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던의 거룩한 시편 - 청동거울 문고 작은거인 3-1
존 던 지음, 김선향 옮김 / 청동거울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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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던은 베이컨과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이자 성직자였다. 젊은 시절 연하의 소녀와 신분을 넘어선 사랑으로 자신의 출세길을 포기했고, 후에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신앙에 귀의한 사람이다. 그가 앤 던을 만난 것은 그의 나이 29세, 앤이 17세였다.(띠 동갑!) 국새상서인 에거튼경의 비서가 된 후, 에거튼 경의 조카인 앤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녀와의 사랑은 그의 유명한 시집 [The Songs and Sonnets]을 낳게 했으나, 경제적 사회적으론 파면과 투옥의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된다.

그 이후 어려움과 질병 가운데 그의 거룩한 시편들이 탄생하고 그가 가톨릭에서 국교회로 옮기는 기간이 된다. 가톨릭교도로서 헨리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 죽임을 당한 토마스 모어의 후손이기도 한 그에게 가톨릭과 영국국교회, 그리고 청교도 사이의 고민은 그의 인생의 주제이기도 했다. 결국 구교도 신교도 아닌 그 중간에 선 그는, 그래서 영국국교회의 신부가 된다.

Holy sonnets 중 XVIII은 그의 이런 고민을 가장 잘 대변한다. 그리스도께 그분의 진정한 교회가 누구인지 보여달라는 그의 기도이다. [건너편 해안에 짙게 화장한] (프랑스이기도 하고 가톨릭이기도한) 교회인가? 아니면 [독일과 이곳에서 통곡하고 한탄하는](루터나 칼빈의 신교)인가? 아니면 누구인가? 이 시대의 고민이며 던의 고민이기도 했던 이 의문은 그의 시 전체를 흐른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인간들을 자기신부인 교회로 삼으신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뢰만은 변치 않음을 그의 시는 보여준다. 사실 죄인임을 뼈저리게 알기에 구원이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베이컨이 인본적 인간으로서 삶을 모색하였다면, 던은 종교적 존재로서 삶에 대한 탐구를 추구한사람이었다. 그의 이 시편은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으로서 풍요로운 던의 모습과 아울러, 영국시의 모태가 된  영성詩의 뿌리를 그의 속깊은, 시대의 아픔에 대한 고백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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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기도문 중에서-


인간은 외딴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은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領地)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하여 종(弔鐘)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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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던 [ Donne, John , 1572~1631.3.31 ]  
 
영국의 시인 ·성직자.

주요저서 : 《신성 소네트》《노래와 소네트》《안녕》
 
 런던 출생. 가톨릭교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1584년 옥스퍼드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하고, 1591년 법률학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한 후 1592년 링컨스 인(Limcoln’s Inn) 법학원에 들어가 정계나 법조계에서 입신할 뜻을 굳혔다. 그리하여 1596년과 1597년 2회에 걸쳐 에식스 백작을 따라 에스파냐 원정에 종군하였고, 귀국한 후에 국새상서(國璽尙書) T.에저튼경(卿)의 비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조카 A.모어와의 비밀결혼이 발각되어 직위도 잃고, 1602년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 무렵에 에스파냐문학을 비롯한 각국의 문학사상에 흥미를 느껴 풍자시와 서정시를 썼고, 가톨릭 신앙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출옥 후 비록 자유의 몸이 되기는 하였으나,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괴로운 생활이 15년간이나 계속되었다.

 1607년에는 뛰어난 종교시 《Divine poems》를 썼고, 1608년 가톨릭으로부터 영국국교로 개종하게 된다. 이어서 애가(哀歌) 《세계의 해부》(1611)와 그 속편 《영혼의 걸음》으로 이루어진 《예제일(例祭日)》을 썼다. 1611년 대륙을 여행하고 돌아와서는 국왕의 조언을 받아들여 1615년에 성직자에 임명되어 국왕 앞에서 설교한 일도 있다. 1617년 아내를 여의고 마지막 대륙의 여행에서 돌아와 1618년에는 대표적 종교시 《Holy sonnets》썼다. 그 후 1621년 성 바오로 대성당의 사제장(司祭長)이 되어 죽을 때까지 그 직에 있었다. 르네상스의 변동기에 산 그의 생애에 어울리게 던의 시도 젊은 시절의 연애시와 만년의 종교시로 대별할 수 있다.

《노래와 소네트》로 대표되는 초기 연애시는 상냥함 ·야유 ·자조 ·절망 ·저주 등 사랑의 온갖 심리를 대담하고 정치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표현한 뛰어난 작품이다. F.페트라르카류(流)의 상투적인 연애시를 배격하고, 불굴의 정열과 냉철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의 통일을 이룩한 이들 작품으로, 17세기 영국의 형이상적 시인의 제1인자로서 위치를 굳혔을 뿐만 아니라 T.S.엘리엇, W.B.예이츠 등 20세기의 현대 시인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종교시 《천부찬가(天父讚歌)》도 본질적 구조에서는 연애시와 비슷하여 죄나 죽음의 의식과 신앙이 복잡하게 서로 갈등하는 긴박한 고백으로, 대담한 이미지에 의한 격렬한 신에의 부르짖음으로 나타나 있다. ‘기지(機智)의 제왕’이라는 말을 듣던 그의 면모는 만년의 설교에도 여실히 나타나 명설교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연애시 《엑스터시》 《안녕》, 14행시 《자랑이 될 수 없는 죽음》 외에 애가(哀歌) 《주년(周年)의 노래》(1612)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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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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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대전은 세계의 중심축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바야흐로 미국은 돈이 되는 곳이었다. 10-20년 전의 한국이나 요즘 중국이 그렇듯 머리 잘 굴리고 배포만 있으면 대박이 있었던 시절, [위대해질 수 있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불안정이 낳은 환경이다.

그가 위대한,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하잘 것 없는 사랑놀음 때문이었다. 상대는 가볍게 생각하지만 자기 혼자 몰두하는 사랑, 그것이 그가 위대하고자 하는 이유였다. 막상 사람들이 본 것은 그의 그런 숨은 열정을 모르는 껍질 뿐...화려한 파티와 신비적 이미지의 사교계의 거물에 대한 덧씌워진 이미지들.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이미지들에 흥분한다. 그것은 신흥 자본주의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천박한 시대정신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겉이 아닌 속의 다른 개츠비는 이 사랑으로 인해 위대한가? 지치지 않는 사랑의 집착.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고마워해주는 이 없는 죽음.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뭔가가 나올 줄 알았던 신비한 인물의 속내, 그것이 우리네 삶과 같은 천박하고 유치한 집착과 미성숙이라면...인생의 대단한 것 같은 이상들과 이념, 그리고 환상적인 로맨틱이 들추어보면 구리구리해진다는 건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이다.

삶은 우리에게 바다건너 깜빡이는 그 불빛을 불나방처럼 찾아 들었다가 그것이 아니라고 깨닫고 다른 불빛을 좇기에는 너무 짧다. 아예 한번 살고 갈 바에야 처음 노렸던 것, 성공, 부 , 사랑, 명예, 어떤 이름의 상(prize)이나 지위, 그리로 올인하는게 결국 삶의 진실일까? 위대해지고자 했고 그렇게 보였던, 멋쟁이 신비의 인물은 사랑 아니면 집착을 위해 올인한다. 위대하다. 저것도 하나의 선택이지...푯대 없는, 인생이란 항해의 도착지는 어차피 없는 거라 생각한다면 말이다. 또 한편으론 측은하다. 올인하는 대상이 개츠비라는 연약한 한 사람보다 위대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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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 수상록 범우문고 147
베이컨 지음 / 범우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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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1세의 영국전성기에 여왕의 고문변호사가 되며 수상록 초판을 낸 베이컨은 제임스1세의 치세 아래에서 법무부 차관, 장관,국새상서, 대법관을 거치며 이 책의 2판, 3판을 낸다. 그는 제임스1세를 위해 전매 특허권을 부정매매하기도 하고, 재판판결 때 수십만 파운드의 뇌물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 일로 58세가 되던 1621년 수뢰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파면되어 쫓겨나 노년을 마치게 된다.

그의 이런 삶은 [생각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준다. 가장 현명하고 다른 이들에게 인생의 지침을 주었던 그가 막상 그의 삶은 오점으로 마치는 것은 [일관성 있게 살기엔 너무 길고, 뜻을 이루기엔 너무 짧은] 우리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 자신도 말하듯 청년의 때는 순수한 열정이 더 많으나 사려깊지 못하고, 노년이 되면 신중하나 속세에 더 많이 젖게 된다고 했다(청년과 노년에 관하여).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대하여 오비디우스의 [헤로이데스]에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만년의 활동은 초년과 같지 않았다.]

[최선의 충고자는 죽은 사람들, 즉 책이다.] 그의 수상록은 직접 그가 살았던 삶을 반추하며 얻는 유용한 지혜를 담고 있다. 어쩌면 수상록의 한부분과 유사한 구절로 제목을 삼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성공하려면 신처럼 혹은 야수처럼 살아라](원제; The doctrine of wisdom)처럼 영국에 있어서의 처세술을 담은 실용서의 효시 같은 책이다. (수상록에 나온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인용한 -무릇 고독을 즐기는 자는 모두 야수가 아니면 신이다-이다.)

처세술 실용서의 글이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서유럽 곳곳에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인본주의의 바람이다. 神이 準據가 아닌 인간 자신이 준거가 되기 시작했을 때,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찰에 기초한 삶의 방법에 대한 생각들이 중요성을 갖는다. 여기에 물론 과거 인본적 삶을 발전시킨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이 주의를 끌고 그 필요성을 갖게 된다. 근대성의 인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형식으로서의 에세이는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베이컨의 노년과 대비되어, 삶에 대해 [내가 주인이다]라고 외치기에는 너무 가소로운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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