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 -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
김정욱 지음, 정재승 기획 / 해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학문과 지식의 대중화는 인쇄술이라는 혁명 이후에도 꾸준히 다른 방법을 찾아왔다. 축적된 지식과 정보들은 인류의 진보와 진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지만 일반인들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전문적인 학문 영역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고 연구자가 아니면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용어와 개념들로 가득하다. 심층적이고 복잡한 지식의 구조들은 보다 깊고 체계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하지만 학문의 외연이 넓어지고 전문 영역들간의 통섭이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현상들 속에서 대중은 외면된다. 무엇 무엇의 대중화는 때대로 유행처럼 번진다. 그것이 철학의 대중화든 수학의 대중화는 과학은 가장 어려운 영역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스테디셀러가 되어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과학의 중요성과 역할 그리고 일상에서 과학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정재승이 새로 기획한 책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는 멋진 제목의 책은 어른들을 위한 <과학콘서트>를 표방하고 있는 듯하다.

  스물일곱 명의 국내 과학자들이 주제별로 일반인을 위한 간단한 강좌를 열었다.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이것은 편집자의 오버에 불과하다.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에 의해 난제가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대의 정상과학이 밝혀낸 첨단 과학의 장면들을 화려하게 소개하고 그 한계와 미래의 전망을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 책이다.

  그래서 쉽게 ?와 !를 표지에 넣을 수 있는 주제는 하나도 없다. 이 책에서는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열띤 강의가 펼쳐진다. 우주, 자연, 생명, 과학, 인간 - 우리가 과학에 대해 궁금한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가지고 각 분야의 전문 과학자들이 전공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와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미래의 전망과 계획 그리고 가능성까지 짚어주고 있으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어렵지만 귀담아 들을 내용이 아주 많다.

  다만 스물일곱 명의 글쓰기가 고르지 못하다는 아쉬움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에서 만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전공 관련 용어들을 설명 없이 사용하거나 생소한 과학적 지식과 개념들을 그대로 노출시켜 이해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글들도 더러 섞여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상세하게 전달하려는 노력과 흔적들은 곳곳에 배어있다.

  익히 알고 있는 개념들이나 이제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제들도 있기 때문에 모두가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주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그 의미를 풀어주는 요령이다. 시각의 다양성은 어느 학문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학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뷔페같은 책이다. 겉핥기식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겠지만 주제별로 간단한 워밍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볼만한 책이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나 진화론의 문제, 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동물들의 예술 행위 같은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전하고 지식을 풀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과학 전문 저술가가 많이 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체로 외국인의 책을 번역하거나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풍부하고 다양한 독서는 어렵다.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아야한다. 진화론에 관한 책들을 좀 더 찾아 틈나는 대로 즐겨야겠다.

  우주와 인간 사이에 던진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책은 아니지만 ‘질문’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우리들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인문학적 지식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의 틀을 제공한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에만 1000억 개가 넘는 별들이 빛난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 그런 은하가 1000억 개 넘는다고 하니 밤하늘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1000억×1000억 개의 별이 존재하는 셈이다. 지구라는 조그마한 별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것은 순순히 상상력의 힘이다. 과학은 지식 이전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이다. 쿼크 단위의 미시 세계이든 우주와 같이 거대한 세계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점으로도 찍을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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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는 우유 배달부!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상상초월 동물생활백서
비투스 B. 드뢰셔 지음, 이영희 옮김 / 이마고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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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윈의 진화론은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의 가치체계와 과학적 질서의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과학의 발전과 진보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한 계단씩 올라섰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지식 체계와 세계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줄곧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기본적으로 개체 차원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어왔다. 반론이나 다른 차원의 이론이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동물행동 연구가들의 지속적인 연구 결과 자연선택은 개체 차원이 아니라 ‘집단선택’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비투스 B 되뢰셔의 <하이에나는 우유 배달부>라는 우스꽝스런 제목의 책은 최근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

  솔로몬 왕이 끼고 있던 반지를 돌리면 동물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제목을 가져와 <솔로몬 왕의 반지König Salomons Ring>라는 원제가 삽화가 곁들여져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책 표지나 편집 의도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과학 상식 백과의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어쩐지 가벼워 보인다. 흥미 위주의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조금 동떨어져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마케팅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저자의 수고로움은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수십 년 간 온몸으로 쓴 흔적과 노력들이 곳곳에 땀방울로 맺혀있다. 동물행동을 연구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지루하고 긴 인내력의 싸움이며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대화이다. 끊임없는 관찰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검토한 결과 하나의 패턴을 발견하고 원인과 결과를 이끌어 내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를 숙이는 과정이 연구 성과로 나타난다. 다른 과학 이론과 달리 동물행동 연구이론들은 그래서 모두 귀납적이며 가변적이다. 또 다른 행동을 보이는 개체가 나타날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 패턴을 완벽하게 관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서 발견한 어떤 결과보다도 긴 시간을 견디며 위험을 무릅쓴 과정들이 인상적이다.

  동물들의 언어능력, 결혼제도, 암컷의 지위, 자녀 양육법, 유희 본능, 영장류들의 인간적인 모습, 죽음에 대한 의식, 생존 전략, 사막 생존법, 겨울나기, 폭력성, 균형 메커니즘, 비밀 병기를 거쳐 조화로운 삶의 기술로 책을 맺고 있다.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며 긴 여행을 다녀 온 것처럼 나른하고 피로한 느낌이었다. 마치 책으로 보는 ‘동물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들을 다룰 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행동과 삶의 과정 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동물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거대한 망원렌즈처럼 보인다. 지구 곳곳에 위치한 동물들의 세계는 잘 짜여진 교향곡처럼 완벽하고 조화롭게 연주되고 있다.

  인간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동물들의 삶을 알아야겠다. 위험한 존재로서 자연을 파괴하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에게 자연을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서부터 그들의 공동체 생활의 지혜를 살펴보는 일은 마치 인류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커다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은 얼마나 위대하며 하찮은 존재인가 하는 극단적인 의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수십 년 간 동물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이 알지 못하는 동물의 세계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역할에 충실하다. 그 과정을 통해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 이 책의 내용이지만 단순한 보고서의 형식을 넘어선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이 독자들의 몫이다. 그것은 바로 솔로몬 왕의 지혜이다. 그 지혜의 원천이 바로 동물들의 세계라는 말이다. 개체 중심의 자연 선택이 아니라 집단선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하는 문제이다. 조화로운 삶을 이끌어내는 공동체적 삶의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결국 동물들에게, 자연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놓여 있었다고 읽는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의미로 읽든 결국 그것도 독자의 몫이겠다. 흥미 있는 자연과학 서적임에 틀림없는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동물들의 행동이 보여주는 의미는 사회학적,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로 끊임없이 그 외연이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 진정한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유통을 매고 배달에 나선 하이에나의 애교스런 표지보다 훨씬 진지하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인간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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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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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의 대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만큼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알아낸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들도 많고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한 것들도 많다. 인류 공헌의 측면에서 문명의 발달사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지식의 발견이나 깨달음의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되어 돌아온 과학의 발달과 발견들은 수없이 많다.

 로빈 베이커의 <정자 전쟁>은 생물학자가 쓴 인간의 문화사에 관한 보고서로 볼 수 있다. 특히 섹스와 관련된 인간의 거의 모든 상황과 유형들을 상황으로 설정하여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종족 보존’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인간’이라는 종의 성생활은 기막히게 동물적이다. 이런 종류의 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먼저 과학적 사실들이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허구와 상상이 아닌 실험과 관찰에 의한 사실들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두 번째로 저자의 글 솜씨이다. 아무리 연구를 많이 하고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로빈 베이커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연구 논문으로 도서관에 처박혀 몇몇 학자들에게나 인용되는 죽은(?) 지식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전하고 싶은 욕구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들을 이 책은 고루 갖추고 있다.

 학문적인 논문과 대중적인 저작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자 하는 노력은 때로 위험해 보인다. 딱딱하고 지루한 주제와 논리적인 귀결들은 수면제로 사용되거나 아예 팔리지 않는다. 한편 허구와 가상이 주가 되어 흥미 위주의 저널리즘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많은 학자들이 이 간격을 메우지 못하거나 시도하지 않는다. 학문의 거탑 안에 숨어 먼지를 마시며 죽어가거나 밖으로 뛰쳐나와 연예인 수준의 글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오래 공들여 쓴 책은 독자가 먼저 그 내공에 감탄한다. 모두 37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제시한다. 각 장들은 이렇게 독자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저자가 이 상황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철저하게 ‘종족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유전자 번식’을 위한 섹스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다. 예술과 외설의 논란을 교묘하게 비껴가고 있거나 한 복판을 걸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방법이다.

 십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은 사회 문화적 측면의 관심과 시선의 변화에 의해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시대를 조금 앞섰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민한 부분을, 선뜻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저널리스트가 아닌 학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연구하고 관찰해 온 사실들을 진지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용기가 인정받을 만하다.

 인간이 평생 살아가면서 2,000~3,000회의 섹스를 하면서 매번 수억 개의 정자를 쏟아내면서 왜 고작 7명 내외의 자녀밖에 두지 못하는가? 남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가 원하지 않으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패막이, 정자잡이, 난자잡이 정자가 있어 정말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가? 등 정말 궁금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과학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이 빚어내는 미시적인 과학의 세계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거리가 있기 때문에 동물행동학에 바탕을 두고 다른 포유류나 조류와 비교하면서 원인과 이유들을 살펴보고 있다.

 유전자가 원하는 것은 영속적이고 적극적인 종족의 보존과 번식이다. 이 하나의 분명한 원칙을 기준으로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남자와 여자의 행동으로 실현되는 과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가지 의문은 남아 있다. 피임과 강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인간의 모든 섹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과연 단 하나의 기준과 가능성만을 가지고 인간 행동의 패턴과 행동들을 읽어낼 수는 없다. 그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늘상 그렇지만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집중적이고 뚜렷한 하나의 주제를 폭넓게 이야기하는 신선한 관점의 책을 만나기도 어렵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전쟁’들에 관해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심리적 차이만큼 섹스의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차이를 보여준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종족 보존의 생존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정자들은 끊임없이 소리없는 전쟁을 치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대한 오래된 기억은 태어나면서부터 현실생활에서 반복된다. 그 아득한 경쟁의 본능을 일깨워 오늘도 삶의 전쟁터로 모두들 뛰어 나간다. 우리들의 자화상은 이미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전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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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비뫼 2007-03-2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여러 편 읽었습니다. 읽어볼까 아직 망설이고 있었죠. 님의 서평 잘 읽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

sceptic 2007-03-2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님 늘 과찬이시구요. 리뷰와 페이퍼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 안달고 계속 봐도 되죠?

은비뫼님 이 책은 네이버 북꼼 서평 도서라서 많이 보셨을겁니다. 생각보다 한번쯤 볼만하다고 권할 수 있습니다...즐거운 책읽기 하시기 바랍니다...^^

 
야구의 물리학
로버트 어데어 지음, 장석봉 옮김 / 한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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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은 아름답다. 그 몸의 우아한 동작도 아름답고 격렬한 움직임도 아름답다. 미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무용은 예술이 되었고 생존을 위한 동작들은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발전했다. 축제와 즐거움의 무대였던 고대 체육은 이제 자본과 결합되어 산업이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축구와 더불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스포츠가 야구일 것이다. 축구는 축구공과 선수 사이에 축구화 이외의 매개물이 없고 인간의 움직임이 주된 스포츠지만 야구는 수많은 장비의 발달과 공과 인간 사이의 배트라고 하는 또 다른 도구가 개입된다는 점에서 축구와 다르다.

모든 종목이 그렇겠지만 발달된 과학기술이 개입된 후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개별 종목들은 전문적인 분야로 발전하고 특별한 장비와 기술을 보유한 ‘선수’가 나타난다. 국가의 명예를 건 순수 아마추어 스포츠 제전이었던 올림픽은 옛말이 되었다. 프로화되 스포츠는 자본과 결합되어 총체적인 산업으로 발전했다. 미국에서 발달한 프로야구는 승부를 위한 각 개인과 팀들간의 무한 경쟁이 이루어졌고 팬들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보다 멀리 힘차게 공을 보내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리학이 과학에 개입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로버트 어데어의 <야구의 물리학>은 물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야구’이다. 공중을 날아오르는 야구공의 비행은 야구가 지닌 특별한 의미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가 타자가 배트를 이용해서 공을 친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회전방향과 공기 마찰에 따라 휘어지기도 하고 궤도를 수정하기도 한다. 배트의 반발계수와 바람의 세기에 따라 공의 비행거리는 달라진다. 수비는 낙하지점을 예상하고 달리고 받고 던진다. 단순해 보이는 이 과정들 속에 숨어 있는 물리학의 신비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복잡할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자가 야구에 손을 댔다.

수많은 데이타와 야구의 실제 상황을 결합해서 독자들에게 야구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상황들을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은 야구를 ‘보다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한 노력 이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현실에 적용되는 모든 응용물리학은 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야구를 좋아하는 저자와 메이저리그에서 일하는 지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런 힘든 짓을 하겠는가. 좋아하면 알게된다. 보다 더 잘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쓴 저자의 정성만은 감탄할 만하다.

우리나라도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20년이 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역 연고를 중심으로 생활속에서 야구를 즐기고 있다. 복잡한 규칙과 다양한 전술을 알고 즐기는 것은 야구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관심 없는 대상에 대한 앎은 무의미하다. 이 책은 야구팬을 위한 ‘야구 백배 즐기기’ 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각 장에서 ‘야구공의 비행, 배트의 스윙, 투구, 타격, 배트의 성질, 달리기, 수비, 던지기’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계산된 훈련과 다양한 작전들이 결합될 때 승리를 위한 각 팀들의 열정은 빛이 날 것이다. 각 장에서 저자는 야구의 원리를 물리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고 딱딱한 문장들은 어쩔 수가 없다. 야구의 역사 속에서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실제 자료들을 바탕으로 야구의 원리들을 이해하는 재미는 특별하다. 게다가 앞으로 우리가 즐길 야구라는 스포츠의 이면과 원리를 들여다보는 것은 야구팬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국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용되지 않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미국 프로야구에서나 가능한 책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관점에서 야구를 설명하는 책도 가능할 것 같다. 승리를 위한 각 팀들 간의 스토브 리그가 시작된 지금 봄과 함께 찾아올 프로야구를 기다리는 즐거움을 이 책을 통해 배가 시켜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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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2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고 갑니다. 야구에도 지체 없이 물리라는 놈이 관여를 하고 있네요. 좋은 하루되세요.

sceptic 2006-11-2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보급판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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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최저 점수의 기록을 갖고 있는 과목은 수학이 아니라 물리와 화학이다. 7차 교육과정으로 바뀌면서 인문계 학생들은 수능에서 과학 과목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지독하게 싫어했던 과학 과목들은 학문의 특수성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 탓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어 단어처럼 주기율표를 외워야한는 과목이외에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은 화학과목과 각종 공식과 법칙만을 달달 외워 숫자를 대입하며 수학처럼 시험 문제를 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지구과학은 돌맹이 이름만 외웠고 생물은 외울게 더 많았다. 과학은 내게 악몽이었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낳은 불행은 나 개인에게만 그친 것은 아닐 것이다.

뺨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과 겨울바다의 파도소리는 세상의 모든 인공적인 것들의 스승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규칙성들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다.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로 평가되는 리처드 파인만은 1961년부터 63년까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을 남겨 전 세계 물리학도들에게 찬사를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같은 무식쟁이도 재밌게 읽었으니까. 어렵고 딱딱할수록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완벽한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원자, 기초 물리학, 물리학과 다른 과학과의 관계, 에너지의 보존, 중력, 양자적 행동 등 6강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우리가 늘상 접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물질에 대한 혹은 물리학이라 이름 붙혀진 학문에 대한 거부감을 깨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깨달음을 준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최고의 베스트 셀러다. 과학을 콘서트에 비유해서 케빈 베이컨의 게임, 머피의 법칙, 잭슨 폴록, 프랙탈 음악, 금융공학, 교통의 물리학, 소음의 심리학, 크리스마스 물리학 등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재미있고 편안하게 나를 인도했다. 그러니 콘서트가 끝나고 어떻게 힘찬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젊은 물리학자의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실험실 안의 그래프와 숫자놀이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지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과학이란 마치 길 건너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반대편 가로등 아래서 열쇠를 찾고 있는 술 취한 사람과 흡사합니다. 가로등 아래에 빛이 있기 때문이죠.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미국의 깨어있는 지성 노암 촘스키의 말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나는 가로등 바로 밑에 떨어진 열쇠에 관심이라도 가져볼 생각이다. 시험 점수의 노예로부터 벗어난 지금 그것이 왜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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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0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시절 저는 문과 출신이라 과학은 잘 못했는데 이 두 책을 이번 년도에 읽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정말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괜히 어려운 것으로만 여겼던 기억들을 말끔히 없애주었지요. 과학이라는 놈이 생활과 많이 연관이 되어있다는 정재승 교수의 말에 너무나 많은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위에 소개되어 있던 책도 아주 재미있게 읽어고요.

sceptic 2006-11-0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과라서 학교 다닐때 화학과목에서 최저 점수 기록이 있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바로보니 과학적 사고가 꼭 필요하고 중요한 사실을 학교 다니면서는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