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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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례인지, 어떤 식의 대화와 행동이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로맨스 소설이야말로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남자들은 사랑을 포르노로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로맨스 소설을 읽음으로써 좀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포르노 까지는 아니지만  '19금 성인영화'라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여자가 얼마나 성적대상화 되는지에 당황했었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사랑을 느끼고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게 아니라, 여자는 애초에 성적대상일 뿐인거다. <옥수수>에만 들어가도 그런 영화가 널려있는데, 남자들...이런 영화 보면서 그동안 살았던건가... 여자를 성적대상화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구나. 그 안에서 성적대상화 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어. 맙소사..



그래서 '주드 데브루'의 이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게 유감이었다. 물론 중반을 넘어서면 괜찮긴 하지만, 남자 주인공 '테이트'가 얼마나 매력적인 영화배우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 '케이시'가 얼마나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여자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주드 데브루는 대부분의 여성을 다 골빈여자 취급해 버린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여자주인공 오디션을 보는데, 상대인 테이트 앞에서 아무도 제대로 대사하지도, 연기하지도 못하고 그저 침만 흘리는 걸로 묘사하는 거다. 물론, 전문 배우들이 아니고 마을 주민들 중에서 뽑는 오디션이니 연기가 어설프고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하달 수 있지만, 어쩌면 다들 그렇게 남자 배우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게 만드는가. 여자들이란 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의 여주인공 케이시가, 테이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케이시가, 편견으로 인해 테이트에게 매력을 1도 못느끼는 케이시가, 요리사이며 연기에는 관심이 1도 없던 케이시가, 우리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을 맡게 되면서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다. 너무..좀 너무하지 않냐...


너무도 전형적인 패턴이라서 나는 주드 데브루와 나 사이에 세대차이를 느꼈다. 로맨스 소설을 현대를 사는 여성이 현대를 보는 기준으로 써야할 필요를 느꼈다. 모든 여자들이 선망하는 남성을 나는 싫어하면서 생기는 로맨스라니. 게다가 그 남자는 잘생기고 섹시하고 인기도 많은데 돈도 캡 많어....


아무튼 연기나 연극에 대해 주드 데브루는 얼마나 알고 이걸 쓴걸까. 테이트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다아시를 미워하는 엘리자베스 역을 잘한다는 설정이라니, 좀 .. 너무하지 않냐...


게다가 하비 웨인스타인...이라니....





내가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전형적인 패턴-환상적인 남주와 그를 심드렁하게 보는 여자-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 전형적인 패턴보다 더 싫은 건, '특별한 여자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다른 여자들을 모두 똥멍청이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이러지 마세요, 진짜...



아마도 그간 로맨스 소설을 줄기차게 써온 작가인지라 이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세대차이를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그저 나쁜 로맨스 소설이었냐 하면 그건 그렇지가 않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만과 편견>소설 속에서 미성년자와 성인 남자가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장면이 있었는가 본데, 그 장면에 대해 현대적 연극에서 재해석을 한다. 미성년자를 꼬이는 건 범죄이며, 그것이 그 당시 미성년자의 '선택'이었다 해도 결코 여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이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주드 데브루는 '여자'와 '남자'의 성역할이 있는 것처럼 시종일관 얘기하지만, 어떤 것이 나쁘고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를 헷갈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케이시 스스로가 말한 이 뜨거운 여름의 불장난에 대해, 케이시가 느끼고 결심하고 선택하는 것들이 와닿는다. 한 남자에 대해 오해를 하고 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에게 처음부터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의 말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를 판단했던 것, 거기에 이른 후회까지. 또한, 자신이 그에게 정식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취급되어질까봐 걱정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까지. 한 사람에게 '당당한 옆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거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갈등까지. 사랑에 빠지고 내가 그에게 '내가 생각하는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건 대부분 다 겪어보는 감정의 흐름이 아닌가. 또한, '상처받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자존감 높은 사람이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 하는 것까지, 연애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맞닥뜨리는 감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연애의 시작에 있어서 디테일을 아주 잘 살렸다고 생각한 건, 케이시와 사랑에 빠지게 된 '테이트'의 생각 때문이었는데, 테이트가 케이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건,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웃음 포인트가 같았다는 데 있었다. 자신이 웃는 부분에서 케이시도 웃는다는 것. 나는 이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그걸 표현해준 작가도 좋았고. 또한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한 성적 매력을 서로 풍기도 또 성관계도 만족했던 그들인데, 케이시가 그 육체적 결합도 좋지만, 대화를 나눈 후에 관계가 더 단단하고 안정적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점들도 좋았고.



나 역시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연애를 시작하면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는 건, 대화가 아닌 다른 것들이어도 가능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하다. 어떤 모습에도 사랑에 빠지다가 질려버릴 수 있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데에야 뭐 버릴 게 없다. 나는 사람이란 본디 외로운 존재라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외로운 영혼을 달래주고 채워줄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인 게 편한 사람도 있고 또 혼자인 게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런 사람을 얻기란 너무나 힘든 법이고, 그렇기 때문에 만났다면 그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뿐만 아니라 상대 역시도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 여길 수 있다. 쭉쭉빵빵하거나 근육이 불룩불룩한 몸을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고,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다. 이성을 볼 때 돈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고, 얼굴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맞춤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상대를 만났어도, 시간이 흐르면 헤어지게 되는 이유는 결국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이다. 여기에서 대화라는 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어도, 어느 방향을 어떻게, 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로에게 말하고 또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나중엔 엄청 열중해서 읽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 그래서 상처 받을까 두려운 마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상황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내것 같아서 엄청 열중해서 읽었어.


이래서 로맨스 소설을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 여자가 혹은 남자가 괴로운지, 어떤 지점들에서 사랑하는 상대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지또 행복해 하는지를 이런 식으로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집중하는 건 육체와 육체로 맺는 관계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내밀하고 더 친밀한 무엇이 있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니까. 심지어 툭하면 팬티를 찢어버리던, '크리스티나 로런'의 《잘생긴 개자식》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니까 참 좋다'고 말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우리를 얼마나 가깝게 이어주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케이시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상처 받지 않게 되어서 나는 너무 좋으다...

그래, 당신이라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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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5-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북 활용 잘 하고 계시군요. 저도, 요즘 이북 시즌^^
사랑과 연애의 시작을 아주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칭찬하시니, 이 책도 제 스타일이예요.
전, 연애의 꽃은 썸이라고 생각하는 1인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5-08 11:20   좋아요 0 | URL
이북은 밑줄긋기가 연동이 되어서 세상 편합니다.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이 처음에 여자들을 멍청하다고 후려치기 해서 짜증이 났지만, 막판에 상처받기 싫은 마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거라는 두려운 마음을 잘 그려내서, 그 부분에서는 공감이 많이 됐어요. 사랑은 너무 어렵고, 해도 해도 계속 모르는 게 나오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사랑에 대해서도 계속 공부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어쨌든 이북 만세! ㅋㅋㅋㅋㅋ
 
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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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나는 여러가지로 의욕을 상실해서 축 늘어져 있었다. 젖은 휴지처럼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있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달이 다 되어가던 즈음. '아 이대로는 안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바닥을 기고 있는 내 자신이 못마땅했는데, 도무지 의욕을 살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이러다가는 더, 더 바닥으로 내려가겠다 싶어 해결방벙을 찾아낸 게 운동이었다.


그간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헬쓰장에도 등록해 다녔었고 기체조에도 등록해 다녔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가지 않을 핑계들을 수십개씩 만들어 가지 않았고, 가서도 열심히 운동한다기 보다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와서는 '운동을 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집에서 운동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3년쯤 전이었나,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집에서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그 때 내 몸의 변화는 그전에 다녔던 헬쓰장이나 기체조보다 더 보기 좋게 찾아왔었다. 그러나 홈트는 오래가지 못했고, 내 몸은 다시 제멋대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작년 5월, 도무지 집에서 운동할 의욕도 생기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을 받자'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상한 고집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운동하고 싶진 않았는데, 할거면 혼자 제대로 해야지!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작년 이맘때는 나 혼자서 아무것도 시작할 수도 없었던 거다. 그래, 이럴 때는 도움을 받는거야. 그렇게 생각한 게 개인피티였고 요가였다. 둘 중 어떤 걸 할까 고민하는데 내 고민에 어떤 친구는 피티를 하라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요가를 하라고 했다. 어쩔까, 생각하다가, 나는 지금 마음도 시끄러우니(이별을 했고, 선거 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가만한 명상으로 나를 다스리자, 로 결론을 내리게 됐고, 그래서 나는 '가만한 명상'을 하기 위해 요가에 등록했다.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나야 의욕이 생길테고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한 거다. 아, 얼마나 나는 요가에 대해 무지했던가!



그렇게 요가에 등록하고 제일 처음 들어간 수업은 '빈야사' 시간이었다. 양반다리 하고 손을 합장하고 조용한 음악에 맞춰 흐음~ 하며 명상하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강도높은 근육운동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아니, 사실은 그 강도 높은 근육운동에 놀랐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비루한 육체에 당황했다는 게 더 정확할테다. 내 몸은 쭉 펴는 것도 접는 것도 하지 못했고 균형 잡는 데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간 나는 내 몸이 남들보다 유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요가를 시작하면서도 '회원님은 요가가 처음이라면서 엄청 잘하시는데요?!'라는 말을 들을거라고 당연히 기대한 거다. 그러나 내 몸은 한 쪽 다리로 서라고 하면 피식피식 쓰러졌고, 조금이라도 힘든 동작을 하면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빨개졌고 온 몸에 열이 올랐으며, 트위스트 동작들을 할 때마다 허리가 요란하게 울어댔고, 심지어 런지 자세에서도 버티지 못했다. 빈야사 시간에 가장 기본적인 동작인 다운독은 어찌나 힘들던지, 빈야사로 한 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난 뒤의 나는 곧 쓰러질 것 처럼 되었고, 내 옆에서 운동하시던 분은 그 때 나를 보며 '처음부터 힘든 수업 들으셨네' 하셨다. 아, 이게 유독 힘든거였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다른 수업이라고 쉽지 않았다. 온도를 높여놓고 하는 비크람 수업 시간을 맞닥뜨리고서는 다음날이 토요일이기에 망정이지,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펠비스는 골반 운동인데, 이건 숫제 눈물을 참아야 했다. '요가 그거 그냥 스트레칭이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요가의 y 도 모르는 거'라고 대꾸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근육통이 무언지 경험해본 적이 많았지만, 요가를 시작하고난 뒤의 근육통은 그간 내가 알아온 근육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허벅지 근육통 배 근육통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온 몸의 근육통' 이었다. 나는 온 몸이 동시에 근육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요가를 시작하고 얼마동안은, 요가를 마치고 집에 와 미친듯이 밥을 먹어야 했다. 밥을 많이 먹어야 했어. 안그러면 버틸 수가 없었지.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의 '류은숙'은 비만한 몸을 갖고 있었고 육체적으로 위험신호가 와 피티를 받게 된다. 그전에 류은숙도 나처럼 헬쓰장에 설렁설렁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자기가 피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었던 류은숙은 피티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나이 오십이 다 된 시점에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거다. 남들이 보기에 있어보이는 멋진 근육운동을 하고 싶지만, 그걸 하기에 앞서 일단 자기 몸을 그렇게 운동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먼저였고, 그렇게 처음에는 팔벌려 뛰기부터 시작해서 기초적인 동작들을 해 나간다. 피티는 결코 싼 가격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몸을 만들기에 또 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비싼 금액도 아니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돈을 주고...'라고 말하지만, 하는 사람들은 '이 돈을 주고 해야했다'. 나에게 요가도 그랬다. 3개월을 등록하면서 아아, 이 돈이면...하는 생각을 안한 게 아니었지만, 필요하므로 나는 카드를 건넸다. 그렇게 나의 요가가 시작됐고 류은숙의 헬쓰가 시작됐다.



기초적인 동작들을 만들고 피티와 대화를 하면서 운동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는 류은숙은, 데드 리프트를 몇 번의 실패끝에 성공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가슴운동을 하면서는 큰 해방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엄마는 늘 나에게 여자애가 왜 그렇게 가슴을 떡 젖히고 다니느냐며, '얌전하게 숙이고 다녀!'라고 타박했다. 얌전하지 못하다는 말, 몸가짐이 조심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영 싫었다. 가슴을 마음껏 젖힐 수 있다는 해방감, 내가 체스트프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다.

체스트프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내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면서 '힘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그 말이 그러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같은 힘을 쓰더라도 무거운 바벨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데드리프트와 누워서 번쩍 밀어 올리는 체스트프레스는 그 기분이 다르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다 보면 하늘을 떠받친 헤라클레스가 된 느낌이다. (p.58)



'체스트프레스'라는 용어는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단어일테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고 도전한 이상 내가 도전하게 되는 바로 그 자세이기도 하다. 류은숙은 체스트프레스를 하면서 힘 좋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것이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운동을 반복할수록 힘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고 균형이 잡히는 것 역시 당연할 터. 내가 무언가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내고 그래서 어떤 성과를 눈 앞에서 보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일인가!



나는 여중,여고,여대를 다녔고, 중학교 시절에는 '무용'시간이 있었다. 무용 쌤은 발레 전공이었고, 우리에게 기본적 발레 자세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 때 나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나비자세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허리를 숙여 손바닥이 발에 닿는 것은 어렵지가 않아서, 나는 내 몸이 유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야 내 몸은 전혀 유연하지 않고 굉장히 많이 굳어 있으며 신체 부위 하나하나 모두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팔과 다리힘은 물론이요 특히나 코어의 힘은 전무한 실정. 코어에 힘이 없으면 요가의 모든 자세를 해내기가 힘이 든다. 나무자세를 못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절망했는지. 어떻게 이게 안될수가 있지? 이거 너무 쉬워보이는데?


나보다 5년먼저 요가를 시작해 계속 하고 있던 여동생은 우리집에 올때면 이제 요가에 관심 갖기 시작한 내게 이 동작 저 동작을 알려주는데, 내가 너무 다 못하는 걸 보고 '이것도 안돼?' 하고 놀랐더랬다. 되는 게 없는 나였던 거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나, 내가 나무자세에 버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와- 하니까 됐어, 오래 걸렸지만 나 이제 나무자세 버텨!! 하고 놀랬다가, 몇 주전에는 드디어 요가를 시작한지 10개월만에 '이지 바카사나'에 성공하게 됐다. 두 팔에 무릎을 기대고 지탱해 발을 바닥에서 떼네는 건데, 발이든 엉덩이든 바닥에서 떼내는 동작을 도전할 때마다 나는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겸손을 알고 내 육체의 비루함을 인정하게 된 나는, 이런 게 될 리 없다는 생각을 했고, 도전할 때마다 열심히 시도해보지만, 내 발이, 내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운지만 깨달을 뿐이었다. 내 발과 엉덩이는 땅에서 아주 강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고 있어서 절대 떨어지질 않아... 그러나 몇 주전에 또다시 수업 중에 바카사나에 도전하는데, 정식 바카사나는 아니지만 그 전에 해보게 된 이지 바카사나(까마귀 자세)에서, 어어? 나 들릴 것 같은데? 라는 느낌이 들더니, 옆에 쌤이 와서 지켜봐주는데, 어라? 다리가 들리는 거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들렸어. 쌤이 옆에서 보면서 머리를 바닥에 대라고 말해 머리를 바닥에 댔더니 발이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



된다!

된다!

나 바카사나가 된다!!



아직 정식 바카사나는 못하겠지만 이지 바카사나가 됐다는 기쁨에 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선생님을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나 무거웠던 내 발이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건 어마어마한 희열이었다. 세상에 소리쳐 말하고 싶었다. 그리도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구오구 우쭈쭈 부둥부둥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요가 센터 안에서 조용히, 혼자, 속으로 기뻐할 뿐이었다.



유명한 언덕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비싼 전차비까지 내고 올라갔더니만, 동네 뒷산에서 보이는 경관만 못했다. 꽃구경도 못 갔다며 한탄하던 어느 날에는 잠깐 짬을 내 산책하다가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며 '이렇게 지척에 장관을 놔두고 무슨 꽃구경?' 했던 적도 있다. 내 몸에 필요한 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것 같은 빡센 운동, 그리고 그 성취감이 아니라 뒷산을 실실 마실하듯 몸을 길들이는 운동, 그리고 그 호젓한 변화가 아닐까. (p.76)



'샘, 그녀들을 모델로 삼으면 나는 운동을 할 수가 없다고요. 나는 전교1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그런 학생이 되고 싶은 거라고요. 몸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오후 돼도 처지지 않고, 아침부터 천근만근이지 않고, 좋아하는 술 계속 마실 수 있고, 친구가 푸념하고 고민을 털어 놓을 때 귀찮아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체력을 원하는 거라고요.' (p.113-114)



류은숙이 원하는 건 전교1등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 운동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데 더 편하고 싶다는 거다.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만들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한다. 류은숙도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피티로부터 금주에 대해서도 많이 권유 받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앞으로도 계속 술을 마시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건강이 필수일테다. 또한 나는 요가쌤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이 몸이 앞으로 백년을 요가한다 한들 요가쌤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내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피로한 어느 날, 몸이 찌뿌둥한 어느 날 자연스레 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요가를 내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은 일 주일에 고작 2-3회 가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이 쌓이다보면 요가가 내 습관이 되지 않을까. 요가를 하고 나서는 일상에서 이 동작 저 동작을 한 번씩 해보곤 한다. 가장 손쉽게는 손가락을 깍지 껴서 하늘로 쭉 뻗거나 등을 숙여 깍지 낀 손을 올리는 일 같은 것. 요가를 알기 전에는 할 생각도 없었던, 아주 사소한 동작들.



또한 나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이지 바카사나에 성공했다면 이제는 그냥 바카사나에도 성공하고 싶다. 아직도 내 다리와 엉덩이는 너무 무거워서 좀처럼 바닥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하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떨어지지 않을까.


류은숙은 운동을 지속하면서 비만에서 과체중이 되었지만, 여전히 날씬한 몸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도 요가를 일 년 가까이 해왔지만 '놀랍게도 살이 쫙쫙 빠졌어요!'하는 극적인 변화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의 나와 시작하고 난 후의 내 모습은 육체적으로 사실 변화가 없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가 자체만으로는 살이 빠지질 않는다. 내가 요가를 하면서 뭔가 먹는 걸 거시기하게 조절한다면, 술을 끊는다면 극적인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가 운동을 시작한 목적이 어떤 극적인 몸의 변화를 바라서는 아니었다. 나는 의욕없는 내 자신을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고 또 아는 만큼 생각하기 마련이다. 인권운동을 업으로 삼았던 류은숙은 피티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운동을 하찮게 여겼던 시간들을 반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으로 인해 긍적적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증거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나에게 좋았던 것이 남들에게도 다 좋으리란 법은 없으니, 자신의 것을 찾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운동은 했으면 좋게다는 것.



나는 여기가 아닌 내 개인 블로그에 자주 요가일기를 쓴다. 한 친구는 내게 '요가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계속 하다니 신기하다'고 했다. 정말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요가를 하고나면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쏟아져나와서 막 털어놓고 싶어진다. 나는 친구들에게 '요가를 하라'고 권유한 건 아니지만, 내 일기를 읽던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요가를 시작했다. 한 친구는 요가를 시작하고나서 자신의 인생 운동을 찾았다고 했고, 자기가 삶에서 기대하는 건 요즘 요가 밖에 없다고도 했다. 다른 친구도 며칠전 요가를 하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 했고, 또다른 친구는 요가를 등록하지 않은 상태로 요가매트만 일단 주문했다고 했다. 외적으로 변한 건 없지만 이제 나무자세와 바카사나 자세가 조금 되는 내 코어의 힘이 느껴지고, 이 느껴짐이 외부로도 전달됐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보였던 게 아닐까 싶다.



무기력은 변덕스런 날씨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갑작스런 비처럼, 거짓말 같은 활짝 갬처럼, 기력과 기분은 시소를 탄다. 다른 일이 꼬였는데 운동만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활의 힘이 골고루 안배되어야 운동도 해나갈 수 있다.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눈 뜨면 이부터 닦는 일, 잘 씻고 갖춰 입는 일, 아무리 재촉하는 일이 있어도 제때 끼니와 잠을 챙기는 일, 이런 걸 유지해야 운동을 해 나갈 힘이 생긴다. (p.121)



내가 운동을 열심히 병행하는 삶을 살면 건강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다고 병이나 장애가 없을 것이라 확실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느 쪽 길에 들어서건, 그 길마다 나름의 삶이 있을 것이다. (p.151)



내가 바닥에 있는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고, 그 요가가 분명 그런 상태의 나를 지상으로 데려다놓기까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게 무기력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로 어제도 그리고 금요일에도 무기력이 나를 갑자기 찾아들어 나는 다시 바닥으로 끌어내려졌다.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혼자 울고, 어제는 침대에 누워 울었다. 내가 요가를 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해서 매일매일이 해피하고 건강한 일상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울함도 찾아들도 무기력함도 찾아든다. 내가 어느 시점에 균형을 잃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는 균형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무기력이 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나 건강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도 역시 사실이다. 생리때가 되면 종아리가 뻐근해서 맛사지기 까지 사다두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생리전의 그 다리 뻐근함이 거의 찾아들지 않는다. 아직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무기력까지 컨트럴 할 순 없지만, 아무튼, 요가가, 요가 전의 나보다 더 활력 있는 삶을 살게 해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 운동에 대해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가, 또 운동을 경험하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다. 우리가 비록 선택한 운동은 다르지만, 그녀가 겪었던 일들과 그 감정들이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앞으로 운동을 해나갈 생각이나 다짐에 대한 것도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동안의 내 요가라이프를 다시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됐으며 또 앞으로의 요가 라이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의 운동기라 그런지, 운동을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같이 적어놓은 게 내게는 큰 즐거움을 줬다. 나 역시 운동을 하면서 단순히 몸의 움직임보다는, 그것들이 가져오는 다른 생각들과 감정들을 충실히 생각해내는 편이라 유독 반가웠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겠지만 요가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매일 빡세게 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일주일에 두 세번이 고작이라도, 꾸준히 하고 싶다. 어느 날에는 바카사나를 성공하고 어느 날에는 나바사나에서 오래 버티기가 가능해지길 희망한다. (지금은 부들부들 떨기만 하지 버티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실은 꿈이 있다. 마흔 다섯쯤이 되었을 때, 머리서기가 가능해지는 것. 이것은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어느 외국의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고 머리서기를 해서 인증사진을 찍고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흔 다섯에는 꼭, 그랬으면 좋겠다. 가급적이면 마흔 다섯까지는 그게 됐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것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은 다리랑 엉덩이 너무 무거워 쌤이 도와줘도 못하고 있지만, 같은 센터에 다니는 나보다 훌쩍 나이 많으신 분이 머리 서기에 성공하는 걸 지난 주에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능할거야 , 어쩌면 나도!



요가를 한다는 건 그전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하나 늘려갔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요가를 하는 사람, 요가를 아는 사람과 또 요가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요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대화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달까. 물론 이미 요가를 잘하는(여동생과 칠봉이가 내 주변에서 요가를 전문가처럼 잘해낸다) 사람들과 하는 대화도 즐겁지만, 요가를 모르는 사람들과 요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즐겁다. 류은숙의 사무실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요즘 류은숙은 운동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요가에 대한 얘기를 요즘 자주 하게 된다. 요가 얘기를 하면서 또 실제로 요가를 하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고 싶다. 도전이라는 말에 설레어 하면서 그 도전에 성공해내고 싶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나바사나를, 머리서기를 할 수 있게 되겠지.



책 뒤에는 <여성, 중년, 비혼, 비만, 활동가>라고 저자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활동가'만 빼면 모두 다 내 얘기다. 내 삶과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었지만, 여성이 아니어도 중년이 아니어도, 비혼과 비만이 아니어도 이 책은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운동의 의욕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작과 진행중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담인데, 이 부분에서 완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한번은, 여느 때처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소설을 읽는 중이었다. 소설에 너무나 뭉클한 장면이 나왔다. 슬픈 건 아니었다. 너무 감동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헬스장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우는 여자라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내 모습이 너무 괴기스러워 보일 것만 같았다. 운동 시간을 채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날은 황급히 자전거에서 내려 샤워실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p.83)



몇 년 전 나도, 집에 있는 헬쓰용 자전거를 타면서 소설을 집중해 읽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 때 내가 자전거 위에서 애를 태우며 읽었던 소설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일곱 번째 파도》였다.



팔 운동은 그런 뽀빠이 만화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지루한 반복의 지겨운 연속이다. 게다가 근육을 단련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이 운동을 거르지 않고 자주 해줘야 한다. 그 지루함을 버텨야 모찌모찌가 알통이 되고, 힘주면 단단해지는 근육이 된다. 공부 또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기까지 기나긴 지루함의 시간을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역, 니은, 디귿, a, b, c, 한 자 한 자 익혀서 단어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고 어려운 텍스트를 술술 읽고 판단하고 재구성할 수 있게 되기까지, 지난한 기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팔운동을 하다 보니 내가 평생 공부를 해온 느낌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여겨졌다. (p.68)

게다가 운동의 과정마다 나는 땀 냄새가 다르다. 워밍업을 할 때는 송글송글 맺히고 샴푸 냄새 같은 게 난다. 본 운동을 할 때는 땀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그 땀에선 간밤에 내가 먹은 것들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정리 운동을 할 때는 땀이 식어가는 쉰내를 맡아야 한다. 이 쉰내를 맡기가 그렇게 싫다. 쉰내를 맡는 대신 내 몸의 땀 냄새를 얼른 지우고 싶어 정리 운동을 건너뛰고 샤워실로 돌진한다. 하도 안하니 나이스는(피티쌤 별칭)정리 운동 하고 나서 검사 받고 가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p.73)

삶이 지루하다고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도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어느 날부터 나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습관처럼 운동을 권하기 시작했다. 일단 해보니까 좋다, 이 좋은 기분을 너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말문을 연다. 하나둘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느 때부턴가 동료들은 나를 ‘운동 전도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꼭 나처럼 피트니스를 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내가 해서 좋다고 해서, 내가 해서 효과를 봤다고 해서 타인에게도 맞는 건 아니다. 자기 상황과 취향에 따라 맞는 건 제각각이다. 나에게 피트니스가 여러 면에서 적합했을 뿐이다. (p.117)

내 전도의 요지는 일단은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제대로 시작해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그냥‘ 시작하라고 한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좀 끝내고 나면, 이것 좀 마쳐놓고 저것 좀 마련해놓고 나면, 이런 식으로라면 ‘그날‘은 오지 않는다.
어디 운동뿐이겠는가. 「인권 정책 마련 지침」같은 데서 권고하는 사항이 있다. ‘큰 사건이 생기기 전, 평화 시에 정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큰 사건이 일어나고 관련자들이 모두 격앙된 상황에서는 공통의 약속을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기나 재난이 일어나기 전 차분한 상태에서 미리 약속을 만들어두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보니 운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몸과 정신에 큰일이 닥치기 전에,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될 때에, 찬찬히 자기와의 약속을 만들어야 지킬 수 있는 차분한 약속을 만들고 몸에 새길 수 있다. (p.118-119)

세상의 잣대가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을 체력장이 가르쳐줬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 몸을 계발하고 몸에 대해 알아갈수록 다양한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생각 없이 몸에만 신경 쓰는 이들이라고 폄하했던 사람들이 실은 최선을 다해 자기를 다듬고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든 아니든 저마다의 사연과 내력이 있을 테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 그런 것들을 체육관에서 배웠다. (p.134-135)

나이스는 피트니스를 군대에서 배우고 시작했다고 한다. 군대에선 축구가 최고 아니냐 했더니 자기는 축구가 질색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축구도 떼로 하는 것이다. 집단생활에서 잠시나마 떨어져 나와 구석진 체육관에서 나이스는 혼자 묵묵히 시간을 죽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면서 자기의 살아있음을 찾는 반전이 ‘군대 헬스‘에 있지 않았을까? (p.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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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4-23 10:52   좋아요 0 | URL
후훗. 술렁술렁 잘도 넘어갑니다. 읽어보세요! >.<

유부만두 2018-04-23 10:53   좋아요 0 | URL
운동까지 가야죠 ㅋㅋ

유부만두 2018-04-23 11:00   좋아요 0 | URL
주문완료.

다락방 2018-04-23 11:02   좋아요 0 | URL
오오, 주문도 하셨으니 읽으시고 이제 운동도 가시고!! 후훗.

유부만두 2018-04-23 11:07   좋아요 0 | URL
그래야죠. 아무튼 택시 읽고 택시도 탔었으니까요.

감은빛 2018-04-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참 좋았지만, 다락방님 글이 훨씬 더 좋네요.

다락방 2018-04-23 11:0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운동 얘기인지라 감은빛님 요즘도 운동 열심히 하시나 생각했는데 이미 읽으셨군요! 데드리프트는 당연히 하실테고, 체스트프레스도 하십니까? 흐흐흐

별족 2018-04-2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179110, 왜 갑자기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으나,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으나.

다락방 2018-04-23 16:36   좋아요 1 | URL
이미 읽다뇨 ㅋㅋㅋㅋㅋㅋㅋㅋ 보기도 처음 보는 책입니다.
근데 쪽수가 어마어마하네요. 일단 보관함에 넣습니다. 슝-

moonnight 2018-04-2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운동과 안 친해도 너무 안 친한 저주받은 몸ㅠㅠ;

다락방 2018-04-23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운동하고 딱히 친한 몸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가만 있는 것도 뭐랄까 불편해 하는 사람이라서 뭔가 항상 꼼지락거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문나잇님, 일단 이 책을 읽어보십쇼! 으하하하핫. 운동에 뽐뿌질을 할 지도 모릅니다.

비연 2018-04-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좋아요 ㅎㅎ 예전에 했었는데.. 예전에 예전에 ㅜㅜ 정말 이게 내 몸인가 싶을 정도로 좋아졌었죠.
가끔 발리나 이런 데 가서 매일매일 요가만 하며 지내면 어떨까 싶어요.

다락방 2018-04-23 16:38   좋아요 0 | URL
저도 요가를 하고나니까 동남아가 더 좋아지면서(응?) 동남아에 집 마련해서 거기서 요가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제 몸이 얼마나 비루한지 깨달으면서 요가쌤은 어림도 없다...그저 휴가때 휴양지에 가서 머리서기를 해보자!! 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저도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비연님. 그런데 현실은.... 인생....삶...............Orz

비연 2018-04-23 21:51   좋아요 0 | URL
저도, 저도... 그런 여유로운 삶... ㅠㅠㅠㅠ 언제쯤 그런 날이 오려나요 으헝 ㅜ

단발머리 2018-04-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워낙 운동과 담쌓고 사는 사람인지라, 정확히는 운동과 적대적인 삶을 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운동에 대한 전도와 간증 들은 것들 중, 다락방님 오늘 페이퍼가 최고예요.
다락방님 말씀하신 자세들... 사실 뭔지 모르지만 비키니 머리서기 사진은 진짜 완전 기대되네요~~~~~~~~~~~~~
요가매트 꺼내서 닦아야겠어요^^

다락방 2018-04-23 16:39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최고라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일전에 누구더라..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나는..질리안...이었나... 그 분의 운동 DVD 리뷰를 썼을 때도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죠.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DVD 를 검색하고 제 리뷰에 힘입어 구매하고...

지금 그 DVD 가 어디있는지 제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비키니 머리서기 사진은 마흔다섯살 때까지 꼭!! 찍어서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주 마시려고 했는데 요가가야겠어요. 오늘이 바로 그 빈야사 시간입니다. 우하하하핫. 아자!!

책읽는나무 2018-04-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멋집니다.
마흔다섯에 비키니 입고 해변가에서 물구나무 서기 요가자세란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운동 한다는 것 자체가 멋집니다^^
작년 효리민박편에서 이효리가 해변가에서 요가하던 탄탄한 몸매에 정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바라봤었는데...운동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해봤지 목표로 삼을 생각은 감히 해보질 못했거든요!

요가매트를 늘 거실에 펼쳐만 놓구선 요가수업은 듣지 않고 있는데~~다락방님의 페이퍼는 무척 고무적입니다.요가 열심히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요즘 몸 여기저기 말썽인 곳이 많아져 운동의 시급함을 느끼곤 하는데 운동을 시작하는게 참 쉽지 않아요.
저도 이제 1년밖에 안남았겠지만 마흔다섯이 된다면 팔,다리에 근육이 예쁘게 붙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어요.이걸 목표로 삼아 볼까,싶네요^^

다락방 2018-04-24 09:50   좋아요 0 | URL
제 여동생이 지금 햇수로 6년차거든요. 요가요. 동생은 요가 덕분에 몸도 탄탄해지고 유연해지고 힘도 좋아지고 근육도 붙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운동했구나‘를 알아보는 몸이 되었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요가는 하지만 ... 늘 잘 먹고 잘 마시고 다녀가지고, 누가 봐도 운동하는 걸로는 안보일거예요. 하하. 그래서 ‘마흔다섯에 비키니입고 이국의 해변에서 머리서기‘라는 구체적 목표가 과연 실현이 될런지...라고 ㅠㅠ 저초자도 저를 의심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번 해볼랍니다. 해보자, 해보는거야!! 제가 하게 되면 이 공간에 인증하겠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상상만해도 넘나 멋지지요? 정말 그렇게 되어야할텐데....


요가쌤들 너무 멋지고 근사한게요, 몸에 근육이 있어요. 막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작은 근육들이 팔에 붙어있는 걸 보면 세상 근사하더라고요. 요가 자세를 이미 알고 있다면 집에서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요가 센터로 가서 직접 수업을 듣는 걸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처음에 바른자세 잡는 데 많이 도움이 되니까요. 히히. 책나무님, 우리 건강하게 지내요! 그래서 저는 머리서기 성공하고 책나무님은 팔,다리에 예쁜 근육 붙게합시다!!!

transient-guest 2018-04-24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든 오래 꾸준히, 그리고 다양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먹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ㅎ 요가는 생각보다 꾸준하지 못해서 이제 겨우 두 번 했네요. 이번 주에는 좀더 분발해볼 생각입니다. 근데 확실히 학원만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는 않고 그냥 좋은 운동을 하는 기분입니다. 근데 요가를 하는 아침이 참 다른게, 매우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하루의 시작을 맞게 됩니다. 기분이 묘해요. 이거 좋아하게 되면 아마 제대로 배울 곳을 찾아야 할텐데, 아직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쓸 요가매트를 하나 샀다는 정도...

다락방 2018-04-24 09:53   좋아요 1 | URL
저는 뭔가 막 새롭게 배워보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아마도 앞으로 다양한 운동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이미 시작한 요가에 대해서라면 좀 성실히, 꾸준히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가에 있어서라면 오래하고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물론 아무리 그래도 요가쌤은 될 수 없는 비루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요....

저희 센터가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있거든요. 평일 저녁의 수업도 좋지만 저는 이 토요일 오전의 수업이 특히 더 좋더라고요. 환한 오전에 몸을 한껏 움직이고 땀을 내고 그리고 사바사나 휴식자세를 취하면, 와, 행복하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거예요. 그래서 가급적 토요일 오전 요가는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랍니다. 아마도 이 느낌을 트랜님도 요가를 하는 아침에 받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요가를 시작하고나서....제대로된 매트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sj1309 2018-04-2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가를 하고 있거든요. 제가 하면서 느꼈던게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신기하고 그래요 ㅎㅎ 개인 블로그에 있는 요가 관련 글도 볼 수 있을까요? 많이 궁금하거든요^^

2018-04-30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4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5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dialtone 2018-06-0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한 사람이 요가 시작했는데 어쩜 똑같은 여정을 걷는 걸까요. 쓸만한 매트를 하나 더 산것까지...친한 사람의 내면을 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우개 똥 쪼물이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우수상 수상작 신나는 책읽기 51
조규영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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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먼저 읽었는데 등장하는 아이들의 나이가 조카의 나이와 같아서 '좋구나' 했다가, 읽다보니 이야기가 산만하고 재미도 없고..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아이라면, 내 조카라면 나랑 다르게 볼 수 있는걸까? 혼란스러워서 망설이다가 줬는데, 내가 잘한건지 아닌건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재미있으려면 어른에게도 재미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했다가,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볼 수도 있지 않나..싶다가...혼란하다... 아이에게 독서 안내자가 되고 싶긴 하지만, 좋고 나쁨을 내가 판단해서 알려주는 것은 오히려 더 강압적인 게 아닌가 싶고. 나는 뭔가 정신 사납고 재미없게 읽긴 했지만, 읽으면서 내내 '이게 좋은 책인가??' 하고 갸웃했지만, 창비에서 우수상 받은 작품이라니, 어쩌면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 책은 좋은 책일 수도???


아이 엄마가 그 무슨 전집을 사줘서 조카가 보고 있는데, 사실 나는 전집도 읽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집 보다는 요즘 나오는 어린이용 도서를 새롭게 많이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새로운 책이 나오고 눈에 띄면 사서 주는 편인데(이번에 백희나 신간도 같이 사줌), 음... 잘 모르겠다. 나에겐 어린이 도서를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서....  조카가 조카 나름의 재미를 이 책안에서 찾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바라는 건 무책임한걸까? 아 모르겠다.



혼란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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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4-1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해 전부터 아이들 책을 사주고 있는데요(전에는 와잎이 전집류를)
간혹 저의 기대와 다른 책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저와 다를 거라는 생각에 어린이책을 공부해 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18-04-16 10:24   좋아요 1 | URL
아이를 존중하고 판단을 역시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서도 자꾸 ‘이 책은 재미없지 않을까?‘ 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이게 잘하는건지 못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보다 더 많이, 부지런히 어린이책을 읽어보자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제게도 보이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요. 계속 보다보면 뭔가 알게 되겠지, 생각합니다. 네,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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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참을 크레마로 책읽기에 집중을 못했는데, 최근 나폴리 시리즈를 크레마로 읽기 시작하면서 크레마가 얼마나 편한지 알게 됐다.


1. 활자 크기 조절이 가능해서 보기 편하고

2. 밤에 방 안에서 불 끄고 읽기에도 좋다. 방 불이나 스탠드를 켜지 않아도 보는 데 불편하지가 않아.

3. 누워서 들고 읽기에도 무겁지가 않고, 이 가벼운 무게와 사이즈는 지하철 안에서도 매우 편하다. 가방에도 쏙-

4. 그러면 안되지만 걸으면서 읽기에도 편하다. (이건 안그럴게요...)

5. 밑줄긋기와 책갈피가 스마트폰에서의 이북과 연동된다. 밑줄긋기만 한 눈에 찾아보기가 가능한데, 이게 세상 편한 기능.



고작 나폴리 시리즈로 연달아 두 권을 크레마로 읽으면서 아아, 어쩌지, 이제 모든 책을 전자책으로 사야하나, 나는 앞으로 무겁고 부피가 큰 종이책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크레마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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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8-04-09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다니까요~~! 이제 다락방님은 전자책도 사고 종이책도 사는 사람이 됩니다.

다락방 2018-04-09 14:08   좋아요 0 | URL
세상 편하더라고요 ㅋㅋㅋㅋ 아마 전자책을 더 살 것 같은데 그렇지만 종이책도 계속 살테니... 하이드님 예언이 아마도 적중할 듯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연 2018-04-09 14:37   좋아요 1 | URL
전자책도 사고... 종이책도 사고...
그래서 전자책 안 보는 1人...

다락방 2018-04-09 14:57   좋아요 0 | URL
현명하십니다 비연님 ㅠㅠ

비연 2018-04-10 08:19   좋아요 0 | URL
근데 막 끌려요. 락방님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싶어요 ㅜㅜㅜㅜㅜ

다락방 2018-04-10 10:07   좋아요 0 | URL
한 번 사는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자책도 지르고 종이책도 지르면서 삽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세요, 전자책 월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8-04-0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책 장점을 아주 잘 이해하지만 쓰지않고 쳐박아두는 사람.... 이 저구요 ㅡㅡ

다락방 2018-04-09 14:57   좋아요 0 | URL
저도 계속 쳐박아두다가 이제서야 읽기 시작했어요. 나폴리 시리즈 무거워서 읽기 시작한건데... 나폴리 시리즈 끝나면 그 다음에는 아마도 다시 종이책을 읽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18-04-1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보입니다. 혹시 PDF나 다른 파일로 갖고 있는 사제(?) e북도 볼 수 있나요? 아니면 알라딘에서 정품으로 구입한 e북만 보는 건가요??

다락방 2018-04-11 08:04   좋아요 1 | URL
저도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초보이고 게다가 이런 쪽에는 영 지식이 전무해놔서 ㅎㅎ 잘은 모르겠는데요, 전자도서관에서 대여해서도 읽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싶어 검색을 해보긴 했는데요, 링크 참고하세요.

http://cafe.naver.com/ebook/392122

transient-guest 2018-04-11 10: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psyche 2018-04-16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전자책의 가장 큰 장점은 활자크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입니다....
저는 초창기 크레마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너무너무 맘에 안들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쓰는데 이게 요즘 나오는 대여책들은 예전 크레마에서 읽을 수 없는거에요! 아 너무햇
요즘 나온 크레마는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던데.. 뒤에 빛이 있어서 밤에도 읽을 수 있다고 하고
저 신상 크레마 사야하는 걸까요? 집에 누크 킨들 크레마 다 있는데...흑

다락방 2018-04-16 09:11   좋아요 0 | URL
저는 크레마 사운드 쓰고 있거든요. 어제도 방에 불 다 꺼놓고 책 조금 읽었는데, 빛이 있어서 읽기도 좋지만 프시케님 말씀처럼 글자 크기 조절이 되어서 너무 좋아요! 저는 글자 크기도 키워놓고 글자체도 진한 걸로 바꾸고 또 볼드체로 바꿔가지고 찐하게 해서 읽거든요. ㅎㅎㅎㅎㅎ 그래서 읽기 너무 편해요. 어제부터 [백래시]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전자책 계속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크레마 사운드...정도라면.... 한 번 성능 같은 거 검색해보시고 새로 구입하는 게 어떨까... 생각됩니다. -0-

blanca 2018-09-3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아직도 크레마 잘 쓰게 되나요? 지금 심히 갈등 중이랍니다. 다락방님 조언이 절실합니다.

다락방 2018-09-30 14:10   좋아요 0 | URL
저는 추천합니다, 블랑카님! 여름에 휴가 가서도 크레마로 책 잘 읽었어요. 무엇보다 여러권의 책이 들어가서 좋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능은 활자를 제 마음대로 키울 수 있다는 거예요! 노안이 찾아오는 저에게 너무나 고마운 아이템인 것입니다! 저는 크레마로 나폴리 시리즈, 잭 리처 시리즈 잘 읽고 있어요. 스맛폰에 비해 눈의 피로도도 덜합니다. 추천합니다!!
 
부엌은 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샤 마틴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몇해전에 친구가 내게 회사로 파이를 보내왔다. 호두파이와 치즈파이가 절반씩인 파이 한 판이었는데, 나는 이런 선물을 받아보지 못해서 그 참신함에 놀랐다. 선물을 받은 기쁨은 물론 있었지만, 그 날은 유독 지친 날이었다. 지금은 왜 지쳤었던 건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지쳤고, 그 파이를 들고는 집에 좀 늦은 시간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갔으니 샤워를 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지쳐서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들고 싶은 그 밤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씻으러 들어가면서, 아 그런데 씻기 전에 친구가 준 파이를 한 조각 먹어볼까, 하고는 식탁앞에 서서 파이의 포장을 열고 치즈파이를 골랐다. 그렇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입 안 가득 퍼지는 치즈향과 씹히는 촉촉함 그리고 바삭함이 갑자기 내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입 안속의 향긋함은 곧 온 몸으로 퍼졌다. 서서 한 조각 후딱 먹고 샤워하러 들어가려던 나는, 주저 앉아서는 눈을 감고 먹었다.



아, 너무 맛있다.



나는 그 지친 늦은 밤에 이 맛있는 치즈파이를 먹으면서, 처음으로, 음식이 나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친 몸과 마음이 그 순간에 탁, 하고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멀리서 파이를 보내준 친구가, 어떻게 내가 힘든걸 알고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 받을 때면 매운 것 먹고 싶어하고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싶어하고 술을 퍼마시고 싶어하지만, 여태 그렇게 살아왔지만, 어떤 음식이 입 안으로 들어와 툭, 하고 나를 풀어놓는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맛있다'는 것과는 달랐다.




여름에도 설탕을 뿌려야 단맛이 우러나는 신선한 딸기 대신 깃털처럼 가벼운 동결 건조 딸기를 반죽에 섞었다. 새빨갛고 울퉁불퉁한 껍질에 여름을 머금은 냉동 딸기는 맛이 강렬하고, 반죽에 넣어도 속이 축축해지지 않는다.

여기에 색깔도 선명한 레몬이나 오렌지 제스트를 추가하고 크림을 몇 숟가락 끼얹으면 서리가 내린 창가가 따뜻해진다. 정말이다.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이면 지독하게 추운 날에도 몸이 풀린다. (윈터 파운드케이크, p.71)



'사샤 마틴'의 이 책, 《부엌은 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차있다.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받고 또 치유가 되었던 경험의 기록들. 단순히 사랑과 경험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더 내밀하고 깊은 사연들이 있다. 사샤 마틴은 세계 각국의 요리를 해보이며 그것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하고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찾아들기 시작했다. 점점 매체에서도 관심을 갖게 됐고 팬이 생기면서 그 모든 음식들을 한 데서 차려내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요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만으로 책을 내려고 했지만, 결국 그녀가 써내려가게 된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지내면서 엄마가 어린 자신과 오빠 마이클에게 요리를 해주던 그 부엌의 냄새와 분위기부터, 위탁가정에 맡겨지며 쓸쓸했던 기억까지, 자라면서 방황하고 엄마가 그리웠던 감정과, 끝내 섞이지 못했던 양부모와의 갈등까지. 사춘기와 대학시절 그리고 직장 시절을 거치면서 사귀었던 남자들, 그들로부터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고스란히 이 책 한 권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 사연과 기억들 틈틈이, 그것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준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녀는 자라는 내내 엄마와 아빠를 향한 그리움에 시달렸고 또 외로움을 겪었다. 자신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단단히 붙들어줄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사귀었던 남자친구중 한 명이 그에게 이별을 고하며 '니 문제는 결국 니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뒤의 연애와 직장생활 그리고 육아에까지 고스란히 닿는다. 그 외로움과 아픔과 그리움이 그녀를 온통 잠식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또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소개하는 레서피에도 그 유머와 따뜻함과 그간 살아오면서 깨닫게 된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다 담겨있다. 요리를 하는 그 과정을 하나씩 겪으면서,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의 초반부터 부엌의 따스함과 다정함 때문에 덩달아 한겨울의 난로앞에 앉아있는 기분이 되었었는데, 그러다가 툭툭, 그 따뜻함 사이에 끼어드는 강한 찬바람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이 책 한 권을 다 읽는동안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 어제는, 지하철 안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아픈 사연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랑을 깨닫는 과정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은 어느 나이에 이르든 계속 성장하는 존재인 것 같다. 계속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항상 뒤늦게 오는 것 같아 속상하지만, 그렇게라도 깨달으면 그 때부터 다른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에 또 의미가 있다.




나는 항상 머릿속에 요리 생각을 하지만, 내가 결국 손으로 만들어내는 요리는 언제나 상태가 안좋아서 역시 돈 주고 사먹는 게 최고구나, 라고 번번이 깨닫는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요리를 해보고 싶다, 잘하고 싶다,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보일 수 있는 것이 요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성들여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걸 맛있게 먹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행복할 것 같아서.



첫 조카가 세살 무렵이었을 때,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만든 적이 있다. 면을 삶느라 부엌에 열기가 있고 가스렌지에 불이 들어와있어, 이모라고 달려드는 아이에게 '조카야 여기 뜨거워, 위험해, 이모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테니까 거실에 가서 엄마랑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했었는데, 그 작은 아이가 '응' 하더니 내 말을 듣고 소파로 가 제엄마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거다. 나는 면을 다 삶고 마트에서 사온 미트소스를 부어서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조카를 위해서는 작은 그릇에 담고 포크로 집어먹을 수 있게 잘라주었다. 식탁에 차려두고 아이를 불렀을 때, 아이가 포크로 스파게티를 떠 먹으면서 맛있다고 했고, 그렇게 한 그릇을 다 비워내는 걸 보는데 진짜 심장이 터질 것 처럼 행복하고 좋았던 거다. 이런 경험을 또 하고 싶어! 그러나 그 다음 스파게티를 만들어줬을 때는 조카가 먹지 않았다..................



사샤 마틴은 어마어마하게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어, 육아 때문에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없었던 남편과 아이를 재우고 잠깐이나마 데이트 시간을 갖는다. 그 날 밤은 사랑이 무르익어간 밤이었다. 나는 이것이 사샤가 맛있게 만들어낸 그 디저트의 힘이었다는 걸 믿는다. 나도 그걸 하고싶은데, 아아, 나는 그것을 돈에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내 손은 정녕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요리로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단 말인가!!




사샤 마틴은 따뜻한 마음과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고 요리도 잘하는데, 그것들을 한데 모아 글을 쓰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 책은, 글 자체로도 아름답고 뛰어나다. 자연스럽게 사연과 사랑과 유머가 그리고 깨달음이 글에 녹아나고, 그리고 그것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의 성장과정과도 섞인다.

좋은 글이다.

올 해 읽은 가장 좋은 에세이라고 하고 싶지만, 혹여라도 내 에세이가 또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 말은 아끼기로 한다. (킁킁)



그런데 이 좋은 책이 왜 아직도 1쇄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더 널리 읽히라고 내가 이렇게 리뷰를 쓴다. 움화화핫.





바게트와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종이봉지 안에 넣은 채 손으로 잡고 뜯으면 바스라지면서 한숨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들은 사슴처럼 걸음이 절로 멈춰졌다. 제대로 만들어진 빵 껍질에는 그런 효과가 있다. 입에 넣고 씹으면 이스트와 소금으로 만들어낸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졌고, 부드러운 속살이 내 입술에 대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김을 불었다. (p.111)



한 남자와 몇 번씩 헤어지더라도 애착이라는 질긴 끈을 차마 자르지 못하는 여자도 있다. 엄마는 올리버의 약물 남용과 음주와 도벽으로 인해 벌어지는 감정의 줄타기는 견딜 수 있었다. 그의 변덕과 걸핏하면 사라지는 습관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마이클과 나를 생각해서 모든 인연의 끈을 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라질 때마다 실망하는 우리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고, 우리에게 그의 성미를 이해시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p.39)

마이클은 점점 더 자기 방 속에 아픔을 가두었다. 한번은 토니가 방안에서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마이클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대답하고는 끝이었다고 했다. 나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닫힌 방문만큼 마음의 상처를 감추는 동시에 여실히 드러내는 상징도 없다. (p.81)

나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요리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엄마가 가르친 무언의 교육에 따르면 요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우여곡절의 해결책이었다. 권태를 해소하는 해독제일 뿐 아니라 슬픔, 헤어짐, 외로움과 같은 암울한 현실을 떨치는 방편이었다. 반죽을 주무르거나 냄비를 저을 수만 있다면 이 새로운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사랑하던 반쪽과 사별한 뒤에 셔츠를 안고 자는 배우자처럼 나도 요리를 하면, 재료를 다듬고 보글보글 끓는 그 냄새를 맡으면 엄마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p.85)

온 사방이 귀청을 찢는 소음으로 덮이자 결국 내 안에서 뭔가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감정의 속삭임에 점점 중독이 된 채로 움직이고 춤을 추고 살아갔다. 시인인 셰인 코이잔은 이런 말을 남겼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은 고통의 몸부림이 아니라 제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이보다 더 맞는 말이 어디 있을까. (p.121)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건 풀면 돼. 희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보여. 당신과 함께 할 모든 게 전부 다 보여." (p.240)

제로니모에는 기다림이 있다.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열매를 맺기 마련이라고 다들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야구공만 한 우박이 쏟아지든, 한 마을을 싹 쓸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토네이도가 들이닥치든, 가벼운 소화불량에 걸리든,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떠오르는 태야, 뜯어먹을 수 있는 메기, 뜨끈한 저녁, 잦은 미소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키스는 이런 세상의 귀감이다. (p.252)

로맨스 지수를 최고로 끌어올리려면 완벽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초콜릿의 씁쓸한 뒷맛이 그런 역할을 하듯, 사랑의 달콤함도 고난을 통해 좀 더 세련되게, 좀 덜 질리게 발전한다. 힘든 일을 겪은 뒤에 다시 만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이인지 깨닫게 된다. 자허 토르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초콜릿 케이크인데, 다크 초콜릿과 적당량의 설탕이 어우러져서 완벽하게 달콤 쌉쌀한 맛을 연출한다. (자허 토르테, p.320)

"당신이 자랑스러워." 키스는 내 어깨를 꾹 누르며 테이블을 둘어보았다. "당신, 진짜 행복하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행복은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해지려면 끊임없이 잡초를 뽑고, 감정과 상황을 맞닥뜨리는 대로 조절해야 한다. 그 뒤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식의 결말이나 행복을 보장하는 사람이나 장소는 있을 수 없다. 혼란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혼란을 통제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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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3-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글, 너무 좋네요~~~
치즈케이크를 부르는 글이예요. 전 가끔, 치즈케이크를 먹으려고, 밥을 먹어요.
일단 밥을 먹고, 그리고 치즈케이크... 첫 번째 만남이 최고죠. 크하~~~

전 요리에 관련된 책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요리를 안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제게 요리는 요리가 아니라, 끼니가 되어서요 ㅎㅎ 이 책은 정말 근사하네요. 특히 요기요.

˝요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우여곡절의 해결책이었다. 권태를 해소하는 해독제일 뿐 아니라 슬픔, 헤어짐, 외로움과 같은 암울한 현실을 떨치는 방편이었다. ˝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도 떠오르구요.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부엌이야기, 다락방님 새 책 다음 가는 에세이로 찜을 해놓고요 ㅋㅋㅋ

다락방 2018-03-30 10:28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이 책 너무 좋아요!
특히 음식을 요리하고 먹을 때 묘사가 대단해요! 저 위에도 인용했지만 바게트 먹는 거 묘사 좀 보세요. 어휴..음식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미치겠더라고요.
이건 단순히 요리 얘기라기 보다는 요리에 얽힌 성장과 사랑, 이해의 이야기인데요 작가가 글을 아주 잘 썼어요.
또 몇 번의 사랑을 잃고 결국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지켜봐주는 짝을 만나는 이야기도 너무 좋아요!
책날개에 보면 블로그 주소도 있던데, 어제는 거길 가서 음식들 구경을 했답니다. 근사한 음식을 구경하는 건 근사한 글을 읽는 것처럼 제겐 너무나 기분 좋은 일이라서요!

레이먼드 카버의 그 단편, 저도 좋아해요! 빵집 주인이 일단 잘 먹이려고 하는 그 장면,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마음이 따뜻해지죠.

아무튼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저같이 요리랑은 거리가 먼 사람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요리를 끼니라고 생각하는 단발머리님이 읽으셔도 아주 좋을 책이에요. 아름다운 책이거든요.


그나저나 다음책은 백래시를 읽을까 하는데... 너무 분위기가 달라지려나요? 하하하하하

2018-04-03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3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