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낮잠 - 사진, 여행, 삶의 또 다른 시선
후지와라 신야 글.사진, 장은선 옮김 / 다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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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와라 신야님의 책들을 보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억지로 표현하자면 '새로움' 또는 '신선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담아내는 파인드 속의 풍경과 사물 또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삶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곳을 향하는 그만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느낌을 가진다. 짜여진 스토리의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갖게 되는 뻔한 결말을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 표지 사진을 보면서도 인생의 낮잠이란 타이틀 속에 놓여진 개와 돼지의 경계없는 공간의 공유 속에 '종의 해탈' 속 서로 오가는 마음들이 풍경 속에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눈썹이 그려진 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흥미롭다. "인격은 타자에 의해 형성된다고 했는데 견격(?)도 타자에 의해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눈썹이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과 개가 화해하고, 마음을 나누고, 이 세계의 한 구석을 평화의 아우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천사의 눈썹이라 부르고 싶다." 도시화된 삶 속에서 서로서로가 고립된 섬처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가슴 속에 자신이 인연되어 닿는 사물과 생명에 이런 따뜻한 시선을 부여하는 그의 공간을 공유하고 싶을 마음이 생기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그의 이런 생활의 결정이 즉흥적이고 직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마음을 비워낸 상태에서 주어진 인연을 마음으로 갈무리해서 결정짓는 그만의 방식과 이미 결정된 미로의 길을 통해 들어간 그의 생활 속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는 그만의 여행방식과 사진에 담아내는 방식은 담긴 사진 속에서도 그만의 빛깔을 드러낸다. 책이란 매체다. 그것은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색깔과 매력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존재하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식상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일상적인 소재 속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오즈의 문을 그는 우리에게 열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민들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은 결과만을 담아내는 것이며 전쟁과정을 담아내는 작업은 훨씬 위험하며 힘들다는 사실과 완전히 탈진한 채 짐 더미에 기댄 젊은 여성에게서 엉큼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는 그의 솔직한 말 속에는 드러내기 불편한 자신이 속을 과감히 보여준다. 결국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솔직한 판단에 대한 마음이 떳떳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태도가 아닌가?

 

  이번 책에서는 사진을 많이 아꼈다. 대신 자신의 여행기를 글로써 많이 표현했다. 일본 여성지 [CERA]에 게재했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유방식을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고 그것은 또 다른 사진이 된다. 그가 보여주는 작업은 사진과 글이 같다. 결국엔 그의 삶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과 글을 통해서 보여주는 그의 삶과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풍경이 더욱 선명해지듯이, 이 책에서는 더욱 선명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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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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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어쩌면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죽도록 배고파보지도 않았고, 전쟁의 상흔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며...가정을 책임지고 가계 전체의 삶을 짊어지고 살았던 적도 없이 보잘것없는 고민들로만 인생을 허비하는 존재들로 보일런지도 모른다. 나 역시 불안과 감정의 소용돌이처럼 청춘을 보내고 있을 때 아버지로부터 가끔씩 듣던 소리였으니까...그런데 지금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그리고 대학생들을 보면 과연 그들은 우리가 대학다닐때보다 훨씬 더 많은 불안과 걱정 두려움 앞에서 자신들의 성장통을 겪어야 한다. 취학 전부터 공부로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경쟁의 끝에 대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더 치열한 경쟁사회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이 대학이요...또 대학 졸업인 것을.... 그러니 예전보다 훨씬 더 큰 영혼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픈 청춘들에 대해 위로해주고 따뜻한 한 마디 말로 격려해주고 그들의 처지를 공감해주고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전체의 시각으로 조언해주는 이 책은 고맙다.  

  인생이 커다란 바다라면 이제 그들은 배를 타고 강의 하구에 다다르고 있다. 그들이 헤쳐갈 바다엔 보다 큰 풍랑과 파도와 거센 두려움이 존재한다. 젊음을 보다 용기있는 시행착오로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이다. 밑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에서 힘에 부치는 밧줄을 쥐고서 대책없이 버티는 삶, 그것은 사회가 강요한 삶이다. 자신 스스로의 내적인 동력에 의한 삶이 아니다. 그 사회적 밧줄을 놓고서야 사회적으로 강요된 두려움을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성찰할 줄 알게 된다. 자신 앞에 놓인 자신의 사명, 또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운명적인 사랑, 그 하나의 사건 그 한 사람이 그대에게 커다란 바다가 될 수 있도록 자신있게 줄을 놓아야 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한 번의 붓질도 하지 않는 흰 캔버스 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 자신의 인생의 밑그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우리의 삶은 단 한 번 뿐이며 소중한 까닭이다.  

  "죽도록 힘든 네 오늘도 누군가에겐 염원이다." 자신의 현재의 틀에 갇혀 인생을 보지 못하면 자신을 둘러싼 두려움과 장애가 너무나도 크게 보여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어떤 극복방안도 떠오르지 않을 지 모른다. 삶의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끝임없는 좌절의 끝과 마음으로 가닿을 수 있는 희망의 꼭대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와 환경이 바뀌면 이 어렵고 힘든 상황도 저절로 새로운 상황으로 바뀌고 그 속에서 우리가 찾는 삶의 의미는 그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받아들였는가가 된다. 김난도 교수는 자신이 겪은 젊은 날의 방황과 그것을 지켜보며 얻었던 인생의 결실을 안다.  따뜻한 눈길로 세상의 모든 학생과 청춘에 격려를 하고 있고 그 선물이 바로 이 책이다.  

  청춘만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다. 중년 어느 언저리서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사람도 노년의 허무한 일상에서도 자신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 아주 평범한 일상의 나태함에 젖어 어떤 꿈도 꾸지 않는 사람들 모두가 이 책의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삶이 전 생을 통하여 배우고 성숙하는 것이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 성장통을 고스란히 내가 가져서 이 시기의 삶이 가리키는 바를 나는 직시하고 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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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장자와 혜자가 호수의 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다.  

장자와 혜자는 다리 위에 서서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자가 흥겨운 듯 물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유유자적하며 노닐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겠지!" 그러자 혜자가 물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거늘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나?" 장자가 곧바로 대답했다. 

"자네는 내가 아니거늘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가?" 혜자가 말했다.  

"맞네! 내가 자네가 아니니 당연히 알 수 없을 것이고, 자네 역시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네." 그러자 장자가 다시 말햇다. 

"아닐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해보세. 자네는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라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 어디에서 알았느냐고 질문한 것일세. 그러니 대답해주지. 나는 호수 다리 위에서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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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25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언뜻 봐서는 언어 유희로 들리는데.. 무슨 진리를 비추고 있는 걸까요? ^^;;
지나가다, 발자국 살포시 남기고 갑니다!

달팽이 2011-08-25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혜자가 장자가 아니니 네마음을 당연히 알 수 없다고 한 것을 논리적 오류라고 하는데....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은 개체를 넘어 상대방과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가의 문제가 생기죠...그렇다고 또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것도 쉽지는 않구요...저도 잘 모릅니다. ㅎㅎ
 
백가쟁명 - 유가.묵가.도가.법가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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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나온 백가쟁명, 그 많은 학파와 논쟁은 어떤 현실에서 나왔고 또 어떤 삶의 이념을 지향했던가? 미국과의 대결 속에 새로운 시대의 패권 국가로 발돋움하는 중국의 현실과 그 미래에의 전망까지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다고 말해도 우격다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송나라 나대경의 "학림옥로"란 책에 보면 [논어 반 권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오랜 세월 세간에 널리 떠돌았던 것처럼 왜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유가와 도가는 살아남았을까? 또한 어떤 매력으로 현재의 우리들의 삶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비전으로 우리 인류의 미래에도 어떤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역사가 흐른다는 것은 같은 사건의 반복일런지도 모른다.(세월이 흘러가도 해질녘 불어오는 바람이 태초에 불어오는 바람과 다르지 않듯이...) 제자백가 사상의 심오한 세상으로 발을 들여다 놓기 시작한다면 삶의 본질적인 면들은 삶의 역사적 모습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늘 우리들 눈 앞에 존재해왔던 것은 아닌지...하고 생각하게 된다. 


   유가사상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공자 사후 100년도 훨씬 뒤에 태어난 맹자에 의해 계승되었다. 인의 사상에서 의, 예, 지, 신(지와 신을 예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으로 표현된 핵심사상 속에 내 부모와 형제를 대하는 것처럼 친척을 대하고 이웃을 대하고 나아가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면 극기복례하여 세상의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유가의 태도는 군주의 입장에서 본 것이었다.  


  묵자는 보다 실천적이었다. 그는 천자, 제후, 대부, 사 그리고 서민들의 계급적 차별을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렸다. 가난과 굶주림도 마다하지 않고 철저한 자신의 수양을 통해 그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꿈꾸었던 그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 추구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아무나 따라하기 힘든 실천이었다고 본다.


  도가사상은 양주의 극단적인 입장(털 한 올을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에서 부터 노자와 장자로 이어지는 무위의 실천을 강조하기도 한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유가와 묵가가 결국엔 급변하는 사회에 참여하여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려 했다면 도가 사상가들은 그런 노력들이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보았고 자연적인 질서로 회귀하자는 사상을 담아내었다.  


  법가 사상은 상앙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한비에 의해 완성되었다.  천자나 제후 등의 위정자들의 전제적인 통치에 반대하였고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였다. 법가사상은 양면삼도설로서 형벌과 덕치를 함께 사용하려했고, 권세와 권술과 권능으로서 지휘력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세를 통해 위신을 세우고 술을 통해 신하를 부릴 수 있으며, 법을 통해 백성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들이 바로 군주의 수중에 있는 지휘도다."라고 한다.  예악이 붕괴되고 이해타산에 따라 서로 먹고 먹히는 비정한 정치현실에서 위정자들은 어떻게 하면 제국의 달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 사상은 매우 유용했다. 진시황제는 법가사상에 매료되어 이웃나라를 침략해서 법가사상가 상앙을 데려오기도 할 정도였다.

   이렇듯 그 사상의 갈래와 특색은 달랐을지라도 이 사상들은 모두 급변하고 혼란스러워보이는 현실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기를 원했고 또 극도의 혼란과 전쟁 속에서 천하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생명력을 가졌건 또 얼마나 현실설명력을 가졌건 그것은 뒤로하더라도 그 사상가들의 초심만은 어지러운 현세를 구원할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런데 왜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러한 백가쟁명이 나오게 되었을까? 이중텐 교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사상적으로는 인본주의를 확립하고 정치적으로는 덕치를 실현하며 제도적으로는 예악에 의한 교화를 실시했던 주나라는 성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섬세하고 뛰어난 제도와 문화가 있었기에 그 문화 속에서 백가쟁명의 사상이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 둘째, 주나라의 봉건제가 붕괴되고 사회가 급변하게 되면서 예가 파괴되고 악이 붕괴되면서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고 하는 사회적 필요가 있었던 점, 셋째, 정치적으로 신분적으로 그리고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였던 사인들의 활약을 든다.  


  중국민족의 지적 탐험의 총체적인 자산이고 그들의 문화유산이 되버린 백가쟁명은 인류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정표의 역할도 하리라 생각한다. 읽는 이의 시야를 넓히면 백가쟁명은 인류의 지혜의 보고이자 문화유산이기에 급변하는 그러나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현실의 변화 속에서 선현들의 지혜로 우리들의 위치를 점검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틀어서 보다 큰 수레 위에 우리 삶을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중텐 교수는  추상적 승계와 합리지양이라는 계승방법을 권한다. 백가쟁명의 각 학파는 그것이 급변하는 현실에 따라 어떤 사회적 필요에 의해 제기되었고 또 그 현실을 극복해가는 돌파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를 통해 어떤 것은 우수하고 어떤 것은 열등하다라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유가사상은 이미 도가 사라져버린 다음 인과 의, 그리고 예악을 지키려 한다는 것에 자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또한 군주의 입장에서 본 관점이라는 단점을 가지며 묵가는 이를 비판하여 전 계층의 평등을 주장하였지만 전 계층의 자유와 권리가 충돌할 경우 결국엔 상동이라는 의미로 다시 서열화된 해결을 주장한다. 결국은 독재나 전제정치의 출현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서열이 아니라 합리화된 법질서에 의해 통치하자는 법가 사상이 나오게 되나, 권세만 있고 도의는 없는 이해타산의 비정한 논리는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게 된다. 도가사상은 이 모든 내용을 되돌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또한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엔 사회적 해결을 바라고 그 제도와 사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이 모든 사상은 그 각 각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이 불가능한 후대의 우리들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정과 추상적인 체험을 통해 그 학파가 가진 고유한 장점을 습득하여 현실에 맞는 우리들의 모델을 찾아내면 된다. 또한 그 학파가 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고 대립하는 다른 학파의 치명적인 논리비판 속에 현실설득력을 잃어갔는지에 대해 문제점을 합리지양을 통해 역사적 교훈으로 갖자는 것이다. 법가 사상이 잔인하다고 해서 무조건 내칠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의 요청에 따라 나온 법가사상이 가진 장점, 군주의 전제나 독재를 타파하고 합리화되고 제도화된 법에 의한 통치는 결국 색깔은 다르지만 근대에 와서 모든 입법국가가 취하게 되었다는 점은 눈여겨볼만 하지 않은가. 


  제자 백가에 대해 몇 권의 책을 읽어보았지만 노장사상과 유가사상 그리고 묵가와 도가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잡아가게 하는 데 아주 그만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원서로서는 난해하여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소설책 읽듯이 술술 읽어낼 수 있게 하며 그를 통해 제자백가의 출현배경과 원인 그리고 사상의 핵심을 간략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정리해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도가사상에 대한 이 교수님의 평가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수작이라고 평가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책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 왜 어떤 사상은 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유가사상은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분서갱유의 탄압 속에서도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면면히 그 생명을 이어왔을까? 왜 그처럼 강한 생명력과 영원한 매력으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일까? 나는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인류의 보편적인 지혜와 진리를 담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끊임없이 호흡하려 했고 또 세상의 급변속에서도 사상의 본류를 간직한 채 필요한 곳에 생명수의 지류를 대어주는 물과 같은 유연함이 아니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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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 - 5000년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다, MBC 다큐멘터리 1
MBC 황하제작팀 지음 / 아롬미디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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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한중수교 15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황하제작팀에 의해 이 책은 2005년 여름 사전답사를 시작으로 1년 6개월 동안 황하의 전구역을 탐사해서 만들어졌다. 5000m 고원에서 시작되는 화하의 발원지인 칭짱고원에서의 고소증과 8월에 때아닌 눈을 만나 취재진이 단체로 고열에 시달리기도 하고 계곡의 급류에 보트가 뒤집혀질 뻔한 일도 맞고 조난을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과 생사의 고비를 거친 후의 결실로 만들어진 이 책은 황하에 대한 전방위적인 접근을 통해 황하의 시작과 끝 황하의 5000년의 물줄기를 통해 그로 인해 사는 많은 뭇생명들과 황하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황하는 길이가 5464km로 중국 최대 강인 양쯔강보다 좀 짧다. 발원지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칭하이, 쓰촨, 간쑤, 닝샤, 네이멍구, 산시(산서), 산시(협서), 허난, 상둥 등 9개 성과 자치구를 지나가며 산둥선 컨리현에서 보하이만으로 들어간다. 발원지부터 입해구까지 큰 지류만 40여 개가 있으며 평균 강우량은 400mm, 연간 경류량은 574억 세제곱미터이다. 황하 전체 유역에 걸쳐 약 2억묘(1묘는 200평)의 경작지가 있고 주변에는 주로 짱족, 후이족, 멍구족 등 9개 소수민족을 포함한 약 1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대대로 황하유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찬란한 고대 중국문화를 창조했으며, 중화민족의 요람이 됐다.  황하 유역은 북위 32~42도, 동경 96-119도 사이에 있고 서쪽으로 야라다쩌산, 동쪽으로 보하이, 북쪽으로 인산, 남쪽으로 친링까지, 동서 19,000km, 남북 1,100km에 걸쳐 있어서 유역 면적 75만 km2에 달하며, 이는 우리 나라 국토 면적의 8배에 해당한다. 오르도스 내륙지역의 면적까지 포함한다면 79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황하의 길이와 유역면적은 토사의 침식과 퇴적에 따라 계속 변하고 있다. 특히 하류의 입해구 지역은 퇴적량이 많아 수심도 낮아지면서 땅이 계속 생기고 있다. "  

  "황하의 상류의 유역 면적은 38.6 제곱킬로미터이고, 전체 황하 유역 면적의 51.3%를 차지한다. 상류구간의 총 낙차는 3,496m이고, 이 구간에는 유역 면적 1000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지류만 43개 나 있다. 상류 구간의 모래량은 전체 황하 모래량의 약 8%를 차지한다. 물은 많고 모래가 적어 이 구간은 맑은 물의 시원이다. 상류에서 아니마칭산 등의 영향을 받아 황하는 S자 형으로 흐른다. 황하 물길의 특징을 따라 상류구간을 다시 하원구간, 협곡구간, 충적평원구간으로 나눈다. " 

  "네이멍구 터쿼터현의 허커우진부터 허난성 정저우시 타오화위까지는 황하 중류이며, 그 유역 면적은 34.4제곱킬로미터로서, 전체 황하 유역 면적의 45.7%를 차지한다. 중류구간의 낙차는 890m이며 이 구간에서 30개의 큰 지류가 황하로 유입된다. 이 구간의 수량은 황하 전체의 약 42.5%를, 모래는 약 92%를 차지한다. 즉 이 구간은 황하 모래의 주발생지이다. " 

  "타오화위 이하는 황하의 하류로, 유역 면적은 2.3만 제곱킬로미터이고, 전체 유역 면적의 3% 정도를 차지한다. 하류의 낙차는 93.6m이고 증가된 수량은 황하 수량의 3.5% 밖에 안된다. 모래가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 유명한 지상하(물길이 주변 평야보다 높다)가 형성되고 높은 제방 안에 갇혀 흐르는 황하가 하이허유역과 화이허유역의 분계령이 된다. 다원허가 둥핑호를 통해 황하에 유입되는 것 외에 큰 지류는 없다. " 

 

  황하는 상류부터 고원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생명수를 제공한다. 야크를 기르고 살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물이라 불리는 황하의 발원지 주변에서 소박하게 삶을 영위한다. 이들은 알까? 여기서 시작된 황하가 엄청난 물줄기로 온마을을 덮쳤다가 수많은 문명과 도시를 낳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요 절망이라는 것을.....때로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생명수로 내려 허기지고 갈증난 땅과 사람들을 적셔주고 때로는 성난 파도처럼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때로는 엄청난 쓰나미로 문명을 쓸어가고 때로는 환하게 웃으며 이 모든 생명들의 삶을 돌보며 흐른다는 것을...이 황야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제 사는 지역과 위치에 따라 수많은 문명과 민족을 만들어냈고 그 많은 문명과 민족이 바로 이 황하물을 생명수로 해서 그들의 문명을 이어왔다. 대륙의 삶 속에서도 황하의 물줄기는 5000년을 흘러온 것이다. 황하는 흐르며 전통적인 티베트인의 삶도 지켜보고 눈 덮힌 다르 산의 사람들의 삶도 어루만진다. 시닝의 현대화된 삶 속으로도 들어가 그들의 정신을 지탱하며 만리장성의 생성과정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닝샤에는 황하의 선물을 내려주었고 숱한 석굴의 역사와 진시황제의 두려움을 지켜보려 시안에 이르렀다. 황하가 거쳐간 문명들....황하가 선물해 준 들판들 그리고 양식들.... 그 모든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황하의 물줄기가 되어 끝없는 순환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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