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역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96
알프레드 바알 지음, 지현 옮김 / 시공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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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놀이가 아닌 노동이 되었다. - P. 70

가장 감명 깊은 근대 축구에 대한 평가로 기억될 문장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근대 이후 우리가 받아들인 모든 스포츠는 이제 재미와 감동을 너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다른 스포츠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하는 부분도 많이 있지만 축구의 역사는 특별하다. 온 국민의 사랑과 열망이 녹아 있다는 섣부른 판단도 가능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도 근대의 물결과 더불어 우리에게 전해졌고 매스 미디어의 보급과 함께 확산되었으며 대중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동네 꼬맹이들까지 축구공 하나로 놀이를 시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의 전환은 축구를 ‘놀이’에서 ‘노동’으로 변화시켰다. 하는 즐거움에서 보는 즐거움으로 바뀌어도 여전히 축구는 매력적이다. 현대의 축구는 자본과 결합되어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렸지만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때때로 축구의 위기론이 퍼지고 관심이 멀어진 듯 하지만 월드컵이 열리는 해가 되면 온 국민의 관심은 마치 하나의 종교와 같은 위치에 까지 오르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영국 BBC가 한국에서 축구를 ‘종교’에 비유한 것은 여러 가지 함의를 지닌다. 축구의 종주국에서 받게 된 평가는 긍정적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냄비처럼 끓어오르다가 월드컵이 끝나면 모두 축제의 한마당으로 여기고 돌아서는 태도가 재미있게 비칠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바야흐로 월드컵은 이제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축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무관심 속에 1904년 FIFA가 창립되었고 영국은 2년 후에 가입하게 된다. 우루과이에서 1930년 제 1 회 월드컵이 개최된 이후 축구는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잡는다. 내가 기억하는 월드컵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창선이 월드컵 첫 골을 날렸고, 이탈리와의 경기에서 허정무, 최순호가 골을 터트렸다. 4년마다 흥분했고 현재도 재미있게 축구를 즐긴다. 월드컵의 역사는 100년도 안된다. 오히려 유럽의 컵대회가 훨씬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하다. 다만 지역적 특성과 연고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게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축구조차도 유럽과 서양 중심이다. 물론 축구 선진국 남미를 빼놓을수는 없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중 하나인 <축구의 역사>는 사진과 그림등 시각 자료와 함께 축구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축구의 시작과 발전 근대 축구의 스포츠 외적 목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 전체를 조망하는데 편리하다. 물론 짧은 분량으로 깊이는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부록처럼 붙어 있는 ‘기록과 증언’이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생생한 기록들이 실려 있어 감동을 전해준다.

축구는 정치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이제는 자본과 결합되어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목적과 의도, 시각의 올바른 수정을 위해서라도 축구를 바로 보고 즐길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 축구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다. 축제는 즐기면 된다. 이제 축구의 문화사를 더듬어 봐야겠다. 오늘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국내에서 마지막 평가전을 치르는 날이다. 선수들의 동작 하나 하나를 그들의 땀과 열정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

자본도 이데올로기도 잠시 잊고 축구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갖는 것은 맹목적인 축구 사랑도 분위기에 휩쓸리는 냄비 근성도 아닌 생활의 즐거움이다. 흥분하지 말고 즐기는 축구가 될 수 있기를.


060526-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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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문화사 살림지식총서 90
이은호 지음 / 살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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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축구는 다른 대륙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별한 의미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사회 문화적 관점을 말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축구가 국가별로, 리그별로 독특한 색채와 나름의 경기 방식에 따라 운영되면서 각 나라의 문화적 전통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이탈리아의 세리에 A,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독일의 분데스리가,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 4대 리그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각국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모두 이들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국의 선수를 응원하고 가장 수준 높은 경기를 관람하는 두 가지 즐거움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한국의 K-리그가 우리 국민들에게 주는 의미는 아주 미미하다. 지역 연고를 통해 프로구단들이 자리 잡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먼저 시작한 프로야구와 연고가 겹치기도 하고 서로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스포츠의 관중이 겹치는 문제도 있다. 어쨌든 2002 월드컵 이후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집단 광기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큼 열광적이다. 부분적인 열광이 전체의 축제로 확산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축구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이고 장점일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도 이제 축구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재미가 된 것은 분명한 듯하다.

유럽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역사이고 문화이다. 영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의 프로 리그는 깊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서로 경쟁적 발전 관계에 있다. 챔피언스리그나 각종 컵대회에서 자국의 이익과 애국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클럽의 명예와 지역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발판으로 성장한 리그는 끊임없는 경쟁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축구를 진화시키고 있다. 이 리그들의 운영 방식과 특징들은 물론 그 나라의 특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거대 자본과 결합되어 커다란 산업이 되어버린 지금 이 클럽들은 리그를 대표하는 하나의 팀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을 연상시킨다.

‘CU@K리그’라는 문구를 창안했던 붉은 악마 출신의 이은호가 쓴 <축구의 문화사>는 유럽의 명 리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라이벌 팀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레인저스와 셀틱, 로쏘네리와 네라주리, AC 밀란과 인터밀란, 아스날과 토튼햄, 마르세이즈와 파리지엥, OM와 PSG 가 그것이다. 유럽의 명문 클럽이면서 라이벌 팀인 이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 때문에 라이벌이 되었고 뿌리 깊은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종교, 인종 등 축구 이외의 정치적 요소와 지역간의 갈등 등 복합적 문제들이 겹쳐져 있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갈등과 모순들이 축구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축구는, 특히 열광하는 관중들은 선수들의 몸놀림과 경기 자체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의미들을 읽어내게 된다.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글래스고 레인저스에서 5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어 그곳으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으나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도 궁금하다. 개신교냐 카톨릭이냐 그것부터 묻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궁금하겠다. 바람직하지 않은 전통은 없어져야 하겠지만 쌓여온 시간과 역사를 하루 아침에 청산하는 것은 하늘의 색깔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축축한 공기만큼 땀냄새가 그립다.

미친 듯이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본지가 얼마나 되었나?


060529-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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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명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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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이후에 벌어지게 될 현상들에 대해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지금 이순간도 한미 FTA의 영향에 대해서 모두가 입다물고 있다. 몇몇 시민 단체에서 주장하는 반대의 목소리도 최근의 경기불황과 높은 실업률의 결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그 달콤한 장밋빛 미래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한미 FTA 이후 벌어질 후폭풍과 파장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무감각한 것은 아닐까 싶다.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미제국주의에 의한 자본주의의 검은 그림자는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그 혜택과 결과가 모두에게 나눠질 수 있다면 더 없이 달콤하겠지만 캐나다의 경우처럼 서서히 사회복지와 사회 안전망의 부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필연성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더구나 우리는 사회 안전망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보다 불안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견해가 아니라, 세계화는 거대 자본에 의한 양극화의 심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현상들이 말해준다.

축구를 세계화와 관련지어 살펴보는 일은 아니러니하다. 우울한 세계화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스포츠, 특히 축구의 미래는 더 암울해 보인다. 저널리스트인 프랭클린 포어가 쓴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는 세계화의 관점에서 축구를 바라본다. 축구라는 경기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축구가 벌어지기 직전과 직후의 이야기들이다. 말하자면 구단의 운영과 자본의 힘들이 어떤 식으로 경기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발로 쓴 책이라는 점이다. 전세계를 돌면서 훌리건에서부터 구단 관계자들까지 직접 취재를 통해 현장감 높은 글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전해 준다. 축구에 관련된 책이라기 보다는 축구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화의 그늘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선수와의 인터뷰나 경기 결과와는 거리가 좀 멀어져 보인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목적으로 묶일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지만 이 책이 지닌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세르비아 서포터스의 민족주의를 보여주는 ‘갱스터들의 천국’을 비롯해서 셀틱과 레인저스의 종파 전쟁, 현대 유럽의 유대주의와 반유대주의, 영국의 훌리건과 브라질의 정치부패, 우크라이나 선수들 사이의 인종차별, 이탈리아의 검은 커넥션, 중동에서 축구가 갖는 의미를 적절한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축구를 중심축으로 전개하고 있는 내용들이 본질적으로 경기를 움직이는 제반요소들과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에 또 다른 시선으로 축구를 바라보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미국인이 저자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사족처럼 붙어있는 마지막 장이다. 미국은 슈퍼볼의 나라다. 다른 나라와 달리 상류계층의 스포츠로 인식된 축구가 미국의 문화와 충돌하면서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주관적인 아쉬움으로 보여주는 장은 이 책의 티가 된다. 자국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세계화를 논하는 미국인의 목소리를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나쁜 버릇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FC 바로셀로나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앞서 <축구의 역사>나 <축구의 문화사>에서도 살펴 보았으나 프랑코 군사 독재에 맞서 누 캄푸 경기장에 모인 카탈류냐인들의 열정이 전해졌다. 바르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팀에게 소수 민족의 한과 열정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유니폼에 상업광고를 거부하는 그들의 축구에 대한 자부심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문화와 정신적인 자유를 상징하는 바르샤의 전시장과 축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서 감동을 전해준다.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성없는 전쟁에 비유되는 축구가 총성과 직접 연결되는 사건들을 살펴보고 그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축구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정권을 창출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축구팬들 각자의 몫이다. 축구 경기에서 승리는 팬들의 기본적인 욕망이고 90분간 선수들이 보여주는 몸짓 하나 하나는 삶의 열정과 분노와 좌절, 환희와 기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 경기를 보다 재미있게 그리고 온몸으로 즐기기 위해서 축구 이외의 요소에 대해 눈감는 지혜보다 축구 너머에까지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떨까? 아는만큼 보이거나 모르는게 약이거나!

어쨌든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축구를 선택했다. 아니 축구도 결국 인류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관점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4년에 한 번 벌어지는 전세계인의 축제임에 틀림없는 월드컵이 ‘세계화’를 부르짖는 외침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실시한 지방의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 했다고 해서 ‘이민’이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축구는 계속 될 것이고 인류의 역사도 계속될 것이므로! 민노당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논리의 비약인 모든 주절거림조차도 더운 날씨 탓으로 돌리면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


06053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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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문학동네 시집 71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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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잎이 필 때 사랑했네

바람 불 때 사랑했네

물들 때 사랑했네

빈 가지, 언 손으로

사랑을 찾아

추운 허공을 헤맸네

내가 죽을 때까지

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그래서’는 앞뒤의 문장을 인과 관계로 연결할 때 사용하는 접속사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결과가 ‘당신’일 경우 독자는 당혹스럽다. 혹은 그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 ‘당신’을 지목한 경우에는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새 시집 <그래서 당신>의 표제작은 두 어휘의 사소한 부딪힘으로 상상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 위 시를 읽고나도 물론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논리적 관계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불거진 의미들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혹은 사랑의 고통에 대한 시인의 통찰을 단순하게 상상하기 쉽다. 쉽지 않다는 얘기는 당신과 사랑 사이의 의미다. 지금까지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강가에 서 있는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랑을 곁에 두고 허공을 헤맸다는 이야기인가 하면 영원히 찾지 못하다가 결국 강가에 나무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사랑과 당신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

또 하나, 이 시의 특징은 한 행이 한 연을 이루고 있는 긴 호흡이다. 한 연에서 다음 연으로 읽어나가는 동안 한 호흡을 가다듬고 한 행을 읽는다. 긴 세월의 흐름이나 오랜 기다림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시의 형식은 단순히 짧은 문장 구조 뿐만 아니라 내적 깊이와 의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차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음미하면서 읽어도 좋고 한줄 한줄 새겨 읽어도 좋겠다.

이렇게 이 시집의 대부분의 시들은 짧은 문장과 절제된 언어로 대상과 감정을 묶어 놓는다. 그 대상이라는 것이 다양하지 않고 선명한 데서 우리는 맑은 물과 같은 감동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시인의 삶이 곧 시가 된다고해서 시인의 삶을 경의롭게 바라보거나 강가의 초등학교 교사라는 외적 조건이 시의 의미를 규정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투명하고 정갈한 것만은 분명하다. 거기에는 자연과의 호흡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나무와 바람과 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흰 종이 위의 먹물이 번지듯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마음들을 읽어내는 능력의 탁월함이 김용택 시의 진경이다.


그리움

바람이 불면

내 가슴속에서는 소리가 납니다


문학 소년, 소녀 시절 한 번씩 연습장에 끄적여 보았을 ‘그리움’에 대한 그 무한한 상상력과 감수성들을 시인은 두 줄로 말한다. 바람이 불면 내 가슴속에서 소리를 내는 자연스러움과 긴 설명이 필요없는 공감대가 그것이다. ‘사랑’이라는 다음 시도 마찬가지다.


사랑

밤길을 달리는데
자동차 불빛 속으로 벌레들이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

필사적이다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벌레들의 맹목적 죽음은 자동차의 속도에 기인한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은 사랑을 부른다. 必死 - 반드시 죽겠다는 말이다. 목적도 없이 왜인줄도 모르고 목숨을 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외치는 벌레의 말없는 죽음들이 인간의 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추상적 관념에 대한 명확한 제시는 의미를 한정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보다 명확하게 시인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표현속에 도드라지는 생각이 낯설고 감각적이다. 하지만 그 감각이 선동적이거나 톤이 높지는 않다. 잔잔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들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이 시집의 장점이다.


화무십일홍

앞산

산벚꽃

다 졌네

화무십일홍, 우리네 삶 또한 저러하지요

저런 줄 알면서 우리들은 이럽니다

다 사람 일이지요

때로는 오래된 산길을 홀로 가는 것 같은 날이 있답니다

보고 잡네요

문득

고개 들어

꽃,

다 졌네


꽃이 다 질 때까지 누군가 문득 보고 싶은 것이다. 삶이다. 권불십호년權不十年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생의 덧없음을 빗대는 흔한 표현이다. 그래서 더 큰 울림을 가져온다. 오래된 산길을 홀로 걷듯이, 누군가 보고 싶은 날들이 있는 있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생은 지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삶’이라는 제목의 시를 겁?없이 네 줄로 마감한다. 하지만 우리들 생이 도달하기 힘든 경지에 서 있다. 이런 모습으로,



내가 가는 길에
눈길 닿을 티끌 하나
겁먹은 삭정이 하나
두지 마라



06060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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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포털 사이트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시인 추천 해 달라고 한 1인 들렸다 갑니다.ㅡ,.ㅡ
일단 안도현씨 하고 김용택씨 대표작 부터 쭈욱 한 번 훑어 볼라고욥. (원래는 추천해 주신 분들 시집 중 대표작들 다 사려고 보관까지 해 놨는데, 다른 책들의 유혹 또한 못이겨 그만..ㅡ_ㅡ;;)추천보단 땡쓰2가 더 좋겠죠?!..ㅋㅋ 그런데, 이런....본의 아니게 백수 수준에 걸맞는 보답만 해 드리고 가는 듯...-_-;; 그나저나 이 책 리뷰 중에 힘님 꺼 바로 아래 있는 분의 리뷰도 참 인상적이었다는. 그래서 그 차이에 더 땡겼다죠~~~~^3^ 사진 또한 시라죠.. 시집을 좀 읽고나면 한 때 전공했던 사진도 취미로나마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 해 보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시가 땡겼던 듯... 패션디자인과 사진... 둘 중 하나만이라도 잘하자 해서 사진과는 안녕했는데, 그 인연을 완전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 문득 힘님은 구름 겹이 드리워진 저 푸른 하늘을 사진에 담으면서 어떤 시상을 탐하려 했을까 라는 생각 또한 감히 해 보고 갑니다. 그럼, 이만. ^_-

sceptic 2008-08-18 21:09   좋아요 0 | URL
반갑네요...^^

사진 전공하셨으면 한 수 배울 기회를...만들어봐야겠는데요...

때로는 사람보다 하늘이 좋아서요...
 
피버 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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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축구만의 독특한 게임 방식이 나름의 특성과 재미를 전해 주기도 하고, 지루함과 답답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공 하나를 놓고 스물 두 명의 성인 남자들이 목숨을 건다. 축구의 룰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간단하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온 몸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골대 안에 집어넣으면 된다. 얼마나 단순하고 깔끔한 규칙인가. 전문 용어를 몰라도 전술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서로 뺐고 뺐으려는 일련의 충돌과 집착, 열정과 몰입이 보는 사람에게 전이된다. 축구를 전쟁에 비유하기도 하고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많은 스포츠가 세상사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축구만큼 인간의 전쟁과 닮은 경기는 없다. 영국에서 출발한 축구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인들에게 축구는 종교와 유사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특히 <비버 피치>의 저자 닉 혼비같은 열성 팬의 경우는 종교보다 축구가 우선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각 지역 연고팀과 끈끈한 유대관계 속에서 국가대표 팀보다 지역 연고 축구 클럽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훨씬 더 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처럼 보인다. 생활과 축구가 분리되지 않는 상태인 저자에게 객관적인 시선과 축구에 대한 다양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은 부질없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 닉 혼비는 말한다. 나만큼 축구 좋아하는 사람 있으며 나와 바라고. 없을 것 같다.

캠브리지 출신의 작가 닉혼비가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려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쉽게 말하면 닉 혼비는 축구에 미친 놈이다. 어느 분야든 매니아는 있게 마련이다. 정도가 다르고 몰입의 깊이가 다를 뿐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자기 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면을 가진 사람을 보면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그것은 돈과 명예와는 무관하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그걸로 해결되지 않는 나름의 독특한 즐거움을 찾아내고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것이 생의 즐거움이나 인생의 목적과 직결되기도 하니까. 닉 혼비는 인생과 축구가 혼연일체다. 그가 응원하는 아스날의 경기결과와 시즌 성적이 그의 생활과 인생과 기분을 좌우한다. 이 정도면 그에게 아스날은 축구 클럽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다.

닉 혼비는 스스로 말한다. 나는 강박증 환자라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치거나 바꿀 생각은 없다. 왜냐면 노력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미안할 뿐 노력하지 않는다. 축구가 그럴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독자들에게 설명하거나 유혹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축구 사랑과 자신의 인생을 축구 경기와 함께 풀어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축구를 한 번 보고 싶다. 특히 아스날의 경기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닉 혼비는 그저 축구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아니다, 진지하게는 아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작가인 닉 혼비의 재치있는 문장에 있다. 유머와 축구와의 결합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짙은 페이소스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 코미디다. 순간순간 자신이 얼마나 기뻤고 행복했는지, 아스날의 경기 결과에 따라 얼마나 불행하고 우울했는지를 저자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이 독자들에게는 더 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축구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분야와 치환해서 읽어도 감정이 이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닉 혼비에게는 그것이 모두 축구인 것이 문제다. 그것도 아스날이라는 축구 클럽의 경기 결과 하나 때문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에 보면 하루에 ‘몰입’하는 시간의 비율이 성공의 척도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닉 혼비처럼 ‘축구’에 완전히 ‘몰입’하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일까. 부인보다 축구를 선택하겠다는 수많은 영국 남자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월드컵 시즌의 ‘축구과부’를 위한 호텔 패키지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나라 영국에서도 특별히 축구이 ‘미친’ 저자의 책은 객관과 이성으로 축구를 접근하고 싶은 사람에게은 절대 읽지 말아야 한다.

결국 아스날의 홈구장인 ‘하이버리’ 근처로 이사하게 된 저자의 생활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 무언가 미치게 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닉 혼비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축구팬이다. 그간 벌어진 수많은 축구장 참사를 들먹이며 훌리건에 대한 사회정치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도 닉 혼비 앞에서 무기력 해 보인다. 경계를 규정 지을 수 없으나 약간의 폭력사태를 축구팬의 열정으로 축구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인정하면서도 죽음을 부른 일부 과격 훌리건들에 대해서는 분노와 차가운 비판을 서슴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퇴색하거나 부정적인 면으로 비쳐지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는 가장 순수한 아스날의 팬이며 축구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찬양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다.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만큼 우리에게 몰입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나이가 들면서 지정 좌석을 가진 시즌권을 끊는 등 몇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여전히아스날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축구장을 의미하는 ‘피치’와 열정을 의미하는 ‘피버’가 모여 <피버 피치>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우리들 인생에서 열병을 앓게 하는 무엇인가를 발견한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게 하는 책이다.


060605-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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