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 한 호흡 한 호흡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상 회복 에세이
이아림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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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매트 위 나는 자꾸 볼썽사나워진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주변과 경쟁하려 들고, 조바심치고, 두려움에 떨며 쉽게 좌절한다. (p.6)



요가할 때의 내가 꼭 이렇다. 나는 지금 요가를 좋아하고, 일주일에 3회 이상은 꼭 가려고 하고(잘 안된다), 그렇게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내가 요가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보일 순 없다. 나 역시 스스로 볼썽사나워지기 때문에. 호흡부터 잘 안돼서 아아, 내게는 호흡이 왜 이다지도 어렵단 말이냐, 호흡부터 안되는데 각종 아사나는 다 어떻게 소화한단 말이냐! 절망하곤 하는 것이다.



요가원에는 큰 거울이 있다. 내가 자세를 잡을 때마다 그 거울로 나를 볼 수 있는데, 내가 아무리 나의 크고 아름다운(?) 육체를 사랑한다 하지만, 각종 자세를 잡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따라하며 낑낑대고 땀 흘리는 나를 보는 것은, 아아, 결코 아름답지가 않아. 아름다운 건, 요가를 시작하기 전 거울에 비친 내 엉덩이 뿐인가 하노라. 내 엉덩이는 백만불 짜리!! 스스로 이렇게 엉덩이에 감탄하다가, 자세를 잡을 때마다 '엉덩이가 좀 더 작았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요가 매트 위 나는 자꾸 볼썽사나워진다, 는 거다.



이 책은 책을 펼쳐 읽는 순간부터 '아, 좋다!'하고 바로 훅- 느낌이 온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독서의 기쁨을 만끽하는 일이야. 요가를 만나고 요가를 대하는 자세 혹은 그 마음가짐에 대한 글일거라 막연히 짐작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틀렸다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거기에 더 많은 것들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단순히 요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요가를 하면서 느끼는 생각들을 영화나 책을 빌려와 얘기하는 거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소설계에 [독서공감] 이 있다면, 요가에는 이 책이 있달까. 그래, 이 책은 [요가공감]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책과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요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 요가에서 영감을 받아 책과 영화를 덧붙인다 해도 좋겠다.


독서에는 독서 공감, 요가에는 요가 공감!



일단 요가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작은 키와 짧은 다리, 그리고 빈약한 가슴 때문에 요가복 입는 게 망설여지던 것까지 내가 처음 요가를 만나던 그 때와 같다. 다만, 내 경우엔, 큰 덩치와 큰 가슴 때문에 요가복 입기를 고민했고, 여전히 궁극의 요가복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 아, 뭐든 다 크기만한 나 역시 고민인 것처럼, 그렇지 못한 사람 역시 이렇게 옷 입는 걸로 고민하는구나,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날 때 호흡을 가다듬어 혼자 요가를 즐기는 저자에 대해서라면, 아직 내가 이르지 못한 경지, 다다르지 못한 경지인데, 저자는 요가를 한 지 2년이 되었다고 한다. 아아, 나는 딱 절반만큼을 했으니, 나도 일 년쯤 더하면 내 분노와 감정을 호흡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될까? 떠오르는대로 동작들을 해보면서 내가 나를 컨트럴 할 수 있게 될까? 아직까지는 내게 먼 이야기 같다. 다만, 나 역시 어느 순간 '아, 내가 혼란스러울 때 매트 위에 가만히 앉아 호흡으로도 나를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겠지.



이렇게 요가에 대해서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글을 쓴 것도 좋았지만, 그 글을 무척 잘 썼다는 데에도 감탄했다. 문장력이 너무 좋고 글을 너무 잘쓴다! 나는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이 책을 읽다가 '글 쓰기를 배운 사람의 글 같아' 라고 감탄하는 얘기를 했는데, 읽으면서 당연히 '저자는 좋은 학교의 국문학과나 문창과를 나왔을거야'같은 생각을 했다. 내것보다 월등히 나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뭔가 배운 게 틀림없잖아? 아니, 그래야 하잖아? 그런데 읽다보니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하는 거다.




네???

뭐라고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글을 이렇게 (잘) 써요?????????



아아, 나는 저자 앞에 한없이 고꾸라진다. 나는 저자보다 10년이나 훌쩍 나이가 많지만, 저자보다 요가도 못해 글도 못 써.. 게다가 이 책을 보면 나온지 사흘만에 2쇄를 찍었더라. 아아, 심지어 나보다 책도 더 많이 팔았다!!


인생...




저자가 나와 닮은 점이 무척 많아서, 어어, 난가... 싶을 때가 종종 튀어나왔는데, 일단 요가를 하는 것도 그렇고 책을 읽는 것에서도 그렇지만,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에 있어서도 닮았고, 뭣보다 글 쓰는데 있어 굉장히 솔직하다는 거다. 남자친구와 콘돔 사용에 대해 얘기하고 모텔의 대실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아아, 이거 저자의 엄마도 읽으실텐데, 괜찮을까' 같은 쓸데없는 오지랖 같은 것도 생길 정도라니까? 그러나 그 솔직함이 너무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을 중간에 살짝 해서 별은 하나 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다투고 화가 나 요가를 하는 글이었는데, 그 부분에서는 '이 책을 그 친구들이 읽는다면 이것은 저격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 기분은 썩 좋지 않아서, 오히려 내가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부터 저격글을 많이 써왔는데, 딱히 저격하려는 의도가 없어도 그리된 적이 많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고나니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내 글에 주변인을 등장시킬 거라면, 나쁜 점에 대해 등장시키지 말자, 같은 다짐을 언젠가부터 해오고 있다. 게다가 그것이 책으로 나온다면 더하다. 책으로 나와버렸으니 저자의 단톡방 친구들은 그 책을 읽고 대체 어떻게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 부분에서는 그걸 책으로 내버리다니, 좀 .. 뭐랄까....... 아무튼 앞으로도 계속 책을 낼 생각을 하는 저자이던데, 안그랬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이다. 그런 바람을 가지면서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나 역시 앞으로 글을 쓸 때 지금보다 더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이 이렇게나 좋아.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니까.



책의 사이즈가 작아 가볍고 가방에도 쏙 들어간다. 가히 '소품'이라고 해도 좋을 책인데, 심지어 읽는 재미까지 있다. 굉장히 차분한 글들로 채워졌는데, 읽으면서 내내 '어떻게 이렇게 차분한 글을 쓸까' 부러웠다. 왜 나는 차분한 글을 못쓰지? 요가를 더해야 하나? 요가를 더해서 마음 수련 하면, 그러면 좀 더 차분한 글이 써질까? 안될거야..나는 그냥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일거야...(시무룩)




그나저나 나도 요가를 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을 (어딘가에)적어두고 있었고, 이 글들만으로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겠구나, 사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하하하, 때려쳐야 겠구나 ㅋㅋㅋㅋㅋㅋ 이미 이런 책이 있어서 내가 뭔가 더할 필요가 없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가를 하고 있는 사람, 했던 사람이라면, 요가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테고,

요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글을 읽는 재미가 상당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쓰다보니 이런 책이 또 하나 생각나는데, 그건 '김소영'의 《어린이책 읽는 법》이다. 그 책이야말로, 어린이 책을 읽는 사람, 읽어야 할 사람이 읽으면 좋겠지만, 어린이책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글 읽는 재미가 상당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작고 유익한 책들이 있어..



아무튼 독서에는 독서 공감, 요가에는 요가 공감.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진설명: 콩국수와 잘어울리는 요가매트만큼의 세계. 맛없는 콩국수와는 어울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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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8-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겠어요.. 같은 요가 배우는 자로서.. (이제 두달... 꼼지락꼼지락..)

다락방 2018-08-08 11:16   좋아요 1 | URL
비연님! 읽는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머리서기도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ㅠㅠ 저는 1년차에 머리서기는 아직 한참 멀어서 5년내를 목표로 잡고있는데 저자는 금세 됐던 것 같아요. 부럽..

읽고 뽐뿌 받아 요가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비연 2018-08-08 11:18   좋아요 0 | URL
부럽네요... 머리서기 ㅠ 전신체위도 안되는 저로선... 뽐뿌받아 요가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 노력~ ^^;;

다락방 2018-08-08 11:21   좋아요 1 | URL
저 1년 했지만 안되는 거 투성이에요. 트위스트 할 때 이 팔로 저쪽 팔 잡고 이러는 건 팔이 다른 팔 근처에도 안가요. 무슨 1년을 해도 몸이 이렇게나 굳어있고 뻗뻗한지... 나무자세가 그나마 안됐다가 되는 자세인 것에 큰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차차 나아지겠지요. 우리 계속 꾸준히, 재미있게 요가합시다!!

transient-guest 2018-08-14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를 요즘 하다 말다 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이번 주부터 다시 화-수-금 스케줄로 도전!!

다락방 2018-08-14 08:59   좋아요 1 | URL
화,수,금.. 일주일에 세 번이면 정말 많이 하시는것 같은데요? 다른 운동도 하시잖아요.
저는 일주일에 네 번이 목표이긴 한데 사실 그게 힘들더라고요. 최소한 세 번이라도 가자, 마음먹지만 이번 주에는 두 번 가면 잘가는 것 같아요. 제가 어제도 술을 마시느라 못갔고 오늘도 술 약속이 있어서..

술은 뭔지...

아무튼 열심히 합시다. 요가 말예요!! >.<

transient-guest 2018-08-14 09:01   좋아요 0 | URL
이 동네는 걷는 일이 별로 없어서 운동이라도 해야죠 ㅎㅎ 요가 fire—- 화이팅입니다 ㅎ
 
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구판) 7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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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사랑을 잃고 절망하고 있을 때 한 영화를 봤다. 영화속에서 중년의 여자는 이혼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그러다 우연히 만난 중년의 남자와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을 하게 된다. 이 사랑이 그녀를 들뜨게 하고 설레이게 했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 했던 남자는 '나랑 같이 가지 않겠느냐' 물었지만, 여자는 자신의 아이들도 있고하니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녀는 다시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멀리 있는 그와 편지로 안부를 전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그렇게 어느정도 시간을 보내고난 후, 그는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고 한다. 여자는 예쁜 옷을 입고 메뉴를 정해 상을 차리고 그렇게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침이 오후가 되고 오후가 또 밤으로 바뀌어도 그는 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아들이 왔다. 그의 짐 몇 가지를 가지고. 그리고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녀에게 오지 못한 이유가 그의 죽음이라니, 그녀는 삶에 의욕을 잃는다. 돌보아야 할 아이들에게도 신경을 쓸 수가 없다. 평소 엄마와 사이가 안좋은 사춘기 딸이, 이 때만큼은 동생을 돌보고 엄마 역시 돌본다. 엄마,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해줄래?



이 영화를 보고 펑펑 울고 여동생에게 전화해 얘기했는데, 그 때 동생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언니, 사랑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지. 살아있으니까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잖아. 만남에 대한 희망."


정말 그랬다. 살아 있기 때문에 어쩌면, 언젠가는, 우연히라도 그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죽음이 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 그는 저기 어딘가에 살아있다. 어떻게든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가 그곳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내고만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 그의 살아있음 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라는 생각을 나는 오래 했다.




이 책, 《육체노동자》는 그 제목 만으로 선택된 책이다. 제목 너무나 내 타입이야! 나는 아마도 이 책을 펼치면 잘만 킹 감독의 영화같은 장면들이 나올 걸 기대했던 것 같다. 그의 영화 《레드 슈 다이어리》에서는 상체를 탈의한 몸 좋은 남자가 힘차게 운동하는 장면이 있었으니까. 육체노동자, 라는 것은 내게 잘만 킹 감독의 영화 이미지를 줬고, 그래서 선택한 거였는데, 책의 줄거리와 또 책을 읽으면서 보니, 전혀 내가 상상한 그림대로 그려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10년을 한결같이 사랑한 남자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오, 맙소사.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니.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난 후에도 역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되겠구나.


'그래, 그가 저기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좋아. 그렇다면 우리가 언젠가는 만날 수 있잖아. 내가 손을 내밀든 그가 내밀든, 혹은 그것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도. 그가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그러나 책은 읽을수록 메롱인 것이었던 것이었다.. 10년을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자는 동성애자이고, 그래서 그녀에게 뭐 딱히 이렇다할 사랑을 준 것도 아니었고...그녀에게 '그 부자늙은남자랑 결혼해' 같은 거 강요하고, 그녀는 늙은 부자 남자랑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연애하고 값비싼 선물 받고 게다가 그의 남자애인은 가끔 젊은 중국남자를 꼬셔서 자고..뭐 이런.... 재미없으면서 심지어 쓸모없기까지 한... 아시아인이 잠깐 서빙하는 엑스트라로 등장하고 여자 주인공은 뭐랄까 세상 한심한 캐릭터같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심지어 기분까지 나빠지는 책인 것이다. 특히 '젊은 중국 남자'를 꼬셔서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간다는 건 너무 싫었어.



이 얇은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그만둘까'를 생각했다. 집어던질까..그렇지만 벌써 절반이나 읽었는걸, 벌써 삼분의 이나 읽었는걸, 몇 장 안읽으면 다 읽는건데... 어쩌면 끝까지 읽고나면 묵직해지는 뭐 그런 게 있을 수도 있어..라고 했지만 뭐 딱히 묵직해지는 그딴 건 없었다고 한다.



재미없는 책을 집어들면 독서 속도가 확 느려진다. 이 책 읽으면서, 이 책 포기한다면 내가 빨리 다른 재미있는 책 1,2,3을 읽을 수도 있을텐데! 세상에 읽을 책이 천지인데 시간이 아깝구먼!! 하고 탄식하다가, 드디어, 다 읽었다.



이제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



"지금의 넌 빅토르는 물론이고 좋아해보겠다고 작정하고 만나는 다른 가엾은 청년들과도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그건 빅토르를 즐겁게 할 뿐이야. 유감스럽지만, 사랑이란 단 한 사람하고만 가능한 거란다. 설사 옆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p.111)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흔히 겪었던 남자들의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시선을 난 참 잘도 참아냈던 것 같다. 은밀하고도 저속한 유혹의 시선들이 화를 돋우긴 했지만, 이를 통해 난 빅토르가 정말 점잖은 사람이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항상 겸허하게 행동했던, 지상에서 정말 유일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p.39-40)

빅토르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모습으로 웅크린 채 잠들기 일쑤였고, 면도도 하지 않고 제대로 세수도 안 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빅토르의 그런 너저분한 행동거지를 세베로가 그냥 방관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눈썹 사이에 깊은 주름이 하나 있고, 살짞 벌어진 입술이 상심에 잠긴 그 작은 주름살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모습으로 그는 누워 있다. (p.120)

그녀에겐 편지 한 통 보내지 않고 연락을 끊은 자신을 롤스로이스 차에 태우기 위해서라면, 평원 한가운데서 기차를 세울 수도 있을 만큼 영향력을 지닌 행정관과의 연애 경험이 있다. 그녀가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미끌미끌한 초록색 옷을 고집하게 된 것도 그의 영향 때문이다. 샴페인도 모자도 다 그 남자의 영향이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그녀는 결혼하자고 울면서 그에게 매달렸다. 10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녀는 그의 허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성당 제단 앞에서 그 사람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정말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p.126)

내 머릿속은 내가 저지른 천박한 죄들로 가득했다.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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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수록 메롱인 것이었다....햐 표현이 대박입니다!!!

다락방 2018-08-07 11:38   좋아요 1 | URL
아니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까지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08-07 11: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것도 대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8-08-0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제목 단호한것 좀봐. 그런데 심지어 다 읽었어 대단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8-07 20:34   좋아요 0 | URL
제가 한단호 하는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

비연 2018-08-0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바로 제외. ㅎㅎ

다락방 2018-08-07 20:34   좋아요 0 | URL
네네 다른 책 읽으세요 ㅎㅎ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프랑수아 아르마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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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여행 전날, 부랴부랴 바로드림으로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구입했다. 당장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바로 전날 이 책이 사고 싶어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퇴근 후에 서점으로 달려가면서, 아아, 나는 왜 하필 이 때 이걸 읽고 싶어서 몸고생을 하는가...스스로를 원망했지만, 아니,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을 묻는 책인데, 여행할 때 가져가는 게 아니라면 언제 읽는단 말인가! 나는 다른 책들과 함께 이 책을 여행에 가져갔고, 얇은 책이니만큼 하노이의 한 까페에 앉아서 다 읽어내려갔다.



이 책은 '당신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은 무엇?' 이라는 질문을 세계 곳곳의 작가들에게 던지고 그 답을 기록해놓은 것인데, 애초에 《성경》과《셰익스피어 전집》은 책 목록에서 제외하라고 나와있다. 아마도 이 두 권이 가장 많이 선택되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인데, 사람들 참 웃기다. 분명 전제에 '이 두 권을 제외하고' 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라고 했지만' 이러면서 성경과 셰익스피어 전집을 잘만 넣어둔다. '빼라는 거 알지만' 이라는 전제를 붙인 작가도 있고, 그런 거 아예 쓰지도 않고 그냥 '난 성경!'막 이래 ㅋㅋㅋ 아아, 작가들 고집이 대단합니다.



성경은, 어쩌면 나도 가져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경을 읽고나면 세계 문학을 이해하는 데 더 폭넓은 길이 열릴 것 같아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아서. 그렇지만 셰익스피어 전집은, 나로 말하자면, 좀 여러권 읽기도 했을 뿐더러 무인도에 가져갈 책도 아니야. 그런데 아주 많은 작가들이 이 두권을 제외하라고 했음에도 껴넣는다. 성경과 셰익스피어 전집, 뭐지요?



내가 도표로 만들어서 수치화 하려고 작가이름, 가져갈 책 목록 엑셀로 만들다가 포기했다. 다만, 기억나는대로 말하자면, 아주 많은 작가들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얘기하더라. 그 책이 분량이 길기 때문이라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시 읽어도 좋을 작품이란 얘기가 많았다.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그렇다면 나는 무인도에 갈 때 아직 읽지 않은 이 책을 가져가도 좋으리라.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책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다. 그리고 《돈키호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언급하더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구권 남자작가들에게 성경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모비딕》도 여러차례 언급되었는데, 내게는 이 책이 이북으로 있지..아직 읽지 않았지만... '카뮈'의 《이방인》도 몇차례 보았고, 발자크, 도스트옙스키, 스탕달, 체호프, 폴로베르도 여러차례 언급된 작가이다. 



여기에 실린 작가들이 고른 책들의 리스트는 대부분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이었다. 가져갈 책으로 꼽히는 책이 고전이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작가들 중의 다수가 남자이고, 또 그들이 가져갈 책의 상당부분이 남자 작가의 책이다.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보부아르'는 《제2의성》에서 발자크의 여성혐오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발자크를 가져가겠다고 한 작가들은 (내 기억이 맞다면)모두 남자 작가들이었다. 새삼 여자 작가들의 작품이 가시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은 몇 해전에 작가들에게 뿌려졌고, 그 대답을 책으로 묶자는 기획은 2014년에 세워졌다 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시간은 상당히흘렀으니, 지금 다시 작가들에게 묻는다면, 그리고 여성작가들의 수를 더 늘린다면, 가져갈 책의 목록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발자크나 존 스타인벡은 덜 언급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여러차례 언급된 '발자크'의 《사촌 베트》는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작가들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집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무인도에 간다면 시를 읽기에 너무 좋을 거라는 거다. 시집에 대해서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가, '정말 무인도에서는 시를 읽기에 좋을까?' 하고 계속 생각해보고 있지만, 좀처럼.. '그렇다'는 답을 내가 내릴 수가 없네?



작가들의 좋은 혹은 재미있는 대답들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작가 '로버트 올렌 버틀러'는 가져갈 책 목록에 아직 미발표된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스 듀베리'의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포함시켰다. 이건 아직 미발표작인 책인만큼 자신이 이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하고 또한 세상에 좀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였나, 전화번호부를 가져가겠다고 했고, '안토니오 카발레로'는 아무거나 백과사전으로 세 권 가져가겠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가져가고 싶으니 추천 해달라고 했고, '오늘은 이 책들을 얘기하지만 내일 물어보면 다를거야' 라고 답하기도 했다. 아, 누군가는 자신이 쓴 책을 가져간다고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책 대신 펜과 종이를 가져간다고도 했다.


아, 그리고 미셸 우엘벡!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설문조사에는 절대 답하지 않는다. -p.108, 미셸 우엘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는 분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전에 내가 읽은 《헛된 기다림》의 작가 '나딤 이슬람'은 안나 카레니나만 세 번 외친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전쟁과 평화를 선택하고 싶다고 말한다. 성경과 미워시의 시집들을 가져갈 거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위기 상황을 지나야 할 때, 감정적인 상처를 극복해야 할 때나 실수를 저질렀음을 인정해야 할 때, 일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갈 때 나는 언제나 문학에 기대곤 했다. 그럴 때 미워시의 작품은 언제나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달래주었다. -p. 31, 나딤 이슬람


아,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이 대답이 진짜 너무 좋은 거다!


문학에 기대는 것, 그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뚜렷이 기억나는데, 아주 오래전, 무슨 일 때문인지 지치고 힘들어서 갑자기 정미경의 책이 읽고 싶어졌던 거다. 그 때 집에 가는 길, 걸으면서도 그녀의 단편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를 읽었었는데, 읽으면서, 아아, 역시 소설이 짱이야, 지치고 힘들 땐 책을 읽으면 돼, 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여러분 이런 경험 있지 않아요?



'로디 도일'이란 작가는 무인도에 가져갈 책으로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을 선택하는데, 이 선택에 이렇게 덧붙인다.



이 책 앞에서 나는 사춘기 때 그랬듯 게걸스레 빠져들어, 내가 냉장고도 술집도 없는 곳에 난파되어 세상에 홀로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게 틀림없다. -p.71, 로디 도일.



아아, 이것도 너무 좋지 않은가. 내가 어디 있는지 아예 까맣게 잊게 만들 책. 나를 쏙 빠져들게 만드는 책. 도대체 그런 걸 잊게 하는 책이라니, 나의 투쟁이 어떻길래 그런걸까.



당연히 여러 책이 나오고 그래서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번 하게 되지만, '존 어빙'만큼 그 생각을 강하게 들게한 작가도 없다. 그는 모디빅을 선택하는데, 이렇게 답하는 거다.



나는 《모비딕》이 없으면 안 된다. (p.111, 존 어빙)



아아, 저기에 모비딕 말고 무얼 넣어도 성립되고, 그렇지만 신중하게 넣고 싶어지지 않는가. 도대체 그게 없으면 안된다니, 모비딕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저 문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면서, 나는 저기에 모비딕 말고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넣어봤지만, 아니, 그게 없다고 해서 '안되는' 지경까지는 아닌 것이야. '없으면 안되는 거' 그건 대체 내게 어떤 것일까?


설마..



술과 고기?



그리고 이런 충동은 또 어떤가!



내 세 번째 선택은 월트 휘트먼의 《풀잎》이 되겠다. 나는 내 섬에 세상을 가져오고 싶다. -p.147, 알베르토 망구엘




어떤 책을 가져가면 나는 섬에 세상을 가져가는 기분이 될까?




하나만 더.


'퍼 페터슨'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내 비밀의 책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노르웨이어 번역, 덴마크어 번역, 두 가지 영어 번역으로 갖고 있다. 어떻게 한 작품이 그토록 생으로 충만하고, 열정과 '사유'와 '기교'로 가득할 수 있을까!

나는 도저히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었지만, 그것도 꽤 오래전 일이며 다시 빠져들 준비가 되어있다. 두껍기까지 하니 무인도에서 적어도 일주일은 버티게 해줄 것이다. -p.187, 퍼 페터슨



나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생각이 났다. 나는 그 책을 독일어 원서로도 가지고 있고, 영어 번역본으로도 가지고 있다. 물론...둘 다 읽지는 않았고 또 읽지 못하겠지만, 퍼 페터슨이 안나 카레니나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확 다가오는 거다. 내가 새벽 세시를 사랑하는 바로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져갈 세 권'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됐다. 제일 처음,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꼽았다. 그리고 나자 나머지 두 권에 대해서는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워지는 거다. 줌파 라히리를 좋아하는 만큼 그녀의 책을 가져가야 할 것도 같고, 율리시스 같은 긴 책을 가져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싶기도 했다. 읽어봐야지 했지만 섣불리 펼쳐보지 못했던 성경은 어떨까 싶기도 했고, 아니야 그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소설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적인 사정이 듬뿍 담긴,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를 가져가면, 그 책에 얽힌 기억이나 마음까지 쏟아져내려, 무인도에서 버티는 데 문제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는 새벽 세시 말고는 다른 두 책을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했고, 그러면서 새벽 세시 시리즈로 《일곱번째 파도》까지가 한 권이라고 우겨야지! 다짐도 했다. 내심, 영어번역본과 독일어 원서 까지도 한 권이라고 우길까.... 하기도 했고.



책 제목이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이라고 했으니, 나는 무인도에 표류할 다른 사람들과 미리 어떤 책을 가져갈지 얘기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야 책이 서로 겹치지 않고 다양하게 흘러올 수 있지 않나. 그러면 서로 다른 책을 가지고서 교환해볼 수도 있잖아. 아아, 그러나 더 많은 책들을 다양하게 읽기 위해서라면, 사실 거기는 무인도가..무인도가 아닌 게 되지 않나. 그러니까 말이 안되는 것인가... 그렇지만..성경은 안가져가도 될 것 같은데, 그거슨 아마도 무인도에 이미 성경은 누가 갖다놓았을 것 같기 때문이야.. 다들 이렇게 고전들을 가져오려고 하니 내가 가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구출될 당시에 무인도에 기증하고 와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놓고간 숱한 고전들 속에서 현대 소설 읽는 깨알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아아, 인류를 사랑하는 나는 휴머니스트...



나 역시 세 권을 다 추려내지 못해, 다른 작가들도 이 질문에 답하기 너무나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나 역시 설문조사엔 답하지 않겠다고 하는 편이 속 편할듯...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해본다.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지만,



'내가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은 무엇일까?'







적어도 25권은 필요할 텐데! 나에게 문학은 마약이다. 아내는 내게 아주 짧은 여행에도 왜 세 상자나 되는 책을 철저하게 챙겨 가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독서에 제약받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p.103, 짐 해리슨)

《모비딕》과 셰익스피어 없는 삶을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p.111-112, 존 어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안나 카레니나》, 《신곡》. 순전히 실제적인 이유에서다. 거기서 몇 년을 보내야 한다면, 묵직한 책을 가져가야 한다! 나는 프루스트르 숭배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이 대목 저 대목을 나는 끝없이 다시 읽는다. (p.128, 하니프 쿠레이시)

‘도데‘의 《사포》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책이다. 줄곧 저속함의 경계선에 있으면서도 결코 그리로 떨어지지 않는 그의 글쓰기는 아주 근사하다. (p.138,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내 세 번째 선택은 월트 휘트먼의 《풀잎》이 되겠다. 나는 내 섬에 세상을 가져오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휘트먼의 시각, 격독적이고 세심하고 애정어린 시각은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앞날을 향해 펼쳐진다. (p.147, 알베트로 망구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가져가겠다. 무엇보다도 그 언어의 아름다움 때문에 계속 다시 읽는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을 쓰기 위해 노트를 잔뜩 가져가겠다! (p.166, 토니 모리슨)

그리고 선집 한 권, 선집이라기보다 나만의 명작 시집(로버트 크릴리, 데릭 월컷, 존 클레어, 타밀어 사랑 시들, 토머스 와이엇, 데니스 존슨, 잭 길버트의 글 몇 편, 에이드리언 리치, 토머스 하디, 그 외에도 다수)에 기억할 만한 단편소설 몇 편, 특히 이사크 바벨과 메이비스 갤런트의 단편을 곁들여 가져가겠다. 이 명작 선집은 나만을 위해 몇 년동안 공들여 만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여기저기서 뜯어낸 낱장들과 손으로 베껴 쓴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물에도 불에도 상하지 않는 내 구급상자다. (p.180-181, 마이클 온다체)

발견되기까지 내겐 내가 쓴 책 세 권이면 충분하다. 《낙원》, 《여자들》, 《취향 전쟁》.
난파선에서 건진 술 몇 병만 있으면, 만사가 순조롭게 굴러갈 것이다. (p.214, 필리프 솔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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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0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화번호부와 백과사전이 맘에 드네요. 원래 소설파인데 어쩐지 지루한 무인도에서는 백과사전이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요. 전화번호부도요.

다락방 2018-08-06 11:46   좋아요 0 | URL
백과사전은 읽을만한것 같은데 전화번호부는 숫자만 가득할텐데..재미있을까요? ㅎㅎ
저는 성경을 가져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성경 읽기는 아까울 것 같아요. 하루종일 하는 거라곤 독서뿐일텐데, 그 온전한 집중력을 성경에 쏟아붓기 싫은 마음 같은게 생겨서... ㅋㅋㅋㅋㅋ

psyche 2018-08-06 12:31   좋아요 1 | URL
그게 전화번호부에서 이름 보는 것도 재미있구요. 숫자에서 나 혼자만의 패턴을 발견해보는것도 재미있고 중간에 있는 광고도 재미있답니다. 너무너무 읽을게 없어 전화번호부책 읽어본적이 있는 저...

다락방 2018-08-06 13:15   좋아요 0 | URL
혹시 탐 크루즈 주연의 영화 [레인맨] 아세요? 거기 보면 더스틴 호프만이 탐 크루즈의 형으로 나오는데요, 자폐증상이 있는 걸로 나오거든요. 전화번호부 책을 한 번 읽고는 거기에 있는 전화번호를 다 외워버리는 거예요. 갑자기 그 생각나네요. 음..전화번호는 누군가에게 분명 읽을 거리가 되겠어요!

psyche 2018-08-06 13:30   좋아요 0 | URL
그 영화 당연히 봤죠. 주연을 더스틴 호프만이 아니라 탐 크루즈라 하시니 저와는 세대차이가... 확ㅎㅎ
저는 전화번호를 외우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얼마나 읽을게 없었으면 전화번호부 책을 다! 인거죠. ㅎㅎ

다락방 2018-08-06 13:41   좋아요 0 | URL
저 중학교 1학년 때 본 영화거든요. 스크린 가득 탐크루즈 얼굴이 나오는데, 와- 저는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그 때 처음 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린 마음에 정말 얼마나 떨렸던지... 그 뒤로 탐크루즈 책받침 사고 그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8-08-0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전쟁과 평화‘요! (한국판 4권 중 앞 2권은) 두 번씩 읽었는데 어쩜 새롭고 멋지고 재미있는지요!!
발자크는 개나 줘 버리라고 할거구요. ㅎㅎ 프루스트 ...하아, 문장 유려하고 (번역문이지만) 상황이 섬세해서 읽는 맛은 있지만 캐릭터들이 다 이상해요. 그래도 계속 읽으려고요. 2권부턴 민음사 판으로 갈아탈까, 고민중이에요. 펭귄판 읽기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무인도 생존기, DIY 이런 책?을 골라야 할 것 같죠? 아, 그런데 전 무인도에선 하루도 못 버틸 것 같아요. 나한테 말 안걸고 안 쳐다봐도 사람들이 좀 있어야 좋아요. 그런데 이런 상상 이렇게 공들여 하는 나는 .... 네, 더워서 정신줄 놨어요. ㅜ ㅜ

다락방 2018-08-06 11:48   좋아요 0 | URL
안나 카레니나만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여러차례 언급됐어요! 전쟁과 평화 왜지...해서 저도 곧 읽어야겠다 생각했답니다. 늘 그렇듯 생각만...
프루스트도 읽어봐야겠는데, 아아, 세상엔 왜이렇게 읽을 책이 많은가요? ㅠㅠ 회사 그만두고 책만 읽고 싶지만, 회사 그만둔다고 책만 읽을 것 같진 않아요 ㅠㅠ

많은 사람들이 생존에 관한 책을 끼워넣기도 했어요. 생선 요리법이라든가 숲에 관련된 책들이요.

저 역시 유부만두님처럼, 저한테 말 안걸어도 좋으니 사람들이 좀 있으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버티기는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책을 읽어도 즐거울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책 읽는 것 만큼이나 책을 읽은 후에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해서요 ㅠㅠ

syo 2018-08-0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도라면 아무래도 <식용식물도감>이랑 <도구와 기계의 원리>를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월든>입니다.

다락방 2018-08-06 11:49   좋아요 0 | URL
위에 유부만두님께도 단 댓글이지만, 어떤 작가들은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책을 선택하기도 했어요. 생선 요리법 책이라든가, 숲에 관련된 책이요. 또 어떤 실용서가 있었더라? ㅎㅎ

식용식물도감도 아주 유용하겠네요. 그렇다면 저는 제가 고른 책 세 권을 가지고 무인도에서 쇼님을 찾아다닐래요. 쇼님 옆에 딱 붙어있으면 먹고 살 순 있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8-06 11:51   좋아요 1 | URL
이렇게 알라디너들 한명씩 다 모이면 그게 무슨 무인도예요 제주도지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8-06 11:56   좋아요 0 | URL
뭐 어때요. 이 편이 더 재밌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을대로 상상하기)

syo 2018-08-06 11:57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알라딘은 무인도를 빌려 ˝알라디너의 밤˝을 개최하라~ 개최하라!

다락방 2018-08-06 11:58   좋아요 0 | URL
재밌겠다. 그리고 알라디너의 밤에는 자기가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을 들고오기!!

syo 2018-08-06 12:00   좋아요 0 | URL
그런 다음 집계해서 가장 다중으로 가져온 책들부터 시작해서 알라딘에서 특별기획전으로 파는 것이다. ˝알라디너의 선택 in 무인도˝

순 우리 좋자는 정책이네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8-08-06 12:04   좋아요 1 | URL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상상해보니까 씐나고 재밌네요. 술과 고기가 끊이지 않는 알라디너의 밤이었으면 좋겠어요. ^_____^

비연 2018-08-06 21:11   좋아요 0 | URL
이 댓글 릴레이에 완전 공감백표를 던지는 바입니다!!!!!

다락방 2018-08-07 08:04   좋아요 1 | URL
비연님, 책 세 권 가지고 참석하세요!! ㅋㅋㅋㅋㅋ

hellas 2018-08-0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세권을 고르는 일은 어려운데 작가 셋이라면 고를수 있겠어요.ㅎㅎ 이창래. 마거릿 애트우드. 필립로스를 일단!!! 말씀대로 그 외의 고전은 누구든 무인도에 기증했길 바라며 ㅋㅋㅋㅋ

다락방 2018-08-06 11:5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작가로 고르라고 해도 못 고르겠어요. 일단 줌파 라히리는 넣고 싶은데... 다른 작가를 대체 어떻게 골라야 할지 ㅠㅠ 못고르겠어요. 단호히 고르시는 헬님, 멋져요! 저도 고민없이 뽝- 단호하게 고를 수 있어야 할텐데, 작가로 물어보니 줌파 라히리 빼고는 두 명 더를 선택할 수가 없네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8-08-0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권 뿐이라면 엄청 두꺼운걸로 세권을 하겠어요 ㅋㅋㅋㅋㅋ 해리포터시리즈를 한권으로 한다던가 조선왕조실록을 한권으로 해준다던가 이런건 안되는건가요.

다락방 2018-08-06 12:13   좋아요 0 | URL
오! 저 조선왕조실록 아직 안읽었으니까 그걸 한 권으로 친다면 그걸 가져가도 좋겠네요!... 라고 생각하다가, 으음, 그래도 좀 더 재미있는 걸 가지고 가고 싶다...이런 욕심 ㅋㅋ 그래서 결국 고르지 못하고 있다능 ㅋㅋㅋ
해리포터 시리즈도 제가 안읽은 책이라서, 그걸 한 권으로 친다면 제가 고려해볼만도 하겠어요. ㅋ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8-08-06 13:17   좋아요 0 | URL
아무리 두꺼워도 율리시스는 안할거예욧 단호.

다락방 2018-08-06 13:21   좋아요 0 | URL
음... 저는 율리시스도 고려대상에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적에 서로 너무 좋아하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상대를 그리워하고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루어간다는 얘기. 그런 한편 내가 정말 너무 좋아해서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있다. 성인이 되어 자기 삶을 살다가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과 헤어져도 계속 마음속에 그 사람을 품고 살다가, 결국은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는 이야기.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와 좋아하는 이야기가 어느 시점에 만나고 다시 돌아오느냐에 대한 시기적 차이만 있을 뿐 결국은 같다 보여지지만, 그러나 언제 시작되느냐가 나에게는 좋고 싫고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나는 아이었을 때 만난 사람을 '어릴 때 그 소녀' 혹은 '어릴 때 그 오빠' 이런식으로 살면서 내내 가져가다가 애인되고 부부되는 게 너무 싫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그 뭐지..제목은 생각 안나는데 청소년기부터 주인집 딸 좋아해서 그 소녀의 보디가드가 되고, 그 소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를 위해 삶 전부를 내던지는... 그 조폭 나오고, 변호사 나오고...뭐 아무튼 그런 식. 진짜 너무 싫어 싫어. 소꿉친구 로망도 싫고요..



지난 주에 서점에 가서 책들을 훑어 보다가 이 책을 보게 됐다.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데 트윗에 연재하던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어 소설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책 뒤의 표지를 보니 이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이야기인듯 했다. 이십대 시절 만난 상대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그러나 뜻하지 않게 헤어졌다가 거의 이십년이 지나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상대에게 무려 '페친'을 신청한다는 게 아닌가. 와- 이건 진짜 딱 내가 좋아할만한 이야기야! 나는 이 책을 사고서는 사두고 읽지 않은 숱한 책 중에 가장 먼저 집어들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 얼마나 할 말이 많아질까, 나는 얼마나 하염없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까...



그러나 책의 첫장부터 '어랍쇼?' 하게 되더니 마지막까지 '이게 뭐야' 하면서 기분이 나빠졌다. 저자는 이 책에 분명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여자를 등장시켜놓고, 그러나 그 여자에게 딱히 어떤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책 소개는 과거의 사랑을 다시 만나 어쩌고 진행되는 걸로 보였는데, 그 과거에 '나 자신보다 사랑한' 여자가 나 자신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어떤 여자도 그 여자만큼은 사랑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하는 것들은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남자는 현재 마흔이 넘었고 그간 방송계에서 꾸준히 일해 경력을 쌓았다. 책의 처음에는 그런 남자에게 접근해 하룻밤을 보내는 여자가 나온다. 연예인으로 크게 되고 싶은 꿈을 가진 그녀는 하룻밤을 보낸 그에게 '내 꿈은 이뤄질까요?' 같은 문자를 보내고. 현재에서 간혹 과거의 여자, 즉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여자'를 회상하면서 지금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여자'와도 딱히 한 건 없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쳐서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게 되었고, 그녀 이후로 그녀만큼 사랑하는 다른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녀와 만나는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곤 그녀와 공기도 탁한 러브호텔에 가는 게 전부였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여자가 인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는, 암흑계 보쓰의 애인인 성매매여성과 친해져서 그녀의 집에서 잠도 자고. 그런 남자가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여자는 동네 성매매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여자' 외에는 성매매 여성만이 나온다. 성을 도구로 이용해서 꿈을 이루려고 하거나 돈을 버는 여자들. 그리고 그녀들은 자신의 삶을 딱히 싫어하지 않는다. 싫어하지 않는게 다 뭐야, 어떤 여자는 '나는 지금의 삶이 좋아'라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쌓아두고는, 그러나 이런 편견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은데, 그보다 더 잘 보이는 건, '여자를 대하는데 편견없는 이렇게 힙한 나!' 이다. 완전 자기뽕에 차있어. 



글은 글을 쓴 사람의 사상과 생각을 드러낸다. 그것을 세련되게 포장하는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못해 원래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글에 다 드러나게 되어버리고 만다. 내가 박범신의 [은교]를 졸라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박범신의 [은교]에 은교는 없었다. 자아를 가진 은교는 존재하지 않고, '나이 들어가지만 여전히 근육키우고 글도 잘 써서 질투도 받는 멋진 늙은 나'만 있다. 그렇게 자기뽕에 차서 십대 소녀를 성적대상화 시키고만 있는데, 작가는 그 글을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자기 머릿속에 '이렇게 멋진 늙은 나'가 있는데... 문제는 그게 자기 자신에게만 멋지다는 거. 그리고 이 책의 작가 '모에가라' 역시 '이렇게 힙한 나'에 가득 취해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여자'외에는 성을 도구로 하는 여성만 가득 나오는 소설을 쓸 수있나. 게다가 암흑가 조직 보쓰의 '오늘 밤 나랑 잘래?'란 말에 좋다고 씐나하던 여자가 그 보쓰가 경찰에 끌려가자 '성폭행을 당했다'고 뉴스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보면서 남자는 어이없어하는 장면. 자기가 웃으며 허락한 그녀를 기억하는데....



그러니까 이 책은 띠지의 광고 <그 시절 연인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나요?>로 사람을 낚아놓고는 사실 그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찝찝해.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다. 이야기는 분명 힘이 있고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작가가 써내려낸 이 고백식의 글은 이야기랄 수도 없는 자기의 찌질한 삶의 토로인데, 그것은 어디에서도 힘을 얻지 못한다.


얼마전에 호주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스탠드업 코미디쇼 <나의 이야기>를 시청했다. 해나 개즈비는 그 쇼에서 초반에 웃음을 주다가 마지막에 분노한다. 분노하면서 외친다. "백인남성들이여, 분발하세요!"


나는 이 책의 작가 모에가라와 더불어 숱한 남성들에게 그 외침을 똑같이 들려주고 싶다. 분발하라!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이야기로 내놓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납작하게 두 종류의 여성만 그려내놓고는 뭐 세상 힙한 척 하고 있나. 게다가 작가가 여자를 보는 시선은 '나는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남자야'를 보여주려고 하지만 이미 상당히 뒤로 쳐져있다. 작가여, 공부하라. 공부해서 좀 바른 의식을 갖자.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어서는 안된다. 처음에도 하룻밤 대상이 되는 여자가 나와서 찝찝한데,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런 거 본 적 없지?' 하고 가슴 보여주는 스트립걸이 나와서 짜증나고, 후반에는 '쵸이스 당했다고 좋아했으면서 성폭행으로 폭로한' 여성이 나온다. 아이고야...그러면서 계속 끈질기게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 여자를 집어 넣는다. 러브호텔 간 얘기, 질투한 얘기 같은 거... 도대체 뭘 보고 나는 이 남자가 그녀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고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해나 개즈비'는 자신의 이야기가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 역시 그녀의 이야기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이야기는 전달될 필요가 없고 쓸데도 없다. 뭐 어쩌라는건지... 그래서 페친 신청해서, 뭐? 



나는 여전히 '파트릭 모디아노'가 [지평]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서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 마지막 장면은,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내 안에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 '페르귄트'는 자신의 자리를 너무 늦게 알아서 '솔베이지'에게 육신만 도달하게 된다. 어디서 젊은 시절 좋은 건 낭비하고 껍데기만 솔베이지를 찾아와, 내내 기다리던 솔베이지를 속상하게 했어. 우리는 우리의 제자리가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가야해. 어차피 그곳이 제자리라면 얼른 찾아가야지, 괜히 게으름 부려 늦게 도착하면 서로 속상하고 서운하잖아. 그리고 그곳이 제자리라면, 가급적 서운하지 않게 해야 하잖아. 



이렇게 기억되고 이야기되어질 만한 게 이 책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오히려 예쁜 여자 만나면 위축되는 자신만 나오는데, 심지어 그 예쁜 여자는 나를 좋아해?! ㅎㅎㅎㅎ 진짜 ... 할 말 없게 만든다. 자기 이야기에 갇혀서 발전을 모르는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다. 마흔이 넘었는데 어른이 안돼...어른이 못돼... 어른이 되려면 이대로는 안된다. 자기 머릿속 이야기에 갇혀서, 자기 뽕에 취해서 아무리 써대면 뭐하나. 그래봤자 발전없는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일 뿐인데. 분발하라. 공부하라. 공부하고 분발해서 뭔가 좀 기본적인,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의도 좀 장착하고, 입체적인 여자에 대해서도 새기고, 여자에게도 자아가 있다는 걸 좀 알아라. 




수는 시원스러운 눈매와 검고 짧은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미녀였다. 그녀는 가냘픈 몸매치고는 풍만한 가슴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타이트한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모델이나 영화배우처럼 생긴 여자를 보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동적으로 마음의 셔터를 내려버리는 성향이 있었다. 왠지 기분이 저절로 위축되며 계속 자리에 앉아있기가 무척이나 거북살스러웠다. ( p.138)



위의 문장에 이 남자의 온갖 못남, 발전하지 못함이 다 들어가있다. 가냘픈 몸매와 풍만한 가슴의 여자, 그 멋진 여자 앞에서 위축되는 자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몰카를 보는 남자 심리라고 했던가, 여자들에게 무시당했을 때 화장실 몰카를 보며 '저여자들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다' 뭐 이런 식의 대꾸를 본 게 생각났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에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기 위해 요강 훔치는 이야기가 나왔었지. 아 짜증나... 이 남자는 가냘픈 몸매 풍만한 가슴의 여자에게 위축되고 그렇다면 못생긴 여자 앞에서는 당당해지는가. 아, 그러고보니 그가 '나 자신보다 사랑한' 여자는 못생겼다는 언급이 두어번쯤 나온다. 진짜 어처구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쁜 여자 많이 만나지만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세상 힙한 나. 꺼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싫다.



제자리를 찾는 아름다운 이야기인줄 알고 이 책을 샀는데 이거 뭐 이럼? 여러분, 이 책 읽을 시간에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를 듣고 보자. 그 편의 여러분의 삶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굳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마흔 넘은 남자의 이야기를 굳이 볼 필요가 없다.

헤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안녕이라는 말을 전하기 어렵다. 어딘가에 굵은 글씨로 헤어질 때 써먹기 위해 근사한 말을 준비해둔다고 하더라도 막상 이별해야 할 상대가 눈앞에 있으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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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 개정판
김정희 지음 / 동아일보사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학은 내게 닿지 못할 영역에 있다. 더이상 수학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직장인이라는 것이 다행인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에 대해서는 어떤 미련 같은 것이 남아있다. 내가 수학문제를 푼다는 등위 행위는 일절 하고 있지 않지만, 수학 문제를 잘 푸는 사람, 수학을 잘했던 사람에 대한 동경은 대단한데, 실제로 나는 수학문제를 풀어낸 노트를 보면, 그 노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답인지 알아채지도 못하면서 이미 정신을 잃을 정도로 푹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나를 '수학 문제 푸는 것에 페티시'가 있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다.


어떤 하나의 동경 혹은 페티시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것이 부재함을 의미하는 거란 생각을 했다. 내가 전완근에 반하는 것, 등근육에 반하는 것은 내게 그것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수학도 마찬가지. x 와 y 를 넘어선 기호들을 제멋대로 좌르륵 써나갈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불가한 일이다. 도대체 머릿속에서 어떤 사고가 펼쳐지기에 숫자와 기호를 넘나드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나는 수학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못할 뿐. 못하면서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못하면서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버리는 거야. 못하면서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걸 잘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존경과 동경을 보내고야 마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수학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두 눈이 하트가 되어버려...그리고 전완근과 등근육에도..



대체 전완근과 등근육은 무슨 상관??



어쨌든,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된 이유였다. 내가 못하지만 그러나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수학과 화해하고 싶었다. 조금 더 접근하고 싶었다. 언제까지 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며 살것인가. 나도 조금쯤, 내 스스로 친해져도 좋지 않은가, 하고. 그것은 운동과도 닮아 있다. 언제까지 등근육과 전완근 가진 사람을 보며 침만 질질 흘리고 있을 것인가. 그것을, 그 멋진 것을 내가 가진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등근육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듯이,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수학과 성큼 가까워진 기분도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이 책을 읽는 것은 나로 하여금 '자 이제 수학과 조금 더 친해져볼까'하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중학생정도를 대상으로 한 책이어서인지, 처음에 나오는 것들은 어렵지도 않았고, 툭 튀어나오는 식과 풀이를 눈으로 보면서 '음, 이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고등학교 때도 전혀 풀지 않고 새것으로 남겨두었던 수학의 정석을 이제 나도 사서 풀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지. 그러니 조금 더 넘겨보니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책의 마지막에 가면, 중학교 3학년 정도가 풀 수 있는 문제이니 한 번 풀어보자고 문제를 내줬는데, 나는 이 책 한 권을 충실히 잘 따라 읽어왔지만 그 문제들 앞에서 또 뇌가 꼬여버리기 시작했다. 나는..수학 돌머리인가?



나는 수학을 못하지만, 내가 수학을 못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태어날 때부터 수학을 못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몸의 근육을 키워나가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처음 계단을 오르지 않고 저 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서서히 기초부터 다져야한다고 하는 거다. 나는 그것을 꽤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니까 국민학교때의 수학이란(산수지만) 내가 특별히 못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사실 뭐 국민학교야 내가 못하는 게 없었지. 심지어 이어달리기 선수도 했다니까? 가슴이 커지는 바람에 달리기 망해버렸지...중학교에 가서도 내가 특별히 고민하는 과목이 수학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때문에 속썩었지만, 그러나 영어... 팝송 들으면서 듣기평가까지 완전정복하는 영어 똑똑이가 되었었지.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남들이 다 수학 고등학교때 포기한다는데, 나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수학이 어렵지가 않은 거다.


'남들 다 이 때 포기한다는데, 훗, 나는 괜찮네?'


이렇게 자만심 뿜뿜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월요일이면 주요과목의 시험을 쳤었는데, 수학 시험을 보는 날, 문제는 다섯 개였고 풀이과정까지 다 써서 제출해야 했었다. 이 때 학급의 많은 아이들이 다 틀리거나 하나 맞았고, 두 개 맞힌 아이들이 많았고, 전교에 다 맞힌 애는 한명인가 둘이었고, 그리고 우리 반에 세 개 맞힌 애가 두 명인가 세 명이었는데..반장을 포함애서 내가 그 세 개 맞힌 아이들중 한 명이었다. 훗. 고등학교 올라와도 나는 수학 잘해..같은 마음같은 게 내 고딩1년 시절에 있었단 말이야? 그러나 왜때문에..도대체 언제, 무엇이 계기가 된건지 모르겠지만...1학년 2학기때는 재시험 보는 부류에 내가 속해있었다...재시험도 간신히 커트라인 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안 순간....수학을 놓아버렸어.



잘가..



그 뒤로 수학은 내게 없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수학 과목 들은 날은, 어차피 수학을 포기할것이니 다른 과목을 공부할 시간이 늘어나는, 내가 바로 그런 아이었어.. 수학 너무 멀었지...

이런 나와는 다르게 내 여동생은 생물을 전공했고 수학을 부전공했다. 두 과목 모두에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아이들에게 생물을 혹은 수학을 가르친다. 여동생이 대학생이던 시절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자기 친구랑 통화하며 이거 어떻게 풀었냐고 열심히 얘기하는데, 나는 이 아이는 지금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습장에 빽빽한 기호와 숫자들..심지어 교재도 원서였어...



얘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어쨌든 나는 수학을 못하지만 미워하지 않는다는 거다. 수학을 못하지만 싫어하지 않아. 그러므로 나는 수학과 화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아직 수학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있는가보다. 그러나, 내가 더 노력하면 돼. 어떻게? 구몬수학..신청할까? 하다가 서랍 가득 처박힌 밀린 구몬영어 생각나서 때려치기로 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중3이 풀수 있는 문제를 냄으로써, 성인이라면 이 정도는 차근차근 풀 수 있을 것이다..를 생각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 책을 집어들은 사람이라면 수학에 관심이 잇을 것이고 이 정도의 문제는 풀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나는 그 문제들을 보고나니 서점에 가고 싶어졌다. 서점에 가서, 초등학생용 문제집을 사야겠다. 덧셈 뺄셈부터 시작해서 기초를 단단히 해놔야지, 이렇게 중3 문제 봤다가는 다시 수학에게 우리는 아닌 것 같아 하고 뒤돌아 설 것 같아.



저자는 수학을 취미 삼아 하고 있다. 가벼운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든 수학문제 푸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야.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느 무료한 날은 책상 앞으로 가 차분한 마음으로 수학문제를 풀고 싶다. 이 때 풀어내야 스트레스가 풀리지 이 문제가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냐...하면 스트레스를 더 받겠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야겠다.



저자는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이라고 했지만, 나는 수학이 가진 아름다움은 소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수시로 내가 주변인들에게 '클래식은 수학의 영역인 것 같다'고 말해왔는데, 저자 역시 이 책에서 몇 번이나 음악과 수학의 연관됨을 얘기한다. 에피톤의 발라드는 시적 감수성이지만 바흐의 클래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학의 영역이야. 이 정도를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게도 발현되지 못한, 저 깊이 숨겨져 아직 제 빛을 보지 못한 수학적 능력 혹은 수학적 뇌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문제풀이를 못하고 식도 외우지 못해 수학 점수가 형편 없었던 사람이지만, 그러나 수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수학 문제를 이해는 못하지만 수학은 이해한달까. 그래서 수학이 아름답다 생각한다. 소설과는 다른 부분으로.



이 책은 수학에 다가갈 수 있는 의욕을 충분히 톡톡 건드려준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고 수학의 정석을 샀다는데, 나는 정석까지는 아니고 문제집은 하나 사고 싶어졌다. 그리고 저자가 그랬듯이 수학을 취미 삼아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다니며 문제 풀기를 할 순 없겠지만, 책상 한 구석에 문제집을 놓아두고 싶다. 수학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은 삶을 단단히 꾸려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게으르고 정리 안되는 삶을 살다가, 그런 자신을 다잡기 위해 수학 문제 풀기에 집중했던 일. 그리고 근육을 키우듯 수학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느 한 부분 틀림이 없다.



저자는 사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취미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된다. 나는 취미가 다양하진 않고, 이렇게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반짝 그 때뿐이지만, 지금 삶이 무료하고 지겨운 사람에게는 취미를 가지라고 나 역시 권하고 싶다. 수학이 취미가 된다면, 적어도 내게는 너무 멋진 일이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취미를 가져라, 직장이나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어낼 다른 것을 가지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주된 것이 아니라 보조적인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하곤 했다. 이것이 아닌 저것도 꼭 필요해! 그것이 수학이 되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서핑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요가를 하고 요리를 하고 책을 읽고 모두 다 좋지만, 거기에 수학문제 풀이가 더할 수 있다니, 내가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나에게 수학은 아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그래도 싫어하지 않으니 가까이 가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봐야겠다.



수학, 난 너를 싫어하지 않아.










음악은 미술보다 수학과 더 친해서, 음악을 잘하려면 먼저 수학을 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학창 시절에 화성음 같은 음계 때문에 고생한 경험을 떠올려 본다면 음악과 수학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소리는 진동들의 배열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손뼉 치며 박자를 맞추는 행위는 매우 수학적인 것이다.(p.43)

수학을 단순히 숫자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때문에 암산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수학의 천재라고 치켜세우기부터 한다. 그러나 역사 속의 수학 천재들 가운데 암산 실력이 계산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뛰어났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암산에 능한 것은 기계적인 기능이지, 수학적 깊이와는 무관하다. 암산과 암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똑똑해 보이지만, 진실로 수학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p.44-45)

그 어느 것도 파스칼의 수학에 대한 열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하지 못하게 하는 수학을 어린애가 만화책 보듯이 숨어서 공부했으며, 놀라운 기하학적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까 어린아이 혼자 종이접기를 통해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파스칼의 이러한 재능을 보고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읽게 했고, 이로써 파스칼은 수학과 기하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파스칼은 천재성을 인정받아 14세 때 프랑스 수학자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16세 때 <원뿔곡선시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햇는데, 아무도 파스칼이 그 논문을 썼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썼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이 논문은 어린 소년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p.165)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수학자한테서도 생활의 작은 것들을 본받을 수 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아마추어 수학자로서 철학과 문학에도 깊은 조예를 드러내 귀감이 되었다. 1946년의 초보적인 디지털 컴퓨터와 관련된 튜링(Alan M.Turing, 1912-1954)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1949~ )처럼 달리기 마니아였다. 하루키나 튜링이나 뛰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정신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육체의 움직임이 많은 도움을 줄 듯하다. (p.184)

누구나 마음속에 살리에르를 감추고 있다. 재능 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 그 사람의 재능을 훔치고 싶은 욕망, 역사와 영화, 혹은 소설속에서 우리는 그런 인물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 인물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존재하며 어떤 순간 갑자기 날을 퍼렇게 세우기도 한다. (p.195)

달랑베르는 줄리 드레스피나스라는 여인과 동거를 하게 된다. 달랑베르에게 만족하지 못한 줄리는 모라 후작, 기베르 백작 등과 연애를 했으며 끝내는 달랑베르에게 돌아와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달랑베르는 사랑하는 여인 줄리를 위해 <마드모아젤 드레스피나스의 영혼에게>라는 글을 쓴다. (p.200)

‘그래, 수학을 취미 삼자. 수학은 내 마음속의 지도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발을 옮겨 길을 더듬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p.213)

클래식은 공부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장르이다. 잔잔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서 사람의 목소리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일도 없어 공부할 때 좋은 배경음악이 되어 준다. (p.238)

수학은 몸의 근육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근육을 발달시키고,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고, 실제로 멋진 근육을 갖게 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극복하고, 남들이 귀찮아 하는 일에 과감하게 매일을 투자한 사람들이다.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만이 멋진 근육을 갖게 된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집중해서 공부한다면 멋진 수학 실력을 갖출 수 있다. 시험 때만 되면 공부하는 벼락치기 방식에서 벗어나 매일의 주어진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부담도 없고, 시간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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