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
고교신차 / 미리내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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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무엇인가? 참된 나는 어떤 존재이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비종교적이며 친절한 대답이다.

전후 일본인들이 갖게 된 정신적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기 위해 많은 종교가 생겨났지만,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종교지도자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착취했다.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종교에 미혹되어 오히려 가족관계를 파괴하고 자신의 영혼을 타락시키게 되었다.

다카하시 신지는 이러한 가운데 자신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신리'에 이르도록 자세한 설명으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자신의 마음을 가리키지 못하고 외부적 현상이나 사람에 맹신하게 되는 종교는 삿된 외도라고 한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은 전생과 악령 현상, 뇌와 마음의 구조, 올바른 수행의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좀 잡다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음의 구조에 대한 그래프적인 설명과 뇌와 마음의 구조에 대한 설명은 명쾌하면서도 시원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에 착 와닿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물론 내가 깨닫지 못한 책임이 크지만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 개인적인 기연이 작용한다는 생각도 배제할 순 없었다.

이 책은 일본의 문화적인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악령(지신령과 수호령)과 잡다한 영적인 현상에 대한 설명이 단아하면서도 직설적인 한국 스님들의 글과는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마 어떤 책을 만나는 것도 기연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이 사람이 쓴 책들이 여러 권 출판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지금은 인터넷 서점에서 다카하시 신지라는 이름으로 몇 권의 책이 검색될 뿐이고 그나마도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다.

그래도 영성이 사회적.대중적으로 많이 전파되지 못했을 시절, 이 책의 역할이 나름대로 컸으리라는 것을 짐작한다. 자연스레 이 사람의 '마음의 원점'에 시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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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공부 하시는 달팽이님 엿보고 갑니다.
저는 마음이 부산합니다..


달팽이 2007-06-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게을리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한사님.

비자림 2007-06-2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읽으시네요, 달팽이님!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빌려오긴 좀 하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네요.

달팽이 2007-06-2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자림님.
요즘은 저도 책이 잘 읽히진 않는답니다.
방학이 되면 좀 읽히겠죠. 비자림님도..

김기현 2010-03-2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책은 우리가 이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 와 같은 책입니다

달팽이 2010-03-25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
 
참선요지 - 주머니속대장경 301
허운 화상 지음 / 여시아문 / 199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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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것이 예전에 읽었던 글인데도 달리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겨우 이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두를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가물하게 만져지는 것이 생겼다는 정도이다. 백성욱 선생님께서 '미륵존 여래불'하고 바치라고 하셨는데 이 책을 들다가 문득 책을 놓고 '미륵존 여래불'하면 그 마음이 올라오는 그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가볍게 생기게 된다. 아직은 마음에서 크게 올라오는 것 정도라야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이지 티끌처럼 올라오는 마음은 지나고 나서야 아!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참선에 내가 인연이 있는 것일까? 잠자리에 앉아서는 제대로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망상과 잠 속으로 빠져드는 내가 그래도 왜 '참선'이라는 글자에 마음이 끌리는 것인지 가끔 생각한다. 과거의 어느 생에 승려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날 문득 꿈에서 눈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은 스님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그 스님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정하게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자판을 두드린다. 그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마음이 먼저 올라온다. 그 마음이 영글기 전의 마음 바닥이 있다. 그 바닥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끝도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갖은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미세하게 올라왔다가는 마음이 보태어지면 어느덧 내가 쉽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가물하다'라는 '현'자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정말 미세한 마음일수록 가물가물하다. 그 가물가물한 밑바닥에서 백년 3만 6천 여일 동안 쉬지 않고 망상이 일어난다. 그러니 불쌍한 대중인 내가 언제 한번 모두 놓아버리고 편히 쉴까!

  화두를 들려고 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 있다. 미륵존 여래불 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 있다. 거칠게 화두 들려고 하지 말고 가볍게 한 번씩 들고 들어서 이어주는 노력이 나에게 필요하다. 너무 마음이 앞서니 집중이 되어 머리만 아플 뿐이다. 한동안 머리가 아파 토할 것 같은 시간에서 한숨만 푹푹 쉬어대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아, 그래도 게을리 놀고 지나가는 시간들도 나에겐 필요했던가? 이런 식으로 나의 나태함이 정당화될 것은 아니지만 좀 쉬고(?) 난 뒤의 글들이 다시 마음에 붙는 맛이 있다.

  그렇지만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한다는 것은 기연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느낀다. 일상의 일들에 쉽게 마음뺏기면서 설렁설렁해서 생사의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쉬는 듯 쉬지 않는 듯 해도 마음의 긴장은 뾰족하게 세워야 하며 올라오는 생각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며 어디로 또 사라져가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섬세하고 미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럴 때 조금 공부에 힘이 붙는다. 그래서 잘 되면 화두가 나를 이끌 것이고 아니면 내가 끙끙 대며 화두를 끌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바퀴가 굴러갈 때까지..나는 가슴에 마음을 품는다. '직지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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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다들 서재구경 다니느라 조금은 들떠있는 것 같아요.
님은 여전히 마음을 붙잡고 혹은 놓고 계신가요? 편안한 밤, 빗소리에 집중해보고
싶어요. 사실은 조금 취해보고도 싶구요. 늘 마음공부가 되는 글들, 감사합니다.

달팽이 2007-06-14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침에 더욱 굵어진 빗줄기를 맞고 출근하였습니다.
그 빗줄기는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뒷산의 초록이 한 층 더 무성해졌습니다.
음반 하나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북치는 소리가 우렁찹니다.
둥둥둥~

글샘 2007-06-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면... 골똘해져야 하는데요...
저는 요즘 좀 산만한 상태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요즘 공부가 잘 되시는 것 같네요.

달팽이 2007-06-1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봐야 노력하는 수준이랍니다.^^
오늘 날씨가 좋군요..

혜덕화 2007-06-1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서재라 그런지 모든게 낯설군요. 전에는 즐찾 서재의 글이 첫화면에 보여서 좋았는데, 이젠 찾아 다녀야 보겠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_()_

달팽이 2007-06-17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그렇군요. 이젠 찾아다녀야 하는군요.
유월의 햇살이 데워집니다.
안녕히 보내세요.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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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속세에서 먹물 깨나 먹었던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단순하면서도 정갈하고 진실하면서도 치열한 수행의 기록이다. 아상으로 단식수행을 하던 스님과의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먹물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그의 수행일기 전체에 흐르는 느낌은 단촐하면서도 잡다한 사변을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이 그려내는 절간의 이야기들이 깊은 사연과 애절한 마음을 자아내면서도 마치 한 걸을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그것이 슬픔과 연민을 넘어서 지향하는 바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 길에 놓인 승려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찍어내게 하기도 하지만 모두 아름답게 변하고 만다.

   심지어 스님이 그려내는 선객의 고독조차도 아름답다. 이백의 '월하독작'은 너무 가슴을 울린다.

  "꽃이 만발한 숲 속에 한동이 술이로다. 그러나 친구가 없어 홀로 마실 수밖에,

잔을 들어 돋아오르는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본디 술을 못하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라 움직일 뿐이로구나"

고독과 대면하는 수 밖에 없다. 그 고독과 대면하여 이겨내는 방법은 화두로 타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고독을 회피하고 두려워한다. 그 고독의 뿌리에 우리가 세상의 구멍 속으로 빠지고 마는 삶의 뿌리가 있다. 인연되어 선방에서 공부를 치열하게 하면서도 깨달음의 길에 놓인 고독이라는 길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 스님의 모습에 진정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병든 스님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눈물이 절로 났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대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절에 들어왔지만 기연이 닿지 않아 일을 마치지 못하면서도 낯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꾸는 스님의 마음씀과 삶의 애절함이 뼛속으로 파고드는 겨울추위같았다.

  이 길을 가는 것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 많이 알고 적게 알고의 지식의 유무, 속세에서의 지위 등 온갖 겉치레가 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이 길엔 세상 모든 것을 베어내는 날카로운 지혜와 의지의 칼만이 필요할 뿐이다. 어느 곳에도 마음 묶이지 않고 꿋꿋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려는 지허스님의 구도의 이야기는 내 느슨한 마음에 조그만 촛불을 하나 켜기에 충분했다.

  갖은 해석과 말을 줄이고 나아가 행동도 줄이고 오로지 진리의 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 위하여 생활의 다른 에너지들은 모두 아끼는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진리를 향한 마음만이 흔들림없이 서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체의 우상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가야할 조화되는 길로 향한 느리지만 빈틈없고 착실한 발걸음에 담긴 삶의 무게에 가벼웠던 나의 오늘이 돌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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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1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오늘 하루도 평정심 잃지 않는 하루 되소서..
이책은 담아가겠습니다.

달팽이 2007-06-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이미지가 바뀌었군요.
님 말씀대로 사는 하루가 되기를...발원합니다.
 
 전출처 : 로쟈 > '종문제일서' 벽암록 완역

아침 늦게 TV를 켜니 6.10 항쟁 기념식이 끝나고 있었다. 이게 원래 TV로도 방영된 기념식인지 올해가 20주년이어서 처음 방영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생의 상당수가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사건이니만큼 이젠 '기념'할 때도 된 듯하다('6월 혁명'이라고 부르자는 '오버'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을 터이다). 관련기사들이 쏟아지는 틈바구니 속에 선불교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벽암록> 완역 소식이 묻혀 있었다. 불교 신자도 아니고 선(禪)에도 평균치 이상의 관심은 갖고 있지 않은 터여서 이 '장서용' 책을 서가에 꽂아놓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생각날 때 도서관에서라도 들춰볼 완역서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책은 각권 500쪽 내외로 전체 12만원이라 한다). 역자인 지현 스님의 10여년의 노고가 온축됐다고 하니까 더욱 기릴 만하다. 관련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알라딘에는 아직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문화일보(07. 06. 08) 禪 불교의 정수… 10여년 걸쳐 완역 출간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 원나라 초기(1314~1320), 거사 장명원이 불타 버린 ‘벽암록(碧巖錄)’을 되찾아 복간하면서 책 머리에 붙인 말이다. 여기서 ‘종문’이란 ‘선문(禪門, 禪家)’을, ‘제일서’란 첫 번째로 꼽는 책이란 뜻이다. 그만큼 선불교의 정수가 모여 있는 책이 바로 벽암록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시작한 선불교는, 그러나 언어와 문자를 통한 탐구로 전승될 수밖에 없었다. 이 언어 문자를 통한 탐구는 송나라 때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는데, 선어록(禪語錄)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었다. ‘조주록(趙州錄)’, ‘임제록(臨濟錄)’등이 당대에 출간된 책이라면, ‘조당집(祖堂集)’(전20권), ‘전등록(傳燈錄)’(전30권)과 같은 방대한 공안사서(公案史書)는 송대에 출간된 책들이다. 이런 책들이 출간된 뒤 공안에 대한 본격적인 주석서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들 가운데 가장 윗자리에 있는 책이 벽암록이다. 벽암록이 나온 뒤 벽암록만큼 불교 선 수행자와 유교 사대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책은 없었다.

벽암록은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다시 살아난 부활의 책이기도 하다. 벽암록을 쓴 원오극근(1063∼1135)의 제자 대혜종고(1089∼1163)가 벽암록이 출간된 지 30년쯤 뒤 판각과 잔본을 모두 회수해 소각해 버렸다. 수행자들이 벽암록의 본 뜻을 저버린 채 언어만을 익히고 수행은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암록은 불에 타거나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벽암록이 불탄 190년 뒤, 거사 장명원이 벽암록을 되살린 것이다.

벽암록은 100개의 공안(公案), 즉 본칙을 중심으로 일종의 머리말인 수시(垂示), 촌평이라 할 본칙 착어(著語), 해석격인 본칙 평창(評唱), 공안에 대한 깨달음을 예지와 영감에 찬 시로 읊은 송(頌), 송의 착어, 송의 평창 등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벽암록치고, 수시에서 송의 평창에 이르기까지를 완전히 번역한 책은 없었다. 본칙은 모두 번역했으되, 수시나 착어, 평창 등은 빼고 번역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국내 최초의 벽암록 완역 해설본으로, 벽암록 전문의 원문을 수록하고 토를 달았다. 벽암록 네개의 이본(異本)을 대조하고, 100칙 공안 하나하나마다 활구(活句·참선으로 깨달아야 할 부분)와 사구(死句·읽어서 이해할 부분)를 일일이 구분해 제시했다. 역주작업에 10년, 출판에 3년이 걸렸다고 한다. 벽암록, 속어 낱말 사전까지 합쳐 전5권에 이르는 대작이다. 불교출판이 난숙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김종락기자)

동아일보(07. 06. 07) 禪어록의 백미 ‘벽암록’ 완역 출간

“벽암록 번역에 착수하고 나서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긴 했네요. 최선은 다했는데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뤄 낸 일에 비하면 돌아온 답변이 매우 겸손하다. 벽암록(碧巖錄)은 선(禪)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출가한 스님들도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선어록의 백미다. 중국에서 나온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한 지 9년, 교정과 편집에만 2년 반이 걸린 끝에 총 5권(사전 1권 포함)으로 펴낸 석지현(60·사진) 스님.

벽암록은 선의 문헌 가운데 첫 번째로 꼽는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알려져 왔다. 당대 선승들의 선문답과 어록을 담은 ‘조주록’과 ‘임제록’, 송대에 발간된 ‘조당집’ ‘전등록’ 등의 방대한 사서에 대한 주석서가 바로 벽암록이다. 설두중현(980∼1052) 선사가 조당집과 전등록 등의 책에서 가려 뽑은 옛 공안(公案)을 바탕으로 송나라 원오극근(1063∼1135) 선사가 이 책에 수시(垂示·일종의 머리말), 착어(著語·속담과 속어 등으로 이뤄진 촌평), 평창(評唱·본문에 대한 설명과 주석)을 붙인 것이다. 원오의 제자 대혜종고 선사가 “수행은 하지 않고 책만 읽는다”며 나중에 벽암록 판각과 잔본을 모두 회수해 불살라 버렸지만 190년이 지난 뒤 거사 장명원에 의해 전10권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벽암록은 여전히 어렵고 정복이 힘들었다. “선 수행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마지막 관문이지요. 이 이상은 없습니다.” 지현 스님은 13세 때 충남 부여 고란사로 출가했다 명상에 심취해 1970년대 중반 인도를 방랑했다. 인도의 명상가 라즈니시의 서적들을 최초로 한국에 소개한 이도 지현 스님이었다. 그는 명상의 끝이 결국 선에 이를 것이라고 결론짓고 1980년 다시 송광사로 재출가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출가 후 덕산 스님에게서 선어록을 공부한 이래 거의 독학하다시피 해 ‘선시감상사전’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벽암록은 모두 당송 시대 평민들의 사투리인 속어로 돼 있습니다. 문장체가 아닌 구어체이고 생활용어들입니다. 속어를 공부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당송 때의 속어사전까지 원전을 구해 공부했지요.”

스님은 벽암록을 번역하면서 아예 ‘벽암록 속어낱말사전’을 출간했다. 책을 발간한 민족사 윤재승 사장은 “책 번역하면서 사전 한 권까지 만들어 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벽암록이 3, 4종 나왔으나 일부만 번역돼 있거나 해설 없이 출간됐다”며 “돈과는 전혀 관계없는 책이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윤영찬 기자)

07. 06. 10

P.S. 그간에 <벽암록> 번역으로 가장 많이 읽힌 건 안동림 역주의 <벽암록>(현암사, 1999)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아니고 대신에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은 김용옥의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통나무, 1998)이다. 불교에 문외한이더라도 교양서로 충분히 일독할 만한 책이다. 그밖에 '선'과 관련하여 내가 상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스즈키 다이세쓰나 토머스 머튼 같은 학자/명상가들의 이름이다. 찾아보니 스즈키의 <선이란 무엇인가>(이론과실천, 2006)가 작년에 다시 번역돼 나왔고, 머튼의 책은 <신비주의와 선의 대가들>(고려원, 1994) 등이 절판된 듯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토머스 머튼과 틱낫한>(두레, 2007)이 소개서로는 유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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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초.호조키
요시다 겐코.가모노 조메이 지음, 정장식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렇다 할 일도 없이 지루하고 심심하여, 하루 종일 벼루를 붙잡고, 마음 속에 오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쓰노라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미칠 것만 같구나."로 시작되는 이 글은 30살에 출가하여 40대에 쓴 인생을 돌아본 유교, 도교, 불교적 깨달음이 어우러진 요시다 겐코의 글 모음집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30년 동안이나 중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을 만큼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나아가 일본 고전 수필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첫 서단의 글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심하여 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상사의 잡다한 글들을 그냥 써내려간 것 치고는 너무나 훌륭한 글들이 많으니 말이다. 마치 하루의 인생을 살아 본 하루살이가 다음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잘 알고서 새로 맞이하는 하루를 적어놓은 글 같다. 그의 글 속에는 그래서 몇 생을 살아온 할아버지가 웅크리고 앉은 것 같다. 삶의 어떤 희노애락의 곡선 위에서도 그것을 미끄럼틀 삼아 재밌게 타고 내려오는 어린아이의 동작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말이다. 때로는 인간의 삶으로부터 훌쩍 들어올려져 자연의 세계로 갔다가 거기서도 훌쩍 날아 올라 이 세상에는 없는 마음의 고향 속에 영원성 속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가 어느덧 평범한 인간의 인생사로 돌아와 작고 사소한 일 하나에도 미세한 감정 표현을 그대로 드러내어 인간 생활의 해학과 웃음 속에서도 뭔가 놓쳐버릴 수 없는 진한 향기를 떨어뜨리고 간다.

  카메라를 지금 이 순간 속으로 들이대기도 하고 자연의 흐름을 재빨리 감아서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들의 시선은 때로는 창조주만큼 커지기도 하고 또 미립자와 소립자의 단계를 너머 그 없는 텅빈 공간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 능구렁이같은 할아버지는 여자들과 어울려 질펀하게 놀아보기도 하고 삶의 의미 없이 권세와 명예에 휘둘려 허깨비같이 사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기도 한다. 그가 내려치는 손바닥이 바로 내 머리 뒤에 있는 것 같아 슬며시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호조키를 이 글의 뒤에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그림은 우선 밑그림부터가 다르다. 도연초는 그림에 달관한 마스터가 아무렇게나 밑그림을 스윽 스윽 그려내어 한 편의 자연스러운 경물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면 후자는 억지춘향꼴로 변사또의 수청을 뜨는 불편한 표정이 연상되니 말이다. 호조키는 인생의 수많은 굴곡과 배반을 통해 속세를 버린 한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씻어내고 편안해지려고 발버둥치는 인생 후편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앞 이야기와 뒷 이야기가 마치 대학생과 초등학생이 어색하게 어깨를 걸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 어색한 자세가 어쩌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공부도 제대로 못하면서 발버둥치는 내 모습이 호조키를 닮지는 않았는가? 연어는 죽을 때 자신의 새끼를 놓기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했지. 아마 내 마음의 지향점도 호조키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페이지를 거슬러 올라가 도연초라는 마음의 고향으로 달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도연초의 서문에 눈길이 자꾸 간다.

  "이렇다 할 일도 없이 지루하고 심심하여, 하루 종일 벼루를 붙잡고, 마음 속에 오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쓰노라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미칠 것만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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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서두가 정말 마음을 끄네요.^^

달팽이 2007-06-08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공감입니다. 혜경님.

혜덕화 2007-06-0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못 구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기억이 새롭네요.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예전에 느꼈던 감동을 느낍니다. 가끔 책 정리해서 아름다운 가게에 가져다주면서, 내게 꼭 100권만 남긴다면 무얼이 남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아직은 백권만 남기기엔 책이 많아서 차츰 차츰 줄어들면 추려볼까도 생각중입니다. 자꾸 사들여서 줄어들긴 커녕 좁은 책꽂이에 늘 빈자리가 없어, 책욕심도 줄여야하는데, 싶기도 하네요.

달팽이 2007-06-0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흐, 혜덕화님.
그 말 듣고 보니 저도 반성할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죽을 때 소용닿는 곳에 기증하고 싶군요...ㅎㅎ
이 책도 좋은 책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