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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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은 넓다'를 아주 기분좋게 읽은 나는 '서울은 깊다'라는 제목에서 끌렸다. 비록 대한민국의 수도이기는 하지만 내가 거주한 것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보아도 된다. 즉 어떤 거리와 건물과 지리를 이야기하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적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역사 속의 어떤 이야기들이 내 눈을 통해 가슴을 자극시킬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서울은 그 피상적인 느낌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 이름으로도 너무나도 익숙했다. 바로 이렇게 익숙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섬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들게 만들었다.

 

  조선의 역사와 더불어 서울은 우리나라의 500년 수도로서의 첫 출발을 하였다. 우선은 그 어원부터인데 '새벌'로 새로운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서울의 동서남북과 보신각이 유교의 인의예지신에서 왔고 그런 의미에서 유교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왕 중심의 사회를 바랬던 이방원이나 그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신권 중심의 정치를 바랬던 정도전이나 모두 유교중심의 질서를 세우려했다는 점에서는 함께 하였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수도였던 만큼 한국사를 관통해간 거대한 사건들은 서울을 비켜가지 않았다. 왕조의 흥함 속에서도 서울은 함께 했고 왕조의 쇠퇴와 몰락의 길에서도 서울은 함께 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성의 모습으로 일제식 건물과 문화가 쏟아져 들어왔는가 하면 6.25 동란으로 인한 파괴와 피해를 고스란히 간직하여야 하였다. 1950년대부터 고달픈 경제개발이 시작되고 80년대 후반이 되어서 대한민국 모든 지역의 영양분을 흡혈귀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서울은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서울에도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민초들의 삶과 정과 애환이 깃들여 있었고 선비들의 정신도 있었고 정자문화의 풍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권력을 향한 의지와 피비린내도 진동했다. 시대에 따라 땔감을 해서 먹고사는 직업도 있었고 뱀을 잡아서 팔아 먹고사는 계층도 존재했으며 근대에 와서 물장수도 등장했다. 복덕방도 이 시기에 등장하며 새로운 직업으로 화려하게 무대 위로 올라왔다. 특히 이 책에 실린 서울의 근대 모습 사진은 내가 처음 접하는 아주 귀한 자료처럼 보인다. 서울이 복잡한 건물들로 가득 메운 곳이 아닌 한적하고도 여유로운 공간 속에 가로수길도 흙길도 그리고 청계천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들의 모습도 청계천에 몸을 담그며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도 모두 친근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서울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한 권의 책이 우리 나라의 수도 서울을 조금은 정이 붙게 만들어 준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의 블랙홀로 대한민국 사람으로 나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처럼 기회의 땅이기도 하고 착취의 공간이기도 하고 급속하게 변화하는 빠른 시간의 블랙홀이기도 한 이 공간 서울,  이 곳을 시대의 창을 통해 바라보니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사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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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이 사랑하고 싶다 - 사랑하지만 상처받는 이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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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변함없는 동서고금의 주제다. 그러나 과연 그 누가 상처없는 완전한 사랑을 할까? 사랑은 생물학적인 시작을 출발점으로 해서 심리적인 갈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결국은 정리되는 과정을 밟는다. 때에 따라서 한 생을 관통하는 운명적 사랑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사랑의 스토리를 각자는 쓰게 될런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은 사막에서 물을 찾듯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정작 그 '사랑'으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자아존중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 원인이 어떠하건 간에 그들이 안정적인 정서감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관계면이나 조직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며 특히 사랑의 짝을 찾고 사랑하는 데서도 그런 문제점이 지속된다. 자존감의 문제는 허세적으로 자아도취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상대방에 무조건 맞추어주려고 하면서 자아도취를 얻으려고 하는 데서 나타난다. 주로 전자는 남자에게서 후자는 여자에게서 자주 나타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자아라고 하는 마음 속의 집착이 불러낸 현상의 여러가지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이런 나르시시즘을 가진 남자나 여자가 누군가와 만날 때는 그 관계가 지속될수록 갈등이 생기고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공감하고 교류하기보다는 자신만을 들여다보고 자기중심적인 자아에만 촛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허세적 나르시시즘의 여자와 열등감 나르시시즘의 여자가 만날 때는 불꽃이 튀는데 이는 주로 상대방의 억압적 기제가 잘 짝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서로를 파탄으로 몰아가게 되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문제를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업장대로의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그 인연이 선연이면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가겠지만 악연이 되면 서로의 업장을 부풀려 더욱 악연으로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만다. 이런 자아에 대한 집착에 빠진 자가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를 스스로 고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두 사람 모두가 부정적 업장으로 만나 함께 관계를 지속해나갈 때 생긴 갈등은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두 사람 모두의 관계개선의 의지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아도취감에 빠져 있고 그것이 인생의 훈습으로 고착화된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의 의미가 쉽지 않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이나 비난 또는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 단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로 각색되어 보이고 그것이 자신의 자존감을 침해하지 않도록 방어기제를 만들어 마음 속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패를 치게 되면 관계는 어떤 식의 개선도 어려워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뀐다고 개선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 된다.

 

  따라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9가지 법칙을 저자가 대안으로 내놓는 것도 이것을 관계의 법칙처럼 받아들여 무조건 행동화시킬 때에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아니면 마음을 닦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투명하게 업장을 비워내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관계의 '공진화'를 추구하라. 공진화란 함께 생활하는 연인이 서로 개인적 발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커플의 담합이라 부르는 이는 두 사람의 애정과 파트너쉽을 높이는 관계맺기라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심리전문가가 절대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허세적 자기도취자를 남편으로 둔 보완적 자기도취자의 경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관계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파트너를 동참한 심리코칭이 전제되어야만 건강한 관계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유의할 것이다.

 

  솔직한 대화를 시도하라.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감정의 침해를 받았는지를 그리고 그로 인한 자신의 감정상태가 어떤지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또는 말을 솔직히 듣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당신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 말하고 당신의 욕구를 표현하라. 당신이 상대방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혹은 그러기를 원치 않는 경계를 분명히 설정하라. 상대방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할 때 적극적으로 방어하라.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을 머릿속으로 맘대로 해석하지 말고 직접 물어봐라.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발전시켜라. 조작, 복수, 시기를 피하라."

 

  둘만의 '마법의 주문'을 만들어라. 행동을 중단해서 파괴적인 행동을 피하는 절대의 말을 약속하라.

 

  평가가 아닌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라.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

 

  내면의 생명력을 발견하라.

 

  질문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접점을 찾아라.

 

 

  다음의 아홉가지 저자의 9가지 법칙을 행동습관화하면 관계가 최악을 갈등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더욱 파트너쉽이 공감과 이해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없이, 자신의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림없이, 이 모든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강요의 부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체험이 없다면 어찌 스스로 마음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포커스는 "내면의 생명력을 발견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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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청 - 중국 최후의 제국 하버드 중국사
윌리엄 T. 로 지음, 기세찬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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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의 동양사는 주로 서양인들의 시각에 의한 것이었고 아시아사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아시아사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은 아시아가 서양과는 다른 발전경로를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서양처럼 오랜 민주주의와 산업발달, 그리고 전근대성의 혁명적 방법에 의한 혁파 및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성립 등과 같은 일반적인 방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저개발성 및 낙후성은 서구와 같은 단계를 밟기에는 부족한 정치체제였으며 경제적 기반 조성 또한 없었다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로는 아시아의 근대 역시 서구와 같은 방식의 흐름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생적인 발전 속에서의 시장의 형성과 자본의 맹아인 화폐의 발달, 상공업의 발달과 중세도시의 발달이 있었고 봉건제를 혁파하기 위한 노력들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서구적 관점에서 중국을 들여다본, 청이라는 시대의 중요성은 중국의 근대 사회로의 이행의 단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청나라는 중국의 현재의 모습을 형성시킨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청나라에 와서 중국은 명나라 때의 영토의 두 배에 이르는 넓이를 확보했다. 청나라는 그 외 많은 봉건적 잔재와 불충분한 근대화로 인한 치욕스런 사건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중국 역사에서 그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청나라에 와서 중국의 인구는 1억명에서 4억 5천만에서 5억 정도까지 증가를 했는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청은 자산으로 가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선 생산력의 증가이다. 농토의 증가와 노동력의 증가 그리고 새로운 농토의 개간, 새로운 영농법과 강력한 통치체제의 확립은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시기 동안 한족이 통치하였을 때에는 한족의 지배에 대항한 주변민족들의 필연적 분리주의를 가져오게 했던 반면 만주족에 의한 새로운 통치는 중국사회가 다문화사회와 다문화정책으로 가는 중국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이다. 지역을 다스리는 방법에서도 청은 한족과 만주족 또는 다른 민족들의 공동통치를 기본으로 하였다. 이 청제국을 자산으로 현재 중국은 50여개의 소수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통치방식의 세련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구 13억 중국의 잠재력이 현대에 와서 꿈틀거리고 있다. 경제는 이미 미국 다음으로 2위가 되었고 또 미래의 어느 멀지않은 시기에 패권을 쥐게 될 것으로 세상은 내다보고 있다. 다음으로 그 국격에 걸맞는 군사력의 확장과 아시아에서의 패권 확대를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일본의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하였고 미국의 아시아 진출 정책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그만큼 중국의 세계에서의 중요성이 그리고 그 위협이 커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 중국의 근대화가 서양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견제 속에 놓여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거대한 용의 움틀임은 더욱 시대적으로 빨리 세상을 끌여들였을런지도 모른다.

 

  서양처럼 확실하고 배경을 갖춘 봉건적 잔재의 청산도 아니었고 '중체서용' 식이 아닌 철저한 근대화도 아니었던 중국의 근대화를 대체로 실패한 것이라보 보는데 주저함이 없다. 청일전쟁에서의 패배의 충격과 그 뒤 이어지는 사회주의화 역시 중국의 현대화를 늦추었던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중국에 서구문물의 전파와 그로 인한 중국의 내재적 발전을 지켜봤더라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 중국의 힘이 두려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국의 탐욕에 의해 중국을 큰 식단으로 여겼기 때문인지 그 원인을 무어라 단정하기 어렵다. 영국이 아편을 중국에 그토록 집요하게 팔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내부적 개혁에 대한 서구의 방해공작이 없었더라면.....중국에서의 자본의 형성이 어찌 어려웠겠는가? 중국에서의 봉건적 잔재의 청산이 어찌 불가능한 것이었다고만 말할 것인가?

 

  청 말기의 신사층의 형성과 그들에 의한 자생적인 반봉건제의 청산과 근대화의 움직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처럼 반외세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의화단 사건과 같은 복고주의가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태평천국운동, 변법자강운동 등 신사층에 의해 주도된 지방분권주의와 근대화의 움직임 또한 외세의 개입없이 자생적으로 두었더라면 상업의 발달과 자본의 형성에 의해 낡은 봉건적 잔재의 일소까지 가면서 새로운 정치체제를 창출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중국 역사 최후의 제국이었던 청의 몰락은 새로운 중국사회를 예견한 것이었을 것이다. 비록 열강들에 의해 찢기고 유린당한 깊고 오랜 상처 위로 오랫동안 움츠렸던 중국이 이제야 비로소 많은 준비를 갖추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중국에 의해 다시 쓰여질 세계사의 시대가 오면(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다.) 청 제국에 대한 중국 스스로의 평가는 다시 내려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 역시 그에 맞추어 변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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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7
윤동주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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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가 '사랑스런 추억'이다. 윤동주 시인은 생의 마지막 시기 3년을(1942~1945)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을 둘러보니 고향에서의 유년시절과 연희전문학교시절을 둘러보며 인생을 고민하고 시대를 고민하고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던 그 때를 지칭한 것이 아닐까. 윤동주 시인이 향했던 고향에의 꿈이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나 문학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의 우정이 사랑스런 추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73편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의 시작이 어떤 흐름으로 나아갔는지 그리고 그의 조국의 현실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발전해갔는지....조국을 빼앗긴 시대의 지성으로서 한 민족주의자의 고뇌가 어떠했는지 조금은 읽혀진다. 15세의 나이에 발표한 '초한대'와 '삶과죽음'이라는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시적인 자질을 타고 났으며 또한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했는지 도저히 15살 소년의 사유라고 볼 수 없는 면들을 보여준다. 그 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조국의 현실을 알게 되고 민족운동과 조선의 문학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일제의 증오의 대상이 된 연희전문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때에 민족 운동의 본산인 연희동산을 찾아오는 이들은 다 제각기 뜻이 있어 온 젊은이들이었다." 라는 유영 전 연세대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 시기 20살을 갓 넘은 나이에 이미 윤동주 시인은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자신의 소명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 때 나온 시들을 보면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의지를 세운 글들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길'에서는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거외다."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구체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궁금하다. 문학공부를 하고 싶어서 였을까? 이중섭 화백처럼 공부를 하러 간 것일까? 그런데 3년이 지나 고국으로 돌아오려 할 때 재일한국인청년들의 모임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그는 형무소로 가게 된다. 그의 사촌 송몽규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한다. 윤동주 시인의 형무소에서 죽게 된 동기도 분명치 않다. 아직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라고 하면 지독한 옥사가 있었던지...아니면 어디에 적힌 말대로 생체실험용 주사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조국을 떠난 식민제국의 나라에서도 대학동기생들이 다 나온 송별회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민족에 대한 독립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지금 우리들은 20대 후반이라고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전선을 전전긍긍하면서 정규직이 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대가 어른을 만드는 것인지 이미 성숙한 영혼으로 태어나 시대적 소명을 읽고 자신이 그에 맞게 행동한 것인지...일제 시대와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살다간 사람들의 나이에 비해 이른 성숙함에 때로는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성숙함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민족을 위해 살았던 그들이 추구하였던 그 '민족'이란 또는 '조국'이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게 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들이 몸바쳐 희생한 그 '민족'의 자랑스러움 속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 책임은 또 누구에게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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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는 누가 만들까? - 부자 나라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 한걸음씩 1
강수돌.강양구.김은식.박현희.홍은전 지음, 장욱진 그림 / 나무야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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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총행복'이라는 지수를 사용하는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다. 히말라야 남쪽에 자리잡은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이 나라는 하루 관광객이 머무는 체류세금이 200달러나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300명만 관광객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관광수입보다는 환경보전과 그 환경을 국민이 일상으로 누리는 삶의 질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탓이다. 국민총생산으로서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국민총행복으로는 우리나라의 10배 이상은 될 부탄, 17살의 어린 국왕에게서 나온 이 '국민총행복'지수의 강조로 부탄은 서로 더불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고 우리나라보다 더욱 세계에 많은 기부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발전과 평등성을 함께 고려하여 임금격차가 적고 필요이상의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하지 않고 나아가 과도한 경제발전으로 인한 피해가 없는 국가다.

 

  행복에는 일과 직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장래 희망이 무엇이고 또 어떤 직업을 가지면 행복하게 살거라 생각하고 끊없는 경쟁 속으로 우리들을 그리고 아이들을 몰아댑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노동인구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결혼과 행복한 가정과 보람있는 직업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고달픈 인생이라 봐야 하지요. 더더욱 정규직과 그리고 고소득 자영업자와 엄청난 소득격차와 부의 불평등을 겪으며 사회적 박탈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 전체가 건강하고 행복한 꿈을 꾸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우선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임금격차를 줄이며 나아가 무상교육제도를 완전히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적 박탈감없이 국민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될 때 지친 경쟁으로부터 마음이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낮에 나온 달' 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지요.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 그 중 장애인들의 이동권보장을 위한 힘겹고도 오랜 투쟁이 있었습니다. 권리라는 것은 권리당사자가 스스로 시민으로 나서서 자신의 권리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싸워가면서 획득되는 민주주의적 권리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없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저절로 주어진 것 처럼 보이는 보편적 복지도 그를 위해 싸우고 희생했던 역사적 힘이었고 외침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경제 규모 및 경제 발전 1위인 미국 속의 그늘 '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사회의 '건강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얼마나 질병과 사고로부터 위험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지요. 손가락 두 개를 잃은 노동자는 그 중 어느 하나를 살릴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결국 경제발전정도가 높고 가장 국민총생산이 높은 나라일수록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큽니다. 위험에 처한 국민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불안합니다. 그 사회를 선택한 것은 바로 그 나라 국민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미국식의 의료보험제도를 주장하는 권력들이 있지요. 그것이 어떤 결정으로 나아가든지 그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어서 시민적 권리에 눈 떠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호세 무히카' 우르과이 대통령이야기로 우리에게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세지로 마무리합니다. 집이 없고 1300만원 월급 중 130만원만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기부하고 낡은 차를 스스로 몰고 출퇴근하고 농사일을 하고 사는 동네할아버지같은 대통령. 그런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왜 130만원을 쓰나요? 라는 질문에 국민 대부분의 생활비가 130만원 정도라는 대답 또한 감동적입니다. 부를 권력을 축적하지 않고 인류전체의 미래를 볼 줄 아는 마인드의 소유자, 그가 보여주는 말없는 실천이야말로 우리 세상을 바꾸어내는 시금석입니다. 그런 우르과이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우르과이 국민이야말로 전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자이며 인간주의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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