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격 - 뇌를 충동질하는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얼마 전까지도 우리나라의 할인마트 간의 최저가격 경쟁이 여기저기 요란스럽게 회자되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뭔가 꺼림칙함이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더 싼 가격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 지역에 대형 마트가 들어설 때면 어김없이 지역 중소상인들의 몰락이 논쟁거리가 되고는 하지만, 일단 들어서고 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가격에 여러가지 물품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는 대형할인마트가 더 편리하고 저렴하여 발길을 그리로 돌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같은 값이면 가까운 가게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확연한 가격차이를 느끼게 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싼 가격을 찾아서 조금 더 시간이 드는 것도, 카트를 밀며 일일이 물건을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개의치 않고 대형할인마트를 찾아 갑니다..... 옛말에 '싼 게 비지떡'이라고는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일이나 야채 등의 몇몇 상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품이 똑같은 모양의 똑같은 회사 제품들로 보이기에, 반드시 싼 것이 비지떡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말이 부분적으로는 사실일지 몰라도, 적어도 '가격대비 만족도'라는 측면에서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우리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대형할인점이나 이제는 일상화 된 백화점들의 세일 등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일 뿐..... 하지만, 문제점의 하나는 우리가 항상 소비자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시작되는 듯 합니다. 소비자로서 행세하기 위해서는 돈을 마련해야 하는 노동자이고, 자신이 사는 지역이 경제적으로 탄탄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노력한 것에 합당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한 가족의 부모 또는 자식이기도 하다는 데에서, 더 저렴하게 물품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틈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사는 우리의  모습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싸게 산 물품을 허망하게 버리게 되는 것에서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단지 물품 하나를 버리는 식의 단순한 문제가 아닌, 훨씬더 심각하고 치유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지적과 문제의식, 그리고 그러한 현대의 경제구조와 소비문화에 대한 위기감..... 바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노동자이기도 사회와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하다는 사실과 우리의 그러한 위치가 싼 가격의 물품들이 공급되는 현재의 경제구조와 맞물려 어떻게 몰락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찌보면 냉정하고 섬뜩함을 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에서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단순히 상품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닌 한 개인의 삶 자체를 헐값의 노동자로,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을 뿐 아니라,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을 저자는 냉정하게 짚어나가고 있습니다. 

 포드는 자신의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화와 분업화를 통해서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더 저렴한 가격의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공을 통하여 자신의 직원들이 자신이 만든 자동차나 주위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 만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저렴한 가격은 분명 소비자이자 노동자이기도 하고 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한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한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싼 게 비지떡'인 경우가 아니라 '창조적인 혁신'의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저렴한 가격에는 이러한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현대의 저렴한 가격은 세계화를 통한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 물류 수단의 발달, 대량 구매와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 등에 기인합니다. 물류 기술의 발달은 어디에서 물건을 만들든지 저렴한 가격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지구상 어느 곳에선가는 더 싼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노동력을 찾아내어 생산시설을 그리고 옮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저임금 근로자의 등장은 당연히 소비여력을 가진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근로자의 입지를 악화시키고, 더 낮은 임금이나 더 열악한 근무환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대량생산과 대량구매는 물건값을 싸게 할 수는 있지만, 생산자나 제조자보다는 유통업자 -대형마트나 할인점-에게 가격의 결정권을 행사하게 만들어, 결국 가격에 밀려 물품의 질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육류나 곡식, 채소 등의 대량 생산에는 전염병의 발생과 항생제 또는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 노폐물의 발생 및 영세농의 몰락, 과도한 정부 보조금의 지급 등의 또 다른 문제들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유혹 속에는 우리 삶을 안보이게 갉아먹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포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동차를 가질 수 있는 창조적 혁신을 선물했지만, 현대의 저렴한 가격은 그것에 취한 소비자들에게 더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 이 책을 읽노라면 분명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득'이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손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렴한 가격의 한 근간이 된 세계화의 의미는 다른 곳에서는 더 싼 가격에 비슷한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경쟁해야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유통조직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몇몇은 천문학적인 부자가 될 수 있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더 빈곤해지고 열악해 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결국 '싼 것'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나와 우리 지역사회가 결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고, 우리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이야기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서 저렴한 가격에 대해 치뤄야 할 대가를 생각하고 현실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음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대형 할인마트를 찾아 나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진열대의 저렴한 가격 상품에 마냥 유혹되지 않고, 적정한 가격의 적정한 품질을 지닌 물품에 눈길을 한 번 더 주고 그런 제품의 가치를 이젠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멀리 내다본다면 더 큰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저렴한 가격을 찾아나서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복잡하게 얽힌 듯한 이 문제의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자 :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다 - 완역결정판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昔者莊周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籧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옛날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그는 나비가 되어 펄펄 날아다녔다. 자기 자신은 유쾌하게 느꼈지만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꿈을 깨니 엄연히 자신은 장주였다. 그러니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만물의 조화'라 부른다.) -p98-99, 제2편 齊物論 중에서
  

 物我一體 (물아일체), 無爲自然 (무위자연)은 위의 호접몽(胡蝶夢)의 내용,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장자의 사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하게 그리고 많이 사용되는 한자성어인 듯 합니다. 노자의 '도道'에 대한 생각에 '무無'의 개념을 더욱 강조하여 '무아 無我', '무대 無待 '의 경지까지 확장하여, 모든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아무런 작위도 없는 무위의 경지에서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합일을 통한 완전한 자유,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었던 사상가..... 이 책에 대한 해설과 여기저기 뒤적이며 장자의 사상에 대한 설명을 찾아 읽는다면, 아마도 이런 정도로 그의 사상을 간단히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을 세밀하게 읽고 스스로 내린 결론이 아니라, 막상 읽으려고 하지만 내용이 막연한지라 미리 저자와 다른 사람들이 정리한 내용을 예비지식 삼아 미리 이해를 하고 읽을 요량으로 본격적으로 읽기전에 이리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33편(내편 7, 외편 15, 잡편 11)의 이야기를 통해서 반복되는 '아무것도 하지 아니함', '본성대로 살아감', '자연과 하나됨' 등은 얼핏 이해한다면 우리가 사는 매일의 삶 속에도 담겨 있는 태도들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일상에서 받아들여 이해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매일의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면서 가끔씩 핑계를 대듯이 '아무것도 아니하고 본성대로 살아가며 자연과 하나되겠다'는 도피하는 식의 태도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할려는 작위(作爲)에 해당되는 것이지 결코 장자가 말하는 식의 무위자연하는 모습은 아닐테니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장자의 사상을 통해서 현대인과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 또는 대안을 찾아 나선다는 것도, 현대사회를 이루는 근간 자체를 앞에 두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장자의 사상을 하나의 방편으로만 삼는 것이겠기에, 장자 사상의 진정한 알맹이는 빼고, 속살 조금과 껍질만 취하겠다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아주 단순하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일 수 있으니, 또다른 장자 연구서들을 통해서 한번쯤 되집어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내편 7, 외편 15, 잡편 11, 총 33편의 글을 한글번역, 원문, 해설의 순서로 싣고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시 작게 단락을 지어서 적절한 분량으로 쪼개어 설명하고 있고, 원문에 대해서는 하단에 역주란을 통해서 따로 중요한 한자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원문에 대한 음과 훈이 전부 실려 있지 않아서 한자에 통달하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원문을 제대로 읽어볼 수 없다는 점이 불편함이 되는 듯 합니다. 물론 여느 책들처럼 음과 훈을 다 달아 놓으면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고 제대로 읽으려면 시간도 몇배가 걸리고 책 분량의 문제도 있을 것이기에, 전체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굳이 원문에 신경쓰지 않고 한글도 된 번역문을 성실히 읽는 것이 이 책을 대하는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천자문의  '天地玄黃'을 글자도 보지 않고, '하늘은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 땅은 아래에 있어 그 빛이 누르다'고 풀이한 내용만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 읽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배우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실제 대하고 읽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바르지 못하다', '공평하지 못하다', '의롭지 못하다' 등등... 우리가 일상 생활가운데 수시로 내뱉는 이러한 말 속에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해서 정의(定義)를 내려보라고 한다면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나름대로 생각의 틀안에 정의로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자신들이 겪는 일이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의 대부분에서 그것이 바르거나 공평하거나 의롭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반응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이나 결론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기도 하고, 옳고 그름 등의 판단자체를 내리기가 애매한 좀더 교묘한 딜레마 상태의 경우에는  스스로 내리는 판단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또한 각자 나름대로 형성한 사고의 틀이 엉성하기 그지없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도 만듭니다.  

 플로리다에 허리케인 찰리가 지나간 뒤에 발생한 가격폭리, 구제금융의 여파속에서 천문학적인 상여금을 챙킨 AIG 등의 탐욕(?), 그리고 사고실험으로 제안한 '철로에서 일하는 다섯 인부를 살리기 위해 다른 쪽에서 일하는 한 인부를 희생시킬 수 있는가'와 '다섯 인부를 살리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눈앞의 한 사람을 철로로 밀어서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는가' 등의 물음을 통해서 저자는 자유와 행복, 미덕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가격폭리나 구제금융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바르지 못하다고 말하겠지만 그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의해서 -관점이 자유에 바탕을 두는가 아니면 행복 극대화나 미덕에 바탕을 두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음을 설명합니다. 물론 철로에서 일하는 인부들에 대한 사고 실험도 세가지 관점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자가 언급하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가지 방식은 첫째, 정의란 행복을 극대화하는데 있다는 공리주의, 둘째, 정의란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란 사상에 바탕을 둔 자유방임주의와 평등주의, 셋째, 정의는 미덕 그리고 좋은 삶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입장입니다. 저자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러한 입장들의 주된 논점과 장단점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존 롤스까지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통해서 정의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다양한 상황을 생각하고 체험하게 만듭니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시장주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세번째 방식을 좋아한다.' (p360-361) 저자는 공리주의적 방식은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든다'는 점과 '인간 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환산해 획일화하고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유주의적 입장은 인간 행위의 가치를 획일화하고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와 유사하게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고,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논란과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들에 대한 논란과 이견의 과정에서 선택을 위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정의는 분배만의 문제가 아'닌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에서의 좋은 삶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런 문제를 성이나 낙태만이 아니라 경제와 시민의 관심사라는 영역까지 끌어낼 수 있는 정치' 담론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의 다음과 같은 연설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의 모습-에 대해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 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도 포함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무장 경찰차량도 포함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리비젼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생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p363-364  

 우리 사회를 보면 여전히 대립과 자기주장은 넘치지만 대화와 타협과 양보를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권과 사회는 여전히 4대강 공사의 옳고 그름을 놓고, 행정수도의 이전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서로 자기편이 옳다고 우격다짐을 하며, 우리보다는 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데 그러한 주장의 근저를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꾼들을 배제한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자유와 행복과 미덕이라는 각각의 입장이 양보없이 부딪히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어떤 가치를 더 우선하느냐의 차이가 그러한 대립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이해없이는 결코 상대편과 타협하거나 대화할 수가 없는 문제이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과거 5공화국 시절에 국민을 향해 총칼을 겨누었던 정권이 '정의로운 사회구현'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통치이념으로 홍보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한 구호로 정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되었다고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호가 생각나는 것은 정의라는 미명으로 폭압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책 한 권을 열심히 읽고, 사람들이 읽도록 권장하는 것이 훨씬 더 정의로운 사회에 다가가는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1 - 인사편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浮雪居士 八竹詩 (부설거사 팔죽시)  

此竹彼竹 化去竹 (차죽피죽 화거죽) 
風打之竹 浪打竹 (풍타지죽 랑타죽)
粥粥飯飯 生此竹 (죽죽반반 생차죽) 
是是非非 看彼竹 (시시비비 간피죽) 
賓客接待 家勢竹 (빈객접대 가세죽) 
市井賣買 歲月竹 (시정매매 세월죽) 
萬事不如 吾心竹 (만사불여 오심죽) 
然然然世 過然竹 (연연연세 과연죽)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대로 보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장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내네 - 부설거사 팔죽시, p 171  
  

 <동양학 강의> 책 제목을 처음 대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듣거나 적어도 학교 다닐 때 어떤 체계안에서 학문을 배우던 형식을 생각하였습니다. 최근에 다시 노자의 <도덕경>이나 유학의 <논어>, <맹자> 등에 관심이 생겼던 터라, 더더구나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그러한 쪽에 대한 기대를 잔뜩 마음속에 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데 저자가 서문에서 자신의 이 책을 '강호 동양학'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던 동양학이 아닌가 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는데,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고상한(?) 학문적인 체취가 풍기는 '강단 학문'에 취해 있는 내가 기대한 것이 바로 '강단 동양학'이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저자가 나누는 강단과 강호의 구분을 쉽게 말한다면, '강단 동양학'이 대학이나 학회 등의 기반이나 학문적인 토대를 갖추고 진행되는 것이라면 '강호 동양학'은 그런 구구절절한 학문적인 배경에 억매이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동양적인 삶의 자세와 사고방식, 철학과  사상, 종교 등 모든 것이 뒤섞여 이루어지는 동양인의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단 동양학'이 칠판과 분필이 있는 교실 안에서 이루어진 강의라면, 저자가 말하는 '강호 동양학'은 강과 호수, 산과 들판을 돌며 풍찬노숙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배우고 느낀 인생의 희노애락과 깊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하니, 이 책을 통해 고상하게 논어와 맹자, 그리고 도덕경을 논하는 식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선 접어두어야 할 듯 합니다. 

 두 권의 책-동양학 강의 1, 2-을 통해서 저자가 다루는 것은 동양의 고전이나 사상에 대한 것들이 아닙니다. 1권에서는 인물과 사회, 문화, 문명이라는 주제하에 이름과 역사와 사회와 정치, 가족과 민속과 시사와 지역과 의식주, 학문과 건강과 사고와 풍류, 기술과 유물과 재물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2권에는 자연과 천문, 종교와 운명이라는 주제하에 산과 바다와 동물과 식물, 날짜와 주역과 풍수, 종교와 유불선, 예언과 생사와 사주와 관상과 연관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저자가 강호를 풍찬노숙하면서 직접 듣고 보고 깨닫고 생각한 것들이겠기에 우리 삶의 어느 구석엔가 붙어있었던 것같은 생생함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디선가는 내 고향과 관련된 나도 모르던 이야기가, 그리고 어디선가는 피상적으로 국사시간에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등장하기도 하고, 이름을 외우며 그들의 사상이 어떻고 작품이 어떻고를 논하던 이들의 삶의 한부분이 눈앞에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들은 결코 국사시간에 배우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배웠던 많은 것들이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며 이루어가는 것들처럼 삶의 땀방울을 머금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이 책에 담긴 짧은 이야기들 속에, 사서삼경을 논하고 역사를 논하는 칠판앞에서의 강의보다 더 깊은 동양의 사상과 역사에 대한 것들이 담겨 있다고 감히 말할 수도 있지 않을는지..... 또한 담겨진 이야기들 자체가 지금까지 이어진 우리 선인들의 삶의 행적과 체취들을 담고 있고 그러한 삶 속에 동양적인 가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겠기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하나 하나가 동양의 사상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내용을 되집어가면서, 저자가 자신의 동양학을 '강호 동양학'이라고 설명하는 이면에는 -아니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동양학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아마도 학문이란 무엇이고,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서삼경이나 먼지 쌓인 고서들을 뒤적이며 머리로 하는 작업을 학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실제 현실과 부딪쳐서 몸으로 겪으면서 배우는 것을 더 의미있게 생각한 사람이고 또한 그것을 직접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머리로 하는 학문을 저자는 몸으로 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적인 언어들로 씌여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이 생생히 담겨 펄떡거리는 신명나는 마당놀이 판처럼, 한 편의 신명나는 동양학 강의판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동양학 공부의 밑바탕은 서가에 쌓인 낡은 책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과 이웃, 산천과 만물 가운데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채워가는 것이라는, 그것이 모든 공부의 진정한 밑바탕이라는 이야기는 풍요를 쫒아 시간에 쫒기고 돈을 쫒으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든 브레인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놀라운 무의식의 세계
샹커 베단텀 지음, 임종기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숨겨진 뇌'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를 조정하고 있는 다양한 영향력을 가르키는 간단한 용어이다. 어떤 면에서 숨겨진 뇌는 마음의 지름길이나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보편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기억과 주의관심이 작용할 때 나타나는 오류들과 관련이 있다. 또한 숨겨진 뇌는 사회적 역학이나 사회적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에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이 힘들의 영향력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신활동을 우리가 인식하는 정신활동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활동으로 단순하게 구분하면, '숨겨진 뇌'라는 용어는 현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 이를테면 무의식, 잠재의식, 암시성(the implicit)와 같은 개념들을 포괄하게 된다. -서문, p14-15 

 태평양을 표류하는 버려진 배 위에서 오갈  데 없던 강아지 한마리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내고, 방송사 여기저기서 야단법석을 떨고, 결국은 해군과 해안 경비대까지 출동하여 한 달여간을 온 바다를 뒤지면서 찾아나선 정부와 사람들과 방송이 백만명이 학살된 르완다 사태나 다르푸르(Darfur)에서의 집단 강간 및 살인사건에는 말을 꺼내기도 민망하게 무관심하고 수수방관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9.11 테러때 같은 회사의 한 층의 직원들을 거의 대부분 생존했는데 그 윗층의 사람들을 대부분 사망했다면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치원생에 불과한 어린 아이들이 단지 피부색깔에 따라 흑인에게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백인을 긍정적인 편향을 나타낸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의식적으로는 결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어른들에게서조차도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인종 편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도적으로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적인 사회현상이나 구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제로 비만과 자살, 흡연으로 인한 폐암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도 살인이나 테러에 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이고, 통계적으로는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더 안전한 데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동차 운전보다 비행기를 타는 것에 더 공포심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면, 우선은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답을 찾아내려고 힘쓸 것입니다. 적어도 인간의 이성과 의식적인 행동결정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각각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저자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의 배후에 존재하는 공통적인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이유가 의식적이거나 이성적인 것은 아니라는 데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첫머리에 언급했던 '숨겨진 뇌'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결국 의식적인 행동이나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결코 깨닫지 못한 영향력에 의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결코 자각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의도와 불일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무의식적인 편향'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행동을 이러한 무의식적인 편향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면 달리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내용들은 바로 앞에서 제기했던 여러 문제들과 같은 우리의 일상사에 숨겨진 무의식적인 편향에 대한 증명과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들입니다.  

 프로이드가 무의식의 세계를 언급한 이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한부분으로서의 무의식의 존재에 대해서는 흔쾌히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의 행동경제학의 소개과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휴리스틱도 그러한 무의식적인 세계의 단면을 우리에게 깨닫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숨겨진 뇌'라는 세세한 부분에서는 개념의 차이가 조금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숨겨진 뇌의 기능을 진화의 산물로 이해하는 듯 합니다. 인간이 무수한 세월의 진화의 과정에서 주변 환경에 용이하게 적응하기 위해 주변정보를 적절하게 가공하여 결론에 이르기 위한 마음의 지름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물이 바로 숨겨진 뇌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자가 이러한 무의식적인 편향에 의한 여러가지 폐해들을 언급했다고 숨겨진 뇌의 작용을 부정적으로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3장의 전측두엽성 치매 환자의 예를 통해서 숨겨진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의 난감한 상황에 대한 언급을 보면, 숨겨진 뇌가 우리를 매번 실수나 위기로 몰아가는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악당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없기에 우리의 생활 곳곳에 배어있는 숨겨진 뇌에 의한 무의식적인 편향의 폐해가 지대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편향의 지배로 인해 일상사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나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 이 책의 주된 관심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언급한 '숨겨진 뇌'에 대해서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자각했다고 해서, 우리가 일상사에서 자아성찰을 통해서 숨겨진 뇌의 영향을 온전히 깨닫을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점들에 귀기울여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이 책이 지적한 숨겨진 뇌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에 다다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도 무의식을 자각하기가 어려움에 대하여, 합리적인 마음이 숨겨진 뇌의 책략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고는 있지만,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는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언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숨겨진 뇌'의 영역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고, 그것의 본질에 대한 더 많은 자료와 연구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아직 우리가 어찌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그럴듯한 답들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숨겨진 뇌가 원시의 삶에서 현재에 이르는 과정까지 인간을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할 수 있게 만든 것만큼의 시간이 미래로 흘러야만 우리의 의식이 숨겨진 뇌를 훨씬 잘 조절하는 방식을 배우고 우리의 이성이 무의식의 영향력에서 더 많이 벗어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국은 시간과 적응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