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은 당신뿐
코데마리 루이 지음, 정숙경 옮김 / 행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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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산다는 것, 젊은 한 시절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아마도 그건 젊음의, 그리고 청춘이 누리는 특권(?)중의 하나가 아닐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삶에 대한 가르침을 각자의 삶속에 집어 넣어주면 -그것이 억지로 구겨 넣어준 것이든, 스스로 바닥을 헤매며 배운 것이든- 마음이 따르는 대로, 감정이 가자는 대로 몸을 맡기고 불살랐던 사랑이라는 것이 실은 집착과 욕망, 그리고 미숙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그리고 그 후에 남는 것은 추억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쓰라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남겨진 인생에 대한 담담함.... 이런 것들은 아닐는지....

 19살의 여자가 만나 열중했던 남자다운 남자와의 사랑 -집착과 소유에의 욕망-, 그리고 같은 여자가 좀더 나이가 들고 결혼한 뒤에 직장에서 만난 부드러운 남자와의 사랑 -일탈과 엇갈린 욕망-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작가의 내면에 있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국 왜곡되고 비틀릴 수 밖에 없는 모순 속에서의 절망을 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직은 치기어린 젊은이가 내뱉는 중얼거림처럼 들리는 '원하는 것은 당신뿐'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땅끝을 외치는 남자다운 남자와의 만남, 사랑, 그리고 파국, 또 다시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잃은 부드러운 남자와의 만남, 외도, 그리고 헤어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이라는 탈을 쓴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집착과 소유에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 존재에 대한 고독,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한편으로는 과감이 표출한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듯-.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집착이고 욕망이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이었노라고 합리화 하며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여자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그렇기에 마지막에 여자는 이미 헤어진 부드러운 남자와의 여행을 통한 또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상상하며 멋질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렸을 때의 책읽기처럼, 여자는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 자신을 열중하게 하는 것이고 멋 옛날에 책읽기에 열중하며 살았듯이 지금도 그것을 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땅 끝에서 불완전한 외톨이 시체로서' 그것을 산다는 말 속에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영혼의 허기와 갈망, 그리고 이어질 집착과 욕망의 사슬을 느끼게 만드는 구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슬속에서는 영원히 채워지지 못하고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굴레가 아닐는지.....

'원하는 것은 당신뿐' 이라는 사랑 -집착과 욕망-은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겪게 되는 감정의 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감정이 가고 남겨진 인생에는 쓰라리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그런 모습의 열정일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면 영원한 물고 물리는 사슬의 굴레 속에서 스스로 소모되고 파괴되어 기억조차 못하게 되어버리든지.....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모양의 사랑과 인생과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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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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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기타를 들고서, 마이크 앞에선 40줄을 훨씬 넘긴 가수의 노래 가사 한구절을 생각나게 하는 책제목이었습니다. 중년의 그 가수는 눈을 지긋이 감고서 마음 속 깊은 울림을 담아서 내뱉습니다 '..... 산다는 것의 깊고 깊은 의미를, 나는 아직은 몰라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말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물음이지요.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가 들수록 대답하기 전의 사색의 시간이 더 길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 처음 책을 받아들고는 이 안에 이 물음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담아놓았으려니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제일동포 2세로 자란 자신의 삶을 통해서 깨달은 그러한 삶의 의미를 명쾌하게 말하고 있지 않나 하는 기대가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나, 이 책은 저자가 산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아직은 다 모르지만 자신의 성장과정을 통해 겪었던 일들을 근거 삼아 그에게 의미를 준 '상냥함'에 대해서 더 성실히 탐구하며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저자 자신이 어머니도 없이 조선인 노동자인 아버지와 형과 함께 일본땅에서 자란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라를 잃은 조선사람에게는 지난할 수 밖에 없었던 식민지 시대에, 일본땅에서 가난과 멸시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이 되도록 교육받고 자란, 하지만 결코 일본인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뿌리를 자각하게 되는 조선인 2세로서의 자신의 이야기, 즉 자전적 소설입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두 나라사이에 끼인 독특한 위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자각들에 대한 기록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실제 삶의 기록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소학교 5학년때 잠시 만났던 사카이 선생님과 같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어린시절은 가난과 조선인이라는 차별과 멸시속에서 난폭함과 무절제 속에 지낼 수 밖에 없었던 힘겨운 소년의 생활속에서, 결국 저자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뿌리가 된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의 삶이 모두 허물어진 암흑의 긴터널을 지난후에 다가온 걸 보면, 그의 삶의 모습은 그의 아버지의 조국의 모습과 닮은 듯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저자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사람들과의 만남의 관계속에서 소통되는 상냥함으로 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상냥함이란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을 이름입니다. 저자가 이리 삶의 의미를 상냥함에 부여하는 것은 자신의 힘겨운 삶을 지키고 바로 잡아 준것은 자신의 아버지의 상냥함, 그리고 사카이 선생님의 상냥함과 같은 그가 경험한 인간의 상냥함에 의한 것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상냥함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진짜 힘이 되었음을 자신의 삶속에서 그리 체험한 것이지요. 그리고 저자는 이 지점이 끝이 아니라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탐구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삶과 그리고 나의 삶을 들여다 보며, 인간 각자에게는 각 개인 나름의 인생의 깊이와 무게라는 것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서로 무게가 같지도, 빛깔이 비슷하지도 않은 각자 나름의 독특한 삶을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삶 하나하나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더 세심히 귀기울여 들어 줄만한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저자가 고난에 절인 삶속에서 인간의 상냥함에 대한 소망을 발견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의 빛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안식이 될 수 있음도 아울러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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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게리 슈테인가르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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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수르디스탄 Absurdistan> 문자적인 뜻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땅'이나 '불합리한 땅'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듯 한데, 소설의 내용을 뜯어본다면 앞에 붙은 '망할놈의 나라'라고 이해해도 될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이 이야기는 사랑의 관한 것이고 남에게 당한-이용당한-것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랑이라면 러시아의 1238번째 부자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뉴욕에서 사귀었던 자신의 여자 친구 루에나에 대한 것을, 이용당한 것이라면 아버지가 미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댓가로 미국 입국 비자가 거부되어, 러시아를  벗어나고자 벨기에 위조여권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발이 묶이게 된 압수르디스탄이라는 나라에서 다문화부 장관이라는 그럴듯한 관직에 앉혀져서 이용당한 것을 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이 소설은 세상살이의 불합리한 모습, 어이없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더 옳은 표현이 될 듯 합니다.

 한때 미국에 유학하여 어쩌다보니 대학 (Accidental College)에서 다문화학 학위를 받은 주인공 미샤 보리소비치 바인베르크는 나이 서른의 , 지독하게 뚱뚱하고 파란 눈을 가진 유대인입니다. 아버지는 러시아의 1238번째 부자이고, 뉴욕을 동경하며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그곳에서 사는 것을 기대하며 살지만, 아버지의 미국인 사업가 살해사건으로 인해서 미국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러시아에 묶여있는 우울한 영혼이구요. 뚱뚱하다는 것에 덧붙여 꼭 언급해야할 신체적인 특징은 잘못된 할례의식으로 인해 정상적이지 못한 생식기를 가졌다는 사실인데, 이건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 육체적인 관계를 가질 때 마다 중요한 뭔가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뚱뚱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생식기를 가졌지만 그에게 루에나나 나나와 같은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지닌 돈이라는 것으로만 설명이 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 주인공의 관심사는 먹는 것, 그리고 뉴욕의 여자 친구와 함께 있는 것,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인공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닥치고, 어찌하여 벨기에 위조여권을 얻을 기회가 생겨 압수르디스탄이라는 나라에 이르지만, 이곳에서는 석유와 이 나라의 미래를 걸고 권력자들이 거대한 음모가 진행중입니다. 세보족과 스바니족의 인종충돌로 포장된 석유와 나라의 앞날을 건 음모 속에는 두 인종의 권력자들의 권력과 이권에 대한, 그리고 미국 회사의 이권에 대한 어두운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미국의 군수업체의 비리의 일면도 살짝 언급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여기서 이 나라의 다문화부 장관이라는 그럴듯한 직책으로 이용당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부자라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것이 이용의 이유일 듯 한데, 순진한 우리 주인공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듯하지만 결국 모사드 요원에게서 진실을 듣고서, 위험을 피해 국경으로 달아납니다. 우리 주인공의 최대 관심사는 인권이나 자유나 정의가 아닌 자신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들과 여자 친구 루에나와 함께 있는 것이기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기차를 타고서......  

 책을 다 읽고서 느낀 감정은 엉터리 같은, 터무니 없는, 불합리한, 어이없는 등의 수식어을 붙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얼 말할려고 저자는 이 글을 이리도 방대하게 쓰며 이야기를 이끌어 왔을까? 그리고 어찌하여 이런 책이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받았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내 책의 내용자체에서 뭔가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작가가 독자인 내게 말하려고 한 것은 내용을 통해서 느끼는 독자로서의 지금의 이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이내 작가가 말하려는 것들은 작가가 글로 표현한 것 자체가 아니라, 그의 글을 읽고 독자들이 느낀 것들, 바로 그것에 대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내용만 보고 따진다면, 도대체 이런 형식의 터무니 없는 글로 이 많은 페이지를 채우고 소설 나부랑이(?)를 썼다고 자랑스러워 할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지울수가 없었을 터인데,  다행히 그런 비난을 작가에게 퍼붓기 전에 문득 깨닫게 된, 작가가 노린 것이 바로 이런 감정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을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이번에는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 불합리하고 엉터리같은 세상을 산다는 것은 바로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느끼는 그러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겉모습이, 그리고 명분이 거창해 보이는 세상의 많은 일들이 뒤집어 놓고 보면 이 소설속의 내용들같이 엉터리 같고 불합리한 과정과 음모속에서 싹을 틔운 것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비웃음도 함께 들리는 듯 합니다. 너무 삐딱한 시선일 수도 있지만.....세상사라는 것이 결국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 작가는 자신만의 신랄한 풍자로 그럴듯하게 꾸민 세상에 대해 멋지게 한 방을 먹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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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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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코끼리>.  참으로 마음을 끌리게 하는 제목이었습니다. 출판사의 광고처럼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넘어선 찬사와 감동!' 이나 '100만 독자를 울린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에 눈을 두지 않더라도 이혼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두아이가 슬픔과 그리움을 이기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사실과 책표지의 노란 잎사귀가 날리는 거리에 세가족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서 있는 노란 자동차의 일러스트를 보며, 예전에 읽었던 아이들 책중에서 모리야마 미야코의 <노란 양동이>나 도다 가즈요의  <여우의 전화박스>에서 느꼈던 동심과 따뜻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다시 기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의 미천한 나의 경험으로 보건대 세상을 보는 동심의 눈이 어른의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보다는 훨씬 따뜻하고 희망이 넘치는 사회라는 걸,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인 깊이가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세상을 살 만하게 하고 살아갈 만하게 만드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깊이와 마음속 울림은 동심의 눈이 훨씬 깊다고 감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세상을 피하는 퇴행이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이야기의 소재는 이제는 우리 사회에도 어쩌면 일상적인(?) 일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이혼한 가정입니다. 아무리 우리 주위에 흔한 이야기가 되더라도 결국은 당사자들에게는 언제나 마음에 남는 아픔이고 삶의 고통이기에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이고 절실한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에 이리 반복되는 것이겠지요. 이혼후에 잡지사의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어렵게, 하지만 기죽지 않고 명랑하게 가정을 이끌어가는 조금 덜렁거리고 건망증이 있는 어머니, 이제 5학년이지만 몸보다는 마음이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그래서 하는 말이나 생각들이 어린아이의 말이나 생각이라기 보다는 이미 어른이 되어서 세상을 회색빛 안경을 끼고서 바라보는 듯한 우리의 주인공 '히로시', 그리고 여전한 동심의 마음을 지니고 그만큼의 눈높이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나'. 이렇게 세사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리고 보니 이 가정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노란자동차 -노란 코끼리-가  빠졌네요. 커다란 집채만한 코끼리-자동차-들 사이에서도 그나마 절망하지 않고 고개를 쳐들고 살아갈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의 이 가정을 지켜주는 뼈대인데 말입니다.

 '나는 또 그렇게 원하든 원치 않든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 씁쓸해진 그날은 내 열한 번째 생일날이었다.'  자신의 생일날 자전거를 선물로 가져왔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국은 다투고 가버리던 날, 우산을 가지고 따라 간 동생 나나에게 아버지가 우산을 빌려가면 다시 돌려주러 와야 하니까 됐다고 거절하며 돌아서 비에 젖은 찻길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그리고 아무말 못하고 그런 여동생 나나에게 우산을 씌우고 집에 돌아오며 주인공이 되뇌이는 독백입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세상이 자신의 마음을 억지로 커버리게 강요하는 시간들이 반복되어, 이제는 자신이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씁쓸함이라고 표현하는 어린 동심을 보며 울컥 솟는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독백을 통해 이 세상의 차가움이 여린 마음속에 깊이 패인 상처 하나를 새기는 따끔한 아픔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히로시의 행동과 말들을 보며 상처속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억지로 크기를 강요당한 아이의 어린 영혼에 새겨진 상처와 혼돈과 세상에 대한 조롱을 보는듯 하여, 이리 자라지는 말아야 했는데 하는 안타까움에, 자신의 몸에 맞는 정도까지만 정신도 영혼도 성장해야 하는데 너무 자라게 강요한 세상에 대한 -나를 비롯한- 무의미한(?) 질책의 채찍을 함께 휘둘러보지만, 결국 그것도 세상의 삶이라는 공허한 메아리만이 내게 울릴 뿐입니다. 상처받은 저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엉망이 되어버린 노란코끼리는 끌고 돌아오며 히로시와 나나의 어머니는 이리 고백합니다.

 " 엄마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타고 있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단다. 엄마 노릇도 잘 못하고 아내로서도 부족했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차량의 물결에 섞여 함께 달리다 보면, '어때, 나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잘 하잖아'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엄마가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노란 아기 코끼리 덕분이야."

 이 가정에 주어진 노란 코끼리의 의미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그 어머니를 정신적으로 지탱해 주며, 그나마 자존심을 세우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해 준 것이라면, 아마도 첫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하로시와 나나 두자녀였을 것이고, 바로 그 다음이 이 노란 코끼리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이 어머니처럼 어려움속에서도 노란 코끼리와 같은 희망을 찾아 만들고, 그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가정에는 많은 아픔과 시련들이 닥치겠지만 꺽이지 않는 소망이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비록 히로시 같이 정신이 너무 커버린 상처받은 어린 영혼이 있지만, 그런 어머니가 있는 이 가정에서는 그 상처가 씁쓸함과 절망으로만 끝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가정을 대하는 나와 우리 사회가 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따뜻한 미소를 담은 성원의 박수가 아닐는지....

 이 가정처럼 깨진 가정, 상처받은 영혼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노란 코끼리를 찾고 품에 안고 살아갈수 있는 따뜻한 소망의 시간들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어린 영혼들이 동심의 눈을 잃고 너무 커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기원도 함께 드립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생각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초등 5년인 주인공을 보는 부담스러움이 끝내 마음속을 무겁게 짓누르며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다른 많은 이야기들에서 내 눈길을 거두어 들이게 만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음에서 덧붙이는 소망입니다. 너무 이기적인것 같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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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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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같은 후원자는 없다. 옳건 그르건 어머니의 관점에서는 아들이 항상 옳다

 책을 읽는 내내 해리 트루먼 전 미국대통령이 했다는 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를 보면 여기에 딱 부합하는 모습이니까요. 어머니이기때문에 항상 자신의 아들편을 들어주었고, 그의 잘못을 잘못이라 비난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결행한 자살이라는 인생최후의 몸부림의 현장에서도 그의 가슴속에서 다시 살아나 그가 자신의 소원의 성취였고 의미였다고 고백하며 용기를 주고 다시 살 힘을 북돋아줄 수 있었던 사람..... 바로 자신의 자식이 항상 옳다고 믿어주는 어머니만의 자리가 아닐까요?

 이혼한 어머니에게서 자랐지만, 한때는 야구선수로 잠깐이지만 메이저리거로 살았고, 꿈의 제전이라는 월드시리즈에도 참여했던 칙. 그런 그가 절망의 몸부림속에서 마지막에는 자살까지 시도하게 됩니다. 사업의 실패, 술, 이혼등이 그의 절망에 일조했지만 그가 자살이라는 극한 처방을 시도한 것은 자신의 딸 마리아의 결혼식에도 그리고 그후 어떤 모임에도 초대받지 못하고 따돌림 당한 절망에 기인합니다. 야구선수를 그만둔 후 엉망이던 그의 삶에서 유일한 예외였던 딸 마리아에 의해서 이젠 그의 존재가 무참히 무시 당했고 -칙이 어머니에게 했던 식으로 말하면 딸이 칙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거죠- 그는 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택하려 그의 어릴적 고향집으로 질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루동안 아마도 그의 가슴속에서 살아서 평생 함께 살던 그의 어머니가 그의 현실속으로 다시 들어와 칙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진행되는 이야기속에서 칙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 마지막 하루를 어머니와 함께 보내고자 했을만한 이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칙은 그의 딸의 외면으로 자살을 택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칙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많은 순간에도 칙처럼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아들의 편을 들어주는 후원자로 남았고,  그의 아들이 자신의 간절한 소원의 성취였다는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이는 제 마음이 그만큼 아픈 것이라는 지혜를 터득하여 아이들을 다독였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간호사 베네토가 아닌 미용사 베네토, 청소부 베네토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야기 내내 나오는 '내가 어머니 편을 들어주지 않은 날'과 '어머니가 내 편을 들어준 날'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주인공이 자신의 딸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데 대한 절망으로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딸의 편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결국은 자신의 편을 들고 마는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딸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한을 택한 그 앞에선 어머니 - 자식이 자신의 편이던 아니던 항상 자식의 편에 서 계셨던 자신의 어머니-를 보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은 아마도 회한과 부끄러움 그리고 감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딸 마리아, 아내 캐서린 그리고 자신의 동생과의 화해를 이루고 만족스러운 말년생활을 누린 듯 하구요.

 옮긴이가 이야기하듯이, 이 이야기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예전에는 미처 그걸 알지 못했던 한 아들의 이야기, 즉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기에는 삶과 인생에 대한 더 많고 깊은 뜻을 지니고 있을지 모릅니다. 비단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이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조상과 나와 나의 후손이라는 계보를  또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창한 이야기나 담론보다는 소설속으로 돌아가서 평범한 듯 보이지만 읽는이의 마음을 울리는 저자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마음을 열고 가슴으로 귀기울이는 것이 더 현명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마지막 페이지의 사진들을 보니까 할로윈의 미라는 저자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한 듯 합니다. 

 칙의 독백으로 이 아름답고 가슴 뭉클했던 이야기에 대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나는 그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하루를 가져보았던 사람입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지나간 하루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더군요. 그리운 사람, 사랑했던 사람과 단 하루만이라도 더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이미 그 하루가 주어져 있는 셈이니까요. 오늘 하루, 내일 하루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들의 하루는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하루입니다. 그러면 매일이 단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소중해지지요. 이제 나도 오늘 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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