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읽는 자본주의 - <유토피아>에서 <위대한 개츠비>까지
조준현 지음 / 다시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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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어떻게 정의하든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풍자한 인클로저 운동의 의의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토지에 묶여 있던 농민들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으로 나뉘었다는 데 있다.-22쪽

'좀바르트'는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에서 십자군전쟁이 유럽사회에 미친 영향을 남녀 관계의 변화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출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설명했다. 십자군전쟁은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윤리적인 태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랑'이었다.-48쪽

로크는 사유재산이 개인의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여기서 사유재산은 귀족이나 지주들이 상속으로 받은 재산이 아니라 신흥계급들이 스스로 축적한 재산을 가리키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로크의 견해를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르크스의 비판처럼 부르주아계급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 즉 자본은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노동을 지배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자기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라는 뜻이다.-74쪽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세계 10대 소설문학을 선정하면서 제일 윗자리에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꼽기도 했다. 반면에 문학사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제인 에어Jane Eyre, 1847』를 쓴 여류 작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1816~1855는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에는 열정이 빠져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작가나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영국 사회에서 젠트리의 삶에는 이미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84쪽

그런데 수공업자들이 상인들의 전횡에 맞서 권력을 쟁취하자마자 이번에는 수공업자들 내부에서 다시 갈등이 일어났다. 수공업자 조직의 가장 상위에 위치한 장인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 아래에 위치한 직인들을 억압했다. 당시에는 장인들만이 자신의 이름으로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장인들은 직인들이 독립해 장인이 될 자격을 갖추어도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직인들을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통제를 '길드 guild 규제'라고 하는데, 길드란 상인이나 장인들의 협종조합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논촌에서는 봉건영주들의 규제가, 도시에서는 상인과 장인들의 규제가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억압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 본질상 똑같은 봉건적 억압이었다.-100-102쪽

『국부론』에슨 너무도 유명한, 스미스 사상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다. 그런데 이 말처럼 스미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도 없지만, 이 말처럼 스미스를 오해받게 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사람들이 흔히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미스의 말을,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대개 가격을 가리킬 때가 많다)이 있어서 저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시장에 맡겨놓으면 최상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전혀 의도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는 일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국부론』어디에도 없다.-108-109쪽

세상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스미스는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자기 향상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개인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면 그 결과로 사회도 발전하고 국가의 부도 증진된다는 것이 『국부론』의 핵심적인 사상이다.-110쪽

요컨대 스미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스로 더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라. 네가 더 행복해지면 타인도 더 행복해질 것이고, 사회도 더 행복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모두를 더 행복해지도록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112-114쪽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을 동정심, 즉 '공감sympathy'의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사람이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동기에 반응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물질적 보상이나 이익이 없더라도 누구든 타인의 불행을 보면 슬퍼하고 타인의 행복을 보면 기뻐한다. 공감은 이익의 판단에 선행하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116쪽

지금도 대개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수요'라는 말을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사로 정의한다. 그러나 맬서스는 아무리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더라도, 실제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142쪽

지금이나 옛날이나 독일은 광업이 발달하고 탄광촌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는 난쟁이가 아니라 탄광에서 일하던 어린이들을 비유한 것이며, 백설공주와 왕자는 어린이들까지도 중노동을 시키며 착취했던 그 지역의 영주와 그 부인을 비유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168쪽

지금 우리는 이미 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보되고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게 느끼지 않는 분도 많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노예제는 분명 야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토록 야만스럽게 보이는 노예제조차도 실은 긴 역사로 보면 진보의 한 갈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인류가 단지 노예제로 진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야만스러움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더 이성적인 문명을 건설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다.-177쪽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일으킨 최초의 집단 저항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영국의 공장 제도와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러다이트 운동에 나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자본가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계의 자본가적인 사용이다. 기계가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된다면 노동시간이 줄고 노동의 강도는 낮춰질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자본가를 위해 사용되면 노동시간은 더 늘어나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더 줄어들 뿐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가적 사용이 자신들을 착취한다는 사실을 아직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179-181쪽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한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노동 운동이 점점 확대되면서 그 지도자들 가운데 며몇 선구자들은 이렇게 자생적이고 산발적인 저항으로는 사회체제를 개혁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는 자각을 했다. 자본가들의 힘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반면에 노동자들의 힘은 오직 단결에 있다는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조합 운동이 나타났다.-181쪽

노동은 인류에게 내린 그 어떤 저주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되고 말았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회는 더 발전하는데 노동자들은 왜 더 많이 일하면서도 왜 더 빈곤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과 축적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노동자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 되고, 그 생산물이 노동자들 자신의 풍요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저주일 수밖에 없다.-197쪽

물론 헨리 조지와 마크 트웨인의 시대에는 철도회사들만 온갖 악덕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대부분 남북전쟁에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이르는 시기에 부를 축적했다.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를 비롯해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이 바로 그들이다. 흔히 이들을 부르던 말이 바로 강도귀족이다. 강도귀족이라는 말은 이들의 부가 합리적인 기업 활동과 정당한 거래로 쌓은 것이 아니라 기만과 협잡, 부정부패, 심지어는 범죄단을 동원한 노골적인 폭력과 범죄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고용된 폭력단은 총을 들고 다른 회사에 침입하고, 경쟁자를 협박해 회사를 빼앗는 일도 예사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록펠러와 카네기는 그나마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치부 과정에서 쌓은 악명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228쪽

강도귀족들의 행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1869년 8월 9일 밴더빌트의 하수인이었다가 경쟁자가 된 금융투기꾼 제이 굴드와 모건의 하수인 조지프 램지가 철도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유혈 사태이다. 굴드가 800명의 폭력배들을 동원해 열차에 태우고 쳐들어가자 램지도 450명의 폭력배를 마주 오는 열차에 태우고 대항했다. 두 열차는 충돌해 전복했고, 1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결국 이 싸움은 램지 측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모건은행이었다. 지금은 후손들이 경영을 맡고 있지만, 미국의 10대 기업은 모두 '록펠러의 것이거나 모건의 것이거나 또는 록펠러-모건의 것'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이들 기업이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228-230쪽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계급들도 마치 유한계급들처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새로 나온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소비한다. 얼핏 보면 이런 대중 소비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 더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제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서만 자본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생활에서조차 그들의 이윤을 늘려주기 위해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아니라 자본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충분히 더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들을 바꾸고, 자동차를 바꾸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복합상가를 짓는다. -274쪽

케인스Jhon Maynard Keynes, 1883-1946 를 비꼬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다. "만약 어떤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 여섯 사람에게 질문하면 일곱 개의 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 두 개는 케인스 씨의 것입니다." 케인스는 자기가 했던 말과 전혀 다른 주장도 한다는 뜻이다. 달리 보면 이런 면모야말로 케인스 경제학의 현실성을 잘 보여준다. 상황이 다르면 대답도 달라져야 하는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똑같은 대답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관념이 현실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는 언제나 현실이 관념 위에 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완전무결함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연구실에 파묻혀 있을 동안 현실에서는 빈곤과 시업으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과연 무엇을 해야 옳은가?-280쪽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 은 당시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 대신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 체계는 모두 마셜의 《경제학원론》에서 온 것이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 독립된 학과로 경제학과를 처음 개설했으며, 케인스를 비롯한 수많은 경제학자의 대가들을 양성했다. 한때 신고전학파라는 말은 케임브리지학파와 동의어로 이해되기도 했다. 마셜의 연구실 방문에는 "런던의 빈민가를 가보지 않은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경제학은 약자를 위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경제 기사도', 경제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경제 생물학'등의 개념을 창안하기도 했다.-282쪽


"이렇게 추운데 우리 집은 왜 난로를 켜지 않나요?"
"아빠가 실업자가 되어서 석탄을 살 수 없단다."
"아빠는 왜 실업자가 되었나요?"
"그건 석탄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서란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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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절판


고통은 그 나름대로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이 없는 인류는 두려움이나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 두려움이 없으면 겸손함도 없을 것이고, 모든 사람은 다 괴물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고통과 두려움에 대한 인식은 우리들 내부에서 동정심이 일도록 한다. 그러한 동정심 속에 자비와 구원이 존재하는 것이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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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09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Y "NO!"

다락방 2014-04-09 15:16   좋아요 0 | URL
딘 쿤츠의 저 인용문을 읽으며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 상황에서 선물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솔린 생활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월
절판


"그치가 인간이 아니라 자동차였다면 즉각 리콜인데‥‥‥ 왜 그런 인간은 리콜 되지 않는 거야?"
인간에게 차종과 연식은 따로 없으니 리콜이라 해도 그 사람만 회수하는 것이 되겠지만, 어쨌든 자파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이해한다.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자동차들은 리콜 되지만‥‥‥도가리의 경우는 다른 인간들에게 이미 치명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히 활개치고 있으니, 이런 불합리가 또 있나‥‥‥ -195쪽

"그리고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는 사람은 뭔가 우월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
"우월감?"
"피사체보다 위에 있는 느낌이라고, 상대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대. 친구가 기자인데 그 사람이 그랬어."
다마다 겐고? 그가 언제부터 도루의 친구가 됐지?
도루는 두 손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보이며 "이렇게 카메라 너머로 관찰하면 상대보다 우위에 선 기분이 들 것도 같아. 상대가 펄펄 뛰며 당장 촬영 그만두라고 화를 내도 그런 모습까지 녹화할 수 있잖아. 찍는 사람은 상대의 움직임을 영원히 자기 것으로 담아 둘 힘이 있는 거야. 그래 맞아, 그 기자도 말했는데 연예인이나 정치가들한테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면 제 성질이 나온대. 그야 그렇겠지. 누가 계속 나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카메라에 담는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잖아. 그리고 거기서 화를 내면 그게 또 기사가 되고. 카메라는 어찌 보면 피 안 나는 총 같은 존재기도 해."-33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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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3-3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재미없는 책이라고 하셨는데... 뽑아 놓으신 글이 좋은걸요.

- 인간이 리콜되지 않는 불합리에 대해서...
- 카메라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카메라는 어찌 보면 피 안 나는 총 같은 존재기도 해."

제게 있어 책 읽기는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한두 문장을 찾아내기 위해 애씀을 즐기는 것, 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재미없는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다락방 2014-04-01 15:09   좋아요 0 | URL
저는 딱히 재미있질 않더라고요. 읽으면서 웃을 수 있는 소설이길 바랐는데 그렇질 않았어요. 그렇지만 저렇게 무릎을 탁, 치는 구절들이 나오긴 합니다. 이사카 고타로니까요! 흣.

유부만두 2014-03-3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 키우다가 말 안들으면 애를 리콜하는 ...그런 기괴한 책이 있습니다;;;;
그냥 리콜이 아니라....
<분해되는 아이들>. 신기한건 이 책은 부모들은 싫어하고 애들이 좋아한다는 거...

다락방 2014-04-01 15:10   좋아요 0 | URL
오, 왜일까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리콜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해가 될듯 안될듯 하네요. ㅎㅎ
 
당신들의 기독교 - 환상의 미래와 예수의 희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절판


순진한 예수(Jesus)라면 그리스도(Christus)가 세속의 권력(Caesar)과 그 열매를 축복하리라고 믿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의 기독교'는 그런 식으로 제도화된 것이다. 조금 에둘러 논의를 이어가자면, 자본이 권력과 사통하면서 애초부터 국가와 통혼(通婚)한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굽어보면서 낱낱이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초기 사회주의 운동이 국가의 문제를 조금 더 진지하게 사유하지 못한 채 '국제화'에 서두른 실책을 안다. 그래서 바쿠니(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 1814~1876)의 축출에서 두드러지듯이 아나키스트 운동의 급진성과 그 공동체적 생산성은 애초부터 권력의 자장에서 제외되면서 소수화되고 말았다는 사실도 안다. 마찬가지로 젊은 예수가 독특하게 일군 '동무공동체'의 아나키즘적 급진성('네 가족을 버리고 내게로 오라')도 중세의 가톨릭 제국-체제 속에서 아득이 볼각해버렸다. 그런가 하면 21세기의 한국 개신교회는 예수의 첫닭울이와 같은 메시지를 까마득히 잊은 채 강박적으로 붙들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기껏 '가족주의'다. -17쪽

'계급'이 다른 데다 이미 전쟁미망인이었던 터라 둘 사이의 결합은 쉽지 않았겠지만, 젊은 날의 B는 워낙 뛰어난 미인이었고, 알다시피 미인이라면 자본도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계급도 적수가 되지 못한다.-25쪽

가령 내가 교회를 멀리하게 된 사연이 룸살롱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C목사와 같은 이들의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소름이 돋거나 하품이 솟는 주류 교회들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예수'라는 어느 유묘(幽渺)한 존재를 빌미삼아 그 애달픈 장소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없는 데에는 E 전도사와 같은 이들의 가없는 정성과 노고가 숨어 있는 것이다. 나는 즐겨 '사람만이 절망'이라고 되뇌지만, 드물게 '사람만이 희망'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72쪽

우리 시대 세속의 성분과 구조를 감안한다면 한 달에 1300만 원씩 혹은 그 이상-이재용씨처럼 한 달의 전기세만 2400만 원씩을 낼 수 있도록-을 번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인지, 그러니까 보다구체적으로는 그 수입의 앞뒤가 어떤 정당성으로 꾸려지거나 일관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개인과 체계가 그 뿌리에서부터 사통할 수밖에 없는 세속에서, 개인의 상처와 패착이 개인의 것만이 아니듯이 개인의 사회적 성취와 물질적 풍요가 과연 그 개인만의 것으로 가뿐히 할당될 수 없다면, 이 호기심은 적절히 재구성되어 정당한 사회적 의제로 수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비록 그 개인이 점유할 지분이나 역할, 그 능력이나 노력을 넉넉히 인정하더라도, 3인 가족의 생활을 위해서 1300만 원 이상의 벌이를 반성 없이 계속하고, 그 벌이의 코드가 함입(陷入)되는 체계에 맹목으로 복무하는 것은 비평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91쪽

G 가 내내 부자였을 뿐 아니라 내 기억을 훨씬 상회하는 그들만의 내력 속에서도 부자-엘리트층으로 사회적 위세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와 그드의 부(富)가 교회 내에서도 인정과 존경의 잣대이자 신의 축복에 대한 증거로 숭상되었고, G와 그들 집안의 성취에 대한 세속적 평가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기복신앙과 풍요의 신학 덕에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교회 속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무엇보다도 G는 세속 속에서 열심히-합리적으로 돈을 축적하고, 교회속에서 열심히-은혜롭게 돈을 배치하는 사람인 셈인데, 이를테면 그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종교인 한국 개신교는 그의 자본-노동을 통해 한국 졸부자본주의의 복사판으로 재생산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98쪽

'모국어만 아는 자는 이미 그 모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것'(괴테)이라고 하듯 한 권의 책만을 맹신하는 것은 이미 책을 읽는 게 아니다. 그는 종이로 된 맹신의 늪을 얻은 셈이다. 따라서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여러 책을 읽는 자이며, 읽으면 읽을수록 책과 자신 사이에 개재하는 낯선 부조화에 시달리는 자이며, 책이라는 '세계개창성'과 그 타자성에 조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110-111쪽

그렇지만 진리보다 '진리를 말하지 않도록 조심'(니체)하고 복음보다 복음에 대한 아이러니를 말하는 자가 인문학도일진대, 자신이 지닌 믿음의 내용이 그 자체로-그러니까 현실적 전유(realistic appropriation)의 복합적 배려나 고민조차 없이-'복된 소리[福音]'라고 확신하고, 이를 그 누구에게든 애써 선전하려는 이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자신의 것에 그처럼 당당하고, 심지어 타인들의 가책을 유발시키려는 태도 속에서 한껏 오연하려면 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 자신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릇, 자신의 경력이든 실력이든 혹은 자신의 자식이든 재식(才識)이든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소개하고 발보이게 드러내지 않는 게 한발 앞선 자의 인지상도(人之常道)일 것인데, 제 종교가 제일이라고 천지가 시끄럽도록 외치는 이 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111쪽

'혼인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세간의 혹펼처럼 외려 (마치 무의식의 어두운 야성이 주체의 찢어진 틈 속에서야 얼핏 보인다고 하듯이) 혼인과 날카롭게 갈라지는 지점 속에서야 사랑의 진실은 부사처럼(adverbially) 번득이는 법이다. 그런 뜻에서, 앞서 언급했듯이, 사랑이라는 진지함 역시 '비보편적 일반성의 체험'으로서 탈(脫)가족주의적 동력을 지닌다.-118-119쪽

사랑이라는 진지함은 혼인관계라는 사회적 동화에 적절하도록 거세된 정념의 형식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페르소나의 찢어진 틈, 혹은 기성의 제도와 날카롭게 갈라지는 구석 속에서 발현되는, 근본적으로 탈(脫)가족주의적 지향인 것이다.-120쪽

책을 쓰지도 않았고, 그래서 글쓰기 행위에 옮아붙곤 하는 사후적 보충과 과장의 삶 대신 일회적 상호작용의 완결성에 힘을 다했으며, 무슨 번듯한 사회적 지위를 지니지도 않았던 우리의 스승 예수는 때론 당대의 관습과 상식을 무시하고 스스로 스캔들의 대상이 되기도하면서 민중의 현장을 오갔다. 그러나 그렇게, 민중과 대화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룬 그 놀라운 각성과 변화의 현장은 까맣게 잊힌 채로, 기억과 전승은 체계가 되고 말았다. 그 추종자와 해석가들이 건설하고 건사해온 종교적 체계는 '정신이 없는 (관료적) 전문가' 로 들끓어 기능적으로 각박한 채 종종 턱없이 무능하다.-120-121쪽

종교는 스스로 빈 것으로 남아, 늘 종교가 아닌 것을 도우는 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종교가 생활을 규제해왔던 현실을 뒤집어, 어떤 현실과 어떤 희망이 종교를 완성시키는 식으로-그러니까 종교가 생활을 도와, 바로 그 생활이 다시 종교를 완성시키는 방식으로-재배치되어야 한다. 마치 못난 인간들이 못난 신(神)을 제 꼴처럼 품은 채로 역시 못난 생활과 못난 욕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거꾸로 좋은 사람들의 좋은 생활과 좋은 희망은 종교를 완성하고, 그 속의 신을 아름답게 재현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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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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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분노 표현법은 글이나 언어로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다. 화난 마음을 애도 일지에 써 내려가거나 가까운 친구를 붙잡고 속 시원하게 수다를 떨면 된다. 치사하고 비겁한 엑스라고 맘껏 흉봐도 괜찮다. 땀이 날 때까지 달리기, 고독하고 긴 산행하기, 여럿이 어울려 운동하기, 소리 높여 노래하고 정신없이 춤추기. 그런 행위들도 내면의 위험한 열정을 위험하지 않게 표출하는 방법이다.-87쪽

하지만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할 때조차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잃은 것을 되찾는 일, 떠난 사랑이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 일은 어렵고 자기 파괴적 행동은 쉽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쉬운 해결책에 매달린다. 상대를 용서하는 일보다, 힘들게 애도 작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강물에 뛰어드는 일은 쉽기에 유혹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죽음을 향해 가던 길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삶 쪽으로 헤엄쳐 나와야 한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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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2014-03-1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그것을 글로 승화시키곤 했어요. 하지만 그럴때 쓴글은 다시봤을때 쪽팔릴 가능성이 높아요.

다락방 2014-03-18 08:02   좋아요 0 | URL
몇 시간 고민해서 쓴 글이 꼴랑 한 줄인겁니까, 정식씨? 실망이야..그렇게 안봤는데..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4-03-1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 작가와는 예전에 안녕을 고해서 (" )( ");;;;;;

다락방 2014-03-19 08:35   좋아요 0 | URL
저도 작별인사를 했더랬는데 친구 덕에 재회했네요. ㅎㅎ

당당 2014-04-2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김형경작가글만 주욱 장만하여 읽어볼까 생각중인데 작별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요즘처럼 시국이 어수선하고 불안정할때 읽으면 도움이 될 것같은데...잘못짚은 걸까요?

다락방 2014-04-28 16:09   좋아요 0 | URL
흐음, 지혜사랑님. 요즘같은 때 읽기에 적절하지 않은건 아닌데, 요즘 같은 때 이 책이 잘 눈에 들어올 것 같진 않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