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멈춤
고도원 지음, 김성신 그림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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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를 무한경쟁이 판치는 사회라고 비판하고는 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정직이나 희생, 배려 등의 덕목보다는 물질적인 성취가 우선시되고,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우리보다는 나를 앞세우는 모습들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쿨하게 사는 방식의 하나로 인정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년전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광고에 등장해 사람들 사이에 인사말로 사용되면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는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런 논란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유치해 보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생각과 가치관이 변해버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면 결국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타고 있는 삶이라는 자전거-또는 쳇바퀴(?)-의 페달을 돌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더 나은 학교에 진학하고 더 훌륭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험과 공부라는 자전거를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더 나은 취업을 위한 경력과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못하고 있을 것이고, 결혼을 한 세대들은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고 노년의 준비를 위한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쏟아붓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시대에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런 모습의 삶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이런 삶에서 약간 벗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존재 자체가 삶과 생각의 중심에서 밀려나서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객체로 취급당하고, 더 많은 부와 명예의 소유가 삶의 중차대한 목표로 생각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인생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자전거를 멈추지 못하고 말지도 모를 일입니다..... 

 속도와 경쟁의 시대다. 무조건 빨라야 살아남는다.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속도와 경쟁만이 능사는 아니다. 휴식을 모르면 위기가 온다. 사람이 쉬기 위해 멈추면 휴식과 충전과 여유를 알게 되지만, 고장이 나서 멈추게 되면 뒤늦은 후외와 회한만이 돌아온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기까지 한다. 그렇게 때문에 틈틈이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어느 날 갑자기 멈춰 서는 위기의 순간을 막을 수 있다. -p148~149 

 자동차는 언제 멈춰 서나요? 고장이 났을 때, 기름이 떨어졌을 때 멈춰 섭니다. 그 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안전 운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잠시 멈춰서 '쉼표'를 찍어야 참 인생,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휴식할 자격이 있습니다.  -p151  

 이 시대에 우리가 잠깐 멈춰 서서 휴식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와 그래도 잠깐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글들입니다. 우리가 경주에 임할 때, 잠깐 멈춰 서서 뒤돌아보는 것은 곧 등외로 낙오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물론 마라톤과 같은 경기에서는 그 의미가 자전거 경주나 자동차 경주와는 다르겠지만- 속도와 경쟁을 앞세우는 우리 시대에서 스스로 잠깐 멈춘다는 것은 경쟁자들과 다른 종류의 삶을 살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자신감을 회복하여 더 속도를 올려보았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잠깐 멈춤을 외칠 수는 없을 것이고, 뒤따르는 사람들과 앞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서 스스로의 속도를 늦추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장이 나서 멈춰 서게 되면 영원히 낙오하는 것이 될터이니, 미리 잠시 휴식을 취하고 힘을 얻는 것이 필요한 것을 알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현재의 내 자전거의 페달을 잠시라도 멈추는데는 분명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저자는 80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 잠시 관심을 돌려 멈추어 설 수 있도록, 그리고 삶을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밀 수 있는 희망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멋질 수 있는 것이지, '잠깐 멈춤' 속에 얼마나 많은 인생의 영양분이 숨겨져 있는지, 어떻게 삶의 속도를 멈출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우리가 속도를 늦추고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기도 하고,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기 위한 조언들을 들려 주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잠깐 멈춤'의 수단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명상, 독서, 여행, 꿈 그리기, 잠깐의 기도, 다른 사람과의 나눔....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저자가 말하는 잠깐 멈춤의 시간이나 내 안에 꿈을 그리고 채우는 시간은, 때론 많은 날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5분, 10분의 짬으로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간이나 주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대하고 다루는 방식과 기꺼이 작은 실천이라도 하겠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 생각한다면 달리는 내 삶의 자전거 위에서 속도를 늦추기 위해 가볍게 브레이크 잡아볼 수도, 용기를 내어 아주 잠깐이라도 페달을 멈추어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오늘 하루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저자가 들려주는 80편의 보석같은 글들의 첫 번째를 꿰어보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p.s. 아래 글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어떤 글을 보다가 눈길이 간 구절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아들에게 쓴 글 속에 담겨 있는 구절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전거 타기는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잠깐 멈춤과는 다른 의미로 이해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대조를 이루는 면이 있습니다. ^^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To keep your balance, you must keep moving -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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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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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주류에게는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제정책의 방향으로 여겨졌던 듯 합니다. 당시 매스컴이나 정치인 등 대부분의 주류들은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나라와의 FTA를 조기 체결해야 하고, 금융의 파이를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 아시아 금융허브를 목표로 한 제도적인 노력과 금융기관 사이의 장벽을 없애 금융기관의 덩치를 키우기 위한 정책들을 강조하였고, 여러 기업의 노조 파업을 강성으로 몰아가며 노동 유연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쏟아내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아직도 FTA를 줄기차게 추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그 위세가  크게 꺽였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시라면 자유시장주의의 원리에 대한 토를 다는 것이 무지하고 나약한 계층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이거나 반대편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나서는 것으로 매도 당했을 법 한데, 이젠 버젓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있게 읽히는 베스트셀러가 자유시장주의의 이면을 파헤치는 영향력있는 경제학자의 책인 것을 보면, 이젠 또 다른 모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자유시장주의가 말하지 않고, 또한 약속대로 이루어주지 못한 23가지 숨겨진(?) 진실에 대한 언급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과연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인류를 경제적으로 더 풍성하게 만들었을까? 이제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많은 나라들에게 경제 발전의 풍성함을 안겨줄 수 있을까?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세금을 감면하는 정책이 정말러 소비를 진작시키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정말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결국 그 구성원들이 게으르고 능력이 부족해서일 뿐일까?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진다고 하는데, 국가는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의 평등만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 이러한 거창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90년대의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불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수출이 늘고 눈에 보이는 경제 지표는 개선된다고 하지만, 개인의 영역에서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듯하고, 국가적으로는 G20의 의장국이 되고, 유럽연합과 미국 등과 FTA를 타결했다며 더 나은 경제적인 미래를 기약하는 소식들을 전하지만, 개인의 영역에서는 불확실성만 더 증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지워버리지 못하는 듯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편법과 일탈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벗어나고 싶어하던 사람들에게 '정의'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 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이 책은 들려오는 경제적인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적인 삶은 힘겹고 불안한 개인들에게 우리 경제제도나 정책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지적과 속시원한 답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 아닌 듯도 싶었지만, 개인의 능력으로는 논박할 수 없었던 우리가 추구하던 자유시장주의의 한계와 모순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읽는 순간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리고 그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며, 가슴속에 쌓여 있던 것들이 일거에 쓸려내려가는 시원스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저자가 자유시장주의의 모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고 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 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나라 또는 세계의 경제 체제를 철저히 자유시장주의에 의거하여 운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고, 경제 분야나 정책에 따라서는 국가의 간섭이나 보호 등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함을, 그리고 자유시장주의 정책을 통해서 거두어 들인 결과를 냉정히 분석해서 잘못되었거나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대안들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에서 저자가 말하는 여덟가지 원칙은 금융위기 이후 현재의 자유시장주의가 처한 어려움에서 벗어나 세계 경제를 재건하고 모두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한 자신의 고민을 담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아닌 좀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에 대한 열린 시각, 인간의 합리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경제 시스템의 건설, 이기심에 기초한 시스템이 아닌 좀더 긍정적인 면이 강조된 경제 시스템의 건설, 경영자들의 적정한 보수에 대한 새로운 합의, 탈산업화의 신화에서 벗어나 제조업을 더 중요시하는 정책,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의 적절한 균형, 때로는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의 필요성 인정,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한 적절한 배려 등이 저자가 말하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제도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완전한 답이 될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라는 면에서 귀기울여 들을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후련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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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 - 인류의 기원과 여성의 탄생
J. M. 애도배시오 외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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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극복해야 하는 인식 중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천편일률적인 가부장제가 작심하고 여성들을 억압했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 또는 수백만 년 전의 세상을 돌아보면, 남자도 여자도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실상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야 우리가 알게 된 또 하나의 확고한 사실은 여성과 여자가 인류의 등장과 성공을 이끈 동력으로서 남자보다 훨씬 중요했다고 할 수는 없을망정 남자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기록 속에서 여자들의 흔적을 찾아내려는 최근의 노력을 통해 고고학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남녀가 영원한 전쟁을 벌이면서도 서로를 받아들이고 협력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p222 <결론: 결국 보이지 않는 성이 아니다> 중에서 

 알로 사우루스나 티라노 사우루스가 지구상에 존재하던 시절에, 가죽을 두른 인간이 공룡들 틈을 헤치고 다니며 동물들을 사냥하고, 무시무시한 공룡들을 혼내주기까지 하는 영웅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나 책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교양있는 어른들은 없을 것입니다. 지질학적인 근거에 의하면 공룡의 시대에는 아직 인류의 조그마한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포유류의 존재도 아주 초기의 특징을 지닌 몇몇 종류가 있었을 뿐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일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은 영화나 이야기 속에서는 공룡과 함께 살며 그들을 지배하기까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에 억눌려 살지 않은 영웅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즐기곤 합니다. 이것은 두뇌의 용량이 커지고 문명을 가꾸어온 인간의 놀라운 능력 덕분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들은 인간의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이 선사시대 인류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실인 것처럼 발휘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돌로 만든 도구들이나 취락의 흔적 등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들 속에도, 사실적인 설명을 담은 이야기보다는 공룡시대의 인간들의 이야기처럼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그럴법한 이야기들이 견고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며 사실인 양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러한 이야기 속에는, 그때에도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능동적이고 활력있는 여성의 모습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현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창과 횃불을 든 남자들이 매머드에게 달려들어 골짜기로 몰아가서 혼란에 빠뜨리고 용감하게 달려들어 창으로 찔러 몇마리를 사냥하여 성대한 축제를 벌이는 이야기나 사냥한 먹이를 먹고있는 4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곰에게 달려들어 창으로 찌르며 집단으로 사냥을 하는 모습, 동굴 등의 은밀한 장소에 남자들 만이 모여 성인식을 거행하는 이야기. 저자들은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모습을 그린 이러한 이야기 속에 여성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거나 단순히 고기를 소비하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더 나아가 이 이야기들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매머드의 뼈로 촌락을 형성한 집단의 유적지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사냥에 의한 것인지 다른 이유로 죽은 매머드를 이용한 것인지 불확실한 것이고 그러한 유적지가 일반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 아무리 용감했더라도 거대한 곰에게 돌로 만든 창을 들고 달려드는 사냥꾼의 이야기는 가소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것으로 그러한 곰에게 발견되지 않으려고 온갖 잔꾀를 부리며 숨어다니는 인간을 생각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것, 남자들만의 동굴 의식을 가졌다거나 여자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와 노인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용감한 사냥꾼과 남자들, 거대한 사냥감 만이 존재하는 모습으로 선사시대의 이야기가 왜곡된 가장 큰 이유로 남성들 만의 영역으로 자리잡아 왔던 고고학계의 전통을 들고 있습니다. 철저히 남자들이 관장하며, 서로 토론을 하고, 해석을 달아서 발표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적인 편견과 영웅적인 인간에 대한 상상력이 동원되고 그 외의 모든 것 합리적인 설명들은 외면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고고학적인 설명들에 반하여 저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지구의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여성이 담당했을 법한 개연성 있는 추론과 여러 유적지에서 여자들이 수행하는 역할의 근거가 될만한 썩기 쉬운 유물들-끈과 섬유조직, 바구니의 흔적 등-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서 좀더 객관적인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이야기들 속에는 남자들에게 끈이나 옷감 등을 만들어 주고, 그물을 만들어 작은 동물들을 집단으로 사냥하는 데 남성들과 함께 참여하는 여성들, 여성의 뇌의 특징을 바탕으로 언어의 탄생에 '어머니의 말'이 기여했을 가능성, 농업의 시초가 되었을 식물재배의 시작에 여성들이 관여했을 개연성 등에 대한 추론이 들어있습니다. 결국 저자들의 설명은 헐리우드 식의 영웅적인 남성들의 선사시대 이야기를 좀 더 섬세한 여성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해 낸 실제에 더 가까울 법한 선사시대의 일상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들의 이야기를 고려하면, 지금까지의 고고학이 말하는 선사시대의 이야기 속에 제대로된 역할을 감당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먼저는 지금까지의 고고학이라는 학문분야가 대부분 남성들의 차지였고, 그러한 성적인 불균형으로 인해, 농업혁명이 시작되고 나서 형성되고 강화되어온 가부장적인 시각이 자연스럽게 고고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 되어, 유물을 발굴하고 그에 근거한 이야기를 만드는데 여성의 존재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쉽게 발견되는 돌이나 뼈 등으로 만든 썩지 않은 물건들에 집중한 나머지, 식물의 줄기 등으로 만든 좀더 쉽게 썩고 남겨지기 어려운 유물들의 흔적에 대해서는 미처 관심을 가지지도 못하고 등한시 함으로 인해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법한 영역이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었다는 점도 여성들이 선사시대의 이야기 속에서 숨겨진 이유중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생물학적인 여자의 존재에 더하여, 사회적으로 고정되고 남성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는 현대적인 의미의 젠더로서의 여성의 성역할이 농업의 발달로 집단생활이 가능해지고 경제적인 부의 축적이 시작된 뒤로 나타난 것이기에, 그 이전의 선사시대의 생활 속에서는 생물학적인 여자의 모습과 역할은 분명 존재했지만,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젠더로서의 여성의 모습이 명확하게 존재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부분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제대로 된 여성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생각하여, 우리에게 지금까지 은연중에 덧씌워진 편견에서 벗어나 이 책을 대한다면, 저자들이 주장하는 여자들이 '인간의 사회성이 유례가 없을 만큼 크게 발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매우 유용한 도구들-끈 혁명 등-을 발명했고, 식량을 구하는 데에도 똑같이 기여했으며, 언어의 발달을 거의 확실히 주도했고, 농업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은 자연스런 사실처럼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로 좀더 많은 유물들에 대한 공정한 연구들이 더해진다면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세상을 힘으로 지배하는 영웅적인 남성들의 이야기가 아닌 '지상에 살면서 사랑하고, 사냥하고, 식량을 구하고, 언어를 배우고, 요리하고, 바느질하고, 건물을 짓고, 신화적인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연극을 하고, 웃고, 병들고, 다치고,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종교를 발명(?)했던.... 아주 다양한 사람들 -젊은이, 노인, 여자, 남자, 용사, 겁쟁이, 몽상가, 실천가-'이 등장하는 훨씬 가족적인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창들고 매머드를 쫒던 영웅적인 용사들의 이야기보다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서로의 힘을 보태고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메꾸고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분명 그것이 더 진실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저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선사시대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탐구는 영웅적인 남성들에 밀려나 있던 그 나머지를 이루고 있던 아이와 노인과 여자들을 포함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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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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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고 했던가? 역사와 유물속에 언뜻언뜻 비추이는 사라진 백제의 흔적은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었다고 말하는 듯 하지만, 실제 우리가 배운 역사속의 백제는 한반도의 남서부를 700여년간 지배하고 있다가 쇠망한 나라의 쇠락한 모습 뿐인 듯 합니다. 누군가는 역사를 논하면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멋진 표현으로 역사의 기록을 옹호했지만, 백제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현재의 내가 과거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곧 승리한 자 또는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한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으니, 결국 쇠망하여 살아남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진 왕국과 문화는 그 영광과 찬란함에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동안 흔적마저도 스러져버리는 것이 당연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과거의 영광과 찬란함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수백여년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승자의 역사 속에는 그 영향의 흔적보다는 새로이 발전시킨 자신의 영광과 찬란함이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일 터이니 이 또한 과거의 쇠망해버린 왕국의 영광과 찬란함을 담은 이야기가 들어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이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대한 대륙을 향해 웅대한 기상을 펼쳤던 고구려,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의 역사에 가려져 삼국의 역사 가운데 유독 왜소하게 쪼그라진 작은 왕국, 그런 식의 백제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역사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의 비운을 그대로 느끼게 만듭니다. 금동대향로의 찬란함, 익산 미륵사지터의 웅대함, 그리고 역사의 구석구석에 조그맣게 기록되어 전해져 오는 중국 대륙과 일본을 아울렀던 해상왕국의 흔적들은 백제가 그런 왜소한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공적인 역사의 마당에서는 여전히 백제는 한반도의 남서부에서 잠시 번영하다가 사라진 작은 왕국의 역사일 뿐이니 말입니다. 

 이 책은 SBS, 대전방송 역사다큐멘터리 <대백제> 5부작의 방송 내용을 정리 보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단순하게 받아 들인 역사 속의 백제의 모습이 아니라, 찬란한 유물속에 담겨있는 '동아시아 최고의 선진 문물을 가진 문화강국'으로서의 백제와 역사서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까지 진출한 거대한 고대' 왕국으로서의 백제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비록 잊혀져 버리기는 하였지만 또한 역사에 흔적이 남겨져 있음을 기대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희미하게나마 흔적으로 남은 백제의 참모습을 찾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서문에 이러한 작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 고대사에 대한 사료 자체가 거의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과 '몇몇 남아있는 사료와 역사서들은 ..... 너무 어렵기 때문에 현대적인 -적절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백제가 우리에게 그리 왜소하게 인식되고 말았던 이유이기도 할 듯 합니다. 어찌보면 역사의 기록보다는 무령왕릉이나 미륵사지의 석탑의 발굴, 금동대향로의 발굴 등을 통해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 백제의 유물들이 우리에게 더 강력하게 백제라는 나라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작고 왜소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일깨우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유물들이 그 찬란함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승리자 또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에 머물러 백제의 역사를 그리 작게만 그리지 말고, 지속적으로 발굴되는 유물들과 백제인 자신의 기록과 현재까지 남은 흔적들을 꾸준히 찾아서 고대 왕국 대백제 모습을 웅대하게 그려보라는, 자신들의 비운을 위로하고 참모습을 찾게 도와달라는 초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조각조각 흩어진 역사의 조각을 연결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겠지요. 

 책의 내용의 바탕이 된 것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방송이기에, 아마도 역사적인 정확성이나 합의된 내용보다는 최대한 개연성이 있는 강력하고 찬란했던 백제의 모습에 대해서 그리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대 백제의 영토와 영향력에 대해서, 그리고 각종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서도, 또한 백제가 남긴 유물과 그 영향력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되는 일본의 기록과 문화와 천황가의 역사들에 대해서도, <대백제>라는 제목에서 걸맞게 어떤 기록이나 사실들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개연성을 가지고 백제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백제 역사의 실체에는 미처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리고 공적인 역사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왕국 백제의 광대함과 찬란함이 분명 숨겨져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을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이 더 지나 광활한 왕국으로 여기저기 기록된 백제의 모습을 환기시키는더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고, 또 다른 기록들을 더 찾을 수 있다면 그동안 우리가 백제의 역사에 대해 그리했듯이 이 책의 내용도 대백제의 실제 모습에 그렇게 관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이러한 기대가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의 내용이 전문적인 역사서로서의 세밀함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읽는 이에게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백제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남긴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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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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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사에서의 동안거 기간 동안의 선방 생활을 기록한 이 책이 우연찮게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책 소개를 보면서 언젠가 들은 듯한 기억 저편의 어렴풋한 그림자가 친근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 읽어보았던 책은 아닌데..... 어디선가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아니면 나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막연한 기억의 장난일 수도 있겠습니다. 겨울 세 달여 동안의 선방생활을 스물 세편으로 엮어낸 글들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굵은 한 뿌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바이지만, 실제 내용보다는 표면적인 외양만을 조금 알고 있는 내게는 상당히 색다른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잠시 들러 대웅전을 둘러보고 주변의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를 찾아보고 나면 사찰의 중요한 것은 다 보았다고 생각하며 되돌아 나오던 내가, 사찰 안에서의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해탈, 성불, 열반, 그리고 그러한 각성의 길에 들어서고 도를 이루기 위해서 정진하는 스님들의 생활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감각도 느낌도 없이 막연한 신비(?)로움 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저자의  글을 통해서 소개되는 선방의 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문득 그들의 삶의 감추인 단면들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화두'를 붙들고 추상같은 의지로 고행의 시간을 채워가는 모습들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스님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구도자로서의 깊은 사색과 성찰을 이루고자 수행의 시간을 갖는 스님들의 노력을 깍아내리지는 않는 것은 그들의 중심에 있는 수행을 통한 각성과 구도에의 의지를 온연히 느끼고 인정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의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도 없이 세상에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구도의 길을 나선 그들의 모습은, 바쁜 일상 속에서 조용함을 찾으며 가끔씩 우리가 바라던 모습의 한조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나서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모습이지만, 읽는 이의 내면에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신선한 바람 한줄기 스쳐가게 만들어 잠든 내면을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시일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절대자의 괴뢰, 신의 노예, 그러한 천국이 있다면 차라리 나는 고통스러워도 자유로운 지옥을 택하겠습니다. 그러한 극락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도망쳐 나와 끝없는 업고의 길을 배회하렵니다." -p110-  

 나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위의 저자의 언급이 상당한 걸림이 되는 구절일 것 같습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다른 말이 곧 '크리스챤'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물론 동료 스님과의 열반에 대한 이야기 중에 불자로서 불자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와 완고한 판단이 느껴지는 부분이기에 마음에 상당히 걸리는 구절이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과 구도의 결과물로 얻어지는 해탈이나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면 분명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꼭두각시로 보일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 안에서의 은혜와 자유를 인정한다면 불교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자기 의를 세우는 헛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상대의 종교와 가치관에 대한 열린 마음과 관심, 배려가 없이 오로지 자신의 교리에만 눈멀었을 때의 모습이, 얼마전의 젊은 기독인들이 물의를 일으켰던 봉은사 땅밟기와 같은 사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테러, 종교에 의한 살인이나 인종청소 등의 모습일 것입니다. 종교에서의 교리란 상대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부처님은 자비를 이야기 하셨고, 예수님은 사랑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로에게 먼저 앞세워야 할 것은 자비와 사랑 안에서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포용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계와 불교계의 갈등이 깊어가고, 대통령의 종교로 인해 그러한 갈등이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내 것을 주장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우리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위의 구절이 더욱더 안타깝게 여겨지는 시간입니다. 물론 이러한 언급은 책의 전체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는 지극히 지엽적인 부분이기는 하나, 종교와 종교의 마주봄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마도 이 책 전부보다도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에서 붙여보는 사족같은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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