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벽 교수의 명강의 노하우&노와이 희망의 교육 5부작 5
조벽 지음 / 해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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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을 탓하기가 쉽다. '나 배울 때는 정말 강의 안 빼먹고 공부 열심히 했는데 요새는 왜 이러냐?' '수업도 안 들어오고 들어와서는 졸고...' 이 책은 해답을 알려준다. [강의하는 법을 안 배우셨군요.] 저자는 정말 가르치려는 열의가 대단한 분이다. 더 잘 가르치려 이런저런 책을 참고하고 또 경험해서 보완하고 다시 생각하고...이런 결과로 나온 교수법의 유용한 팁이 이 책에 가득하다.

노하우와 더불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노와이이다. 대충 가르쳐도 각자 공부해라해도 별반 차이는 없다. 왜 열을 내서 힘을 소비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신이 바뀌는 것이고  그 다음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그래서 잘 가르치는데 있다. 각자 자기일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힘쓰며, 자기 스스로도 행복하게 느끼게 하는 법을 가르쳐야 그와 나, 우리가 행복하다. 자기아이는 12살 전에, 청년은 선생이 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들의 눈에서 미래를 보는, 내 꿈을 보는 선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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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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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이 보여주는 이명준은 광장을 찾기에 실패한 사람이다. 또 마땅히 찾아야 할 광장을 찾지 못한 우리이기도 하다. 4.19는 새로운 자유의 바람을 서울의 공기에 불어넣었고 그 때 이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분단과 자유, 꿈과 좌절의 그 시대의 사람의 고민과 같은 진동수를 가졌기 때문이리라.

광장은 공감이다. 모여서 느끼는 같은 마음, 너도나도 좋은 일을 같이 해보자고 들뜨는 마음, 우리 따로 다른 골방에 있다 나왔는데 어찌 그리 마음이 척척 맞는가하는 탄성. 그럴줄 알았다,해방은. 그리되었어야 했다, 해방은. 그 광장이 서로를 물고 뜯는 곳이 되었다. 다른 구호를 쓴 플랭카드 아래 적과 백의 스크럼이 서로 원수가 되었다.

광장은 자유다. 옥죄지 않는 공간, 돌아가는 강강수월래처럼 우리가 뛰기에, 같이 웃기에, 웃다 웃다 지쳐 눈물 짓기에 넉넉한 자유였어야 했다. 고문은 大韓 백성의 것이 아니고, 감옥은 더 이상 가둘 사람이 없어야 했다. 이명준은 그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고 새로운 광장을 찾고자 했다. 그는 북에서도 실패했고 스스로 광장을 허무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광장은 공허이다. 말로 채워지는 공간,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공간이다. 숨쉬는 나의 혈육, 사랑하는 내 겨레 그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야 했을 광장이 말만 가득한 내 겨레를 못박는 광장이 되었다. 이명준이 찾은 대용품은 바다이다. 상호교감하는 살아있는 광장이 아닌, 일방적이고 내적이기만 한 빈 공간, 서로의 자유를 마주보며 자신의 자유를 느끼는 광장이 아닌, 자유의 도피처로서의 내면적 깊이의 바다에 그는 가라앉는다. 실패한 인생, 실패한 나라, 불쌍한 백성. 박정희, 김일성, 전두환, 김정일.

2002년 시청앞은 붉게 물들었고, 2003년 그곳은 다시 촛불과 인공기 소각과 전경버스로 채워지고, 2004년 찬 공기만이 살벌한 이 백성의 머리위를 허허히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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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 지음, 최원준 옮김 / 두란노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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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챠니티 투데이 20세기의 책들 시리즈(6)

나우웬의 책은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죽음 가장 큰 선물],[탕자의 귀향]을 여러사람에게 추천받았었고 그의 감동적 사역만큼이나 큰 감흥으로 읽었었다. 하지만,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에 오른 책은 의외로 얇고 간단히 써진 이 책이었다. 왜 이책인지는 책을 읽어갈수록 깨닫게 되었다.

나우웬은 이책에서 고통에 집중하고 있다. 세상이 당하는 고통(1장), 이 시대의 고통(2장), 고통받는 개인(3장), 고통받는 사역자(4장). 그는 이 고통을 미화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처절히 이것을 직면하고 우리가 무얼할지를 이야기한다. 똑같이 고통당하는 자로서 우리는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부유하듯 정처없는 세대의 우리에게 희망은 [인간으로 다가감]에 있다. 치유사역 전문가나 상담가가 아닌, 공감하여 같이 울며, 그의 처지를 절절히 느끼며 우는 사람, 자기의 고통 가운데 얻은 참 평화를 동료에게 정확히 표현해 주는 사람, 고통당하는 동료를 손잡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다.

비록 나우웬은 그 사역을 전문적 사역자의 영역으로 한정하여 설명하지만 이 일은 사실 그리스도로 살고 있는 모든 평신도의 부름이다.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인간으로 만나고 옆에 있어주고자 자리를 마련하는 일, 예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이고 우리가 아직 여기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P.S: 고쳐 읽으면 더 이해에 도움이 되는 표현들.
1. 강박성(p41)-convulsiveness는 강박보다는 급격히 일으키는 발작이나 심리적 폭발을 가리킨다.
2. 긍휼(p60)-compassion은 '같이 느낌'이라는 뜻이므로 공감이나 同情(불쌍히 여김보다는 같이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으로)가 더 이해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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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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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사람은 매일하는 사람이다. 누구도 매일 한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을 막을 순 없다. 어학을 습득하기에 많은 나이? 세대가 안 맞는 급우들? 그 무엇도 중국어를 배우는 그녀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그녀는 남을 위해 중국어를 배우기 원했고, 또 그 일을 열정적으로(한국적으로!) 매일했다. 누구도 매일하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의지와 열정, 누구나 한번씩 가져보는 패기와 꿈이 있다. 하지만 그 꿈을 현실로 만들거나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코 꿈이 작아서이거나 패기가 약해서이거나 잘못된 의도를 가져서가 아니다. 한비야는 그 처방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명확히 끄집어내 준다. 의지와 열정 위에 더해지는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 쉬지 않고 떨어지는 처마의 물은 돌에도 홈을 패게 한다. 수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중국견문록은 내게 이 소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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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지원용 지음 / 컨콜디아사(재단법인한국루터교선교부유지재단)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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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에 발표된 루터의 세 논문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 [교회의 바벨론 감금], [크리스탄의 자유]를 묶은 책이다. 이 세 논문은 루터의 견해를 가장 집약적으로 담고 있으며, 더욱이 그 당시의 그가 처한 상황과 입장을 잘 보여주어 그 중요성이 큰 대표작들이다.

먼저 [독일 크리스찬 ...]은 제목에서 보듯이 로마 교황청에 의해 물질적 수탈을 당하는 신성로마제국 독일의 억울함을 말하고 있다. 그 근거로 루터는 교황청의 세가지 전제를 공격한다. 1.세속권력 위의 영적권력으로서 교황의 권위, 모든 신도는 동등하며, 영적 권위는 섬기는 위한 것이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성서해석에 있어 교황의 독점권,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은 일개인에게 그것을 부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3.교회의회 소집권의 교황독점, 교황의 일탈을 견제코자한 장치인 교회의회를 교황만이 주최토록 한 오류라는 것이다.

[교회의 바벨론 감금]은 성례인 세례와 성찬 그리고 참회가 로마교에 의해 왜곡되고 감금되어 성도가 그 원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1. 당시 떡과 포도주를 신도가 모두 받을 수 있다고 하여 파문, 사형된 요한후스의 입장을 지지하며,미사 자체가 공로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신앙이 미사를 가능케 함을 설명한다. 2. 세례 또한 집행자가 수여하는 혜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께 직접 받는 것이며, 그러므로 신앙의 표징으로서 전생애를 옛사람의 죽음과 새생명의 삶을 사는 자유를 갖기 시작하는 성례로 이해하도록 촉구한다. 3. 참회는 고백과 죄사함이 교권에 속하지 않으며 형제에게,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성도의 권리로 설명한다. 죄사함을 이용한 일체의 이권과 지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찬의 자유]는 밀팃쯔의 권고로 교황 레오10세에게 보내진 서한으로 루터가 교황 개인이 아닌 제도화되어 기독교 본질을 해치는 현 법령과 제도를 문제삼음을 밝히고, 크리스챤의 본질에 대해 쓴 논문이다. 그는 하나님사랑과 인간사랑의 시작을 예수의 삶과 그 사역의 공로로 연합된 [성도의 본질적 자유]에서 찾는다. 그분과 한몸됨으로 인한 죄의 파괴와 그리스도화(크리스챤)된 능력과 승리이다. 오직 말씀에 근거한 자발적 개인적 믿음만이 전적 은혜를 받기에 충분한 조건이라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는 전적으로 죄인인 우리에게 옮겨졌다.성도는 왕과 제사장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이 본질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데려가시지 않은 이유를 찾는 것이 삶의 의미이다. 모든 동료 사람들을 무한히 공급되는 영적 심리적 물질적 도덕적 육체적 감정적 자원으로 그리스도가 되어 섬기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만큼 높아지고 그리스도처럼 낮아지는 삶.업적을 추구하는 리바이어던은 없다. 다만 참된 자유의 서비스만 있다. [너희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드러커는 13세기 이후 두번째 서구사회의 급격한 변화의 시점을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에서 루터의 종교개혁 기간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16-18세기 대서양 패권다툼의 역사가 구도상 신구교 갈등의 양상을 띄었음은 그 시발점인 이 논문들의 역사적 중요성을 다시금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빠지면 그 다음을 이해할 수 없는 수학풀이의 식이 있다. 분명 이 책은 서구역사와 문명, 전쟁과 철학, 현재의 정치와 사회체제와 도덕을 이해하는데 놓쳐서는 안되는 핵심을 보여준다.

율법과 예수, 당시 교황청의 규례와 성경적 계시의 충돌은 여전히 지금도 내안에 있는 싸움이다.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종교와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남아있는] 삶 사이에서 싸우고 있다. 즉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며 그분께 공급받아 나누는 삶과, 이를 잊고 선하게 규범아래 있으며 스스로 만족스러운 신앙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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