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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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내뱉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냉소적 한마디로 이 책은 시작된다.

[친구? 그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그땐 친구라는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분명 이 책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이다. 작가의 에너지는 온통 그의 고집불통 아버지, 그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대한 태도와 자기를 화해시키려는데 몰려있다. 이 점에서 만화이면서도 이 책이 갖는 독특하고 뛰어난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언젠가 생겼던 사실로서의 과거가 아닌, 현재 자신의 삶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충돌하는 각 개인 안에 살아있는 경험으로서의 역사와 그 의미들이다.

이해하기 힘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 구두쇠스러움, 아껴쓰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강박증, 타민족 심지어는 동족에 대해서까지 갖는 지독한 불신...죽이려드는 적들과, 서로 살아남고자하는 동족 가운데서 생긴 그의 아버지의 아픔은 과거의 고통에서 온 태도이다. 이 세상에 믿을 것은 자기자신과 친구 밖에는 없다. 살아남아야 가족을 다시 볼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집요한 삶의 끈들과 운 밖에는 없다. 이것이 그의 아버지를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괴상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었음을 작가는 차차 알아간다. 사랑과 가족, 낭만과 동정의 한 인간은 믿음과 배신을 오가는 생존의 갈림길에서 살아남고자 자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작가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유대인을 쥐로 그린다. 쥐는 나치스가 표상한 유대인의 모습이다. 이걸 그대로 작가는 유대인의 모습에 사용한다. 그러나 유대인이 아닌 나머지도 사람은 아니다.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또 다른 인종도 모두 동물로 표현된다. 인간은 없다. 아니 유대인이 쥐라면 나머지 이 쥐를 잡는데 관여한 혹은 지켜본 모든 인류도 인간이기는 어렵다. 아니 인간이 인간임을 잊었기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동료인간을 대상이나 수단으로 본다면 이 파국은 결국 자신의 집단에 방해되는 쓰레기를 치워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이 모든 인간의 상실을 막지 못한 인류는 모두 종류는 달라도 짐승들이다. 그렇다. 육체를 살찌우고 편안한 것을 찾으며 약자를 힘으로 정복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것만 하고 살다 죽는다면 인간이 아직 되지 못한 것이다. 옆의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자도 인간은 아닌 셈이다.

이 뼈저린 삶의 진실은 서로에 대한 적의와 자기에 대한 과잉보호로 삶에 뿌리 박힌다. 작가의 아버지가 그랬고, 또 옆나라 사람에게 고통 당하고 동족과 전쟁을 치르며, 옆집사람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야 배급을 타먹을 수 있었던 우리 부모와 조부모들이 그러했다. 극단적 굶주림과 절박한 생존의 아픔은 그래서 이 책 안에서 걸어나와 우리의 부모님 안에 여전히 숨쉬고 있는 고통스런 기억들이다. 그분들을 이해해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런 것도 있지만, 전쟁만 아니었으면 가장 완성된 [인간]이고 싶었던 그분들의 안타까운 속마음을 알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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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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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들레르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사람에게 열광했었던가? 흥미거리의 대중소설이나 써서 밥벌이를 하던 망나니가 아니었단 말인가? 과연 포가 시작한 일은 무엇인가? 그의 단편을 모아놓은 이 책은 그의 소설에 있어서의 특징과 그의 문학관을 엿보기에 충분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포 소설의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그 길이의 짧음에 있다. 그는 시에서도 그렇지만 머리 속에 정리하지 않고 글을 써대는 사람만이 길게 글을 쓴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글이 짧은 또 다른 이유는 그가 한편의 소설에서 얻고자한 것은 오직 하나의 분위기 혹은 하나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공포이든 두려운 호기심이든 그 한가지를 얻기 위해선, 나머지 잡다한 것들이 끼어들면 들수록 그 목적인 감정은 희석된다. 그에게 특징적이고 탁월한 분위기와 심리의 묘사도 오직 단일 효과의 획득에 모아진다. 짧게 모두 표현하면서도 미적 효과의 전달에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그의 소설관은 자연히 대중을 끌어들이는데 더욱 큰 힘을 갖는다. 저작의 의도부터, 치밀한 상황설정과 앞뒤의 아귀를 맞추는 모든 노력이 "moved"에 있는데 moved 안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읽고나면 섬뜩함이든 안타까움이든 황당스러움이든 작가가 원한 방향으로 감정의 움직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짧은 글 속에 독자의 흥미와 집중을 놓치지 않는 그의 글쓰기의 성공인 것이다.
 
이 책을 보며 포의 소설이 반드시 그의 시와 함께 읽혀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보들레르는 당시 낭만주의에서 볼 수 없는 치밀한 이성과 계산을 포의 시에서 본다고 했다. 또한 보들레르 자신과 너무나 닮은 초월의 추구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포는 분명 의도된 작가이고 그 의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추구가 구원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악의 꽃]과도 통한다. 죄의식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인간이 무엇인지 더 철저히 알고 이 어두운 부분까지를 결합시킴으로서 인간의 통합이라는 구원을 찾는 것이다. 그의 소설 또한 이런 기획과 절망적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에서 더 잘 이해됨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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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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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아Q는 그들 모두를 함축한다. 우리의 응삼이인 셈이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한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란다. 그는 어떤 누가 아니고 대표인물인 셈이다. 루쉰 당시의 중국인 모두이다. 루쉰은 [나는 아Q 본인은 아니다]라고 책 서두에 밝히고 있지만, 누가 아Q라고 했나. 그는 서둘러 나는 아니라고 한다. 입가를 훔치며 내가 먹은 것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처럼...자신안의 아Q를 그도 넌즈시 비치는 것은 아닌지... 비열하고 천박하며 상스럽고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은  중국인의 한 모습이고, 중국인인 이상 루쉰 자신이기도 하다.

아Q는 이야기 내내 공공연한 멸시와 비웃음의 대상이다. 당연히 독자에게도 이런 감정을 일으키려 작가는 노력한다. 유대인들은 염소에게 모든 죄를 전가시키고, 들짐승들이 기다리는 허허벌판으로 내보내는 것을 scapegoat(희생양)이라 불렀다. 그들이 모두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악, 그 어둠을 상징하는 짐승인 이 염소,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전가한다. 빈들로 울음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이 짐승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악을 보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아큐는 루쉰이 설정한 중국인의 스케이프고트이다. 그들이 싫어하고 죽이고 싶은 중국인 자신이다. 루쉰은 이것을 벗고싶다. 제발 내 겨레에게서 이런 모습이 사라지길 원한다. 

아큐는 결국 중국인 스스로 돌아보는 자기의 아픈 구석이다. 이 글을 읽고 우리가 중국인의 성격이, 민족성이 어쩌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루쉰의 이 글을 쓰던 심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아픔으로 자기와 중국인의 치부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겨레의 부끄러운 모습. 내 민족을 향한 그의 사랑과  안타까움이 나로 감히 중국인을 폄하케 하지 못한다. 드러내 보이고 고치길 원하는 한 사람이 있는 한 그들은 나아질 수 있다. 신해혁명의 와중에 보여준 그들 자신의 천박함과 잔인성. 다른사람들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꼴을 보고 혁명의 동조자가 되거나, 그 혁명군에게 중요한 인물인양 처형당하는 걸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여기는 아Q들. 루쉰은 그들의 모습을 비웃는 지성인으로 머물러 있던 사람이 아니라 가슴저리게 자기 안에서 그 모습을 끄집어내는 사람이었다. 

내 속의 한국적 아Q. 서두르고 앞지르며 무례함을 개의치 않는 것. 쉽게 화내며 욕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은 편이 아니면 잔인해지는 습성들. 끈이 닿으면 관대해지는 비열함. 그까이껏 대충 하는 것. 손에 검정 묻히며 일하는데 익숙해져 가는 것. 원래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 속 안에는 아름답고 쾌활하며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데... 하지만 이제는 거리에 나서면 거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건 당연한 일이 되어간다. 가슴 저림을 느끼며 바뀌어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수치스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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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집
헨리 제임스 지음, 이채윤 옮김 / 데미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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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래 [나사의 회전]이란 제목의, 헨리 제임스 대표작의 하나이다. 하지만 국내에 [유령의 집]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건 그의 이름과 책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나사의 회전] 번역판을 1년 가까이 찾다가 이 제목이 그 책인줄 알았을 때 약간 씁슬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최초의 심리소설로도 혹은 괴기소설로도 해석된다. 심리소설이라 함은 일체의 사건이 가정교사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함이요, 괴기소설이라 함은 진짜 유령이 나오는 전설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분명 어느 쪽으로도 무게를 싣지 않고 그 해석을 독자에게 떠넘긴다. 번역한 출판사는 [유령의 집]을 선택했고, 프로이트적 해석을 즐기는 사람들은 가정교사의 억압된 성적 욕구가 유령의 망상으로 나타난 심리소설이라 주장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책을 읽어보고자 했다. 그것은 서양소설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돈끼호떼]와의 비교를 통해 재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돈끼호떼와 가정교사, 둘다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둘씨네를 지키기 위해 혹은 두 착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사명을 가진 존재라고 스스로 규정한다. 한 사람은 기사로서 , 한 사람은 키를 손에 잡은 선장으로서 자신을 정의하며 이 책임을 기꺼이 수행해간다. 그들 이외에 주위의 등장인물의 유사점도 재미있다. 산쵸 빤사와 그로즈 부인. 멀쩡한 정신임에도 주인공들에 동화되어가는 인물, 즉 자기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도리어 주인공의 관점을 강화하고 스스로도 닮아가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망상 탐험은 정교한 구조를 갖추어가며 서로의 대화를 통해 강화되어간다. 끝내 가상적 세계에서 성공치 못한 주인공들, 돈끼호떼는 운반용 우리에 실려 끌려 돌아오고, 가정교사는 쫓겨나서 수기를 쓴다.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 지극히 대립적 상황은 상대하는 적들이다. 정신병적 섬망증은 주위에 존재하는 악을 형상화함에 있어 두 사람에게 다른 경향을 보인다. 풍차와 유령. 돈끼호떼의 적이 외부에 있는 압도적 힘의 대상이며 그래서 그의 책임이 이런 부당한 힘으로 선을 위협하는 적들을 괴멸하고 둘씨네에게 사랑받는 것이라면, 가정교사에게 악은 훨씬 내재되어 있는 은밀한 것이다. 원한과 악의의 영향력. 보호되어야 하는 아이들은 이런 심리적 정신적 영향으로 인해, 스스로 선택하여 파멸의 길을 가도록 꾀임받고 있다. 그녀가 성공하면 고용주를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하는 책임]을 완수하여 칭찬받을 것이다. 이제 풍차의 모습을 한, 날개를 펄럭이던 용은 이 시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인간을 위협한다. 우리 내면의 공포와 불안을 죄어오는 나사가 되어, 내면화하여 유령이라는 모습으로 화하는 것이다. 과거 두려움의 대상인 환타지적 요소의 괴물은, 인간 정신이 스스로를 붕괴시키도록 하는 사악함으로 대체된다. 주위를 배회하며, 뽑히지 않고 서서히 죄어가는 나사와도 같이 단단히 우리의 정신을 꿰뚫고 못박아둔다.
 
언제부터 공포의 대상은 동물과 괴물에서 인간의 악의와 원한인, 이기적 만족감에 목마른 혼백의 형태로 인간을 위협하기 시작하는가? 호랑이가 아닌 귀신이, 용이 아닌 유령이 이제 현대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사실 그들은 인간이며 또한 우리자신이기도 하다. 햄릿에게 아버지의 혼백은 호소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의지였지 스스로 복수의 실행자는 아니었다. 요새는 다르다. 굳이 왕 출신이 아닌 여고생 귀신도 [스스로] 해치운다. 현재의 인간은 왜 이런 공포의 대상에 공감하며 자기내면의 어떤 실마리를 보려하는가? 아이들조차 공룡은 우스운 놀잇감이지 더 이상 진정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적의는 모두 인간에게 굴복한 때문인가? 이제 적의는 인간 안에 존재하게 된다. 이런 악령은 인간이 모여 살며 서로에게서 느끼는 악의가 형상화되는 것이 아닌가? 서로를 먹어치워야만 생존의 질을 보장받는 인간상황은 인간을 점점 불안과 알 수 없는 적의에 둘러싸인 느낌으로 몰아넣고 있다. 때로 이 불안의 형상화인 유령은 우리에게 전할 말이 있는 듯하다. 우리 사이의 원한과 적의를 그치고 이제 편안히 쉬게 해 달라고...우리는 아직 그들을 쉬게 하기에는 다른 사람을 다치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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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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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힘든 책이다. 처음 읽을 때도 그랬고, 다시 읽어보아도 꾸준히 붙잡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는 정경들이나 상황이 내 머리속에 없는 것인 때문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따분해질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읽으며 느낀 것은, 내가 경험했던 일이라면 반드시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몇권의 소로우가 읽었던 책들을 같이 보았고, 그가 경험한 어려움과 고민을 해 볼 기회를 가졌었다. 몇몇 경험과 책들, 그리고 나이로 인해 와닿는 부분들이 생긴 것일까? 그의 책이 [살아보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만큼 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 생활할수록 더 공감할 부분이 많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나보다 여유있게 더 많이 그 문제를 고민하고 더 깊이 파내려간 때문에 나는 그의 글에 놀란다.
 
그러면 모두 소로우처럼 살아야 할까? 우리집 주위엔 호수는 커녕 연못도 없는데...소로우가 숲 속의 생활을 시작한 까닭은 [자기자신으로 살아있고 싶어서]였다. 소로우도 단지 2년간 이 숲 생활을 했을 뿐이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위한 삶의 태도]이다. 소로우가 좋아한 논어 학이편 끝자락에 [가난하여도 비굴하여지지 않고, 부요하여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은 충분치 않다. 가난하여 즐겁고, 부요하여 남을 올바로 대하길 좋아함이 자기모양대로 더 아름다운 삶이다]라고 했다. 소로우는 적게 먹고 가난하여 즐거움을 알아낸 사람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옥이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 옥을 발견하여 갈고 닦아야 한다. 소로우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소로우의 생각과 거리가 먼 것인지 모른다. 자기 나름대로의 생긴 모양 안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와 소중한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올곳이 살아야한다. 아름다와질 때까지...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소로우처럼 사는 삶이 나에게 진정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돌볼 사람들이 여기 있고 여기서 더 큰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까닭에  여기에 머문다는 의미를 잊을 때가 많다. 우리는 의미가 있는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 우리가 있는 장소를 의미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습관적으로 남들이 가는대로 따라가면 나의 의미는 사라지고 사육되는 육체만이 남을 뿐이기 때문이다. 삶에 진정 중요한 것은 영혼이다. 검소하여 많은 시간을 얻으며, 그 시간을 영혼을 위해, 사랑을 위해 써야한다. 마음의 해가 되는 삶의 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도록 중독시키는 텔레비젼, 신문, 인터넷은 절제되어야 한다.
 
그의 삶은 소수자로서의 삶이다. 소수의 견해만이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주류의 삶을 수정할 힘을 갖는다. 나의 삶은 고용되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여유있으면서도 가족, 자연, 생각과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대안에 대해 닫혀있지는 않은지...남을 대할 때 다그치고 드라이브를 걸며 그들의 삶을 빠듯하게 몰아갈 권리가 나에겐 없다는 것을 잊지는 않는지. 아무리 계약이라 하더라도...이 모든 것은 그의 생각에 의해 점검 받고 있다.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보다, 흠이 없이 깨끗하여 즐겨따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깊이 있는 생각으로 삶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음을 그는 읽을 때마다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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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보관함에 넣어요.^^

카를 2005-04-2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갖고 읽어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