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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윌리엄 포크너
...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작가가 유방암이 경추에 전이된 뒤에, 이 책의 바탕이 된 신문 칼럼 게재를 접으며 쓴, 마지막 글 "문학의 힘" 중 일부 내용입니다. 앞의 여러 글들을 통해 보이던 진지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자신의 문학속에서의 여정을 기록해오던 작가가,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어투로 문학의 의미를 되뇌이며 그러한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고 다짐하는 모습속에, 바로 자신의 글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모두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첫머리의 <작가의 말>을 '같이 놀래?'라는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제목으로 시작한 저자는, 3년간 중앙 일간지의 북칼럼에 실었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숨겨놓은 보석을 하나씩 꺼내 보듯, 일생 동안 내안에 쌓인 책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새로운 감회에 젖었고, 위대한 작가들의 재능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고맙고 행복했'던 시간의 기록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또한 칼럼을 통해서 독자들을 만나는 시간이, 독자들과 문학을 통해서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아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시간이었고, 친구들을 향해 스스럼없이 '같이 놀래?'하며 손내미는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순전한 손 내밈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어느 학생처럼, 작가 자신이 일평생을 문학의 숲을 거닐며 얻은 '향기로운 열매를 향유하고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누고자 했던 초대 글이고, 누군가 '문학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고 길을 찾'고, '더욱 굳건하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바람과, 서로에게 '화합의 손을 내미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는 소망까지도 함께 담은, 진정 문학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를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숲속을 거닌다고 하더라도 숲에서 나올때면 서로가 다른 느낌과 감상을 지닐 겁니다. 어떤 이는 작은 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끼겠지만, 어떤 이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공기가 맑고 신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또 어떤 이는 칙칙한 숲의 향기가 맘에 걸려노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도시에서 못보던 벌레며 곤충들을 신기해 하는 이도 있겠지만, 또 그것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문학의 숲에서도 역시나 그러한 모습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어떤 이는 숲 근처까지는 갔지만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아예 멀리서 숲을 바라보고만 서 있을 수도 있겠고, 숲속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내 길을 잃고 헤매는 이도 있을 것이고, 조그만 오솔길 하나 따라갔다 돌아와서는 여행을 마쳤노라고 하는 이도 있겠지요. 물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 숲을 거닐며 많은 것들을 얻어오는 이도 있을거구요. 분명 정답은 없는 길이지만, 이해하고 삶에 새기는 깊이의 차이는 있는 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문학의 숲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자신만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해를 만들어낸 사람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알려진 문학작품의 소개나 유명작가의 삶의 일화를 소개하는 정도의 산책길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문학을 매개로 자신의 삶속에서 함께 뒹굴고 살을 맞대며 문학작품과 작가들과 살아온 이야기, 그러한 과정에서 문학과 함께 자신의 삶이 그려온 궤적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목을 보면서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글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하였지만, 이내 '숲을 거닐다'고 시적으로 표현한 제목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나 할까요. 우리가 숲속에 들어가면 나무 하나, 풀 한포기에 관심을 주기도 하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심호흡도 하고, 기지개도 펴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태양과 푸른 하늘을 감상하기도 하고, 메아리를 듣기 위해서 '야호'하고 소리도 한번 질러 보듯이, 작가가 문학의 숲속을 거닐며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느꼈던 문학에 대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문학작품을 소개한 소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비친 문학을 정갈하게 그려낸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노라면, 작가의 바람처럼, 책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소중했던 만큼, 그 소중함을 독자들에게도 전하려는 간절함과, 현학적인 분석보다는 그 작품이 자신의 마음에 어떻게 와 닿았는지, 어떤 감동을 주었고, 자신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를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진심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노력과 능력으로 돌려도 될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는 햇수가 쌓여 가면서, 시나 문학작품으로 향하는 손길이 갈수록 인색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좀더 현실적이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 먼저 손이 가고, 열중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식힌다는 불순(?)한 의도로 책장속에 있던 이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작가는 문학의 숲에서 같이 놀아보자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내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더 풍요롭기 위해서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들이 실은 그 숲속에 고스란히 숨겨진 것이라고, 그 보다 더 의미있고 풍요롭고 현실적인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말입니다. 부디 앞으로는 시간이나 삶에 쫓기지 말고, 지혜롭게 이 숲속을 거닐며, 작가가 말한 치열한 삶과 투쟁과 승리, 그리고 사랑과 용기와 인간다운 삶을 느끼고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마음 한구석에라도 품어봅니다. 이 시간이 순수했던 시절의 허상이 아닌, 오늘 현실속의 삶의 도구로서의 문학이, 내 품에 다시 안겨 돌아온 시간이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