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로서 대표된 북방 휴머니즘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근대적 방법에 의한 인쇄술이 보급됨에 따라서 보다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종교개혁의 에라스무스의 위치는 루터의 우월한 지위에 압도되어 크게 주목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지향하여 전개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에라스무스의 역사적 역할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이 바로 에라스무스의 사고와 저술의 기반을 이루었으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중세사회가 가진 모든 특징에 대한 반발이었다. 따라서 에라스무스는 모든 성서 휴머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권위적인 카톨릭교회에 대하여 도전함으로써 그의 개혁사상을 펴 나갔던 것이다. 그는 교회의 부패한 실천과 타성화된 형식주의를 개혁할 것을 역설했을 뿐 아니라 사회의 도덕 및 인간성 일반에 관한 검토와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비록 방법에서 루터와 같이 직접적인 교황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역시 일생을 부패한 신앙의 일소에 바쳤다. 찬란한 명예가 주어진 종교혁명가는 아니었으나 죽을 때까지 학자였던 에라스무스의 중도적인 개혁사상을 살펴봄으로서 당시의 유럽사상의 흐름과 대비하여 그의 사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 론

1.청년기의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는 1466년 10월 27일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시에서 성직자의 사생아로서 탄생하였다. 그는 당시의 국제어였던 라틴어로 쓴 유명한 「광우신 예찬」을 비롯하여 그 밖의 많은 저작과 헤아릴 수 없는 서한을 남기고 승리의 장년시대와 고독한 노년시대를 거쳤고 결국엔 루터의 위광과 투지의 그늘에 가려서 1536년 7월 12일 스위스 바젤에서 휴머니스트로서의 일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에라스무스의 인품에는 아주 독특한 점이 있었다. 그는 본래 체질상 투쟁형이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인 자기방어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방안의 물건들에 대해 신경질적인 근심과 불평을 하였고 그의 허약한 신체는 생리와 위생에 있어 그를 날카롭게 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결벽성에까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리하여 그는 물질적으로나 도덕적 의미의 순수성을 스스로에게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언제 어디서나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순수성과 청결은 그 자신의 섬세한 감각과 허약한 신체와 함께 비공격적인 비판 형식인 풍자와 비유를 선택하게 하였다고 생각된다. 부정과 불의, 미신을 향해서 격렬한 비난을 퍼붓게 될 때에 그는 먼저 재빨리 체질적으로 이것을 느꼈으며 날카로운 풍자와 완곡한 조롱을 함으로써 자신의 공격을 세련시켰다.

그러므로 중세사회와 교회에 대한 그의 공격은 풍자가 갖는 보호색 때문에 같은 수준의 지성인들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둔한 고위 성직자들을 때때로 즐겁게까지 하였다. 이러한 풍자는 당시 휴머니스트들의 공통된 무기였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히슬로데이를 등장시켜 그가 이상국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묘사하였다. 독일의 스봐비아의 휴머니스트인 브란트는 성직자들을 정신적 바보로 비판하였다. 휴머니스트적인 풍자는 에라스무스의 탁월한 문체, 교묘한 표현, 풍부한 고전지식 등으로 윤색되어 있었다. 에라스무스의 거의 모든 저작에서 이런 풍자성이 깔려 있으므로 적당히 여과된 후에야 진지하게 고찰 될 수 있는 복잡한 것이 되고 말았다. 휴머니스트들의 표현방식은 그들이 처해 있는 시대의 특성 때문에 거의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의 권위에 반항하여야할 때 풍자는 비판과 공격을 합리화하면서도 동시에 박해와 규탄의 안전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는 말하기를 현명한 사람들은 가끔 사물을 얻는 것보다 차라리 잃어버리기를 택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적극적 행동보다도 순수객관으로서의 입장을 암시하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22세때에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원에 입적하였다. 한 때는 세속에 대한 멸시란 글을 쓰기도 하였으며 수도원에서의 은둔생활에 만족하였으나 그의 자유정신은 마침내 그로 하여금 이탈리아 여행을 동경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불행하고 어두운 청춘을 가진 에라스무스가 식량을 위하여 아부하지 않으면 안 될 때, 그의 정신적 바탕은 왜곡되고 그 날카로운 지성은 풍자를 찾게 되었다.  1495년(29세) 가을 에라스무스는 그가 생활하던 수도원을 벗어났다. 몽테규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얻기 위하여 수도원 당국의 허가아래 파리에 갔었다. 불쾌한 인상과 회상으로 찬 이때의 생활은 그래도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발돋움을 위한 자유였다.

2.휴머니스트로서의 현실비판

에라스무스는 그의 모든 저작을 통하여 현실의 종교문제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종교개혁을 위한 방법으로서 그는 결코 혁명적 수단인 폭력과 파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화와 재건을 위한 온건한 수단을 제시하였다. 그는 부패한 교회를 고치는데 회초리가 필요하지만 권위를 파괴함이 없이 종교를 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택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세 사람들의 신앙은 거의 미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은 파괴에 대한 속죄와 게으른 의무에 대한 용서를 바라는 마음에서 성모나 성자에게 기도드리는 것이 일반신앙의 주된 것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대중의 변질된 신앙에 대하여 교회측은 극히 타성적인 관례로써 대하였다. 예를 들면 성서의 중요부분인 복음서나 서신서들은 교회 미사 때 독통되는 정도로밖에 일반 대중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것도 고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도록 음조를 붙였다. 성서의 필본은 드물었을 뿐 아니라 그것조차도 수도원 도서실 안에 갇혀 있는 수가 많았으므로 다만 직업적인 신학자들에게 공개되는 실정이었다.

중세의 일반대중의 크리스트교 신앙은 기적 및 성모를 비롯한 특별한 성서에 대한 미신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에라스무스는 이러한 일반적인 비종교적 풍조에 대하여 진정한 크리스트교도는 세례를 받았다거나 교회에 가는 사람이라기 보다도 마음속에 깊이 내적으로 그리스도를 느끼며 경건한 행위로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개혁 내지 보다 위험한 어떤 변화를 바랬으며 이것은 영국에서 토머스 모어가 희망한 것과 일치하였다. 그의 신약성서 번역이 준 영향은 단 하나의 촛불이 아주 넓은 세계를 비춘 것처럼 큰 것이었다. 신학자들의 잘못된 성서 해석과 형식화된 논리를 한층 공격적으로 비판한 것은 에라스무스의 신약 역본의 주석에서였다. 그에 의하면 당시의 신학자들은 마음대로 밀가루 반죽 이기듯이 성서를 뜯어 고치고 거기서 나온 그들의 결론만이 유일불가침의 것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3. 저작활동과 작품사상

에라스무스는 고전연구에 몰두하여 훗날의 그의 저술을 명쾌하고 우아하게 할 라틴어에 정통한 공부를 하였다. 33세부터 저술을 위한 준비를 마치면서 이후 계속하여 자신의 휴머니즘을 표현하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1503년 처음으로 인쇄된 「크리스트교 군인 교본」Enchiridion Militis Christiani에 뒤이어 세 번째 영국 방문시의 큰 수확인 「우신 예찬」Encomium Moriae,1511 은 사회의 퇴폐와 수도성직자의 부패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것으로서 대단히 유고한 문체와 간결한 표현으로 되어 있다.

크리스트교 세계에의 커다란 도전인 우신예찬에 뒤이어 그의 성서 휴머니즘의 원칙에 입각하여 그리스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신약성서를 1516년에 많은 부가설명과 주역을 달아서 직접 번역한 최초의 것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중세를 통하여 확고부동했던 권위적인 종래의 성서판의 부정확성을 폭로하였다는 점에 더욱 중요한 의의가 있다. 따라서 그것이 출판되었을 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후로 성서의 원전비판의 시초를 이루어 놓았다. 신학자로서의 에라스무스는 결코 카톨릭교회나 교황의 궁극적인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휴머니스트의 입장에서 당시의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수도성직자들과 무모한 사변에 몰두하는 신학자들을 비판하여 그릇 해석된 성서의 권위를 바로 세우려고 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각별히 크리스트교적 휴머니즘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크리스트교를 중세교회의 독단과 형식주의에서 해방하여 소박하고 순수한 원시크리스트교로 환원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으로서 일상행활을 지도할 윤리적, 도덕적인 기준이 될 것을 희망하였다.

그는 성서의 중세이래의 권위인 종래 성서의 오역을 깨닫고 신약성서의 원문 성서가 일부 지식인과 성직자에게만 애독되고 독점될 것이 아니라 널리 일반대중에게도 읽혀져야 함을 강조 하였다. 이러한 단순하고 소박한 크리스트교에 대한 그의 의도는 전혀 이해되지 않고 종래 성서를 절대시하고 그리스어에 무지하였던 완고한 파리의 신학자들은 그의 신약성서의 번역 출판에 일제히 비난을 가하였다.

4. 휴머니스트로서의 사상

찬반의 양방향의 결정을 회피하고 광신을 싫어한 에라스무스에게는 다만 하나의 확실한 신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그의 휴머니스트적인 훈련과 학문을 구사하여 성서의 진실한 의미를 파악하고 복음주의에 입각하여 원초적 크리스트교 세계를 찾고자 하는 신념이었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전유럽적인 분쟁속에서 루터와 카톨릭교회의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초연하게 자기 입장을 지켰다.

후년 루터가 에라스무스를 진실한 크리스트교인이 아니라고 비난하고 동시에 카톨릭교회측에서는 루터의 공모자로 의심했을 때 그는 결연히 그의 성서에 대한 신념을 표명하였다. 그는 루터의 성공이 가장 겸손한 사람까지도 망쳐 놓을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이단자를 공격할 때의 성제롬(St. Jerome)처럼 그들의 비난을 들어도 크리스트교 신앙을 위하여 자기 희생을 할 것이라고 확연히 선언하였다. 16세기 초 유럽의 종교계의 모순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고 장차 커다란 동란 속으로 몰고 갈 사태에 이르렀다. 반란의 기운이 더 돌았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결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노선을 가야하고 또 어느 정도로 배후 지지자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실성을 가지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에 대한 공격과 자신이 받는 공격을 어느 쪽이든 다 같이 싫어하고 용의주도하게 중용의 길을 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항상 펜을 사용하여 유혈을 보지 않게 하고 아무도 공격하지 않으며 설사 공격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도 노엽게 만들지 않도록 희망하였는 데도 불구하고 그의 적수들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狂遇의 확인은 휴머니스트 공통의 비행동성을 설명한다. 중세는 몽매의 시대요 광우에 찬 시대였다. 에라스무스는 이러한 광우를 철저히 인식하여 계몽하고 인도하여야만 하였다. 권위에 대한 맹종과 형식주의에 의한 광신 이것은 제거되어야 하였다. 휴머니스트들은 지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인쇄술의 보급에 힘입어 이러한 광우의 시대는 광명 속으로 이끌려 나가게 되었으며 대중의 비판력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에 의하여 원초적인 크리스트교 세계를 밝히고 각언집성을 하여 고전고대의 현명한 말들을 값싸게 동시대인들에게 전하여 계발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시대차체 안에 잠재해 있는 정신적 동경의 심볼이었으며 본질을 개량하려는 각 시대가 모두 그 이상을 우선 한 인물에게 투향하듯이 그를 시대정신의 전위오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세계는 편견도 없고 작당도 없다. 카톨릭교회와 투터의 양측의 진리를 다 같이 인정하고 어느 한 편에만 예속되려고 하지 않았다. 루터에 가담하지 않고 중세교회 정신에 알맞는 코스모폴리탄의 양상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그는 종교를 위한 소란, 혁명, 전쟁이란 것은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으로 확신하였다. 이런 점이 루터파와의 분지점의 하나일 것이다. 정말로 에라스무스의 세계주의는 한편으로 크리스트교에 내재하는 진편성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에라스무스의 명석한 지성과 관조적인 휴머니즘은 그로 하여금 이른바 프로테스탄트의 개혁운동의 과중에 휩쓸리지 않게 하였다. 그의 본명은 어디까지나 휴머니즘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진편적인 조화의 세계에 폭풍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는 다만 현재교회의 도덕적 개혁을 지향하기를 주장하였으며 크리스트교 본래의 영적 순수성을 부활시키고자 할 따름이었다.

논의나 합의를 거쳐서 합리적인 해결을 바라는 경향은 종교와 사회의 개량에 관심을 가졌던 대부분의 휴머니스트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유럽 전체를 종교적인 혼돈으로 몰고 들어갈 폭풍의 전야에 있어서도 고전세계의 이상이던 중용과 조화를 표방하면서 세계주의 이상을 굳건히 지키려는 순수한 학자의 모습이었다.


결 론

중세가 종말을 고하려던 14세기와 15세기는 무한한 중대성을 갖고 있었다. 왜냐면 전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모든 사상이 붕괴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대성은 중세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와의 갈등에서 더욱 심각해지고 그 가운데서 새 시대의 출발점이 확정되어 갔다. 이와 같은 시기에 에라스무스가 루터에 앞서서 개혁의 준비를 이룩하여 놓았지만 그는 끝끝내 휴머니스트로서의 한계를 넘지 못하였다.

진실로 그는 음성이 될 수는 있었으나 선구자는 될 수 없었다. 에라스무스의 개혁사상은 결정을 요청받은 순간에는 언제나 중용을 택하며 조정을 고수하는 그런 것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조류가 북방에 들어온 이래로 그것을 종교적 개혁운동으로 이끌어 나간 휴머니스트들이 궁극에 가서는 고전 고대가 지향한 조화와 중용, 평화와 타협의 범주 안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은 혁명적 효과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휴머니즘의 본질이며 동시에 자체의 비극의 요인이었다.

에라스무스 자신으로 말하면 그후 1세기 동안의 서구 전체의 분란으로 확대될 운동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사회의 도덕적 혁신과 시대의 요청에 따라 충실히 끝까지 그 자신의 개혁사상을 고수하여 민중의 자유정신에의 각성을 지도하였다. 휴머니즘의 본질은 결코 혁명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에라스무스는 교회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임으로서 개척자로서의 극히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고 하지만 그는 대단히 평화적이며 화해적인 성질 때문에 교회와의 공공연한 작별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시기에 서제에 틀어 박혀 확정하게 어느 편에도 가담하기를 거절하였다.

에라스무스의 평판은 17세기말에 나아지기 시작했다. 학자들이 성서 원문에 좀더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가 종교적 헌신과 교회에 대한 복종을 공언한 것은 기회주의적인 방편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에라스무스에 대한 이런 견해는 정통과 비평가들의 혹평에 역설적으로 오랫동안 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비록 그가 폭풍이 불어 왔을 때 몸을 빼기는 하였으나 아무도 에라스무스만큼 대중들을 상대로 종교의 개혁을 위한 준비를 많이 해 놓은 사람은 없었다.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인으로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로서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의 카톨릭교도로서 자신의 다양한 자기 정체성을 융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여전히 카톨릭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자 했고 유럽 문화의 자유주의 전통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출 처 : [인터넷] http://myhome.naver.com/sw016/f-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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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3-1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 화요일부터 저희 교회에서 하는 '교회사 탐구'라는 강의를 등록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의하시는 목사님이 인상도 좋으시고, (인터넷)강의를 워낙에 잘하셔서 직접 들을 기회를 찾은거죠. 그분 전공이 미국사신데, 아마도 이 강의에선 미국교회사를 가르치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미국교회사를 가르치실려면 중세의 종교개혁을 훑으셔야 해서 듣고 있는데, 참 새롭더군요. 카를님 생각도 났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에라스무스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는데 올려놓으셨군요. 잘 읽었구요. 카를님 홈페이지도 구경했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전공이 역사셨군요. 암튼 이번 강의 듣는 동안 카를님 덕 좀 볼 것 같습니다. 불가피하게 이거 퍼가야할 것 같아요. 궁금한 거 있으면 여쭤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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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자 명: 김선일
2. 기 사 명: 기술 사회의 예언자, 자크 엘룰
3. 정간물명: 두레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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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게 재 면: 309 - 325



 ㅁ 박현덕 ( ellul@ellul.or.kr )
 
 

그 이외의 자료로는

2000년 1월 목회와 신학에서 신학특집으로 한국교회와 자크엘룰이란 주제로 세 분(이오갑, 양명수, 김성민)의 글을 실었습니다. 두 개의 주제는 위의 서지사항에 있고요 다른 한 글의 제목은 "기독교인의 정체성과 새로운 삶의 양식 / 김성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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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A. Schaeffer 프란시스 쉐퍼


  • 약력
    • 1912~1984. 복음주의 선교사, 철학가, 저자, 강연가
    • 1912년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루터교 가정에서 출생
    •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훼이스 신학교 등에서 수학
    • 1948년 스위스로 건너가 각국에서 오는 젊은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쏟던 중,
    • 1955년에 국제적 연구와 사역을 위한 공동체 라브리(L'Abri)를 설립.
    • 많은 토의와 연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돌아오는 일이 이루어졌으며, 전세계로 사역이 확장되었다.
    • 프란시스 쉐퍼는 오늘날 사회 병리 현상의 주원인이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사상에 있다고 본다.
    • 20여권에 걸친 방대한 저서를 통해 이러한 견해를 채택함으로써 사회 각분야에 초래된 결과들을 기술하였고,
    • 우리 세계의 유일한 해결책은 성경적 절대 기준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라고 주장한다.
  • 저서 : 쉐퍼 전집은 생명의말씀사에서 번역한 것을 기준으로 나누었습니다.
    • 제 1권 : '기독교적 철학, 문화관'
      • The God Who Is There, IVP, 1968 거기 계시는 하나님
      • Escape From Reason, IVP, 1968 이성에서의 도피
      •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TH, 1972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 제 2권 : '기독교 성경관'
      • Genesis In Space and Time, IVP, 1972 창세기의 시공간성
      • No Final Conflict, IVP, 1975 궁극적 모순은 없다.
      • Joshua And The Flow of Biblical History, IVP, 1975 여호수아서와 성경 역사의 흐름
      • Basic Bible Studies, TH, 1972 기초 성경 공부
      • Art And Bible, IVP, 1973 예술과 성경
    • 전집 제 3권 : '기독교 영성관'
      • No Little People, IVP, 1974 쉐퍼의 명설교
      • True Spirituality, TH, 1971 진정한 영적 생활
      • The New Super-Spirituality, 1972 초영성주의에 맞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 Two Conflicts, Two Realities, 1974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독교
    • 전집 제 4권 : '기독교 교회관'
      • The Church At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CB, 1985(1970) 20세기 말의 교회
      • The Church Before Rhe Watching World, CB, 1985(1971) 오늘날의 교회의 사명
      • The Mark Of The Christian, IVP, 1970 그리스도인의 표지
      • Death In The City, IVP, 1969 개혁과 부흥
      • The Great Evangelical Disaster, CB, 1984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
    • 전집 제 5권 '기독교 사회관'
      • Polution And The Death Of Man, TH, 1970 환경오염과 인간의 죽음
      • How Should We Then Live?, CB, 1983(1976)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Whatever happened To The Human Race?(with C.E. Koop), CB, 1983 낙태, 영아살해, 안락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 A Christian Manifesto, CB, 1981 기독교 선언
    • 전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저서
      • Everybody Can Know (with Edith Schaeffer), TH, 1973
      • Letters of Francis A. Schaeffer (with Lane T.Dennis), CB, 1985 '고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홍지모 역, 기독지혜사
    • 출판사명
      • CB : Crossway Books, Westchester, IL 6015
      • IVP : Inter-Varsity Press, Downers Grove, IL 60515
      • TH : Yyndale House, Wheaton, IL 6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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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결정적 책 15선

 

이 목록은 학생 및 일반인을 위하여 스텐포드 대학원의 '문학과 문명' 관계 세미나에서 고전으로부터 현대까지의 책들 중에서 선정한 것이라 한다.

01 성서(聖書)(The Bible)

02 루소(Rousseau, 1712-1778)/선집(選集, 1762-89)

03 마르크스(Marx, 1818-1881)/자본론(資本論)(Capital, 1867)

04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36)/군주론(君主論)(The Prince, 1513)

05 다아윈(Darwin, 1809-1882)/종(種)의 기원(起源)(The Origin of Species, 1859)

06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대혁신(大革新)(The Novum Organum, 1620)

07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방법서설(方法敍說)(A Discourse on Method, 1637)

08 플라톤(Plato, 427-347 B. C.)/국가(國家)(Republic)

09 모어(St. Thomas More, 1478-1535)/유토피아(Utopia, 1516)

10 몽테뉴(Montaigne, 1535-1592)/수상록(隨想錄)(Essays, 1580-1588)

11 로크(Locke, 1632-1704)/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12 헤르더/세계사(世界史)의 개념(槪念)

13 맬더스(Malthus, 1766-1834)/인구론(人口論)(Essay on the Principles of Population, 1798)

14 헤겔(Hegel, 1770-1831)/논리학(論理學)(Science of Logic, 1812-16)

15 니이체(Nietzsche, 1844-1900)/선집(選集, 18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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