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쟈크 엘룰 지음, 김점옥 옮김 / 솔로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마들렌느 가리구 라그랑쥬가 엘룰을 인터뷰하여 1982년 처음 출간되었던 책이다. 엘룰의 사상의 개관을 엘룰자신의 설명을 통해 보여주는 유용한 책이다.이 책에서 그의 젊은 시절부터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 자본론과 성경의 영향, 친구들, 실패한 운동들, 그의 [기술사회]를 통한 미국에서의 히트와 그의 보편적 구원론에 이르기까지의 생각의 흐름, 바르트의 영향까지를 볼 수 있다. 다만, 이 번역본의 오탈자가 많은 점이 안타깝다. 바르트의 열매는 과연 [보편적 구원론]일 수 밖에는 없는가? 나에겐 엘룰를 비판적으로 접근할 계기를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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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현대인.

쟈크 엘룰,  윤종석 역. 도서출판 두레시대. 1993

Prayer and Modern Man, 1970, 1973

두레공동체에서 출간하고 전문 번역가인 윤종석씨가 번역한 엘룰의 1970년 저작이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에서 엘룰이 제시한 기술사회에 대한 대안은 [다른 삶] 그리고 [기도] 였다. 손에 잡히는, 뭔가 왕창모여서 으싸으싸하는 대안에 익숙한 나로서는 오잉~하는 표정을 짓게 만드는 대안이 아닐 수 없었다. 기도가 내가 아는 그 기도가 아닌가부지?

그 기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엘룰은 책 머리를 [이 책은 경건서적이 아니다]로 시작하고 있다. 기도는 자연적 기반이나 동기를 갖지 않는다. 종교적 기반도...아니다(!) 언어로서는 설명불가능에 빠진다. 그는 기도해야 할 이유를 계명에서 찾는다. 율법이 아닌 우리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의 계명, 기도는 그 응답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계명에 대한, 즉 말씀에 대한 순종, 자유로운 순종으로 시작된다. 그분이 계신 것과 그분을 찾는 자에게 응답하심을 알고 부르는 믿음위에 기도가 가능하고 기도는 나머지 모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하나님께 가능하게 한다. (말씀, 기도, 믿음이 하나이다)

현대 기술사회, 유기(버려짐)의 시대에서 이 믿음은 극단적 신뢰를 요구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 기도는 전투가 된다. 산만한 마음, 효용가치(하나님은 높은 수준의 소비거리인가?), 소유(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뭐냐?)가 우리 자아 안에서 기도를 불가능케 한다. 종교적 기도의 틀이 혹은 비종교적 탈기도의 틀이 우리 기도를 어리둥절한 것으로 만든다. 순종하여 기도하는 것은 치열한 전투다. 그래서 차라리 기적이다. 결과를 모르고 기도한다. 결과를 확인할 수 없어도 한다. 내가 기도로 살아있게 되는 것만을 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붙든다. 하나님의 나타나심... 아버지로 부른다. 총력전이다. 그분이 없으면 내 존재는 無로 돌아간다. 하나님께 우리 현실에 온전히 가담하라고 부른다. 그 일은 우리의 자기헌신을 요구한다. (여기부터 힘들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자기를 걸고하는 기도는 나에게 너는 끝까지 나와 같이 갈 수 있는지 묻는다. 기도는 위험하다. 하나님을 움직이려 한다. 내가...겁도 없이... 정작 가만있을거면서...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한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국가의 평안을 위해(국가가 하나님 역할을 않도록), 운명과 어리석음에 처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앞에 순종하고 충성한다. 기도는 종말의 하나님나라가 오늘이라는 시간으로 들어오게 한다. 기도할때 우리는 이 상대적 현실과 성취될 궁극적 목표 사이에서 깨어있게 된다. 오염될 수 밖에 없는 행동은 기도로만 진정한 행동이 된다. 상대를 상하게 하는 폭력으로 밖에는 행동은 결말지워질 수 없지만, 폭력의 대치물은 기도이외는 없다(얼마나 많이 경험하는 일인가). 이런 미약한 순종(기도)과 그 결과의 행위로 그분은 우리와 역사를 만드시고자 한다. 파스칼의 [숨겨진 말씀]이 드러나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연결된다. 행동은, 기술은, 애씀은 無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를 그분의 계획과 의미로 부르신다.

이 책을 읽고 요즘 새벽에 주기도문만해도 눈물이 쏟는다. 눈물에 휩싸여서는 안되겠지만, 그분 향한 내 마른 마음이 녹는 건 사실이다. 아버지시다.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내 존재의 의미를 그분 앞에 느낀다. 한편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기도를 알게 된다. 그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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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1 0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that day he knew very well what he was doing,
my Son who loved them so much.
Who lived among them,
who was like one of them.
Who went about like them,
who spoke like them,
who lived like them.
Who suffered like them, who died like them...

He knew very well what he was doing on that day,my Son who loves them so much.
When he put that barrier between them and me,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those three or four words.
That barrier which my anger and perhaps my justice will never pass...


Those three or four words
which advance like a strong prow in front of a weak ship,
And which cleave the wave of my anger.
And when the prow has passed,
the ship passes and all the fleet behind it...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My Son knew just how to set about it,
To bind the arms of my justice and to loose the arms of my mercy.
And nowadays I must judge them like a father...

That is what my Son told them.
My Son yielded up to them the secret of Judgement itself...

In the same way that the wake of a great ship goes on widening till it disappears and is lost,
But begins with a point which is the point of the ship itself,
So the immense wake of sinners widens till it disappears and is lost.
But begins with a point and it is the point which comes towards me, which is turned towards me.
It begins with a point which is the point of the ship itself.


And the ship is my own Son,
loaded with all the sins of the world.
And the point of the ship is the point of my Son’s hands joined in supplication...
And that point is the three or four words;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And behind that point advances the point itself, that is to say the prayer in its entirety,
As it was uttered on that first occasion
And behind it widens and disappears
The wake of innumerable prayers
As they are uttered textually on innumerable days
By innumerable men,
(By simple men, his brothers),
So many other times on innumerable days;
As they were uttered innumerable times
During innumerable days.


All that immense fleet of prayers loaded with the sins of the world.
All that immense fleet of prayers and penitence attack me
Having the prow that you know of,
Advance towards me, having the prow that you know of.
It is a fleet of cargoes,
And it is a fleet of the line
A battle fleet,
Like a beautiful classical fleet, like a fleet of triremes
Advancing to attack the King.
As for me, what do you expect me to do; I am attacked.
And in that fleet, in that innumerable fleet
Each Pater is like a high-decked ship
Which has its own prow,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Turned towards me, and which advances behind its own p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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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2004-09-0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글도 올려야될텐데...

stella.K 2004-09-0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대문의 그림 또 바꾸셨네요. 전 먼저 그림도 좋던데요...!^^

카를 2004-09-0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은 요염한 여인네가 대문에 지키고 섰네요^_^
 

형이상학서설(1686년)

라이프니츠, 대양서적, 1981년(절판)

총 37절로 이루어진 이 서설은 신에 대한 고찰(1-7절), 실체에 관한 고찰(8-16절), 역학에 대하여(17-22절), 인간오성(23-29절), 인간의지(30-31절), 정신으로서의 종교(32-37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는 기존의 형이상학이 아닌 신과 실체 개념에 기초한 형이상학이라 하여 자신의 형이상학을 [새로운 형이상학]이라 한다.

쪼개서 생각하자 신은 절대완전, 완전오성, 완전의지의 존재이며, 실체는 그 안에 속성을 포함하는 우주전체의 표출이다. 후에 그의 저작에서 발견되듯, 개별 실체는 모나드라 불리운다.각 실체는 신의 다양한 시점으로 창조되어있고 상호 관련성은 없다(모나드는 창이 없다) 정신에 있어서의 데모크리토스인 셈이다. 또 그의 이런 사고가 그가 미적분을 만든 원천이기도 하다. 

싸우는거 나빠요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주된 성품은 조화와 화해이다. 당시의 새로운 과학을 너무 유물론적이라 비판하면서도 그는 이 [새로운 과학]을 기존의 아리스텔레스적 스콜라철학과 조화시키려 한다. 당시 動力因으로만 고찰되던 역학을 그는 目的因에 의해 같이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철저한 유물론은 내켜하지 않고, 이신론적 물질론은 친근함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데카르트에겐 약간 적대적이고, 스피노자에겐 우호적이다. 그에게 관념은 철저히 내부적인 것이다. 생득적(이거 로크가 엄청 싫어하지) 실체개념이 우리 안에 있고 오직 神만이 외부에 빛(조명이란 의미밖엔 안되는듯)으로 존재한다. 또한 철학안에서 그는 신교와 구교의 일치점을 찾으려 한다. 사실 신교가 좀더 아퀴나스적이 되면 구교와 좀더 친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아퀴나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의미가 그에게는 악이 존재하고 행해지지만 신이 이를 선용하여 조화로운 세계로 이끈다는 신의 절대지혜로 설명한다. 인간은 자기 실체(모나드)에 갇혀있고 갈 길이 정해져(예정)있는 존재다.  신만이 예지적인 영혼인 우리에게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영혼불멸의 이유가 된다. 영혼불멸과 계속되는 기억은 상벌의 근거(심판)이고, 신국에서의 삶의 근거가 된다. 예수는 이 길을 보여준 최고의 스승이다. 많은 신교의 교리가 그의 철학속에 자리매김을 한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모나드에 일치시키고 조화시켜나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타락과 구원, 십자가와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이 돌이키시는 믿음의 자리는 철학 밖으로 떠밀린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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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서양문학 4
B. 파스칼 지음, 김형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팡세를 다 읽어버렸다. 무인도에 두권의 책만 가져가야 한다면 성경과 팡세를 가져가겠다고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말할 만큼 좋아하던 책이라 다 읽은 것이 아쉽기까지하다. 인생의 허무와 비참에 대한 모든 생각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책도, 그 해답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의 중심성과, 그 신성에 대한 예언과 유대인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책도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1658년에 씌여졌는데도...

이 역본의 장점은 원본의 순서에 충실한 제2사본을 따랐다는 것과, 그래서 원래 파스칼이 구상한 논리적 순서를 짐작케 한다는 것과 그외 빠진 단편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독자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 골라 읽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을때 너무도 많이 몽테뉴의 [수상록]이 언급돼서 그걸 읽느라, 또 중간엔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의 영향과, 당시  근대철학의 스피노자, 데카르트 등의 철학자와 지식인들의 흐름이 있어 그와 관계된 책도 읽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이런 곁가지 독서가 팡세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특히 팡세의 마지막 부분은 탈무드와 유대인들의 사고를 이해한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이토록 여러 참고자료를 인용하고 참조하면서 파스칼이 이야기하고자 한 내용은 사실, [이성으로 신앙의 시도를 시작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비이성으로 오해되어온 신앙의 설명이 사실 찾을 마음이 없는 자에게 숨기어진 신비일 뿐, 자기를 낮추어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너무나 분명한 진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17세기 이후 인간이 추구해온 정신의 세계도 이런 영과 사랑의 세계에 비추어보면, 생명과는 무관한 육적 추구와 무엇이 다른가? 오락과 일이 자기 실존의 비참을 잊게 하듯, 학문과 이성의 정신세계 내의 2차원적 추구도 참사랑의 하나님과 그 비참의 구주이신 예수를 보지 못하게 한다면 무의미할 뿐임을 파스칼은 이야기한다.  그런데, 비참할뿐 아니라 사실은 자기의 비참을 인식하는 위대함을 가진 존재인 인간에게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계시가 주어져 있다(!)

구원의 실체는 우리의 비참함과 그런 인간을 위대하고 소중하다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역에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책이다. 가리어진 그분의 진리와 생명이 순종하고자하는 모든이에게 드러나며, 혹 자기비참을 모른체 종교적 혹 자기만족적 이론에 눈가리운 나와 같은 이에게 도움이 되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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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2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인도에 간다면 이 책을 가져가고 싶어요^^
넘 좋은 , 값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