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마당으로 풀어 쓴 선
심재룡 옮김 / 한국학술정보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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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붓다가 처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다음 그가 설했던 초기의 설법들은 원시불교의 내용을 이루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원시불교는 중국으로 티벳으로 한국으로 일본으로 산스크리트어로서 된 경전으로 전래되면서 새로운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중국에서는 이미 도교나 유교 등의 제자백가에 의한 깨달음과 수행을 일상화시킨 문화가 존재해왔고, 이러한 문화적 배경하에서 달마에 의해서 새롭게 부흥된 깨달음의 길인 선불교가 혁명적으로 제시되었다. 경전과 학문 공부에서부터 비롯된 불교공부가 '선'이라고 하는 활발자재하고도 직접적인 방법으로서 사람들에게 제시되었던 것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바위 틈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풀 한포기를 완전히 알게 되면 이 세상과 나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전체 속에 부분이 들어있고, 부분 속에도 전체가 들어 있다는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는 참된 진리가 현현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참된 진리가 현현해 있는 어떤 대상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선사들의 불교의 핵심을 묻는 대답도 천차만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뜰 앞의 잣나무" "마른 똥 막대기" "손가락을 치켜 드는 행동"이라든지 "할"하는 소리나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는 것"이라든지 "세계일화" 등 등 상식과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세계를 떠난 펄펄 살아 있는 선의 언어가 보여진다.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된 진리의 마음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의문 속에서 우리는 밤을 새워야 한다. 세상은 그대로 여여한 진리인데, 그러면 세상 그대로 의문이 필요없는 답만이 있는 세상인데 미혹한 우리들은 스스로 의문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어찌하겠나? 스스로 만든 의문을 스스로 없애는 수밖에...그것은 의문을 언어적 논리적으로 다루어본 다음에 더 이상 이런 방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방향을 바꾸게 되고 선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이다.

  선은 옛날에는 근기있고 재능이 있는 제자들을 선사가 알아보고 그들을 지도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또한 선사들은 매우 엄격하고 냉정하게 그들을 대했다. 따라서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자신의 본바탕을 보아내고 그들은 대담하고 파격적이고 힘있는 선을 토했다. 그만큼 선은 자신의 깨달음을 이루는데 절실했고, 또한 스승의 귀함도 알았기 때문에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힘으로 빨리 깨달음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선불교가 대중화되면서 예전과 같은 파격적이고 천지를 가르는 힘은 줄어들었다. 그만큼 부드럽고 쉽게 일반화된 선적인 이해가 보다 근기낮고 우둔한 대중들을 대상으로 자상하게 제시되고 있다. 덕분에 근기 낮고 어둔 내가 선의 자세한 가르침에 따라 조금씩 마음을 닦아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하근기의 내가 더디게 더디게 하는 공부에 큰 진전이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요즈음 요구되고 있는 선의 대중화에 따라 사람들이 예전에는 그저 자신의 복덕을 위한 불교에의 귀의나 시주, 믿음을 가졌던 것이 이젠 직접 부처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좌선과 명상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불교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위해서 '공안'을 주로 사용한다. 선사가 그의 제자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선의 도구로 상식을 초월하고 논리를 초월한 화두로서 제자의 마음 속에 큰 의문을 일으켜서 마음이 일어나는 에너지를 한 곳에 모아서 깊은 빈탕의 체험을 유도한다. 공안을 마음으로 녹혀내야 한다는 것은 바로 그 공안 앞에서 깨어있는 마음으로 마음없는 한 점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무르익었을 때 그 한 점의 마음조차 타파되고 공안은 풀리는 것이다.

  이제 언어적으로 이러한 선에 대한 이해가 되고 있는 나를 알게 된다. 따라서 공부의 방향이 지식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 속의 체험이다. 지식적 이해가 때로는 나의 참된 공부를 방해한다는 느낌도 들게 된다. 책을 들 때 그 책을 관통하여 내 마음의 상태를 짚어 보고 그 저자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계속 마음을 놓치 않고 매진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선의 나침반을 돌아서 세상에 다시 태어난 날이 나에게도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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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누아 > 정태춘, 박은옥-저 들에 불을 놓아


정태춘, 박은옥 - 저 들에 불을 놓아

저 들에 불을 놓아 그 연기 들판 가득히
낮은 논둑길 따라 번져가누나

노을도 없이 해는 서편 먼산 너머로 기울고
흩어진 지푸라기 작은 불꽃들이
매운 연기 속에 가물가물

눈물 자꾸 흘러 내리는 저 늙은 농부의 얼굴에
떨며 흔들리는 불꽃들이 춤을 추누나

초겨울 가랑비에 젖은 볏짚 낫으로 그러모아
마른 짚단에 성냥 그어 여기 저기 불 붙인다

연기만큼이나 안개가 들판 가득히 피어오르고
그 중 낮은 논배미 불꽃 당긴 짚더미
낫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뜨거운 짚단 불로 마지막 담배 붙여 물고
젖은 논바닥 깊이 그 뜨거운 낫을 꽂는다

어두워가는 안개 들판 너머
자욱한 연기 깔리는 그 너머

열나흘 둥근 달이 불끈 떠오르고
그 달빛이 고향 마을 비출 때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소작 논배미엔
짚 더미마다 훨 훨 불꽃 높이 솟아오른다
희뿌연 달빛 들판에 불기둥이 되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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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5-1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펌~ 감사합니다, 늘~

달팽이 2006-05-1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께 돌립니다. 감사..
그리고 늘 고맙습니다.
 
선이란 무엇인가?
스즈키 다이세쓰 지음, 이목 옮김 / 이론과실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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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즈끼 순류의 '선심초심'을 읽고 난 후 이 책의 이름을 접하고서 동명인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보니 서양세계에 선불교를 소개했던 교과서격인 스즈끼 다이세츠의 '선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희노애락을 타고 감각의 끝에서 그 선율을 타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우수에 젖고 사랑의 감정을 품고 하던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은 초심이었다. 그래서 다시 백지의 상태에서 내 마음의 선율의 첫 음을 잡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기쁨이 온전한 기쁨이도록...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의 느낌이 온전하고 더 넓은 사랑이도록...내가 느끼는 슬픔이 인생의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배움이 되도록....그러기 위해선 내 음악의 첫 선율을 타고 그 첫 음속으로 들어가 절대음을 느껴야 했다.

  그렇다면 선은 나에게 있어 내 삶 속에서 끄집어내야 할 무엇이었다. 다이세츠는 말한다. 될 수 있는 한 서양인들이 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자신의 삶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의문에서 그는 시작한다. 동양적인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이 낯설은 직관적인 마음을 어떻게 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불교를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그 배경을 이해하기 쉽게 이해하고 선의 의미와 공부방법을 보다 언어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그동안 읽은 책으로 이 책을 접하면 별로 새로울 것이 없고 감동이 덜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될 수 있는 한 그의 시대로 돌아가서 그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던 이유였다. 그러자 갑자기 나에게 초심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번역자의 티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좀 더 선적인 이해가 깊었더라면 좀 더 선적인 글들로서 내 마음 속의 의문을 자아내게 할 수 있었는데...언어의 길을 따라 한 길을 내고, 또 마음의 길을 따라 한 길을 내어 그 두 길을 합쳐놓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는 선생님의 서재에 들러서 구판인 '아홉마당으로 풀어쓴 선'이라는 책을 다시 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심재룡 교수는 자신의 평생의 공부로 불교와 철학에 대한 기본 배경을 바탕으로 풀어낸 점이 내 마음을 끌었다. 따라서 번역은 또 다른 저서다.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새로운 창조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도구적 역할에 머물 뿐이기 때문이다.

  6조 혜능 이후로 선불교는 능엄경에서 금강경으로 소의경전이 바뀐다. 쉽게 얘기하고 치열하게 실천하는 선이 대중불교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잡다하고 심오한 불교 경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일자무식의 농부나 아낙이라도 마음으로 직접 부처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때부터 선불교는 경전과 이별하여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공부가 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마음공부의 주된 흐름과도 일치한다고 생각된다. 이제 굳이 승려가 되지 않아도 재가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직접 보아 깨달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공부가 수월하거나 대충대충 할 수 있다는 말은 터럭만큼도 맞지 않다.

  어느 스님의 말이었던가? '불교란 어느 무지랭이 농부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그 한 생각을 잊은 것이다."라고 했다. 일체의 사회적 지위와 학식과 사고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보아 그 한 마음을 잊는 것이라고 했다. 일자무식의 혜능 스님이 제 6대 조사가 되면서 선의 황금시대가 도래한 것은 현대의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있는 그 자리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것이 내 앞에 주어진 길이 아닌가 하고...

  '선이란 무엇인가?' 의문은 공부의 시작이다. 문제는 이 의문과 내가 어떤 화학적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생성물을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의문의 문을 지나 그 의문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넣는 노력들이 나에게 필요하다. 의문에서 온갖 논리적인 사고를 굴린 것은 이미 오래전...이제 마음의 방향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던가? 의문을 가지고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의문 그 자체를 녹여서 답으로 만들어내는 것....모르는 그 마음을 아는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금술이요 신비 상자이다.

  그것은 우리의 자아로부터 비롯된 생각들과 감정들을 보다 큰 대아의 생각과 감정으로 바꾸어내고 나에 갇혀 있는 생각을 해방시켜 너와 우주로 뻗어가게 만든다. 내가 나이면서 동시에 전체 존재일 때 세상의 모든 일들은 완벽하고 손하나 댈 것없는 그대로의 우아한 우주가 된다. 그 우아한 우주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으로 가슴이 떨리고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 스산하게 내리는 비가 멎고 청명해진 하늘 위로 기분좋은 구름이 둥실 떠간다. 내 인생의 꿈도 그 위에 실리어 둥실 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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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숲속 부는바람

선율되어 가슴가득

까마귀의 긴긴울음

봄날더욱 쓸쓸한데

흐린구름 세찬바람

깊어지고 굵어지고

두두두둑 쏟아지는

예상불허 봄의눈물

바람더욱 거세지고

시린가슴 옷여미네

가슴속에 가득담긴

봄의산빛 변해가네

잿빛으로 회색으로

밝은봄빛 퇴색되네

차를돌려 벗의집에

술한잔과 안주한점

풍경소리 그윽하고

머얼리서 들려오는

관음보살 봄의설법

마음속의 없는한점

소리없이 불밝히네

속절없던 인생의꿈

안개처럼 흩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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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5-10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숲속을 걸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숲속에
바람이 불자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우선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뒤이어 나무는 팔을 뻗어 손을 흔들어대고..
땅 위에 구르는 돌들은 나의 발등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몰래 숨어있던 까마귀 울어 나를 깜짝 놀래킨다.
아니 숲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있어왔다.
온갖 표정과 소리로 우리들의 발걸음을 맞아왔다.
숲을 벗어나자 이젠 구름이 눈짓한다.
오랫동안 구름 뒤에서 숨어있었던 빗방울도 봄나들이에 기뻐한다.
바람은 신이나서 더욱 흥겹게 춤을추고
만물은 그 웅성거림을 더해간다.
왜 나는 쓸쓸해야만 하는가?
마음을 열자..
세상에 즐겁지 않은 것은 없지 않은가?

비자림 2006-05-1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천사 가서 원성 스님 엽서랑 방석동자 사 왔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들 방석동자 갖고 한 10여 분 자동차처럼 놀고 있네요. 벌써 얼굴이 시커매진 방석동자..
근데 우리 아들들에게 시달린 방석동자가 더 즐거워 보였어요.

비자림 2006-05-1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것 같아 댓글을 다시 써요.)
3,4월에 제 방 다락방에도 자주 청승맞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 저는 음악으로 달랬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주도의 비자림, 그 안의 부드럽고 맑은 공기를 보내 드리고 싶네요.

달팽이 2006-05-13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의 비자림의 스산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 속을 거닐던 기억이 납니다.
천년된 비자나무이던가요? 거기서 돌아나오면서 돌담길에 수북히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올 때 마음 속의 서늘함과 고요함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클릭하면 꽃이 피네..

 



까만 바탕을 마우스로 클릭해보세요
클릭하는 데로 꽃이 마구 생겨납니다.
기분 좋아짐 ^^

클릭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도 아니었던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모두 꽃이었던거야~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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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5-0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을 주는 화면이군요. _()_

달팽이 2006-05-08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아침 혜덕화님으로부터 행복이란 말을 들어서 좋군요.. _()_

해콩 2006-05-0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뻐요.. 펌~

달팽이 2006-05-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께...예쁨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