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동안 홍콩엘 갔었고, 홍콩에서도 역시나 서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커다란 쇼핑몰 안에 있는 서점은 내가 원하는 서점이 아니었고-문구 완구 기념품을 다같이 파는 곳이어서 서점 보다는 선물가게의 이미지를 받았다-, 분위기 역시 내가 원하는 바와 달랐다. 그러나 낯선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일인가. 아쉬운대로 둘러보고 점원 몰래 마음 졸이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러나 워낙 새가슴이라 정말 원하는 건 찍지도 못했어...여튼, 이 책이 되게 궁금해서 메모장에 메모해왔다.



거기서 이 책의 표지를 보고 너무 사고 싶어졌는데, 일단 안을 보지 못해서 망설여졌다. 게다가 나는 요리에 젬병이고 영어도 멍청이니 실상 이 책을 산다고 하면 내게는'요리책'이 아닌 '화보'의 의미 밖에는 없을 터. 그러므로 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스스로의 결정을 내리고 돌아섰지만, 아, 화보이면 어때, 누군가는 고흐의 그림으로 드가의 그림으로 에곤 쉴레의 그림으로 위로 받듯이, 나는 그냥 음식 사진 보고 위로 받으면 되잖아, 싶어져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헐레벌떡 알라딘에 검색했는데...알라딘에는 없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알라딘 멍청아!!


서점에서 이 책은 비닐에 포장되어 있던터라 내용물을 보지 못했고, 아마존으로 부랴부랴 검색해 보자 했더니 책은 있지만 미리보기 이미지가 안뜬다. 하아- 그렇지만..저 밑에 있는 저런 사진들..이 책 안에 있겠지? 사고싶다..사고싶다..아마존에서 걍 주문할까. 배송비 많이 나오겠지? 배편을 택하면 그나마 나을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고싶다, 알라딘 이 멍청아!!


아..저 책을 내 책장에 꽂아두고 싶다! 든든할 것 같아. ㅠㅠ



여튼 와인도 마시고 맥주도 실컷 마셨는데, 한 레스토랑에서 호가든 생맥주를 시켰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잔에 나왔다. 아..절반짜리 잔도 있던데, 그걸 시킬걸 대낮부터..사이즈에 대한 감 없이 '절반짜릴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걍 시켰더니...조낸 큰 잔에 호가든이 나와서 빵터졌다. 되도 않는 영어로 맥주를 갖다 준 점원에게 말했다.


쏘 빅!!!!!!!!!!!! 


맥주가 담겨 나온 잔들을 보고 나와 친구들이 웃었고 점원도 함께 웃었다. 두 손으로 잡아야 마실 수 있고, 조금 마신 뒤에는 한 손으로 잡는 게 가능했는데, 우와- 무거워서 .. 이걸 한 손에 들고 근력운동을 할 수도 있겠다. 근력운동은, 우리, 맥주로 해요!!!

얼마나 큰지 보여주기 위해 기꺼이 내 얼굴을 비교하여 공개한다. 

여러분, 이게 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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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초미모다.. ( ")




홍콩에는 김수현과 이민호 광고가 가득했다. 버스에 커다랗게 이민호 얼굴이 있는데, 그건 마치 오래전 극장에서 포스터를 그린 그림 같았다. 사진이 아니라. 여튼, 이민호를 가리키며, 저건 그렸네, 라고 친구들에게 말했었는데, 그래서일까, 후후후후후, 엊그제 자는데 꿈에 이민호가 나왔다. 이민호와 박민영이 사귀는 사이었는데(이 둘이 연인으로 나온 드라마가 있던가???), 이민호는 이제 박민영이 싫어졌고 내가 좋아진거다...(아마도 저 호가든 초미모 때문일듯?) 당연히 박민영은 속상해하고 나를 시기하는데, 아랑곳않고 이민호와 나는 암수 서로 정다웁게(!!)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민호와 손을 꼭 붙잡고 자꾸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나는 미모롭지도 않고 이렇게나 늙었는데, 이런 내가 이민호랑 이렇게 정다웁게 지내도 괜찮은걸까, 이민호를 훨훨 날게 둬야되는 게 아닐까...이렇게 고민하면서도 나는 이민호의 손을 놓지 않았고, 이민호가 하도 나에게 다정다정해줘서, 나는 종국에는, 뭐 어때, 헤어지겠지만 걍 사귀면 되지, 너에게도 좋은 경험일거다...했는데 잠이 깬 것이다. 평일날 새벽 다섯시 사십팔분에 맞춰둔 알람이 변함없이 울렸던 것이다..........뻐킹쉿!!!!!









자, 이제는 냄비 받침을 받아야 하는데, 마침 하루키 책을 사면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하나 더 받고 싶다는 거. 하나 더 받아서 여동생 주고 싶다....아...그럼 책을 오만원 어치를 더 사야되는데....결제는 어차피 나중일이니 그냥 지를까...일단 하나를 받아놓고나서 생각해봐야겠다. 동생 집에 알라딘 냄비받침 놓고 싶어......힝 ㅠㅠ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녀의 갈비뼈가 내 갈비뼈에 닿자, 우리 둘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p.108)



이 문장을 한참을 들여다보며 궁금했다. 갈비뼈와 갈비뼈가 닿는 기분은 어떤걸까? 어떻게 포옹하면 갈비뼈와 갈비뼈가 닿을까? 왜 나는 늘 배와 배가 닿았던 것 밖에 기억나지 않을까? 왜 나의 갈비뼈는 그에게 한 번도 가 닿지 못하고, 그의 갈비뼈 역시 내게 와 닿지 못했던가? 



무척이나, 몹시, 매우많이, 너무나,


슬픈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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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애의 계절
    from 마지막 키스 2014-09-12 10:35 
    -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김어준의 파파이스를(미안한데 케이에프씨인줄 알았다;;) 들었다. 평소에 팟캐스트를 듣지 않는데, 유민아빠에 대해 김어준이 하는 말을 듣고 싶어져 부러 찾아 들었던 것. 창밖을 보며 듣다가 핑- 하고, 이 방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어차피 사람은 변하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보고싶은 걸 보게 되고 듣고 싶은 걸 듣게 된다. 자신의 최선이 다른사람에게도 최선이 될거라고 당
 
 
Forgettable. 2014-09-1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갈비뼈는 참.. ㅋㅋㅋㅋㅋ 슬프네요 ㅋㅋㅋㅋㅋㅋ 뼈가 부딪쳐서 아팠던 기억조차 없으니;
2. 저 책은 안에 텍스트만 있는거 아녜요? ㅋㅋ 반전매력! ㅋㅋ 아님 음식사진들 대신 음식하는 시스터즈의 모습만 있다던가;;
3. 호가든 든 다락방님 역시 한미모 하시네요. 근데 별로 안커보이는데? 원샷가능한데?
4. 뻐킹쉿 알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역시 사람은 놀아야해. 이번 페이퍼 진짜 밝고 웃기네요.

다락방 2014-09-12 12:44   좋아요 0 | URL
1. 뼈가 부딪칠 거란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사람은 자기 기준대로 생각하게 되는거야. 뼈라니, 무슨. 그저 내가 바라는 건, 배는 내가 나왔으니 너는 나오지 말아라, 하는 정도? ㅎㅎ
2. 설마 요리책에 텍스트만...이라뇨. 그건 무슨 말도 안되는... 안돼 ㅠㅠ
3. 크기 비교할라고 아이폰하고 나란히 놓고도 찍어봤는데 저게 어떻게 찍어도 크기 비교가 잘 안되더라고요. 여튼 조낸 컸습니다. 엄청. 원샷은 나에게 무리. 나 많이 마실 수는 있지만 원샷은 불가한 여자사람. 탄산은 목구멍 아파.. ㅠㅠ
4. 직장생활이 빡셔서 그런지 휴식이 더 달콤해요. 흑흑 ㅠㅠ 그렇다면 직장생활은 필요한것인가..Orz

blanca 2014-09-1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홍콩이라니! 듣기만 해도 근사해요. 즐겁게 잘 지내시다 오신 거죠? 냄비 받침 ㅋㅋ 저는 이번에는 아예 욕망을 눌러두리고 합니다. 반지, 손톱 다 느무 이쁘네요.

다락방 2014-09-12 12:45   좋아요 0 | URL
여행에는 아주 다양한 감정들이 있었죠.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여행중에도 즐겁고 환호성 나왔던 적도 있었으며 짜증나고 당황스러웠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ㅎㅎ

손가락은 짧고 굵은거 보이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4-09-1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의 갈비뼈는 그에게 한 번도 가 닿지 못하고, 그의 갈비뼈 역시 내게 와 닿지 못했던가? ㅋㅋㅋㅋㅋㅋㅋ ㅜㅜ

저 책 밑에 보니까 티비 프로그램인 거 같은데.. 책은 당장 볼 수 없으니 사이트 들어가서 동영상 찾아보면 그나마 갈증(?)이 좀 풀어지지 않을까요? ㅎㅎㅎ 유튜브에도 있을 거 같은데..

다락방 2014-09-12 12:46   좋아요 0 | URL
근데 갈비뼈끼리 서로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가능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림이 안그려져요...

건조기후님 댓글 읽고 오호라 싶어 유튭 찾아봤습니다. 역시나 있더군요. 지혜로운 건조기후님. 완전 똑똑해!!

단발머리 2014-09-1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이게 나예요. 읽고 나서
접힌 부분 펼치기, 클릭할 때 정말 어찌나 떨리든지.
아아..... blanca님은 다락방님 반지랑 손톱에 눈이 가신 모양이던데요, 나는 다락방님 윗옷이 티던가, 아니면 원피스던가 뭐, 이런거를 한참 생각하다가.... 다락방님이 너무 예쁘면 앞으로 계속 친하게 지내기는 어렵겠다. 원래 예쁜 여자들이 한 성질한다, 뭐 이런거를 생각했어요.

잘 다녀오셨군요. 홍콩에서 친구랑 맥주라니. 행복 삼종세트예요. 삼종세트에 갈비뼈는 안 들어갑니당~~~~~~~~~ 헤헤

다락방 2014-09-12 12:4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날 원피스 입고 가디건 입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단발머리님이 완전 애정하실 정도로(응)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 ") 예쁘지도 않고 성격은 둥글둥글 참합니다.(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맥주와 와인과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여행이었습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음은 어디로 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여행에서 새삼 깨달았는데요, 제게는 낯선 곳의 목적지, 낯선 곳의 장소가 중요하지 않아요. 낯선 곳의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멋진 곳인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인지 하는 것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는 쪽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런 제가 스스로 되게 좋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가 이해안되는 말을 쓴것 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스탕 2014-09-1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띠를 하신거에요, 모자를 쓰신거에요? 맥주를 얼릉 마셔버리고 다시 찍어요. 저건 잘못된 사진이에요.
손이 이뻐서 왕 부러움.. 난 울 아부지 손을 그대로 닮아서 손만보면 감자 캐던 남자손이에요 ㅠㅠㅠㅠ

어제 친구랑 카톡하면서 조인성 가고 나면 조금 있다가 이민호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오늘 이민호 사진을 보네요. 아웅~~ 좋아라~~~

다락방 2014-09-12 12:50   좋아요 0 | URL
손이 짧고 굵어요. 손가락도 살이 찌나봐요. 점점 더 굵어져...Orz

전 이민호 별로 관심 없었는데 꿈에서 저한테 다정다정하게 해주니까 관심이 새록새록 생기네요? 히히히히히.

세실 2014-09-1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다락방님...괜히 제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돌려봅니다^^
다락방님 왠지 아담한 사이즈? 키는 160cm 정도? ㅎㅎ
손이랑 반지 예뻐요~~~

다락방 2014-09-12 12:51   좋아요 0 | URL
아담하기엔 차고 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손가락의 굵기...를 보시면 짐작 가능하시겠지요. 그렇지만 키가 160인건 맞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 사진 보고 키를 그렇게 정확하게 짐작하시는 거죠? 네? 짱이네요!! ㅎㅎㅎ

오호라통제 2014-09-15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빵터집니다!!!

다락방 2014-09-17 09:49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자작나무 2014-09-17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몸무게도 알지요.

다락방 2014-09-17 09:49   좋아요 0 | URL
어..어.............어떻게요? -_-

자작나무 2014-09-18 10:59   좋아요 0 | URL
손가락 체적의 법칙에 의해 58kg 으로 산정되었습니다

다락방 2014-09-18 11:16   좋아요 0 | URL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꿈의 무게네요. 제가 결코 이룰 수 없는 무게.................................................

자작나무 2014-09-20 10:49   좋아요 0 | URL
락방씨 체질량 지수가 35예요

무해한모리군 2014-09-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며 손으로 갈비뼈를 혹여나 느껴질까 꼭꼭 눌러보았어요 ㅠ.ㅠ 슬프다... 저는 작년에 홍콩 서점에 가서 칵테일 만드는 법에 대한 책을 사왔어요.... 무척 비쌌지만 책의 첫문장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칵테일이란 뭔가 강한것, 뭔가 단것과 물이 들어가는 거라고 적었더라구요. 제가 들어본 가장 적확한 정의라 사보았지만.... 칵테일을 만들어보지는 않았다는거.... 이민호는 너무 지나치게 잘생긴거 같아요... 저는 박해일이나 신하균 정도 생긴 사람이 좋은듯 ㅎㅎㅎ

다락방 2014-09-18 10:21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책 말고 요리책 하나를 또 봐두었는데, 저는 정말이지 요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한다고 그 요리가 맛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요 부엌만 초토화가 되겠죠. 다만 예쁘고 군침돌게 생긴 음식 사진들을 보며 힐링힐링~ 이럴것 같은데, 그것만으로 저는 참 좋을 것 같아요. 명화를 보며 위로 받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본연의 나는 다른거니까요. 후훗.

이민호는 지나치게 잘생긴 게 맞죠. 그래서 현실성이 없어요. 그런일도 없겠지만, 혹여라도 이민호가 제게 사귀자고 한다면 저는 고민없이 '노'라고 답할 것 같아요. 어떻게 같이 다녀요, 저 얼굴하고....못해요, 전. ㅠㅠ
 
















영화 《바베트의 만찬》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의 한적한 마을은 배경도 현재가 아니라 '저런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보고싶었고 그래서 보기전에 책도 부랴부랴 읽었었다. 책을 읽고 쓴 글을 찾아봤더니 그당시의 나는 이 책을 읽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더라.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난 지금은 내 마음이 결코 아름다울 수가 없고 멘탈에 커다란 충격만 남겼다. 


나는 푸짐한 식사가 나오는 영화가 좋다. 물론 푸짐하지 않은 식사도 좋다. 그러니 바베트의 '만찬'도 내가 좋아할 영화였다. 책에서 마지막 만찬 장면에 내가 얼마나 이 영화를 보고 싶어했는지 나는 기억한다. 와인과 음식을 입안에 넣고 사람들이 감상하는 그 장면들을 나는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영화를 통해 직접 '보고'나니, 제기랄, 책만 읽을걸, 하는 후회가 어마어마하게 몰려왔다. 일단, 이런 요리는 괜찮다. 이 만찬에 참석하고 싶게 만들어 준다.





요리를 내가는 틈틈이 바베트가 와인을 입안에 넣고 음미하던 모습, 만찬이 끝나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등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만...그렇지만.....바베트가 프랑스로부터 식재료가 무사히 도착했다며 리어카 한 가득 재료를 부엌으로 옮길 때, 부엌위에 늘어놓은 식재료들을 볼 때...아............진짜 멘탈에 무리가 왔다. 거기엔 살아있으므로 움직이고 짹짹 소리를 내는 메추리 여러마리가, 발을 꿈틀대며 움직이는 커다란 거북이가 있었던 것이다. 오, 신이시여.


물론, 이런 장면에 충격을 받는 내가 모순됐다는 생각을 당연히 한다. 나는 소와 돼지와 닭을 무척 잘 먹으니까. 소와 돼지와 닭도 살아있는 생명이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책 속에서 나는 이미 이 식재료들을 만났던 터다. 책에서 읽고 영화로 확인하고 싶어했던 것도 바로 이, 나다. 그러나 활자로 읽는 것과 실제로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달랐다. 저 작은 메추리들을, 저렇게 살아있어서 짹짹거리는데, 아 젠장할, 저걸....아아...먹고 싶지 않아... 그러나 그 메추리는 훌륭한 메인 요리로 변하고, 사람들은 아주 맛있게 먹는다. 




저 소스도 아주 맛있게 숟가락으로 떠먹던데, 심지어 메추리 대가리까지 들고 먹던데...아....힘들어....그런데 사실 메추리보다 더 힘든 게 있었으니, 그건 식재료 거북이었다. 큰 거북이. 이건 정말이지, 사진으로 봐도 충격 받을 사람이 많을 테니 친히 접기를 하겠다. 심장 약한 분들은 보지 않으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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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큰 거북이가....식재료라고..부엌에 있어. 하아-----------------------------------------


저 큰 거북이는 아주 맛있는 '거북이 수프'가 된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만찬이 끝나고 나서 첫사랑과 재회한 장군이 '앞으로 내 영혼은 매일 너랑 저녁식사를 할거다' 라는 낭만적인 말을 내뱉는데, 책에서 이 부분을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아, 가슴을 움직이지 못한다. 이미 내 가슴을 저 거북이가 쥐고 흔들었어....아 ...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만약 재료를 말하지 않은 상태라면 나 역시도 그 자리에서 그릇째 들고 거북으 수프를 마셨을지도 모른다. 한그릇 더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저 재료를 보고난 후라면 나는...나는.....그 수프에 입도 대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의외로 여린 식성을 가진 것이다. 아..머리가 아프다.. ㅠㅠ



음식 영화라서 무척 좋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 바베트의 만찬은 내 멘탈에 스크래치를 남겼다...

















그러다보니 내 멘탈에 스크래치를 남긴 음식 책이 퍼뜩 생각난다. 이건 멘탈에 스크래치 라기 보다는 기분에 스크래치다. 아주 큰 스크래치. 이 책속에 나오는 음식들은 죄다 먹어보고 싶고, 음식 묘사를 너무나 잘해놔서 입맛이 절로 다셔지지만, 백자평에 썼듯이 각 음식 섹션마다 등장하는 남자주인공들이 진짜 병맛이다. 물론 등장하는 캐릭터를 애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읽는 독자의 몫이다. 내게는 병맛일 수 있는 캐릭터가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걸 알든 어쨌든 나는 제기랄, 병맛 캐릭터라는 데서 한 치도 양보할 수가 없다.


특히나 스키야키 얘기가 나오는 <인정 스키야키 이야기>에 등장하는 '쓰루지'가 아주 병맛인데, 극중 쓰루지는 '큰도련님' 이므로 자신의 마음대로 결혼하기 보다는 부모님이나 집안 생각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혼기를 놓친 남자이다. 여러 여자를 사귀기도 했지만 여자의 집안을 따지는 부모님 때문에 헤어지고 지금의 나이인 서른아홉이 되었는데, 과거에 사귄 여자중 '유리에'는 임신을 하기도 했었다. 이 과거 사연을 읽다가 내가 빡친건데,


유리에는 백화점 스낵바에서 알게 된 점원이었다. 둥근 부채에 눈과 코를 띄엄띄엄 붙여놓은 것 같은 큰 얼굴에 허리가 굵은 여자였는데, 착 달라붙어 곱살맞게 굴지 않는 것이 쓰루지의 마음에 들었다. 띄엄듸엄 붙어 있는 자그마한 눈코도 의외로 잘 정돈되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낌이 좋았다.

얌전한 성격이라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구석이 있었는데,

"역시, 안 되겠어. 어떡하지‥‥‥."

하고 쓰루지가 말했을 때도,

"흐음‥‥‥.."

하고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쩔 수 없네, 지울게."

하고 조용히 말했다.

결혼을 해서 배 속의 아이를 낳을까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기세가 등등하여 도저히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부모님을 버리고 집을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실체가 사라졌는데도 종이 도매상 '오카미도'의 후계자인 큰도련님이라는 의식에서 못 벗어나는 자신도 싫었지만, 부모님과 수많은 위패와 불단, 주황색 노렌과 오래된 문서의 압박을 좀처럼 무시할 수 없었다.

"미안해‥‥‥화내지 마."

하고 쓰루지는 유리에에게 말했다. (p.84-85)



하아- 난 저 마지막 말이 너무 싫었다. 미안해, 화내지마. 라니. 어휴. 가슴속에 불길이 치솟는 느낌이다. 만약 저자리의 나였다면 '화나게 해놓고 화내지 말라니 이 개새끼야!' 라고 응수했을 것 같다.  너무 무능력하고 유약해서 한숨이 나온다. 화나게 해놓고 화내지말라니...아..너무 싫어. 만약 내가 쓰루지랑 사귀는 여자였다면 '애를 지워야 한다'에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화내지마' 에서 화가 났을것 같다. 바로 그순간 저 남자에 대한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을 듯. 


모든게 선택의 문제이고, 그 선택은 모두 '자신'을 위한것이다. 큰도련님이라는 의식, 부모님을 버리지 못하겠는 마음, 오래된 문서의 압박..이 모든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보다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포기하는' 쪽이 그에게는 '덜'고통스러웠던 거다. 이게 바로 냉정한 사실이다. 물론 그여자를 사랑했을 것이고, 진정 미안했을 것이지만, 아이를 포기하고 여자를 포기하는 쪽이 바로 그가 '선택'한 것이다. 두 가지의 고통 앞에 덜 고통스러운 걸 택하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다. 쓰루지가 아이를 지우길 원했던 것 역시 그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 자신의 결정인데도 불구하고 '지울게'란 말을 여자가 먼저 하게 만드는 저 우유부단함, '어떡하지' 라고 말하면서 바톤을 넘기는 저 태도. 소름끼치게 싫다. 어떡하냐니..니가 원하는 건 지우는 거잖아. 그렇게 해놓고서 '화내지마' 라고 말하는 모습이라니. 아 뭐지...저게 저 남자의 성격이겠지만, 저 남자의 성향이겠지만, 아 너무 화가난다. 나는 저 모습에 화가나지만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화가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아니 저렇게밖에 할 수 없는데 어쩌겠냐 나는 이해가 된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이해는 이해고 나는 분노가 샘솟는다. 빡쳐..


암튼 분위기에 휩쓸려 의도치않게 옷을 벗게 될 수도 있겠지만, 콘돔 사용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저 이야기의 교훈이다. 콘돔 사용을 안하니까 사귀던 남자의 가장 밑바닥 찌질한 모습까지 맞닥뜨려야 하잖아. 아 싫어.. 내가 유리에였다면 아마도 '아, 내가 이런 남자를 사랑하고 같이 잤다니..' 하고 벙쪘을 것 같다. 내 자신이 싫어졌을 것 같아. 콘돔은 필수!!



으으- 

 



엊그제는 동료 직원이 아침에 샌드위치를 줬다. 엄마가 싸주셨다고 한다. 단순 심플한 샌드위치였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완전 맛있다, 하면서 계속 계속 감탄했다. 으흐흐흐흐.




어제와 오늘은 알라딘 ㄲㅍㅋ 님이 주신 차를 우려 마셨다. 향이 좋았다. 헤헷.




만약 오늘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라고 한다면, 나는 조카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사들고 조카에게 가야지.







거북이와 저 남자의 찌질함에 맞서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야겠다. 이따 점심때 태민이 나오는 이 영상이나 한 번 봐야겠다. 






아참. 그런데 엊그제 당일배송 시킨 책이 왜 아직까지도 안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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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9-0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 저기 접힌 부분을 펼쳐보고 싶은데, 아이고 궁금해 미치겠네..

빨리 퇴근하라는 말이 없어요. 지금까지도. 젠장..

다락방 2014-09-05 16:59   좋아요 0 | URL
글렀어 글렀어. 벌써 다섯시에요. 나도 아직 사무실... -_-

blanca 2014-09-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대학 때 봤는데 다락방님 얘기 들으니.. 흑흑. 저 샌드위치는 식빵도 있으니 똑같이 비슷하게 낼 아침에 만들어보겠다고 생각만 ㅋㅋ 해 봅니다. 저도 마카롱 엄청 좋아해서 한자리에서 세 개도 먹을 수 있어요. 아이가 벌써 이 맛을 알아버렸군요! 오늘 같은 날은 당근 빨리 퇴근하는 분위기로.. 명절 잘 보내세요. 날씨가 얄밉도록 좋네요.

다락방 2014-09-05 17:33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소나 돼지나 닭을 먹으면서 왜 거북이와 메추리에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가..하고 말이지요. 단지 익숙하고 익숙하지 않음의 차이일까요?

마카롱은 처음 먹었을 때 으악, 이렇게 단 걸 대체 어떻게 먹으란 말이냣, 했었는데 먹고나니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는 일찍 퇴근은 고사하고 육시 넘어야 퇴근하겠어요. 회사 나빠요 ㅠㅠ

moonnight 2014-09-0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도 일해야 해서 ^^;

바베트의 만찬은 오래전 tv에서 하는 명화극장;으로 봤었어요. 그때는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 것도 모르고 푹 빠져봤었지요. 이런 훌륭한 영화를 텔레비젼에서 해 주다니. 이러면서요. 저는 별로 식재료들에 충격 안 받았는데. ㅎㅎ

추석에 바베트의 만찬 책으로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

우리 조카아이들은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사실 저도 마카롱을 한 번도 안 먹어봤어요. 무척 달다는 입소문만 들었는데 중독성이 있나봐요. +_+

추석 즐겁게 잘 보내시길.. ^^

다락방 2014-09-05 17:34   좋아요 0 | URL
아...내일도 일....네네 ㅠㅠ

식재료에 충격받았다는 글을 보진 못했고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조건 강추하시더라고요. 전 식재료 때문에 추천을 못하겠;; ㅎㅎㅎㅎㅎ

저도 그렇게 단맛 안좋아하는데요 그러면서도 마카롱은 먹고 싶더라고요. 물론 안먹고 살고 있지만 말예요. ㅎㅎ

문나잇님, 내일도 일 잘 하시고 (ㅠㅠ) 추석 잘 보내세요!! 오랜만에 뵈니 반갑네요. 헤헷

자작나무 2014-09-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도 야근, 내일도 출근, 아마 추석당일 하루 쉴거예요.
라면 맛있다고 소문났나...

다락방 2014-09-05 17:37   좋아요 0 | URL
어머...무슨 라면을 시도때도 없이 끓여요.. ㅠㅠ

카스피 2014-09-05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젠 퇴근하셨겠지요^^

다락방 2014-09-11 14:35   좋아요 0 | URL
지금은 회사입니다. ㅎㅎ

에르고숨 2014-09-0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글을 읽으면서 보니 사진의 저 손이 정말 좀 무서워지네요. '식재료'와 음식 간에 단단한 커튼을 치고서야 '맛'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어쩌면 아이러니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회를 못 먹는 이유가 그것과 닿아있는데,,, 다락방 님 어쩌면 채식유발자가 될지도 모르겠는 페이퍼! 오랜만에 와서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급공감한 지점은, '화나게 해놓고 화내지 말라니 이 개새끼야!'라지요. 무탈퇴근+불금 기원-

다락방 2014-09-11 14:42   좋아요 0 | URL
에르고숨님은 제가 불편하게 느끼는 점을 아주 잘 설명해주셨네요. 식재료와 음식 사이에 '단단한 커튼'을 치고서야 맛을 얘기할 수 있다, 는 부분 말이에요. 너무나 명쾌한 설명이에요. 제 속이 다 시원하네요. 음, 그런데 이런 아이러니를 느끼는 게 인간의 모순된 점이 아닐까, 나는 모순된 인간인거군...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제가 갑자기 고기를 뚝- 끊진 않겠지만요. ㅠㅠ

연휴가 끝났어요, 에르고숨님. 슬퍼.. ㅠㅠ

책읽는여름 2014-09-06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일찍 퇴근하셨습니까? ㅋㅋ


다락방 2014-09-11 14:42   좋아요 0 | URL
천만에요! 정시에 퇴근했습니다. ㅠㅠ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아주 못생기고 뚱뚱했다. 물론 지금도 못생기고 여전히 뚱뚱하지만 고등학교때는 진짜 최악이었다. 나는 공부도 못했는데 외모도 거시기해서 아주 자신감이 없었다. 학교 다니는 것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도 뭔가 과격하고 날카로운 성격이긴 했던 것 같다. 나의 쌀쌀맞은 태도나 무심한 성격 탓에 여자 애들을 울린 적도 더러 있었다. 그당시 애들은 예민한 법이라 자기보다 다른 친구랑 더 친한 것 같다고 울고 그랬던 것이다. 아침에 제일 먼저 자기한테 말걸지 않았다고 울고...뭐 ..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그당시 내가 가장 잘하는 게 있었다면 공상이었다. 공부를 하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늘 공상을 하곤 했다. 팝송을 듣다가도 마찬가지. 내 머릿속에서는 아주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 생겨나고 그랬다. 공상속의 나는 언제나 멋지고 당당하고 울트라캡숑 아름다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초절정의 미녀였는데, 아마도 내가 그런 공상을 잘했던 건, 내게 결코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등교 준비를 할 때는 항상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를 틀어두었는데, 하루는 내 간절한 소망을 현실로 이루고자 오성식한테 편지를 보냈다. 


FBI 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저걸 편지라고 보낸거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보낸걸까. 심지어 고딩이. 초딩도 아니고 ㅠㅠ 한참이 지나 오성식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FBI 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방송을 들어줘서 고맙다, 날씨가 어떤데 어떻게 지내라, 등의 일상적 얘기가 타이핑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밑에 서명만 오성식이 했을 뿐. 아마도 많은 편지들을 받느라 일일이 상황에 맞는 답을 해주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여튼, 나는 그 당시에 FBI 에 대한 환상울 품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내가 보았던 외국영화속의 멋진 남자는 죄다 FBI 였기 때문이다. 저런 멋진 남자들하고 같이 일하는, 저들보다 더 능력있는 FBI 요원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FBI  랑 사랑하고 연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 멋진 남자들 위에 서는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던거다. 그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추리를 잘하고 더 범인을 잘잡고 더 액션도 잘하는....그러나 이건 진짜 허무맹랑했던 게, 공부도 공부지만 몸이 둔해서 뭐 운동이라고 할만한 걸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단 거다. 백미터 20초 나왔던가...뭐 그런 슈퍼돼지였는데, 액션은 무슨...지금의 나는 내가 FBI 를 할만한 인재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그 직업이 멋지다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훨씬 먼저 든다. 여튼 나는 FBI 가 되고 싶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챙겨든 책은 바로 이 책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제일 처음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읽는다. 


1957년 미국 미시간에서 CIA 요원 출신의 생물 교사 아버지와 동화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십대 시절에는 찰스 디킨스와 에드거 앨런 포에 빠져 빅토리아 시대소설과 공포소설을 쓰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무용을 공부한 뒤 안무가 겸 무용 교사로 일했다. 스물아홉 살에 첫 소설을 출판했으며,『트롤』『백 가지 모험』『콜 하버에서 보낸 1년』 등 여러 작품을 썼다. 『빨간 그네를 탄 소녀』로 2002년에 뉴베리 아너상을, 『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로 2003년에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판타지와 현실을 뒤섞고, 별난 캐릭터와 기상천외한 유머로 비극을 감싸며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 주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앗. 뭐..뭐...뭐라고? CIA 요원 출신의 생물 교사 아버지라고? 맙소사. CIA 랑 FBI 는 영화속에만 등장하는 직업군이 아니었던거야? 이렇게 살아 숨쉬는 현존하는 그런 존재인거야? 우와- 완전 엄청 충격 받아서는 내 고등학교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던 거다. 그래, 내가 FBI 요원이 되고 싶었지. 그랬었어...아...내가 되고 싶었던 걸 누군가 어딘가에서 하다가 때려치고 생물 교사를 했구나, 그렇게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훌륭한 작가가 되었구나. 그런데 이 작가좀 보라지. 여덟살 때부터 글을 쓰고 십대에 디킨스에 빠져들었다네? 나는 위대한 유산을 몇 년전에 처음 만났는데!! 게다가 무용 전공에 무용 교사..라니. 무용 교사를 하다가 소설을 썼다고? 흐미...


나는 가끔 사람들이 대학때 전공을 물으면 '무용이요' 라고 해서 질문한 사람들을 빵빵 터뜨리는데,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또 글을 쓰고 있었네. 뭔가 이 가족은 현실에 존재할 법하지 않은 가족인 것 같다. CIA 출신 요원을 아버지로 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위험하게 느껴질까? 스릴있게 느껴질까? 난 CIA 요원 출신 아버지를 갖는건 이미 글렀으니, FBI 가 되겠다는 꿈마저 포기한지 오래이니, 할 수 없다. FBI 요원 남자를 사귀어 보는 수밖에. 역시 미국엘 가야겠구나. 크-



이 책 속 주인공인 소녀 '래칫'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데, 여름방학을 보내기 위해 이모할머니들(이었던가..) 댁에 가게 된다. 이모 할머니들을 쌍둥이인지라 두 분이었고, 그 집에는 틸리와 펜펜, 그 두분 만이 늙어가고 계셨다. 집 안에 설치된 전화는 받는 거만 가능하고 집 또한 숲 속 깊은 외딴 곳에 있었던지라 결혼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금까지 늙어온 이 두 노인은,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 명도 바로 따라 죽자고 늘 약속하고 있던 터다. 운전조차 스스로 습득한 이 할머니들은 당연히 운전이 서투를 수 밖에 없었는데 여튼 자신들의 집에 여름을 보내기 위해 온 래칫을 데리고 읍내에 쇼핑을 하기 위해 나간다. 쇼핑을 하고 우편물을 찾고, ㅋㅋㅋㅋㅋ(앞으로 쓸 걸 생각하다 웃겨서 미리 웃음) ㅋㅋㅋㅋㅋ, 한 잔 하러 가자며 할머니 두 명과 소녀 래칫은 읍내의 술집엘 간다.



"자, 이제 한잔하러 가자고."

자매는 래칫을 데리고 읍내 술집의 육중한 문을 밀었다.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생경한 냄새가 래칫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맥주, 습기, 담배, 나무 연기, 해묵은 나무, 시원하고 어두운 술집에서 몇 년을 살다시피 한 수많은 남자들의 땀 냄새였다. 틸리와 펜펜이 그곳을 좋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래칫도 그곳이 좋았지만, 정작 셋 다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남자 냄새라는 것을. (p.33)



아우...출근길에 이 부분을 읽는데 진짜 완전 눈 앞에 풍경이 확 그려지는 거다. 그리고 바로 내 앞에서 그 남자 냄새가 나는 것 같은거다. 맥주, 습기, 담배, 나무 연기, 해묵은 나무, 땀...공기 중에 느껴지는 그 뭐라 말로 설명하기 거시기한 육덕진 냄새..라고 해야할까. 살아 숨쉬는 육체들이 그 안에 가득하지 않았을까. 끈적하고 찐득하고 짭쪼름하며 확- 열기가 뻗치는 그것. 색은 구릿빛 혹은 진한 갈색빛 이라고 하면 딱 맞겠다. 아우 너무 좋네.. 여튼 그래가지고 이 책을 계속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읍내 술집이며 맥주 담배 땀냄새..는 FBI 랑 어울리지 않는데...그건 약간 육체노동자 스타일이고. FBI 는 늘 검정색 양복을 입는 걸로 상상하고 있었는데..아 근데 구릿빛 피부에 땀냄새...이런것도 나는 또 엄청 좋은데...내가 원하는 게 대체 뭘까. 막 땀을 흘린 근육질의 구릿빛 남자일까, 곱게 양복을 차려입은 FBI 일까...



오늘은 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그리고 아주 깊게 들여다봐야겠다. 뭐가 됐든, 여튼 세야 돼. 강해야 해. 스트롱맨. 울트라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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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4-09-0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BI 에도 사무직이 있지않겠습니까? ㅋㅋ

다락방 2014-09-01 15:0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사무직에 대해 한 순간도 생각해보질 않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나 단순한 나란 인간 ㅋㅋㅋㅋㅋ

dreamout 2014-09-0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은 아주 낯설어요.
정말이지 책들은 많기도 많군요... @@

다락방 2014-09-02 09:4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지요. 지금 절반쯤 읽었는데 괜찮아요. 청소년 소설인 것 같아요.
 














나는 클래식 음악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취미도 없다. 지금이야 비탈리의 샤콘느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다. 아직도 내게 클래식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사람들의 취향일 뿐이다. 일전에 <무릎팍 도사>에서 '장한나' 였던가, 나와서 그런 얘기를 했다. 다들 클래식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귀에 익숙한 곡들은 대부분 다 클래식이라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클래식은 내게 멀다. 아주 가끔, 클래식과 친해지기 위해서 어떤 앨범들을 들어보지만, 그렇다해도 친해지게 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클래식에게 마음을 아주 닫아버리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 속의 여자주인공 루이자 역시 클래식에 마음을 닫아놓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디 클래식 뿐이랴, 그녀는 사방팔방 이것저것에 마음을 닫아놓고 살고 있었는 걸. 



지휘자가 앞으로 나와 단상을 두 번 톡톡 두드리자 거대한 침묵이 내리깔렸다. 그 정적이 느껴졌다. 한껏 기대에 차 있는 객석이 느껴졌다. 그때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자 갑자기 만물이 순전한 소리가 되었다. 음악이 실체가 있는 사물처럼 느껴졌다. 음악은 내 귀에만 머물지 않았고, 온몸을 타고 나를 에워싸고 흐르며 온 감각이 공명하게 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리고 음악으로 인해 내 상상력이 뜻밖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앉아 있자니 몇 년 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해묵은 감정들이 나를 덮쳤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상이 내 몸에서 술술 뽑아져 나왔다. 마치 나의 지각 능력 자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쭉쭉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멈추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고 싶었다. (p.233-234)



우리는 객석이 텅 빌 때까지 기다렸고, 그 다음에 내가 휠체어를 밀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무탈하게 윌을 차에 태웠다. 별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아직도 음악의 여운이 남아 있었는데, 그게 희미해질까 아쉬웠다. 계속 음악을 돌이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온전히 연주에 몰입하던 윌의 친구처럼. 음악이 마음속에 꼭꼭 잠겨 있던 감정들을 풀어내고 작곡가조차 예상치 못한 곳으로 떠나게 할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어디를 가나 잔향을 끌고 다니는 것처럼 음악은 주변 공기에 깊은 상을 새겼다. 객석에 앉아 한참 동안 곁에 윌이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었다. (p.235)



그녀는 클래식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지만, 그녀의 고용인인 '윌'이 그녀에게 꼭 한번 클래식을 들어보기를 권했고, 루이자는 윌에게 '당신이 같이 가준다면' 연주회에 가겠노라 했다. 그리고 가서는, 옆에 앉은 윌을 잊을만큼 클래식에 흠뻑 빠진다. 


클래식이란 말이 나와서 클래식을 감상하게 되는 루이자가 인상 깊어 이 부분을 인용했지만, 사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고.


소설로 치자면 '코맥 매카시'가 정통 클래식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 말은 즉, 소설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이 읽기에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는거다. 반면에 소설(혹은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이 접하기 쉬운 '팝송'같은 소설들이 존재한다.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몰입도 되는. 소설을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처음 소설을 추천할 때는 당연히 팝송 같은 소설을 추천하게 되는데, 이 책, 《미 비포 유》는 '엄청나게 힛트칠만한' 팝송 같은 책이다. 재미도 있고 눈물도 흘리고 잠시도 손에서 놓고 싶지가 않아진다. 물론 이 말은, '소설로서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 책이 완벽하지 않다'와는 다르다. 내가 완벽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뿐, 이 책은 이 책의 북트레일러에서 나온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대단하며', '인생을 바꿀만한' 책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팝송을 부르는 가수의 모습을 보고 금세 사랑에 빠져 인기스타가 만들어지듯이, 이 소설속의 주인공 역시 흠뻑 빠지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때까지, 윌을 사랑했다.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단언했다. 흥분해서 읽다가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우선 이 책이 '지나치게 소설적인' 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적인 면들이라고 해서 현실하고 완전히 동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사지가 마비된 환자들 중에는 그들을 아낌없이 간호할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들이 존재할테니까. 게다가 주인공 '윌'은 사지가 마비되기 전까지 엄청나게 천재적인 경영인이었고, 그래서 (원래 집도 부자인데) 돈도 많이 벌었고, 온 세계 방방곡곡 여행을 했으며, 몸을 움직이는 거친 액션들도 즐겼다. 잡지에서 바로 걸어나온 것 같은 초절정 미녀들과 섹스를 즐긴 것은 두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까지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몇 프로나 될까? 게다가 이제는 그 모든걸 할 수 없는 남자를 간호하기 위해 들어온 여자주인공 '루이자'는 거의 한 집안의 가장이며 집 근처 8km 이내로는 떠나본 적도 없는 여자이다. 이런 스토리는 사실 지나치게 통속적이지고 '극의 재미'를 더한듯 느껴져 썩 흡족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책의 뒷표지에는 이 책에 대한 극찬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어딘가에서 본 '안락사'라는 단어가 잊혀지질 않아, 이 이야기가 비극이 될거라고 짐작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주인공 루이자와 윌이 사랑에 빠지는 동안, 그 사랑이 내것이 되어 이 이야기가 비극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미 '안락사'란 단어를 본 이상 결말은 불보듯 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나는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거다. 루이자가 윌에게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었던 것처럼. 


자신의 몸을 이용해 세상 모든걸 누리고 경험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의 몸으로 이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게 어떤 걸지, 내가 아무리 이해하고 상상하려고 해도, 그 절망감은 내 상상 이상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이만 끝내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안 이상, 그에게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의 삶을 사는 것은 그이지, 내가 아니니까. 내가 아닌데, 내가 그 고통을 겪는 게 아닌데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일이 몹시 힘들거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를 설득해보고자 하지만 결국 그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일, 그의 마지막에 옆에서 그런 그를 보아주는 일. 그것은 독자인 나를 눈물나게 하는 것보다, 어마어마한 크기로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윌을 보면 생각만 해도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벅찬 사랑으로 내 품에 안았던 아기가 보였다. 내가 또 하나의 인간을 창조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처음 만난. 내 손을 잡으려 팔을 뻗던 갓난아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던 꼬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분노로 눈물범벅이 되어 흐느끼던 소년이 보였다. 그 여리던 모습, 사랑,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런데 윌이 나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 건 바로 그것들이었다. 다 큰 남자만이 아닌 그 어렸던 소년, 그 모든 사랑, 그 모든 지난 일들까지. (p.156)



입에 음식을 넣는 것초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는 그가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가 루이자를 만난다. 루이자는 그의 눈치를 보며 잘해주고자 하지만 그렇게 몇날 며칠을 퉁명스러운 데야 참을 수가 없다. 



"개망나니처럼 행동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말들이 고요한 허공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휠체어가 정지했다.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그가 천천히 돌아서서 나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그의 손은 작은 조이스틱을 잡고 있었다.

"뭐라고 했죠?" (p.82)




아. 으르렁 거리는 루이자, 이렇게 사랑은 시작되는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된이상 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까 재벌의 뺨을 때리는 뉘앙스랄까. 나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루이자 클라크'는 자신이 고용된 6개월이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그에게 살아갈 의지를 불러일으키고자 최선을 다한다. 어떤 일들은 좌절을 주지만 어떤 일들은 기쁨을 준다. 그 과정에서 윌과 루이자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루이자는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를 사랑하니, 어쩌면 많은 것들을 극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그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으니, 그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그 결심을 어쩌면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고백은 진실했고, 그녀의 사랑 역시 진실했다. 그러나 루이자는 그로부터 '당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다.




"미안해요. 내겐 충분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을 내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말하기 전에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꼭 정확한 단어들을 골라야만 하겠다는 듯이.

"난 그걸로 안 돼요. 이, 내 세상은, 아무리 당신이 있더라도 모자라. 진심으로 말하지만, 클라크, 당신이 오고 나서 내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물러설 차례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곁에 있다면, 어쩌면 썩 괜찮은 삶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내'인생이 아니에요. 당신이 얘기를 나누었던 그 사람들과 나는 달라요. 그건 내가 원하는 삶과 전혀 다르단 말이니다. 비슷한 구석도 없다고요." (p.471-472)



"하지만 이 휠체어는 내 존재를 규정해요, 클라크. 당신은 나를 몰라요. 진짜 내 모습을. 이 물건이 있기 전에 날 본 적이 없잖아요. 난 내 삶을 사랑했어요, 클라크. 진심으로 사랑했단 말입니다. 내 일과 여행과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모든 걸 사랑했어요. 육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좋았어요. 바이크를 타고 높은 건물에서 몸을 던지는 걸 좋아했어요. 사업 거래에서 무자비하게 승리하는 게 좋았어요. 섹스도 좋아했죠. 숱한 섹스들을. 크나큰 삶을 누렸단 말입니다."

이제 그의 언성이 한층 높아져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이 물건에 갇혀서 살 수 있게 생겨 먹질 못했어요. 그런데 의도와 목적에 모두 반해 나를 규정하는 게 이젠 이 물건이 됐단 말입니다. 나를 규정하는 유일한 물건이 됐어요." (p.472-473)





누군가에게 사랑은 필요한 충분 조건, 혹은 단 하나의 유일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 앞에,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 두고 살아갈 의지를 다질 수 있다. 이 사람이면 돼, 나는 이 사람이면 살 수 있어, 하고.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사랑만으로 충분하지가 않다. 그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사랑은 있으면 물론 좋지만, 그거 하나만이 나를,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 아닌 사람. 나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에게 삶은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삶은,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에게 삶은, 모자라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른 게 다 없고 사랑하는 여자만 있는 삶, 그것은 그에게 모자라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만, 나 역시 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는 '충분하지 않은', '모자란'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 그것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여기서 이제 그만 끝내게 결심하게 하는 그 마음을, 나는 감히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그리고 그 삶이 그의 것이니 결정 역시 그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든 삶의 끈을 놓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 어쩌면 내가 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내가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 어쩌면 나 역시 절망감에 윌과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으리라. 



윌은 끝까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결정 내리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그래서 루이자에게도 본인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더 많은 것을 배우라고, 더 많은 것을 해보라고 얘기한다. 자신의 동네에서만 안주하는 루이자에게 그는 더 다양한 삶, 더 풍부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사실 나는 그가 이렇게 그녀에게 강하가 권할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말이 그녀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만약 내가 루이자였다면 내 삶에 대해 니가 이러쿵저러쿵 하진 말라고 화를 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말을 듣고, 어쩌면 그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가 자꾸 내 삶이 부족하다고 하면 내가 그 말을 듣고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러나,


윌은 루이자가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식구들에게 혹은 윌에게 얽매인 삶이 아니라 루이자 자신만을 위한 삶. 그가 그것을 진심으로 원했기에 루이자도 달라질 수 있었다. 루이자는 그를 만나기 전과 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윌 역시 그녀를 만나고 난 후에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 누군가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어쩌면 미리 다 예정되어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그것이 더 나은 쪽으로 바뀌는 거라면, 그 순간에는 신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도. 남자를 만나 정착하게 되도 자신을 위해 비상금을 숨겨 두라고 말하는 윌이 무척이나 좋았다. 내 인생을 바꿔놓고, 행운이라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 어떻게든 나 자신을 위해 살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끝내려 한다는 결정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 대체 이것을 어떻게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그를 붙잡고 매달리고 말리고 싶다. 그러나 '나를 위해' 네 삶을 연장하라는 말 역시, 그를 위해서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다.



 

몇번이나 눈알이 빨개졌다. 지하철 안에서도 핑- 눈물이 고여 힘들었다. 책의 처음부터 그가 자신의 죽음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사랑스러울 때마다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에게 삶의 의지를 불태워주려는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까 겁이 났다. 루이자가 해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끝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꼭 그만큼 끝을 알고 싶었다. 




업무가 시작되기 바로 전까지 이 책을 읽었다. 상사가 출근하기 바로 직전까지. 그래서 나는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달래며 고개를 쳐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의 결정을 존중해야하는것과 그의 결정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하는 것. 그 둘 중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야한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그래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드니까.



"혹시 이런 거 알아요?"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특유의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웃음. 목이 어깨로 이어지는 그 지점.

"뭔데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밖에 없다는 거." (p.388)




아...제기랄. 눈치 보면서 페이퍼 썼더니 힘이 쭉 빠지네. 

가끔은,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도 못해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저 388페이지를 읽을 때 그랬다.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던 적이 없었던것 같다. 일단 밤새도록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싶을 정도로 깨어있기를 원한 적이 없었다. 나는 밤에는 자고 싶어지니까. 상대의 자는 모습 같은거 밤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졸리니까 자자, 가 먼저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니까. 그러고보면 잠든 모습을 마냥 바라봐도 좋기만한건 내 조카를 볼 때 뿐이었던 것 같다. 아..조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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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8-26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
내가 기대했던 걸 모두 충족시켜 주는 페이퍼네요. 고마워 락방!!

뿌듯하다~ ㅎ

다락방 2014-08-26 14:58   좋아요 0 | URL
잇츠 마이 플레져! 므흣 :)

마태우스 2014-08-26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치 보면서 이런 장대한 서사시를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참고로 요즘 독서 열심히 했어요 그래봤자 8월에 읽은 책이 5권 정도밖에 안될 것 같은데, 다락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님이 있기에 출판계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참고로 오늘은 춘천에 다녀오면서 미미여사의 책을 읽었어요. 잠을 한잠도 못자게 만들만큼 재밌더군요 저랑 코드가 따악...^^ 아, 그리고 필립 말로의 유령퇴장도 읽고 있어요. 4분의 3 읽었는데 결말이 궁금하네요. 이것저것 읽는 스타일 땜시....

다락방 2014-08-27 10:51   좋아요 0 | URL

장대한 서사시라뇨, 마태우스님. 그저 긴 글일 따름입니다. 할 말이 하도 많아가지고 다다다닥 썼네요. ㅎㅎ

저도 며칠전에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 아내와 결혼했다] 였나 그 책을 사두었어요. [미국의 목가]도 그렇게 좋다길래 사려고 하는데, [유령 퇴장]도 사야겠네요. 책 읽는 속도는 결코 책 사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아요. 다 읽고 사자고 매번 결심하지만 번번이 무너지네요. ㅠㅠ

미미여사랑 유령퇴장 다 읽고나면 리뷰 써주세요 마태우스님. 즐거운 마음으로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

유부만두 2014-08-29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긴" 페이퍼 좋아요~ ^^

다락방 2014-08-29 13:51   좋아요 0 | URL
^________________^
 

처음으로 그녀는 그들을 갈라놓고 있는 물리적 거리가 터무니없이 멀게 느껴졌다. 몇 해 전 몇 번인가 편지를 보낸 그 주소에 그가 아직도 살 거라고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이사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됐을 것이다. 그녀와 마티아는 무의미한 것들 아래 묻혀서 보이지 않는 탄성을 가진 실, 서로에게서 자신의 고독을 알아본 그들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실로 이어져 있으므로. (p.370-371)


















알리체는 알리체대로 고독했고 마티아는 마티아대로 상처를 간직한 채 살고 있었다. 알리체와 마티아 모두, 문제를 바깥으로 드러내서 부모님과 울고 불며 대화를 했다면 지금보다 덜 고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도 아직 부모와 대화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그들이 고독한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두 사람 사이에만 보이는 실로 연결되어 졌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 그들이 그 실을 꼭 쥐고 있기를, 그 실 덕분에 그들의 서로의 고독에서 혹은 상처로부터 조금은 헤어나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맞는 절실한 상대임을 알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함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는 이토록이나 강하게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도 막상 만나고 나면 흐지부지 뒤돌아서고 만다. 그러나,


자신들이 보이지 않는 실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부러웠다. 만약 상대가 거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어떻게든 반드시 알게 될 거라는 확신. 그들은 그걸 어떻게 확신할까. 



나는 사랑하는 애인사이에도 이별이 존재하듯, 친구 사이에도 헤어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친구할 것이다, 라는 나의 확신이 무너진 적이 더러 있었으므로. 이제는 어떤 친구 사이도 깨어질 수 있다는 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든 혹은 특별한 경험을 함께 했든, 그건 그것대로 존재하되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영화 《비긴 어게인》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든다. 기분이 구렸다가도, 피곤했다가도 이 영화를 보노라면 기분이 좋은 쪽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심지어 '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 좋았다.



여자는 음악하는 남자인 애인을 따라 미국에 왔다. 애인의 음악에 많은 도움을 준 그녀이지만, 미국에서 그녀는 '그의 여자친구'로만 불릴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애인은 음반작업하다 만나게 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게되고, 이에 여자는 그와 거주하던 공간에서 짐을 싸고 나와 자신의 친구에게로 간다. 친구 역시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 앞에 선 여자를 보고는 달려가 안아준다.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한 게 아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에게 포옹이, 위로의 차 한잔이 절실하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에.


자신에게 낯선 지역에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 그녀의 작곡과 노래실력을 알고 몰락한 음반 제작자가 나타난다. 그는 딸에게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내에게도 남편이 되기를 포기한 채, 게다가 동업하는 음반사에서 쫓겨난 채 빈곤하게 살고 있었다. 여자를 만나 여자의 실력을 알아보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는 여자와 친해지게 된다. 친해지는 과정에서 서로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알게되고, 어느 순간에는 끼어들지 말아야 할 부분에 끼어들어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그들이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할 때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핸드폰안에 든 음악이 어떤 것이냐 묻고, 여자는 남자에게 그것을 말하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것이 되므로 밝힐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각자가 좋아하는 곡들을 이어폰을 나눠끼고 듣게 되는데, 이 음악은 정말 최고야, 이 음악은 정말 좋지, 하면서 그들은 늦은 밤 거리를 함께 걷는다. 앉아서, 걸으면서 음악을 공유하는 그 장면이,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서로에게 들려주고, 상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귀 기울여 듣는 그 장면이 정말이지 너무나 완벽하게 느껴져서, 그 장면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장면이 되었는데, 아, 역시 친구란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 싶어지는 거다.



음악에 대한 취향은 다른 사람과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 나에게 좋은 음악이 너에게도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또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그렇게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감상을 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하다. 아마도 일치할 수 없는 취향의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음악을 나누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곡을 보내주고 그가 나에게 곡을 보내주었던, 그리고 서로 그 음악을 들으면서 메신저의 작은 창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던 그 순간을. 그 순간은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했던가. 언젠가 한 번은 그 친구에게 '우리가 서로의 연락처를 잃어버린다면 우리 사이도 이걸로 끝' 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는 끝나긴 왜 끝나냐며, 나는 네가 어디 사는지도 알고,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도 알고, 네가 어딜 산책하는 지도 알고 있으므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아, 나도 그때는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탄탄한 실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속 남자와 여자는 깊은 밤까지 음악을 함께 들으며 다정해진다. 만약 거기에서 그들이 한 발 더 나아갔다면, 그들은 여느 남녀가 함께 보내는 평범한 밤을 보내게 됐을 것이다. 그들이 늦은 밤까지 함께 걸으며 같은 음악을 들었던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지만, 그 경험이 다음날 아침에 함께 눈뜨는 걸로 이어졌다면, 그것은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하는 것보다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감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함께하는 것만이 늘 답은 아님은 확실하다.



그들은 음악을 사랑했고, 그들 각자의 연인과도 음악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아니어도 이미 함께 음악을 듣고 나누었던 연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인들과 어떻게 됐던가. 



정말 필요한 건 늘 옆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순간, 그 특별함이 아닌가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우리가 함께 들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거기가 어디든 내가 읽은 책과 당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 감상을 교환할 수 있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간혹 찾아온다면, 집에 돌아가 불을 켜고 밥을 차리는 것이 온전히 나 혼자만의 몫이라고 해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들어가 욕실의 불을 켜고 샤워를 하면서 콧노래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특별한 누군가와 음악을 공유하고, 책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 순간 순간들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들이 내 행복한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저장될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생각하다가 아 좋았어, 하고 돌이켜 볼 수도 있을테니. 


문제는,

내가 음악을 잘 모른다는 거....구나. 그러니 뭐 상대에게 들려줄 만하다거나 할 게 없네. 상대가 들려줘도 딱히 할 말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준 것 같다. 아마 특별한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혹여 그녀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면, 영국에서의 삶을 살아낸다면 그들은 아마 앞으로 만나지 않게 될런지도 모른다. 남자가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아내와 음악을 공유하는 삶을 다시 찾는다면, 그들은 아마 연락도 뜸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잊지 못할 사람으로 남겨질 것이다. 서로 먼 곳에 살고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어도, 사 년이나 오 년뒤에 연락해도 활짝 이를 드러내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너무나 좋다. 어쩌면 그런 친구가 '이성'이어서 더 특별한 것 같다. '다르게 갈 수도 있지만 다르게 가지 않는' 데서 오는 그 특별함.












내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했던, 어떤 것들을 공유했던 친구는 있지만, 그 친구와 내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이 된건지는 잘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어느 한쪽만의 것이라면, 그것은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연결된 게 아니라고 해야할까. 

당신은 내 표정만 보고 내게 다가와 안아줄 수 있을까?


배고프다. 12월말까지 몸 만들어서 비키니 사진 찍어 친구에게 주기로 약속 했는데, 이렇게 허구헌날, 매시간 배가 고파서야 어디 몸을 만들 수 있겠는가. 다이어트는 자신과의 싸움인데, 빌어먹을, 나는 세상에서 자신과 싸우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니...이거야 원.... 말이 나와서 말인데, 공부 잘하는 것도 자신과의 싸움 아닌가. 나는 자신과의 싸움은 절대 피하는 사람이다.  여튼 4개월 남았는데....나 자신과 사이좋게 보내면서 그 날이 오면, 클라라 사진에 내 얼굴 합성해서 보낼까...혼자 조용히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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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여름 2014-08-2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모르지만 책은 알잖아요...흠...벌써 가을이구나 하는 글이었어요~~

다락방 2014-08-25 14:12   좋아요 0 | URL
아, 달콤한책님. 지금 이 댓글을 읽으니, 아 벌써 가을이네, 싶어집니다. 가을이 오네요. 제가 좋아하는 여름이 이제 끝무렵이에요. 아아 서운해요 서운합니다. 하아-

책읽는여름 2014-08-25 20:23   좋아요 0 | URL
저도 여름이 좋아요! 어쩌면 겨울이 너무 싫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남은게 겨울밖에 없어서 이맘때가 가을보다 더 쓸쓸해집니다그려^^

다락방 2014-08-26 12:03   좋아요 0 | URL
저는 싫은 계절은 없는데요 여름이 특별히 좋긴 해요. ㅎㅎ

레와 2014-08-2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말에 보고 싶은데, 하아.. 초조합니다. 끝나버리면 우짜지..

다락방 2014-08-26 12:03   좋아요 0 | URL
놓치지 말아요! 이거 인기 많다고 뉴스에도 나오던데. 이번 주말에도 하지 않을까? ㅎㅎ

건조기후 2014-08-2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예매했어용 ^^

다락방 2014-08-26 14:58   좋아요 0 | URL
아웅 건조기후님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4-09-0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긴 어게인 봤어요!!!!
더블잭으로 함께 노래를 듣고 같이 어깨춤을 추는... 어쩜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우리... 라고 우기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14-09-01 15:04   좋아요 0 | URL
아 보셨군요! 유부만두님도 그 장면이 좋으셨나요? 전 그 장면이 계속계속 생각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