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타설 - 하 남회근 저작선 6
남회근 지음, 설순남 옮김 / 부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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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달여 남짓 걸린 도덕경 읽기가 한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아직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에 대한

깨달음을 갖진 못했다.

다만

창밖에 보이는 세상은 보이는대로의 세상이 아니고

또한

지극한 진리는 그 어떤 말과 표현으로도 다하지 못하니

마음 속의 '혹'이 하나 생겼을 뿐....

"위이부쟁"으로 끝나는 도덕경을 덮으며

"도"편은 가물가물

"덕"편은 파릇파릇

남회근 선생님의 웅장하면서도 해박한 역사적 설명을 따라가기에는

내 가랑이가 크지 못하다.

앗 하는 순간 길을 잃었다가

다시 길로 접어들다 잃기를 반복하다

어느덧 81장이 끝나고 말았다.

 

올해의 도덕경 읽기는

그래도 한자의 뜻풀이에 매몰되지 않고

나름대로

문맥을 살피려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머지 않아

다시 찾을거라는 다짐을

왕필주 "노자익"에

마음 한자락 고리처럼 걸어두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려 한다.

한편 부끄럽고

한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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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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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구나

슬픈 꿈이여.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겨울바람에 진다.

조선시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사대부집안의 여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숙명적인 운명으로

슬픔의 삶을 살다 간

난설헌의 묘지 위에

잠시동안만이라도

눈물을 헌사해야겠다.

어찌 그토록 시린

시련을 주려고

성장기의 그녀의 배경엔

따스하고도 사랑가득한

가족을 주었으며

글공부를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시를 주었단 말인가

그녀의 삶을

품을 수 없는

조선시대의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부딪혀

쓰러진 새 한 마리

결국 신분제사회의 벽에

부딪혀 쓰러진

한 마리

가엾은 새 되어

지상의 삶에

부려놓은

시에 대한 꿈을 거두어

천상으로

날갯짓하며

떠나버렸다.

아! 무릇 삶이란 무엇인가?

그녀는 어떤 인생의

경험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던가?

차라리 두꺼운 껍질로

온 몸을 둘러싸서

외부의 고통이라도

막아줄 나무나 될 것을

껍질도 없이

온 몸을 드러내고

백일의 짙은 향

세상에 드리우고

찬 바람에

장렬히 질

백일홍이었으랴

아! 삶이여

아! 슬픔이여

한낱 순간의 꿈을 깨어

시의 나라에 머물진저

지상의 울음 한 방울

천상의 시어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시 시로

태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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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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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조선시대의 이름만 들어보면 알만한 사람들의 자식에게 보낸 편지다. 추상같고 대나무같고 서리발같았던 기상을 갖춘 그들의 사적인 면모와 사생활에서의 꿋꿋한 모습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흔들리고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고 사소한 일에도 화나 서운한 감정을 터트리는 면들을 볼 수 있다. 손주를 보고싶어하고 출산에 기뻐하고 조바심을 내는 할아버지의 감정과 아내의 병수완을 직접 챙기며 부부간의 정을 확인하는 부분이라든가 자식에 대해 몸이 아프고 힘이 드는 상황을 토로하는 글에서는 그들도 인간적인 모든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또 다른 마음의 과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친근한 느낌들이 생긴다.

 

  그러나 조선시대 선비의 본분은 글읽기와 시 문장을 짓는 일이었고 나아가 과거에 응시하여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고 매듭짓는 기회로 삼는 것이었다. 연암처럼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과거장을 뛰쳐나오고 그림만 끄적이다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는 과거에 대한 응시를 권유하는 장면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였을까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더 나아가 박세당은 자식들이 이른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자 공부가 과거공부에 얽매이지 말고 더 큰 공부로 나아갈 것을 엄히 가르친다. 글을 여러번 읽고 외워 자신의 몸에 붙이고 생활화시켜서 이른바 자신의 삶이 되어야 비로소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선현의 가르침은 그들은 제대로 배웠던 것이다. 오늘날 전문적인 지식으로 나뉘어져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정밀한 분석력을 갖고 있지만 삶 전체에 대한 통찰에서는 무지한 오늘날의 공부가 되돌아봐진다.

 

  자식에게는 늘 엄한 모습만을 보였던 선비의 꿋꿋한 모습에서도 가끔은 못 다 풀어낸 따스함과 배려심이 묻어난다. 연암 선생은 그의 열하일기나 허생전 등 문집에서 보인 호호탕탕한 면들과 달리 자식을 위해 고추장을 직접 담그며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또는 자신의 노동이 들어간 고추장 맛이 어떤지 잘 먹고있는지 채근할 때에는 알뜰한 부자의 정과 더불어 조바심내는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친근하다. 국가에 나아가서는 사를 버리고 공을 위해 마음을 칼처럼 세웠다면 가정으로 돌아온 공간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따뜻함은 그들이 가진 이중성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보인 선비로서의 훌륭함과 사적 공간에서의 평범함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자식들에게 어떤 편지를 쓸 수 있을 것인가? 문득 나는 어떤 말로 어떤 내용으로 자식들에게 권면하는 충고를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묻게 된다. 봄이 지나가고 계절이 지나가는 자리에 서서 공부가 중요한 것은 예전의 선비나 나나 다름없지만 엄숙하고 두려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살뜰한 정을 나누는 그들의 지혜는 오늘날 어떻게 되살려내어야 할 것인지 오늘날을 사는 내게 하나의 고민거리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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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3-05-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자리가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죠?
부인에게 존경받는 남편도 마찬가지구요. ^^
달팽이님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달팽이 2013-05-2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안부 여쭙니다. 바람돌이님.
무탈히 잘 지냅니다.
가끔 들리는지라 때맞춰
답글 드리지 못함을 이해하세요.
잘 지내시죠?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
최승범 지음 / 이가서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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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에는 층차가 있다. 사물이 내는 소리와 자연이 내는 소리 그 모든 것에는 듣는 이의 마음이 주재한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소리들은 굴절되고 왜곡되고 또 마음의 지층에 따라 보다 깊은 울림으로 우리들의 마음 속으로 스며든다. 창 밖을 통해 보이는 숲에도 수많은 소리들의 차원이 존재한다. 바람을 타고 잎새를 뒤집는 가지들과 햇볕이 떨어지는 잎새의 소리들....날벌레들 날아다니는 소리에다가 봄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의 소리 그리고 아침의 숲을 가득채우는 산비둘기 소리, 참새 소리, 까치 소리, 까마귀 소리, 직박구리 소리, 휘파람새 소리도 간혹 들린다. 생명의 소리 가득한 휘황찬란한 숲에는 숲의 소리가 있다. 그 소리의 층차와 다양성에 사뭇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듣고 느끼는 마음이 있다. 마음이 그 곳에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맛을 보아도 맛을 알지 못한다는 말처럼....마음의 존재의 실상이 있는 자리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소리 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끌어들이는 소리는 무엇일까? 조선 선조때 서애 유성룡과 백사 이항복의 대화가 재미있다. 서애가 "술거르는 소리"라고 답하자 백사는 "가인해군성, 즉 미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답해 좌중을 한바탕 웃음에 들게 하였다. 아무래도 인간의 허기진 배에 입에 군침이 도는 음식소리야말로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해 귀기울이게 만드는 소리이다. 좌르르 톰방톰방 시름을 잊게 하는 술거르는 소리부터 찰찰찰, 졸졸졸 주전자에서 술따르는 소리, 호록 후루룩 국수먹는 소리, 뽀골뽀골 찌게 끓이는 소리 등은 언제 들어도 그 코를 자극하는 냄새와 함께 우리들의 향수와 감각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삶의 현장의 소리들도 많다. 사운사운 쟁기질 소리에다 쫄랑쫄랑 짤랑 짤랑 말방울 소리, 또드락 딱딱, 또드락 딱딱 다듬잇소리 등 시골풍경 속 그리운 고향의 소리들이 지금은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사라진 소리들이다. 찰칵찰칵 베틀소리 싸리비질 소리 돌돌돌돌 두레박소리, 팽글팽글 세월이 감기는 팽이소리 들도 얼마나 그리운 소리들인가?

 

  봄비 소리, 대바람 소리, 서걱서걱 갈댓잎소리, 동글동글 자갈자갈 조약돌 소리, 똘랑똘랑 낙숫물소리, 솰솰 물소리, 밤 개짖는 소리, 여름밤 개구리 소리, 어린 가슴 놀라던 풀숲의 뱀소리, 새아침을 알려주던 닭울음 소리, 푸두둥푸두둥 꿩울음소리, 가을밤의 눈물겨운 코러스 풀벌레소리, 아! 가을밤의 깊은 시름 부엉이 소리,

 

  소리를 채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옛 풍경 속 그리움의 소리를 채취한다는 것은 과거와 이어진 길이요. 우리들의 언어를 아름답게 되살리는 길이다. 마음이 먼저 투명해지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세월을 따라 돌고돌아 어느덧 사라져버린 우리의 옛 풍경들 속의 사물과 자연과 악기와 정서가 되는 소리들의 향연이 이 책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언제 들어도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고 편안하고 따뜻한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소리들의 교향곡을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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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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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어머니를 소재로 책을 썼을까? 그 모든 문학적 소산이 어머니라는 탯줄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일까? 흔한 상상과 더불어 이 책을 펼쳤다. 선생님이 그간 보여주었던 우리 문화에 대한 해박하고도 깊은 해설이 그리고 물흐르듯 표현하는 한국어의 구사가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박혔던지라 이 책을 고민하다가 구입하여 들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기독교세례를 받았다는 것에 일종의 편견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굳이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읽지 않았더라도 이 책을 읽게 됨으로써 선생님에 대한 편견같은 것이 오래된 낡은 껍질처럼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진실한 삶에 대한 고민과 살아있는 영성 같은 것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그 길을 찾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여섯 가지 은유는 자신의 문학적 샘물이고 우물물이고 바다였다. 어머니는 책이었고 나들이였고, 끊임없는 식량의 원천인 뒤주였으며, 어떤 과자보다도 맛있는 금계랍이었으며, 귤이었다. 그리고 바다였다. 어머니가 마지막 병석에서 드시지 않고 귀한 것이라 보내온 귤은 어머니의 유골과 함께 묻혀졌으니 그 귤은 가슴 속에 묻어둔 귤이지 이미 먹는 과일이 아닌 것이다. 바다 해 자에는 어머니 모자가 들어가있다. 자식을 향한 무한하고 아낌없는 사랑의 원천 그것이 바로 어머니란 존재일 것이다.

 

  감기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조자 나누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선생님. 아픔이 없는 사람과는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감기몸살로 꼼짝없이 누워있는 아들의 이마에 짚는 손이야말로 타인의 아픔과 소통하는 것이며 그 아픔을 내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즉 어머니의 마음이다. 세상과의 소통엔 이런 이마를 짚는 소통이 필요하다. 세상을 모든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는 자가 있다면 바로 예수님이고 부처님이고 절대자일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선생님이 세례를 받은 마음의 동기에 대해 풀어놓으신다. 일평생 지식과 지성으로는 최고의 삶을 사셨다. 26에 대학교수와 신문사 논설위원이라는 최고의 지성의 자리를 지켜왔고 그만의 방식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해설을 통해 한국에 그 이름을 새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70이 넘어가면서 그같은 지식과 정보는 진정한 삶을 만나는 데 장애물이 된다는 깨달음을 가진 것이다. 정직한 믿음과 깨인 마음이야 말로 순간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게 되고 순간의 주어진 생명을 축복하고 감사하게 된다는 깨달음 속에서 비로소 참된 행복과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선생님의 마지막 걸음을 통해 보다 새로워지고 깊어진 글들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고의 지성인으로 맹목적 기독교의 폐단을 이미 알고 있으시기 때문에 그만의 독실하고 참된 믿음으로부터 시작한 영성의 성장과 그 영성의 글을 계속해서 세상에 풀어놓으시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알겠는가? 모든 종교를 떠나 진실한 믿음의 세계에서 보는 세상은 모두 아름답다는 진리의 말씀을 세상에 풀어놓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의 영성의 세계의 첫 발이 지성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지런하고 박식하고 끊임없는 탐구정신을 통해 깊어지고 또 넓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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