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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대기근 - 삼백만 명이 굶어죽은 허난 대기근을 추적하다 ㅣ 걸작 논픽션 5
멍레이 외 엮음, 고상희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73년이 넘은 오늘날 우리는 중국의 허난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중국조차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블랙박스 속에 집어넣어진 채 1942년의 아픈 상처와 비극은 그 생존자들의 가슴 속에서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가뭄으로 생긴 자연적 재해가 사회적 인재와 겹쳐져 부산 인구가 아무런 시선도 구제도 받지 못하고 1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그들 모두가 굶어서 죽게 된다면....
때는 1938년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때 국민당 정부는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황하의 물을 담고 있는 화이안커우 제방을 폭파하기로 한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제방의 폭파가 바로 1942년의 대기근을 낳게 한 원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제방 폭파가 일본군의 저지와 그 피해를 주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위정자라면 이러한 결정은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폭파로 인해 황하물이 범람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은 자다가 지붕 위로 들어찬 물에 수장당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폭파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수는 89만명이고 그로 인한 피해민은 1250만명으로 추산되었다.
북극에 있는 빙하의 사진을 보면 그것이 이 사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은 자연적 재해라고 한다면 그 물 아래의 대부분의 덩어리들은 1942년의 대기근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재해 부분이다.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린 국민당 정부와 장제스 그리고 부패한 관리들, 막힌 언론과 부실한 피해구제책이 이토록 절묘하게 어우러져 허난성 주민들을 굶주림 속으로 내몰았고 최소 300만에서 최대 5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기까지 수많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이 지상의 지옥을 경험했던 것이다.
당시 허난성은 일본군과 중국군의 전쟁 속이었고 국민당은 주민들의 생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주민들의 구제책이 일본군에게 식량을 제공해주거나 중국군의 사기저하로 이어질까 걱정하였던 것이다. 허난성은 인류최대의 기근을 겪으면서도 중국에서 세금이 가장 많이 거두어진 지역이 되었고 부패한 관료들은 일신의 부귀를 위해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재난을 기회삼아 부를 축적했고 욕망을 충족했으며 지위를 추구했다.
지옥이 있다면 우리들의 사악한 마음에서 드러나서 펼쳐진 세상이며 그 지옥에서 핀 선의 꽃 또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일본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나고 나무껍질과 갈매기 똥과 흙으로 연명하던 주민들이 결국은 굶어서 죽고 아버지가 아들을 팔고 아내를 팔아넘기고 자식의 인육을 먹는 반인륜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있을 때에도 그 지옥에 내린 구원의 손길을 정부와 국가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혹한 정치는 전쟁보다 더 무섭다고 했던가?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반인륜적이고 식인적인 행위 또한 마음에서 장벽을 쳐서 닫아버렸다. 기차에 걸린 시체를 밟고 기차에 오르고 길거리에 밟히는 신체 일부가 없어진 시신을 밟고 지나가면서도 먹을 것을 찾아서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했던 지구의 역사 한 켠에서 그들은 그 누구의 희망의 손길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자식의 인육을 먹던 사람도 다른 사람의 음식을 훔쳐먹으며 생을 이어갔던 사람도 갈매기의 똥을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살려고 몸부림쳤던 사람들 모두가 굶어죽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삶의 성숙함과 고결함과 아름다움은 있었다. 자신을 팔아버린 남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대하면서도 자신이 입은 바지가 더 깨끗해서 바꿔입자고 하는 아내의 모습에서...추운 겨울 거리에서 먹을 것이 없이 차가운 땅에 누워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의 육체를 껴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부부들과 비록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같은 이재민을 챙겼던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
이주일동안 이재민과 함께하며 취재하여 타임지에 실어서 미국민들의 구제여론을 이끌었던 화이트 기자와 대공보를 통해 허난성의 재난을 바로 알리려고 노력했던 장가오펑 그리고 많은 이재민을 살린 예극의 여왕 창샹핀 등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재를 기꺼이 털어서 먹을 것을 제공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지옥 속에서도 피는 꽃이었다. 비록 자신의 이해관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도 기꺼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던 보살들이었던 것이다.
뒤늦은 국민당의 구호정책과 그 속에서도 구호물품을 빼돌렸던 탐관오리들과 탕언보의 사악함으로 이재민 구호정책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1942년의 대재앙은 중국역사에서 잊혀져서는 안되는 꼭 기억해야만 하는 시대의 비극으로 남았다. 이제 그 생존자들도 소수만 생존해있다. 1942년이 단순히 중국만의 비극과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람들 마음의 보편적인 악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의 교훈이 된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 속의 악을 치유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어찌 지금 우리라고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부패한 정치인과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어떤 인연과 상황을 만나면 1942년은 지금 이 곳에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것이 바로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1942년에 어떤 잘못도 없이 선량하게 살다가 전쟁과 국가의 무능과 부패한 관료와 허술한 사회시스템으로 지옥 속에서 고통받았던 그 영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을 동안이라도 금강경 독송하며 이 경을 읽는 공덕을 1942년 허난성 이재민의 영령 앞에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