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를 공부할수록 동시에 두 가지의 상반되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 하나는, 국가가 한 나라의 주민들에게 일체의 대안적 의식들을 어릴 때부터 마비시키는 근대만큼 대중들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심한 시대는 역사상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경우 '자유로의 도피'는 대개 군사주의적 광기의 형태를 띠었다. 100년 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나 영국의 주류 사회주의자들은 1848년 혁명의 시절부터 급진적 수사를 이어받고 5월 1일의 노동절이면 '제국주의 타도'를 외쳐댔지만,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제국주의의 깃발 밑에서 서로를 죽이려고 광적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것이 살인적 열광보다는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식의 냉소주의적 형태를 띤다. 세계 인구의 15% 정도밖에 안 되는 미국, 서유럽, 일본이 세계 자원의 약 85%를 독식한다는 사실 등이 이미 노르웨이 중고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자원 약탈을 바탕으로 삼는 세계 체제를 바꾸려는 노르웨이 젊은이들이 다수일까? 천만에. 우리가 약탈자라 해도 우리의 소비 수준에는 손을 대면 절대로 안 된다는 집착은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대다수 서방인들의 집단 의식이다. 세계를 바꾸기 위해 몸 바칠 자유와 나의 도덕적 이상을 실천할 자유로부터 집단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약탈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집단적 여유와 소속감에 안주하는 것이 개인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집단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근대인데도 '다름'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급진적 운동이 주목을 끈다. 개인마다 자기 나름의 우주를 이루는 만큼 한 개인은 천편일률적인 '국민'이나 체제의 부속물이 아니라 약탈적 체제와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해방의 의미를 지닌다. 저항의 정신을 살려 후손들에게 인간이 홀로 서는 도리를 가르쳐준 사람들 중에서 우리는 한용운, 나혜석, 체 게바라, 프란츠 파농 등을 익히 안다. 역사를 제도권 위주로만 배운 우리에게는 그들의 이름이 낯설다.

 박노자, <하얀 가면의 제국> (한겨레신문사,2003) p.113-114

노예정신의 동양과 대조를 이루는 '자유정신의 서양'이라는 담론의 구조는 비서구 지역 지식인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 체화한 서구 지배층의 자만에 찬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뜨끔!) '자유'란 무엇인가? 실존주의적 시각에서 본 존재론적 의미의 자유는 '나의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선택권'을 뜻한다. 그러나 대다수 서구인들은 그들이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제도권 교육을 받고 취직하고 생산, 소비의 순환에 빨려드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 이외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그들이 무슨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는 지구자원을 고갈시키고 인류를 집단 자살로 이끌고 있는 오늘의 소비주의 사회가 역사의 목적이자 지상낙원으로 보일 뿐이다. 현실을 절대시하는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서구, 소비중심주의적 서구인과 북한 사회를 '조선 역사의 당연한 목적'으로 보는 북한의 '순진한 시민'은 어쩌면 무척 비슷하다. 오히려 자신을 모르고 북한사람들을 '자유없는 불쌍한 노예'로 보는 서구인이 당하는 세뇌가 한층 더 교묘하고 철저하다.

[...]

사회주의 계통의 국회의원들마저 전쟁 히스테리에 휩쓸려 전쟁을 지지한 1914년 7월의 유럽보다 오늘의 유럽은 전체를 위한 희생을 덜 강요한다. 그러나 "남을 속박하는 자는 자유인이 될 수 없다."는 명언대로 제3세계에 대한 서구의 착취가 중단되지 않는 한, 서구인들의 '자유'를 논하기는 힘들다. 유럽의 진보적 투쟁의 역사를 유심히 연구할 필요는 있지만, '옥시덴트'를 이상적인 지향점으로 설정해 서구 지배층이 만든 함정에 빠질 필요는 없다. 서구 중심의 세계는 우리가 지나가게 된 하나의 단계일 뿐 인류 역사의 종점도 목적도 아니다. '이상적인 서양'이라는 그림을 말끔히 지워버릴 때 비로소 진정한 세계 평등의 길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Ibid., p.29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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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nd Imperialism

    As we look back at the cultural archives, we begin to reread it not univocally but contrapuntallywith a simultaneous awareness both of the metropolitan history that is narrated and of those histories against which (and together with which) the dominating discourse acts. In the counterpoint of Western classical music, various themes play off one another, with only a provisional privilege being given to any particular one; yet in the resulting polyphony there is concert and order, an organized interplay that derives from the themes, not from a rigorous melodic or formal principle outside the work. In the same way, I believe, we can read and interpret English novels, for example, whose engagement (usually suppressed for the most part) with the West Indies or India, say, is shaped and perhaps even determined by the specific history of colonization, resistance and finally native nationalism. At this point alternative or new narratives emerge, and they become institutionalized or discursively stable entities.

 Edward W. Said, Culture and Imperialism (New York: Random House, 1993)  p.51

[...] Yet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liberation as an intellectual mission, born in the resistance and opposition to the confinements and ravages of imperialism, has now shifted from the settled, established, and domesticated dynamics of culture to its unhoused, decentered, and exilic energies, energies whose incarnation today is the migrant, and whose consciousness is that of the intellectual and artists in exile, the political figure between domains, between forms, between homes, and between languages. From this perspective also, one can see "the complete consort dancing together" contrapuntally. 

 Ibid., p.332

No one today is purely one thing. [...] Survival in fact is about the connections between things; in Eliot's phrase, reality cannot be deprived of the "other echoes [that] inhabits the garden." It is more rewarding - and more difficult - to think concretely and symphathectically, contrapuntally, about others than only about "us." But this also means not trying to rule others, not trying to classify them or put them in hierarches, above all not constantly reiterating how "our" culture or country is number one (or not number one, for that matter). For the intellectual there is quite enough of value to do without that.  

 Ibid.,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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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드: 늪 속의 여우

<매트릭스>의 네오와 스미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골렘. 일마들은 이렇게 적대적 짝(적대적 쌍둥이)을 이루고 있다.  네오와 스미스, 프로도와 골렘은 자유의지의 두 얼굴 혹은 양극을  대표하고 탐욕과 무절제의 자유(스미스, 골렘)는 자기 희생과 헌신의 자유(네오, 프로도)에 의해 정복됨으로써 그 뻔할 뻔자의 교훈적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런 적대적 쌍둥이 관계가 이 영화 <패트리어트>에서도 나타난다.  전설적 영웅 벤자민 마틴(멜깁슨 분)과 잔혹한 영국군 장교 윌리엄 태빙턴(?  분)이다. 

이 짝패는 잔혹하다는 점에서 대칭을 이루지만 전자는 죄의식에 몸을 떨고 후자는 무도덕적 냉혹함으로 흔들림이 없어 여기선 비대칭을 이룬다. 왜 이런 짝패를 만들었을까?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일부러 균열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더 큰 비젼으로 통합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더 큰 비젼이란 '미국 독립'이란 숭고한(?) 비젼이다. 식민지는 식민지배자들에게 소위 문명적 규범를 맘껏 넘어설 기회의 벌판이다. 여기서 두 명의 식민자(인디언 흉내를 내는 미국인과 여우 사냥을 즐기는 듯한 영국군 장교)가 열라 자유를 누리며 폭력을 행사한다. 한 놈은 인디언을 몰살했고 다른 한 놈은 식민지 미국인을 몰살하는 중이다. 학살자라는 점에서 둘 다 차이는 없지만 벤자민 마틴은 네오나 프로도처럼 한갓 양심은 좀 남은 놈이다.  그리고 그 쥐톨만한 양심에 기대어서 제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 정당성을 구축한다. 물론 당연히 날림공사지만...      

설상가상으로 멜 깁슨이 분한 벤자민 마틴에게 진짜 어메리칸 네이티브, 즉 인디언의 이미지를 씌운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그 많던 인디언은 다 어디 가고 저기 도끼 하나 들고 휘둘며 뛰는 백인 하나만 남았는가? 그 많던 인디언 다 죽이고 그 땅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이미지까지 도둑질을 한단 말인가? 얼마 전 본 클린트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와 정확히 정반대에 위치하는, 양심도 없는 '국가의 탄생'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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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2003-12-2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자민 마틴의 캐릭터는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맞나?) 캐릭터와 비슷하다. 식민지 변경을 지배하고 그 곳에서 문명 바깥의 자유를 누리며 고통받는 아웃사이더가 조금 소프트해진 채 그려진다고 할까? <리쎌웨폰>의 멜깁슨의 이미지와도 겹치니 겸사겸사? <지옥의 묵시록>의 말론 브란도는 아예 죽임을 당해야 하지만 <패트리어트>과 <리쎌 웨폰>의 멜깁슨은 국가과 가정의 품에 안전하게 다시 안긴다. 부르조아적 삶에 식상한 사람들이 안전한 일탈과 회복의 사이클을 투사하기에 적당한 캐릭터가 아닐런지?

간달프 2003-12-2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에게 식민지는 일탈과 매혹, 공포의 심연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못 알아들을 말을 하거나 아예 말을 못하거나 심하면 이 영화처럼 그 존재가 (소문만 남거나) 지워져 버린다. 식민지 '벌판', '밀림', '늪', '숲' 따위는 문명의 일원이 서구인이 '여우', '늑대', '인디언'이 되는 짜릿함을 제공하면서 그로 인한 죄의식도 함께 붙여둔다.

간달프 2004-01-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정작 벤자민 마틴(멜 깁슨 분)이 뒤집어 쓰고 있는 인디언의 이미지마저도 인디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침입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플로벨' 자신이 그녀 대신 말했고, 그가 그녀를 대변하고 소개하고 표상했다."
 

친일협력자 문제 논쟁 재연 [한겨레]

 "친일변호, 죽은 자 아닌 산 자 위한 일" 친일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드물긴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와 친일행적을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로 평가하는 `옹호론’에서부터 엄밀한 의미의 친일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실증론’, 엄혹한 식민통치 시대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민족정기론’ 등 다양한 생각이 뒤섞여 있다.

복거일씨 "가혹한 제국주의 통치로 선택 여지 없었다" 주장에 고종석 위원 "피하기 힘든 상황 면죄부 될 수 없어" 정면 반박

이런 가운데 고종석 <인물과사상> 편집위원이 친일파를 변호하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계간 <인물과사상> 최근호에 실었다. 한국의 대표적 자유주의자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복거일씨가 최근 펴낸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이하 <변호>)에 대한 반론이다. <변호>는 당시 인구통계와 외국 식민지 사례, 외국학자들의 문헌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고 있는데다, 분량도 무려 530여쪽에 이를만큼 긴 글이어서 `친일 변호’ 논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친일파에 대한 변론은 “일제 식민통치가 더 할 나위 없이 가혹했”으며 “따라서 조선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친일행위에 대한 비난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또 일제의 식민통치 자체에 대해서도 “조선의 근대화가 이뤄졌으며, 일제 말기의 인구가 초기의 2배에 이를만큼 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시대가 그런대로 살아갈만한 세월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주장은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며,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 터”라는 `인과율적 운명론’으로 이어진다. 고 위원은 반론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친일문제를 묻어두자는 것은 `과격한 상황론’”이라며 “그런 환경결정론을 다른 수많은 범죄들, 특히 궁핍에 기인한 범죄나 이념 범죄들로까지 넓혀 적용”해 볼 것을 권고했다.

그는 또 복씨가 당시 인구통계를 식민통치 옹호론의 논거로 삼은 데 대해서도 “인도·방글라데시·중국의 인구증가율이 20세기 후반에만 2~3배에 이르지만 이 시기 세 나라의 통치가 부럽지 않다”는 말로 그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드러내보였다. 고 위원은 이어 “<변호>의 저자는 일본이 조선을 `추출’ 식민지가 아니라 `정착자’ 식민지로 삼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으나 “저자가 인용한 서양학자들이 대표적 정착자 식민지로 꼽은 미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들의 입지가 조금이라고 남아있느냐”고 반문했다. 고 위원은 친일파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도 “`친일’이 명망가에서부터 필부까지 누구도 쉽게 피하기 힘든 덫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정이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변호>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 그 중에도 `힘센 자’들을 위한 변호”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복씨가 `재변론’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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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통치 미화 ‘식민지조선…’ 출간 (문화일보)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일제 식민 통치 옹호론’이 되살아나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과 거리가 있 는 민족 정기론’에 눌려 있던 ‘실증론’이 고개를 드는 것인가 . 지난 여름 복거일씨가 일제 시대 친일파를 옹호하며 펴낸 ‘죽은 자를 위한 변호’(들린 아침)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 일본인이 일제 식민지 통치를 옹호한 책 ‘식민지 조 선의 연구’(변영호 옮김·춘추사)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 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제 식민통치는 인치주의(人治主義)에서 법치주의(法治主義)로 바꾸는 등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었다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일본은 한국에 사죄할 이유가 없다 ”고 강조하고 있다. 고문, 3·1운동 무차별 진압, 토지의 약탈, 일본어 강제 사용, 창씨개명, 징병, 경제 착취 등 한국에서 주 장하는 일제 식민 통치의 학정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일본은 조선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정도의 선정을 펼쳤다는 주장이다.

책을 쓴 스기모토 미키오씨는 엔지니어로 은퇴한 뒤 지난 93년 호소카와 전 일본 총리가 방한, 일본 통치에 사죄하는 것에 의문 을 품고 60세의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가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일본 자유주의사관 연구회 이사. 책에 따르면 천안 독립기념관에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 재현되고 있는 일제의 참혹한 고문 장면 등은 일제가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이는 일제보다 훨씬 가혹한 행형제도를 유지했던 조선의 유물로 , 오히려 일제에 들어와서 가혹한 고문과 태형등을 없앴다는 것 이다. 또 창씨개명의 경우, 조선인 말단관리가 실적과시를 위해 무리를 하는 바람에 일부 문제가 있었을 뿐 중앙 정부 차원의 문제는 없었으며, 조선인 지원병도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7.7대1~ 62.4대1에 이를 정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원, 기쁘게 출정했 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처럼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한 책에 대해 학계는 지난해초 친일 파를 미화한 책 ‘친일파를 위한 변명’을 냈다가 벌금형을 선고 받은 김완섭씨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며 무시하는 분위기. 하지 만 김씨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일본은 엄청난 인력과 자원, 재 정을 투입해 미개한 땅을 정성스럽게 개발했다”는 예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복거일씨의 ‘죽은 자를 위한 변호’에 대해 계간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인 고종석씨 등이 반론을 폈으나 복씨는 이에 대해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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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병리적 현상으로서의 독일 나치즘 -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포이케르트의 <나치시대의 일상사>에 대한 서평 중에서

 [...] 필자의 생각으로 포이케르트의 책은 한국사 연구, 특히 일제시대의 역사화를 위해 독일 일상사가 줄 수 있는 의미를 점검해보는 중요한 전거이다. 우리는 포이케르트의 문제의식을 쫓아서 일본 제국주의는 서양이 아닌 동야에서 나타난 근대 문명의 병리적 표현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는 없을까? 일제시대는 식민지와 근대가 중첩된 시대이다. 김진송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책에서 잘 그려냈듯이, 일제시대는 일상적 삶의 측면, 곧 신여성, 하이칼라, 철도, 라디오, 축음기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의 측면에서의 근대화가 일어났던 시기이다.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일제 식민지의 역사화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범주에 입각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역사에서 주된 관심은 제국주의 국가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함으로써 어떤 수탈을 했으며 이에 대항한 조선인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어떤 운동을 벌였는지에만 주로 집중됐다. 이에 대해 일상사는 일상이라는 범주로 당시 조선인들이 식민지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기술한다. [...] 연구의 시각을 전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식민지라는 모순을 덮어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근대화의 모순을 아래로부터 근본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일상사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일제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를 일본 근대 사회가 메이지 유신 이후 겪었던 위기의 증상으로 곧 일본의 근대성의 병리와 왜곡이 각별하게 표출함으로써 발생했던 것으로 보는 해석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식민지 조선은 일본 근대화의 '실험실'이었다. 일본이 자신의 근대화의 위기를 해소할 목적으로 조선을 자신의 근대화 기획 속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바로 이런 일본에 대한 한국의 근대화를 공식화하는 표현이다. 이른바 '나치 혁명'이 목적에서는 반동적이었으나 수단에서는 혁명적이었으며, 그 혁명적 수단의 결과로 나치즘은 독일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데이비드 쇤봄(David Schoenbaum)의 테제와 같은 의미로, 수탈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조선의 근대화라는 수단을 사용했다는 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재해석할 수는 없을까?

출처 - 당대비평 200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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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우물이 있는 집, 2003) 중에서

저 이토 히로부미부터 오늘의 수많은 일본인까지, 조선말의 선교사로부터 오늘의 교황대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조선침략을 미국의 필리핀침략으로 상계(相計)한 대사들로부터 오늘 한국인 들쥐론을 편 미국대사까지 바로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였고 존 스튜어트 밀의 후배였다. 만일 영문학이나 영국의 사회과학에 탐닉하면서 일본의 조선침략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밀의 <자유론>을 들먹이면서 한국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논한다면 그것은 밀의 의도를 착실히 따르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운운하면서 일제를 비난하는 정치학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숭상하며 일제의 경제침략을 비판하는 경제학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일제도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 속에 있었고, 우리는 그 지배권 속에 있었다. 일제란 그런 의미에서 현대 한국의 기본이요, 모델이다.

우리는 그 시대의 연속선상에 살고 있다. 바로 일본이 그러하고 한국이 그러하다. 만일 일제를 부정하려면 현대의 한국도 부정해야 하고 나아가 서구를, 아니 세계를 부정해야 한다. 흔히들 독일의 전후 참회와 일본의 전후 반동을 비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국의 이야기로서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일본이 갖는,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 침략에 대한 무반성과 반동인데 그것은 오늘의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와 완전히 동일하다. 따라서 사실상 제국주의사상에 기초한 영문학 내지 영국학문을 탐닉하면서 일제의 침략 운운하는 것은, 인디언을 멋지게 학살하는 보안관에 열광하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것과 같다.                                    

 p.103 -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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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하얀 가면의 제국> (한겨레신문사, 2003) 중에서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서구-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는 세계사의 필연적인 귀결도, 어떤 역사 법칙의 반영도 아니며 단지 자본 증식을 유일한 도덕률로 아는 특정 지역의 관료-자본가들이 건설하고 유지하는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구조물일 뿐이다. 우리 역사를 그들의 척도로 재는 것은 최악의 폭력이 아닌가? 어디까지나 유교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던 조선 후기 상인들을 '자본주의의 맹아'로 보려는 것도, 세계 체제에 재빨리 편입해가고 있었던 개화파를 '선각자'로 보는 것도, 목숨을 내걸고 유교적 전통을 지키려는 의병장들을 근대적 '민족주의자'의 틀에 뜯어맞추는 것도, 우리 안에 내재된 옥시덴탈리즘의 발로일 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일본에 의한 식민화가 조선의 내재적 근대화를 막았다는 '내재적 발전론/식민지 수탈론' 지지자들도, 이론에 의한 자본주의의 이식이 한국 자본주의의 '기적적' 발전의 밑천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적인 근대를 조선을 포함한 모든 사회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하거나, 어떤 야만적인 억압을 수반해도 유럽형 자본주의적 근대라면 무조건 善으로 보는 것도 같은 본질의 옥시덴탈리즘에 걸려 있다고 봐야 한다. 식민지 시대를 악으로 보든 선으로 보든 간에 서구적인 근대가 무조건 기본 척도가 되는 것이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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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금융 허브? 헛고생 마라”

2003년 12월  [한겨레21]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의 허상 폭로해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한국 경제 진단

장하준(40)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부 교수(개발경제)는 지난 10여년간 제3세계 경제와 세계화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해온 대표적인 소장파 경제학자다. 그는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가 개도국·후진국에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환상이라는 것을 지난 200년간의 선진 각국 자본주의 발전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폭로해왔다. 19∼20세기의 선진국 경제발전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국내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1월 한국인 최초로 제도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뮈르달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또 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은 개도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경제발전의 사다리를 오르려 할 때 이 사다리를 차버리는(Kicking Away the Ladder) 수단이라고 줄곧 비판해왔다. 역사적 실증을 통해 세계화에 대한 ‘이론적 저항’을 해온 셈이다. 39살의 나이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후보 물망에 올랐던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0년부터 이 대학 교수로 재직해왔다. 고려대학교 교환교수로 올해 한국에 와 있는 그를 만났다.

글로벌 스탠다드 강요하면 안된다

-미국은 제3세계와 개도국이 성장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글로벌 스탠더드나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경제가 성숙해 선진국에 진입한 다음에 형성된 것이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입한 게 아니다. 개도국이 자신들의 경제발전 경로를 선택할 때 역사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줘서는 안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면서 이것 안 하면 망한다는 식으로 처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물론 발달된 제도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발달 단계에 맞고 사회적 목표에 부합하는 제도인지 따져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왜곡된 정보란 무엇을 뜻하는가.

=선진국들이 개도국·후진국에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후진국·개도국이었을 때는 보호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철저히 규제했다. 자유방임 시장논리를 전파하는 미국을 보자. 유치산업 보호의 원조이자 모국은 사실 미국이다. 미국은 19세기에 세계 최고의 관세율로 유치산업을 보호했는데, 1890~1910년 관세가 가장 높았던 시기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1차대전 이전까지 미국은 금융·해운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아예 금지했고, 농지·광산채굴·벌목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강력히 규제했다. 인디애나주에서는 외국 기업에 아예 법적 보호도 못 받게 했다. 미국은 지금도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정부가 개입해 산업정책을 펴고 있다. 전체 연구개발(R&D) 비용 지출을 보면 한국과 일본은 정부 지출이 20∼30%인데 미국은 70% 안팎이다. 국방·항공산업·컴퓨터·생명공학에서 미국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맥도널 더글러스사가 보잉사에 통합될 때 민간 ‘시장’에서 자유롭게 인수합병이 일어난 게 아니다. 미 국방성이 더글러스사의 납품을 3차례 연속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부 개입을 통해 조용히 통합시키는 산업정책을 썼다.

-자유무역은 제국주의 팽창의 논리이고 다른 나라의 산업화를 봉쇄하려는 정책인가.

=세계무역기구는 “너희들(개도국)이 지나치게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다 다 망했잖아?”라면서 유치산업 보호는 잘못 쓰면 스스로 다치는 칼이라고 주장한다. 자기들은 그런 칼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을 잘못해서 실패한 나라도 있지만, 보호무역을 안 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 보호무역을 안 하고 더 빨리 성장한 국가도 없다. 미국이 2차대전 뒤 무역과 투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지만, 세계 경제의 최강국이 되면서 자유화를 하는 게 자국의 이익에 유리했기 때문이지, 뒤늦게 자유무역 이론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각종 규제나 노사관계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환란 이후 외국자본에 부실기업을 마구 팔 때 외국인 직접투자가 크게 늘었다. 지금와서 그때에 비해 직접투자가 떨어졌다고 난리고 또 이는 경제정책의 실패 탓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지금도 그때처럼 기업을 막 팔아야 하는 상황이란 말인가? 외국자본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물건 팔아먹을 시장이 얼마나 큰지,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지, 노동력의 질이 어떤지 등을 따지는 것이지 노사관계, 규제, 법인세 같은 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 인센티브로 끌어들인 외국자본은 그 매력이 없어지면 언제든 보따리 싸서 떠나버리게 마련이다. 사실 떠나는 자본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고, 나가기 어려운 외국자본만이 꼭 노사관계가 어떠니 규제가 어떠니 하고 문제 삼는다.

-자본에 색깔과 꼬리표가 있는 건 아닌데.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말은 강대국 자본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지만 자본의 핵심 경영진은 철저하게 국적을 따른다. 물론 기업과 은행을 무조건 한국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본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한국 경제 시스템을 재조직해야 하는 시점인데, 은행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펀드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재벌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명확한 청사진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세계 금융의 중심이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으로 이동한 것은 그 나라의 제조업 발달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앞으로 100년간 손실을 보전해준다는 약속이 있으면 모를까, 그런 약속 없이 오랫동안 홍콩, 싱가포르에 뿌리박고 영업해온 국제금융 센터들이 한국으로 옮겨올 리 만무하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좋은 말로 헛고생이고, 자칫 남의 장단에 춤추는 꼴이 될 수 있다. 허망한 꿈을 좇을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곳에 우리 경제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 재벌체제는 어떻게 개혁하는 게 바람직한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대성공, 그리고 삼성자동차 실패는 재벌체제라는 같은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재벌체제는 자금동원력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고 계열 기업간 상호 보조를 통해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채산성 없는 부실기업을 지탱시키고 계열사 연쇄 부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도 크다. 재벌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이나 국민경제 틀 안에서 봐야 한다. 물론 재벌총수 가족의 지배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없애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타율이다. 재벌체제 개혁은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3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 4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경영권 안정을 위한 방안은 없나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크게 축소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투자가 갑자기 예전의 3분의 2 수준으로 뚝 떨어졌는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설비투자 감소는 노무현 죄도 아니고 북핵 죄도 아니다. 한국 경제 시스템이 바뀌면서 투자가 떨어지고 있다. 기업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단기 수익만 좇다보니 모험적이고 위험한 장기 투자는 꺼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 자유화로 적대적 M&A가 가능해져 기업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유사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대비한 실탄을 내부 유보 자금으로 틀어쥐고 있다. 경영권이 불안하면 투자지평이 협소화·단기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적당히 3%대 성장하고 말 것이라면 모를까, 국민소득 2만달러의 야심이 있고 진짜 선진국으로 가려면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설비투자 확대의 전제조건으로 기업의 경영권 안정이 필요하다면 그 방안은.

=연기금이 기업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국민경제 이익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도 있고 공기업을 끼워서 기업들끼리 우호지분을 사주는 방식으로 경영권 안정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일본처럼 가족 소유 없이 주거래은행·계열기업·대형 하청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상호간에 우호지분 보유를 통해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재벌체제 내부를 감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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