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부친 편지
경봉 스님 외 지음, 정성욱 엮음, 명정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매미 울음 소리가 무수한 깨알같은 소리들로 집안을 가득채운다.

인도에서 선물로 사온 CD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깨우며 누운 아침이 고요하다.

창을 타고 거센 바람 한 줄기 두 줄기 가을을 실어나르고 책을 펼치고 앉아 풍경 사진을 음미한다.

한편 시같은 주옥같은 삶의 화두를 담은 선사들의 편지가 눈에 들어선다.

하얀 여백 위에 놓인 글들이 모두 풍경속으로 천천히 녹아 사라진다.

내 지나온 짧지만은 않은 삶을 돌아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공기처럼 잡을 수 없이 덧없고,

내 알 수 없는 앞날을 내다보매 푸른 하늘 어디엔가에서 구름이 형성되어 어느 방향으로 흐르다 흩어질지 종잡을 수 없다.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앞에 두고 난 너무 일상적이고 속물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보다 절실한 삶, 그 앞에서 난 언제쯤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까?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문의 살과 그 가운데 쯤에 놓여진 문고리 하나

내 마음 속의 문고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야반 삼경에 빗장문을 만져보거라 했던

선사님의 말도 그것을 말한다.

 

선사들의 편지는 모두 한 길로 통하는데

그 길위에 마음을 놓고 섰는데

앞은 무수한 칼날이고

뒤는 낭떠러지라

선사들 모두 내게 한 길을 권하는데

길 위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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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1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마스테!!!!!
누추하고 누추한 인생살이
그 속에서 위대한 삶을 사는 이는 훌륭한 업적을 쌓은 이들 말고도
제 몫의 생명력을 마음껏 이 세상에 쏟아 놓고 사는 이들이 아닐른지..
약한 것, 소외받는 것, 상처난 것들을 보듬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른지...
끊임없이 묻고 물으며 길을 찾는 님 같은 순례자들이 아닐른지...

달팽이 2006-08-18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마스테!

파란여우 2006-08-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얘기는 왜 한 줄 뿐입니까!
-심심해서 딴지걸고 가는 딴지여왕 여우 드림-

달팽이 2006-08-2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한 줄 추가합니다.
 

무란 없는 것이 아니라 비워져 있는 것.

비워져 있는 것은 곧 채울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늘 비워둠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공복.

 

한 번 화두를 꺼내면 접을 수 없는 그대에게

어찌 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생과 사의 화두 속에 파묻혀 있는가.

이젠 벗어나 시냇물에 발이나 담가보게.

 

 

                              - 경봉 스님이 효봉 스님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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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게요. 무더운 여름, 건강하시죠? 부산은 좀 선선하려나? ^^

달팽이 2006-08-1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낀 구름으로 조금은 누그러진 더위가 느껴지네요.
다음 주가 되면 바람속에서 시원함이 일것 같습니다.
올려보냅니다.
혹 시간이 걸릴지라도..ㅎㅎ

해콩 2006-08-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라면... 제가 내려갈 수 있겠는 걸요.. ^^ 암튼 맘써주심에 감사~

이누아 2006-08-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겨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_()_

달팽이 2006-08-1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합장.
 
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형할인마트에서 통근버스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대형할인점의 소비가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부들이 가장들을 할인점으로 끌어들이면서 이제 대형할인점은 가족들이 나들이하는 장소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다. 백화점과 24시간 할인점은 이에 맞서 더욱 공격적이고 절박한 판매공세를 펴야만 살아남는 현실이 조성되고 있다. 그 변화된 시장 현실에서 지역 수퍼마켓이나 상인이 살아남는 길은 연합하여 대형 할인마트를 만들거나(농협하나로마트처럼) 유기농이나 특화된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도 운이 좋을 경우에만 성공한다. 하나로마트같은 경우 경영에 대한 마인드없이 영업의 부실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스타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류를 타고 일본에서 유명 배우가 된 배용준과 최지우를 비롯해서 많은 한류 스타들과 박지성과 설기현 이영표를 비롯한 축구 스타,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등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 그리고 일본에서 활약중인 승엽짱까지...국내에서도 스타 영화배우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사람들은 "당신, 너무 돈 밝히지 말아."라고 직접 모 연예인 앞에서 말하는 현상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자신들의 피나는 노력과 실력 그리고 시장에서의 수요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한 달동안의 피나는 노력의 대가가 박찬호의 손끝을 떠난 공 하나가 포수의 글러브에 박히는 짧은 순간의 보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울컥'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 산업의 성장도 눈부시다. 이번에 수원에서 받았던 KDI연수에서 모 젊은 선생님들이 작은 노트북에다 휴대폰을 연결하여 언제 어디에서건 인터넷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받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다 디지털이 삶 속으로 밀착된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아야만 했다. 물론 나도 휴대폰을 사용한 문자메세지의 문화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변화의 속도와 삶과의 밀착이 도저히 현 세대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대중문화의 큰 흐름 두가지는 세계화로 인한 대형화 현상과 디지털화 현상이다. 물론 거기에는 세상 변화의 흐름이 담겨 있고 비판만 하기 이전에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일고 있는 이런 대중 문화 현상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심각하게 도사리고 있다는 저자의 뼈아픈 충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대형화되고 스타시스템화되버린 우리의 대중 문화에서는 건전하고 예술성있는 문화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될 수 있고 중소 영세 상인이나 중소 영세 문화 생산자의 노력과 땀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정당한 경쟁도 하지 못한 채 사장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천박한 대중주의가 유포되어 국민들의 질의 저하가 유도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문화 현상 속에서는 건전한 성찰과 반성없이 인간의 수치스러운 탐욕과 욕망을 무분별하게 표출함으로써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단절을 가져온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대중문화의 수동적 소비자로서 전락하지 말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자로서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처럼 대중 문화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주권을 행사할 때에 비로소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의 격은 한층 상승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삶에 밀접한 대중문화의 겉 모습 이면에 놓여진 속 모습에도 주목할 수 있는 성찰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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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1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은 '인물과 사상'에 나온 글만 조금 읽어 본 수준인데 님은 어려운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달팽이 2006-08-1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다는 마음없이 용감해서인가요?

파란여우 2006-08-17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각주를 달았겠죠?
그렇다면 강준만의 대중문화 속성은 '미디어가 지닌 편집'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여실히 드러난 셈이라 여겨집니다.
허긴, 현대의 모든 문화는 짜깁기라는 말이 생각나요.
그건 그렇고 저처럼 '꽃을 든 남자'도 좋아하고,
생상의 '서주와 론도카프리치오'도 좋아하는 사람의 속성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요? 짬뽕? 아, 저녁에 날씨도 꾸물꾸물한데
얼큰한 짬뽕에 거시기 한 잔~
아, 원래 이렇게 댓글 달려는게 아닌데....아시죠 제맘?^^

달팽이 2006-08-19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대중문화에 대한 여우님의 생각과 문화를 향유하는 여우님의 취향이 꼭 궁합되어야 하나요?
여우님이나 나나 세상 기준으로 무어라도 구분짓기 힘든 존재라는 게 우리들의 취약점이죠...
하지만 그게 바로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죠...ㅎㅎ
나 지금 술김에 댓글 답니다.
일종의 음주운행이죠..ㅎㅎ
 
문학권력 - 개마고원신서 26
강준만.권성우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대학생활을 해보았던 사람이라면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지 못해서 각 대학 주요 학생회장실과 사회비판적 동아리방 주요 교수의 방이 도청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서목록제도때문에 책을 직접 구하지 못하고 복사해서 돌려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미 추억거리가 되어 버린 이 금서목록을 지난 해에 우연히 그 때의 금서목록이란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했던 기억들이 난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일부분이 합법화되고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형식적으로 문민정부의 출현과 함께 희석화되면서 80년대 민중의 목소리의 대변자적 역할을 했던 길지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예동네 등의 문학잡지와 한겨레신문도 변화된 사회에 맞게 컨텐츠를 만들어가야 했고 어느 부분은 더욱 변화되어야 했다.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던 것이 이 즈음이었다. 그동안 진보와 보수 구도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무렵 이제 비로소 그간에 양 구도 때문에 묻혀 있었던 또 다른 문학과 이론과 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을 보며 나는 민주화의 결실로 인한 사회의 다양성이 증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데에는 물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학생운동의 PD, NR파의 분파 생성, 민주노총과 비합법 정당활동 등이 포스트모던 논쟁과 사회민주주의 논쟁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운동과 활동들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단순히 사회의 다양성으로만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80년대에 비판적 사회운동의 입의 역할을 했던 문학잡지와 평론이 출판자본의 지배에 의해 구조재편과 새로운 생존경쟁의 여건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민족적 저항주의나 비판적 민중운동의 역할을 접고 생존과 확장을 위해 자본의 파수꾼에서 아르바이트생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역할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게 된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내가 대학의 생리를 좀 알게 된 것은 군대생활을 통해서였다. 서울 타대학의 대학원 생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대학원 생활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나는 이 곳에 더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학에서 공부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중세의 도제교육이나 봉건제적 구습에 적응할 정도의 삶의 수용이 가능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단의 구조는 그것보다 더욱 봉건적이고 봉건적이다 못해 고대 노예제적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더 절망적인 것은 서로간의 인간적인 신뢰에 기반한 정당한 비판 자체가 허용되지 못하는 현실이었고, 그것이 문인들의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비열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티없는 순수함으로 치장한 문학이 사실은 얼마나 더러운 오물통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문학 내부에서의 어떤 자성적 목소리도 그 고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은 적어도 갈증에 타는 목을 적셔줄 시원한 냉수 한 잔은 되었다. 그의 말대로 물론 외부자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더욱 과감하고 적나라하게 밝힐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것이었다. 문인들은 자신의 소신대로 상에 구애받지 않고 소설을 써내려가고 문학평론가들은 소신있게 자신의 바른 목소리를 내어 출판자본에 대항하여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야 한국문학의 미래는 존재할 수 있다는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그도 알다시피 2000년대가 어떤 시대인가? 국가마저도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들러리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라고 하는 대자본의 지배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노무현 정부도 20000만불 시대의 경제논리에 말려들고 각종 방송사 신문사를 포함한 언론기관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주무르는 한국 사회에서 일개 기자나 일개 문인의 붓끝에서 나온 글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것인가?

이미 2000년대는 대자본의 지배구조아래 모든 군소 자본 권력이 줄서기를 하는 시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하긴 싫지만 지금의 전개흐름대로라면 앞으로의 자본 비판 사회운동이나 정당운동도 대자본의 지원아래서 사회내의 저항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체제내로 포섭하는 장치로서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경제성장이 아니면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 경제논리 아닌 인간논리가 세상의 삶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 다시 오물통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거대구조와 담론은 외부에서 우리를 강요하는 사회적 짐이 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에서 나의 행동과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가?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소비자(이 말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로서 나는 책을 고르는 주권을 바르게 행사하고 문인들은 그들의 학문적 양심을 지켜나가고 그들의 삶의 터에서 삶의 조건을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선 표현의 자유를 우리는 움켜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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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0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가슴에 울리네요.
좋아하는 작가 강준만.. 이 책 방학 때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달팽이 2006-08-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어야 하는 책인데 시류를 놓쳐 아쉽습니다.
그래도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는 사실엔 변함없습니다.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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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니엘 호손은 19세기초 미국 낭만주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미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에머슨, 소로우 등의 초절주의자들이 인간의 정신과 인류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가진 것과는 달리 인간의 내면적인 어두움과 무의식, 인간 본성에 내재한 악과 부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인간 정신의 깊은 이해에 도달하려고 했다. 더불어 그는 개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역사 그리고 윤리 문제로 나아가 이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첫 작품인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부터 내용이나 상징하는 바의 모호성으로 뚜렷하게 작품의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이 주인공 로빈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인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인지에 대한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맬빈의 매장'에서는 지키지 못한 장인과의 전쟁터에서의 약속이 자신의 아들과의 업으로 이어져서 결말맺는 과정에서 로이벤의 가슴 속에서 더욱 명백해지고 지울 길 없는 죄책감으로 자리잡게 되는 내면적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오월제 기둥'에서도 '목사의 검은 베일'에서도 '반점'에서도 이러한 이중성과 모호성은 더욱 짙어진다.

사람들과 세상과의 벽으로 놓여진 검은 베일은 얼굴을 가리는 기능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생겨나고 변해가는 인간 본성의 부정적인 요소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가 이어진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끝내 벗지말라고 말하는 목사는 인간의 마음 속에 그 인간의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악마의 내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우리들 마음 속에도 그런 베일이 하나 또는 둘 있지 않은가?

넓은 대륙을 프론티어 정신으로 개척하기 위해 기계기술과 과학을 발달시켰던 미국이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맹목적인 희망에 대해서 비판하는 '반점'은 그 비판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선과 악의 문제를 더욱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 반점이 있어 그녀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아름다운 그녀인데도 조지아나의 반점이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의 과학적 자존심과 더불어서 자신의 마음 속에 난 자존심의 상처가 되고 그것이 불행의 씨앗으로 자라게 된다. '라파니치의 딸'에서는 선에서는 악이 독이 되지만 악의 입장에서는 선이 독이 되는 선과 악의 상대성을 통해서 우리가 지향할 인간 본성은 과연 무엇인가 묻게 해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옮긴이가 얘기한 것처럼 인간의 내면적 본성의 특성이기도 한 모호성이 베일처럼 작품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해가 찬란하게 비치는 낮이 아니라 구름이 뿌옇게 끼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희뿌옇게 뜬 달과도 같다. 그 달빛이 비친 강물 위에 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 달빛을 볼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물결 위를 쳐다볼 필요가 없다. 물결이 멎을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저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 걷힌 밤하늘에서 명쾌하게 뜬 달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호손은 우리들이 가진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우리들의 내면에서 찾을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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