있었다. (pp.107-108)

 

 

 

저자는 부탄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그곳에서 위로를 받는다. 좋은 친구도 사귀게 된다. 자신의 거주지로 돌아오면 또다시 부탄을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고 그것이 힘들었던 그녀 삶에서 자신에게 내려진 해답이었다. 부탄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부탄을 그리워하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걸 안다는, 바로 그것. 마음의 안식처가 어디에든 있고, 언제든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커다란 위안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아예 어딘가로 나를 옮겨두는 게 아니라, 언제든 내가 갈 어딘가가 있다는 바로 그것. 답답하고 한심스러워질 때, 슬프고 하염없이 울고 싶어질 때 어딘가로 가고 싶다, 거기에 가면 내가 나을 것이다, 라는걸 아는 것. 그런 장소가 한군데쯤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저자가 그렇게 힘든때 우연히 방문한 부탄에서 위로를 얻었던 것, 자신이 그 타이밍들의 우연으로 인해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 결코 '부탄'의 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런 열망이 가득한 그때 누군가 다가왔고 또 부탄이 다가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새로 만나게 된 사람도, 그렇게 소개받은 부탄도 그녀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영원히, 여기가 아닌 다른곳을 꿈꿀 수밖에 없는 존재일런지도 모른다. 도시의 각박한 삶에 지치고 너덜너덜해져 그녀가 부탄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부탄에서 그녀를 도와주던 젊은 여자친구는 미국을 방문한 뒤 부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질 않는다. 자신의 삶을 미국에서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한적한 곳에서 살던 그녀에게 도시는 지독하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부탄을 만난 것이 그녀에게 무척 좋았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부탄이 거기 있는한 그녀가 언제든 자신의 한 몸을 지금 여기와 떼어내 머무르게 해줄 곳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게다가 나는 그녀가 여전히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을 불신하고(나처럼),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삶이 더 나은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자기 자신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에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데 나만 늘 허우적거리며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나 나름대로 힘겹게 살고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자녀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헤쳐나가지 못한 채 누군가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불행한 이들도 있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협하고 포기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타협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훨신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나에게 사랑은 경리롭게 다가와 짧은 순간 생기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다가올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p.171)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사실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아직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란 사실만을 명백히 알게 되었을 뿐. 그리고 나는 그녀가 좀 더 기운을 낼 수 있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네개의 별점은 모두 그녀를 응원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사람은 5초후의 일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앞으로 그녀와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거니까. 부탄과는 전혀 다른 것이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의 삶을 황홀하게 만들어줄 지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것이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지금의 이 방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안정감을 줄 지도 모르니까. 나는 평안함이 내 삶에 찾아들기를 바란다.

 

 

 

사과를 한 봉지 사가지고 돌아왔더니, 집에 사과가 있는데 왜 또 사왔냐고 엄마가 묻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사과가 이미 가득한 냉장고에 사과를 넣었다. 오호, 이것은 무언가 대단한 꿈,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 줄 횡재를 맞을 꿈이 아닌가 싶어 로또를 맞춰보았고, 하하하하, 꽝이었다는 사실에 멘붕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사과야, 너는 왜 꿈에 나온거니?

 

주변에 물어봤더니 이건 태몽이란다. 킁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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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5-1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강제로 시골에서 3년 넘게 산 적이 있었는데 은행 한번 가려면 차로 20분을 나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죠. 그땐 시골이 너무 싫었어요. 틈만나면 서울에 오고싶었고...
그런데 지금은 그때가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드네요.

언젠가 저 세상으로 가기 전 내 인생을 문득 돌아보면서, 닥칠 때는 지옥이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꽃동산이었음을 절감할지도 모른다.
꽃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만난 그 많은 행복하고 불행했던 인연들도 사실은 꼭 일어나야 했을 필연이 아니었을까.
다만, 내가 꽃이 왜 피고 지는지, 왜 내가 그 꽃을 지금 이 순간 만나고 있는지 그 의미를 모를 뿐.

다락방 2014-05-12 11:21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곳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시골은 아니에요. 저는 여전히 도시를 꿈꾸고, 그 도시가 좀 여유롭고 한적하길 원하죠. 부산은 바다가 있어서 좋고 대전은 수목원이 있어서 좋고. 바다와 수목원들을 둘러싼 높은 빌딩들이 있는, 그런 곳이 좋아요.

오늘 문득 퇴직금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면서, 중간에 두번이나 받아 쓰지 않았다면 금액이 엄청났을텐데, 싶으면서, 그랬다면 몇개월쯤 일하지 않고 그 돈으로 버틸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엔 회사며 일이며 모두 지긋지긋해요. 죄다 놓아버리고 털어버리고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14-05-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은 아이에게 자주 '너는 외국가서 살아라'고 말해요. 그럴때마다 저는 크게 화를 내죠... 외국에 나가서 살고싶으면 니가 그렇게 해야지 아이에게 자신의 희망을 강요하지말라고. 넌 아직 죽지도 늙지도 않았으니까 하고 싶은게 있으면 니가 하라고. 우린 너무 젊으니까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14-05-13 09:31   좋아요 0 | URL
전 제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초조해요. 여유롭게 이 나이드는 것을 받아들여지질 않네요. 흑흑.
휘모리님은 역시 똑똑하고 멋진 분이신 것 같아요. 휘모리님 아이가 휘모리님처럼 멋지고 똑똑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물려주게 될 세상이 아직은 엿같지만, 휘모리님 아이가 자랐을 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자작나무 2014-05-13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젊은 분들 부럽다는...

다락방 2014-05-13 09:3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젊음은 젊은 그 자체로 부러워요. ㅠㅠ

자작나무 2014-05-14 11:00   좋아요 0 | URL
락방씨두 젊잔아요 아직 삼십댄데 뭘...

다락방 2014-05-14 11:28   좋아요 0 | URL
전 더이상 젊지 않아요 ㅠㅠ
 
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아주 좋을것 같다. 시오리가 기모노를 바꿔 입을때, 밤에 꽃구경을 갈때, 사랑하는 남자와 맛있는 걸 함께 먹을때, 마도카가 과자를 사올때, 그 장면장면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건 분명 특별한 재미를 줄텐데. 조용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영화가 나올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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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짧은 리뷰를 쓰기에 앞서, 별점 없는 리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점을 선택하지 않은 채 쓸 수 있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가끔은 별을 주는게 내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듯하고, 몇 개를 줘야하는지 스스로 알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마찬가지, 셋이나 넷을 주는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도통 모르겠다.)


하나의 사건 혹은 하나의 장소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양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어릴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나는, 교회에 대해 좋은 추억도 물론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뼈아프고 후회되는 기억들을 준 곳이기도 하다. 가능하다면 그 시절들을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내고 싶을만큼. 개중 어떤 기억은 기어코 눈물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교회에 다녔지만, 그 오랜 시간을 다닌 그곳에 이제는 그야말로 악감정만 품고 있으니, 투자한 시간과 세월은-그것을 투자라 부르지 않을지언정- 얼마나 허망한가. 그렇게 나는 철저히 내 입장에서 교회에 대해 '안좋은' 생각과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의 뿌리는 꽤 단단했다. 게다가 이런 내 생각에 부채질하듯 곳곳에 꼴보기 싫은 기독교인들이 넘쳤다.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그들만의)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도, 길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도, 한없이 불쾌하고 한심했다. 다 싫었다, 다. 모조리 다.


그러다 몇해전, 시사인에서 '임영신'의 인터뷰를 읽으며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교회에서 자신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었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내게는 짜증나는 장소이기만 한 곳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좋은 장소일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의 친구 역시, 자신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세상 누구도 도와주지 않던 자신의 어머니를 도와준 곳이 교회였기 때문에 그런 교회를 어머니 앞에서 부정할 수 없다고 했을 때도 역시, 충격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당연한 사실이다. 내게 나쁜 곳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곳일 리가 없다. 당연한 사실인데 이렇듯 마주할 때마다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마주하고나니 인정하는 게 처음 보다는 쉬워진다.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는 기독교인 이거나 기독교인 이었던 10人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엔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인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수의 뜻에 반하는, 기독교 자체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어버리는 인물들이다. 교회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었던 저자인만큼, 그의 이야기들은 아주 생생하게 읽힌다. 먼 곳에서 본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은 것이니, 이 얼마나 신뢰할만한가. 나는 A 부터 J 까지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읽어간다, 


라고 쓰고싶지만 그리 신나게 읽지 못했다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이다. 김영민의 글은 언젠가 신문에서 칼럼으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의 명성을 익히 들었던 바, 오호라 나도 이 사람의 글을 읽어볼까, 하고 작정하고 읽었던 터였다. 그러나 그의 문장들이 내게로 와 바로바로 꽂히지를 못했다. 그의 문장에 숨은 뜻이 문제가 아니라, 그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들 자체가 내게로 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이 책, 《당신들의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는 단어가 많고, 이렇게 말하는 게 건방지게 들릴테지만 지식 역시 풍부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쓴다. 그러나 쉽.지.않.다. 


실재 살아 숨쉬는 우리 주변의 기독교인에 대한 이야기이니만큼, 더 쉬운 글들로 써줬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아주 많이 든다. 그가 선택한 단어들 각각이 어렵거나 젠 체하는 단어는 결코 아니다. 다만, 내가 그 단어들에 무지하기 때문이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차곡차곡,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표시해두었다. 언제고 찾아보아야지 하면서.



언거번거함, 톺아보다, 부박하다, 밑절미, 듣그럽다, 희떱게, 뼛성, 포실하다, 엉너릿손, 맨망한



이보다 더 많았지만, 이 단어들에 표시를 해두면서, 내가 이 단어들을 평소에 쓰는 단어였고 또한 정확한 뜻을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의 문장을, 본문을 '대략적으로' 읽어내는 게 아니라 명징하게 읽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저 단어들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저 단어들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로하여금 이 책을 '분명하게' 읽어내게 하는데는 방해가 되었다는거다. 욕심이겠지만, 교회에 뿌리깊이 박힌 자본주의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금 더 날카로웠다면 조금 더 신랄했다면 좋았겠다는 거다. 양미간에 주름을 빡-잡고 집중해서 읽었지만, 이 얇은 책의 분량이 쉬이 읽히질 않아 아쉽기만하다. 한 번 더 읽는다면 더 잘 와닿을지 알 수 없으나, 한 번 더 읽지는 않을 것 같다.



밑줄긋기 한 문장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니 처음보다 더 잘 읽히기는 한다. 가만 들여다보니 그건 알지 못하는 단어와 아름다운 문장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던건 아닌것 같다. 그렇다면 어디로부터 온것일까. 무엇이 나를 이 책과 딱 맞아떨어지게 하지 못한걸까. 분명하고 명징하게 이 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짚어내는 그들의 문제점을, 안에서도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비단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책을 쓰지도 않았고, 그래서 글쓰기 행위에 옮아붙곤 하는 사후적 보충과 과장의 삶 대신 일회적 상호작용의 완결성에 힘을 다했으며, 무슨 번듯한 사회적 지위를 지니지도 않았던 우리의 스승 예수는 때론 당대의 관습과 상식을 무시하고 스스로 스캔들의 대상이 되기도하면서 민중의 현장을 오갔다. 그러나 그렇게, 민중과 대화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룬 그 놀라운 각성과 변화의 현장은 까맣게 잊힌 채로, 기억과 전승은 체계가 되고 말았다. 그 추종자와 해석가들이 건설하고 건사해온 종교적 체계는 '정신이 없는 (관료적) 전문가' 로 들끓어 기능적으로 각박한 채 종종 턱없이 무능하다.– 120-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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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6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7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3-27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만 봐도 읽어내기 쉬운 문장들은 아닐꺼 같네요.
사회고발(?) 같은 종류의 책들은 풍부한 문학적 표현보다는
명확하고 간략한 문장들이 저는 더 좋던데....

아...그래서 <밤이 선생이다>가 별로 였었었엇나봐요... =..=

다락방 2014-03-27 14:11   좋아요 0 | URL
한 문장이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든걸까요? 가만 들여다보면 딱히 어려운 말이 아닌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읽기 어렵네요. 이 리뷰 써놓고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노라니 읽기 어려웠다는 감상이 제법 많네요. 흐음.

모모 2014-03-2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다니는 회사는 사모가 경리를 봅니다. 매일 출근해서는 목사설교방송가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고 있습니다.
목사가 울부짖고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상황에서 저는 도저히 사모와 같이 은혜를 받을수가 없습니다.
아니 저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하라고 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왜 같은 사무실을 쓰는 여직원에 대한 배려는 못하는 것인가? 아니지 직원은 배려의 대상이 아닌거지? 하고 분노와 절망이 교차하여 힘듭니다. 자기 스스로도 소리가 크다는걸 알면서도 줄이지 않는것도 저의 입장에서는 서운을 넘어 자괴감까지 빠집니다.
회사를 그만둘수 없는 저의 상황이 원망스럽고 하루 하루 회사오는게 지옥에 가는것 같습니다.
목사설교소리, 찬송가소리, 그찬송가를 따라 부르는 소리 듣기싫다고 말할수 없는 이 치사스러움도 절망스럽구요.
무교인 저는 배려없는 사모때문에 기독교가 싫어지고 있습니다.

미안해요.. 처음 다는 댓글이 이런거네요..

다락방 2014-03-27 14:15   좋아요 0 | URL
아니, 찬송가라뇨...설교방송이라뇨.....아, 너무합니다. 대체 사장님은 왜 경리를 사모님에게 맡겼답니까?

저는 중학교때 윤리선생님이 수업 시작전에 찬송가 부르게 시켰어요. 자기가 악보도 크게 써와서 칠판에 붙이고는 다같이 부르게 했죠. 그런 뒤에 수업을 시작했어요. 저희 학교는 기독교 학교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주말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주보를 받아와 자기한테 보여주면 오천원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진짜 토할 것 같은 윤리교사였어요. 그러면서 다른 선생님들은 룸싸롱 다닌다고 막 욕했거든요. 룸싸롱 다니는 건 욕할만한 행동이고, 자신의 종교를 강제하는 건 욕 먹을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는가봐요. 그것도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자기한테 배울 수밖에 없는 아이들한테 말이죠. 대체 왜 그토록 자신의 종교를 강제할까요? 이 책의 111쪽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그렇지만 진리보다 '진리를 말하지 않도록 조심'(니체)하고 복음보다 복음에 대한 아이러니를 말하는 자가 인문학도일진대, 자신이 지닌 믿음의 내용이 그 자체로-그러니까 현실적 전유(realistic appropriation)의 복합적 배려나 고민조차 없이-'복된 소리[福音]'라고 확신하고, 이를 그 누구에게든 애써 선전하려는 이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자신의 것에 그처럼 당당하고, 심지어 타인들의 가책을 유발시키려는 태도 속에서 한껏 오연하려면 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릇, 자신의 경력이든 실력이든 혹은 자신의 자식이든 재식(才識)이든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소개하고 발보이게 드러내지 않는 게 한발 앞선 자의 인지상도(人之常道)일 것인데, 제 종교가 제일이라고 천지가 시끄럽도록 외치는 이 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나저나 반갑습니다. 처음 다는 댓글이야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

버벌 2014-03-2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분 댓글 보고 중학교때 일이 생각나서요. 전 미션스쿨을 나왔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절대 자의가 아닙니다. 뺑뼁이에요.
미션스쿨이니 당연히 예배도 보고, 종교 수업도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로 기억을 합니다. 종교 수업을 들어오신 학교 목사님이 그날 날짜에 맞춰 번호를 쭈르륵 세워서 회개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수업을 끝내지 않는다고 했어요. ... 제일 마지막은 저였어요. 이걸 대답해야하는건가? 난 기독교도 아닌데. 그냥 아무것도 없이 회개 한다고 하면 그게 더 나쁜거 아닌가? 아니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나의 이 모든 생각을 회개하라고 하시는건가? 대답을 바로 못했어요 전. 목사님은 자꾸 물어보고, 전 쳐다보기만 하고, 종은 울리고, 친구들은 웅성거리고, 짝꿍은 내 팔을 잡고 흔들고...... 결국엔 대답을 하고야 말았어요. 친구들이 화장실에 가야한다고 아우성을 쳤거든요. .... 저는 처음 다는 댓글이 아니에요. 응?? ㅡㅡ??

다락방 2014-03-28 10:18   좋아요 0 | URL
하아- 싫다. 싫으네요 버벌님 ㅠㅠ
설사 버벌님과 학생들 모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자의로 그 학교를 선택했다 해도, '회개' 라는걸 그렇게 공개적으로,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걸까요? 그렇게 시켜야하는 걸까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지나치게 믿고 지나치게 빠져버리면 어느순간 이성은 달아나버리는 것 같아요. 자기 생각안에 갇혀버리고 마는거죠. 끔찍하네요. ㅠㅠ

2014-03-28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8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옷수선집
마리아 세실리아 바르베타 지음, 강명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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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순결과 정절은 대체 언제부터 주장되었던 것일까. 여성도 똑같이 욕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못했던걸까. 대체 왜, 여자들이 결혼전에 순결을 잃으면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모두들 겁을 집어먹었던 걸까. 이 책의 주인공, '마리아나'는 사랑에 빠졌지만,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자신에게 손을 댈 때마다 열정에 헐떡거리지만, 마리아나의 엄마가 '말로써' 그녀가 그 길로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수시로 막아댄다. 그랬다간 큰일난다고. 오랜기간 사귀면서 사랑하는 남자와 1박2일의 여행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마리아나는, 그렇다면 그 남자와 헤어지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하여야 할까. 아, 그 남자에게 몸을 주지 않았으니 정말 다행이지 뭐야, 라고 안도해야 할까. 아니면 앞으로 내 인생에 사랑 혹은 남자는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남자와 할 수 있는 모든건 다 했어야 했어! 라고 후회와 좌절을 해야할까.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자유분방하게 성을 즐기는 듯한 여자 '아날리아'를 만났을 때, 급속히 친해지고 격렬히 증오하게 된다. 


책 뒷표지를 보면 이 책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고, 엄청나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는데, 사실 나는 이 책에서 '예술'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게 큰 감흥을 준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장까지 읽고나면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마지막장에 다가가면서 시작되는 내용의 난해함.


별 넷. 별 넷이라는건 참으로 애매하다. 나는 아주아주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건 아니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별 넷을 주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사실 사랑할 것 같지 않지만 뭐랄까, 어떤 성의나 노력 때문에 별 넷은 줘야할 것 같은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거다. 


책을 몇 장 읽다가 별 생각없이 이 책의 가격을 보았는데 정가가 15,500원이다. 어, 비슷한 책들에 비해 가격이 좀 세군, 하는 생각을 했는데, 몇 장 넘기다가 왜 센 건지 알게됐다. 이 책의 구성은 '조너선 사프런 포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포어의 책의 그 구성에 열광한 게 아니라 포어 책의 그 내용에 열광했고, 그래서 이 책의 '실험적인' 구성이 내게 어떤 매력이나 장점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자, 그 예술적인 구성을 살펴보겠다. 








위는 본문의 구성인데 이렇듯 사진(그림)이 본문 중간에 작게 삽입되어 있다거나 혹은 독특한 글쓰기로 일반 소설과는 좀 다른 본문 디자인을 보여준다. 게다가 각 꼭지가 끝날때마다 '견본' 이란 이름을 붙여 여러가지 그림 혹은 약도 등이 삽입된다. 아래와 같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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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03-1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상이다." 이 표현 저도 언젠가 써먹고 싶어지네요. 리뷰에서는 사용해 본 기억이 없는데.. 아주 적절한 걸요. ^^

다락방 2014-03-13 09:29   좋아요 0 | URL
고심해서 쓴 것 같긴한데 그렇다고 제가 좋아할 수는 없으니, 이걸 참 어쩌나 싶더라고요. 제목 보고 제가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요. ㅎㅎㅎ
 
하버드 사랑학 수업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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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내 친구 정식이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정식이는 좋은 책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다고 했고, 나는 물론 그런책이 몇 권 있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새 책 읽기를 더 원한다고 했다. 정식이는 좋은 책을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했고, 나는 새 책에 있을 다른 무언가를 또 발견하고 열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늘 새 책이 궁금하다고. 그러자 정식이는 내게 말했다. 


너의 책읽기는 너의 연애와 비슷하네.


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이란! 


그랬다. 나는 책이든 사람이든 잠시잠깐 열광하고 그러면서 늘 새로운 어떤 것,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하고 접하지 못한 어떤 것을 기대했다. 더 좋은 다른 게, 더 흥분할 만한 다른 게, 상상해보지 조차 못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나를 늘 새로운 책을 사게 만들었고, 이것이 나를 늘 짧은 연애만 하게 만들었다.


정식이는 자신이 심사숙고하여 연인을 골랐고, 그렇기에 장기적인 연애가 가능한거라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개풀 뜯어 먹는 소리라고 버럭 화를 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내게는 '심사숙고하여 결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한참을 대화를 나눈 끝에, 정식이는 정식이 나름대로의 연애를 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의 연애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우리 모두가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만큼 상대를 선택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전혀 다른 형태로 해나간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정식이는 자신의 연애가 성공적이라 생각했고, 나는 내가 연애의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짧게 끝나는 연애는 결코 성공으로 여겨질 리가 없고, 길고 오래간다면 그것이 성공적이란 건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일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연애에 있어서 실패를 해도 상관없었고, 내가 실패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성공적인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정식이의 연애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또 연애를 하게 될 경우에도 여전히 실패를 무릅쓰고 달려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성공적인 연애가 작게나마 무엇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들로 이뤄진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것들 중 어떤 것이 내 신경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나는 장기적인-그러나 성공적이라 보이는- 연애대신 기꺼이 실패로 뛰어들 것이었다. 



연애에 실패자라는 사실이 나를 비극이라는 진창속에 빠드리지도 않고, 또한 그 실패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지만, 그래도 '실패자' 라는 타이틀은 '성공한 자' 라는 타이틀보다 어감이 안좋은 건 사실이다. 나는 별다른 감정없이 내가 실패자임을 담담하게 인정하지만,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꼭 실패자여야 하는걸까?' 라는 의문을 갖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마리 루티'가 이 책,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서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준다. 실패하라고, 성공하지 말라고. 정식이의 연애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이었던 반면 나의 연애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었다. 이것은 확실히 내가 더 무모한 사람이라는 증거일거라 생각했는데, 마리 루티는 말한다. 충동과 열정과 감정에 그저 나를 맡기라고. 실패를 하라고. 나는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가며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사람들은 장기적인 안정성을 기준으로 연애의 성공을 측정하곤 합니다. 남녀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지속석 외에도 다른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영혼을 건드리지 않는 밋밋한 관계를 오래 끌고 가느니 아주 잠깐이라도 무모한 열정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불안정한 관계를 좇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안정감, 편안한, 신뢰감이 추구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의 가치를 이런 식으로만 평가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근본적인 소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감동적인 통찰은 사랑의 좌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좌절은 인생의 방향을 전체적으로 재평가하게 만듭니다. 그것이야말로 좌절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보상인 셈이죠. (pp.22-23)



나는 지속되는 사랑이 예외이고 상실이 일반적인 거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직물은 처음부터 상실이라는 실로 짠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사랑이 본디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언제라도 잃을 수 있음을 알기에 사랑을 고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모두 찰나의 것들입니다. 들판의 야생화가 아름다운 것도 잠시 피었다 지기 때문입니다. (p.229)




사람들이 장기적인 연애를 성공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내가 굳이 그걸 성공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사랑인 본디 상실을 동반한 것이니까. 얼마전에 법륜 스님의 연애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듣다가 깜짝 놀랐었다. 장기적인 연애를 하기 위해서 눈을 좀 낮춰 상대를 고르라는 거였다. 내겐 이 말이 '사랑을 모르는' 말인 것 같았다. 숱한 연애지침서는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게임을 하라고 말하는데, 짧은 연애가 눈이 높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면, 그건 상대를 획득하고자, 차지하고자 하는 사냥 본능에서부터 비롯된 게 아닌가. 내가 차지하고자 하는 상대는 다른 사람들 모두 차지하고자 하는 상대이다, 눈을 낮춰라, 오래가기 위해서는. 이게 뭔말이야...이건 장기적 연애를 성공으로 보는 바로 그 관점이 아닌가. 물론 사람들마다 연애의 궁극적 목표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오래가고자 하는게 최종목표라면, 그래, 그 말을 따르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눈을 낮추어 고른 상대'가 오래된 관계를 보장한다해도, 그걸 선택하진 않겠다. 안정적이고 긴 연애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내게는 법륜 스님의 연애 강의 보다는 '마리 루티'의 책이 훨씬 와닿았다. 휩쓸리고 열정을 다하고, 상실이 와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첫눈에 반하는 것이 무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그 상대에게서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이니 빠져들라고, 마리 루티는 말한다. 아, 하버드에 가고 싶다. 사랑학 강의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게다가 '마리 루티'는 오, 신이시여, 화성남자 금성여자 라는 논리에 거칠게 반박한다. 개똥같은 소리라고 말한다. 남자와 남자가 더 많이 다르다는 연구보고서가 쏟아져나와도 이 세상의 연애지침서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말하고 그걸 고수한다고. 그걸 바탕으로 연애를 전략적으로 하라고 말한다고. 연애지침서가 내거는 남자와 여자의 특징은 말짱 개소리라고 말한다. 너랑 내가 다른거고, 나라는 인간과 너라는 인간이 다른거지,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게 아니라고. 남자도 감성적이고 섬세할 수 있고 여자를 사냥감 취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아니, 여자를 사냥감 취급하는 남자가 개쓰레기라고, 그런 남자에게 튕기기 작전을 쓰라는, 밀당을 제대로 하라고 충고하는 연애지침서는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한다. 밀당하지 말고 튕기지 말고 그런 전략들에 말려들어 게임하지 말고, 내 개성을 그대로 살리라고. 남자는 원래 이래, 여자는 원래 이래, 라는 오래전부터 잘못된 명제에 혹하지 말라고. 튕기고 밀당을 하면서 유지되는 연애라면, 그 남자랑 거침없이 이별하라고 말한다. 아, 속이 다 시원하다. 멋져!




연애지침서에서는 남녀가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연애에서 성공하려면 남자의 심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장 먼저 풀고자 하는 오해입니다. 나는 '남성 심리'란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남자를 유혹하는 불변의 테크닉이란 없습니다. 서점에 이런 테크닉을 가르치는 책들이 넘쳐난다고요? 그것은 이런 테크닉이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남녀가 각기 다른 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편이 훨씬 더 쉽기 때문입니다. (p.15)



사실 연애지침서에 나오는 남자들은 섹스를 거부하는 법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요. 뜨거운 피가 흐르는 남자라면 길에서 마주치는 어떤 매력녀와도 잠자리를 같이 할 거라고요.

이 점에서 나는 <가십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이성 친구들을 보면 어떤 여자를 원하거나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려 할 때 결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건에 대한 욕망을 다른 물건에로 옮겨가기 어려운 것처럼 여자에 대한 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어떤 여자에게 빠져 있다면 섹시한 여자들을 트럭으로 갖다준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친구들은 사랑을 배신하느니 술병을 끼고 사는 편을 택할 것입니다.

<가십걸>에서 댄은 현대 남성의 '선택'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끝없이 약해지거나 혹은 전혀 모르는 여자와 자거나. 세상에는 후자를 여러 번 선택하는 남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남자들 중 일부는 전통적인 마초들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남자들은 상처 입을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입니다. 댄 역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pp.93-94)



내 최근의 연애들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와 연애를 한 그 남자들은, 연애지침서가 정의한 남자들과 달랐다. 그들은 말 그대로, 섹시한 여자를 트럭으로 갖다줘도 나를 선택할 남자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밀당을 할 필요가 없었고 튕기기 작전을 쓸 필요도 전혀 없었다. 내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였어도 괜찮았다. 더 젊고 예쁜 여자와 한 방에 가둬두어도 뿌리치고 나올 만한 남자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 되면 흔들흔들 무너지는 건 나였을 것이다. 내가 사귄 남자들은 열여자 마다하는 남자들이었고, 나는 열남자 마다하지 않는 여자였으니까. 세상에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들이 분명 존재하고, 이것은 이 남자와 다른 남자 혹은 이 사람과 다른 사람의 성향이 다를 뿐이지 '여자와 남자가 달라서' 가 아니었다. 나와 당신이 다르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인 것이다.




언제고 사랑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엄연한 이면일 뿐입니다. 사랑은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아도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은 오히려 그런 사랑입니다. (p.230)



실패라고 치부해버린 내 사랑, 혹은 내 연애도 결과적으로는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고, 마리 루티가 말한대로,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도, 잃었던 대상중에 있으니까. 



이별의 고통은 우리의 일상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우리를 무의식적 충동이 담긴 어두운 지하 창고로 끌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랑의 실패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을 새로이 설계하게 만들죠. 인생 설계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으로 실연만 한 것은 없습니다. 상실로 인한 번민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죠. (p.194)




실연으로 인한 고통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아직 이 말이 와닿지 않겠지만, 그 고통의 순간은 분명 끝날것이고, 돌이켜보면 조금 더 달라진, 조금 더 성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고통과 성장을 밀어내지 않을것이고, 지금처럼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뜨거울만큼 뜨겁게 사랑하다 실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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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루티 라고요!
    from 마지막 키스 2017-03-15 10:06 
    오늘 아침 알라딘을 열고 어떤 신간이 나왔나 검색을 해보다가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을 똭- 만났다. 오오, 이거 재미있겠는데? 하고 장바구니에 넣어두는데, 어라? 저자의 이름이 낯익다? 마리..루티? 접힌 부분 펼치기 ▼ [책소개]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에 관한 유해한 이분법을 비판한 책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꽤 진보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철저하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그 믿음을 일반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공유
 
 
마립간 2014-03-0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의 성공의 정의를 긴 연애로 하면 짧은 연애는 실패가 되지만, 각각을 긴 연애의 성공과 짧은 연애의 성공으로 나누어 정의하면 각각의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책도 있지만, 이것은 궁극의 성공을 염두해 둔 말이구요. (저는 남녀의 차이가 개인의 차이보다 더 크다는 정형sterotype을 갖고 있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인생의 가장 감동적인 통찰은 사랑의 좌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입니다. 사랑의 좌절은 좌절이고 통찰은 통찰로 무관한 것 같은데요.

짧은 연애는 짧은 연애의 종결이지 좌절도 아닌 것 같고요.

다락방 2014-03-07 14:39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사랑하고 애태우고 아파하고 때로는 시큰둥하고 과격하고 무심한 부분들이 제가 '여자라서' 가 아니라 제가 '이런 사람이라서 '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남자 1이 거칠고 마초적이라면 그것 역시 그가 '남자라서' 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라서' 이고요. 성별이 무엇이든간에 그 사람의 성형은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나온거라고 생각하는지라, 남녀 차이 보다는 개인의 차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의 좌절이 단지 좌절로 끝난다고 보지 않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고 그 과정에서 좌절을 하면, 그 좌절의 시간을 지나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다고 보여지고요, 아 상대는 어땠고 나는 어땠었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오고 이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여지고요. 인격이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했을 때, 그 남자는 본디 인격이 훌륭하게 태어난 것도 있겠지만,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과 사람들이 있었을거라고 보여집니다. 좌절이 좌절로만 끝났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게 불가능했을 것이고, 연애를 하면서 늘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되겠죠. 그렇기에 저는 좌절을 겪으면 반드시 무언가 얻는게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연애는 짧은 연애대로 긴 연애는 긴 연애대로, 종결됐다면 그에 따른 좌절이 찾아올 수 밖에 없고요. 짧든 길든 나라는 인간은 무언가에 열중했다 그것을 놓아버린 혹은 잃어버린 것이니까요. 거기에 절망이나 좌절이 찾아드는 건 당연하다 보여집니다. 그 좌절 역시 짧게 끝나느냐 길게 끌고 가느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고요.

마립간 2014-03-07 14:5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주신 답변성 댓글을 읽으니, 위 리뷰를 다시 읽은 느낌입니다.^^ 다락방님의 의견이 틀렸다기보다 제가 이해를 못하는 것이겠죠. 소설만 안 읽는 저와 소설만 읽는 다락방님 차이처럼. 제가 간접 경험으로도 얻지 못한 것을 옅보고 갑니다.

다락방 2014-03-07 14:57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러고보니 제 리뷰에서 밝힌 말을 그대로 다시 한 셈이 되어버렸네요. 하하하하

건조기후 2014-03-0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속이 시원하네요. 저 역시 연인이든 친구든 혹은 단순한 지인이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에 굳이 성별을 끼워넣어 구별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은 이거 좋아하지?" 라고 묻지 않고 "넌 뭐 좋아해?" 라고 물어야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이 말 참 좋네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정답 같아요.

장기적인 연애의 성공을 위해 눈을 낮추라는 말은 정말 대체 뭔소린가요? ;; 연애라는 게 감정이 중요한 일인데 시간의 길이가 무슨 상관이며... 눈을 낮추라는 말은 너무 완벽한 상대를 찾지 말라는 뜻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상대와 거짓 인생을 살 수는 없는 일인데. 말 참 이상하다...

다락방 2014-03-10 17:1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남자들은 이렇잖아, 여자들은 이렇잖아, 하면서 일단 성별에 고정관념을 씌워버리는 거죠. 그보다는 개인차이가 더 심한데 말이지요. 일전에 남자사람친구와 닭 구워 먹는데 갔다가 껍질이 너덜거리길래 그걸 벗겨냈거든요. 그랬더니 친구가 야 그거 나 줘, 이러는거에요. 아니 이걸 왜 널 달래? 물었더니. 너 버릴거잖아 내가 먹게 달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이걸 왜버려? 하니까 여자들은 닭껍질 안먹고 버리잖아 하더라고요. 하하하하하. 난 닭껍질 먹는 여잔데? 먹을라고 벗겼는데? 라고 했어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하하하하하.


법륜스님은 '결혼'은 장기적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눈을 낮추는 게 좋다, 라고 했어요, 결론적으로는. 그런데 전 만약 저와 결혼한 남자가 '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위해 눈을 조금 낮춰 널 선택했어" 라고 한다면 진짜 죽빵을 날릴것 같아요. 내 상대가 나를 '오래 가기 위해' 눈을 낮춰 선택했다면, 정말 토할것 같지 않아요? 싫어...싫어요....

꽃핑키 2014-03-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에 확 꽂힙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에 심하게 실연 당한적이 있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인생은 실연당하기 전 / 후로 명확하게 달라진것 같다고나 할까요? ㅋㅋ 무튼 인생에서 가장 큰 걸 그때 다 배운것 같아. 지금은 오히려 고맙기까지 해요 ㅋㅋ

그나저나 다락방님 *_*ㅋ 보내주신 책이 잘 도착했답니다. 저 밀려있는 책 진짜 많은데ㅋㅋ 다락방님 책부터 미친듯이 읽고 있답니다. 너무 재미져요! 역시 내 다락방님이야!!! 눈에 하트를 그리며 읽다가 잠깐 안부 남기러 왔어요 ㅋㅋㅋ

다락방 2014-03-10 17:1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처음 실연 당한 후가 제일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도 그렇고 남녀관계에 있어서 둘 사이가 얼마나 은밀하고 내밀한가부터 시작해서 어떤 문제들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지를,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이 달랐고요, 그걸 겪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연인들을 보는 시야가 좀 넓어지더라고요. 내가 남들 연애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겠구나, 하는 그런거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아요.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저는 저에게 더 잘 맞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연애는 나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해주고,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ㅎㅎ


아니, 재미지다고 해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핑키님!!!!! 제가 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에헤헤헷

고양이라디오 2015-10-29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꽃핑키님께 추천해주신 책이 먼지 궁금하군요ㅎㅎㅎ

다락방 2015-10-29 08:28   좋아요 0 | URL
꽃핑키님께 추천해드렸다기 보다는 꽃핑키님이 그저 잘 읽어주셨다고 볼 수 있을텐데요, 그 책은 이 책입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431254

네, 제가 쓴 책입니다. 아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