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는 강동역에 내려 집까지 걸으면서 앞으로 내게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수많은 '만약'에 대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지금 회사를 그만둔다면, 나는 무얼 해서 먹고살 것인가. 만약 내가 대전으로 거주지를 옮긴다면 거기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만약 대전으로 간다면.. 하고 생각하자 알라딘 중고샵이 떠올랐지만, 그건 이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나는 십오년 정도를 성실하게 일해왔으니 이젠 좀 쉬엄쉬엄 하고 싶은데, 알라딘 중고샵은 빡셀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해 지금과 같은 일을 할것이냐, 라는 생각을 하자 그렇다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을텐데, 그럴바에야 지금 하던 일을 계속 하는게 낫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영업을 하는건 어떨까, 도 생각해 보았지만 만약 내가 '내 가게'를 가지고 있게 된다면 나는 그 가게에 아무래도 온 신경을 쏟게 되지 않을까 싶어지는거다. 나는 저녁무렵엔 퇴근을 하는 삶, 노는 저녁을 갖고 싶은 사람인데, 자영업을 하게 되면 저녁에 가게에 올인하게 될 확률이 크잖아? 직원을 구한다고 해도 내 마음이 편할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아냐 빡세다..나처럼 공부를 싫어하는 애가...역시 그냥 지금처럼 계속 사는 게 답인건가..난 결국 이걸 선택할 사람인건가..


물론 최근에 비행기를 타고 부산을 다녀오다가 승무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승무원은 내가 넘볼 수 없는 직종..에 있는 것 같아 뭐 생각하자마자 포기하긴 했지만. 그러다보니 대학때 대한항공 승무원에 합격한 동기 언니도 생각나네. 이 언니는 재수를 해서 우리랑 같은 학년이었는데 우리들은 언니라고 불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니'란 호칭은 진짜 딱 질색이다. 나를 언니로 부를 수 있고 그게 제일 잘 어울리며 짜증나지 않는 사람은 내 친여동생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언니란 호칭은 왜이렇게 뭐랄까...여튼...그 언니는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야 나는 다음세상에 너로 태어나면 그냥 죽을거야. 


라고. 나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영어도 잘하는 언니었는데, 다른 친구들도 있었고 또 웃으면서 한 얘기이니 나도 웃고 다른 사람들도 웃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그 때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건 알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서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말란 법은 없다. 나로 태어나면 죽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구나...이 얘길 몇년전에 남동생한테 했더니 남동생이 분노하며 그 여자 데려오라고 소리소리친 적이 있었더랬다...각설하고,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남자사람친구와 통화를 하게됐다. 그리고 나의 이런 일들에 대해 줄줄이 얘기하자 친구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더니 끝에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시집을 와.


아! 이렇게 쉬운 방법이. 친구는 나를 먹여살리는 것쯤은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할테니 시집 오라고...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런데 나 좀 .. 많이 먹잖아? 그러자 친구는 투잡을 뛰어서라도 다 먹이겠다고 했다. 음....휘청인다......나는 그냥 집에서 읽고 쓰기만 하라는데.....그런데...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었을까? 그리고 친구의 월급으로 우리 둘이 먹고 사는 게 정말 가능해질까? 만약 친구 혼자 지금처럼 일을 하며 돈을 번다면, 나는 그저 룰루랄라 하다가 친구가 한 달에 한 번 받는 월급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앞으로 내 모든 식사의 질은 지금보다 조금 낮아지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높은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의 월급으로 둘이 먹고 살려면, 아무래도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집에서 하루종일 띵까띵까 하는 삶을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나는 무언가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사람들 틈에 섞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하는' 걸 원하게 될텐데... 


'결혼'이 방법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결혼이 '방법'이 된다면, 그건 딱히 현명한 선택이라고 볼 순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내일모레면 나이 마흔인데, 시집오라는 사람도 있고, 후훗, 곱게 늙어가고 있구나. 예순 살에도, 일흔 살에도 듣자. (응?) 가끔은 나도 하고. 킁킁.



이런 생각들을 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구절을 만났다.
















내려간 곳은 제법 큰 방 지붕에 매달린 다리 위였습니다. 멀리 끝은 경첩 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다리가 천장에 너무 바짝 붙어 있어 서 있을 공간이 없었습니다. 격자창으로 된 다리의 바닥을 통해 열두 개의 별을 모은 파파송 종업원 이백 명이 회전문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두 앞으로 쭉 나아갔습니다. 유나들, 화순들, 마루다들, 손미들, 내가 모르는 더 오래된 줄기세포 타입의 자매들이었습니다. 내 옛 자매들을 파파송 레스토랑의 돔 밖에서 보다니 현실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파파송의 찬가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그 노랫소리는 배경에서 들려오는 수압 기계 소리와 뒤섞였습니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들은 투자액을 다 갚았습니다. 이제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려는 참입니다. 환희의 나라에서 새로운 삶이 곧 시작될 것입니다.


미래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는 것만은 부러웠습니다. (2권, p.174)



유나,화순,마루다,손미란 '복제인간'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렇게 말하는 화자 역시 복지인간 '손미'이고. 그들은 태어날때부터 길들여지고 그들에 대한 투자액을 갚아야 하는 명목으로 하루에 다섯시간씩 자며 노동에 최선을 다한다. 한 해가 지날때마다 별을 하나씩 받게 되고 그렇게 별 열두 개를 모으면 환희의 나라인 하와이로 떠나 자유로운 삶을 찾게 된다. 그들의 목표는 얼른 투자액을 갚고 저 자유의 땅 하와이로 떠나는 것. 그들은 노동에 맞춰 세팅되어 있고, 고객에 대한 응대에 대해서도 당연히 세팅되어 있다. 그들의 지식은 그렇게 한정적인데, 혹여라도 만에 하나 그들이 더 나은, 혹은 더 높은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면, 그걸 '상승'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화자인 손미는 그 상승을 거친 복제인간인데, 상상을 하며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다가 자신들 같은 복제인간이 얼마나 착취를 당하고 있었는지에 비로소 눈뜨게 된다. 그러나 세상 밖을 보지도 못하고 레스토랑에 갇혀 살면서 스무시간 가까이 일하는 삶을, 그 당시엔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들은 뼈와 살이 있고 피부가 있고 피도 흐르지만, 순혈인간들은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진 않는다.


어찌어찌 세상밖으로 나와 순혈인간과 섞여 지내던 화자인 손미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도망다니면서 복제인간들의 끝이 있는 삶, 그러니까 12년만 고생하면 환희의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삶을 부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바로 그 순간, 하필 출근길의 지하철 안이었기 때문일까, 나도 그 복제인간들의 삶이 부러웠다. 죽어라 12년만 고생해, 그러면 너에게는 자유와 환희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질거야, 그곳으로, 그 낙원으로 갈 수 있게 될거야. 만약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삶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12년간의 노동을 참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손미들은, 유나들은 상승하지 못한 복제인간들이었으므로, 어느 누구도 '그곳에 다녀오니 좋았어' 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그 세상이 반드시 좋을것이라는 확신만 가지고 있을 뿐, 의심이란 것 자체를 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 의심을 떠나서 만약 정말로 그런 낙원이 보장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12년간 나는 죽도록 고생할 수 있을것인가.


그것이 단순히 '노동'을 의미한다면, 그럴수도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노동에 들인 시간은 15년 이상이니까. 그것도 직장생활이 그렇다는 거지, 아르바이트까지 합친다면 나는 20년을 일하며 살고 있다. 복제인간들이 낙원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을 초과한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그럴 수는 '없다'가 나올 수는 없다. 반드시 너에게 낙원이 보장되어 있어, 라는 확신을 그 누구도 내게 해주지 못했는데도 나는 노동을 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미래가 불안하기까지 한데, 이러고 있으니까. 지금의 노동은 내 스스로도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당장 지금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기 위함인데도 나는 이토록 오랜 시간 노동을 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고생끝에 정말로 낙이 있다니까! 라는 말을 듣는 것 자체가 판타지 아닌가. 그러니 이 책속의 복제인간들이 인간으로 취급받고 있지 못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십이년만 참으면 늬들은 낙원으로 갈 수 있잖아' 하고 부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부러움은 찰나의 것이지만, 낙원이 보장되어 있다니, 그렇다면 참을 수 있잖아? 하게 되는 것. 나는 낙원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현실이 시궁창인데 미래가 낙원일 수 있다니. 이게 .. 가능한거냐고. 이거면 된 거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복제인간이 아니고 순혈인간이다. 하와이에 다녀와서 좋다고 자랑하는 복제인간들을 하나도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나는 인지할 수 있고, 그러므로 고생끝에 낙이 정말로 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 있다. 설사 내가 하지 못하더라도 내 옆의 누군가는 속삭여줄 것이고 크게 부르짖어 줄 것이다. 여러분, 낙원이 정말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며. 깃발을 펄럭이며 이 시스템을 만든 자들에게 돌을 던지자고, 고함을 내지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줄 것이고, 나는 그러한 말들을 들으며 내 무지를 깨닫게 되겠지. 아, 맞아. 낙원에 갔다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 시스템은 우리를 상대로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미래의 낙원을 꿈꾸는 대신,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지금 현실을, 지금 이 땅을 인간이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낙원을 보장하는 미래를 주려는 게 아니라, 낙원을 꿈꿔야만 하는 현실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책의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이 아니지만, 이야기만은 놀랄만큼 재미있다. 흠뻑 빠져서 읽고 있는데 내 낮생활이 주로 회사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독서를 방해한다. 몹시. 매우. 아주 오래전의 항해일지부터 미래의 복제인간까지. 그들이 어떻게 얽히는지 몹시도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는 일이 즐겁다. 읽다가 이 책이 어떻게 영화화 됐는지 너무 궁금해져서 굿 다운로더가 되는지 검색해봤더니 단돈 2천원에 다운 받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고편이 너무 엔지...예고편 보니 또 영화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거다. 그래도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또 영화가 보고싶어져!! 소설을 읽을 때 서사에 큰 비중을 두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단호히 추천할 수 있다. 이야기와 작가가 창조하는 세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데이비드 미첼'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비교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데, 친구에게 '비교문학이 뭐냐' 라고 물었더니, '한 나라랑 다른 나라의 문학을 비교'하거나, '동서양의 문학을 비교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훅- 미래 배경이 서울이 되기도 하는구나. 심지어 부산이 나오기도 해...세상엔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도 많구나. 아, 이 책의 남은 부분들이 너무나 궁금하다. 















신해철이다. 그의 새 앨범이 나왔다.  아직 예약판매중이고 시디를 판매하진 않는것 같은데, 음원으로 들어본 결과 앨범에 실린 네 곡 모두 좋다! 세월이 흐른후의 그의 노래는 어떨까 기대도 되면서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약간 있었는데, 경향신문에 실린 그의 새앨범 소식을 보고 유튭에서 찾아 듣고 본 그의 새 노래는 독특하고 좋았다. 피식- 웃음도 나왔다. 이 남자는 진짜 독특하다니깐!!





위의 곡이 타이틀곡인 '아따'인데 원맨 아카펠라 곡이란다. 쉽게 말하자면 혼자서 아카펠라를 모두 소화해 그것들을 겹치기 했다는 것. 그리고 앨범의 다른 곡들도 나는 마음에 드는데(역시 신해철이야!) <단 하나의 약속> 이 좋다. 이 곡은 그의 예전 노래중 하나인 <here i stand for you>와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떠올리게 한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혹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인형의 기사> 같은 감성적인 노래를 하는 남자가 날카롭게 세상에 대한 욕을 퍼붓는 곡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여튼 너무 좋다니깐. 오랜만의 신해철 노래가 역시나 좋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무척 좋다. 예전 노래들까지 흥얼거리며 막 신이나는거다. 최근에는 <나에게 쓰는 편지>도,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도 흥얼거리게 됐다.














요즘엔 통 음악을 듣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더랬다. 아이튠즈 라디오나 가끔 듣다가 그도 멈추기 일쑤. 그런데 이렇게 즐겨 들을 수 있는 새로운 앨범이 나왔다니 너무 신나는거다. 게다가 제이슨 므라즈의 앨범도 곧 나올텐데!! >.<



금요일이라서일까. 좀 신난다. 물론 오전중에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일해서 지금 멘붕이긴 하지만..여튼 밥 먹고 와야겠다.

이따 퇴근하고 집에 갈 때 밸큐브 치즈 사가야징. 아웅-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4-06-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투잡을 뛰어서라도 많이 먹는 너를 먹여살리겠다는
'결연한' 프로포즈 받으신거 축하드립니다.!

2.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못견디고
'무언갈 하려고 할것' 같다고 생각하는건
20여년간 노동을 계속적으로 해왔기때문 일껍니다.
마치 20여여년간 아무일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무언갈 해야할때' 느끼는 두려움처럼요.

3.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가능한 적게 일하고 사는 삶이
있지도 않은 낙원따위보다 훨~낫다고 생각합니다만~.

4.점심으로 비빔국수 곱배기를 먹었는데 아침부터 방금전까지 *사를 세번하고 나니
배가 하나도 안 부릅니다.
나도 많이 먹는데....나도 낼모레 마흔인데....
언제쯤 되야 프로포즈를... ?
아니...연애를....? =..=

다락방 2014-06-27 15:02   좋아요 0 | URL
1. 착한 친구죠 ㅎㅎㅎㅎㅎ

2. 저도 그 생각 했어요. 너무 일하는 거에 몸이 세팅되어 있어서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집에 하루종일 있게 된다면 전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그게 생각이 안나요.. 슬프죠 ㅠㅠ
저도 적게 일하고 돈 벌고 그걸로 먹고살고..그렇게 지내고 싶습니다.

4. 저는 무려 11,000원이나 하는 떡볶이를 먹었는데 배가 별로 안부르더라고요? 흐음. 식비에 저는 너무 많은 돈을 쓴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까요? 프로포즈는 아무개님이 먼저 하시면 됩니다. 일단 상대를 찾고난 뒤에...( ")

푸른기침 2014-06-2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세월이 느껴집니다. (뭔 소리인지 모르실 듯해서 살짝 죄송)
좋은 나날요^^

다락방 2014-06-27 15:03   좋아요 0 | URL
ㅎㅎ 오랜만에 알라딘에 돌아오신 걸로 알고있는데, 그렇다면 그 전에도 저를 보셨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걸까요?

푸른기침 2014-06-27 15:34   좋아요 0 | URL
희미한 기억이긴 하나 2007년이나 2008년도에 종로에서 뵌 적이 있네요. 부끄~
세월이 참 빠르네요. 다락방님이 벌써 마흔을 바라본다니.....

다락방 2014-06-27 15:50   좋아요 0 | URL
저를...종로에서....누구시죠???????????

2014-06-27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4-06-27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결혼관에는 ; 결혼을 도피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새로운 삶의 실현의 터다. 다락방 님이 결혼을 도피처로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결혼할 준비가 되신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전자라고면 말리고 싶고, 후자라면 축하드립니다.

나이 마흔 ; 준비된 결혼이라면 이때 결혼해도 늦지 않습니다.

다락방 2014-06-27 15:04   좋아요 0 | URL
아, 제가 결혼하겠다는건 아닙니다, 마립간님. 다만 친구와의 대화중에 저런게 있었고 혹했다 하는거죠.
저 역시 결혼이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저의 경우고요, 어떤 이들은 때로는 결혼을 도피처로 삼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만이 유일한 탈출구일 수도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일단 어쨌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현재는 결혼하고 아무 상관 없습니다, 마립간님.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 당장 일주일 뒤에 하겠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ㅎㅎ

세실 2014-06-2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은 한 사람의 월급으로 꾸려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요. 마교수님처럼 쓰리잡 정도 해주면 모를까~~
가끔은 혼자 즐기며 살아도 좋았겠다는 생각해요^^

다락방 2014-06-27 16:04   좋아요 0 | URL
한 사람의 월급으로 꾸려가는 걸 할 수는 있겠지만 하고 싶은 많은 부분들을 포기해야 하겠죠.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같이 벌어야 하는...마흔 까지만 일하고나면 노후의 생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충분한 돈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4-06-2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신해철은 꽃미남 이었군요!

열심히 먹여 살리는 입장에서, 나때문에 누군가의 인생이 조금펴진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의미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 이 거친 세상에 온가족이 모두 나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가능하면 집에 있는 쪽이 저였으면 했지만 ㅋㄷㅋㄷㅋㄷ 내가 살면서 좋은 일을 해보면 얼마나 하겠어요... 나쁜일 거짓말은 매일하는데....

다락방 2014-06-27 16:07   좋아요 0 | URL
신해철은 꽃미남이었습니다. 한때 저는 그의 목소리에 가슴이 설레던 그런 소녀였고요! ㅎㅎ

음, 그렇게 생각해보진 못했는데, 나 때문에 누군가가 먹고 살 수 있게 된다면, 휘모리님의 말씀처럼 그것도 그것 나름의 의미가 있겠네요. 다만 그러려면 상대를 엄청 사랑해야겠네요. 노동이란 게 기쁜 마음으로 하기엔 좀 힘든 것인지라 커다란 사랑이 담보가 되지 않는다면...역시.......음......저도 둘 중 하나만 벌어서 유지될 수 있다면 하나만 나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저여도 상관없고요. 사실 저는 직장생활도 싫지만 살림은 더 싫어하기 때문에..설거지는 진짜 싫어요 진짜. 역시 회사 다니는 게 답인듯.. ㅠㅠ

dreamout 2014-06-2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라우드 아틀라스. 사놓고 관심이 식었는데, 다시 살아나네요~!! ^^

다락방 2014-06-27 22:08   좋아요 0 | URL
재미있어요! 저도 마저 읽고 싶은데 지금 술에 취해서 읽지를 못하겠네요.
내일하고 모레, 주말엔 무슨 책 읽으실 거에요, 드림아웃님?
:)

dreamout 2014-06-29 12:24   좋아요 0 | URL
토요일은 회사 워크샵, 일요일은 근무!! ㅠㅠ

힘이 떨어져서인지 대단한 책들은 읽지 못하고 그냥 보통의 책을 읽고 싶어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읽고 있어요... ㅋ

dreamout 2014-06-29 12:28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이제...
존 버거, 밀란 쿤데라의 새 소설.
성석제나 이승우, 미헬 파버르의 소설 등과 7월을 보낼 생각예요~
계획대로 될진 모르지만요. ㅎㅎㅎ

다락방 2014-06-30 12:34   좋아요 0 | URL
전 오늘 출근길에 《마지막 강의》 시작했어요. 몇 장 안 읽었지만 어쩐지 엄마한테 권해주고 싶은 책이에요.
그나저나 주말이... ㅠㅠ 워크샵에 근무라니 ㅠㅠㅠㅠㅠㅠㅠㅠ 슬프다요.. ㅠㅠㅠ

존 버거와 밀란 쿤데라, 라니. 밀란 쿤데라 라는 이름에서 멋진 계획이란 확신이 드네요. 갑자기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멋진 작가를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음..츠바이크로 할까요. 집에 츠바이크의 책을 사두고 안 읽은게 두 권쯤 되거든요. 꼭꼭 씹어먹을만한 문장으로 읽고싶네요. 헤헷
 















존 하트의 책은 내용은 추리,스릴러인데 문장이 참 좋다.

그런데 이 책, 《라스트 차일드》가 지금 4,000원이라는 걸 트윗으로 보고 알라딘 들어와보니 진짜 4천원에 판다. 


헐....


뭔가 사재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랄까.

사재기 해뒀다가 생일 맞은 친구들에게 한 권씩 주고 싶은...

이 책을 읽으면서 두어번쯤,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난다.

며칠전에는 회사 동료와 밥을 먹고 걸으면서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동료가 내 얘기를 듣다가 '소름돋네요' 라고 했더랬다. '왜 하필 내 여동생이어야 하느냐'는 오빠의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내가 왔었다고 꼭 말해주라'던 아버지의 말도. 나는 정확히 그 부분에서 눈물이 핑 돌았던듯.


사천원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꺅 >.<

이건 3천원이야.

나 이거 살려다가 아직 안사고 있었는데. 

으악!!!!!!!!!!!!!!!!!!!!!!!!!!!!!












아 어떡하지.. 이것들도 다... 딱 만원어치만 골라서 살까... 아침에도 책샀는데 ㅠㅠ 근데 나 《실종》은 있는것도 같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4-06-2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떤걸 가지고 있더라를 넘어서 저걸 읽었던가가 기억이 ㅎㅎㅎㅎ 어쩌죠~

다락방 2014-06-25 15:28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팅커스는 확실히 읽으셨습니다. ㅋㅋㅋㅋㅋ 팅커스 리뷰 좀 보려고 들어갔더니 휘모리님 페이퍼가 있더라고요!!
전 실종하고 블러드 워크가 있던가 없던가...잘 기억이..;;

느긋느긋 2014-06-2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사재기하고 싶다는 말에 대공감!!
뭘살까 고르고 있는데, 이러다가 그냥 다 사게될 듯한 가격들이에요 ㅠㅠ
문제는 이 책을 샀던가 안 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게, 쿨럭 ㅎㅎ

다락방 2014-06-25 16:5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일단 지르기전에 집에가서 책 좀 확인해봐야겠어요. 중고로 사기도 하기 때문에 필히 확인해봐야 합니다. ㅎㅎ

그렇게혜윰 2014-06-26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권 담아두었어요ㅋㅋ

다락방 2014-06-26 08:21   좋아요 0 | URL
7월말까지 하는 것 같은데, 저는 꾹 참았다가 7월에 살까해요. 아이 해브 노 머니..라서요. ㅎㅎ

자작나무 2014-06-26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샀어요 품절될 것 같아서.

다락방 2014-06-26 09:22   좋아요 0 | URL
뭘 사셨어요?

자작나무 2014-06-26 09:40   좋아요 0 | URL
다락방의 <독서공감>이요~! =3=3=3=3=3=3

다락방 2014-06-26 09:43   좋아요 0 | URL
아니, 그건 할인도 안하는데... ㅎㅎ

머큐리 2014-06-2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참고 있는데... 지름신을 부르는 영매가 여기에 잠복하고 계셨군요...ㅋㅋ

다락방 2014-06-26 09:22   좋아요 0 | URL
만 원이면 세 권을 살 수도 있다니, 좋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4-06-2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려고 장바구니에 넣는데 이 책땜시 다른책까지 6월30일에 출고라고 해서
걍 빼버렸음요 ㅡ..ㅡ::::::::::::::::::::::::::::::::::::::::::::::::::::::::::::::::::

다락방 2014-06-26 11:4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책은 뭐 샀어요, 아무개님? 알려줘요!

루쉰P 2014-06-2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ㅋ 오랜만이네요 ㅎ
그래도 여전히 다락방님은 꾸준히 책을 사시네요 ㅎ
한결같은 모습 보기 좋습니다 푸하
전 책 안 산지 되게 오래된 듯 해요 ㅎ
저런 세일에 온 몸이 반응했을 텐데 책 세포가 죽었는지 ㅋ 요즘은 글 읽는 것도 참 힘들어요 ㅎ

다락방 2014-06-27 12:34   좋아요 0 | URL
전 꾸준히 책을 사고 꾸준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루쉰님. 뭐, 변한 게 없어요. 꾸준히 잘 먹고 있고요.
루쉰님 책 사는 건 멈췄다해도 알라딘엔 자주 좀 와서 글도 좀 써주고 그래요. ㅎㅎ

루쉰P 2014-06-27 19:37   좋아요 0 | URL
사긴 사요 ㅋ 한 세 달에 한권은 삽니다. ㅋ
네, 그럴께요. 쓰고 싶어요 ㅎ 근데 잘 안 써지더라구 ㅎ 노력할거에요 ㅎ

비로그인 2014-07-0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라인업 땡스투가 많이 들어와서 봤더니 3천원이더라구요 >.<
3천원이라니 ....진짜 3천원이어도 괜찮은 걸까요?
저도 5만원치 채워뒀어요~ㅎ

다락방 2014-07-07 08:28   좋아요 0 | URL
라인업 땡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인업이 저렴해진 덕분에 아른님이 갑자기 돈을 막 버네요? 그 돈으로 집 사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만간 저도 조금이나마 일조할 생각입니다. 후훗
 

일하면서 내가 계속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더라.


하지마안- 이미 그대는 다른 사랑에 빠져있다했지--





어느날 문득 나는 보았네 내 마음속의 사랑을
오직 친구로 알았던 그녀를 나는 사랑하고 있었네
바람이 불어와 허황한 거리에 나뭇잎만 흩어지던 날
그날 처음 느꼈던 내 속에 숨은 그대 그리움
지난 세월속에 천천히 커져왔던 나의 사랑을
하지만 이미 그대는 다른 사랑에 빠져있다 했지
못다한 나의 고백만 내귓가에서 바람따라 울고 있었지

바람이 불어와 허황한 거리에 나뭇잎만 흩어지던 날
그날 처음 느꼈던 내 속에 숨은 그대 그리움
지난 세월속에 천천히 커져왔던 나의 사랑을
하지만 이미 그대는 다른 사랑에 빠져있다 했지
못다한 나의 고백만 내귓가에서 바람따라 울고 있었지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4-06-20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0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0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0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4-06-2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노래 무지 오래된 노래인데! ^^
다락방님 덕분에 오랜만에 좋아하던 7080노래 듣고 갑니다.

'어느날 문득' 느끼게 되는 것이, 있더군요...

다락방 2014-06-20 14:40   좋아요 0 | URL
좋지요, 노래? 문득문득 옛날 노래들이 생각나고 그래요. 오늘은 유열의 노래네요. 어느날 문득~ 좋아서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하핫

2014-06-22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6-23 12:49   좋아요 0 | URL
이게 당시엔 몰랐는데 요즘 돌이켜보니 가사가 예술이에요 ㅠㅠ

자작나무 2014-06-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를 알다니.

다락방 2014-06-23 12:48   좋아요 0 | URL
저 이 노래를 아는 세댑니다.

단발머리 2014-06-2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신난다~~ 저는 이 노래를 모릅니다람쥐~~~~

다락방 2014-06-24 11:53   좋아요 0 | URL
아니, 저랑 세대가 비슷한것 같은데 말이지요, 이 노래를 왜 모르신단 말입니까! ㅎㅎㅎㅎㅎ
 














토머스 쿡이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죄책감'인것 같다. 그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감추고 살아보려 해도 잘 되지 않는 마음 깊은 곳의 불편한 그 느낌. 그래서 언제나 토머스 쿡의 책을 무겁게 읽을 수밖에 없는것 같다. 싸이코패스를 그리는 게 아니라, 토머스 쿡은 '우리'를 그린다. 나쁜 의도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나쁜 의도가 아니었는데 작은 실수-혹은 장난-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혹은 죽음까지도-남기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그 잘못이나 실수 전과 후에도 그런 실수를 다시 하지는 않지만, 그 한 번의 실수가 불러온 것은 치명적이었던, 그런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인 줄리언 웰즈가 자살을 했고, 그의 친한 친구와 여동생은 도대체 왜 줄리언이 자살한건지 그간 그와 했던 대화들을 돌이켜보고, 그가 썼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고, 그가 갔던 장소에 다시 가본다. 줄리언은 언제나 공포를 주는 사람, 잔인한 사람, 학살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냈는데, 그 중에 《쿠엥카의 고문》이란 책의 이야기는 다른 책들의 이야기보다 더 아팠다. 아래 인용문은 쿠엥카의 고문을 다시 읽은 친구 필립이 요약한 줄거리이다.



사건 당일, 그리말도스는 가끔씩 일을 했던 프랑시스꼬 루리즈의 농장에서 자신의 초라한 집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목격되었다. 그러나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다음 날 여동생이 치안당국에 오빠의 미귀가 사실을 신고했다. 그녀는 실종 당일 오빠가 양 몇 마리를 팔았는데 오빠가 양을 팔고 받은 돈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적어도 두 남자가 알고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발레로와 산체스라는 남자였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그들은 틈만 나면 그리말도스를 조롱하고 괴롭히고 학대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리말도스의 돈을 빼앗고 살해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수사가 시작되었고, 다른 주민들도 수사관들에게 발레로와 산체스가 의심스럽다고 진술했지만, 그리말도스의 시신이나 직접적인 살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1911년 9월에 수사가 종료되었다. (p.58-59)



그리말도스의 가족들이 오빠를 찾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잠깐 며칠전에 읽었던 《리뎀션》이 생각나는데, 그들은 발레로와 산체스로부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점점 더 그들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들은 용의자들을 계속 주시하며 때를 기다렸고, 1913년 쿠엥카에 새 판사가 임명이 되자, 증거부족을 이유로 발레로와 산체스 사건을 기각한 전임 판사와는 달리 새 판사가 이를 번복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칼을 빼들었다.

새 판사는 젊고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미해결 사건이라는 망령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발레로와 산체스는 다시 체포되었고, 이번에는 치안경비대가 호세 마리아 로뻬즈 그리말도스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도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했다.

발레로와 산체스에게 끔찍한 고문이 가해졌다. (p.60)



이 책을 다시 읽는 줄리언의 친구 필립은, 여기에서 줄리언이 고문 장면을 고문 피해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자세하고 잔인하게 묘사했는지를 얘기한다. 고문자의 얼굴 표정이라든가 채찍 소리 같은것들. 그러나 나는 이 책 속의 책, 쿠엥카의 고문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끔찍한 결말이니 당연히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하면서도, 그러나 내 짐작이 틀리기를 바랐다. 



고문을 당한 발레로와 산체스는 호세 그리말도스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했다고 자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말하지 못했다. 줄리언이 주목했듯이 이 사실은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들었어야 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추가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p.68)


그리고.


수많은 범죄 혐의에 대하여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은 스페인 사법부의 미로 같은 방들을 거치면서 질질 끌었고, 1918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피고인들에게 각기 18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들은 6년 후에 가석방 되었고, 그러부터 2년 후인 1926년 봄, 줄리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토록 오랫동안 잔혹하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던 가엾은 엘 세빠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엘 세빠는 그 십수 년 동안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p.69)



아...나는 이 책을 책 속의 책으로 만났기에 다음 책장을 넘길 수 있는거란 생각을 했다. 만약 쿠엥카의 고문이란 책이 현실에 존재하고, 내가 지금 이자리에서 그 책을 읽었다면, 엘 세빠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는 문장을 읽는 순간 책장을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답답하고 또 답답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내 가슴을 몇 번이나 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에서 내가 미워해야 할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왜 엘 세빠는 다른 마을에 살면서 식구들에게 안부를 전하지 않았을까. 한 마디 안부만 전했던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들에겐 대체 무슨일이 있었기에, 어떻게 지냈었기에, 그들은 그간 어떤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일이 이렇게 된걸까. 사랑하는 가족이 사라지고, 거기에 분명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사람이 연루되었을 거라는 느낌, 그것을 단순히 피해망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고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연히, 의심은 확신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 확신, 그 확신은 얼마나 위험한가. 발레로와 산체스는 자신들이 벌이지도 않은 일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자백을 하고, 수감된다. 그들의 그 고통의 시간들을, 이제와서 '판단을 잘못했구나' 라고 말한들 어떻게 돌이킬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숨 막히는 작은 공간 안에서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살해되지 않은 자 엘 세빠는 쿠엥카의 먼지 자욱한 거리들을 그리워하면서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부담이 가장 적은 운수 게임의 복권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지만, 관 속 같은 공간에 갇혀 그 어둠 속에서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자신의 죄를 잊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p.69-70)



자신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오랜동안 아무에게도 자신이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단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된 엘 세빠 역시, 편안한 삶을 살 수는 없었다. 줄리언 웰즈는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고, 그런 줄리언 웰즈가 자살을 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악에 가득찬 사람들을 혹은 고통스러운 피해자들을 책 속에 녹여냈던 줄리언 웰즈가 자살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다뤘지만 정작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줄리언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책을 한 권 내고 또 내고 또 내도, 자신이 저지른 일, 그리고 그 일이 불러온 그 결과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 그리고 그 잘못이 가져온 치명적인 결과는 결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일테니까.


나 역시 잘못 혹은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불현듯 초등학생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내가 저질렀던 잘못. 내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때 그게 잘못이란걸 알지 못했다는 것뿐인데, 지금은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를 안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혹여라도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군가가 그 일을 살아오며 내내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에. 아무리 어렸다고한들, 나는 왜그랬을까. 이 생각을 하면 끝도없이 벼랑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기분.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추락하고 있는데,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지 않는다. 애초에 추락의 길로 들어선 게 나였으므로.


줄리언은 세상에 일어났던 많은 악한 일들을, 그 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으로 알렸다. 그가 자신의 죄를 사하는 방법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꽤 고마운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좋은 일을 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주기도 했을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저지른 잘못이 기억에서 지워지지는 않는다. 좋은 일 하나에 나쁜 일 하나를 상쇄시키는 일 따위, 인간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나는, 스스로 다독이는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이것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겠지만, 내가 그 실수를 저질렀고, 그 실수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실감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 일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줄리언 역시 마찬가지였을텐데, 줄리언에게도 이런 합리화가 있었다면 자살까지 이르지 않았을 수 있었을텐데,  줄리언이 가져온 결과는 지독하게 끔찍하였으므로, 그는 다시 일상에 발붙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일이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만, 일이 그렇게까지 되었다. 이 책속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아이들은 장난으로 개구리를 죽이지만 개구리는 정말 죽는다'는. 잔인한지 모르는 채 인간은 가장 잔인해질 수 있지 않은가.



그제 아침에 출근길에 길고양이를 만났다. 잽싸게 멈춰서서 가방을 뒤져 소세지를 꺼냈다. 소세지 껍질을 벗기고 소세지를 고양이 쪽으로 던졌는데, 고양이는 잠깐 경계하고 도망가더니 좀처럼 소세지 근처로 오지는 않고 쳐다보기만 하는거다. 내가 없어야 먹겠구나 싶어 나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어제 퇴근길. 또 고양이를 마주쳤고 나는 얼른 가방에서 소세지를 꺼냈는데, 이번 고양이는 경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얼른 먹을 걸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껍질을 까고 소세지를 던져주니 잽싸게 물고는 뛰어가는거다. 오호라. 소세지가 두 개 남았는데 하나는 내가 좀 먹어야겠다. 배가 고프네. 각설하고,



토마스 쿡은 이 책에서 인간의 잔인함이 비단 인간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투견장의 장면이 그것인데, 와, 나는 특별히 더 동물을 사랑하고 애착을 갖는 사람이 아니고, 집에서 동물을 기르거나 하지도 않고, 길고양이에게 소세지를 준 것도 이제 겨우 시작한 사람이지만, 와- 나같은 사람도 보기 힘든 이 장면을 동물에게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굉장히 힘들겠구나 싶었다. 개들을 훈련시키고 싸움터에 내보내는 인간들, 그 싸움을 보며 즐거워하고 흥분하는 인간들. 그들이 대체 뭐가 다른가. 그러나 투견에 가장 능숙한 개인 '도고 코르도바'는 멸종이 됐다고 한다. 



"도고 코르도바는 이젠 멸종이 됐네." 개싸움에 대한 묘사를 마치면서 소보로프가 말했다. "투견장에서 죽기도 많이 죽었고, 살아남은 놈들도 아주 예민해져서 딴 놈들과 붙여만 놓으면 서로 물어뜯고 죽여버렸거든. 그래서 멸종된 거야." 그는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흉포성만 가지고는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이 맞아." 그가 말했다. "어디서 들었는데 마음에 와 닿는 말이더구먼." (p.259)






흉포성만 가지고는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이, 내게도 와 닿았다. 흉포성만 가지고는 삶이 유지될 수 없고, 먹을거리가 있다고 해도 삶이 유지될 수는 없다. 삶에는 그보다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감정을 건드리는 것들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이 끼어들어야만 한다. 얼마전에 조카와 함께 서점에 가서 보았던 그림책인 《프레드릭》이 떠올랐다. 모아놓은 식량이 없어지자 많은 쥐들이 프레드릭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배경은 이탈리아 로마이고, 주인공인 '젭'은 65세의 노인이다. 어마어마하게 부자인 그는 파티를 즐겨하고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노년을 즐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첫사랑의 남편이 찾아와 첫사랑의 죽음을 알린다. 젭의 일상이 그 일을 계기로 갑자기 변하거나 하진 않지만, 그는 점점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시간이 흘러 첫사랑의 집에 찾아가보니 첫사랑의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을 했다며 자신의 아내를 소개시킨다.


젭은 그들과 헤어지기전, 그들에게 '이제 무얼할거냐' 라고 묻는다. 젭과는 형편이 많이 다른 그들은 별로 할 일이 없다는 듯' 아내가 다림질을 마치면 같이 와인을 한 잔 마실거고, 그 후엔 티브이를 보다 잘 거' 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젭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무얼할거냐고. 그러자 젭은 사람들과 어울려 파티를 할거고 술을 마실거라고 말한다. 아마 당신들이 일어날 때쯤 자신은 잠이 들게 될거라고.


이때, '다림질을 마치고 같이 와인을 마시고 티브이를 보다가 잠드는' 그 부부가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요란한 파티가 아니어도, 사람들 틈에서 들썩이거나 화제가 되질 않아도,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저 일상의 조용조용한 장면장면마다 누구와 평화롭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 일상은 딱히 누군가에게 강요받지도 또 강요하지도 않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가장 행복한 장면은 가장 조용하게 찾아오고, 굳이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좋은 것. 인생 최고의 순간은 그런 순간들이 주는 게 아닐까.




로레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 여행도 끝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미리 말해두는데, 오빠랑 함께 해서 즐거웠어. 오빠랑 함께 여행하고 이야기를 하고 오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어."

"나도 그래, 로레타."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를 책에서 읽는다면 손발이 오글거리는 장면이겠다, 그렇지?"

"그래, 그럴 것 같네."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감상에 젖는 순간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일 때가 많아." (p.272)



같이 일상을 공유하는 것, 사소하지만 조용한 시간들을 함께 하는 것이 '감상에 젖는 순간'으로 바로 직행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일상 틈틈이 나라면, 감상에 젖기엔 충분하다. 그래서 그 순간들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어제 꾸었던 꿈 생각도 난다.


어제 꿈에 나는 한 남자와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무슨 학원인지는 모르겠는데 수강생이 엄청 많았고, 학원 근처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학원이 끝나고 그와 함께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이 무척 다정하게 느껴지는거다. 그 다정함에 힘입어 나는 슬쩍 그에게 팔짱을 꼈다. 이러지 말라고 말하면 어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는 이러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조용히 내 팔짱을 빼면서 그대로 손을 잡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손을 잡는 사이는 아닌데, 이렇게 손을 잡아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래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 그러나 그와 손을 잡은 게 무척 좋아서 모르는 척 손을 잡고 그 다정함을 한껏 즐기며 걷고 있는데 손에 너무 땀이 차는거다. 내 손이 아니라 그의 손에서 나는 땀 같았는데, 다한증인가, 하고 생각하며 나는 손을 살짝 놓고는 '땀' 이라고 작게 말한 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손을 닦아주었다. 닦아주고 나니 그는 잠깐 갈 데가 있다며 어딘가로 가버려서, 아이씨 땀 나도 그냥 잡고 있을걸, 하고 생각하다가 깼는데,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으면서 으응, 이 꿈은 뭐지, 왜 이런 꿈을 꿨을까, 했다.



앗! 그러고보니 저 영화 그레이트 뷰티에 다한증으로 고생하는 수녀 얘기가 나오는데, 그래서 꿨나??????????????????????????????????????????????? 어쨌든.




토머스 쿡의 번역된 소설은 이제 《심문》을 빼놓고 다 읽었다. 처음 《붉은 낙엽》을 읽었을 때는 내가 이 작가의 책을 계속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채텀 스쿨 어페어》가 좋아서-다른 말로 엄청 불편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내 나름의 순위를 정해봤다. 《줄리언 웰즈의 죄》가 좋은데, 그럼에도불구하고 내 순위 안에서는 4위다. 이 정도가 4위라면, 앞으로 나올 그의 소설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믿을만한 작가다.












며칠전에 만난 친구가 나더러 회사 그만두고 세계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방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흐음, 그거 하다보면 금세 200키로 찍을 것 같아 거절했다. 역시 나한테는 평범한 직장인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밥이나 먹자.



마지막으로 어제 친구가 보내준 독특한 노래.









"줄리언은 소련 강제 노동 수용소의 죄수들이 감방벽에 다른 어떤 단어보다 더 많이 써놓은 단어가 있다고 했네.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단어, 어머니나 아버지, 하느님 같은 단어가 아니라고 했지." 에두아르도는 또 내 오랜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심각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쳄'이라는 단어였네."
"자쳄이 무슨 뜻이죠?"
"'왜'라는 뜻이지." 에두아르도가 대답했다. 당혹스럽고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 말이 줄리언의 마음에도 쓰여져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배신이 적어놓은 단어라는 생각도 들고." (p.151)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6-20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0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6-20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저는 지금 누구누구님들이 좋다고 강추했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절반 정도 읽었습니다.
참...특이한 소설이네요.

2.'왜?'라는 질문은 부조리한 세상속에서는 더욱더 절망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거 같아요.
아무리 왜냐고 자신에게.... 신에게.... 물어봐도
자신이 겪는 이 일이 이해가 될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그저 뭐 내 팔자가 이렇지 뭐 자포자기 하고 사는것이 오히려 조금은
더 편하게 살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잘 쓰는 뭐라더라
그...지금의 시련은 하나님이 다 널 사랑해서 그런거다 뭐 이딴거 믿으면서요....

3.기분이 계속 우울하니까 댓글도 삐딱~~ =..=


다락방 2014-06-20 11:52   좋아요 0 | URL
1. 저는 지금 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고 있습니다. 뜨끔한 문장들이 나올때마다 뜨끔뜨끔 합니다. 유권자와 소비자 부분에서 특히..

2. 지금의 시련은 하나님이 다 날 사랑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을 이겨내야하는 거구나, 하며 내 몫인가보다, 체념하게 되는 경우가 저도 더러 있긴 합니다.
아니, 그래야 버텨지기도 하고 말이지요.
너무 싫잖아요, '너를 사랑해서 그래' 라는 말. 싫어요 진짜.

3. 저는 조울증인듯 우울했다 웃었다 합니다. 얼마전엔 다정한 남자사람 친구로부터 '요즘 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줘?' 란 말을 들었어요. '며칠전엔 짜증냈잖아' 하면서요..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레와 2014-06-2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더욱 탄력붙은 다락방의 리뷰러쉬~ 좋아요!!! (엄지척!) 히히..

다락방 2014-06-20 11:52   좋아요 0 | URL
탄력붙었다는 말은 종종 듣고 있는데 댓글은 점점 줄어요...뭐징.. ㅎㅎ

자작나무 2014-06-2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왜 하필 포르투갈인가요?

얼마전 나의 후버까페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이런 멘션을 보냈다. '이것은 마치 《저지대》의 가우리가 혼자 산책하고 혼자 앉아 다른 사람들을 보았던 바로 그 학교의 풍경같다' 고. 그러자 후버까페는 맞다며 자신도 《저지대》를 읽으며 이런 풍경을 떠올렸었다고 했다. 


이 대화는 조금 시간이 지난후에, 며칠 뒤에 아주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먼 곳에 있는 친구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 같은 풍경을 상상하고 떠올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이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해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나이나 성별이 같은 것도 아닌데,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니. 혼자 가만히 이 일을 떠올리면서도 씨익 미소지을 수 있었다. 아, 행복해. 


지난 금요일. 그 날은 먼 곳에서 오는 친구를 만나는 날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나는 까페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졸음이 쏟아져왔고, 결국 나는 그 친구와 그 날 함께 묵기로 했던 호텔에 짐을 두려고 혼자 먼저 들렀다가, 침대의 강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누웠다. 아, 그리고 잠에 빠졌다. 한 삼십분간, 정말로 자고 일어났고,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하하, ㅂㄱㄹㄴ님을 처음 뵙게 됐는데, 나는 그 앞으로 가 겁도 없이(!),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 뒤, 저 누구게요? 라고 물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는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했다. 또한 그 날 두번째로 뵙게 되는 ㅅㅂㄷㅇ님께도 인사를 건넸는데, 그 분은 내게 '책은 잘 팔려요?' 라고 물으셨고, 나는 '아니요 안 팔려요' 라고 답하면서 함께 웃었다.


또한 오랜 벗인 ㅅ 님과 내가 친구라는 사실이 기뻤다. 나를 보자 알은체를 해주시는 ㅅ 님에 대해 솟아오르는 다정한 마음, 이랄까. 히히.


나는 내가 오랜 시간 다정한 벗을 옆에 둘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이, 다시 보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이 모든 작은 일들이 자꾸자꾸 생각났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건, 내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어서,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거라고. 지난주에 강하게 나를 공격했던 외로움과 우울증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내며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안락함이, 편안함이, 소중함이, 다정함이, 그리고 행복함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여도 무척 좋을거라고, 이대로도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영화를 봤다.



영화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매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져, 나는 영화속 등장인물들 중 누구에게도 몰입을 할 수가 없었고,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으니 영화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감동이어야 할 장면이, 사랑스럽거나 슬퍼야 할 장면이 그 감정 그대로 내게 다가오질 못했다. 그 자리에는 의문들만 찾아왔다. 왜? 왜 갑자기 저렇게 리스본으로 떠나? 왜 갑자기 혁명이 사랑이 됐지? 왜 사랑이 갑자기 이별이 됐지? 그 모두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님은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을 자연스럽게 풀어내지 못해서 나는 그들이 될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뭐야 별로잖아,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 책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이 영화속의 결말을 책에서 어떻게 자세하게 풀어냈을 지 그걸 꼭 읽어보고 싶었다. 안그래도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 영화만 보고 책 읽기는 포기할까 했는데, 영화속 결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거다. 그 결말을 꼭 책으로 확인해야지, 하는 마음에 책을 다시 펼쳐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어려웠던 이유는, 책 속의 등장인물인 '아마데우'가 쓴 책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념과 관념으로 가득찬 그의 책이 도무지 내가 읽어 소화해낼 수 없는 책으로 여겨진거다. 내가 딱 싫어하는 책 스타일이랄까. 이를테면 이런거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28)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p.384)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이런 문장들에 푹 빠져서 그를 찾아 리스본으로 떠나지만, 나는 도무지 이런 문장들에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는거다. 이토록 추상적인 문장들,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문장들이 내게는 벅차게 느껴지는거다. 그레고리우스는 고전학자이고 여러개의 외국어를 습득한 사람이니, 이런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를 그대로 자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좋아했지, 나는 이런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면 몇 장 읽지도 못한채로 멘붕에 빠졌을 것 같은거다. 이게 뭔말이여...하고. 이것이 글이 아니라 말이었어도 마찬가지. 만약 처음 만나는 누군가가 내게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일까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할까?' 라고 물었다면, 나는 그 사람과 두번째 만남을 기약할 수는 없었을 거다. 글쎄요,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네요, 돈까스 좀 드셔보세요, 라고 나는 대꾸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레고리우스가 푹 빠진 책에 나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어서 이 책과 내가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드는 데는, 당연히 많은 생략과 각색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제 늦은밤까지 책을 다 읽은 지금, 마리아 주앙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스테파니아와 아마데우의 관계도 좀 달라 안타깝지만, 안과의사인 '마리아나 에사'에 대한 과도한 생략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처음 포스트잇을 붙였던 부분이, 이 마리아나 에사가 나오는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영화속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책 속의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다. 전문적이고 세심하며 따뜻한 여성인데, 이는 내가 오랜 기간 안경을 맞추면서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그녀가 포르투갈에서 행하고 있었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그런 안과의사를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아마 앞으로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의사인 것이다.



지독한 근시인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에 도착해 그 낯선 곳에서 안경을 깨뜨린다. 그래서 안과를 찾아가는데, 마리아나 에사는 그곳에서 만난 안과 의사이다.



그는 의사가 보조안경을 재보고 일상적인 시력검사를 한 다음 안경점에 가져갈 진단서를 끊어주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선 온갖 단계적 상황과 불안을 포함하는 그의 근시 내력을 듣고 싶어 했다. 이야기가 끝난 다음 그가 안경을 내밀자 그녀가 주의깊게 살펴보며 말했다. 

"잠을 푹 주무시지 못하는군요."

그러고는 기계가 있는 한쪽 구석으로 가라고 했다.

진찰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의사는 마치 새로운 풍경에 익숙해지려는 사람처럼 아주 세밀하게 검사했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세 번이나 반복되는 시력검사였다. 그녀는 검사 도중에 잠깐씩 쉬면서 그를 왔다갔다 걷게 하고, 그의 직업에 대해 묻기도 했다.

"시력을 결정하는 건 여러 가지 상황이거든요." (p.83-84)



근시에 대한 내력을 듣고 싶어하고, 쉬는 시간을 줄 정도로 검사를 반복하는 게 내게는 정말 신기했다. 나는 라식수술을 할 때조차도 검사가 빠른시간내에 끝났으니까. 지금도 많은 안과에서는 예약만 하면 그날 검사와 수술까지 모두 마칠 수 있다는 광고를 하지 않는가. 안경을 쓰던 그 오랜기간, 나는 안과에 가서 시력 검사를 받은 기억도 없다. 그저 안경점에 가 후다닥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을 혹은 렌즈를 맞추었을 뿐. 안경점의 직원 그 누구도, 그리고 그간 몇차례 갔던 안과에서의 닥터들도 아무도 내 시력에 대한 내력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진찰하고 다음 환자를 혹은 다음 손님을 받아야 하니까. 이건 비단 안과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비인후과, 내과도 마찬가지다. 나는 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곧잘 찾는데, 그곳에서 닥터가 나를 진찰하는 시간은 콧구멍을 들여다보고 콧물을 다 빼내는 일까지 다 포함해도 삼 분도 채 되지 않는다. 대기실에는 환자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주고 말을 걸며 시력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안과 의사라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런 의사를 신뢰하지 않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그레고리우스 역시 익숙한 것에 신뢰감을 갖던 사람이었지만, 이 안과 의사를 신뢰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검사가 모두 긑난 다음 나온 안경 도수는 다른 때와 아주 달랐고, 두 눈의 시력 차이도 평소보다 많이 났다. 의사가 어리둥절해 있는 그의 팔에 손을 살짝 대며 말했다.

"일단 한번 써보세요."

그레고리우스는 방어 심리와 신뢰감 사이에서 흔들렸지만, 결국 신뢰감이 이겼다. 의사가 안경 가게 주인의 명함을 주고, 그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포르투갈어를 듣자 키르헨펠트에서 만난 신비한 여자가 "포르투게스"를 발음할 때 느꼈던 요술 같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 갑자기 의미 있는 일로 변했다. 물론 이 의미는 특정한 이름으로 불릴 수는 없었고, 또 말로 표현함으로써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되는 의미였다.

"이틀 후면 된답니다. 세자르 말로 더 빨리는 도저히 안 된다는군요." (p.84)



시력 검사를 하고 이틀후에야 안경을 찾아 쓸 수 있다니, 너무 오래걸리는 바람에 나라면 아마 미쳐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모든걸 잽싸게 진행하는 이곳에서 내가 지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지, 만약 내가 포트루갈에서 오랜시간 살고 있었다면, 이틀후의 안경은 아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듯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출 진단서를 다 끊어주고 나서 안과 의사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안경이 다 되면 한번 들르세요. 제가 올바르게 진단했는지 알고 싶으니까요." (p.85)



아...진짜, 너무 멋지다! 나를 진찰한 닥터와 조금 더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더 나은일인지 혹은 옳은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한 명의 환자 라고만 대하는게 아니라 시력이 나쁜 한 인간으로 대하는 것 같아 다정하게 느껴지는거다. 멋지다. 이런 닥터를 만나는 게 이 곳에서도 가능할까? 포르투갈에 가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하나가 더 추가되는건가?



그리고 마리아 주앙.

아, 마리아 주앙.



마리아 주앙은 아마데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였다. 오랜 시간 그의 친구였고, 그녀는 그에게 언제든 부엌을 내주어 그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며, 그의 글을 보관하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데우는 마리아 주앙이 아니라 파치마와 결혼했고, 마리아 주앙이 아니라 '에스테파니아'를 사랑했다. 에스테파니아에 대한 아마데우의 사랑이 어떠했는지는 '주앙 에사'가 잘 말해준다.


그전에는 눈치만 챘다고 한다면 난 이때 확실하게 알았소. 아마데우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 그와 파치마 사이가 어땠는지 난 당연히 몰라요. 그때 브라이턴에서 두 사람을 본 게 다니까. 하지만 에스테파니아를 향한 그의 마음이 그때와는 아주 다르다는 건 확실했소. 훨신 거칠었고, 폭발하기 전의 들끓는 용암 같았지. (p.370)


거칠었고, 폭발하기 전의 들끓는 용암같은게 어떤 것인지, 나는 충분히 짐작한다. 몇해전의 여름에 나도 들끓는 용암 같았으니까.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해 힘이 들었으니까. 이 마음을 조금쯤은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억지로 입술을 깨물면서도, 그러나 그게 잘 되질 않아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소파에 가만히 앉아, 그 힘든 시간을 눈물로 보내던 때가 있었으니까. 차라리 그때 폭발했어야 했는데. 폭발하고 터뜨려서 가라앉았어야 했는데..



아마데우는 에스테파니아를 향해 들끓는 용암 같았고, 마리아 주앙은 아마데우의 플랫폼에 서있는 여자였다. 학창시절부터 그와 친구였고, 오랜 시간을 그의 친구로 남아있는 여자, 마리아 주앙. 그러나 나 역시, 에스테파니아 보다는 마리아 주앙이 되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을 옆에 머무를 수 있도록. 그의 '여자'가 되기보다는 그의 '친구'가 되어, 한때 옆에서 뜨겁게 불타오르다 사라지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



"오페라글라스로 날 찾던 귀족 집안의 아들. 그건‥‥‥, 뭔가 특별한 일이었어요. 이미 말했듯이 희망을 품게 했지요. 그 희망은 아직 순진한 형태였고, 또 무엇에 대한 것인지도 물론 확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흐릿하기는 해도 함께하는 삶에 대한 희망이었어요." (p.459)


물론 마리아 주앙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나는 너의 여자 대신 너의 친구가 될게, 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마리아 주앙은, 만약 아마데우가 그렇게 하자고만 했다면,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함께하는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희망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마데우는 저기, 저 창문 옆에 앉아 있었어요. 모두 아는 내용이라 심심했던 그는, 저에게 짧은 편지를 써서 쉬는 시간에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곤 했어요. 그건‥‥‥, 그건 연애편지가 아니었어요. 내가 바라던 게 쓰여 있는 편지가 아니었어요. 늘 아니었죠. 아마데우는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적었어요. 아빌라의 테레사나 그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어요. 그는 나를 자기 사유세계의 주민으로 만들었던 거예요. 그가 말했지요. '그곳에는 너밖에 없어. 나 말고는.'

하지만 그는 내가 자기 인생에 끼어드는 걸 원치 않았어요. 난 그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지요. 설명하기 무척 힘들긴 한데, 그는 내가 바깥에 있길 원했어요." (p.460)



오페라글라스로 날 찾는 게, 쉬는 시간에 쪽지를 넣어주는 게, 왜 사랑이 아니었을까. 



"아마데우는 기차를 좋아했어요. 기차는 그에게 삶의 상징이었어요. 난 같은 칸에 함께 타고 싶었지만, 그가 원하지 않았어요. 아마데우는 내가 플랫폼에 있기를, 그래서 창문을 열면 내가 언제든지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플랫폼도 함께 떠나길 바랐어요. 난 기차와 완벽하게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플랫폼에, 그 공중의 플랫폼에 천사처럼 서 있어야 하는 거였죠." (p.460-461)



마리아 주앙은 그와 하나의 부엌을 함께 쓸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내 부엌은 니 부엌, 그것은 우리의 부엌, 이 될 순 없었다. 그러나 나의 부엌을 그에게 빌려줄 수는 있었다. 그는 잠깐 들러 내 부엌 식탁 의자에 앉아 자신이 쓰고 싶은 말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마리아 주앙이 희망했던 함께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렇게 되기는' 했다. 



"어쨌든 그렇게 되기는 했지요. 함께하는 삶 말이에요. 가깝지만 먼 곳에서, 멀지만 가까운 곳에서 둘이 함께한 삶‥‥‥,"(p.460)



내가 은근히 품고 있는 희망이 절망이 될 것임을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함께하는 삶을 꿈꿨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켜보는 것도 슬픈 일이고.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가 내 옆에 오래 머무른다는 건,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은가. 그 다른 방식에서 의미를 찾고, 또 그 의미가 행복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함께 기차를 타고 그렇게 옆자리에 앉는 것만이 사랑은 아닌 것이다. 우정도 사랑의 수많은 갈래들 중 하나이고, 플랫폼에 서 있는 것, 그것이 그가 편하고 또 내가 편하다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사랑인 것이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가슴속에 무한한 사랑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던 것처럼, 내 이름이 그의 입에서 소리가 되어 나온 순간, 내게 닿아 미소를 불렀던 것처럼, 나는 그마음 그대로를 담아 플랫폼에 서 있으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는 함께 기차에 타는 것이 내자리일 것이고, 그리고 그를 만났을 때에는 플랫폼에 서 있는게 내 자리일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내 자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내가 이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내 행복은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내가 선택할 것이다. 때로는 기차에 올라탈 것이고, 때로는 플랫폼에 서있을 것이다.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자꾸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아 다이어리를 펼쳐 일기를 썼다. 잊지 말아야지, 지금 이렇게 행복하다는 생각, 잊지 말아야지. 금요일과 토요일에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한 순간들, 그들이 건넨 말들, 그리고 내가 건넨 말들, 함께 앉았던 순간들, 함께 걸었던 순간들. 모두 기억해야지. 


어젯밤 23:42. 나는 이 책을 읽다말고 책에서 시선을 들어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 시간, 어딘가에 나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이것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다만 순수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이 늦은 시간, 잠을 자는 대신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할까? 하는.



일요일인 어제는 날이 좋았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일자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지만, 올라가는 길에는 전효성의 노래를 들었다. 키야- 





그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 즉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독서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금방 알 수 있으며, 사람 사이에 이보다 더 큰 구별은 없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들으면 놀랐고, 그의 괴상한 성격에 머리를 가로젓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레고리우스는 알고 있었다. 정말 알고 있었다. (p.101-102)

"옷을 좀 사지 그래요?" 첫 줄에 앉은 학생이었던 플로렌스는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그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아내가 되었을 때, 이런 태도는 곧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스어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아요." 다시 혼자 살게 된 19년 동안 옷 가게에 간 적은 두세 번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도 옷 때문에 잔소리를 하지 않는 생활을 즐겼다. (p.118)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친자식을 동물처럼 도살하라고 요구했음을. 이런 말씀을 읽을 때 느끼는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신과 논쟁하려 한다고 욥을 비난하는 신은 도대체 어떤 신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기가 겪는 상황을 도저히 이애할 수 없는 욥을? 욥을 그렇게 만든 게 누구던가? 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을 불행에 빠드리는 것이, 평범한 사람이 그러는 것보다 덜 부당할 이유는 뭔가? 욥이 풀평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았던가? (p.217)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4-06-1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이런 얘기 하는거 좀 이상하다는 거 알지만서도, 금요일에 다락방님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는데요.
나도 다락방님 만나고 싶었는데.... T.T 눈에 뭐가 나서, 엉엉.... 약을 먹어도 낫지를 않고......
너무 보기 흉해서요.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지만, 단정한 모습으로 다락방님 만나고 싶어서, 금요일에 다락방님 있는 곳에 갈 수가 없었어요. 만약에 나갔으면, 용기내서 다락방님한테 전화했을텐데... 아니면, 단번에 알아봤을수도... 엉엉.....

2. 저는 바깥에는 못 있어요. 특히 오래는요. 그리고, 플랫폼에도 오래는 못 있어요. 빠이~~ 하고 가버릴거예요.

3. 욥기는, 저도 한 두 번 읽어봤는데. 성경을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읽을 수는 있지만.....
많이 재미있지는 않고. 하지만, 작가들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에 공지영씨도 욥기에 대해 쓴 글이 있더라구요.
욥의 친구들이 주저리주저리 한 마디씩 하는데요. 하일라이트는 끝부분 '하나님의 대답'이예요.
웬지 다락방님은 안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다락방 2014-06-16 11:19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대체 어떻게 아시죠, 단발머리님? 전 지극히 조용히 움직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단발머리님이 전화하셨다면 저는 기꺼이 단발머리님께 가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을 겁니다. 하핫. 어쩌면 저를 단번에 알아보셨을 지도 모르고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정말.

저도 바깥에, 플랫폼에 있어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렇게는 싫었죠. 그렇지만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고 있답니다. 저란 인간은 워낙에 변덕이 심해놔서 말이지요. 확실히 플랫폼에 서 있는 쪽이 제게 더 잘 어울리고 또 제게 더 편합니다.

욥기를 한두번 읽어보셨다니, 오, 놀랍습니다, 단발머리님.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일전에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고서도 성경을 읽어보고 싶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또 그러네요. 어쩌면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제가 안 좋아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요. 읽지는 않았는데 벌써부터 말이지요. 하핫.

월요일이에요. 그나마 이제 점심때가 가까워옵니다. 히융-

레와 2014-06-1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리아 주앙은 영화에서 안나왔던 인물이죠? 다락방 페이퍼를 보니 영화와 책이 다른책 같은데. ㅎㅎㅎㅎ 책을 읽어봐야겠소!

다락방 2014-06-16 11:59   좋아요 0 | URL
네! 저렇게나 중요한 인물이 영화속에선 아예 존재가 없었다는.. ㅎㅎ
게다가 놀랍게도 영화와 책의 결말이 완전히 달라요, 완전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4-06-16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6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6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7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