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처음부터 긴장감이 시작되어 내내 유지되는데, 그래서 다음장을 빨리 넘길 수밖에 없다. 한 번 손에 들면 내리 읽어낼 수밖에 없을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2. 동물원에서 총을 쏘고 다니는 이들 때문에 무서웠는데, 그들이 혹여라도 맹수 우리를 파손해 맹수들을 풀어낼까봐 그것도 두려웠다. 아, 진짜 밤에 읽기는 너무 안좋아. 나는 밤새 악몽을 꾸고 뒤척였어 ㅠㅠ 밤에 읽지 마세요 ㅠㅠㅠ


3. 긴장되고 흥미로운 채로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마지막에 언급하지 않는 한 존재 때문에 좀 마음이 안좋았다. '나라면 달랐을까, 나라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존재 생각 때문에 책장을 덮고서도 계속 찜찜함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 존재는요?


제발 살아있어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라가 작정하고 여자를 팔아먹는 역사의 기록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성별은 남자'로구나 생각했다. 모든 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만이 인간으로 대우받는 곳. 이 적나라한 기록을 읽는 일을 그래서 열뻗치는 일인데, 그렇다해도 이 기록을 읽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책 주문할 때 강준만의 또다른 기록, 《룸살롱 공화국》도 주문했다.


또한, 이 책이 지금 '다시' 쓰여진다면 더 의미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합법화 되면 안되는지, 성매매 반대를 외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 현재를 사는 여자들이 어째서 '성구매자만 처벌'을 원하는지에 대한 목소리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강준만이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강준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서 여자가 인간일 수 있게 되는 날은 언제 올까.

나는 그 날을 되도록 앞당기고자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여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투표를 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여자들을 응원할 것이고.







원래 이름이 순이건, 순자건, 순희건, 에레나는 집을 떠나 도시를 방황하다 기지촌으로 흘러든 수많은 젊은 여성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에레나는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 사회의 가난과 또 보내놓고 손가락질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p.65)

일국의 정신문화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볼 수 있는 문교부 장관이 감히 매매춘을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건 당시 대한민국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영 국가‘ 체제였다는 걸 웅변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매매춘 여성들에게 안보 교육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국가 경제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교양 교육을 시행하여 외국인에게 최대한 서비스를 하도록 독려하였다. 그 교육 내용은 "일제강점기 정신대를 독려하였던 독려사와 너무 흡사하여 ‘신판 정신대 결단식‘ 같았다." (민경자, 한국매춘여성운동사)
물론 박 정권의 그러한 매매춘 장려 정책은 ‘수출 정책‘의 일환이었다. 방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p.86)

"정부는 외채의 압박을 줄이고 무역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관광산업의 개발이었으며, 이를 핑계로 외화 획득의 원천은 이제 기생 관광의 루트를 통해 부분 해소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관광산업의 정책적 육성은 짧은 시일에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 통용될 수 있었고, 많은 관광산업 유형 가운데에서도 기생 관광은 자금의 회전과 비축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파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 아닌 기생 문화의 복원. ……1970년대 한국 관광산업의 본질은 바로 이렇게 사라진 전통문화 가운데 성을 수단으로 하는 ‘원색의 소재‘를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신종 매춘으로 관광 기생업이란 명칭이 보편화된 것이다. (p.87-88)

"유신 직후, 한국 정부는 관광 진흥 정책에 따라 관광진흥법에 근거를 두었던 국제관광협회(현재의 한국관광협회)에 ‘요정과‘를 설치하고 관광 기생들과 관광 요정 문제에 관한 본격적 실무에 착수한다. ‘윤락행위등방지법‘(1961.11.9)제정 1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일본 제국 군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공창제도를 미 군정이 폐지하고 한국의 군사정부가 이를 새로운 법으로 대체한 지 10여 년 만에 정부는 그들 스스로 떠나보낸 자들을 다시 불러들여 유린의 대가를 긁어모으려는 ‘악의 논리‘와 공모·타협하기 시작했다. 요정과의 업무 방향은 사실상의 ‘매춘 허가증‘과 다름없는 접객원 증명서를 발부하고 교양 교육을 시행하면서 전국 관광 기생들의 행정적 존재 근거를 합법화하는 데 맞춰졌다." (p.88)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으면 이왕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를 시도한 김에 그들이 큰 돈이라도 벌 수 있게끔 보호 장치까지 만들어줬어야 했을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남성을 상대로 갖은 수모와 모욕을 당해가며 번 수입임에도 관광 기생에게 돌아오는 ‘화대‘는 여행사 커미션, 호텔 통과세, 밴드 악사비, 요정 종업원 팁, 버스 운전사 급료, 요정 지배인 몫, 접대 화대, 마담에 대한 사례, 호텔 객실 담당 팁, 교통비 등의 무수한 중간 착취자에 의해 거의 착취당하고 손에 쥐는 것은 생계비도 될까 말까 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총수입의 80퍼센트를 중간 착취당했으며, 정부는 화대 착취 구조를 묵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박종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p.89-90)

"70년대 국가가 이렇게까지 해서 정책의 전환을 의도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외국인들이 많은 돈을 쓰고 가게 하자는 기묘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 진정으로 기존의 매춘 여성들이나 빈곤 여성들을 끌어안아 범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조성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기생 관광 문화를 즐긴 주 고객들이 일본인이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해방 공간 속에서마저 단절되지 않고 존속된 과거 일제 공창 문화의 잔재와 이를 ㅅ스스로 척결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들의 사회 의식적,실천적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전도된 성 문화를 강화시키고 기생의 사회적 수요를 팽창시킨 한국의 관광정책은 결국 기생 관광을 일본에 역수출하는 새로운 현상까지 야기시킨다." (p.90)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정부나 국가가 그 여성 국민에게 통행금지 면책특권을 주면서까지 외국인 사나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딸을 바치고 그 대가로 부자가 되는 아비와 얼마나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돈으로 국민이 얼마나 부해지며 국가가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국민의 도덕적 타락, 비인간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서는 경제 발전을 못 한다는 말일까. 그렇게까지 해서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외화를 벌어야 할까.…… 이 통에 10여 년을 지켜 내려오던 ‘4·19의 4월‘이었던 달이 금년에는 갑자기 ‘관광의 4월‘로 탈바꿈했다. 어제도 오늘도 신문에는 일본의 무슨 재벌, 무슨 사장이 서울과 지방의 어디 어디에 몇 층의 호텔 건설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자랑스럽게 보도되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우울해지는 것이다." (p.94)

박 정권의 적극적임 매매춘 국책 사업화에 대해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난 건 오직 여성계뿐이었다. 1973년 7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한일교회협의회에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 이우정은 기생 관광 문제를 거론하면서 기생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73년 11월 30일에는 ‘관광객과 윤락 여성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통해 대응 방안을 토론하였고, 12월 3일에는 교통부 장관과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섹스 관광의 시정과 건전한 관광 사업책의 강구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발송하였다. 또 《매춘 관광의 실태와 여론》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러한 운동은 대학생에게도 영향을 끼쳐 이화여대, 한신대, 서울대 학생의 섹스 관광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섹스 애니멀 고 홈‘ 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호응하여 일본에서도 스물 두 개 여성 단체가 연합하여 일본인의 한국 내 섹스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p.95-96)

1972년부터 본격화된 보수 진영의 반대 운동은 마치 부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전개되었다. 1972년 8월 25일 전국유림대표자회의는 ‘500만 유림의 총의‘로 가족법 개정을 반대하는 결의를 표명하였고, 1972년 10월 5일엔 유도회 주관으로 가족법 개정을 반대하는 34만 명의 서명날인을 받은 원본을 국회 사무처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가족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에 대해선 그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진실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로 간주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데 앞장서왔다면 또 모르겠다. 오직 남성 우월주의적 기득권만을 지키려는 이들의 이런 이중 잣대는 조선조를 지배한 이른바 ‘열녀烈女 이데올로기‘의 변형은 아니었을까? (p.108)

1985년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미국의 잡지 《더 스포팅뉴스The Sporting News》에 별책 부록으로 서울올림픽을 홍보하는 광고를 무려 46면에 걸쳐 내보냈다. 그런데 그중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기생 관광의 메카라 할 요정에서 외국 남성들에게 안주를 먹여주는 컬러 사진이 44면과 45면, 두 면에 걸쳐 천연덕스럽게 실렸다.
단순한 음식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한 손님 옆에 한 사람씩 앉아 젓가락으로 외국인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가 하면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른바 ‘기생 파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 특집을 위해 《더 스포팅뉴스》에 거액을 지급했을 뿐만 아니라 1984년 11월 취재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든 취재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p.116)

이에 분노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 단체들은 본격적인 기생 관광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개 질의서를 통하여 여성을 이용해 관광 수입을 올리려는 정부를 비난하는 한편 정부 당국과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해명, 사과와 함께 올림픽 정책의 시정을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85년 3월에 인신매매 조직이 대거 검거되자 이 문제를 사회문제로 여론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인신매매를 고발한다‘는 공개 토론회를 처음으로 개최한 바 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성폭력‘으로 개념화한 한국여성의전화는 인신매매 과정에서 여성이 성적인 도구로 전락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신매매를 성폭력의 한 형태로 보았다. 토론회는 인신매매의 유형 사례 발표에 이어 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섯ㅇ매매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이우정이 성매매의 비인간성에 대해 발제했다. 그리고 지은희가 ‘매춘의 사회 구조적 원인‘에 대해 그리고 박인덕이 ‘매춘 여성 문제를 여성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의 발제를 하였다. (p.116-117)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그런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1986년 1월 기생 관광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던 11개 대형 요정 업체에 총 20억 원이나 되는 돈을 특별융자 형식으로 지원해주었고, 국제관광공사에서 발행하는 외래 관광객용 지도에도 기생 관광 장소인 요정의 위치를 각국어로 친절하게, 또 상세하게 밝혀놓기도 했다. (p.117)

기생 관광 이벤트는 주도면밀했다. 올림픽 개최일이 다가오면서 외국 관광객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접대부 아가씨들에게 이른바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실시했는데, 물론 이 소양 교육의 핵심 메시지는 국가를 위해 외국 관광객들에게 최대한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소양 교육을 담당한 강사들은 "아가씨들이 벌어들이는 외화가 우리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거나 "전후 일본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여자들이 자신들의 성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의 덕"이라는 미담도 잊지 않았다. (p.117-118)

한 외국인의 증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발을 땅에 딛자마자 뚜쟁이가 달려들어요. 세계의 여러 공항깨나 출입해봤습니다만, 뚜쟁이가 공항에서부터 일하는 곳은 내가 알기는 김포밖에 없습니다. 설마 이런 일들이 정부의 인정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하지 않겠죠?"(강견실, 매춘 관광과 한국 여자 재인용p.119)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06-07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가는 강준만 선생님의 서술을 따라 읽는다해도 ‘한국 매매춘의 역사‘를 읽는건 정말 힘들거예요.
뭐, 이런 놈의 나라가 있나...
너무나 당연시했던 기생관광을 결국 근절시키는데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이 있었다는 걸, 인용해주신 글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네요.
그냥 쉽게 되는 게 하나 없죠..... ㅠㅠ

다락방 2018-06-07 15:51   좋아요 1 | URL
이 나라는 계속해서 여자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고 그게 어느 한 남자가 그런게 아니라 나라 전체가 그런 거였어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여성들은 반발했고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네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지... 읽다가 너무 분하고 화가나서 미치겠더라고요.

단발머리님, 이 나라가 여자들한테 왜이러는걸까요?

6/9 시위에 가서 소리치고 와야겠어요.

블랙겟타 2018-06-1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 룸살룸 공화국 책을 나왔을 때 바로 사서 읽었었거든요.
그당시 강준만씨 책을 꽤 샀던 시절이라..
저는 정치교양 서적으로 생각하면서 읽었었는데 다시 꺼내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다락방님이 표현하신 ‘대한민국의 성별은 남자‘에 저에게도 생각이 많이 들게 하네요..

다락방 2018-06-15 08:51   좋아요 1 | URL
일단 룸살롱 공화국 샀는데 아직 읽기는 전이고요..이걸 읽다보면 또 내가 얼마나 빡이칠까...생각하고 있습니다. 저걸 읽기 전에 소설 몇 권을 좀 더 읽어둬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시간차가 있으니 블랙겟타님이 지금 ‘다시‘ 룸살롱 공화국 책을 읽는다면 그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또 그때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조만간 제가 읽고 페이퍼 쓰면 우리 그 때 또 이야기 나눠요!
 
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승국의 허벅지에 고개를 얹고, 그것만으로 불안했는지 앞발로 바지를 잡고 테이는 잠들었다. 덕분에 승국은 불편해 보이는 정장 바지를 갈아입지도 못했다. 형제는 볼륨을 낮춘 채 티브이를 봤다. 한 아이돌 가수가 그룹에서 탈퇴한다는 연예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탈퇴하는 아이돌들 이해가 가. 같은 회사를 7년, 8년 다니면 그만둘 수도 있는 거지, 욕할 문제가 아닌 거 같아."

"그러게 말이다." (p.83)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읽으면서 '아, 소설은 이야기였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 소설은 이야기였다.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 혹은 나와 관계없는 저 먼 곳의 사람들, 또한 나의 이야기. 각자가 가지고있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짧게 짧게 그려지는데, 그 일들마다 섬세함이 살아있어, 작가는 이 오십명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조사를 했을까, 그 노고에 감탄했다.


이야기는 이야기마다의 힘을 갖고 있다.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어느 하나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의 아픈 이야기도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들이 선하다. 선한 의지를 갖고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내게는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진다.


위의 인용문은 늙고 병든 개가 허벅지에 고개를 얹었기 때문에, 불편해도 그 자세를 유지하는 '승국'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한데, 내가 소설을 읽을 때 '착하기만한 이야기'에 대해서 딱히 매력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착한 이야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은 한국 소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술렁술렁 잘도 넘어간다. 오십명이나 되는 인물들이 나와서 모두들 어딘가에서 만나고 연결되어 지는데도 '아 아까 이렇게 나왔던 인물이구나' 알면서도 이름은 까먹게 되긴하지만,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 《마당이 있는 집》과 연달아 읽노라니, '아 한국소설 읽는 거 너무 즐거운 경험이다'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섬세하게 펼쳐지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으니, 저마다의 이야기가 자꾸 다른 기억들을 불러낸다는 데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사건이나 사고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소소한 일상에 있어서도 그렇다. 소개팅을 한 남녀가 그 후로 두 번 더 만났다가 끝내는 어그러지고 마는,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는, 정말 지극히 작고 아무것도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 소소한 이야기 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아주 오래된 내 소개팅이 떠올랐고, 한 번 더, 라는 그의 답에 그러마고 답해 한 번 더 만나놓고, 사소한 이유들로 '계속 만나자'는 그에게 '나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 내게 있었던 그 일이 내게 무슨 상처로 남아있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 남자의 이름과 얼굴마저 잊을만큼 별 거 아닌 일이긴 했지만, 대체 인연이란 건 어디서 어떻게 얽히는 것이고 어떻게 어긋나는 것인가에 대해 한참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 이야기 말고도 나를 머무르게 한 이야기는 이 책 곳곳에 숨어 있었다. 대체로 작은 일들에 대해서.



모든 인물들이 한데 얽히는 마지막에서, 나는 바라는 결말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발 그렇게 되는 결말을 쓰지는 말아줘'라고 바랐달까. 만약 결말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내내 재밌게 읽었지만 작가를 미워하게 됐을 것 같다. 작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결말이어서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구에서 한아뿐》,《보건교사 안은영》을 몇 해전에 읽었었고 그 후에 가장 최근에 읽은 게 이 책, 오십명에 대한 이야기인데,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내가 읽어본 작가의 전작들보다 좋았다. 그리고 최근작이 더 좋다는 것이 나는 어쩐지 더 좋았다. 나랑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나랑 비슷한 세대(나보다는 훨씬 젊지만!)의 작가가, 더 성숙해진 것 같아서이다. 자꾸 자라는 느낌. 같이 자라자고, 우리 같이 나아가자고 하고 싶다. 작가의 발전이 눈에 보였다. 나는 착하기만 한 소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앞서 밝힌 바 있지만, 그래도 작가가 지금처럼 착한 이야기들을 자꾸 자꾸 써주었으면 좋겠다. 예의 그 세심한 시선도 유지하면서.




"극장 들어오면 영화 보고 싶네요."
이번엔 정말요, 마저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영화 좋아하는군요, 말고 뭐 좀 똑똑해 보이는 말 없나. 게다가 도넛을 입에 너무 많이 넣고 씹고 있었기에 리액션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제가 도넛 샀으니까, 다음에 극장 문 열면 영화 보여주실래요?"
"네."
천재소녀가 두번째 데이트를 제안했다. 혁현은 천재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 대답했다. 그 빠름이 좀 민망할 정도였다. 사실 혁현은 도넛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그대로 멈춰 평생 도넛만 먹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데이트겠지? 이거, 데이트겠지?
"데이트예요."
혁현의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천재소녀가 말했다 뒤늦게 카페인이 몸에 도는지 귀가 울렸다. 천재소녀가, 채원이 수술이 있다며 먼저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원까지 쫄래쫄래 따라가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도넛 가게의 화장실에서 앞발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그럴 만한 날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알고 있었어, 내가 좋아한다는 걸. 내가 내내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부터 알았을까?
아마도, 눈만 보고. (p.99-100)

"그럼, 저 맨입으로 고맙다 하지 말고 맛있는 거 사줘요."
그러자 천재소녀의 똑똑하고 조그만 머리가 혁현을 향한 채 가만 멈추었다. 알아들은 것이다, 데이트 신청이라는 걸. 혁현은 발바닥에까지 땀이 나는 걸 느꼈다. 병원 바닥이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화처럼 아래층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럼 내일 아침 7시 반에 옆 건물에 있는 도넛 가게 괜찮아요?"
"네, 좋아요."
그날밤 혁현은 거의 자지 못했다. 천재소녀가 아침을 사주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술이 8시에 시작인데 7시 반이라니. 물론 바빠서겠지만 선 긋기가 아닐까. 빵 쪼가리나 먹고 빨리 헤어지자는 그런 이야긴가. 도넛을 좋아하는 것인가. 혁현을 싫어하는 것인가. 도넛을 좋아하며 혁현을 싫어할 수도 있다. 가슴이 거대한 도넛에 눌리는 듯해 얕게 잠들었다.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니 아침이었다. 안 그래도 별로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거울을 보니 처참했다. (p.98)

호감.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좋아해서 지키고 싶었던 거리감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나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는데, 어쩌면 더 좋은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혜련은 기가 막혀서 혼자 더 웃었다. (p.248)

"아니. 각자 결혼했지. 다른 건 안 무서워해도 자기 아버진 무서워했거든. 성질이 똑같은 데 더 센 분이었어. 부잣집에 시집갔는데 남편이 금방 요절해버려서 힘들게 살았다더라고."
"저런."
이번엔 세훈이 저런, 하고 옛날 사람처럼 말했다. 약간 쑥스러워서 얼굴이 붉어졌지만 쪽문 식당은 어두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연락할 수는 없잖아. 나도 가정이 있었으니까. 아내와 사별하고, 3년을 넘겨 예의를 지킨 다음에 연락했는데 뭐 너무 늦은 거였지. 몇번 만나지도 못하고." (p.2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외 남자 작가들의 책을 두 권 내리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와, 세상에 그렇게 잘 읽히는 거다. 걸리적 거리는 게 없이 술술 넘어가는 게 너무 좋은데,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우냐 하면 그렇지가 않아. 가스라이팅에 자기 중심 잃은 여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걸 읽어가는 건 정말 힘들었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이 여자야, 중심 잡어! 나는 얼마나 그렇게 속으로 외쳤던지.



마당이 있는 좋은 집에 사는 여자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던 가난한 여자의 이야기가 교대로 펼쳐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이 얽히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가난한 여자가 폭력적인 가난한 남편을 죽이면서 시작한다.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로워서 다음장이 어떤 장면이 나올지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여성혐오의 현실을 세련되게 박아두었다. 아마 주인공은, 나중에, 그러니까 책이 끝나고 나서도 훨씬 나중이 되어서야, '아, 그 때 내가 멍청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겠지. 나 역시 현실에서 '그들이 멍청했다'고 깨닫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으니까.



이 소설의 가장 큰 교훈은 악을 응징하는 데 있다 하겠다. 책 처음부터 나오지만, 이 책의 결론이라고 내 나름대로 부여한 것은 이것이다.



'쓰레기 같은 남(자)편은 죽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겠다.




제약 회사 영업직이던 남자는 유머 수준은 최악이었지만 잘생긴데다 성실해 보였다. 나는 허영이 가득한 동료와 사귀는 남자가 불쌍했고 연민을 느꼈다. 여자를 잘못 만나 당장 패가망신이라도 당할 것 같아 불쌍히 여겼던 것 같다. 나는 남자를 동정했다. 내가 구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자 역시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화장을 안 한 내가 다른 여자들과 달리 검소해 보였다고 했다.
남자느느 자신의 무능을 성실함으로 포장했을 뿐이고, 나는 검소한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돈이 없어서 궁색하게 살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못된 환상을 키우며 연애를 시작하여 일 년이 안 돼서 결혼에 골인했다. (p.168-169)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25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5-25 13: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주 재미있게 읽은 한국소설이었습니다!! 우리가 읽어야할 건 유명인의 신혼일기가 아니라(!) 바로 이런 소설인 것 같아요. 후훗.

moonnight 2018-05-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게 좋아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욧!@_@;;;

다락방 2018-05-25 13:34   좋아요 0 | URL
지루할 틈없이 팍팍 넘어가요, 문나잇님!!

단발머리 2018-05-2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거죠? 팍팍!!!
나도 찾아봐야겠어요.
믿고 읽는 다락방님 추천 도서*^^*

다락방 2018-05-25 17:0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그렇습니다!
지루할 틈없이 팍팍 넘어갑니다.
아, 그래서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이러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로 살짝 아쉬운 점이 있긴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인 것입니다!!! ㅎㅎ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해전에 회사 여직원이 노메이크업으로 출근을 해서는 사무실에 도착해 화장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남자 상사가 그 모습을 보고는 크게 혼냈다. '화장은 아빠도, 오빠도 모르게 하는거다!'는게 이유였다. 여직원은 이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만약 그 여직원이 집에서 화장을 하고 왔다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마치고 나와야겠지. 그랬다면 같은 회사, 같은 거리에 있는 남자직원보다 좀 더 수면 시간이 짧았을 것이다. 남자는 잘 시간에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하는 이 부조리함(또 퇴근하면 지우기도 해야한다). 게다가 화장을 하는 게 예의라고, 화장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여성을 출근하게 만드는 이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데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고? 이건 너무나 혼란스러운 지점 아닌가. 말 자체가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나. 이건 중학교 시절의 브래지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여중을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반드시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했고, 그런데 브래지어 끈이 보이면 안된다고 그 위에 셔츠를 더입게 했다. 더운 여름날 교복 하복을 입기 위해서는 그 안에 런닝셔츠도, 브래지어도 있어야 했던 것.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젖꼭지를 가리기 위해 브래지어를 하고, 브래지어를 감추기 위해 셔츠를 더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고... 왜 우리는 뭔가를 감춰야 하고, 감춘 걸 또 티내지 않아야 하는거야? 브래지어도, 런닝셔츠도 안입고 교복 하나만 슝- 입으면 되는 남학생들에 비해 확실히 효율이 떨어지잖아?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우리 회사 상사뿐만은 아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욕하는 글들은 인터넷에 얼마나 많이 올라왔던가. 그들도 그들이 왜 비난하는지는 모르고, 그런데 비난은 해야겠고, 그래서 파우더 가루가 흩날린다..같은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닌가. 베이비 파우더 바르는 것도 아닌데 무슨 가루가 날려... 그러면서 자기 여자 친구나 여자 동료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그래도 여자가 화장은 하고 다녀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장을 하긴 해야하는데, 이동 시간 중에 짬을 내면 안되고, 항상 너보다 먼저 일어나서 잠을 줄여가며 화장을 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셋팅된 모습으로 너를 만나야 한다는거지? 니가 애인이든, 상사든, 친구든..그게 뭐든?



대학때는 화장을 잘 하지 않고 다니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사례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나 준비된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도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이제는 화장하는 시간이 처음보다 확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시간은 걸린다. 머리가 길고 웨이브졌다면 말리고 고데를 하고 에센스를 바르는 시간도 걸린다. 시간만 걸리나, 돈도 들여야 한다. 돈만 들이나, 에너지와 신경도 그 쪽으로 당연히 쏠린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피부 당기지 않게 스킨로면만 촵촵 발라주고 옷만 입고 휙- 나오면 삶은 간단할텐데, 거기에 여자들은 화장이 끼어든다.




티비에서도 잡지에서도 어딜 봐도 날씬하고 화려하게 화장한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다. 어쩌다 한 장면, 어쩌다 한 명의 그런 여자를 본다면 심드렁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세상이 하나 되어 그 여자들이 진리인 것처럼 말해버리면,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아, 저렇게 예뻐져야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예뻐져야 사랑받겠지, 저렇게 예뻐져야 손가락질 당하지 않겠지.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 그리고 여자는 아름다워야 인정받는다는 강한 메세지 때문에, 여자들은 먹는 양을 줄이고, 꾸역꾸역 운동을 하고, 좋은 화장품을 여러개 사고, 긴 머리에 바를 좋은 헤어제품을 산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으면 당연히 행동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느라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들인다. 이 책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텔레비젼에 잔뜩 나오는 저체중 여성은 전체 미국 성인 여자의 3프로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3프로가 되어야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자들이 애를 쓰는 거다. 아무리 해봤자 자신이 완벽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될순 없는데!



다이어트는 식이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은 도울 뿐, 먹는 양을 줄이는 것, 먹는 양보다 활동량이 많아야 체중 감량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방이 쌓이지 않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아야 한다. 세상 맛있는 게 탄수화물에 얼마나 많은데! 그러다보면 식사는 즐거울 수 없다.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맛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근한 사람들과 만나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만약 내가 탄수화물을, 술을 끊어버린다면, 그건 내 인간관계도 끊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 두번은 만나서 더 적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해 살 순 없다. 나는 저체중의 몸대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당연히 나에게도 외모 강박이 있다.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외모강박 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남자랑 여행간다고 가기 전에 겨드랑이에 왁싱을 받고서는, 그 아픔에 놀라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해야되지?'라고 스스로 물었더랬다. 남동생의 결혼을 앞두고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하지?'라고 자꾸 되묻게 된다. 어쩌면 나는 외모강박이 심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태클을 걸어대서, 사실 내가 그렇게 해야만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래서 번번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다이어트를 할 굳은 의지 같은 것이 없어. 왜냐하면, 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살아도 행복하니까.




일전에 마른 몸과 성형수술을 원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계속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나 역시 납작한 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운동의 목적 중에 다이어트도 있었던 사람으로서(실패중이지만..), 왜 나도 이러면서 저 친구가 저러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질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도 이러면서 누군가 저러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것은 내 스스로의 모순을 증명하는 꼴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사람과 나의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다. 외모 강박의 크기가 달랐던 거다. 그 친구는 애인의 첫째 조건도 외모였다. 그러니 자신이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도 외모였던 거다. 그런데 나는, 외모가 아닌 다른 것에 더 신경쓰는 사람이고 싶고 또 그런 사람과 친구 혹은 애인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분명히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그 중요한 목표가 외모였던 거다. 우리가 각자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가 달라서, 그래서 나는 그것이 불편하고 어색했구나.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릴 때부터 아름답다 혹은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예쁘다'는 말이기 때문에 칭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예뻐지고 싶고 못생긴 곳은 어디인지, 자꾸만 자기의 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 자꾸만 생각하다보면 신경과 에너지는 당연히 그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고 얘기한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불평을 언급해 그것을 화제에 오르게 하고 또 그래서 자기 외모를 들여다보게 만들기보다는, 외모 이외의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자고. 그런 식으로 이 책에서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해 편지쓰기도 시킨다. 그러니까 순전히 '기능적인' 측면에서. 손이 하는 역할, 발이 하는 역할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한, 트레이너들한테도 '더 날씬한 몸, 비키니를 입기 위한 몸'으로 격려하는 대신, 우리 몸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걸로 격려하라고 설득한다. 그 편이 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더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요가를 시작했지만, 당연히 거기에 다이어트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요가를 했다고 해서 살이 빠지거나 배가 납작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요가를 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요가쌤이 앞에서 계속 코어에 힘을, 코어에 힘을..하고 얘기하는 바람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 코어에 힘이 더 생겼다. 안되는 자세들이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되는 걸 느끼면서, 아, 내 몸에 힘이 더 생겼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어찌나 신나는 일인지! 그래서 요가로 납작한 배를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요가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내 몸에 힘을 키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니까. 안되는 자세들을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가 결국 해내고 났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을 살면서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예뻐지고 싶다, 저체중이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기 보다는, 건강해지고 싶고 근육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더 몰두하고 싶다.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싶다. 저자도 이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들이 내게는 아주 많다. 할 일도 많고.



최근에는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 그러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을 곁에 남겨두자는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인생 가장 중요한 목표가 나와 너무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것처럼, 비슷한 사람과는 이야기하는 게 참 행복하다. 어제 책 읽는 남자사람친구가 책을 읽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고 또 책을 읽는 것들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혹은 애인으로 두고 싶다. 그간 못!생!긴! 남!자!들!만! 사귀었던 것은  (남자들이 다 못생겼기 때문이다...)아마도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외모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게 많았어.


더불어 조카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외모품평 해대는 프로그램들이 수두룩하게 나와 저절로 예쁘고 미운 걸 파악하고 언급하는 조카에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누구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는 등으로 얘기해왔었는데, 이제는 그보다는 다른 중요한 것을 언급하고 싶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떤 일을 할 때 재미있어? 어떤 게 즐거워? 등등. 외모 강박에 벌써부터 둘러쌓인 조카에게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의 중요성, 삶의 재미 같은 것들에 대해 언급하며,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조카야, 니가 예쁠 필요도 없고 날씬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필요도 없어.



끝으로,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아,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좋다' 하고 또 생각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가졌던 미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하는 것도 책이지만,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도 시야를 더 넓혀주고 사고를 확장해주는 게 책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읽은 게 아닌데, 읽고나면 어떻게든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토론을 하고 생각을 해서 고심해 쓴 글을 이렇게 편하게 앉아 읽는 것만으로 이 큰 도움을 받는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책을 읽고 그 후의 감상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몹시 흡족하다. 또한 내가 이렇게 글을 남김으로써 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엄마는 ‘모든 걸 할 시간은 없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겉모습에 신경 쓰다 보면 내면의 발전에 신경 쓸 수 없다고 하셨어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요." 가브리엘은 어머니의 말을 골똘히 생각하며 먼 곳을 응시했다. 이제야 그 말에 담긴 진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여성이 외모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면 그 시간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다른 일에 쏟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직장에서의 지위나 동등한 임금, 아니면 더 나은 교육 같은 것에요." (p.54)

대상화는 당신이 생각과 느낌, 목표와 욕망을 지닌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신, 당신은 그저 몸 또는 신체 부위의 총합으로 취급받는다. 심하게는 당신의 몸은 그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로 취급받는다. (p.63)

몸이 성숙해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때론 그 몸을 감춰야 안전하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식을 위해 성숙해진 몸이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성인 남성을 유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딸에게 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강한 태도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이는 모두 미지의 영역이다. (p.68)

에린은 지하철 안에서 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한 남성이 에린에게 그녀가 얼마나 섹시한지 이야기했다. 이에 에린은 재미없다고 대꾸했다. 그리고 "제발 꺼져줄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칸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성은 계속 "넌 정말 못생긴 X야. 아주 토 나오게 못생겼어. 이런 못생긴 X에게 말을 걸었다니 말도 안돼."라는 말을 했다. 정말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남성은 그녀가 섹시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접근했다. 그런데 거부당하자 그녀를 못생겼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젊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외모라고 교육한다면 당연히 남성(그리고 여성)은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싶을 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p.76)

내가 스물네 살의 대학원생 강사였던 시절 첫 교수 평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중에는 "교수님, 파란 스커트를 자주 입으세요. 예뻐 보여요."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교수 평가는 익명으로 이뤄졌지만, 누가 썼는지 알아내기 위해 출석부를 계쏙 훑어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동안 내 다리만 생각했던 학생은 누구였을까? 심지어 그 수업은 ‘젠더 심리학‘ 이었다.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학생은 여전히 그런 식의 코멘트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p.87)

사춘기 이후 에린은 자신이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극도로 신경 쓰게 됐다. 에린은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녀와 쌍둥이 여동생은 성숙한 몸을 감추기 위해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서 어린 시절을 연장했다. 나는 에린이 소년과 같은 외모로 살기로 결심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에린은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제 몸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은 그런 신체적 자유를 계속 누린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물었다.
에린은 화가 나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제가 남자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예요.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남자들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들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남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지, 남의 신체에 접촉하고 있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부러워요." (p.101)

몇 년 전 나는 강의실을 가득 채운 심리학자들 앞에서 자기 대상화에 관해 발표했다. 여성의 자기 대상화가 어떻게 신체 혐오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심리학자가 질문을 던지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어쩌면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혐오를 느끼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요? 몸무게가 늘어나서 기분이 나빠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비만을 막아줄 테니까요."
그날 이후 비슷한 질문을 여러차례 들었다. 대부분은 무례한 말투였다. (p.105)

최근에는 《뉴욕 타임스》페이스북이 ‘살찐 느낌‘이라는 이모티콘을 없애고 한 결정에 관해 쓴 글이었다. 분노에 찬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은 모두 남성으로 신체 혐오는 옳지 않다는 나의 주장을 몹시 비난했다. 이들은 신체 혐오는 비만을 방지하는 훌륭한 예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프랑스 여성은 모두 날씬하다면서(어쨌든 이는 진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프랑스 문화가 효과적으로 살찐 여성에게 창피를 주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미국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나는 여성이 자신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p.105-106)

M.K. 는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죄책감‘ 대문에 지금도 계속 부모님과 연락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증의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최근 아버지는 그녀가 너무 짧게 머물다 간다고 화를 냈다. M.K.는 아버지에게 용서해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녀는 평정심을 잃었다.
"나는 다 용서했다고요!" 그녀가 소리 질렀다.
"뭐?" 아버지는 딸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용서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M.K.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10대였을 대 제게 뚱뚱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울었다.
"뚱뚱했잖니."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말 한마디로 M.K. 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2주 동안 폭식을 했고 5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아빠의 말 한마디가 절 그 지경으로 만들었죠." 그녀가 말했다. (p.110-111)

최근 몇 년간 여성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이상은 크기, 키, 머리 색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날씬함이다. 이상적인 ‘풍만한‘ 몸매를 가졌다고 손꼽히는 여성들조차 배는 납작하고 셀룰라이트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적인 날씬함에서 이탈할 경우 종종 적대감이나 조롱을 마주하게 된다. (p.111)

‘건강‘을 위해 강조되는 것들은 대부분 ‘건강‘의 가면을 쓴 ‘아름다움에 대한 우려‘인 경우가 종종 있다. 2015년 애팔래치안주립대학교와 켄트주립대학교 연구팀은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간된 잡지 《위민즈 헬스Women‘s Health》와 《맨즈 헬스Men‘s Healte》의 표지 108장에 실린 제목을 분석했다. 《위민즈 헬스》표지에 쓰인 가장 큰 제목중 83퍼센트는 외모나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작성됐다. 《위민즈 헬스》의 기사 타이틀 역시 《맨즈 헬스》에 비해 외모를 강조하는 경향이 더욱 높았다. 두 잡지 모두 건강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춘 제목은 없었다. 잡지명에 ‘건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도 말이다.
몸무게에 따른 차별은 증가하고 있지만 차별이 비만을 방지할 것이라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p.117)

여성의 건강을 걱정하기 때문에 비만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여성의 건강을 향상시킬 다른 방법을 정중히 제안하려 한다.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자.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하자.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와 법률 제정을 지원하자.
잔인함은 건강에 개입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는 그저 자신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기 위한 독선적이고 그릇된 시도일 뿐이다. 왜 몸을 걱정하고 존중하는 대신 몸을 한탄하고 건강을 방해하는가. 왜 여성이 자신의 사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미워하기 바라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돌보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p.117-118)

외모 강박은 단순히 여성의 정신적·정서적 건강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도둑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과 시간을 너무도 자주 앗아가 버린다. (p.121)

내 시선은 설문 참여자의 성별을 가장 정확하게 구분 지어주는 항목으로 향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한 시간 이상 고민한다"라는 항목이었다. 여성은 대체로 남성보다 이 문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걸 봐봐. 네가 흥미를 가질 거라 생각했어." 그가 말했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모든 심리적 특성과 관심사 가운데 무슨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만큼 두드러진 특징도 드물다. 이는 여성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움에 대한 걱정으로 이뤄지는지를 밝혀줄 강력한 증거가 된다.
나는 결과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재미있네. 그리고 좀 화도 나고."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외모 강박의 대가에 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체적 자유와 인지적 자원의 감소,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저해 외에 여성은 외모 강박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또 치르게 된다. (p.122-123)

분명히 말해두자면, 나는 여성이 아름다움을 위한 비용과 행위를 포기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언어학 교수인 친구가 눈썹을 다듬어주는 동네 가게에 학생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햇다. 이는 단합을 도모하는 행사였고 학생들은 여자 교수가 함께한다는 것에 기뻐했다. 친구는 모임을 함께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나는 고마웠지만 초대를 거절했다. "‘미모관리용‘ 뭔가를 또 늘리고 싶지 않거든." 나는 설명했다. 이후 우리 테이블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이 만남을 무척 기대하고 있어. 눈썹 다듬기를 강요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비싸지도 않아. 겨우 10달러라고." 친구는 말했다.
(중략)
당시 나는 눈썹을 다듬기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그걸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됐다. 눈썹을 다듬은 후 더 예뻐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때부터 눈썹 다듬기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로 추가됐을 것이다. 나는 기종의 ‘해야 할 일‘ 목록에 그 어떤 것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식으로 내 외모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p.128)

내가 이 책을 위해 인터뷰했던 성인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출근길에 화장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행동은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성이 매일 아름다움을 위해 당연히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압박의 상징이었다. NBC의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Today>는 외모에 들이는 시간적 비용을 추정하기 위해 비공식적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여성은 하루 평균 55분을 외출 준비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으로 치면 2주나 되는 시간이다. 영국의 한 마케팅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여성은 평생 거의 2년의 세월을 화장하는 데 쓴다고 한다. (p.142-143)

‘아름다움의 심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움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계산하게 한 뒤 다시 일주이란 외모에 쓰는 시간을 모두 계산해보게 했다. 여학생과 남학생 간의 차이가 일주일에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까지 벌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뭘 하나요?" 나는 남학생들에게 물었다.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는 것이 가장 흔한 대답이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여학생들은 부러워했다. (p.143)

지난 몇십 년간 여성의 평균 몸무게가 증가하는 동안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 플레이보이 화보 등에 등장하는 여성은 더욱 날씬해졌다. TV 에 나오는 장면도 다를 바 없다.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되는 시트콤 열여덟 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분석한 결과, 76퍼센트는 저체중이었다. 56개 프로그램의 275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1,000명 이상의 주요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 여주인공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저체중이었다. 참고로 미국 성인 여성 중 저체중이 차지하는 비율은 3퍼센트 미만이다. (p.155-156)

불행히도 비판적 논쟁이 여성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수준이 높다 해도 외모 강박에 대해 아무런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마지막 유형(광고주는 여성을 괴롭힌다)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여성은 낮은 점수의 여성보다 자신의 외모에 덜 만족스러워한다는 점이다. 내가 의심하는 부분은 이런 이미지에 맞서 여성이 만들어내는 주장은 대개 이미 심리적 손상을 입은 후에야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이미지에 한 방 맞은 후에야 응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p.206)

(도브의 ‘아름다움을 선택하세요 Choose Beautiful‘광고를 언급하며) 오히려 이 캠페인은 여성이 외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 광고주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런 광고들은 실질적으로 신체 모니터링과 자기 대상화를 부추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신체 모니터링의 영향력은 반反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를 칭찬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칭찬은 여성의 관심이 외모로 옮겨가게 하거나 자신의 몸이 평가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여 심하면 신체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와! 이 남자가 날 섹시하다고 생각하네!"라는 생각에서 "잠깐, 이 남자가 내 배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이 셔츠를 입었을 때 내 배가 납잡해 보이던가? 그럼 내 다리는 어떻게 보이지? 내 머리는?"이라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미를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p.223)

나는 베스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여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주었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외적인 아름다움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물었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어요. 엄마는 옷을 찾거나 유행을 좇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거든요. 그런 엄마를 존중하는 ㅐ도나 엄마한테 외모의 기준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베스 아버지의 행동은 "당신은 아름다워요"라는 메시지보다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p.224-225)

아름다움에 무관심하려는 베스의 노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녀에게 SNS를 하냐고 물었다. 베스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했다. "SNS에서 다른 여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나요?" 나는 물었다.
"제 친구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이것저것 바꿔요.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앱을 사용하죠. 저는 그런 걸 하지 않아요. 제 SNS 를 보여드릴게요. 저도 제 사진을 올리기는 해요. 하지만 제가 웃기게 나온 사진이나 제 성격이 드러나는 사진을 올려요." 베스가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SNS 사진을 둘러보고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환한 웃음과 바보 같은 표정이 가득한 사진이었다. (p.225)

머리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려는 청소년기와 20대에 접어들 무렵에는 화장을 했었다. "일을 시작할 때 ‘화장을 해야겠구나. 왜냐하면 프로답게 보여야 하니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화장을 조금 했죠. 그러다 화장이 지겨워졌고 그만뒀어요. 그러니까…그래요. 화장을 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게 뭔지 알아요. 외모에 대한 규범의 일부를 어기는 거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거 알아? 사람들은 내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일을 잘한다는 걸 알아. 그러니 그만해! 라고요." 그녀는 말했다.
머리나는 화장을 재미있어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화장은 예술이 되거나 개인적인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여성들은 자신을 결점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굴의 얼룩덜룩한 부분을 화장으로 감추지 않으면 창피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죠." 라고 했다. 그리고 "여성이 화장을 하는 데엔 수많은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휘둘리지 않을 거예요." 라고 재차 강조했다. (p.242)

행복 연구가 에드 디너Ed Diener는 대학생 200명을 조사한 결과, 가장 행복한 학생이 평균 수준의 행복 지수를 보인 학생보다 반드시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신체적 매력은 전반적인 행복과는 낮은 상관관계를 보엿다. 그러나 이를 해석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보다 스스로를 신체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모와 행복 간의 약하고 일관된 연관성은 일상생활에서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신체적 아름다움보다 더 강력한 행복의 예측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나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대할 때, 외모의 영향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당신을 파괴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마법의 총알이 아니다. (p.245)

우리가 우리 몸을 비하하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내 몸을 비하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된다. 부정적인 보디 토크는 여성이 항상 외모에 대해 걱정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싫어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외모 강박적인 문화에 맞서는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는 외모에 대한 대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외모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가장 좋은 것은 주제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는 매우 많다. 굳이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p.270-271)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지난 어느날 에이미는 세일 제품이 쌓여 있는 상점 앞을 지나게 됏다. 그녀는 100퍼센트 순면이라는 여성 속옷에 주목했다. 전환점이라 말하기에는 이상한 장소였지만 중요한 순간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그날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 직접 속옷을 사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종식을 고하는 날이 되었다. 그동안은 그녀의 어머니가 속옷을 사다 주셨다. "항상 잘못된 사이즈에 작고 불편한" 속옷이었다. 에이미는 순면 속옷을 두 장 구입했다.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으로 저에게 맞는 커다란 할머니 속옷을 입었어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나는 그녀의 말에 희한하게 기쁜 마음이 들엇다.
"정말 좋았어요! 정말 편안했거든요. 그동안 속옷이 불편해서 내가 까칠하게 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속옷은 언제나 약간 작았어요. 하지만 그 검은색 할머니 팬티를 입었더니 정말 편안했어요." 에이미는 그날을 떠올리며 쓰러질 정도로 웃었다. (p.291-292)

"계속 그 옷을 입었나요?" 나는 물었다.
"와, 당연하죠." 에이미가 대답했다. "계속 입어요. 그건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거였어요. 제 몸을 받아들이는 행위였죠. 다시는 제게 맞지 않는 옷에 제 몸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을 거예요." (p.292)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지닌 여성들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p.303)

해나는 성인이 되어 앞서 말한 그 캠프에서 상담사로 5년간 일했다. 그녀는 "여자애들이 계속 저를 찾아와서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질까요? 누군가가 저를 사랑하게 될까요?‘라고 물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주나요?" 나는 물었다.
"저는 ‘네 모습을 모두 살펴봐! 네 모든 면을 봐봐!라고 해요. 너 자신이 되라고 이야기하죠.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매력적이라고 느낄 땐 그의 본래 모습 자체에서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p.314-315)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대부분의 소녀에게는 옷을 차려입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학교 댄스파티에 가는 재미임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소녀들이 입은 드레스는 너무 짧아서 편안히 저녁을 먹을 수조차 없었다는 것을. 옷이 단 몇 센티미터만 길어져도 뇌 공간의 상당한 부분을 되찾을 수 있고 소녀들도 예뻐 보일 수 있다. 분명 행복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우리가 매력적이라 느기면서도 옷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지점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우리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옷을 굳이 선택함으로써 더 많은 난관을 만들 필요는 없다. (p.338)

외모 강박적인 문화가 수천 번 할퀴고 지나간 작은 상처가 소녀나 여성을 무너뜨릴 수 있듯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수천 번의 작은 걸음이 소녀와 여성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여성의 외모에 집중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다른 이들도 이에 동참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의미 있는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대상화하는 행동이나 광고에 앞장서는 조직을 저지함으로써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우리의 돈과 시간을 다르게 써야 한다. 우리의 몸은 더 건강해져야 한다. 우울증과 분노가 흔한 것이 되어서도, 심각한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여성은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저 럽은 세상에는 봐야 할 것이 아주 많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p.342-343)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16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2018-05-17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런 글이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어린 아가 키우는 중인데 아기 잠자는 시간에 다락방님 글 야금야금 보는 게 얼마나 큰 낙인지! 많이 읽고 또 많이 써보며 언젠가는 저도 다락방님처럼 저만의 글도 써보고 싶어융- 맨날 읽기만 하고 가다가 오늘은 흔적도 살짝 남겨요! 아줌마되고 살도 찌고 화장도 잘 안하게 되면서 괜히 주눅들도 마음 불편했는데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제 느낌의 실체? 를 파헤치고싶네요.ㅋㅋ

다락방 2018-05-17 10:22   좋아요 0 | URL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그 사람에게 한결같이 날씬하고 예쁜 모습을 기대하고 바란다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쵸? 왜 그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변함없이 꾸밈노동에 몰두해야 하나요? 일단 몸을 추스리고 돌보는 게 먼저지요. 앞으로 아이랑 함께 지내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는데, 괜한 죄책감으로 건강 해치지 마세요, 배유미님.

지금처럼 아가 잠든 시간에 읽고 싶은 글 읽고 생각도 하고 글도 쓰면서 그 날 그 날의 감정을 정리하고 돌보는 게 훨씬 유익할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도요. 그리고 앞으로 아가랑 함께할 날들을 생각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럽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요. 건강하자고, 행복하자고, 즐겁자고 하는 거니까요.


천천히 책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거예요.
그리고 배유미님께 읽는 재미를 드릴 수 있는 글을 쓴 제가 참 자랑스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흔적 남겨주셔서 더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종종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