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생육기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5
심복 지음, 권수전 옮김 / 책세상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세상엔 남녀간의 고리타분한 사랑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함없는 이야기에 우리들은 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또 얼마나 울고 웃고 하는가? 아름답고 순수했던 사랑, 운명처럼 다가와서 당사자를 완전히 삼켜버린 사랑, 당사자도 모르게 시작되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들의 결혼 후 생활은 마치 결혼 전의 사랑이 받았던 조명의 밝기만큼이나 두껍게 드리운 그늘로 캄캄해져버리고 만다. 이런 사랑 이야기에서 결혼 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그 결혼 후의 생활이야말로 얼마나 두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커플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짐이 되고 회피해버리고 싶거나 그냥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삶을 산다. 물론 살붙이고 살다보면 정이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정이 계속 살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이란 것은 알고보면 익숙하게 몸에 베어있는 습관같은 하잘것 없는 집착이 아닌가?

  바야흐로 세상은 변해가는데 그에 걸맞게 부부관계는 제대로 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부부는 한때의 충동적 사랑으로 만나서 그 열꽃을 피운 결과물에 의무를 지고 평생을 가족과 가족관계에 묶여사는 노예같은 남녀의 삶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직감적으로 나를 끌어당긴 매력 속을 심층적으로 탐구해보고 그녀에게 비친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부부 각각이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을 가지고 구제도의 가족에게서 육아의 부담을 나누어 가지며 허덕댈 때 단순한 부부간의 정을 넘어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삶의 동반자로서 체험 학습장인 인생에서 배움을 공유하는 벗으로서 그 관계의 폭을 넓힐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책이 현대의 부부들이나 부부이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심복과 아내 운과의 관계도 역시 그러했다. 결혼 후 23년의 부부생활동안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골목에서 만나도 지긋이 손을 꼭 쥐며 '당신 어디가요?'하고 묻곤 했으며, 어떤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달 밝은 밤이면 함께 술자리를 펴서 시를 논했고, 삶의 문제를 글로써 논했다. 이렇게 함께 살면 살수록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서로의 삶의 풍요롭게 만드는 동반자일진대 어찌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있었으리오?

  그녀와 함께 했던 많은 행복한 시간들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녀가 마흔 정도 밖에 안된 젊은 나이로 요절하게 된 것을 지켜본 후로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그러다가 그녀를 그리워하고 외로워하고 또 그리워하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왜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났을까? 그녀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 앞서 그녀의 마음의 병이 깊었던 탓이다. 그는 사랑하는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며 마음과 몸의 관계를 생각했을 것이고 마음이 몸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이 6번째 글인 '건강하고 여유롭게 사는 법'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한 때 세상이 가진 것 없이도 더없이 행복했던 날들, 그녀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가진 듯이 행복했던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처럼 잡을 수 없고, 허공에 새들이 그들의 족적을 남기지 못하는 것처럼 흩어져버리는 것이다. 뜬 구름같이 곧 흘러갈 꿈 속에서 우리는 또 꿈을 꾼다. 덧없는 인생의 꿈을 깨어야 비로소 인생 그 자체가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허물없이 살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손을 잡고서 행복해하게 되고, 그녀의 무덤 앞에서 좌절하지 않게 된다.

  결혼을 한 지도 어느덧 4년이 다되어 간다. 늘 나의 반쪽으로 생각되던 그녀를, 오직 그녀 하나만을 바꾸면 내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녀 하나 바꾸는 것이 세상 모든 것을 바꾸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그것은 우선 내가 바뀌는 것을 전제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를 바꾸는 것은 바뀌는 그녀가 아니라 바뀐 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이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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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9-0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浮生六記인 모양이군요. 부초처럼 덧없는 삶에서 여섯 꼬투리를 쓴...
자동차와 마누라는 5년마다 바꾸고 싶어진다고들 하더군요. ㅎㅎㅎ
연애의 짜릿한 감정이 결혼 후엔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겠지요.
연애하듯이 결혼 생활을 즐겁게 하는 법엔... 서로 배려하고,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길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삶이 수행인 셈이지요. 배려와 독립은 수행인 셈이니까요.

비자림 2006-09-0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년차라면 아직은 좋을 때 같은데요.^^ 그래도 아이들 키우며 번잡한 일상을 같이 하다 보면 부부간에 해야 할 말과 나누어야 할 감정들에 대해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옆사람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또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서로를 지켜주고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달팽이 2006-09-0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비자림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도 정신적인 홀로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요즈음의 저의 생각입니다.
자신의 중심이 서 있을 때라야 상대방이 간혹 보이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에 덩달아 반응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운이와 같은 여자와 산다는 것...너무 부럽더군요...
그런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귀한 일이지요...

혜덕화 2006-09-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이 책을 읽고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고판 작은 책이었는데, 책들을 정리해서 버리거나 줄때도 이 책만은 꼭 남겨두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달팽이님의 글을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달팽이 2006-09-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덕화님과는 책읽는 인연이 있나봐요..
좋은데요..
 
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2000년대의 신새벽의 여명이 밝아온 것은 정보화물결과 함께였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에서 디지털적인 방식으로의 삶의 변화를 가져왔고, 우리는 이미 그 1세대의 끝에서 정보혁명의 다음세대의 길 앞에 서있다. 비로소 그간에 진행되어 왔던 정보혁명과 정보화시대의 급속한 변화로 인한 문제점들을 둘러보게 되었고, 그런 반성의 바탕하에서 새롭게 밝아오는 정보 2세대로 난 길 앞에서 이어령 선생님은 희망의 격려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뭔지 모르는 밝은 느낌이 드는 것도 이 책 속의 선생님의 메세지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정보화강국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국가주도의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과 인터넷 시장의 급속한 팽창은 IT와 정보 분야에서의 국민적 마인드를 새롭게 형성시키고 있고,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질주의 뒷모습에 너무나도 많이 초토화된 인간 군상이 그려진다. 더욱 외로워지고, 더욱 가상적이고 피상적인 인간관계에만 의존하게 되고, 수동적이고 능동적이지만 퇴폐, 향락, 즉흥적으로 흐르고, 너무 조급해지고, 정보의 수신자를 배려하기보다는 발신자의 상업주의만이 득실댄다. 정보의 바다는 정보의 폐수로 오염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사는 고기마냥 숨쉬기가 버거워 배를 드러내고 둥둥 뜨기조차 한다.

  세계 시장에 편입되어 뒤를 보지 못하고 달려왔던 급속한 경제성장의 시절,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그 성장기 속에 우리 가슴엔 치유되지 못하고 상처받은 어린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이제 그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질주하며 바람을 무더기로 맞고 있는 찡그린 얼굴 뒤로 땀을 쏟으며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보아야 한다. 들썩이는 어깨를 보아야 한다. 잔뜩 긴장된 허리와 등을 보아야 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도 보아야 하리라.

  그 뒷모습은 우리들의 오랜 전통과 문화이다. 디지털의 영역에 의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적 방식이다. 속도의 삶에 빼앗겨버린 우리들의 정신이자 영혼이다. 돈과 물질만을 위해 달려왔던 시간 속에 떠나버린 정겨운 사람들이다.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잊어버렸던 시골집 독 속의 된장과 김치이다. 편리한 전기압력밥솥에 의해 잊혀져버린 눈과 코를 맵게 하는 아궁이이다. 나이프와 포크에 의해 휘둘리는 거친 음식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사람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음식이요, 그것이 바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음식이다. 손님이 오면 나이프와 포크와 함께 음식이 새로 나와야 하는 문화가 아니라, 수저만 달랑 얹어서 손님을 맞는 우리의 문화이다.

  디지털의 세상은 우리의 아날로그적인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면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맹목적으로 아날로그의 영역을 파괴할 때 우리의 삶도 파괴된다. 21세기의 인류가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과거는 성장이라는 환상 속에 속도라는 우상 속에 우리가 버렸던 자연과 인간과 정신이다. 삶의 느림 속에 인생의 의미와 지혜를 묻는 물음이다. 한끼 식사에 5000여번을 씹던 우리의 어금니가 이젠 700-900번만 씹는 문화로 바뀌자 우리들의 뇌도 삶도 대충대충이 되고 빨리빨리가 되어버렸다.

  급속하게 몰아닥치는 외부의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그 핵심적 문제를 가장 단순하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했던 바로 그 전통과 문화에서 찾으려는 선생님의 대안이 '디지로그''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세상을 보려면 이 정도의 눈은 있어야 하고 글을 쓰려면 이 정도의 자기 말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덤으로 꼬여버리고 복잡한 세상의 해법을 그의 시원스러운 입담과 물흐르는 듯한 그의 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격려사가 이렇게 푸근하고 구수한 글로써도 앞으로의 희망을 그리게 할 수 있다니...

  너무 희망적이어서 작은 걱정이 이는 것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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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8-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뜨면 휴대폰을 챙기고 컴퓨터 전원을 넣고 메신저에 접속하는 모습을 보면... 디지털이 점령한 삶의 건조함이 푸석댑니다. 전통과 문화를 새롭게 조망하는 것은 <상업주의>나 <교환가치>에 의한 것들 뿐이라 더 서걱대는 시대를 사는 일도 신산하기만 합니다.

달팽이 2006-08-2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업이 오히려 자연과 유기농, 전통과 문화를 더욱 앞장서서 상업화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군요.
그런 면에서 이어령 선생님도 일면 비판할 점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 세상 안에서 또 다른 꿈을 늘 꾸고 살아야하는 우리 처지를 생각해보면
때로는 이러한 생각들도 건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내 일찍이 고독의 몸으로서 적막과 무료의 소견법으로 거위 한 쌍을 구하여 자식삼아 정원에 놓아기르기 십개성상이러니, 올 여름에 천만뜻밖에도 우연히 맹견의 공격을 받아, 한 마리가 비명에 가고 한 마리가 잔존하여 극도의 고독과 회의와 비통의 나머지, 식음과 수면을 거의 전폐하고, 비 내리는 날 밤, 밝은 밤에 여윈 몸 넋 빠진 모양으로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동무 찾아 목메어 슬피 우는 단장곡은 차마 듣지 못할러라. 죽은 동무 부르는 제 소리의 메아리인 줄은 알지 못하고, 찾는 동무의 소린 줄만 알고, 홀연 긴장한 모양으로 조심스럽게 소리 울려 오는 쪽으로 천방지축 기뚱거리며 달려가다가는 적적무문, 동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 또다시 외치며 제 소리 울려 오는 편으로 쫓아가다가 결국은 암담한 절망과 회의의 답답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서는 꼴은 어찌 차마 볼 수 있으랴. 말 못하는 짐승이라, 때묻은 말은 주고받지 못하나, 너도 나도 모르는 중에 일맥의 진정이 서로 사이에 통하였던지, 10년이란 기나긴 세월에 내 홀로 적막하고, 쓸쓸하고 수심스러울 제, 환희에 넘치는 너희들의 요동하는 생태는 나에게 무한한 위로요 감동이었고, 사위가 적연한 달 밝은 가을 밤에 너희들 자신도 모르게 무심히 외치는 애닯은 향수의 노랫소리에는 나도 모르게 천지적막의 향수를 그윽히 느끼고 긴 한숨을 쉰 적도 한두 번 아니러니--. 고독한 나의 애물아. 내 일찍이 너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칠 능이 있었던들, 이내 가슴속 어리고 서린 한없는 서러운 사정과 정곡을 알려 들리기도 하고, 호소도 해보고, 기실 너도 나도 꼭 같은 한없는 이 설움 서로 공명도 하고, 같이 통곡도 해보련만, 이 지극한 설움의 순간의 통정을 너로 더불어 한가지 못하는 영원한 유한이여.....

  외로움과 설움을 주체 못 하는 순간마다 사람인 나에게는 술과 담배가 있으니, 한 개의 소상반죽의 연관이 있어 무한으로 통한 청신한 대기를 속으로 빨아들여, 오장육부에 서린 설움을 창공에 뿜어내어 자연의 선율을 타고 굽이굽이 곡선을 그리며, 허공에 사라지는 나의 애수의 자취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속 빈 한숨 길게 그윽히 쉴 수도 있고, 한잔의 술이 있어 위로 뜨고 치밀어오르는 억제 못 할 설움을 달래며, 구곡간장 속으로 마셔들어 손으로 스며들게 할 수도 있고, 12현 가야금이 있어 감정과 의지의 첨단적 표현 기능인 열 손가락으로 이 줄 저 줄 골라 짚어 간장에 어린 설움 골수에 맺힌 한을 음률과 운율의 선에 실어 찾아내어 기맥이 다하도록 타고 타고 또 타, 절절한 이내 가슴 속 감정의 물결이 열두 줄에 부딪혀 몸부림 쳐가며 운명의 신을 원망하는 듯 호소하는 듯 밀며 땡기며, 부르며 쫓으며, 잠기며 맺으며 풀며, 풀며 먹으며, 높고 낮고 길고 짜르게 굽이쳐 돌아가며, 감돌아가며 감돌아들며, 미묘하고 그윽하게 구르고 흘러 끝가는  데를 모르는 심연한 선율과 운율과 여운의 영원한 조화미 속에 줄도 잊고, 나도 썩고 도연히 취할 수도 있거니와 --. 그리고, 네가 만일 학이라면 너도 응당 이 곡조에 취하고 화하여, 너의 가슴속에 가득 답답한 설움과 한을 잠시라도 잊고 춤이라도 한 번 덩실 추는 것을 보련마는-- 아아, 차라리 너마저 죽어 없어지면 네 얼마나 행복하며 내 얼마나 구제되랴. 이 내 애절한 심사, 너는 모르고도 알리라. 이 내 무자비한 심술, 너만은 알리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아. 말 못하는 짐승이라 꿈에라도 행여 가벼이 보지 말지니, 삶의 기쁨과 죽음의 설움을 사람과 같이 느낌을 보았노라. 사람은 산 줄 알고 살고, 죽은 줄 알고 죽고, 저는 모르고 살고, 모르고 죽는 것이 다를 뿐, 저는 생.사 운명에 무조건으로 절대 충실하고, 순종한 순교자--. 사람은 아는 것을 자랑하는 우월감을 버리고 운명의 반역자임을 자랑 말지니 엄격한 운명의 지상명령에 귀일하는 결론은 마침내 같지 아니한가?

  너는 본래 본성이 솔직한 동물이라, 일직선으로 살다가 일직선으로 죽을 뿐, 사람은 금단의 지혜의 과실을 따먹은 덕과 벌인지 꾀 있고 슬기로운 동물이라, 직선과 동시에 곡선을 그릴 줄 아는 재주가 있을 뿐, 10년을 하루같이 나는 너를 알고, 너는 나를 알고, 기거와 동정을 같이 하고 희노애락의 생활 감정을 같이 하며, 서로 사이에 일맥의 진정이 통해 왔노라. 나는 무수한 인간을 접해 온 10년 동안에 너만큼 순수한 진정이 통하는 벗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찾지 못했노라. 견디기 어렵고 주체 못 할 파멸의 비극에 직면하여 술과 담배를 만들어 마실 줄 모르고 거문고를 만들어 타는 곡선의 기술을 모르는 솔직 단순한 너의 숙명적 비통을 무엇으로 위로하랴. 너도 나도 죽어 없어지고 영원한 망각의 사막으로 사라지는 최후의 순간이 있을 뿐이 아닌가? 말하지니 나에게는 술이 있고, 담배가 있고, 거문고가 있다지만 애닯고 안타깝다. 말이 그렇지 망우초 태산 같고, 술이 억만 잔인들 한없는 운명의 이 설움 어찌하며 어이하랴. 가야금 12현에 또 12현인들 골수에 맺힌 무궁한 이 원을 만분의 1이나 실어 탈 수 있으며, 그 줄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타본들 이놈의 한이야 없어질 기약 있으랴. 간절히 원하거니 너도 잊고 나도 잊고 이것저것 다없다는 본래 내 고향 찾아가리라. 그러나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이것저것 다 있는 그대로 그곳이 참 내 고향이라니, 답답도 할사, 내 고향 어이 찾을꼬, 참 내 고향 어이 찾을꼬.

  창 밖에 달은 밝고 바람은 아니 이는데, 뜰 앞에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 가을이 완연한데, 내 사랑 거위야, 너는 지금도 사라진 네 동무의 섧고 아름다운 꿈만 꾸고 있느냐?

  아아, 이상도 할사, 내 고향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바로 내 고향일 줄이야 꿈엔들 꿈꾸었으랴. 이 일이 웬일인가? 이것이 꿈인가. 꿈깨인 꿈인가? 미칠 듯한 나는 방금 네 속에 내 고향 보았노라. 천추의 감격과 감사의 기적적 순간이여. 이윽히 벽력같은 기적의 경이와 환희에 놀란 가슴 어루만지며,  침두에 세운 가야금 이끌어 타니, 오동나무에 봉이 울고 뜰 앞에 학이 춤추는도다. 모두가 꿈이요 꿈 아니요, 꿈깨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만상이 적연히 부동한데 뜰에 나서 우러러보니 봉도 학도 간 곳 없고, 드높은 하늘엔 별만 총총히 빛나고, 땅 위에는 신음하는 거위의 꿈만이 그윽하고 아름답게 깊었고녀--.

  꿈은 깨어 무엇하리.

 

                                           

                                                                                                            -- 공초 오상순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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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애잔함과 허무를 응시하는 작가의 마음.
"내 고향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바로 내 고향일 줄 꿈엔들 꿈꾸었으랴."
산문의 힘은 이런 걸까요? 맞닥뜨린 상황과 굽이치는 정서의 세밀한 부분을 낱낱이 해부하여 보여 주는 것...

잘 읽고 가옵니당^^

水巖 2006-08-2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고1때 국어교과서에 나온 겁니다. 그 시절에는 저 글에 심취되어 통으로 외우고 다니기도 했었죠. 다시 한번 읽고 갑니다.

파란여우 2006-08-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문고도, 가야금도, 담배도 못하지만 몰운대에서 하현달을 보며
달적지근한 가시오가피를 마실 수는 있다죠.
술은 달팽이님이 사세요.
그러니까 이게 화개차 혼자만 마시고 늦게 온 변명의 댓가입니다.^^

달팽이 2006-08-2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저도 그 부분이 클라이막스처럼 느껴졌더랬어요...
수암님, 그 시절 물질적으로는 형편없었던 그 시절이 그래도 가끔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요? 이런 힘넘치는 수필을 요즘은 보기 힘들어서일까요?
여우님, 물론입니다. 여우님 그 자체로 안주 몫은 하니까요..ㅎㅎ

로드무비 2006-08-2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 때 영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스스로 도취되어 읊으시던 기억이 납니다.
제목이 귀에 딱 들어왔죠.^^

달팽이 2006-08-2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허, 그랬군요.
갑자기 로드무비님의 세대가 궁금해지군요...
난 내 정도의 연배로만 알았는데 이제껏...

소와룡 2016-06-28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양이의 여러가지 이야기가 떠올라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빌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달팽이 2016-07-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소와룡님.
 
판사 한기택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 엮음 / 궁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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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천주교 미리내 성지 옆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 옆에 '하늘문'이라고 이름붙여진 작은 봉안당이 있다. 그 봉안당 안의 오른쪽 벽 한 귀퉁이에 한기택이 있다. 앞에서 평면으로 보면 보통의 책만 한 크기다. 그 속에는 타서 재가 되어버린 한기택의 한 줌 뼛가루가 있고, 바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한기택(크리스토폴)

1959.2.17 ~ 2005.7.24

그것 뿐이다. 차관급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어울릴만한 봉분도 선배,동료,후배 판사들이 가장 존경했던 판사를 추모하는 추모비도 없다.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한기택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추천에 의해 판사의 꿈을 키우던 한기택은 "나의 꿈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라든지 "나는 나같은 놈들과 싸우고 싶다."라고 일기에 적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살필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짐승으로서의 본능적 요소와 짐승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이성적 요소를 동시에 갖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고등학생때부터 박정희 정권의 부당성을 인식했으며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판사가 되기 위한 내적인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깊이 천착하였고, 결국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음을 고백하였다.

  판사로서 피고인과 원고인의 소장을 철저하게 검토하였으며, 그들의 이면의 마음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던 판사였다. 그의 치밀하고 지극한 하지만 말없는 노력에 선,후배 판사들은 많은 감동을 느꼈으며, 그의 말은 비록 낮은 음성이었지만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의 판결에는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기본권에 충실한 판결들로 언론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 중 두가지만 살펴보자.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이 위헌이라는 원고측 변론에 대해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에 따른 것이며 국가가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제도가 부당하다고 불 수는 없다."고 밝히면서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또 하나는 고위공직자들의 존비속이 재산고지를 거부할 경우 그 사유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로서, 2002년 3월 1급이상의 고위공무원의 재산공개때 고위 공직자 36명이 부모나 자녀 등 직계존비속 1명 이상의 재산에 대한 고지를 거부하자 "고지거부 조항이 공직자들의 재산은닉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고지거부 사유의 공개를 요구했다. 이때 해당된 공직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 전윤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이종남 감사원장, 이기준 당시 서울대 총장,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 임인택 건설교통부 장관, 김승규 당시 대검 차장, 전철환 당시 한국은행 총장 등 모두 36명이었다. 이 재판으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으며 그는 목숨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작은 재판 하나하나에도 그의 혼신을 기울여 재판하는 판사였다. 그런 그가 가정에서는 어떠했을까? 그가 가정을 이루는 연애과정과 결혼 후를 보더라도 그는 단지 직업에만 매달려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했던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가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한기택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는 이상연이라는 이화여대 수학과를 다니던 학생을 대학 2년때 만나 영혼의 동반자처럼 사랑한다. 그의 식을줄 모르면서 지속되는 사랑과 그 기록물들이 그가 정성들여 쓴 편지로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다정하지만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기억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그가 보내는 생의 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삶의 깨달음을 가졌던 것일까? 두번째 장에서는 그가 일기로서 남겼던 학생시절의 기록과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통해 그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그의 신앙생활의 기록과 판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최근의 그의 마음의 기록들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그의 기록물을 보면서 많은 인간적 고뇌와 방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성찰을 길을 걸어갔던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글을 읽더라도 그와 함께 생활하고 그를 대면했던 사람들이 느꼈던 마음만큼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매 순간 매 장소에서 순간을 충실하며 살았던 인간 한기택에게 가슴 한 켠을 시큼하게끔 하는 조용한 감동과 더불어 깊은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서재지인의 페이퍼에서 유심히 보았다가 구한 책에서 나는 아쉽지만 좋은 사람 한 명을 만났다.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선 처남에게 추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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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2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권하며 좋겠지요? 보관함에 넣습닏. ^^

달팽이 2006-08-2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고시공부하는 처남에게 권하려고 하는데요...
녀석 신림동에서 진땀 꽤나 흘렸을 터인데...

파란여우 2006-08-2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밀알같은 사람을 만나 밀알의 삶을 보고 배우는 일,
황공하지요.

달팽이 2006-08-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일 화개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차를 만드는 시인 한 분을 새로이 만났습니다.
밀알같은 하지만 색다른 삶을 사는 기인 한 분을 또 만난 것 같습니다.
온갖 차들을 배터지도록 마셔보았습니다.
하루 열두번도 더 변하는 날씨와 물소리 섬진강의 넉넉함...
그리고 사람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답글이 늦었다는 변명입니다.

어둔이 2006-08-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深藏若虛, 깊이 감추어 마치 없는듯 살면서 제삶을 모두사는 사람, 안개속에서 더 잘보이는 그런 꽃과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사는 세상이 한결 행복해집니다. 그런 사람에게 머리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뛰어넘기 새사연 신서 1
김문주.김병권.박세길.손석춘.정명수.정희용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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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다수의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안고 출범했던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세력들을 하나둘씩 물리치고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한국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과 노동문제, 통일문제와 남한의 민주주의 문제, 세계화와 자본자유화에 대한 바른 대안의 부재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시민들의 열망과 희망의 압살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해묵은 NL, PD논쟁으로 분열됐고, 현실적인 사안에 대한 구체적 전망을 드러내는 능력의 부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서 더욱 떨어져나가고 더욱 자신의 삶을 죄어오는 경제적 한파에 옷깃을 여미고만 있다.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갔을 386세대, 하지만 사회와 민족의 현실에 새로운 눈을 뜬 그들이 자신의 민족과 역사에 대한 양심을 버리지 못하고 보냈던 대학생활과 그 기억들을 고이 묻어 둔 꿈과 함께 변화된 현실 속으로 묻어 두었던던 수많았던 날들... 그들이 다시 '생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돌아왔다. 우리 사회에 대한 고이 묻어둔 꿈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과 함께 다시 돌아온 것이다. 신 자유주의를 넘는 우리 사회에 대안에 대한 그들의 정리된 생각을 이 녹색커버의 책 한 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첫째 장에서 신자유주의와 주주금융자본주의에 의해 파헤쳐진 한국 경제와 민중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무지하거나 잘못된 사람들의 인식과 정부의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여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조건은 역사적 경험과 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하여 제시된다. 노동창의성과 은행의 공공화로 이어지는 두번째 장의 이야기를 보자. 자본의 형성과정과 확대과정에서 많은 국가의 지원과 혜택, 각 위기상황마다 국민의 세금으로 부활했던 대자본이 이제는 민영화, 자유화란 명목으로 공공의 이익을 내던지고 있다. 그래서 국민과 국가에 의해 공공 관리되는 자본과 공공정책이 눈없는 자본의 폭주를 막을 유일한 대안이 된다고 본다. 이러한 생각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통일문제'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일본과 미국 등의 신 자유주의적 흐름이 집약된 남한과 유럽과 러시아 중국의 반대적 흐름이 집약된 북한이 만나는 한반도에서 인류 사회의 새로운 꿈은 시작된다고 본다. 양 경제체제를 인정한 전제 위에 그 양 체제의 입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공공경제영역, 즉 통일경제영역을 만들고 그 비중을 확대시켜가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의 창출이야말로 인류적 대안이면서 우리 민족이 번영할 확실한 대안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놀랍지 않은가? 이런 상상력은 누구나가 한번씩 해보았을 그리고 하고 있는 아주 평범한 바로 그 생각이 아닌가?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원유, 그리고 기초과학분야, 군사분야의 튼튼한 기초와 남한의 기술과 자본 그리고 남북 공동의 7000만의 인간 그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최상의 삶의 대안이 아닐까?

  이 새로운 상상력을 열기 위한 남한의 노력으로 돌아와보자. 역시 대의제 민주주의의 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직접정치'라고 하는 대안을 위해 많은 구체적인 제도를 제시한다. 파리코뮨에서의 경험으로부터 국민투표제, 국민 소환제, 국민 발안제의 개념의 풍부성과 의회제도의 근본적인 개혁과 '국민의회제', 위르겐 하버마스의 '숙의 민주주의제'등 우리 사회를 여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역사적 경험들이 제시되고 검토된다.

  이런 논의들이 학계가 주축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문제의식있는 생활인이 주축이 되어서 나온 것이라는 데 더욱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대한 미래상을 그릴 수 있고 고민할 수 있고 새롭게 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정확한 사실과 정보가 주어질 때 민중들의 판단이 단순한 우민정치와는 다른 합리적이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신 자유주의에서 노동창의성 시대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과 자본의 방향을 트는 힘에 대한 설명과 정치적 개혁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더 필요하다. 언론과 이익단체, 시민단체 등등 하지만 이런 논의의 시작이 정치적 대안의 부재속에 정치적 허무주의나 무관심 속에 지내는 많은 우리들이 보다 우리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여는 상상력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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