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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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몸은 어디에서 왔을까? 중요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질문이긴 하다. 생명 탄생의 기원은 아직도 신비로운 영역에 속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으로 21세기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하는 프랙탈 구조처럼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고 10개월 만에 한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몸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떤가?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지만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 능력,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사회를 보는 눈, 인생의 목표와 가치, 행복의 조건 등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생각해 보자. 내 생각은 과연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을까?

  사람이 태어나면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과 취향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근거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또래집단에서 친구에게, 학교에서 선후배나 선생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조금씩 형성된 사고의 틀은 내 생각의 좌표가 된다. 시나브로 만들어진 내 영혼의 주인은 누구인지 돌아보아야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이후 우리 사회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누구보다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는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적 동물,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 P. 16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바로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의 생각이다. 철학은 물론이고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등 각 학문 분야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을 모델로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사고의 패턴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택시 운전을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 심지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살 가능성이 95%라는 말에는 수술 동의서에 흔쾌히 서명하지만 100중에 5명이 죽는 수술이라고 말하면 그럴 수는 없다고 버티는 것이 불합리한 인간의 판단 능력이다. 생각의 오류를 지적해도 같은 패턴으로 실수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리면서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홍세화는 이 책에서 생각의 오류가 아니라 생각의 ‘좌표’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디를 보고 걷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해도 과정과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 매우 설득력있게 전달된다.

  에세이는 종횡무진 자유로운 글쓰기의 전형으로 알고 있지만 매우 어려운 글쓰기 방법이다. 짧은 글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명료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세화는 짧은 문장과 막힘없는 논리의 흐름으로 이야기하지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과격하고 흥분된 상태에서 어떤 말을 하든지 상대는 내용 이전에 형식에 반감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설득의 방법은 편안하고 쉬운 말로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편안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는 저자의 글쓰기는 읽는 사람의 생각을 조금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한 사람의 생각을 단 번에 뒤집는 것은 과격한 구호나 과장된 수사일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의 생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은 깊은 울림과 작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3개의 분야로 나뉘어져 있지만 편의상 구분일 뿐 하나의 흐름으로 쭉 읽어나가거나 마음에 드는 제목의 글을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도 좋은 책이다.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1부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네 가지 경로를 제시한다. ‘1) 폭넓은 독서 2) 열린 자세의 토론 3) 직접 견문 4) 성찰’이 그것이다.  이것은 물론 감성의 영역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을 말한다. 인간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 데 왜 책이 가장 중요한지 스페인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 있으니 함께 읽어보자.

“사람은 그때까지 읽은 책이다”라는 말이 있다. 스페인의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는 지극히 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감옥에 하나의 창이 나 있다. 놀랍게도 이 창은 모든 세계와 만나게 해준다. 바로 책이라는 이름의 창이다.” - P. 24

  모든 세계와 만나보지 않은 사람의 좁은 시야와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책이라는 이름의 창이 필요하다. 덧붙여 열린 자세의 토론과 직접 견문, 성찰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내가 보는 신문, 내가 읽은 책이 내 생각을 어떻게 바꿨는지 생각해보자. 보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비난하는 태도를 가진 적은 없는지 눈과 귀를 닫고 오로지 내 이야기만 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보자.

 이런 반성적 사고에 출발하면 삶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지고 사회를 보는 눈이 새로워질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돌아볼 수 있고, 이념의 대립이 아닌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토론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대화와 소통의 전제 조건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그리고 성찰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 내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이며,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떠한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 성숙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개인으로서 내세울 장점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속한 집단인 국가, 민족, 종교, 지역, 혈연, 출신 학교를 내세운다. - P. 131

  다른 어떤 문장보다도 아프게 다가온다. 자기 성숙을 모색하는 2010년을 위해 우리 모두 ‘생각의 좌표’를 점검해 보는 건 어떨까?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립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라면 저자의 말대로 ‘회색의 물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면 저자의 이 말을 기억하며 지금-여기 서 있는 나의 좌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인간 역사에 진보가 있었다면 그것은 정의, 상식, 공익, 진실이 힘을 획득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의, 상식, 공익, 진실을 추구하는 건강한 시민이라면 의지로 서로의 힘을 결집시켜야 하며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것을 우리는 ‘연대’라고 부른다. - P.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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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
정관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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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와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 어렸을 때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누군가에게 들었던 문장이다. 이 문장은 여전히 사용된다. 두 문장은 동일한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반 ‘밖에’와 반 ‘이나’는 주관적 판단이다. 객관적으로 반이 남아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전개된다.

  ‘밖에’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부정적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비판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물이 없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물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고민도 하고, 물이 줄어들지 않도록 절약하고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생각도 해야 한다.

  ‘이나’는 여유있고 행복하다.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라고 배웠다. 하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사고가 부족하고 단순하고 좁은 시야를 갖기 쉽다. 대책없이 낙천적인 태도가 가져올 위험은 부정적 사고보다 훨씬 심각하다.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없이 남은 물을 과신하다보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낭패를 당할 수가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고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밖에’와 ‘이나’가 만나 토론을 나눈다고 가정해 보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흔히 TV를 통해서 지켜보는 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담고 있는 정관용의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우리 사회의 대화와 토론 문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해온 저자는 참 할말이 많은 듯하다. 손석희라는 스타급 진행자에 가려 그 인지도나 인기 면에서 조금 떨어지지만 그의 중립적인 진행자의 자세와 진행 솜씨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책에는 손석희의 추천사가 붙어있다. ‘자아갈등을 넘어 소통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곧 나올지 모를 손석희의 토론 책도 기대한다.

  실제 가정이나 직장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전제,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가정은 얼마나 어려운가. 열린 마음이란 바로 이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사회에서 2차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똘레랑스’는 필요하다.

  똘레랑스는 대립하는 주장과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주장을 위해 서로 격렬하게 논쟁한 후 도저히 상대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지면 별수 없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논쟁으로 풀리지 않는 상대방의 확고한 의견이나 생각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똘레랑스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관용이다. - 하승우,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39페이지
 
  ‘토론’이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펼치면서 합의를 이루거나 공통의 이해 기반을 넓혀 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주 간단한 정의지만 토론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공통의 이해 기반을 넓혀가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토론은 지켜보는 사람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

  귀를 막고 자신이 준비해 온 이야기만 하는 토론자,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실수를 찾는데 혈안이 돼있는 시청자 그 누구도 ‘합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매체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시청률과 형평성에 목을 맨 토론 프로그램을 잊어야 진정한 토론이 시작된다. 그래서 저자는 방송토론을 잊으라고 주문한다. 왜 대한민국은 불통 공화국이 되었는지 짚어보고 적대적 공존관계에 빠진 한국 정치와 언론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소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관용이 제시하는 대안들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 될 것 같다. ‘회색지대’에서 미래를 찾자는 사례 한 가지라도 고민하며 들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여러 가지 방법론은 우리의 척박한 토론 문화에서 필요한 도구들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소통의 구조 안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의 틀 속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조금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보려는 인식의 힘보다 조금 더 많이 낮게 가슴을 열어야 한다. 공정한 말과 열린 가슴이 아니라면 토론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소통의 벽을 넘는 곳에서 사회의 발전은 시작된다고 믿는다. 볼테르의 말처럼 제발 이제는 최소한 ‘말할 권리’ 만이라도 갖고 살고 싶다. 어쩌면 소통과 토론은 그 다음의 문제다. 1차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주변을 돌아보자. 아니, 그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 볼테르(1694~1778)


0912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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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의 유혹 -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두 얼굴
스탠 콕스 지음, 추선영 옮김 / 난장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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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자동차 타지 않기를 실천해 옮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년에 세운 유일한 계획 중 하나는 자전거 많이 이용하기다. 직장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적당한 거리에 있는데도 자동차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순전히 게으름 탓이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이반 일리히의 말을 실천하려는 게 2010년의 계획이다. ‘책읽기는 실천이다, 지식은 실천이다’라고 외치면서도 지키지 못한 것들을 이제는 행동에 옮겨야 한다.

  스탠 콕스의 <녹색성장의 유혹>을 읽으면서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해 생각했다. 둘 이상이 모여 사는 모든 사회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권력 관계와 기득권에 관한 단상을 적어볼까 하다가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엉뚱한 생각의 흐름이지만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 문제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위대함에 비춰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오만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만일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높아진 에너지 효율성은 경제 확장에 기여해서 결국 더 많은 에너지 소비나 더 많은 탄소 배출로 이어진다는 제본스 패러독스Jevons Paradox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시도는 구시대적이고 무모한 산업 확장을 녹색 페인트와 첨단 기술로 포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

  과연 이것은 이념의 문제일까?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창한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 거품에 대한 저자의 경고는 단호하다. 바이오 연료, 태양전지, 원자력 에너지, ‘친환경’ 자동차, LED 전구를 아우르는 정부 주도의 계획들은 과연 제본스 패러독스를 극복할 수 있을까? ‘녹색성장’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녹색과 성장은 합쳐질 수 없는 바탕을 갖고 있다. 다만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눈감고 머리만 낙엽에 처박은 꿩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환경과 생태 문제는 이념과 무관한 듯 무관하지 않다.

  성장과 개발론자들이 ‘녹색’으로 포장하는 위장 전술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4대강 사업의 본질, 세종시 논란의 핵심은 자연이냐 인간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자. 이기적 욕망을 부정할 순 없지만 지역 이기주의와 국가 대계 그리고 환경과 개발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결국 적당한 타협과 포기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위로와 자책도 쏟아질 것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자. 환경 자체가 이념이 되어야 한다. 제본스 패러독스를 기억하자.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두 얼굴’이라는 부제는 낯설지 않다. 전 지구적 양아치적 행태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고 오로지 자본과 성장의 논리로 저개발국에 가하는 폭력(?) 수준의 기업 행태를 하루, 이틀 접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만 이런 현실이 어떻게 지속 가능하며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만이라고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공정무역이나 공정거래 커피, 공정 여행에 관한 인식이 점차 싹트고 있는 현실에서 병원산업이나 제약회사의 탐욕과 두 얼굴에 대해 직시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사들의 기득권과 제약회의의 약 팔기 권법 그리고 끊임없이 환자를 생산하고 불안 마케팅을 통해 병원과 약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현대인들의 관계는 암울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질병 부풀리기와 환자와 의사를 상대로 한 영업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생태를 고발한다.

  전체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제는 하나로 모아진다.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건강한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스스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하루의 생활을 돌아보자. ‘환경’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노력까지는 아니어도 더 많이 파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이 문제가 개인의 도덕에 의존할 문제는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선진국이 나서지 않는다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은 전세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0%를 내뿜고 있다. 건강한 지구인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문제로 귀결된 것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이유진(녹색연합 기후에너지 국장)의 칼럼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주일’이 목에 걸렸다.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쁜 생활인의 입장에서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곧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내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완고한 현실의 벽이 조금씩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것을 외면하고 개인적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조금 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이 결국 커다란 손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녹색은 성장과 한 이불을 덮을 수 없다. 아무리 유혹해도 녹색은 성장을 사랑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0912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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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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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선택의 십계

-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얼마 전 이웃 블로거를 만나 즐겁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통과 교감은 오래 된 친구를 찾은 것처럼 유쾌한 일이었다. 그가 다닌 학교의 ‘직업선택의 십계’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어 새삼스럽지 않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종교적 신념이나 특별한 삶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직업선택의 기준을 참고할 리 없다. 물론, 선언적 의미가 강하겠지만 지나온 내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엇을 배웠으며 어떻게 살았을까 때때로 돌아보지만,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웠노라고 미화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100년이 넘은 서울의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그가 생각하는 교육과 삶과 세상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책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얄팍한 지식 나부랭이를 배우러 가는 곳이 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완고한 대한민국의 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박재원과 윤지은이 번역하고 비상교육 공부연구소장 박재원이 해설을 붙여놓은 후쿠타 세이지의 <핀란드 교실혁명>을 읽었다. 읽는 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견고한 현실의 벽 때문이었다. 눈물이 날 뻔 했다.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울했다. 나의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치고 싶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이윤창출과 무한 경쟁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교육제도는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념의 문제도 정치적 논리도 이기적 욕망도 이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내 자식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태도와 고등학교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는 사회와 직업선택의 첫째 조건이 ‘돈’이어야 하는 미래에서 우리의 꿈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지난달에 수능이 끝나고 지난주에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들의 얼굴은 복잡해 보인다. 새학기가 되면 대학 이름과 합격생 수를 적어 현수막을 내건다.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은 특별히 학과와 이름까지 적어 따로 교문 위에 걸어둔다. 정든 교정을 떠나는 아이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에게 학교는 패배감과 두려움을 선물한다. 이름이 내걸리지 못한 모든 아이들은 좌절감을 맛본 채 스무 살의 봄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강요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현실이다. 무한 경쟁 체제인 대한민국의 교육은 1% 승리자를 위해 모든 시스템이 가동된다. 똑같은 머리, 똑같은 교복, 똑같은 공부, 똑같은 목표, 똑같은 생활, 똑같은 꿈!

시험을 향해 짜여진 교육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지에 대해 규칙을 정해버리기 때문에 교육의 본래 목적인 능력향상을 제한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되어버린다. - P. 22

“핀란드의 학교는 잘못하는 아이들을 끌어가긴 하지만 잘하는 아이들은 그냥 둡니다. 왜냐하면 잘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자율적으로 배우도록 키우면 아이들은 교사나 어른을 뛰어넘어 뻗어나간다. - P. 54

우수한 학생들을 따로 모아놓고 가르쳐야만 제대로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 주목해야 한다. - P. 55

다른 학생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수월성 교육이 아니라 동반 성장하는 수월성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핀란드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 P. 55


  진보적 교육 운동가의 해설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책을 집어 던져도 좋다. 하지만 사교육의 첨병에 서 있는 박재원의 문제제기와 후쿠타 세이지의 핀란드 교실 관찰은 우리에게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해서는 안된다. OECD회원국의 학력을 알아보기 위한 PISA의 통계를 보면 객관적 자료를 통해 각국의 학력과 핀란드 교육의 우수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썼겠지만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월성 교육 문제의 핵심에 놓인 특목고와 외고 사태, 교원평가의 본질과 방법, 대학입시 제도와 대학교육의 문제 그리고 교육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교육 전문가다. 저자가 핀란드 교육 현장을 통해 얻은 것과 해설을 쓴 사교육의 첨단에 서 있는 박재원의 단상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교육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충분히 꿈을 펼칠 수 있는 능력과 바른 인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수능 성적표 앞에서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할 말이 없어진다. 혁명이 주는 어감이 싫다면 혁신을 사용하라. 교육혁신은 교실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 핀란드의 모든 시스템을 받아들이자는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우리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0912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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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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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는 ‘cognize’이다. 인지하다, 인식하다는 의미를 가진 영어단어 ‘cognize’는 온라인에서 나의 지향점과 욕망을 드러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반영하는 사람들의 아이디는 첫인상을 좌우한다. 아이디를 통해 우리는 직업, 나이, 성격, 취미, 꿈 등을 유추할 수 있다. 나의 아이디는 어떤 대상, 즉 사물이나 사건, 상황을 인식한다는 뜻인데 단순하게 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다양한 관점,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는 그 자체로도 어렵지만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더욱 어렵다.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실제 상황, 즉 일상생활이나 업무, 대인관계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특별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오히려 독특한 사고 방식, 남들과 다른 인식체계로 인해 갈등을 유발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미덕을 해치게 된다. 자기 검열이 심해지거나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조용히 외면하기도 하고 나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는 타협을 시도하게 된다면 세상을 잘 살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

  더 위험한 것은 잘못된 생각의 함정에 빠져 신념이 되는 경우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여론 조사와 여야 합의에 의해 법제화된 세종시도 뜯어고칠 수 있으며 22조 5천억을 쏟아부어도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리겠다는 신념은 정말 무섭다. 우리는 누구나 인지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정태적인 집착으로 실책을 이끄는 사고의 틀은 이와 같이 완고하고 타협없는 밀어붙이기 정책을 양산한다. 독재자의 정보독점이나 정보회피는 개인이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스럽고 무서운 일이다.

  자카리 쇼어의 <생각의 함정 BLUNDER:Why Smart People Make Bad Decisions>은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선택’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결정 기준이 충돌한다. 저자 자카리 쇼어는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다른 심리학 책과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역사로 남아 있는 사건들의 판단 기저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최근 세계적인 분쟁 지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실수mistake는 부정확한 데이터로 인해 발생한 단순한 오류지만 실책blunder은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 전보다 시도한 후에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수가 아니라 실책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하지만 실수와 실책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이라고 믿었지만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실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우리는 모두 실수도 할 수 있고 실책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각기 다르다. 생각의 함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실책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저자는 선택과 판단의 순간에 범하기 쉬운 인지함정 일곱가지를 제시한다. 노출불안, 원인혼란, 평면적인 관점, 만병통치주의, 정보집착증, 거울이미지가 그것이다. 인지 함정은 토마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에서 설명됐던 판단과 선택의 착오와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한 착각이나 실수와 다른 신중하고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으로 변한다. 결과는 참혹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실수와 실책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인지함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 두 가지다. 상상력은 우리가 세계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를 수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이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 P. 103

  또한 저자는 인지함정의 원인을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으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갖춘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입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은 어떤 방법에 의해 가능할까?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문화적 경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정확한 상황 판단 능력 등이 요구되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정책 결정 과정이나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우 단순하게 전문적 지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견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대부분의 경우 지식의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이 아닐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실책들을 점검하고 또한 그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실책을 극복해 낸 역사적 사건들을 사례로 삼고 있다.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생각의 함정을 다루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언론법 개정, 4대강 사업, 세종시 추진, 이라크 재파병 문제의 결정과정이나 찬반의 논리들을 따져보자. 과연 인지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너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 P. 30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나의 기준과 생각을 정해놓고 틀에 맞추는 것은 아닌지, 항상 쉽고 명쾌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인지함정에 빠지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우리들의 ‘생각’에 있다.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바꿔보자. 아니 최소한 인지함정에 빠지지는 말자.


09111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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