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상담소 -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철학자들의 카운슬링
루 매리노프 지음, 김익희 옮김 / 북로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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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한 철학도가 있다. 머리는 덥수룩하게 길러서 아무렇게나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굴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옷은 편한 느낌이다 못해 조금은 예의없고 건방져보이기까지 하다. 시선은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촛점이 없다. 때로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땅에 고개를 박은 채 오랫동안 가만히 있기도 한다. 괜히 말을 잘못 걸었다간 인생의 골치아픈 개념들의 폭탄세례를 맞아야할 것 같아 두렵다. 왜 철학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고리타분하고 생활에 아무런 도움되지 않는 문제들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책을 만나야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책 표지 사진에는 많은 동그란 것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책을 눈 가까이 가져가고서야 그것이 아스피린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철학이 우리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배아프면 즉시 통증을 없애주는 아스피린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만 해도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는 침을 맞는 것 처럼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철학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가 있어왔고, 물론 그 책임의 일부는 철학자들에게 있음을 저자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으로 볼것인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우리가 느끼는 문제의 대부분은 객관적인 상황의 문제(병이 있으면 병원에서 치료하면 되고, 정신병이 있으면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된다)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자기의 인식이나 스스로의 자신에 대한 정당성 부여의 부족이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책감이나 괴로움일 수가 많다. 그래서 의무론, 목적론, 종교윤리학, 객관주의적 윤리학, 프리마파시 의무론, 사회생물학, 타자 중심의 윤리학, 불교 윤리학, 법적 도덕론, 메타 윤리적 상대주의의 열한 가지 이론으로서 각 각의 장, 단점을 통해 개개인에게 필요한 처방을 내려야 하고 거기에서 철학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이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거나 타 종교를 종교로 가진다고 해도 때로는 삶의 문제들이 구체적인 해결 방법과 그 자신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철학적 근거를 따로 가질 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입장에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목적론적 입장에서, 의무론적 입장에서, 객관주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처한 생활 상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때에 따라서 이 문제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비록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죽음을 스스로의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하거나, 죽을 병이라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생의 의지를 스스로가 내어서 죽음에 맞서 싸우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어떤 병원에서 암 말기 진단으로 수술이 필요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병원 진단을 바탕으로 자신의 죽음을 확정짓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생활하고만 있다. 이런 경우 철학은 우선, 그 병이 말기암의 죽을 병이 확실한가? 둘째, 말기 암이라도 수술도 필요없는가? 아니면 수술에 의해 삶을 연장하거나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가? 셋째,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물음으로써 감정적으로만 반응하던 그가 자신을 보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파악하게 됨으로써 죽음을 보다 잘 준비할 수 있게 한다.

결국 모든 철학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내면적 판단을 어떻게 내리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살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이끌 것인가가 우리들의 내적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각자가 자신의 길을 홀로 걷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 책도 역시 철학이 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가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 우리들의 영혼의 존재와 진리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우리들이 중요시여기고 의존해온 삶의 가치가 변해야 하는 문제이고 그것은 참된 진리가 무엇이고 우리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에 파생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생활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삶의 궁극적인 문제로 에너지를 모아갈 때 비로소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된다면 철학은 단순히 배아픔을 치료해주는 아스피린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구명보트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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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가옵니당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잘 하고 싶은 비자림 올림^^

달팽이 2006-08-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고 계신 비자림님께 안부여쭙니다.
 
대학생 글쓰기 특강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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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논쟁거리를 다루고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단순한 논리적 대립을 넘어 차마 입에 담지못할 욕설과 비난으로 가득찬 댓글들을 보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들의 생각과 의식에 관심을 가진 위정자가 이런 글들을 보게 되면 그야말로 수준낮고 감정으로만 상황에 반응하는 우매한 대중이라고 생각할런지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문 댓글이 무분별한 비판과 비논리적 감정싸움으로 이어질 때 내가 이 뻘밭에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이라고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부부가 싸울 때, 형제끼리 싸울 때, 부모와 다툴 때, 유심히 한 번 들여다보라. 과연 그들이 정말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지.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애초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싸움을 만들어낸다. 한쪽에서는 별 생각도 없이 던진 말이 날아가는 도중에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가슴을 찌르면 상대방은 더욱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예전에는 말이 사람들 사이의 주된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였다면 인터넷 시대에는 글쓰기가 그 매체가 되고 있다. 휴대 전화도 길지는 않지만 서로간의 간단한 정보와 사실을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매체가 되고 있다. 글쓰기는 말하기와는 차이가 있다. 말하기는 일회성으로 허공으로 흩어져버리지만(물론 문제가 된 말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이 글로써 표현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누구에 의해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무한 복사와 전파의 특성을 감안할 때 글쓰기는 더욱 신중하고 상대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사용하는 글쓰기는 말하기의 천박함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에 있어서나 사회적인 사안에 대한 생각의 교류에 있어서나 그 밖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 전반에서 글쓰기는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기도 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책읽기의 붐이 사회적으로 분지도 벌써 몇 년이 되어간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디에서건 책읽는 분위기는 어느 정도 정착되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책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구할 수 있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도서관의 수가 많아지고 신간서적들을 정기적으로 충원하고 있는 실정이니 책읽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책읽기는 타인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거나 타인의 어떤 분야에 대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읽는 행위가 새로운 사고능력과 창의성, 상상력을 개발하게 해주고 독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독서를 하면서 생기는 단편적인 생각과 어떤 발상들은 대체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책을 덮는 순간 허물어져버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전체적으로 구상해보고 창조력과 상상력을 발휘한 사유의 모델들을 정리하기 위해 글쓰기는 중요하다. 글쓰기야말로 책읽기의 완성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서도 논술이라는 이름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며 입시에서의 비중은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학 교수인 저자가 학생들의 글을 접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공간을 마련할 필요를 느꼈다. 이미 인문학에서 학문적 영역을 가로지르는 글쓰기로 유명하고 또 시원하면서도 날카로운 관점으로 사회현상에 대한 명쾌한 설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그의 글쓰기는 모두에서 '사회과학적 글쓰기'라고 밝히고 있다. 즉, 주로 논쟁문제에 대한 글쓰기 중심으로 책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논쟁문제는 서로 대립되는 두 시각이 있고,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으나, 한 쪽의 선택에 의해 그 사회적 영향이 큰 사회적 문제를 말한다. 대립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논점을 뚜렷이 하는 것이 필요한 까닭에 극단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글들이 많이 보이게 되고 이러한 점이 일반 대중들에게 소화되면서 논리적 요소는 사라지고 감정적인, 또는 자신의 지위나 입지에 서 있는 견해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글쓰기가 화해하지 못하고 싸움을 위한 싸움으로 전락하게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개념의 정확성이나 논리전개시 따르는 오류를 피하는 것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것과 될 수 있으면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면서도 조화로운 관점에서 결론을 유도할 것 등을 배워야 한다. 적어도 사회과학적 글쓰기로서는 아직 저자만큼 해박하고 명쾌한 글쓰기 책을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스스로가 충분히 글쓰기에 능하고 많은 저서를 써내려간 자신의 경험이 충분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강단에서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한 경험까지 이 책에 그대로 살아 있다.

물론 글쓰기엔 사회과학적 글쓰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영역의 글쓰기도 있을 것이다. 철학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 나아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묻고 답을 찾는 종교적, 영성적 글쓰기도 있다. 그래서 모든 글을 이 잣대로만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절감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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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추천하고 갑니다.^^

달팽이 2006-08-0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

파란여우 2006-08-0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의 즐거움> 사 놓고 그냥 있습니다.
인터넷 용어나 은어 비속어로 도배하는 글쓰기가 정말 많습니다.
이건 글쓰기로 볼 수 없고요, 일종의 허접한 의미없는 배설일뿐입니다.
글쓰는 일에 전문 작가가 아닌 한 특별히 무게 잡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 날림으로 장난질하듯이 쓰는 글쓰기는 지양해야죠.
네, 저도 가끔 그 짓을 합니다만..--;;

달팽이 2006-08-0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 저도 반성합니다.
때로는 이 짓도 지적 배설(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일수도...)인것을...
 
뜻으로 읽는 한국어사전 이어령 라이브러리 8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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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을 읽는 중 작은 마을 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글을 어떤 식으로 쓰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바로 읽어나갔다. 언어의 대가답게 테마를 잡는 것에서부터 그 말의 어원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말을 뒤집어보고 반대되는 상황에서의 예를 들어보고  이것 저것을 건드리면서도 글이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선명한 궤적을 내고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짧은 글 하나가 치밀하게 구성된 하지만 전혀 인위적이지 않은 하나의 작품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데에도 이런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구나! 글의 천재, 언어의 천재라고 불리우는 이어령 선생님도 그 말 뒤에 보이지 않는 이토록 많은 자료 조사와 꼼꼼한 구성과 노력들이 있었구나! 글의 구석구석에서 그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아! 타고난 작가는 없구나. 비록 적성과 재능을 타고났다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노력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글쓰기의 재능과 기법을 떠나 그의 글에 대한 정성과 마음을 먼저 배워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 중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쓰는 말도 있고, 그 말이 변하고 변해 처음 쓰이던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말도 있다. 이런 말들을 그 말의 어원과 국어에 대한 바른 의미를 통해서 보다 깊은 의미를 도출해내고 우리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도록 지혜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그토록 탁월하나니...두 세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 선생님이 조사하고 정리하였을 많은 자료들과 그것을 구성해서 어떤 체계를 만들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진다. 그 동안 내가 너무 함부로 써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낱말 하나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정확한 의미와 그 사용법을 익혀서 쓰는 선생님의 자세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생님처럼 정확히 또 깊이 이해하지는 몰라도 조금씩이라도 노력은 하고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이 이렇게 빈틈없이 그리고 잘 된 글을 사용하는 분을 글을 통해서나마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 글을 읽고 감동하는 독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말의 의미에 따른 사용에서 보여지는 상반되고 이중적인 해석은 우리들이 존재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선생님이 스스로 말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영원한 모성을 꿈꾸게 하였고 그것을 생물학적인 의미를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어머니란 꿈과 이상으로 승화시켰음이 그것을 말해준다. 존재의 빈탕같은 탯줄의 언어로써 말 속에서 존재의 진실을 찾고자 했던 그의 의문이 삶을 더욱 깊게 하였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선생님의 책을 좀 더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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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이후 빨랫감 - 깨달음, 그 뒤의 이야기들
잭 콘필드 지음, 이균형 옮김 / 한문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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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특정한 종교가 없든지. 그것을 영성이라 하든지, 아니면 삶의 의미와 전체적인 삶의 성숙을 원한다는 사람들은 결국 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형식적으로 수행이라든지 기도라든지 믿음을 가진다라던지 하는 모습은 달라도 말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성숙도와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긋나버린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얘기조차 하지 못한다면 미숙한 우리들은 과연 어느 곳으로 가야할 것인가? 하고 방황으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깨달음 전과 이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깨달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과 신비체험이나 유체이탈, 트랜스, 접신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실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각 종교의 차이와 심리학적인 또는 미신적인 또는 비과학적인 현상들은 제각각 다르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의 같은 경험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런 체험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방향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생의 특별한 경험과 체험을 통하여 삶의 의미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도 이런 관점에서 다양하게 접근해가고 있다.

깨달음은 내가 자아라는 것으로 구성되었다는 관념이 타파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자아라고 부르는 내가 있다는 환상이 깨지고 내가 전 우주적 존재와 일치되는 체험들을 말한다. 그것을 무아의 경험이라고도 하고 본성으로의 회귀라고도 하며 도니 신의 은총이니 등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지금 여기'로 아주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이 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 우선 그것은 깨달음의 과정이 일시적이거나 외부적이고 우연적인 것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내적 수련 과정을 거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깨달음 이후라고 캔필드가 말한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영적 지도자들은 최초의 견성 이후에도 여전히 두려움, 혼란, 영적 태도의 상실, 서투른 행위 등이 한동안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고 캔필드는 적고 있다. 물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깨달은 것에도 과정이 있었고,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을 보면 90도 180도 270도 360도 수준의 깨달음이 있다. 하지만 그 각각의 깨달음은 천차만별의 차이이며 오로지 완전하고도 흠없는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온 종교와 영성을 뭉뚱그려 놓은 이 책은 그 점을 간과했다. 한 명상지도자의 말을 인용해보자.

"카톨릭과 불교 사원에서 여러 해를 지내고 나서 혼자서 장기간 흔거 수행을 하던 중에 설명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나는 신께서 나 자신보다 더 가까이 계시는 것을 보았다. 신은 광활한 대양과 같았고, 나 자신으로 익히 경험해온 모든 것은 한갓 얇은 막에 불과했다. 그것은 실체도 없이 수면에 떠다니다가는 사라져버렸다....... 이와 같은 깨달음과 함께 온 지복과 성스러운 열림이 몇 달 후에 지나가버리고 나자, 나는 깊은 무기력감과 두려움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지옥기간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 청소부 일을 했다. 나는 후두염과 천식을 앓았다. 끝없는 내면의 고통과 상실감이 나를 절망감에 빠뜨려 놓아서, 나는 겉으로는 정상인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거의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한 라마승의 회고도 들어보자

"집으로 돌아오자 인도와 티베트에서 보낸 12년의 경험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서구의 가족과 일터로 돌아와서 겪는 문화적 충격 속에서 그 초월적인 경험들의 기억과 가치는 가물가물한 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낡은 습관들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 돌아왔다. 나는 짜증이 나고 혼란스러워졌다. 몸을 돌보지 않고, 돈과 애인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상태가 나쁠 때는 내가 배운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 것이 아닌가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지나간 깨달음의 기억 속에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영적 수행이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그것임이 분명했다. 그밖의 모든 것은 환상이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도 옛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분노가 일때가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빨랫감들은 겉모습과는 달리 아주 다른 차원의 것이다. 명상지도자의 체험은 자신이 아마 처음 체험한 영적인 경험이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체화된 경험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라마승의 이야기는 자신의 12년의 수행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진 현실에서 바로 적응할 힘을 갖추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육화된 깨달음이 되지 못한 것은 그의  내적인 수행의 문제일수도 있다. 하지만 달라이라마의 분노는 ,물론 금방 자비와 연민으로 바뀌었지만, 자아에서 비롯된 분노가 아니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민족과 동포의 고통에 대한 연민에서 나온 분노...

물론 궁극적인 깨달음이 있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모든 수행자와 종교지도자들 역시 깨달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인지도 모른다. 깨달은 자가 이르는 곳은 "지금 이 곳"이다.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 모두가 지켜야 하는 자리도 바로 여기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어떠한가? 머리를 굴리는가? 모를뿐인 마음으로 돌아가는가?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사는 것인가? 이 말에 대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다른 마음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외부의 완전성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내부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나는 이것이 외도와 정도를 구분하게 하는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자신의 믿음과 공부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게 만드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스승의 조언이나 도움도 값매길 수 없는 은혜이지만 자신 스스로의 탐색과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모습으로 권위로 맹목적 믿음으로 가면 스승도 필요하고 종교적 형식도 필요하고 그러다보면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결국 얻을 것이 없다. 바로 그런 생각이 자신의 공부를 그르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책도 빨랫감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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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7-3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가에 놓고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는 책이지만
달팽이님이 이리 성찰 깊게 써 주시니 읽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책이 주인을 잘 만난것 같아 안심입니다^^

달팽이 2006-07-3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을 인연으로 만났던 책이 그래도 더운 여름날을
마냥 더위 속에 허덕이지 않게 해줍니다.
고맙습니다.

어둔이 2006-07-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달음이후의 빨랫감은 다림질을 해야하고
다림질을 한 옷은 멋나게 입어야죠. 입고나서 더러워지면
또 빨아야하고 계절바뀌면 바꿔입어야죠. 근데 그옷을 누가 빨고 다리고 누가 입죠?

하루입어난땀냄새
벗어빨기잦은여름
손수비벼세탁한옷
햇살내음말려보네
새날되면입으려나
 
절, 그 언저리 - 김지하 수묵시화첩
김지하 지음 / 창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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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 그가 먹을 간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면서 가슴끓는 분노와 열정을 젊은 피로써 써내던 펜을 놓고서 그가 먹을 간다. 민중운동의 밑불을 지피기 위해 분신했던 열사를 향해 생명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외쳤던 그가 이젠 인적 없는 어느 산중에서 댓잎에 바람스치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먹을 간다. 60인생을 훌쩍 넘기고서 다채롭고 치열했던 그의 삶을 단순화시켜 흑과 백 속에 자신을 담아내려고 그가 먹을 간다.


도덕경에 보면 玄은 ‘玄牝之門’이란 말에서 모든 만물이 생겨나는 암컷의 문이란 뜻으로 쓰인다. 만물이 생겨나는 자궁의 의미를 가진다. 자궁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나오고 다시 입 속으로 모든 생명체들이 그 생명을 다하고 들어간다.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이를 ‘가물하다’라고 해서 해지고 어두워질 무렵의 어둑한 상황을 표현하였다. 가물가물한 그 곳에서 만물이 태동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호인 다석(많은 밤)에도 그런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 현은 하얀 종이 위에 세상의 만물을 그려낸다. 눈 쌓인 초봄의 추위를 뚫고 매화를 피우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난초를 자라게도 한다. 또한 그런 자연 속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빛을 드러내는 선사들을 빚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예전에 정열을 바쳤던 그런 세상은 찾을 수가 없다. 번잡하고 치열했던 그의 저항과 투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젠 그 일들을 후학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스스로의 생명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일까?


평화로운 듯 때로는 무표정한 듯 앉아 있는 승려의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마음에선 시퍼런 칼날들이 서로 부딪히며 불꽃을 터뜨리고 있다. 달조차도 날카로워 첩첩의 산등성이를 베어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을 찾기 위한 구도의 치열한 과정이 그의 마음에서 손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치열한 전장을 지나서 비로소 다다른 고향집에 핀 매화꽃이 아닌가?


그 매화 꽃 위로 한 점 봄나비되어 그는 나풀거리고 있다. 환상같은 인생의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 낮을 지나 차가운 바람이는 들녘의 저녁을 지나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칠흑같은 밤을 꼬박 새우고서야 다다른 또 다른 새벽에서 그는 몸의 무게를 잊어버린 듯 가볍게 이 꽃잎에서 저 꽃잎으로 훨~훨 날아다닌다. 그렇게 놀다가 다시 해질 무렵이 되면 빈 하늘 속으로 멀어져 한 점 되었다가 사라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절 언저리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을까? 산으로 난 숲길을 따라 그를 뒤밟아본다. 산의 푸르른 신록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콸콸하는 계곡 물소리가 눈 앞을 가로막고 선다.


꽃 禪院


추사가 썼다는

世界日花 祖宗六葉

낮은 문 좌우에


영산홍 한 그루

자산홍 또 한 그루

선원 마당에 맞절하네


내 왼쪽 분홍빛 뺨과

네 오른쪽 자줏빛 볼이


서로 웃음지어

맞부비어

山紅參禪 내리 하는 곳


육백년 古梅와

곁에 선 매화자손들 줄줄이

寒梅參禪하는 그 자리


호남 제일

꽃 선원


미소

꽃드는

자리,


오오

花史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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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7-2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도, 달팽이님의 리뷰 제목도 마음을 두드립니다.
玄의 먹이라니!^^

달팽이 2006-07-29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나쁜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FTA에서도 아마 긍정적인 면이 있을 것입니다.
님의 마음 속에 그것을 수용할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