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결함…새로운 헌정구조 모색을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2) 정치개혁과 부패척결

2004년 03월 18일   최장집 고려대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

국회에서의 대통령탄핵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위기를 몰고 왔다. 현재 한국민주주의는 탄핵을 결행한 야당과 이를 지지하는 정치권 밖의 보수적 동맹세력들의 전략적 개입가능성을 한편으로 하고, 탄핵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 저항하는 시민적 공분과 운동의 동원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두 힘 간의 불안한 균형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이 균형이 깨어진다면 국면적 위기로부터 시작된 사태는 사회의 모든 갈등들을 불러내고 극대화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무정부적 상태로 빠져들른지 모른다.


현실로 나타난 탄핵이 당내문제와 리더십위기에 직면한 두 야당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시켜온 헌정체제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사태를 헌정체제의 중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의회다수파가 민주화의 결과로 성립한 헌정체제의 가장 핵심부분을 공격하고 마비시킴으로써 헌정체제에 중대한 손상을 가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퇴출위기에 몰린 보수적 야당의 지도부와 의회 밖의 극우적 세력의 동맹이 이러한 사태를 빚어냈다는 사실은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비극이다.

정부 對 의회 대립 일상화

탄핵이라는 정치위기가 갑작스럽게 도래했지만 그러나 큰 사건은 언제나 그러하듯 긴 과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민주화이후 기득이익에 기초한 보수파들은 대통령선거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 중심적 지지 세력을 한국사회의 기득이익 외부에 뒀던 김대중, 노무현정부에 이르러 더욱 그러했다. 이번 탄핵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자해적인 방법도 불사하는 결사항전식 투쟁은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구세력들의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탄핵위기로 드러난 보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도 이제 제도의 문제로부터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간 대통령의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상이한 분할정부적 상황은 민주화이후 한국정치의 패턴이 됐고, 정부 對 의회의 대결구조는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의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정부의 작동 그 자체를 매우 어렵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국민주권을 대표하게 되는 이런 이중대표성의 문제는 대통령중심제에 내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두 부문 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한 3권분립은 또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대통령제를 모델로 한 한국의 대통령제가 미국의 제도디자인과 정반대의 내용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세 개의 정부부문 가운데서 의회를 가장 강한 권력의 중심으로 봤던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의회의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제도디자인의 초점을 뒀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견제할 초강력한 권한을 의회에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는 대통령의 권력제한 가능성은 경시됐다.


정당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한국정치가 직면한 문제의 중심에는 정당이 있다. 민주주의란 사회의 갈등과 균열이 정당으로 조직되고 그것이 정치경쟁의 중심적 단위가 되는 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민주화이후에도 지속돼온 보수독점적 정당체제는 민주화이후의 사회변화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들이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 그리고 기능적이고 계층적인 이익에 뿌리내리지 못함으로써, 사회의 대표기능과 유권자에 대한 책임의 고리는 더더욱 허약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중의 참여, 대표, 책임의 원리가 정당을 통해 구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정당체제는 기본적으로 사회로부터 괴리된 엘리트간 균열과 단기적 손익계산에 의한 이합집산의 결과물 이상이 아니다. 당 지도부가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당내개혁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국적 전략선택을 결행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로부터 괴리된 당의 자율성과 당내민주주의 결여에 의한 당지도부의 폐쇄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정당체제가 현재와 같이 보수독점적 엘리트카르텔 구조로서의 성격을 지속하는 한 파국적 정치위기의 가능성은 일상적인 위험요인이 아닐 수 없다.

사회로부터 괴리된 정당체제

이번 사태에 새로운 면이 있다면 사법부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민주주의의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 판사들의 양식 즉 “법리적 판단”에 의존하게 됐다. 절차의 순서로 볼 때, 탄핵의 첫출발은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선관위가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선거법 위반으로 결정한 것으로부터 왔다. 그들은 “대통령은 공무원”이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한다고 판결했다. 이와 같은 협애한 해석은, 그 자체가 합법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현행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직의 역할과도, 그리고 파당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는 정당정치의 원리와도,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원리와도 상치한다.


탄핵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탄핵을 정당화하는 헌재의 평결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탄핵이 결정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헌재의 결정에 우리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헌재가 의회의 결정을 번복하는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사태가 종결될 수 있을까. 헌재에 의해 ‘구제된’ 대통령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민주주의의 운명이 9인의 판사들의 평결에 맡겨지게 되기 이전까지 많은 국민들은 헌재가 이런 권한을 갖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또한 헌재 위원들은 누구인지, 얼마나 민주주의가치를 준봉하는지도 이제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됐다. 하나의 법과 그 평결이 민주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식적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 원리에 부응하는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사법부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에 비례해, 사법부의 구조가 민주화되고, 민주적 내용을 갖춰야 할 필요는 절실하게 제기되고 있다.


오늘의 정치위기 상황에서 한국민주주의를 위해 그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총선이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만약 국회의 탄핵에 의해 국민주권을 대표하는 대통령직의 운명이 사법부의 법률적 결정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주지하듯이 우리의 경우 서유럽의 민주주의국가들처럼 의회의 내각불신임에 대해 정부가 의회해산 및 총선거 실시를 통해 주권자로서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는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법부의 판결만으로 해소될 수 없는 현재와 같은 정치위기에서, 위기가 악화되기 전에 대통령 탄핵에 대하여 직접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천혜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탄핵이 만들어낸 위기의 해결은 무엇이 진정한 국민의 의지인가에 대한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하고 그것은 한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투표라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국민들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다른 어떤 결정도 이보다 민주적으로 우월할 수 없다.


탄핵을 주도한 의회다수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이러저러한 제도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오늘의 위기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요인이다. 최근 보수적 언론들이 앞장서 생산해내고 있는 담론들이 보여주듯이, ‘대통령없는 체제’를 미화하거나 혹은 아예 제도적으로 대통령제를 부정하는 경향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 이런 가능성을 억제하면서 정치위기의 악화를 막아주고 있는 것은 광범한 시민적 공분에 기초를 둔 운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탄핵이라는 방법을 통해 민주주의를 공격한 순간 시민적 공분과 운동의 힘은 16대 국회에 대해 해체를 선언해버렸고 이로써 16대 국회의 권능은 도덕적으로 종식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입법권의 행사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국회의 권한과 자격이 그 힘의 원천으로부터 부정된 상황으로 이해돼야 한다.

반정치주의 담론 극복해야

민주화이후 그동안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가치와 관점은 보수적인 주류언론이 주도하는 반정치주의 내지는 탈정치화의 담론에 의해 주도돼왔다. ‘정치가 문제다, 정치는 무능하고 썩었다’ 라는 인식의 확장은 모든 정치적 문제에 대한 해결자를 정치의 영역 밖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사회심리를 부추겼다. 그간 시민운동이 이런 지배적 가치를 선봉에서 강조하고 실천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말할 때 이번 탄핵위기를 기존 운동의 한계를 벗어나는 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날의 탄핵위기는 단순히 야당의 무모한 선택에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제도의 결함과도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총선이후 새로운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고 시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안들을 만들어내는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일정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새로운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수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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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과 한국민주주의


홍세화의 마주보기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의 대담

다시, 민주주의가 문제다.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대통령 직선제 쟁취의 함성으로 터져 나왔던 민주주의가 2004년 거리에서 되살아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것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홍세화의 마주보기’는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한국의 민주주의와 총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2002년 말 나온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며 다시 한번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민주주의와 마주서자고 제안했다.

홍세화
“30년 강고한 지역주의
호락호락하지 않다”

최장집 교수는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계층간 불평등이 심화되는 등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민주주의를 하려고 했는가’라는 심각한 물음을 던진다. 지난 6일 만난 그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탄핵과 촛불시위, 총선으로 이어지는 2004년 봄, 그는 희망을 보고 있었다.

홍세화=탄핵 정국에 나타난 갈등이 첨예하게 보이지만 어떤 모순이 발견됩니다. 첨예한 대립과는 달리 탄핵 주도세력과 그것을 방어하는 정치세력 사이의 이념적 차이가 별개 없다는 거죠. 후대나 해외에서 보면, 참 이상한 국면이라고 얘기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장집=87년 6월항쟁과 그 결과로서 민주화는 군부 권위주의와 국가 주도형 산업화로 만들어진 기성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이 정당간 경쟁의 과정에서 표출되고 해결되는 것이 민주주의일텐데 실제로는 지역당 구조라는 정당체제적 틀이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선을 상당히 흐리고 애매하게 했지요. 탄핵정국에 이르기까지 그 틀이 유지되지 않았나 해요. 여·야당 모두 사회의 구체적인 갈등이나 균열을 조직하고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면서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 정당체제, 그러면서 실제로는 정치계급화된 스스로의 이익 만을 대변하는 체제가 됐던 거죠. 그러다보니 정당체제는 사회적 요구나 변화로부터 내용적으로 상당히 동떨어져 있게 됐습니다. 보수적인 요구가 있고, 자유주의적인 요구들이 있고, 소외계층이나 노동자 계층의 요구들이 있지만 그 동안의 정당체제가 이러한 차이에 기반을 두고 경쟁했다고 보긴 어렵죠. 이렇게 사회와 유리되어 있다보니 탄핵을 주도했던 세력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결정이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예상할 수 없었던 것 아니겠어요 일반 시민은 탄핵 사태를 의회의 보수적인 정당들이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럼으로써 198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대면했어야 할 여러 문제들, 그런데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된 문제들이 이번 탄핵 사태를 통해 갑작스럽게 드러나게 됐다고 봅니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다시 선명하게 드러나고, 이것이 총선으로 가는 구도죠. 이것을 보면서 87년 민주항쟁 이후 지난 17년 동안 정치체제의 수준에서 민주주의는 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정부의 정책이나 정당경쟁의 구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단위의 조직이나 기구에서 민주화가 이뤄진 정도는 대단히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지역주의 정당의 모습이
더 도드라진다는 생각입니다
최/지역주의는 껍데기…
해방직후 신탁-찬탁과 유사하죠

홍=보수라고 뭉뚱그려진 정당체제가 차별성을 지역에서만 찾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탄핵 정국은 보수라고 뭉뚱그려졌던 집단에서 수구적인 세력이 스스로 돌출한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최=정당체제가 사회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보수를 대표한다는 정당이 이념적 지향, 정책 등 여러 차원에서 너무 수구적인 면을 강하게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론 형성의 통로나 수단을 보수언론이 쥐고 있고, 그래서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가치가 지나치게 보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 여러 부문의 상층 엘리트들도 그렇고, 기업계의 인식도 냉전반공주의 시대와 군부 권위주의 산업화 때 형성됐지요. 이들을 주요 지지세력으로 하면서 그간 야당은 시대의 변화나 사회의 요구에 맞지 않게 우리사회 최상층의 협소한 이해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념을 반영해온 것이죠.

대담은 곧 총선으로 옮겨갔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지역주의가 약해지리라고 예상되는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통한 영남의 지역주의가 상대적으로 도드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냈고, 최장집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한나라당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홍=보수언론과 상층이 결합돼 있는 것이 한나라당으로 표상되는 보수 정당의 한계성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지역과도 맞불려 있다고 봅니다. 총선을 통해 지역주의가 약화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한편 한나라당이 지역정당이라는 것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이번 총선이 민주화 이후 그동안 지속됐던 정치적 대표의 체제가 크게 변하는 전환점이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지역당 구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정당체제로 나가는 전환점이죠. 문제는 이런 해체가 곧바로 보다 민주적인 내용을 갖는 정당체제로 나타날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른 변형된 형태의 지역당 구조로 귀결될 것이냐는 겁니다. 아주 협애한 보수적인 이념과 정책을 가지고는 사회 전체의 다양하고 다원적인 갈등이나 요구들을 폭넓게 대변하는 것은 그만두고, 보수적 이익도 제대로 대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근본적으로 민주화와 더불어 변화했고, 계속 빨리 변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는 민주화 이전의 1950, 60년대의 이념에 집착하고 있죠. 내용적으로 보면 탄핵 사태는 엘리트 카르텔의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보수세력들이, 엘리트출신이 아닌 대통령을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심리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지요. 과거의 향수나 기득권에의 집착 등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 지역주의를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이나 욕구도 있습니다.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보수를 대표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한나라당에게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장집
“탄핵사태 폭발하면서
민주주의 새삼 인식”

홍/한나라당이 탈바꿈할까
보안법이 리트머스 시험지…
최/한나라당은 중간을 향해
열린우리당은 왼쪽으로 더 이동해야

홍=평면적으로 비교해 보면, 충청도에 바탕을 둔 자민련과 호남에 바탕을 둔 민주당, 영남에 지역적 바탕을 둔 한나라당을 비교하면, 결국 영남의 지역주의가 강고했고, 호남이 저항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면 충청도의 지역주의의 가장 약하지 않았나 합니다. 총선을 통해 약한 고리부터 무너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호남에 기반한 민주당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은 지역주의의 저항적 성격을 민주당이 탄핵 발의를 통해 스스로 방기하는 데서 비롯했다고 여겨집니다. 이에 반해 30년 이상 지역주의의 수혜를 받아왔던 영남의 지역주의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죠. 마치 민족주의에서 공격적·팽창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가 다르듯이 영남의 지역주의는 강고하고 좀 다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박정희 향수와 맞불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럽니다. 지역주의 정당으로서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는 생각입니다.

최=지역주의는 껍데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가 진행될 때는 민주주의를 지지했던 사회세력과 구질서로부터 혜택을 받거나 구질서를 지지했던 사회세력으로 뚜렷이 구분됐습니다. 민주화가 됐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더 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지역주의는 이런 보편적인 갈등구조를 국지화하거나 분해, 전치시키기 위해 구질서를 옹호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동원된 면이 컸습니다. 권위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문제를 지역주의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왜곡되어 나타나고 실제와 다른 내용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민주화 이후의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큰 갈등과 균열이 있었는데 이것이 지역주의라는 해석의 틀을 거치면서 한 바퀴 돌아 지역간 갈등으로 뒤바뀌면서 균열 구도가 흐려졌다고 볼 수 있죠. 마치 해방 직후에 통일된 독립국가를 만드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균열에서 신탁-반탁이라는 사이비 갈등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맹목적 대립으로 문제의 본질을 왜곡했던 것과 유사하죠. 지역구도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구도입니다. 사회의 기능적, 계층적 이해가 특정 정당에 의해 다른 경쟁정당과 명시적이고 분명하게 차이를 가지고 대표되지 못하는 조건에서, 일반인들은 정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요구를 표출하는 데 있어 혼란스럽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감정적이고 정서적이며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게 됩니다. 지역주의는 이런 정당체제적 조건을 반영하는 현상이지만 사실 따져보면 지역주의는 진정으로 그 지역민들의 이익과 갈등과 요구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게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씨와 같은 정치인들이 티케이의 박정희 향수를 자극해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런 언어나 발상으로 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대변하고 따라갈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한나라당은 존립을 위해서라도 변해야 할 시점이에요. 변하지 않으면 계속 소수당이 될 수밖에 없죠.

한국 민주주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상 보수와 극우 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제라고 최장집 교수는 지적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당체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홍/민주화 이후에 한국사회가
더 나빠졌다고 하셨는데…
최/소득분배구조 급격히 악회됐습니다
무엇위해 민주주의 하자 했는지…

홍=한나라당이 탈바꿈할 수 있을까요. 탈냉전 상황에서 변한다는 뜻인데 국가보안법이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생각해요. 그 문제를 대입하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최=국가보안법은 냉전의 상징이고 실제 그 시대를 지배했던 통치의 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사회가 개방적이고 다원적이 돼야 하는데 국보법은 이를 어렵게 하는 제도적 제약으로 작용합니다. 냉전 시기를 통하여 국보법은 사실상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법이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나라를 실제로 규율하는 법체계는 아직도 민주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죠. 과거 냉전 시대라면 몰라도 민주화가 됐고 탈냉전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지금에서조차 국보법에 의해 규율되는 사회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제 국보법이 없이도 이념문제를 스스로 소화하고 남북한 관계를 풀어나가기에 충분히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법이 아직 유지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을 이념의 차원에서 여전히 계도가 필요한 어린애로 보고 있다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닐 거예요.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국가보안법 개폐에 찬성하는 데 실제는 왜 안 되느냐 정당 체제와 정치 리더십의 허약함과 직결돼 있다고 봅니다. 정치인들한테 용기가 필요합니다. 국보법 폐지를 말하면 혹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 표가 안나올지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 혹은 허위의식에서 벗어나야죠. 최근 국보법의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게 송두율 교수 사건이라고 봅니다. 지식인들이 정치 일반에 대해선 너도나도 비판을 쏟아내는데, 정작 국보법과 송 교수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독일 지식인 사회나 언론, 유럽 전체에서도 송 교수 문제를 보면서 ‘한국이 과연 민주국가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양심의 자유, 내면 세계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민주주의라면 그건 아무런 정신적 기초가 없는 민주주의입니다. 저는 남북한의 경쟁은 끝났다고 봅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북한에 대해 오히려 남한의 정신적, 도덕적 우위를 보다 강하게 지키는 길입니다.

홍=한나라당이 탈바꿈하는 순간 탄핵의 대상으로 삼았던 참여정부, 열린우리당과 과연 어떤 차별성이 있겠는가 하는 측면도 있죠. 정책적 내용적으로 차별성을 보일 것이 없다는 것이 탈바꿈할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최=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정당체제가 보수적 스펙트럼에서만 경쟁하고 대표되고 있죠. 절반 이상은 대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당체제가 재구조화돼야 한다는 겁니다. 보수 일변도의 정당체제에서 사회의 넓은 영역이 대표되고 그 위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거죠. 그럴려면 전체적으로 중간과 왼쪽으로 많이 이동해야죠. 한나라당은 극우를 대표할 게 아니라 보수를 대표하면서 중간을 향해 이동해야 하고, 열린우리당 같이 개혁주의를 자임하는 정당 역시 우리사회 중간층을 두텁게 대변하기 위해 왼쪽으로 더 이동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변할 때 열린우리당도 변화의 압박을 받게 되겠지요.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싶어하는 정당이 왼쪽으로 이동해서 중산층과 서민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가고, 민주노동당과 같이 노동자와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변하려는 정당도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홍=한나라당이 오른쪽의 한계를 규정지으며 되도록 왼쪽으로 가면서 열린우리당을 더 왼쪽으로 가게 하고, 그것이 한국의 민주주의 정당구조라는 측면에서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말씀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정당이 사회계층의 갈등을 대표하고 표출한다고 할 때 사회계층 간의 갈등을 첨예화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거든요. 이것을 수용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문제에서 정치적 지향이 규정될 수밖에 없고, 정당의 성격도 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칼로 무를 자르듯 전체 구도를 가른다고 할 때 중간층이 두터워지는 정치 이념적 구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닌가 하는 거죠.

최=신자유주의에 대한 찬반 문제 만으로는 정당의 경쟁축이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는 결의 만으로는 너무 공허하니까요. 신자유주의가 이미 현실이자 제도적 실체로서 기능하고 있는 조건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상화시켜 말로 부정해버리고는 더 이상 현실을 생각하거나 보지 않게 하죠.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성은 보수고, 재벌은 모두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느냐 하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국제적 규범에 따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재벌이 가장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죠. 우리가 대면해야 할 신자유주의는 여러 층위와 차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구체화해서 대응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한국적 현실에 맞는 대안적 경제정책의 모색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식인사회까지 국가보안법 폐지에 미온적이라고 최장집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몇해 전 <월간조선>이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그를 사상검증했던 때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대담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조차 보장되지 않는 한국 민주주의의 정신적 허약성에 대한 얘기로 옮아갔다.

홍=한국은 워낙 국가의 통제 아래서 부작용을 많이 겪어왔는데 이제는 신자유주의 아래서 오히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해야 하는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한국은 국가의 역할이 크면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하게 돼있죠. 민주화라는 것이 시장의 역할을 증대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처럼 이해되기도 했고요. 엄밀하게 말해 그건 민주화가 아니라 자유화죠. 민주화라고 하면 국가를 가급적 약하게 해야 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죠. 민주주의도 강력하고 유능한 국가를 필요로 합니다.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죠. 왜냐면 민주주의를 통해서 시장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국가밖에 없거든요. 시장에서는 돈이 힘이고 경쟁이 그대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고 말지만, 민주주의는 국가를 통하여 시장이 만들어내는 부정적 효과를 완충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소외계층이나 중간층, 힘없는 사람들한테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의 좋은 정책이 절실한 겁니다. 대통령을 포함해 집권세력의 많은 사람들이 분권형 국가다 하면서 국가를 가급적 최소 분할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데 그건 아니죠.

홍/한국 민주주의 발전에서
이번 총선이 어떤 의미 갖나요?
최/정책선거는 중요한 문제 아니라 봅니다
정당투표가 중요합니다

홍=자유주의가 한국에서 반공을 위한 이념적 슬로건으로 너무 왜곡됐죠. 그것이 지금까지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열린우리당도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라 개정이고,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정치적 의사표시에 참여정부가 억압정책을 쓰고 있는 모습이 한국의 자유주의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동감입니다. 서구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정도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두 원리가, 서로 갈등하기도 했지만 크게 보면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해 현재까지 왔습니다. 아마 ‘자유주의’라는 말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많이 쓰고 강조했을 겁니다, 하하하. 역설이죠. 해방 후 양극화된 이념 대립, 분단, 전쟁을 겪으면서 실제 자유주의의 가치가 발 붙일 틈이 없었고, 한국의 부르주아지들이 서구처럼 절대 군주와 투쟁하면서 상업적 가치, 개인의 인권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권위주의와 결합했고 그래서 자유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없었죠. 거꾸로 민주화 이후에 들어와 자유주의적 규범과 원리의 결핍이 낳은 문제가 더 크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냉전반공주의나 집단주의적인 정서가 엄청나게 강한 반면 개인의 기본권, 사상과 양심의 자유 등은 턱없이 허약한 현실 때문이기도 하죠. 자유주의를 얘기할 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유주의는 사적 영역과 시장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국가에 반하는 이념이어서 자유주의가 극대화되면 민주주의의 힘을 통해 한 사회 전체의 공익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제약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자유주의의 과도한 강조는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냐 반민주냐. 최장집 교수는 총선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해 보수 독점의 정치구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정당체제가 출현할 것이라는데 큰 기대를 걸었다.

홍=민주화 이후에 한국 사회가 더 나빠졌다고 하셨는데, 17대 총선을 보면서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습니까

최=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뿐 아니라 사회상태로서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게 중요하죠. 이런 문제의식에서 보니까 민주화 이후 사회지표가 너무 나빠졌다는 데 주목하게 됩니다. 위기라고 할 정도죠. 신자유주의 효과와 결합되면서 실업률 증가, 고용구조의 악화, 중산층 해체, 370만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등 소득분배 구조가 급격하게 악화됐습니다. 언론은 중상층의 생활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지식사회는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사회현실로부터 떨어진 추상적이고 안일한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사회의 저변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지 않는가 싶어요. 민주주의, 민주주의, 말은 하는데 무엇을 위해 민주주의를 하자고 했는지, 도대체 민주화 이후 정치적, 사회경제적 수혜자는 누구인지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정당체제가 민주화돼야 하고, 사회의 소외계층의 이해를 폭넓게 대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하고, 시장이나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민주정부가 기여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향후 민주노동당의 역할에 기대를 많이 합니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은 기존 정당들에 비해 종류가 다른 정당이죠.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다 보수라는 스펙트럼 안에서 경쟁하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보수 일변도인 정당 구도에서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고 또 그렇게 돼야죠. 의석수가 적더라도 이런 정당의 출현과 역할이 한국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합니다. 종류가 다른 정당으로부터의 충격이 있어야 정당체제가 바뀌기 때문이죠. 똑같은 정당들끼리 하면 지역당 구조로의 돌아갈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합니다. 정당체제의 이념적, 계층적 기반이 넓어져야 그렇게 안 갑니다.

홍=오랫동안 노동과 서민이 배제돼온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서 이번 총선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세요.

최=87년 12월 민주화 이후 최초의 선거에서 지금과 같이 보수적 기반위에서 지역적 차이가 두드러진 정당구도가 형성되었지요. 이런 정치경쟁의 조건이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계기를 제공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릅니다. 정당체제가 우리사회의 민주적 욕구를 억압했다고 할 수 있죠. 탄핵 사태가 폭발하면서 우리사회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번 선거는 탄핵에 대한 국민투표라는 성격이 그 핵심이라고 봅니다. 여러 신문과 언론들이 앞다퉈 정책선거, 인물선거를 강조하는 데 그건 적어도 현재의 정당체제 하에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정책 그 자체만을 보고 정당이나 후보간 비교우위를 판별하라면, 그건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크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 열린우리당 모두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게 있어야 하고 그 위에서 정책과 인물이 의미를 갖는 것이죠. 정당투표가 중요합니다. 이번 선거결과로 나타나게 될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해서 문자 그대로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이념적 스펙트럼을 다원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정당체제가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발전은 없습니다.

정리=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사진=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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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Translation> - 잉여와 소외, 공간과 장소

- 영화의 소재는 진부할지 모르는 멜로이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방법은 시대적이고 참신하다. 영화 속 두 인물은 각각 도쿄라는 장소에 대해 잉여와 소외를 표상한다. 여주인공에게 도쿄는 자신의 자리(장소)가 없는 곳이다. 그녀가 도쿄에서 경험하는 존재감은 잉여성이다. 남자주인공에게 도쿄는 자기 일과 자기 자신이 극명하게 분리되는 곳이다. 그가 도쿄에서 경험하는 존재감은 소외성이다. 이렇게 약간 다르지만 엇비슷한 두 존재감이 뒤얽히는 과정이 영화의 줄기다.

- 공간(space)은 비어있는 물리적 연장(material extension)이라면 장소(place)는 (의미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다. 여기서 질문! 왜 이 영화는 하필 도쿄를 택했을까? 혹자는 뉴욕이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두 주인공에게 도쿄라는 장소에 대해 (문화적) 외부자이다. 문화적 내부자에게 장소는 마치 공간처럼 현상되는 경향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어떤 사람에게 너무 익숙한 장소는 '장소'가 지니는 개성적 성격이 무화되고 등질화된 '공간'처럼 현상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Taxi Driver>의 '뉴욕'과 비교해 보면 보다 분명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Taxi Driver>의 트래비스에게 뉴욕은 (의미 가득한 개성적) '장소'라기 보다는 (텅 비고 무의미한) '공간'에 가깝다. 너무 익숙해서 무의미한 장소, '공간'에 가장 근접한 장소인 것이며, 여기서 트래비스가 느끼는 것은 '공허'다. 반면 도쿄는 문화적 외부자들에게 이미 의미로 꽉 채워진 장소다. 그들은 여기서 끼여들 여지를 찾기 힘들다. 이것은 트래비스가 느낀 '공허'와는 정반대의 정서이다. (트래비스는 가공할 공허에 맞서서 질서를 창출하고자 한다.) 공허는 장소가 공간화된 결과이고, 잉여와 소외는 장소의 배타성이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요한 장소들은 대체로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호텔, 관광지, 그리고 도쿄거리다. 호텔은 유니버셜한 장소로, 어떤 면에서 뉴욕의 원격적 연장(extension)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남자 주인공에게 뉴욕-동경의 호텔은 자신의 job의 연장이다. 결국 동경까지 뻗친 소외성의 연장인 것이다. 관광지는 그야말로 장소 그 자체, 개성적 의미로 가득차있으면서 문화적 외부자인 인물을 밀어내는 장소이다. 여자 주인공에게 일본의 관광지는 그녀의 잉여성을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장소이다. 마지막으로 도쿄거리다. 이 장소는 뒤섞임, 혼성의 장소다. 여기서 만난 일본인들은 전형적으로 알려진 일본인들과 매우 다르며 의미심장하게도 두 주인공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자라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Translation -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경계에서 발생하는 일이며, 다른 것이 뒤썩이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급속도의 시공간의 압축을 경험하는 우리 시대의 공통 경험을 잘 반영한다. 우리에게 이 상황은 혼돈, 길잃음의 느낌을 준다. 제목 그대로 "Lost in Translation"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닌가 보다. 그 혼돈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발견하니 말이다. 이 영화는 異文化간의 접속과 혼재가 심해지는 이 시대에 개연적인 사랑을 재치있는 감수성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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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人의 시선으로 儒家를 보다 / 경외로운 연구...실제분석 아쉬워
본격서평 :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이훈상 옮김, 아카넷 刊)

2004년 02월 23일   권연웅, 함한희 

▲ © 예스24
이상과 실제 사이의 갈등 설명못해

함한희 / 전북대·문화인류학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나를 사로잡은 것은 두 가지 생각이었다. 20년 가량을 한 연구에 몰두해온 저자의 학문적 열정과 성실함에 대한 감동과, 두 왕조를 넘나들며 해박한 지식과 정교한 논리로 2백50년이란 기간을 연구하는 그의 스케일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유교화 과정이 우리가 통상 믿어왔던 것과는 달리 17세기 중반이 돼서야 정착됐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한국인들이 전통적 친족집단이라고 알고 있는 적장자 중심의 부계종족사회가 뿌리를 내린 것이 조선 중기 이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는 양변적 친족제였음을 보여줬다. 저자는 신유학의 정착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과 조선의 엘리트들이 고려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장기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비교문화적 관점으로 읽어낸 친족 변화 과정

한국의 친족의 변화과정을 분석하면서 저자가 남다르게 취한 연구방법은 사회인류학 이론의 적용과 비교문화적 관점이었다. 저자는 타자의 눈으로 본 한국 친족의 특징이 중국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적인 토양에서 나온 것임을 힘주어 말했다. 국내연구자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흥미롭게 비춰졌던 것이다.

익숙해 보여서 우리들의 눈이 그냥 지나쳐 온 중요한 것들을 저자는 놓치지 않았다. 한편, 감동과 경외감으로 읽은 이 역사서 위에 인류학자인 나의 낯선 시선이 몇 군데에서 멈추었다. 그 대목을 짚어보면서 앞으로 한국의 친족연구에 남겨진 과제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조선사회에 새로운 친족체계가 성립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요인이 신유학의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친족연구의 분석차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사회인류학자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친족을 연구해왔다. 첫째는 친족용어를 분석해 친족분류의 특성을 살피는 일이었다. 둘째는 법이나 규칙을 통해서 친족의 제도적인 측면을 연구했다. 셋째는 사회 구성원들의 실제행위를 통해서 친족의 실천적인 면을 다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주로 두 번째 차원에서 친족의 특성을 바라봤다. 고려시대의 친족용어를 잠시 언급한 부분이 있지만, 조선시대의 친족용어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에 저자는 법전, 상소문, 역사서, 문집, 묘비명 등에 나타나는 관련 사료를 중심으로 친족구조, 조상숭배, 상속과 계승, 혼인과 상장례, 여성의 지위 등의 문제를 다뤘다. 따라서 친족의 제도적 측면과 규칙, 명분과 도덕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친족연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세 번째 차원인 실천적 측면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이 법이나 규율의 구속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국가가 제시한 친족의 모델과 이상에 맞춰서 생활하는 것만은 아니다. 제한된 사료로 고려나 조선 사람들의 행동의 실천적인 측면을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사료의 부족에서 온다기보다는 연구의 관점과 방법에서 온다. 저자가 중시한 이데올로기는 지배층의 명분은 드러내지만, 그들의 정치적 의도와 경제적인 이해관계는 가리운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설명하는 근거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표현일 뿐이다.

구성원들의 실천적 행위를 중시하는 입장에 서면, 친족의 이상과 실제가 어떻게 갈등하며, 그들이 어디에서 타협점을 찾아내는지를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친족에 대한 사회적 지식이 드러나게 된다. 이 지식이야말로 구성원들의  물질적·상징적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진 것이어서 친족연구에 있어서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부안김씨 가문의 한 조상이 1779년에 남긴 상속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제사와 종족유지에 필요한 재산을 제외하고는 아들과 딸들에게 재산을 균분상속한다고 적혀있다. 적장자 중심의 부계종족집단이 정착된 지도 1백년이 지난 시점에 향촌사회의 양반들은 차자와 딸에 대한 관습적 상속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처가살이의 관습도 여전해 사위들이 처족과 함께 살면서 자신들의 종족집단을 형성해 나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상과 실제가 달라진 경우들이다. 이러한 차이가 지방과 계층에 따른 문화적 지체현상인지, 아니면 친족의식의 실제적 구현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왜 조선의 엘리트들은 고려의 양변적 친족조직 대신에 적장자를 우대하는 단계적 부계출계로 변화를 유도했을까하는 질문을 새삼스럽게 던져 보고자 한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신유학적 세계관의 완성을 들고 있다. 신유학에 심취한 조선의 지배계층이 주자가례에 바탕을 둔 종법을 완성시켜 이상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가경농지가 축소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양반층의 경제적 여건이 변화하면서 적장자 중심의 단계부계종족집단의 성립이 촉진됐다.

저자는 이처럼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사회경제적 요인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조선의 친족제도가 이뤄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고려의 양변제의 성립과 운영체계가 설명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됐다면 혼인을 통한 연계(alliance)를 중시하는 친족사회에서 출계(descent)를 중시하는 부계사회로의 전환을 좀더 쉽게 그리고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터이다.

양반 이외의 계층에 대한 연구 시급

이 책은 역사학자나 사회인류학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저자의 훌륭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친족연구도 한 단계 올라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이 책에서 보이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봤다. 나아가서 앞으로 우리가 수행해야할 과제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류학자의 입장에서는 친족연구의 대상을 확대하고 분석의 차원을 다변화·다각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양반층을 대상으로 친족제도를 연구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부계종족집단의 출현이 비단 양반층에 국한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양반 외 다른 계층을 대상으로 한 친족연구가 시급하다. 또한 법적 차원의 분석도 중요하지만, 구성원들의 행위를 직접 들여다보는 일도 친족연구에 있어서 필수적인 일이다. 앞으로 역사학과 사회인류학 안에서 이 책이 남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가 전개되기를 바란다.


"숲으로 조망한 조선의 친족사회"

권연웅 / 경북대·한국사

지금부터 약 6백년 전, 조선왕조를 창건한 유학자-관료들은 엄청난 사회개혁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고려시대의 친족구조를 유교의 모델에 따라서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그 후 2백여 년이 지난 17세기 조선의 친족제도는 고려의 친족제도와 전혀 달라졌으며, 중국과 일본의 친족제도보다도 유교적 이상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


유교의 모델은 물론 가부장제였다. 따라서 동성동본 혼인의 금지, 여자의 재혼 억제, 서얼 차별, 제사와 상복, 양자와 상속에 대한 규제 등 유교적 가족제도의 여러 부분이 시차를 두고 확립됐다. 그 결과 고려시대의 부계+모계의 양계적 친족조직이 부계로 단일화됐고, 모계적 요소는 적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만 남았다.


이리하여 조선사회는 철저하게 서열화됐다. 친족집단의 구성원들은 남녀, 적서, 장유 등의 기준에 따라서 지위가 결정됐다. 이렇게 구성원들을 한 줄로 세운 결과, 친족 집단은 내부 결속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그 사회는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여기서 여성과 서얼이 가장 손해를 봤다.


마르티나 도이힐러는 이번에 번역된 저서에서 바로 이 주제를 다뤘다. 책의 원제는 '한국의 유교적 변환'이며, 부제는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연구'다. 한국이 유교화되는 과정에서, 그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하는 문제를 다뤘다는 뜻이다. 1994년 백승종 서강대 교수는 이 책(원서)에 대한 정치한 서평을 쓴 바 있다.('역사학보' 141집)

한국 친족체계를 보는 새로운 시선

이 책은 여러 가지 미덕을 갖췄다. 첫째는 사료와 기왕의 연구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다. 저자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수많은 개인 문집과 예학에 관련된 유교 경전 등 약 150종의 사료를 아주 치밀하게 조사했다. 또 약 3백종의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는데, 여기에 국내의 연구성과는 물론, 일본과 미국 연구자들의 연구도 포함됐다.


저자는 거의 수도자 같이 엄격한 학문적 자세를 견지했다고 한다. 그는 약 20년 동안 한결같이 이 연구에 정진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문헌들을 천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조선왕조실록'을 독파한 공력도 대단하다. 미국의 한국사 연구자들이 모두 철저하지만, 유럽(스위스) 출신으로 미국(하버드)에서 공부한 저자는 더욱 철저한 것 같다.


이 책의 둘째 미덕은 체계적인 연구방법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2백년 이상의 사회변화를 '유교화'라는 틀 속에 담았으며, 그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사회인류학의 이론을 갈고 닦아서 이용했다. 또 조선의 사회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이를 같은 시대의 중국 및 일본의 사회와 비교했다. 그리하여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전혀 새로운 지평에 올려놓았다.


이 점은 국내의 연구방식과 매우 대조적이다. 해방 이후 국내 학계는 민족과 계급, 근대화와 자본주의 같은 거대 담론 내지 거대 구조에 집착해, 가족제도 같은 주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소수의 연구자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대개 단편적인 연구에 그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했다. 사회과학의 분석 틀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고, 비교사적 고찰은 거의 없었다.


가령 1980년대부터 많은 연구자들이 분재기, 족보, 호구단자, 일기 같은 고문서를 이용해 혼인, 제사, 상속, 양자 등 가족제도의 여러 단면들을 밝혀 왔다. 그러나 단편적인 사례 연구에 치중하고, 이들을 구조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최재석이나 이광규의 연구도 이러한 점이 빈약해, 해방직후에 김두헌이 간행한 '조선가족제도연구'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 책의 셋째 미덕은 한국사를 보는 저자의 시각, 곧 우리와 다른 시각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한국사라는 숲을 숲 속에서 본다. 물론 숲 속에서도 선 자리(입장)와 보는 각도(시각)에 따라서 대상의 모습이 달라지지만. 저자는 태평양 건너, 대서양 건너 쪽에서 한국사라는 숲을 봤다. 그리고 저자가 본 한국사의 모습은 우리가 본 것과 매우 달랐다.


사실 국내 연구자들과 미국 연구자들이 조선시대를 인식하는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령 지배층에 관해서, 국내에서는 고려말에 신흥사대부라는 새로운 엘리트 집단이 출현해 기득권층을 밀어내고 새로운 왕조를 수립했다고 본다. 또 백년이 지나서 사림파라는 새로운 집단이 출현해 훈구파를 밀어냈다고 하며, 조선후기의 사회변동도 매우 강조한다.


국내 연구자들이 조선사회의 변화와 역동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미국의 연구자들은 사회의 안정과 연속성을 강조한다. 가령 덩컨은 고려-조선 왕조 교체기의 지배층을 같은 집단으로 보고, 와그너는 사화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질적인 집단으로 본다. 또 팔레는 조선후기의 근본적인 사회변동을 인정하지 않으며, 노비제도가 19세기까지 존속한다고 해서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본다.


조선사회의 참모습은 변화와 지속의 양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기에 따라서 어느 한 쪽이 더 두드러졌을 것이다. 우리가 변화만 강조하고 지속을 외면했다면, 미국 연구자들은 반대 입장에 서서 우리의 역사 인식이 균형과 절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양반이라는 양지에만 초점을 맞출 때, 팔레는 노비라는 음지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요컨대 도이힐러는 우리의 일상인 가족제도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매우 다른 방법으로, 훨씬 더 입체적으로 선명하게 그렸다. 세부 묘사가 모두 정확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이 책이 한국 가족제도 인식의 지평을 바꾼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12년 전에 나왔으나, 어려운 원문을 제대로 이해할 국내 연구자들이 적었다. 이제 번역이 나왔으니, 이 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의 유교적 가족제도는 해체의 과정에 있다. 우리는 21세기 한국의 가족제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6백년 전 조선의 지식인들처럼, 새로운 모델을 찾고 이를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도이힐러는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이것을 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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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이상국가 꿈꿨던 조선

강유원(회사원, 철학박사)

저자에 따르면 “조선왕조가 창건되고 100년 동안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 보기 드물게 방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저자의 의문 은 여기서 시작된다. 조선 초기의 입법자들은 “어떠한 사회제도 를 바꾸려 했는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노력한 것일까?” 저자는 그러한 노력이 “전반적으로 사회 구조와 조직을 부계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합리화하는 경향”으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그러 면 우리는 세부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변환은 어떠한 수단을 통해서 행해졌는가? 그러한 변환은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쳤는가? 부계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사회 구조와 조직을 변환시키는 일은 직접적으로는 여성의 지위와 관련된다.

조선 건국에 가담한 입법자들은 종법제도를 철저하게 실시하고 친족의 범위를 좁히며 신유학에 근거하여 그것의 실천방안들을 새롭게 해석했다. 제사 는 남계 이데올로기를 살아있는 현실적인 사실로 바꾸었다. “제 사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출계집단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 한 사회적 의례적 기준을 규정하였다. 의례상의 지위 및 역할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상속권과 상복의 의무이다.” 제사는 상속과 직접 관련되었다. 재산을 상속받는 자가 제사의 의무를 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속은 어떤 방식으로 행해졌는가 ? 저자에 따르면 “새 왕조가 열리고 처음 100년 동안, 상속제는 유교 입법자들이 추진한 사회 개혁 정강 가운데 중요한 부분으 로 대두하였다… 종법을 강조한 새로운 법률은 상속 통로를 수평적인 것에서 수직적인 것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다시 말해서 “제사의 원칙은 장자를 우위에 놓고 동생들은 하위 에 두는 것이며, 이러한 위계 구조가 향후 재산의 분배를 결정하 였다.” 장자가 제사를 책임지게 되므로 이를테면 장자에게 재산 을 몰아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자 우위의 원칙이 강조 되었지만 여성들에 대한 재산 분배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

그러다가 “17세기의 경제적 요구들과 의례에 대한 관심이 합쳐 져서 세습 재산의 상속에 큰 변화가 생겼다. 다시 말해서 세습 재산은… 조상들에 대한 부계 자손들의 적절한 제례행위를 지원 하는 수단이 되었다.” 여성들은 제사와 무관한 존재가 되었고 그에 따라 당연히 재산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경제적 독립성을 상실하였다. “결국 재산과 상속의 기제는 남성의 지배영역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조선 건국 입법자들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유교적인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교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정치 적 또는 공공의 영역은 가(家)가 직접 확장된 것으로 보았으므로 집안에서의 구속 기준은 공적 세계의 기회에도 적용되었다.

출계집단에서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인정받는 이들만이 정치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유교적인 이상국가는 이런 방식을 통해서 실현시키려 했 던 것이며, 그들이 구상한 국가에서 부계 이데올로기는 가(家)와 국(國)을 일관적으로 이어주는 원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세웠던 원리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될 때에는 철저한 배타 성을 띠었다. 조선 초기의 사대부들은 학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 들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장악하여 사회 정치적 질서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정치 적 사회적 우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앞서 본바와 같은 다양한 수 단을 동원했다.

그 결과 “세습 지위와 학문적 성취를 동시에 강조하는 이중성” 이 등장하였으며, “한마디로 사대부는 출계와 세습을 조선시대 정치 생활과 경제 자원을 독점하는 데 잘 활용했다.” 결국 여말 선초의 사대부들이 기획했던 것은 성인의 도의 실현이 아닌 사 회 엘리트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확립과 그것의 현 실적인 관철이었을 뿐이며, 그 여파는 21세기 한국에까지 미치고 있다. 조선 건국 공신 중의 한명인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이 논의되는 요즈음 한번쯤 돌이켜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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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 ‘세대갈등’ 두 불사신을 만나다


작가 김영하씨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관람기

인기를 넘어 사회현상이 돼버린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이유는 이제 영화 자체의 재미나 완성도 이상의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영화의 안과 밖을 흥미롭게 읽어왔던 젊은 작가 김영하씨가 두 영화의 폭발요인을 분석했다. 편집자

관객수 1000만과 650만을 넘기고도 여전히 상영중인 두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보는 일은 과연 진기한 경험이었다. 뒤늦게 극장을 찾은 게으른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영화의 안과 밖을 함께 고민하게 된다. 도대체 실미도와 한국전쟁이 지금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이토록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영화는 완성도나 미학적 성취 같은 사소한() 가치를 홀연 뛰어넘어 연쇄방화나 집단폭동 같은 사회심리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바뀐다. 간단히 말해, 무언가가 있(거나 아니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선 <실미도>. 한 번 정리해보자. 영화의 얼개는 이렇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자들이 어딘가 낯선 곳으로 보내진다. 죽도록 고생하지만 곧 새로운 희망과 목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향해 일로매진하는데 돌연 그 목표가 사라지거나 바뀐다. 너무도 억울하여 항의나 해보려다가 결국 엉뚱한 곳에서 죽는다.’ 어딘지 익숙한 이 이야기는 2004년의 한국에선 조급한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변덕에 대한 서사로 읽힌다. 지금의 5, 60대들. 그들은 전쟁통에 태어나, ‘잘 살아보세’를 부르며 ‘조국근대화’에 청춘을 바쳤다. 힘들고 괴로웠지만 세월이 흐르자 희망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아이엠에프라는 것에 뒤통수를 맞았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제대로 못한 채 직장에서 쫓겨났고 잉여인간이 되었다.

젊은 세대라고 다를 게 없다. 이제 수능은 자격시험에 불과하리라고, 사교육이 필요없는 교육제도를 만들겠다고, 저마다의 특기만 닦고 가꾸면 대학 진학은 문제없으리라는, 그런 호언들을 믿었던 684부대의 수험생들. 웬걸 수능의 난이도는 갈팡질팡, 공교육은 붕괴직전, 학력차별은 그대로다. 아파트는 이제 투기의 수단이 아니고 사용의 대상일 뿐이라는 정부 말에 혹해 90년대 말 집 팔고 태평하게 전세 살던 사람들, 지난해의 부동산 랠리에 망연자실이다. 왜냐고 묻지 마라. 그냥 세상이 바뀐 것이다. 문득 돌아보면 전국이 실미도다. 바이코리아니 뭐니 하며 주식투자를 부추기던 정부와 자본은 개미들이 달려들자 가지고 있던 물량을 대거 풀어 이익을 실현했다. ‘개인투자자야말로 국가 경제의 주인’이라고 부추기던 이들이다. 그러나 주가가 폭락하자 “주식투자는 어디까지나 개인책임”이란다. 마늘 심으래서 심었더니 가격 폭락, 소 키우래서 키웠더니 과잉생산. 치킨집 차렸더니 조류독감이다.

실미도는 바로 이 ‘시대착오’라는 저승사자 이야기다.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는 것이다. ‘넌 끝났어! 왜냐구 시대가 바뀌었거든. 684부대 좋아하시네, 넌 무장공비야!’

총질을 해댄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사실 <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태극기’는 신구 양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유사 아버지(형)인 이진태. 그는 유사 아들(동생) 진석을 ‘사랑’한다. 문제는 그 사랑의 방식을 진석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진석이 볼 때 형 진태의 사랑은 자기만족과 기만에 불과하다. 구두닦이이던 진태는 전쟁을 통해 인정도 받고 태극무공훈장도 타내며 신나게 싸운다. 그러면서도 자꾸 그건 ‘너를 사랑해’서란다. 미칠 노릇이다. 형은 윤리도 이데올로기도 없다.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른다. 동생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또, ‘다 너를 사랑해서’라고 한다. 동생(신세대)은 형(구세대)의 비윤리, 몰염치, 부도덕이 싫다. 게다가 그걸 사랑의 이름으로 행하는 게 더 싫다. 반면 어느새 괴물이 되어버린 형은, 자기 덕분에 깨끗할 수 있었던 동생이 제 은공을 몰라주는 게 못내 서운하다.

형이 가족주의에 맹목적으로 함몰되어 자기를 파괴하는 동안 동생은 끊임없이 동료에 대한 배려, 타자에 대한 관용 같은 근대적 윤리를 환기시킨다. 전쟁터와 같은 절박한 현실에서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해대고 있는 동생에게 형은 분노를 느끼지만 어쩔 수가 없다.

정리하자면 <태극기>는 현재, 21세기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세대적 갈등에 대한 영화적 표현이다. 구세대는 손에 피도 묻혔고 자식 교육과 생존을 위해 모든 걸 바쳤다. 때로는 나쁜 짓도 했다. 그들은 항변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왜 ‘사랑’하니까. 그런데 자식들은 그걸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 ‘누가 그렇게 해 달래’ 영화 속 진석은 이 땅의 자식들을 대신해 묻는다. ‘날 위해 그랬다고는 제발 말하지 마.’ 서로 환장할 노릇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세대와 세대 사이의 이 유구한 오해, 이것이야말로 전쟁물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신파적 동력이었다.

영화는 후반부에 동생의 돌연한 참회를 끼워넣으며 세대간의 화해를 중재한다. 영리한 전략이다. 갑자기 위로받아 눈물이 핑 도는 구세대와 말이라도 퍼부어 잠깐 후련해진 신세대는 해골과 노인이 되어 만난다.

‘시대 착오’와 ‘세대 갈등’, 이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두 편의 영화가 왜 그토록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는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핵심은 독재경험이나 분단구조가 아니라 조변석개 자본주의와 가족주의였다. 2004년 봄,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마주친 두 불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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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나쁜 점만...

우선 편집의 불만 -> 쉬리 때와 마찬가지로 스펙터클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심리적 발전 과정이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어 부자연스러울 정도다. 이는 <쉬리>에서도 고스란히 보였던 단점...

둘째 이데올로기적 균형의 문제 -> 키타조센의 사람들은 한 유형으로 단순화된다. 그냥 잔인한 적이다. 쉬리 때도 마찬가지다. 북조선 사람들 중에서 인간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기껏해야 남한 사람에 의해 어느 정도 감화된 인물들 뿐이다.

가족과 전쟁을 대비시키는 일의 맹점 -> 한국전쟁은 단순히 가족을 파괴한 전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전쟁이고 민족통일전쟁이고 국제전이고 어떤 면에서는 내전이기도 했다. 물론 그걸 다 영화 속에 담아내면 그 감독은 천재겠지만... 여하튼 이 영화는 그런 모든 시각들을 버리고 가족과 전쟁을 대비시켰다. 그리고 전쟁 이전은 평화를 전쟁 이후는 잔혹과 슬픔으로 그린다. 그러나 전쟁 이전부터 혼란은 시작되었다. 이 전쟁 이전의 혼란을 제외시킨 것은 의도했든 안했든 이데올로기적 균형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가족과 전쟁의 대비에 기초하고, 전쟁의 피상적인 이미지를 주로 강조한 영화다. 한국전이 무슨 전쟁인지 혹은 한국전만의 특수성 따위는 그려지지 않는다. 유럽의 어느 전쟁으로 바꿔도 내용상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 영화에서 역사를 기억하거나 배운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쁜 말만 했다. 일부러 그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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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0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2-1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빠기 2004-02-1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나쁜 말만 할 수 있는, 어떤 이에게는 나쁜 말밖에 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간달프 2004-02-2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쟁의 코드가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니까"라고 예단하고 서사 영화가 필요로 하는 극적인 요소를 깔아뭉갠 것이 이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의 내적 구조보다는 외부적 환기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자 강점같아요. (예를 들어 형이 광적으로 변신하는 심리적 과정이 너무 허술하게 짜여져 있지요.) 이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긴장(과 해소)은 (영화 내적인) 극적 긴장이라기 보다는 이미지 폭격을 통한 긴장이거나, 외부의 환기에 의존하는 긴장이라고 봐요.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눈물과 함께 피곤함이 몰려오지요. 나로썬 이 영화가 (역사적으로 나쁠 뿐더러) 영화적으로도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 힘들군요.

간달프 2004-02-2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제규 영화는 모두 봤지만, 언제나 느끼는 것은 그는 극영화(feature film)보다는 광고나 뮤직비디오 쪽에 더 재능이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 혹은 나도 헐리우드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과도한 집착에 길을 잃은 감독이라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