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의 저자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많은 여성들이 남자와 연애할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상대방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자신 속에 내재된 풍부한 감성과 사랑의 능력을, 상대 남자의 매력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p.104)









한번은, 

연애중인 남자가 정말이지 무척, 좋아서 '이렇게 좋을 수도 있나?'라고 생각을 하다가 정희진의 저 말이 딱, 떠올랐던 때가 있다. 아, 가만있자, 정희진이 그 책에서 그게 '나의' 장점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라고. 그래서 나와 연애중인 상대에게, 정희진의 저 문장이 떠올라(라고는 하지만 실은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것) , 물었더랬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너의 매력 때문일까, 나의 사랑하는 능력 때문일까?


정말 그런 생각이 마침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는 아닐까? 내 안에 잠재된 감성과 사랑이 엄청나게 풍부해서, 그래서 이런 감정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었다. '다른 연애에 있어서도 네 감정이 지금과 같았었냐'고. 그러니까 이정도의 감정이 발현됐었는지 되묻는 거였다. 그래서 생각해봤었는데, 그러자 쉽게 답이 나왔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그의 매력 때문이구나, 하고.


이런 결론을 내려놓고 무심히 지내다가 또다시 불쑥, 생각하게 됐다. 정말 상대의 매력이 전부인가?


그렇게 생각을 또 해보다가 내린 결론은, 상대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내 안의 사랑하는 능력과 합쳐져서 당시의 연애에 대한 감정이 폭발한 것이라는 것. 상대가 매력적이지만 내 안의 사랑의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고, 내 안에 사랑의 능력은 발현되지만 상대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들이 생기겠지만, '어떤 사람'은 '나의 사랑하는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상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내 안에 숨겨져있던 '사랑하는 능력'이 최대한 발현되는 거지. 그러니까 이것은 백프로 상대의 매력도, 백프로 나의 능력 때문도 아니고, 나의 능력을 끌어 올리는 상대를 잘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



아..

졸 똑똑해...

나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가면 갈수록 공부를 못했지만(학사경고!!), 그래도 참..똑똑한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 혼자 생각하고 깨닫고 결론까지 다 나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늘 '혼자서도' 뭐든 잘 해내는 강한 사람을 열망했는데,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아닌가! 멋지다. 똑똑해!!





가끔,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데에 큰 보람을 느낀다. 며칠전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의 트윗을 보고 또 가슴이 뻐근해졌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내가 말하고 싶어 말하고 또 내가 글로 쓰고 싶어 쓰지만, 어쩌면 이런 나의 결과물들이 누군가의 생각을 대신해주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걸 자각하게 되면, 그렇게나 좋아지는 거다. 그래서 이걸 멈출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들을 내가 좋아해서. 가끔 익숙하지 않은 닉네임으로 비밀댓글들이 작성 되기도 한다. 네 글을 읽는게 즐겁다, 꼬박꼬박 들러 보고있다, 하는 글들. 그러면 또 막 어깨에 힘이 뽝- 들어간다. 나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이 일이 누군가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준다는 것에 대해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이걸 멈출 수가 없다. 내가 내 기분에 의해 내 생각에 의해 작성한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어제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글을 썼는데, 비밀댓글로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그 영화를 찾아 보았다고 말해주었다. 본인도 혼자 밥을 차려먹어야 하는데 그 영화를 보며 힘이 됐다고. 좋은 영화 추천 고맙다는 그 말이, 또 그렇게나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하더라.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알고 보게된 영화에 실망을 하기도 하겠지만, 만약 내가 쓰지 않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했을, 그런 영화가 됐을 수도 있을테니. 



며칠전에는, 네 글을 읽는게 내 휴식의 한 방법이다, 라고 말해준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어디에서 어느부분의 쓸모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이걸 멈출 수가 없다. 히히.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이응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 나만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 라고 생각했다. 신경숙의 표절이야 내게는 그다지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신경숙을 신뢰하는 작가의 군단에 넣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이십대에 신경숙과 함께 보냈다던 나의 지인중 1人은 이 일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도 그가 느낀건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만약 나도 내가 신뢰하는 작가의 표절 소식을 들었다면 대단히 좌절했을 것이다. 이깟 책, 읽어서 무얼해, 하는 생각도 하게 됐을 것이다. 허무함과 허탈함이 나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무슨 베스트셀러의 작가도 아니고, 또, 내가 쓰는 글이 뭐 대단한 글도 아니지만, 그저 일상의 작고 사소한 기록일 뿐이지만, 표절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나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고 스스로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 누군가의 글을 내 글인척 가져온다는 것을 나의 의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내가 나를 믿지만, 혹여라도 내가 인식하지 못한 채로, 읽었던 글을 내 창작인줄 알고 쓰게될까봐, 그건 좀 두렵다. 그게 좀 두렵지만, 또 거기에 있어서는 나의 친한 친구들이 지적해줄 수 있을거라 믿어본다. 지금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다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고, 그러니 내가 무언가 잘못된 문장들을 적는다면 알려줄 것이다.


신경숙의 표절을 고발하는 이응준은, 그 글을 완성해 세상에 드러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을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를 읽고있는데, 그래서그런지 사랑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사랑하는 능력을 충분히 가진 사람이고, 그렇기에 사랑받는 일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 모든게 가능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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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6-1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헬렌 켈러가 어디에선가 논문의 한 문장을 무심코 인용 없이 썼던가 해서 엄청 큰 곤혹을 치루었던 경험을 쓴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본인도 의식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저도 다락방님 말씀처럼 이 책 저 책 읽다 무심코 내 안에 들어와 버린 문장을 마치 내 것인양 쓰게 될까 때로 두려워요.

다락방님의 이야기들이 더없이 건강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몇 번이나 표절 논란 대목을 비교하며 읽어봤는데 이것은 무심코라는 말로 용인될 수준의 것이 절대 아니더라고요.

다락방 2015-06-17 14:26   좋아요 0 | URL
네, 블랑카님. 저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무언가를 가져다 쓸까봐 너무 겁나요. 인용하는 건 인용한다고 밝히고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제가 제것이 아닌 걸 혹시라도 모른채로 제것으로 할까봐 두렵네요. 하아-

신경숙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겠지요. 이번에도 또 흐지부지 되서 잠잠해지는 일은 없어야할텐데요. 이응준의 용기도 대단해요.

감은빛 2015-06-1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의 초기작품 몇 개 이후로 하나도 읽은 적은 없지만,
그 초기작 몇 개가 제법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에 저는 좀 충격을 받았어요.
작가로서 그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한 두개의 작품은 제 개인적인 추억과도 연관이 있어서 더욱 실망이네요.

다락방님의 글을 읽는 건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어요! ^^

다락방 2015-06-20 17:40   좋아요 0 | URL
히히. 감은빛님이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게 저는 참 좋습니다!

전 이번에 신형철에 대해서도 실망했어요. 뭐, 그사람 입장에선 그게 최선이었겠지만, 그래도 너무 안전선 안에만 머무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저는 신경숙보다 신형철을 더 좋아해서 그런가봐요. 아니, 이제는 `좋아했다`로 바꿔야겠어요.

Jeanne_Hebuterne 2015-06-18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누군가가 `아, 그 남자는 정말 제대로 사랑할 줄을 아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던데 순간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건 그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옆에서 오랜시간 지켜보고 얻은 결론이었어요. 무조건적이지도 않고 줏대없이 모든 걸 갖다바치지도 않고 때로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상대를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드러나는 사랑에의 능력이라..표현하기가 좀 어렵지만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는 것. 흙이 꽃을 피우듯 사랑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발현시키는 상대를 만난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저홀로 꽃필 수 있는 묘한 능력. 그건 참 태어나면서부터 공기처럼 호흡해서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몸 안에 쌓여 상대를 만나면 의도치 않게 숨을 뱉듯 조금씩 새어나오는 게 아닐까...그냥 생각해 봤어요.
상대의 매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다락방 님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일거에요.

다락방 2015-06-20 17:43   좋아요 0 | URL
네, 사랑할줄 아는 능력을 지니는 건 정말 크고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제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이라는 자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랑에의 능력은, 가장 기본적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것 같아요. 이게 안되면 그 다음이 진행되지 않거나 잘못 진행되는거죠. 그런점에서 쥬드님과 저는 충분히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을 떠올려봤을 때, 떠오르는 사람중에 쥬드님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그게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사람과 하는 연애가 건강한 연애가 되는 것 같고요.

Alicia 2015-06-1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글을 쓰시면 또 안읽어볼수가 없잖아요. 다락님 덕분에 몇달만에 책을 돈 주고 주문했습니다아~ 독서에의 욕구를 다시금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네, 책을 읽지 않는 동안 저는 그다지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진 않았어요. 다락님 덕분에 사랑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는 걸 배웠네요. ^-^

다락방 2015-06-20 17:44   좋아요 0 | URL
음, 책의 절반은 흥분하며 고개 끄덕이게 되는데 절반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여러 사람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책인듯 한데, 알리샤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정말 능력입니다. 아주 큰 능력이에요. 이걸 지니고 있다면, 잃지 않도록 해야하는, 아주 중요한 능력입니다. 앞으로 알리샤님의 시간들은 만족스런 시간들이 될 수 있었으면 해요.
:)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 못 살겠어서' (p.10) 책 속의 주인공 '계나'는 가족들을 두고 호주로 이민을 간다. 6년간 사귄 남자친구랑도 헤어지고 호주로 간다. 호주로 갔다가 잠깐 한국으로 여행와서 두달간 남자친구랑 함께 지내고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하지만, 여자는 다시 호주로 떠난다. 남자친구와 오랜 시간을 사귀었고 그래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마음 속에 많지만, 고맙고 미안해서 결혼할 순 없는거니까.



지명은 고개를 숙인 채 내 얘기를 들었어.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내가 오히려 묻고 싶었지.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나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평생을 걸어? 너무 고맙고 미안했어. 하지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는 없어‥‥‥. (p.161)



고맙고 미안하단 이유로 당신 옆에 있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나는 누군가가 고맙고 미안하단 마음으로 내 옆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는 없어, 라는 계나의 생각이 그대로 와닿더라. 고맙고 미안해서가 아니라, 네 옆에 있고 싶어서 네 옆에 있길 원한다. 마찬가지로 내 옆에 있기를 원한다면 그 마음이 '내 옆에 있고 싶어서'이길 바란다. 



지명은 잠이 들어 있더라. 침대 위에서, 옷을 벗은 채로. 아기 같은 자세였어. 나는 잠옷을 입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 침대에 앉았어. 조심조심 개한테 이불을 덮어 준 뒤에 옆에 앉아 맥주를 마셨지. 걔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아주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잠에서 깨어나면 얘는 나에 대한 의무감으로 섹스를 하려 들 거야. 그러면 나 역시 의무감으로 걔를 맞이하겠지. 서로 연기 아닌 연기를 해야겠지. 그런 섹스, 너무 슬프지 않니.

걔 얼굴이 과로와 수면 부족 탓에 검고 거칠거칠했어. 입주변이랑 턱에 거뭇거뭇하게 수염이 올라와 있더라. 이불을 덮기 전에 본 배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있었어. 얘가 아저씨가 됐네, 하고 정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더 짠하고 아프고 그렇더라고. 얘 이렇게 일하다 암 걸리는 거 아닌가 싶고, 내가 이 모습을 10년이고 20년이고 보다가, 그냥 얘는 매일 이렇게 열몇 시간씩 일하는 애다,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어떻게 하나 싶고‥‥‥. 막 눈물이 날 것 같았어. (p.156)




'로지 헌팅턴 휘틀리'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놓고 들여다보는데, 최근에는 속옷 화보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녀가 디자인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더라. '막스앤스펜서' 속옷 화보였다. 나는 왜 그녀가 속옷 디자이너도 겸한다고 생각했지? 뭣때문이지? 왜지? 암튼 그녀는 디자이너는 아니고 모델인듯. 어쨌든 그걸 들여다보는데, 정말 예쁜 거다.



그러자 다이어트의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몸이 되어,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입을 예쁜 속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속옷을 건강한 육체에 걸치면 아름다움은 극에 달하겠지. 그래, 막강 다이어트야! 스파르타식 다이어트에 돌입하자!!


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뉴스를 들으니 참..욕밖에 안나오더라. [한국이 싫어서]의 지명처럼 저렇게 열시간 이상 근무하며 피곤에 쩔어 지내면 뭐하나. 이 나라는 국민을 죽이고 있는데. 그러자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족발을 포장해오고 와인을 꺼내들었다. 잔에다 콸콸콸 와인을 가득 따라 꿀꺽꿀꺽 마셨다. 상추와 깻잎을 포개어 새우젓을 푹- 찍은 족발을 올려놓고는 남동생이 썰어둔 마늘과 고추를 얹어 한 입 가득 쑤셔넣었다. 마구 씹었다. 맛있었다. 아..맛있어..족발 콜라겐은 짱이야 ♡ 와인을 삼키며 족발을 맛있게 먹다가, 뉴스를 들으며 또 빡이 쳐서 욕하다가...아, 이 나라는 진짜 나의 다이어트에 겁나 방해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못끊게 해. 술 없이 도무지 들을 수 없는 뉴스들을 내보낸다. 나는 이 나라를 떠나는대신 이 나라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하고싶은데, 그게 가능할지나 모르겠다. 이미 늪에 빠져버린 건 아닌지... 하아- 자꾸만 깊게 빠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오늘 아침 또 로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아, 어제도 망했어, 이 나라 때문에 내 다이어트 망했어, 라고 생각했다. 건강한 육체, 예쁜 속옷은...내게 정말 꿈에서나 일어날 일인가. 다음 생애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주말에는 영화 [차일드44]를 봤다. 책을 무척 좋게 봤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도 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느 부분에 감동했었는지를 기억했다. 정부를 위해 일하며 정부의 말에 무조건 복종했던 레오가 '설마..이게 아닌건가?'라는 의심을 갖기 시작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그것이었고, 그런 그가 연쇄살인범을 잡고자 할 때 그를 도와주려는 알지도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레오의 성장은 약간 드러났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도와주는 장면은 죄다 없앴더라. 게다가 범죄자가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아예 설정을 바꿔버렸다. 영화는, 그저그랬다. 





이 영화 니가 좋아할 것 같아, 라며 예고편 영상을 받은 [리틀 포레스트]도 보았다. 보내준 예고편을 틀자마자 일본 영화라서, 으음, 나는 일본 영화는 별론데, 라고 생각하고 예고편을 보는데, 오!! 이건 자급자족 라이프!! 요리하는 장면들이 나오고 그 요리들이 꽤나 깔끔하다. 그래서 당장 굿 다운로드 받아서 보았다.


영화는 요란한 내용도 없고 어떤 사건도 없다. 그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농사를 짓고 밥 해먹고 간식을 만들어 벅는 소소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리를 하는 모습, 또한 그녀가 만들어둔 요리까지 '정갈하다'는 단어가 적합하겠다. 여름에는 땡볕에 나가 농사를 짓고 오니 땀이 뻘뻘난다. 그런 그녀가 식혜를 만들어먹고, 빵을 구워먹고, 잼을 만들어 먹는다. 이것은 마치 영상으로 보는 킨포크 테이블 같았다.









묵묵하게 자신이 먹을 밥을 자신이 준비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보기에 좋다. 게다가 혼자 정갈하게 밥상을 차려두고서는 그녀는 매번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에게 '잘먹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밤이 되면 온갖 곤충들이 날아들어 문에 붙고, 산에 가면 곰을 조심해야 하는 이 시골마을에서,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서로 만든 것을 나누어 먹는다. 한 번은 '밤조림'이 어쩐일인지 유행하게 됐는데, 저마다의 방식으로 밤조림을 만들어서는 마실와서 나누어 먹는다. 더운 여름, 여자도 식헤를 차갑게 만들어서는 마을에 사는 청년에게 전화한다. 와서 식혜를 먹으라고.


깜깜한 밤에 전화를 받고 여자의 집에 찾아온 남자는, 정말, 식혜를 먹는다. 그게 전부인 장면.



굉장히 담백하다. 한밤중에 둘이 식혜를 마시는 이 장면에서 친구는 '다른 걸'기대했었다고 했는데, 다른 걸 기대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더란다. 그렇지만 나도 혹여나 다른 걸(?) 기대했는 걸. 한 마을에 살면서 같이 일을 할 때도 있고 또 서로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기도 하는데, 한국이 싫어서 떠나게 된다면 이런 곳으로 떠나야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산수유를 따고 밤을 줍고 고구마를 말릴 수 있는 이 멀고도 조용한 시골.


여자는 어릴때부터 이곳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날아드는 온갖 곤충들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이 한적한 집에서 혼자 밤에 잠드는 것에 대해서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게다가 농사를 지을 때는 자기가 먹을 도시락도 정성스레 준비하는데, 이런 장면들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까도 친구와 긴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로지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얘기했었다. 로지 헌팅턴 휘틀리에게 관심을 갖게된 건 사실 제이슨 스타뎀 때문이었지만, 그 뒤로는 그녀가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에, 열심히 운동을 하며 자신을 가꿔가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녀는 제이슨 스타뎀과 오랜 연인이고, 그것이 내게는 무척 좋게 느껴지지만, 만약 그녀에게 제이슨 스타뎀이란 애인이 없었어도 혼자서 충분히 강한 여자일테고, 나는 그 점이 좋다. 안젤리나 졸리를 좋아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누구의 애인이기 이전에 그녀 혼자 일단 강한 사람인거다. 혼자 스스로 강한 사람이 또 혼자 스스로 강한 사람을 알아보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차곡차곡 자신이 할 일을 해가면서, 자신의 먹을 거리는 자신이 준비해가면서, 자신의 건강 역시 자신이 챙겨가면서 혼자서 충분히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게는 근사하게 느껴지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희망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그런 모습이기를 원한다. 




오늘 출근길에 양재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다가 화장품가게 앞을 지나는데 염색약 광고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색이 예쁘더라. 아, 나도 꼭 저색으로 머리 염색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사진출처는 사진 내의 블로그 주소)



한듯 안한듯한 갈색머리 말고 와인색 말고, 검정색 말고, 저렇게 눈에 확 띄는 노랑색으로 나도 하고 싶은데!! 주말에 할까? 하고 잠깐동안 멈춰 광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아-. 답은 '안된다' 였다. '하지말자'가 아니라 '안된다'. 내가 만약 지금 속한 이 부서가 아니라 다른 부서였다면 나는 기꺼이 염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유로운 부서에 있지 못하고, 내가 맡은 보직은... 이걸 허락할 수 없는.... 아아- 더 말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어렵게 다시 걸음을 사무실 쪽으로 옮기는데, 아, 하고싶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염색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단 하나의 답이 나왔다. 그 답은 바로,



회사를 관두는 것.



회사를 관두면 된다. 회사를 관두면 내가 노랑색으로 염색해도 된다. 지금 이 자리만 아니라면 내가 노랑색으로 염색해도 아무도 나를 터치할 수 없어! 나의 염색 자유를 제약하고 나를 구속하는 유일한 한가지가 바로 이 자리였다. 아아,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어쩌다 여기로 흘러오게 되었나. 



어쨌거나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게 돼 한숨 돌렸지. 거기 아니라 다른 데 붙었더라도 아무 데나 갔을 거 같아. 그러면 또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 나의 장기적인 커리어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냥 백수가 되지 않고 다달이 월급을 받는 게 중요했어. (p.17-18)




나도 그랬다. 나도 이 회사, 이 부서에 올 생각 같은건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전공을 살려서 이걸 해보자, 하는 생각 같은 것도 없었고, 이런 업종에 종사하고 싶다, 하는 것도 없었다. 내가 가진 꿈이라고는 타임지 표지모델을 할 수 있는 책을 한 권 써내는 것 뿐이었다. 회사를 선택하는 나의 기준도 까다롭지 않았다. 그냥 여기 왔다. 전직장을 관두고 백수로 잠깐동안 있으면서, 당시에 대학생이던 여동생의 수업에 따라 그냥 들어간 적이 있다. 원서로 진행되는 생물학 수업이었는데, 여동생은 교수 수업 듣기도 벅차니 옆에 앉아 필기라도 해다오, 했다. 그래서 나는 그래, 기꺼이 해줄게! 라며 뭔 말인지 모르면서 교수가 칠판에 쓰는 대로 여동생 책에다 부지런히 옮겨 적었다. 그러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오는데 전화가 왔고, 그 회사가 이 회사였다. 면접 보러 오라고..그래서 면접을 봤고, 나는 면접만 봤다하면 최강 매력 캐릭터라 붙을 수 밖에 없으므로, 붙었고, 그래서 다니게 되었는데, 다니다가 또 최강매력캐릭터가 뿜어져나와 지금의 부서로 스카웃되었...다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여튼 그런데 지금 이 부서에서의 나는 염색을 해서는 '절대' 안되는 거다. 아, 노랗게, 샛노랗게 물들이고 싶다!!!!!



회사를 그만두고 염색하자!

했다가 현실 감각이 금세 돌아온다. 

그래서 이렇게 바꿨다.

회사를 그만두면, 그때 염색하자.



회사가 싫어서 떠나고 싶고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싶다.

야, 나랑 바다로 놀러갈래? 라고 남동생한테 문자 보냈는데, 이새끼는 답이 없다...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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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5-06-1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회사 다니기 싫어서 ˝그만둘까?˝ 라고 친구한테 보냈더니 ˝nono˝ 라고 답이...
˝왜?˝... 그랬더니 ˝암튼 다녀.˝ ... ㅠㅠㅠㅠㅠ `리틀 포레스트`는 보고 싶네요.

다락방 2015-06-16 15:12   좋아요 0 | URL
전 회사 그만두는 것도 그만두는 거지만 지금 당장 뛰쳐나가고 싶어요. 아..앉아있는게 너무 지겨워요. ㅠㅠ 흑흑 그렇지만 그랬다가는 앞으로 술 마시기도 책 사기도 어려워지겠죠. ㅠㅠ

저는 리틀 포레스트 2 편 예매해 뒀습니다. 이번주에 볼거에요. 씨네코드 선재에서 상영중이더라고요. 헤헷

2015-06-16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5-06-1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영화는 영화일뿐. 지금의 나는 저 영화를 온전히 즐기지 못할 것 같아요.
땀흘리며 일하고 들어와서 식혜를 만들고 빵을 굽고 잼을 만든다..

흠..

일단 식혜는 안 만들어봐서 모르겠으니 패스하고,
빵을 구울려면 짧게 잡아도 3시간은 걸리는데, 3시간 동안 반죽하고 발효시키고 공기빼고 다시 발효시키고 오븐에 굽고.
이때 나오는 설거지는은??
잼을 만든다. 잼 만들 과일을 따와서 씻어서 말려서 설탕넣고 불 앞에서 내내 젓어줘야 하는데, 대략 한시간. .
(설마 영화에서 잼만드는 기계를 쓸거 같진 않고)

땀 흘리며 일하고 들어와서 먹기위해 또 다른 노동을 한다는건, 지금의 나에겐 무리..
삶이 영화처럼 낭만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풀무원 평양냉면도 그럭저럭 먹을만하고.. ^^


다락방 2015-06-16 15:27   좋아요 0 | URL
영화를 안봐서 하는 말인게 맞네요, 레와님.
일단 영화에서는 더운날 집 안에 습기가 차서 그걸 집 안에 있는 스토브에 불을 때워 보송보송한 공기를 만드는데, 그 불을 그대로 두기보다는 그 안에 반죽을 넣고 빵을 굽는 거에요. 노동이라기 보다는 자원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느낌이 듭니다. 오븐에 굽지 않아요.
땀 흘리며 들어와 먹기 위해 또다른 노동을 한다는 건 물론 힘이들지만, 주인공이 영화속에서 흘리는 땀은, 자신이 먹을 음식의 식재료들을 마련하는데 드는 땀이고요(회사를 다녀오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노동으로 손에 들어오게된 그것을 어떻게 맛있게 보관하고 요리해 먹을까 하는데서 `노동`보다는 삶에 대한 정갈한 태도가 보여져요. 식혜를 만들어두고 더워서 목이 타들어가는 날 두 컵 연달아 따라 마시며 아 좋다- 하는 건, 또 그나름의 쾌락일테고요. 맛있는 걸 만들어서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도 무척 좋아보였어요.

전 이번주에 2편 보기 위해 예매해뒀습니다.
:)

스윗듀 2015-06-1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그래도 바다가자고 할 남동생, 툴툴거리면서도 따라갈 것같은 남동생 있는 거 부러워요~ 아직 답 안왔어요?

다락방 2015-06-17 11:24   좋아요 0 | URL
미친것같냐?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 라고 왔는데, 이내 묻더라고요. `어디 가고 싶은데?` 라고. 근데 그 뒤로는 제가 답을 안했어요. 7월초에 이미 친구랑 바다를 가기로 했고 그 전에는 시간이 안될것 같아서.. 히히. 남동생하고도 둘이 가고 싶어요. 녀석과 제가 식성이나 이런게 비슷해서 같이 가면 되게 편할 것 같아요. 히히히.

2015-06-16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7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5-06-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한국이 싫어거 계까지 든다고 하더군요^^;;;

다락방 2015-06-17 11: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어딘가에서 그런 글을 본 것 같네요. ㅎㅎ
 

책장엔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수십권인데, 왜,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은 없지? 어째서, 지금 읽고 싶은 책은 새로 사야할 것같은 생각이 들지? 왜지? 왜!! 책장에 저렇게 안읽은 책이 많은데 읽을 만한 책은 없는거지? 왜지?

책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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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06-16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그러한데 음반도 그러해서 서 있고 누워 있고 쌓여 있고 겹쳐 있고 그래서 조화롭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고. 그런데 여전히 새 식구는 줄줄 모르고.

다락방 2015-06-16 08:55   좋아요 0 | URL
저는 진짜 부지런히 내다팔거든요. 음반도 DVD 도 책도 내다 파는데 그래도 여전히 계속 쌓여있어요. 내다파는 것보다 더 많이 들이나봐요. ㅠㅠ

그렇게혜윰 2015-06-1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당첨된 딱풀 마감일이라 5만원어치 샀다요...이게 뭔...^^;; 악착같이 다 읽을 거예요ㅠㅠㅋ

다락방 2015-06-16 08:54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짐요 ㅋㅋㅋㅋㅋㅋㅋㅋ딱풀 마감일이라 5만원어치 샀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악착같이 다 읽으세요, 꼭!!! 화이팅!!!!

blanca 2015-06-1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렇다니까요. ㅋㅋ 그래서 저는 꾹 참고 있는 책 하나 하나 열심히 읽으려고 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어요. ㅋ

다락방 2015-06-16 09:21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그렇게 다짐하고 또 한단 말입니다. 흑흑 ㅠㅠ 그렇지만 결과는 ... Orz

바람향 2015-06-16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내보내지도 못하고 있네요ㅠㅠㅋㅋㅋ

다락방 2015-06-16 09:27   좋아요 0 | URL
처음이 어렵지, 한 번 내보내기 시작하면 탄력 받습니다. ㅋㅋㅋㅋㅋ

capsyong 2015-06-1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요? 저는 가끔 안 읽은 책 중 뭘 읽어야하나 못 고를 때 무게를 잽니다. 젤 가벼운 걸 먼저... ㅋㅋ

다락방 2015-06-16 12:05   좋아요 0 | URL
오! 무게를 재는 건 제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법이에요. 다음엔 그걸 한 번 해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

비연 2015-06-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느끼는 거에요. 안 읽은 책들이 있는데 또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이 생긴다는 거. 그래서 어제.주문을...ㅜ

다락방 2015-06-16 13:52   좋아요 0 | URL
분명히 읽고 싶어서 산 책들인데 말입니다. 왜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겁니까? ㅠㅠ
 

내 노트북은 윈도우8인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림판이 어디있는지를 모르겠어서(예전에 친구가 알려줬는데 까먹었다 -_-) 캡쳐를 하지 못하겠다..제기랄.. 여튼, 그러니 캡쳐 대신 다 풀어서 써야겠다. 내가 다른 알라디너의 서재에 달았던 댓글이 길어서 캡쳐 하려고 한건데..

 

지난주에 한 알라디너의 페이퍼에서 [매드맥스]가 왜 페미니즘 영화인지 갸우뚱하다는 글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그렇다고 댓글을 달았더랬다. 나도 이 영화가 페미니즘영화로 불려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왜'그런지는 알지 못하겠기에 갸웃, 했었던 거다. 아마도 그동안의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여자들의 캐릭터가 나와서가 아닐까, 라는 댓글을 달고는 다시 업무로 돌아왔는데, 자꾸만 여기에 신경이 쓰이는 거다. 왤까? 왜지? 어떤 것 때문일까?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지금 잡지 못한 그 뭔가가 뭐지?

 

그 댓글을 달고 한시간여가 지났을때, 그때 갑자기 '딱'- 하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드 맥스]의 그, 한 장면. 그건 임모탄의 여자들이 탈출하고 나서 정조대를 끊어버리는 장면이었다. 그러자 아! 하면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영화속 여자들은 남자의 소유물이었다. 그들의 성적인 것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안락하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까지(어떤 여자는 돌아가고 싶어하기도 한다, 순간이지만), 이 모두가 임모탄의 권력 아래서 행해졌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것이 '옳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거기서 탈출하고자 한다. 탈출하는 과정은 당연히 힘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탈출했을 때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이미 탈출해 있었던 얼마 안되는 다른 나이든 여자사람들' 이었다. 아, 이것은 페미니즘이 여태 걸어온 길이 아닌가. 힘들게 걸어서 여기까지 온, 바로 그것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렇게 걷는 중에 대부분 남자사람들의 멸시를 받지만, 그 와중에도 도와주고자 하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에선 그걸 맥스가 하고 있지 않나. 맥스도 처음부터 도운 건 아니지만, 그들의 옆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들과 함께하며 돕지 않나. 또한 그녀들은 어떤 걸 선택하고 결정했나. 더이상은 스포일러가 되니 말하지 않겠다. 다만, 임모탄의 여자들이 걸어가는 길, 또 걸어갈 길,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아닌가 싶었다. 아, 조낸 힘들었다. 총 열나 쏴가지고 ㅠㅠ 군대를 끌고와 ㅠㅠ 어휴....

 

 

정조대를 끊는 바로 그 장면(우리의 성은 너의 소유가 아니야!)을 떠올리고 나자 그 앞뒤의 장면들까지 휘리릭 눈앞에 스쳐가면서, 아, 말하고 있었구나, 보여주고 있었어! 하는 깨달음이 뽝- 왔다. 그러다가 오잉? 이런걸 스스로 깨닫다니, 나란 인간이 많이 똑똑하구나!! 하는 깨달음도 왔다(응?). 아...그동안 책 읽어가며 공부한 보람이 이런건가.. 내가 페미니즘의 도전을,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어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는건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십년전보다 이년전보다 어제보다 더 똑똑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멋지다!!

 

더 읽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 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예요?"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제니 추(Jenny Chiu)라는 여성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p.182-183)

 

 

 

 

 

 

 

 

 

 

 

 

 

 

십년도 더 전의 일인것 같다. 이십대중반. 친구들과 늦게 까지 술을 마시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남자사람친구1이 내가 타고 갈 택시를 잡아줬다. 택시의 앞문을 열어 기사의 옆자리에 타고는 그와 인사를 하고 택시가 출발했다. 택시기사는 내게 '저사람이 네 남자친구냐' 물었다. 그는 나의 애인이 아니었지만, 이 기사가 묻는 의도가 뭔지를 모르겠던지라, 혹여라도 내게 집적대려는가 싶어 '그렇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사귄지 얼마됐냐'고 또 묻는 거다. 뭘까, 의도가 뭘까, 왜 이런걸 물을까? 싶어 '삼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삼년이면 잘 거 다 잤겠네' 라고 기사가 내게 말했다. 그때 온 몸에 털이 다 서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이건 뭐지?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기사는 계속 얘기했다. 그러면 젖꼭지 색깔도 찐하겠네? 라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라고 말하고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는것조차 너무 무서웠다. 만약 그렇게 말했을 때 이사람이 나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운전대를 그가 쥐고 있는 상황인데 나의 이 말을 오히려 기분나쁘게 받아들인다면, 나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나. 무사히 귀가하는 게 내가 바라는 가장 큰 일이었다. 기사는 대답없는 나에게 '왜그러냐, 우리나라도 여자들이 이제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며 계속 얘기했다. 신혼여행 가면 남자들은 여자들 젖꼭지 색깔로 여자가 처녀인지 아니인지를 알 수 있다, 여자들은 그래서 속이면 다 들통난다, 이렇게 말하는 내 말이 불편하냐? 그러면 안된다, 개방적으로 다 얘기해야 한다... 정말이지 죽을만큼 무서웠다, 내려달란 말도 못할만큼 무서웠다, 내려달란 말했다가 기사가 화를 내면 그게 나에게 더 크게 화가 되어 돌아올까 무서워서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꿀먹은 벙어리마냥 앞만 쳐다봤다. 이러다 나를 건드릴까봐 무서웠고, 운전대를 다른데로 돌릴까봐 무서웠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맞는지 계속 앞을 봤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때 여기에요 라고 말하고 계산하고 내리면서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울면서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나를 또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 일에 대해 그 후에 친구들과 얘기했을 때 모두가 내게 그랬다. 왜 앞자리에 앉았냐고, 뒷자리에 앉아야 하는 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부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에 다짐을 했다. 지금이라면 경찰에 신고한다든가,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든가,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건다든가 어떤 행동을 취했겠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내가 집 앞에 무사히 내렸다는 것, 그게 너무도 큰 다행이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 남자들과 내가 같이 술을 마셨고 같이 밤늦게 들어가는 데 나는 무서워해야 하나, 밤늦게 집에 가는 내가 왜 잘못인건가, 내게는 택시 앞자리에 타는 게 왜 잘못한 일이 되는 걸까? 왜 내 실수인걸까? 만약 내가 남자사람친구와 같이 탔다면, 그때도 택시기사가 내게 여자도 개방적 운운하며 젖꼭지 색깔을 얘기할 수 있었을까?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드넓은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니면 아예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건물 안에 있어라. (감금은 호시탐탐 여성을 감싸려고 대기하고 있다.)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다른 처방법을 주장하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해가 진 뒤에는 캠퍼스에서 남자들을 몽땅 몰아내자는 처방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논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남자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p.111)

 

며칠전 친구가 내게 그랬다. 너는 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라 세상을 필터링해 보질 못한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그렇다, 라고. 아! 필터링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네가 살아온 세상이고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택시타는 것조차도 무서워해야 하는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필터링해서 페미니즘에 접촉할 수가 없다. 내게는 이게 삶이고 바로 현실이니까.

 

물론, 그 기사를 제외한 다른 많은 기사들이 내게 그런 식으로 무서움을 직접적으로 주진 않았다. 그 기사 하나보다 더 많은 좋은 기사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택시탈 때 무섭지 않을 수는 없다.

 

 

물론 여성도 온갖 심각하게 불쾌한 짓을 저지를 수 있고, 여성이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폭력에 관해서라면 이른바 성(性)의 전쟁은 유달리 일방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현임(여성) 총재는 전임(남성) 총재와는 달리 고급 호텔에서 직원을 성폭행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군대의 고위 여성 장교들은 남성 장교들과는 달리 성폭행으로 고발된 일이 없으며 스튜번빌의 남성 풋볼 선수들과는 달리 젊은 여성 운동선수들은 의식을 잃은 남자아이의 몸에 소변을 볼 것 같지 않거니와, 남자아이를 겁탈한 뒤 그 사실을 유튜브오 트위터에서 동영상과 글로 떠벌리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 같다.

인도에서 여성 버스 운전사가 친구들과 작당해 남성 승객을 심하게 성폭행함으로써 피해자가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은 한번도 없었고,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여자들이 때로 몰려다니면서 남자들을 습격함으로써 뭇 남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일도 없었으며 전체 강간 사건의 11%를 차지하는 친아버지나 의붓아버지의 강간에 대응하는 어머니들의 강간은 없다. 미국의 수감자들 가운데 93.5%는 여성이 아니다. 물론 그중에 꽤 많은 수는 애초에 그렇게 갇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겠지만, 어쩌면 그중 일부는 폭력성 때문에라도 그렇게 갇혀 있어야 옳을 것이다. 우리가 폭력성을, 나아가 그들을 더 잘 다룰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이름난 여성 팝 가수 중에서 자기 집에 들인 젊은 남자의 머리를 총으로 날려버린 사람은 없다. 필 스펙터(Phil Spector)는 그랬다. (스펙터는 라나 클라크슨 Lana Clarkson을 엽총으로 살해한 죄로 예의 93.5%의 대열에 끼었는데, 그녀가 그의 구애를 거부한 게 이유인 모양이었다.) 여성 액션 영화 스타 중에서 가정폭력으로 고발된 사람은 없다. 앤젤리나 졸리는 멜 깁슨이나 스티브 매퀸이 했던 짓을 하지 않는다. 유명 여성 영화 감독 중에서 열세살 아이에게 약을 먹인 뒤 아이가 계속 "싫어요"라고 말하는데도 성폭행한 사람은 없다. 로만 폴란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58-59)  

 

 

SNS를 하는게 내게는 공부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한 바를 들려주는 것을 계속 보고 있다. 책을 읽고 내 경험을 얘기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걸어가다 보면, 나는 매드맥스의 스쿠터 여자전사들처럼, 그렇게 앞에서 길을 닦아주고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앞에서 스쿠터를 타고서 기다리다가, 정조대를 끊고 옳지 않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여자들을 맞아주며 안아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와 또 정조대를 끊고 도망치는 많은 여자들은 또다른 맥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임모탄의 부하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겠지만, 맥스도 늘어갈 것이다. 눅스가 그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또다른 눅스를 우리는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일요일이 이제 16분 밖에 남질 않았다. 일요일 밤에는 늘상 일찍 자려고 하는데, 밤만 되면 잠을 잘 수가 없어..하아- 일부러 낮잠도 안자는데 다 소용없고 부질없다. 잠이 안와... 우앗, 이렇게 쓰는데 15분 남았다. 일요일 밤의 시간은 잘도 흘러가는구나. 이제는 침대로 가 누워야겠다. 차일드44영화에 대한 것도, 리틀 포레스트 영화에 대한 것도 쓰고 싶은데, 오늘은 이만 잠자러 가자. 페이퍼는 근무시간에 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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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월요일 아침부터 미안해요.
    from 마지막 키스 2015-11-09 09:21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 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예요?"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
 
 
AgalmA 2015-06-15 0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에 동조한다는 남성조차도 여성들의 이 잠재적 공포와 불안을 (생물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전폭적으로 이해하긴 어려운 거 같아요. 여성이 당하는 빈도수를 잘 모르기도 하려니와, 체감하지 못한 이성적 이해인 것도 한계일 테고,, 여성을 대상화해서 보는 시각과 메커니즘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용인되어 있어 사실 여성 본인도 곰곰이 되짚지 않으면 놓치는 상황도 워낙 많으니까요.
˝성 개방화 발언˝도 양날의 칼로 작용하기 십상인데, 악질적인 것은 강력히 대응할 수 있지만 ˝자유˝ 운운하며 여성의 불편을 고려하지 못한 미숙함은 문제를 더욱 난항에 빠지게 만들죠. 이해하고 있다는 사람에게 그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화하기는 더 어려우니까요. 동조자까지 든든하다면..... 이런 식은 비단 페미니즘만의 상황이 아니죠....

다락방 2015-06-15 15:42   좋아요 0 | URL
네, 아갈마님. 저도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페미니즘에 동조한다고 말하는 남성들조차도 전폭적인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니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동조하지만, 이해하지만, 이라고 전제하면서요. 말씀하신대로, 저 역시도 지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면서도 제가 놓치는 부분도 많을테고요.

여자들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고 있는게 현실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현실을, 이 공포를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요. 애초에 다르게 태어나서 한 세상에서 다르게 자랐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왜그럴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갈마님. 그런 남자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무언가 놓치는 건 없는지 계속 생각해봐야 할 일이고요.

여름 2015-06-15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어요. 저도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랑 페미니즘의 도전 옆에 두고 메모하며 비교해가며 읽고 있었는데 다락방님이 이럴게 멋진 리뷰써주셔서 반가웠어요. ㅎㅎ

다락방 2015-06-15 15:43   좋아요 0 | URL
여름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또 책도 읽고 하면서 우리가 여기에 대해 이해하고 생각하고 드러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여름님도 충분히 읽고 생각하시고 또 글로 이야기도 많이 해주세요.
:)

hellas 2015-06-15 0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적 추근거림과 추행의 역겨운 역사가 책한권은 될정도로 있네요. 택시에피소드는 뭐 말해뭐한답니까. 비일비재...ㅡㅡ 저도 이 책 읽으면서 피꺼쏟 해서 관련책 몇권 더 샀어요.

다락방 2015-06-15 15:46   좋아요 0 | URL
네, 이루말할수 없는 많은 폭행의 흔적들을 개개인마다 다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헬라스님. 제가 어릴때의 성추행 또 어른이 되서의 성추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여기저기서 자기 경험도 얘기해요. 아, 이게 나혼자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아-

마립간 2015-06-15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조대를 끊는 바로 그 장면 ; 이것이 여성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확실한데, 이것을 실천하는 것 여부가 관건이겠죠.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 남자도 가끔 그런 것을 느끼며, 특히 아버지가 딸에게 이런 점을 이야기할 때는 같은 개념이 여성주의로 읽히지 않고, 남성주의로 읽힙니다.

총 열나 쏴가지고 ㅠㅠ 군대를 끌고와 ; 여성의 군입대나 여성 군대의 창설이 필요하겠군요.

2015-06-15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6-15 15:47   좋아요 0 | URL
비밀글에 대한 것까지 함께 답할게요, 마립간님.

저는 마립간님과 제가 서로 자기 말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화가 잘 안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벽보고 얘기하는 기분인데, 이건 마립간님도 그러실 것 같아요. 대화란 주고 받는 건데, 저희는 서로 주는 것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ㅆㄹㄴ 2015-06-15 0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립간 / 속 들여다보이는 소리 하지 말고 좀 닥치라고 권하고 싶군요. 아무데나 끼어서 ˝나 남자입네˝ 하는 꼬라지 재수 없어 죽겠습니다.

표맥(漂麥) 2015-06-1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판 캡쳐가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위와 같은 용도에 아주 간편하게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알캡쳐나 안카메라 구버젼 같은게 그림판 보다 훨 편하답니다...(에고~ 괜히 아는체...)

다락방 2015-06-15 15:48   좋아요 0 | URL
알캡쳐..안카메라...이건 또 다 뭡니까 ㅎㅎㅎㅎ 저는 컴맹이라서 이런 단어들에 멘붕이 옵니다, 표맥님. ㅎㅎ
그렇지만 집 놋북에 한번 검색해서 깔아볼게요. 왜냐하면 그림판을 못찾겠으니까요 ㅠㅠ
고맙습니다 :)

2015-06-1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상의 작은 성희롱들이 실제보다 더 위협적인 거라고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도 가부장제 사회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웬만한 경우 그런 헛소리를 할 때 진짜 쎄게 나가면 짜게 식는 사람들도 많을 거거든요. 이른바 ˝쎈 언니˝한테 찝적대다 연신 미안하다고 싹싹 비는 상사의 모습을 본 적 있어요. 사실 애초에 ˝쎈 언니˝들한텐 농담이라도 성희롱 잘 안하죠. 하지만 사회는 여성에게 ˝이렇게 강하게 나가면 퇴치할 수 있다˝라고 학습시키는 대신 ˝상관이 기분 상하지 않게 돌려말하라˝(군대 성희롱 대처 매뉴얼에 대한 기사에서 봤음)고 말하죠. 아니면 저런 놈들은 싸이코패스여서 확 돌면 더 큰일날 수 있다고 겁주면서 실제보다 몇 배는 더 큰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거나요. 제 말이 ˝그래서 피해자가 잘못한거다, 니네가 강하게 대처하면 된다˝로 오독될까 걱정됩니다만 그런뜻이 아닙니다. 사실 저도 이렇게 머리론 생각하지만 막상 그상황에 닥치면 온몸이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힘으로 하면 여자는 절대 남자를 이기지못한다˝고 주입되는 메시지가 여자를 더 약하고 겁 많게, 남자는 더 기세등등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락방 2015-06-15 15:52   좋아요 1 | URL
롸님, 어떤 뜻인지 알고 있습니다. 오독될까 걱정하는 마음까지도 이해하고요. 그렇지만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처럼, 막상 닥쳤을 때 어떤 액션을 취한다는 게 너무나 어렵더라고요. 저도 그런 일들이 닥치기 전에는 생각해요. 두 눈 부릅뜨고 크게 소리쳐서 그새끼한테 개쪽을 주자! 라고. 그러나 막상 닥쳤을 땐 정말 숨쉬기도 힘들만큼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심지어 악 소리 조차 내지 못하겠더라고요.

반면 회사에서 다른 여직원을 성희롱하는 상사에게 큰소리로 다 듣는데서 `그러다 고소당하는 수가 있다`고 한 적은 있어요. 아마 제가 직접당한게 아니라 공포가 덜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당했던 직원들은 말하지 못했거든요. 그 상사는 제게도 그러지 못했고, 제가 있는 데서도 그러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저 없는데서는 또 그랬다고 하더란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하아-

별족 2015-06-15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드맥스,가 여성영화인가, 계속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여성을 도구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열광할 만큼 제 기준이 `낮지` 않아서요.
`여성영화`라는 게 무얼까,도 계속 질문하고 있어요.
여성이 권력을 쟁취한 다음이, 더 나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구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채 하는 `관대한` 영웅물에 뚱해 있어서, 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같이 순수하던 혁명이 자라면서 비굴해진다던 어떤 묘사처럼, 언제나 그 다음, 티끌같은 일들이 쌓이는 순간들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수도 있구요.

다락방 2015-06-15 15:58   좋아요 2 | URL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여성을 도구적으로 그리지 않아서 열광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별족님.
저역시도 이것이 여성영화인가,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우리의 윗세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에 대해 움직였던 것들을 보여줬다고 생각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리란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담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권력을 쟁취한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여성을 억압하고 있던 권력을 바꾸고자 한다`가 답이라고 생각하고요. 만약 여성이 권력을 쟁취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더 나은` 결과와는 거리가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직 평등조차 먼 일로 느껴지네요.

말씀하신것처럼, 저도 그 생각은 하고 있어요. 여성영화 라는게 무얼까? 하는 거요. 여성영화는 뭘까요, 별족님? 단순히 여자주인공 이라서 여성영화가 되는 건 아닐텐데 말예요.

마태우스 2015-06-15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생각을마니하게해주는글이네요 매드맥스가 페미영환걸 저두지금알앗어요 카체이싱영화라생각ㅠ그나저나 저두가르치녀한다 이책다읽었어요 리뷰쓸게요

다락방 2015-06-15 15:59   좋아요 1 | URL
마태우스님의 책 리뷰 궁금합니다. 기다리고 있을테니 꼭 올려주세요, 마태우스님.
분량도 적은 책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죠?

레와 2015-06-15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건 다락방 잘못도 우리 잘못도 아닙니다.

오늘 읽은 아이즈의 테일러 기사에도 관련 내용이 있어 첨부합니다.
` 타일러는 [비정상회담] 15회 ‘일도 아이도 포기 못하는 나, 비정상인가’라는 워킹맘 박지윤의 질문에 대해 “박지윤 씨가 남자라면 비정상이라고 할까? 왜 여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며 그 질문 자체에 깔린 차별적 시선에 대해 비판했다.`
전체 기사는 :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5061409387233351

다락방 2015-06-15 17:51   좋아요 3 | URL
난 저 프로그램을 안봐서 잘 모르겠지만 타일러가 힘겨울 거란 생각은 충분히 드네요. 게다가 박지윤씨가 남자라면 비정상이라고 할까? 라는 질문이라니. 우문현답이네. 아, 이런거 여자`만` 고민하는게 너무 빡친다..

지금은 내가 잘못된 게 아니란 걸 알아요. 그렇지만 저 당시에는 택시의 앞자리에 탄 내가, 술 먹고 늦게 귀가하는 내가 조심해야 하는거라고 다들 말했어요. 아 또 빡친다.

오늘은 이런 글을 내가 여기에 쓰고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누군가가 읽고 생각을 말해주고 그런 것들이 가능해지잖아요. 이렇게 내 생각을 얘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고, 또 누군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좋아요.

링크해준 기사도 잘 읽었숑, 레와님.
:)

여름 2015-06-15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읽고 무심히 댓글 달았는데 문득 제 경험이 떠오르네요. 학교에서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한 녀석이 `쌤, 페미니스트에요? 꼴페는 아니죠? 피곤하네` 라는 말 했던 거. 아이라서 그냥 나무라고 말았는데 어린 애들이 사회 나오기 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게 참 무섭단 생각이 드네요. 저는 정희진의 `패미니즘의 도전`읽으며 언어에 반영된 남성위주. 혹은 권위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어요. 두고두고 읽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많은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락방 2015-06-16 08:59   좋아요 1 | URL
꼴페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서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주잖아요. 다른 단어보다 더 그러한 것 같아요. 전 일전에 친구로부터 `너 그러다가 꼴페되기 십상이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어마어마한 충격이 오더라고요.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할까? 하고 말이지요. 페미니즘에 꼴페를 붙인다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을 모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하아-
그나저나 저는 어릴때 페미니즘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책을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있죠. 어쩌면 그 학생도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주변에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아이가 저절로 `아,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나?` 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여름님, 우리 계속 같이 생각해요.
 

이거 찾느라 기빨림 ㅜㅜ
아ㅜ힘들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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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6-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토너 원서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고 있는데... 원문으로 보니 또 느낌이 다르네요. 책에 대한 갈망을 샘솟게 하는 다락방님ㅠㅠ

다락방 2015-06-12 17:20   좋아요 0 | URL
저는 책장에 꽂아두려고 샀어요. 어흥- ㅋㅋㅋㅋㅋ

하늘바람 2015-06-1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궁 왠 영어래유

다락방 2015-06-12 17:1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웬 영어가 ㅋㅋㅋㅋㅋ 아 힘들어요 ㅋㅋㅋㅋㅋ

수이 2015-06-1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펼치고 싶은! 하지만 딱 두 페이지 읽고 접어서;;;;;

다락방 2015-06-12 17:18   좋아요 0 | URL
저는 읽을 엄두도 못내고요 ㅋㅋㅋ 저 문장을 찾기 위해 애를 썼을 뿐입니다! ㅎㅎ

스윗듀 2015-06-12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기빨린덕분에 우리만 좋다능 ㅋㅋㅋ

다락방 2015-06-12 17:18   좋아요 0 | URL
번역서에서 몇 페이지였나 확인한 뒤 이쯤 있겠군,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았습니다. 하아- 토할뻔 했어요. 저거 찾고 나니 맥이 탁 풀려서 책 덮음요 ㅎㅎ

moonnight 2015-06-1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도 읽으시는 다락님^^

다락방 2015-06-12 17:18   좋아요 0 | URL
오해십니다, 문나잇님. 저거 찾느라 진짜 기빨렸어요 ㅠㅠ

blanca 2015-06-1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케서린이랑 스토너 사랑 정말 너무 너무... 뒷말을 못하겠네요. 정말 소설 같지 않고 작가 자신의 고백 같았어요.

다락방 2015-06-13 22:59   좋아요 0 | URL
크- 블랑카님도 이 소설을 좋아하실 거라고 저는 확신했어요!!

비연 2016-01-2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이번에 구매해요... 소설이 넘 좋네요...

다락방 2016-01-25 08:32   좋아요 0 | URL
소설 참 좋았지요? 그래서 구매했는데 저는 저 부분 찾아본 다음에 또 처박아뒀어요. 인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