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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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브리얼 제빈'은 젊은 시절 '모니카 르윈스키' 를 '젊고 야망있고 이기적인 여자'로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나니, 르윈스키가 아닌, 그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집중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것이 이 책, [비바, 제인]을 쓰게된 동기이자 이유였다.


' 르윈스키가 내 딸이라면.. ' (기사링크)



스무살 '아비바'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 정치인의 선거캠프에 들어가게 되는데, 잘생기고 젠틀한 유명 정치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니, 그것이 '사랑에 빠진 건 아니'라는 건, 사실 아비바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엄마에게 말할 때 그것은 반드시 '사랑이어야만' 했다. 아버지뻘의 나이에 유부남인 정치인이 스무살 인턴과 섹스를 하는데, 하아- 그 섹스에는 한 번도 성기 삽입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비바와 정치인의 이 관계는 정치인의 쾌락을 위한 것이었다.


이 일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그녀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자신의 어리석은 과거에 있었던 일' 쯤으로 여길 수 있었겠지만, 그러나 이 일은 스캔들이 되어 세상에 터지고 만다. 이 일이 바깥으로 터지기 직전, 정치인이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알고' 그녀를 '이용'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살 그녀에게,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비바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닐 낙인이 찍힌다. 다른 곳에 취직을 할 수도 없고 학교에 갈 수도 없다. 덩달아 아비바의 엄마 까지도 교장으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다. 아비바, 그 이름만 구글에 넣으면 그녀가 어떤 여자였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어떻게 살 수 잇었을까. 고작 이십대 초반인데, 앞으로 먹고 사는 일을 대체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왜 남자 정치인과 여자 비서와의 스캔들에서 낙인은 여자 비서에게만 찍힐까. 왜 섹스동영상은 여자에겐 협박이 되고 남자에겐 무기가 될까? 왜 둘이었는데 한 쪽에게는 앞으로의 삶을 끝장내고 한 쪽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까? 이미 끝장나버린 것 같은 이 삶을, 아비바는 어떻게 견뎌나가야 할까? 먼 데로 가서 이름을 바꾸고 살아도 어떻게든 누군가는 알아낼텐데. 남은 삶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채 길기만 한 건 아닐까. 




그러나 아비바는 '살아간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하기'

아비바가 내게 알려주었다.



당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했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그녀가 말했다. (p.395)




그리고 아비바 곁에는 그것이 아비바 잘못이 아님을 아는, 아비바의 싸움을 응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엠베스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따랐다. 끊어야 했지만, 커피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녀가 보기에, 살아가는 것은 나쁜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다. 죽어가는 것은 그것들을 없애는 과정이다. 죽음은 습관이 없는 땅이었다. 커피도 없고.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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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0-0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가가 처음인데 링크해 주신곳에서 사진 보고 놀랐어요. 한국계 작가군요.
영어는 할 줄 아니?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을 작가의 어린시절도 생각해보고요.
한국에서는 항상 현재 진행중인 섹스동영상 사건도 생각났어요.
잘못했던 남자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낙인 찍인 여자들은 설 곳이 없는 이 비정상을,
아비바는 이겨내네요. 멋지네요, 진심이요....

다락방 2018-10-10 07:59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작가의 책이 세 번째거든요. 그런데 이 작가가 한국계라는 것은 저도 이번에 이 기사 읽고 처음 알았어요. 먼저 읽었던 작가의 책, [섬에 있는 서점]도 따뜻하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읽다보니 작가가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작가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르윈스키를 이기적인 여자로 생각했다가 이제는 그것이 권력관계에서 시작된거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지점,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냈다는 것도 그렇고요.

아비바처럼 잘 이겨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어린 딸이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에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정말이지 더 단단해졌음 좋겠어요.
 
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노부타 사요코 외 지음, 정선철 옮김 / 이매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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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에노 치즈코'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다른 책을 좀 더 읽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만으로는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작가여서. 이 책은 '우에노 치즈코'와 '노부타 사요코'의 대담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의 주장에 대해 나는 우에노 치즈코와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데 어느 지점인지 묘하게 불편한거다.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 같다는 생각과 지나치게 고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게 대담집이기 때문에 더 두드러진 건지도 모르겠다. 노부타 사요코는 화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후기를 보면 화내기는 커녕 우에노 치즈코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되어있다.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어떤 불편함이 아니라도 책 자체로 크게 만족스럽진 않다.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이 대담이 이루어진 2002년(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건 2008년)시대적 배경의 차이 때문일까, 너무 오래전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대담에서 나온 주장이나 실천들보다 더한 것이 지금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음, 좀 더 나가야지, 약해' 랄까.


가장 불편하게 했던 건, 이 책에서 이들이 대담 도중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윽. 데이트폭력 가정폭력등의 예시들이 나오는데 너무 끔찍한 거다. 그걸 읽는데 너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물론, 페미니즘 도서들에서 사례를 짚어낼 때는 불편한 사례들만이 나오는 것은 각오해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썩 만족스런 독서는 아니었는데, 엉뚱하게도 이들이 대화도중 요즘 내가 계속 생각했던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는 크게 공감했다.



우에노: 저는 "남자의 인간 성장의 이야기가 이 정도 밖에 (다게다 세이지의 '히말라야 신부'를 얘기하면서)안 되는가?" 라고 느끼면서, "도대체 네 히피 체험은 무엇이었는데, 너는 도대체 방랑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데"라고 묻고 싶어졌어요. 이런 수준의 인간 성장이 감동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자체가, 저는 정말 역겨워요.


노부타: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Peer Gynt](1867)도 그렇지 않나요? 저는 그 작품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줄거리가 싫어요. 곳곳을 떠돌던 페르귄트는 마지막에 자기를 계속 기다리다가 눈 멀게 된 아내가 혼자서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곳에 돌아와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라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걸 읽었을 때 "뭐야, 이런 어이 없는 이야기는"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자기 편의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나요? 아무리 엉망진창인 남자에게도 마지막에는 한 명의 여자가 따르고 있다니, 그런 이야기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남자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기보다 연약한 성이 밑에 있고, 그 위에 자기가 위치한다"는 인식이잖아요.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정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p.126-127)




나는 솔베이지가 페르귄트를 기다리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결국 페르귄트가 돌아올 곳으로 와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죽기 바로 직전의 껍데기만으로 찾아와 아무것도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솔베이지에게 준 것은 기다림 뿐이라는 게 너무나 속상하다. 그게 뭐야? 어디서 실컷 즐기고 와놓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와서 안겨? 올 거라면 빨리와야지, 빨리 와서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뭐라도 좀 더 함께 해야지. 빌어먹을..



가정 폭력에서 피해자인 아내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 그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둘 모두 좀 더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부족한 느낌이랄까. 읽으면서 제대로 가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어쩌면 이게 너무 과거에 쓰여진 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쯤은 그들도 이 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더 깊어졌을 지도 모를 일. 그런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에노 치즈코의 센 말은 또 속시원한 면도 있다. 이 대담 속에서 남자 작가 한심하다고 까는 것도 너무 좋고 ㅎㅎㅎ 남자 니네 뭐 이따위야, 라고 하는 것도 좋다. 뭐랄까, 눈치보지 않고 가차없이 까버린달까. 우에노 치즈코에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지 않을까, 나를 어떻게 볼까' 같은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한심한 남자 작가를 깔 때는 이런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아유, 한심해, 별 볼 일 없어요, 라고 그냥 확 까놓고 말하는 것. 딱히 우에노 치즈코의 팬이 될 순 없을 것 같지만, 그런 점은 응원한다.





우에노: 제가 ‘그루밍 산업(치유해주고 어루 만져주는 산업)‘이라 말하는 것은 섹스라는 회로가 필요없는, 완전히 자기애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에는 한 가지 난관이 있어요. 나르시스의 역설입니다만, 이 자기애라는 것은 타인의 승인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누구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나‘를 돈을 지불함으로써 ‘관심을 살 수 있는 나‘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그루밍 산업이죠. ( p.17)

우에노: 정신분석학적인 페미니스트 제인 겔롭Jane Gallop의 [딸의 유혹 The Daughter‘s Seduction](1986)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유혹자인 딸‘ 이라는 개념은 정신분석의 핵심어 중 하나죠. 이것은 프로이트 식의 도착, 다시말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입니다만, 여성의 육체에 가치가 있다고 판정하는 것은 남자의 시선이어서 그 가치를 가르는 권한은 남자의 수중에 있지 여자에게는 없다는 것. 더구나 여자는 그것을 조정할 수 없습니다. 여자의 값어치는 전적으로 남자의 평가에 의존한다. 그런데도 남자는 자신을 유혹하는 원인이 여자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죠.
책임 전가라는 면에서는, 가정폭력의 가해자도 마찬가지죠. "그 여자가 꼭 나한테 폭력을 휘두르게 만든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p.82-83)

우에노: 이토 세이(1905-1969)가 "남자에게 있어 가족은 자아의 일부와 같아, 아내를 때릴 때에는 자기도 아픈 법이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당시 이토는 문단의 대원로였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에도 준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국 남자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했어요.
이걸 보면 아내를 때린다는 것이, 남자의 자의식 속에서는 자해 행위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실제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의 남편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너를 때릴 때, 나는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고. 그렇지만 "맞아서 아픈 것은 네가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네요. (p.124)

노부타: "이 여자는 내 것, 튼튼한 애기를 낳아줄 것 같다"고 생각해 결혼을 결정하는 남자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 절감하고 있는 게 "어쩌면 남자는 여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거예요.
우에노: 최근에요? 그럼 지금까지는 여자가 남자에게 ‘인간‘ 취급을 받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나요? (p.143)

노부타: "여자의 경우에도 남자를 때리지 않는가" 하는 말은 정말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습니다. 그렇다면 남자의 신체에 상처가 남는다고 똑같은 폭력이 되는 걸까요? 아니죠.
여자가 남자를 때린다고 해도, 남자에게는 아무런 공포심이 없어요. "애완동물이 물었다, 애완동물이 장난치고 있다", "어이, 시건방지게, 나한테 대들 생각이야" 같은 느낌입니다. 거기에는 공포도 경악도 없어요. 남자와 여자가 대칭이 아닌 거예요.
우에노: 남자가 정말 무섭게 느끼는 공포는, ‘여자가 달아나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그렇지 않다고 자기 주장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거죠.
노부타: 맞아요. 자기의 지배력이 위협받는 거니까요. 그래서 남자는 무서워 벌벌 떨면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죠. 남자는 무엇을 무서워하는가? 여자가 도망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상당히 나중 단계입니다. (밑에 계속)

노부타: 대체로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면, 남편 이상의 달변가들이에요. 그래서 남편의 논리에서 약한 곳을 파고들거나, 부족한 곳을 지적함으로써 폭력을 부르는 거죠. 그것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권력이란 상황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이라는 표현을 빌린다면, 상황의 정의자로서 남자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두려움 아닐까요?
우에노: 공감합니다. 취약한 남성성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거죠.
노부타: 취약한 남성성의 정체성이라기보다는, "내가 법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자는, 일단 여자가 "그래요, 당신 말이 옳아요"라고 대답해주기 바랐지만, "그런데도 이상해요",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같은 말을 하는 순간에 욱하고 성질이 나는 것이 아닐까요? 아.... 역시 취약한 남성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거네요.
우에노: 결국은 자기의 지배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죠.
노부타: 성질 나쁜 남자들은 그것을 지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무조건 자기가 옳다는 거죠.(p.165)

우에노: 대들지 않는 자는 때리지만, 대드는 자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아이를 때리던 남자들도, 사춘기가 된 아들은 때리지 않게 되잖아요.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 가정 안에서 힘의 균형이 변하게 되는 거죠. "때릴 때 반격해 오는 놈은 때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말 알기 쉬운, ‘비열한 놈들‘입니다. 저항하지 않는 놈만 골라 때리고 있으니까요. (p.177)

우에노: 가정폭력은 단순하게 육체를 구타하는 게 아닙니다. 폭력은 위협이죠. "폭력으로 가장 상처받는 것은 인격." 육체보다 인격입니다.
노부타: 저도 그렇게 말해요. "폭력을 겪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그러면 그 여자는 울어요. 하지만 울면서도 또다시 남편에게 돌아가요, 무엇 때문인지. (p.188)

우에노: 일본에는 여자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통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늙어서 사랑받지 못하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건가요? 저는 딱 질색입니다. 요즘 고령자 대상 강연회에서 큰 박수를 받는 말이 있어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귀엽지 않던 내가 갑자기 귀여워질 리가 없잖아요."
노부타: 저도 꼭 박수쳤을 거 같네요.
우에노: "갑자기 귀여워질 수는 없어요. 앞으로 귀엽든지 귀엽지 않든지 관계없이, 노인은 제대로 부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큰 박수를 받아요.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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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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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극기훈련을 간 적이 있었다. 정확히 그것을 어떤 용어로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교관이란 사람은 모든 학생들을 세워두고 여러가지 훈련을 시켰다. 누웠다 일어나기도 있었고 팔벌려 뛰기도 있었다. 너무 힘들면 줄에서 빠져 뒤로 나가 서있으라 했는데, 속속 힘들어 뒤로 나가는 아이들이 생겼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이제 끝이라고 할 때까지 교관이 시키는대로 했다. 나 역시 어떻게든 버텨내는 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고. 다음날엔 근육통에 시달렸었다. 체육시간도 자습하느라 많이 써버렸었는데 이런 갑작스런 몸의 움직은 우리들에게 근육통을 당연히 가져올 터였다.


이게 어떤 특별한 기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가끔 생각난다. 극기훈련 초반, 교관이 술 가진 애들 다 내놓으라며 했던 말들보다도, 캠프파이어의 모닥불과 울던 아이들보다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억지로 기억해야만 기억나는데, 교관이 시키는대로 다 따라하고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렸던 그 시간들은, 이상하게도 뜬금없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이 소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다 읽고, 뒤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또 이 일이 생각났다.



나는 한때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 일렬로 신발주머니의 줄을 맞추고, 친구들이 일사병으로 하나둘 쓰러져나가도 부동자세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던 아이, 수련회에 가서 유사 군사훈련을 받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여자로서 순결을 지키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다나까'로 말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던 아이.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개인행동이었다. 그 반듯한 줄을 탈출해서 멀리로 달려나가고 싶었다. 운동장에 줄을 선 신발주머니들로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로부터, 야, 너, 51번, 차렷, 열중쉬엇, 앞으로나란히, 앉아, 일어서, 앞으로 나와, 싸가지 없는 년, 너희 부모가 돈이 없어서 이런 동네에 살지, 뭐, 너 같은 게 뭐가 되겠어? 지껄이는 입들과 너무 가벼운 손찌검들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로 가고 싶었다.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작가의 말, p.323-324)




고등학교 시절,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조회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한 학생이 옆자리 학생과 수다를 떨었다. 그 때 덩치가 큰 미술선생님이 달려와서, 그 전교생이 있는 데에서, 그 아이의 머리를 확 때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워낙 폭력적이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고, 그 학생이 맞는 걸 내가 직접 겪으면서 '꼼짝하지 말아야지, 얘기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해야지' 나는 그런 생각만 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은영의 단편들을 차례로 읽어가노라면, 최은영이 과거의 자신, 의도야 어떻든 무해하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 그대로 내것이 된다. 나는 특별히 못된 아이는 아니었지만, 못되게 굴지 말자고 생각하는 편에 가까운 아이었지만, 최은영의 말처럼,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어른이 되어서, 이만큼의 나이를 먹어서 후회하는 일들이 많다. 선생님이 그렇게 학생을 과격하게 때리는 걸 보았을 때,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요즘 십대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당한 성추행에 대해 얘기할 때는, 내가 고스란히 당했던 그 시절에 그걸 공론화 하지 못해서, 그러면 안되는거라고 말하지 못해서, 그래서 지금 학생들도 그대로 피해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몇십년간 피해자들이 줄줄이 생겨, '살면서 성추행 한 번 안당해본 여자가 어딨냐'는 말이 기정사실이 되게 만들었으니, 나는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었을까? 나쁜 걸 유지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가.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해도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무심하게 상처 입혔을까.


그래서 이 소설속 최은영의 반성이 나의 반성이 된다. 나는 같이 반성했고 그렇게 매만져주는 최은영의 손길을 한껏 받았다. 그 손길을 따뜻했고, 결국 내 어딘가를 건드리고야 말아,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울고 말았다.



특히 <지나가는 밤> 이 좋았다.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자매가 그러나 소원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가장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도 그립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러는 사이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상처입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어린시절 제게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것을 두고 두고 생각하는 언니의 마음 같은 것,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던 동생의 마음 같은 것들이, 깊은 밤 내게 찾아들어 나는 그냥 훌쩍훌쩍 거렸다.



<아치디에서> 는 브라질 청년의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라, 처음에는 '대체 왜 이런 화자를 만들어낸걸까' 좀 갸웃했었다. 그러나 그가 아일랜드에서 한국인 '하민'을 만났고, 서로의 과거에 대해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등장인물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겠구나 했다. 한국에서, 그야말로 '착취당하는 딸과 직장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녀의 '희생'이 당연시 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어린 여동생만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해주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데에서, 또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비로소 브라질 청년도 자신의 입장과, 자신 때문에 억압받았을 누나에 대해 떠올린다.



<601,602>는 최은영식 '82년생 김지영' 정도로 봐도 되겠다. 여성의 삶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식으로 가야만 했던 것처럼, 어린 딸로서 핍박 받으며 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에 주변 어른들이 반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어른이 되어 결국 <아치디에서>의 '하민'의 삶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최은영은 이 단편들을 통해 그리고 이 단편들을 엮은 이 단편집을 통해 해야할 이야기들을 했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고, 어쩌면 자신이 무해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는 반성을 했고, 그렇게 독자의 마음을 매만져주었다. '매만지다' 라는 단어는 최은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이 들만큼, 이 소설은 가만가만 스며든다.



이 책을 사두고도 오래 머뭇거렸다. 《쇼코의 미소》는 좋았는데, 그녀의 두번째 단편집이 그보다 좋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것이 내게 있었다. 그러나 웬걸, 읽으면서는, 아아, 역시 최은영이구나 했다. 그래, 이런 이야기여야 해, 라고도 생각했다. 아직 국내작가중 가장 좋은 작가가 누구인지 물어오는 질문에는 최은영을 답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에 나올 최은영과 그 다음에 나올 최은영도 계속계속 읽고싶다.



좋은 독서였고, <지나가는 밤> 은, 다른 사람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가져본 핸드폰도 여자가 준 선물이었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라면서 준 그 선물을 들킬까봐 혜인은 핸드폰을 언제나 무음으로 설정해 가방에 넣어놓았다가 베개 밑에 두고 잤다. 여자는 혜인에게 "뭐하고 있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여러 기호들로 만든 토끼, 수박, 별, 가아지 같은 그림을 보내기도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음성 메시지를 남겨서 자기가 겪었던 웃긴 이야기들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혜인에게 위안을 줬다.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 (손길, p.226)

그때의 여자의 나이가 되어 혜인은 생각한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에게 삶의 무거움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그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고. (손길, p.231)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소설(‘아치디에서‘)은 사랑은 다만 상대 앞에서 자신의 가장 약하고 수치스러운 감wjd을 노출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그 곁에 침묵하며 함께 서 있는 것, 대신해 우는 것, 조금씩 속도를 늦춰 걷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해설,강지희,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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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쇼코의 미소>보다 <내게 무해한...>이 더 나은 듯합니다

다락방 2018-10-01 11: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 ‘으음, 쇼코의 미소보다 이게 더 좋은가?‘ 했더랍니다. 후훗.

카알벨루치 2018-10-01 11:44   좋아요 0 | URL
제가 <내게 무해한 사랑>을 먼저 보고 <쇼코의 미소>를 봤는데 조금 degrade되는 느낌 ㅋ 그래도 최은영 좋아요~한주 힘차게 생활하세요!
 
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본격 게이 로맨스'라는 이름을 붙여 따로 하나 장르를 주어야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식으로 매 단편마다 '나는 게이야'를 드러내는 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계속해서 '나는 게이야' 라고 드러내며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외치는 소설에 대해서 이 작가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고, 그렇게 이 단편집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실린 단편을 순서대로 읽었는데 첫 단편을 읽고서는 오 신선하다, 그리고 문장이 아름답다! 하고 감탄했다. 이어지는 두 변째 단편 까지도 으음, 하면서 읽었더랬다 그러나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작가는 매 주인공마다 자신을 이입해서 쓴 것 같았는데, 그러니까 그냥 한 명의 연애와 섹스가 반복되는 것으로만 읽힌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당연히 사랑과 연애 섹스가 주를 이루겠지만, 책 한 권 내내 저 남자 좋아, 사랑해, 섹스해...만 나오니까, 어느 순간 질려버린달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자리에서 한 권을 내리 읽는 게 아니라, 한 편씩 시간 날 때마다 끊어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한 권을 다 끝내야 다음 권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중간 이후부터 매우 힘겨운 독서였다...


다만 작가가 여느 남자 작가들과는 다르게 꽤 디테일하고 감성적이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마지막 단편에서 자신이 글쓰기와 사랑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정말 글쓰기를, 그리고 사랑을 인생의 주요 목표로 삼는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에는 굉장히 섬세하다. 그런 디테일까지 잘 기억하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지... 하하하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건데,

나는 소설을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 감상에 있어서는 꽤 혹독하고 가차없는 사람이구나... 싶다......



내 인생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면 그 총량의 구십 퍼센트를 나는 영우에게 써버렸다. (p.66)

"형, 사실은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영우의 눈을 마주보다 곧바로 대답할 수 없어 물 아래로 한 차례 깊이 들어갔다 나왔다.
"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물론이에요. 저는 그러고 싶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믿어요."
"누구 맘대로?"
섹스는 하기 싫고, 고매한 너의 취향에 맞춰줄 말 상대는 필요하고, 앞으로 네 입장에서 잘될 위험은 없는 남자를 찾고 있었던거니?
"넌 날 좋아하지 않앗어. 그건 잘못이 아니야."
"맞아요. 인정할게요."
"근데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에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영우는 천천히 팔을 저으며, 동시에 조금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 표정까지 짓는 걸까. 그 표정까지 가지려는 걸까.
"난 친구가 많아. 많지는 않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있어." (p.87-88)

그가 없는 내 삶에 대해, 그가 없는 채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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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9-3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syo님 페이퍼 봤을 때 인용부분 읽고는 뭐랄까, 이전에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글이라서 그런지 간지러우면서도 신선하고 그랬거든요.
다락방님이 인용해주신 부분도 그런 것 같아요.
평범하고 쉬운 문장인데 목에 탁 걸린다고 할까요. 독특한 느낌이 있네요.
읽게 되면 다락방님 안내에 따라서.... 한 편씩 한 편씩^^

다락방 2018-09-30 19:47   좋아요 0 | URL
한 권을 내리 읽어내기엔 제겐 무리가 있는 책이었어요. 그래도 기존 문학과는 좀 다른 문학이라 아마 이 책을 계기로 이런 책이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뭣보다 나는 게이야,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고 말하는 남자 작가의 글을 읽는 그런대로 또 시원한 맛이 있었어요. 감춰야 하고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드러내는 책이라서 말이지요.

네 한 편씩 천천히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흐흣

책읽는나무 2018-09-3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런 내용이군요??
인스타에서 작가가 소설을 냈다는 광고를 보았어요.동료작가들이 축하해 주면서 홍보를 하긴 하던데~저는 그냥 그러려니~했어요.
음......기회를 봐서 읽어봐야 겠군요.
한 편씩....나눠서!!!^^
요즘 단편집들은 그렇게 읽어 내는게 더 낫더라구요.끈기가 부족해서ㅋㅋ

다락방 2018-10-01 09:01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전혀 다른 결이긴 하지만 저는 어제 잠자기 전에 읽고 오늘 출근할 때 읽은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쪽이 훨씬 훨씬 좋네요.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지만 역시 최은영이구나..생각하며 울면서 읽었어요 ㅠㅠ

최은영을 추천합니다!

공쟝쟝 2018-09-3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는 부분에서 저도 묘한 이질감을 느꼈어요. 게이여서가 아니라...(페미니즘의 여파인가) 한국 남자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그냥 순수하게 막 너무 좋아하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나 봅니다 ㅠㅠ
전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 좀 생각했어요.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잠수를 타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ㅎㅎㅎ

다락방 2018-10-01 09:06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나 잘 알겠어요! 저도 발기한 성기 느끼면서 남자 너무 좋아 이럴 때 음.. 뭐랄까 딱히 공감할 수 없더라고요. 하하하하하. 저도 예전에..남자 너무 좋았고, 난 진짜 남자 너무 좋아! 이랬던 사람인데, 이제 정말 너무 멀리 와버렸나봅니다. 저는 이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남자가 너무 좋아!‘라고 한다니, 어쩌면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것일 수도 있겠구요.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처음, 레즈비언의 관계에서 생각했었거든요. 레즈비언이라면 둘이 함께 살아도 뭐랄까, 가사노동이나 육아에 대해서 상대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게 이성애랑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다면 이성애보다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는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상대보다 ‘더‘ 사랑하고, 그 사람은 약자가 되고... 갈등을 일으키고 불만을 갖고 헤어지고 그러는 것은, 으레 사람이라 모두 그렇구나 하게 됐어요.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 위대한 작가들은 어떻게 삶의 혼돈을 정리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붙잡았을까?
바바라 애버크롬비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는 회고록이나 에세이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어떤 마음 가짐이 필요한지 잘 나와있다. 한 페이지당 하나의 조언들이 적혀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글쓰기에 비유할 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 '바바라 애버크롬비'는 글쓰기에 그야말로 숙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겠다. 게다가 각각의 조언(혹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에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글쓰기를 생각했는지도 덧붙여두어, 이 사람은 스스로가 글을 잘 쓰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많이 읽고 들었구나 싶어 존경심마저 든다. 확실히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책은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왜 굳이 글쓰기에 매춘을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매춘(혹은 포주)에 글쓰기를 비유해 설명하는 게 내 기억으로 한 네 번정도 나오는데, 처음 나올 때도 불편했는데 또 나와서 이건 뭐지 싶었다. 그러지 마세요, 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달까. 왜그럴까? 나는 매춘이 유머 소재로도 쓰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글쓰기 책에 비유로 데리고 와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매춘을 글쓰기에 비유하면서 자신들이 세상 힙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고, 다 읽고 책장을 덮고나니 그 많은 유용한 조언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찜찜함만이 남는다. 이런 것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내 찜찜함을 가지고 있다.



'출판'은 "세상에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온라인으로 출판해 영원히 사이버 공간에만 가둬둘 수도 있고, 자신의 프린터로 출판해 친구들에게 한 부씩 건넬 수도 있으며, 출판사나 잡지사와 계약하여 그쪽에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있다. 주문하면 출판해주는 회사를 통해 자가 출판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돈을 내면 책을 만들어준다.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든 자신이 쓴 글을 사람들이 읽게 하고 싶다면 자신의 마케팅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마케팅 매춘부(또는 포주)'가 되라는 얘기다. (p.345)



위의 인용문에서 굳이 마케팅 매춘부가 되라는 얘기를 덧붙이지 않아도, 그 문장을 들어내도 무슨 말인지 완전 잘 알겠고 고개 끄덕여지는 말인데, 왜 굳이 마케팅 매춘부가 되라는 거지? 이 페이지에 작가가 가져온 다른 작가의 인용문은 이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매춘과 같다. 처음에는 사랑을 위해 하다가 그다음에는 몇몇 가까운 친구들을 위해 하고, 그다음에는 돈을 위해 한다. - 몰리에르 (p.345 재인용)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몰리에르는 매춘이 뭔지 모르나? 매춘을 사랑을 위해 하다가 친구들을 위해 하나? 도대체 왜 글을 쓰는 걸 매춘과 같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글쓰기가 신성한 영역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게 무엇이든, 지금처럼 글쓰기이든 운동이든 음주든 여행이든 그게 뭐든, 그것을 매춘에 비유할 필요가 전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마케팅 매춘부라니...어처구니가 없다 진짜.





매일매일 글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 글을 쓸 때에는 항상 위험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당신의 세계관을 부정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 화가 나서 인연을 끊을 수도 있으며, 당신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따른다. 픽션의 장막과 가면으로 가린다고 해도 자신의 진실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방감이 들 것이다. 머릿속이나 가슴속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이야기를 글로 써내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당신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p.0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는 성공한 미스터리 소설가가 있다. 그녀는 글쓰기와 자기 단련에 대해 더 이상 배울 게 없는데도 글쓰기 연습, 즉 훈련을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수업에 출석한다. 그녀는 이 수업을 자신의 집필 ‘운동‘을 위한 ‘체육관‘이라고 부른다.
배우들이나 음악가들, 무용수드로 모두 훈련을 한다. 작가라고 훈련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p.10)

나는 사생활에 대해 아주 편안하다. 사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않기 때문이다. ... 록 그룹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작사가인 존 페리 발로는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생활을 완전히 노출해서 숨길 게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레너드 클레인록 (p.20, 재인용)

나는 멘토들의 선례를 통해,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배우고 있다. -제이 파리니 (p.42, 재인용)

나의 어린 시절 기억 가운데 가장 창피한 것은 1학년 토론수업 시간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다가 그 거짓말이 학교 저네로 퍼져나간 일이다. (나는 유명한 영화배우들과 형제지간이라고 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뒷받침하려고 줄줄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배웠다. 거짓말로 이뤄진 구조물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소설을 쓰는 일과도 비슷하다. (p.55)

줄리언 반스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주 7일을 글을 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말은 작업하기 좋은 시간이다. 사람들이 내가 놀러간 줄 알고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모두 나가서 노느라 아무도 전화하지 않는다.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아ㅣㅁ에 일을 한다. 일종의 의식이다." (p.61)

가슴 속에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그런 의문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해라. 그것은 잠가놓은 방과도 같다. 외국어로 쓰인 책과도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p.84, 재인용)

소설을 쓰고 있다면 이름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전화번호부를 펼쳐 이름 몇 개를 추려낸 다음, 소설 속 인물들에게 옷을 입혀보듯 하나씩 붙여보면 된다. 앤 라모트는 소설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할 만한 남자들이 있다면 소설에서 그 인물의 성기가 아주 작다고 묘사하면 된다고 말한다. (p.91)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재능, 인내, 엄청난 노력은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베일즈와 테드 올랜드의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중에서 (p,92, 재인용)

무엇이 됐든 그것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절대 그 길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 꾸준히 그 길을 걸어 반드시 가야 할 곳에 당도해라. (p.139)

대개는 책을 읽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겠다는 충동을 자극하는 것은 대개 독서이다. 독서, 독서에 대한 사라이 바로 작가의 꿈을 키워주는 것이다. -수전 손택 (p,186, 재인용)

캐롤라인 냅의 회고록은 술을 끊고 양친 부모를 잃고 개르르 사랑하게 된 후 자신의 세계를 재정의하게 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책의 마지막 문단은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공허함을 주는 것은 무엇이며 충만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연결된 느낌이나 위로받는 느낌 혹은 기쁨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 친구는 얼마만큼 필요하며 고독은 얼마만큼 필요한가? 무엇이 옳다고 느껴지고 무엇이 충분하다고 느껴지는가?" 냅의 개 루실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주지 못하지만, 냅은 루실이 자신을 그 답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들에게 질문은 언제나 출발점이 된다.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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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09-3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왜 하필 굳이 당췌 매춘인지 모르겠네요;; 원문이 궁금할 정도로...

다락방 2018-09-30 19:41   좋아요 0 | URL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돼요. 여기에서 매춘 얘기가 대체 왜 나오는지..

책읽는나무 2018-09-3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했었던 책이었는데......아쉽군요!!!

다락방 2018-10-04 07:37   좋아요 0 | URL
글쓰기에 유용한 점들을 많이 짚어주긴 하지만, 저에겐 거슬리는 부분이 너무 컸어요...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