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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이야기
장일순 지음 / 다산글방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을 덮고 난 뒤 내 뇌리속엔 다시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노자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쫓아, 다시 그 손가락을 가리키는 장일순 선생님과 이현주 목사님의 대화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이 우주를 지탱하는 그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비록 그 뜻을 깨치기 위해 손수 써보았던 5000여자의 한자는 가물해졌지만 예전에 없던, 아니 내가 알지 못했던 도의 향기 또한 봄의 향기처럼 내 마음을 에워싸는 것이 뿌연 안개가 드리워진 듯 합니다.
말로 표현될 수도 없고, 눈으로 보여질 수도 없고, 감각으로 느껴볼 수도 없는 그 도를 5000여자의 한자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그것은 말로, 눈으로, 코로, 입으로, 감각으로 알 수 없어도 그것을 아는 내 마음 속 무엇인가를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도를 어떻게 아느냐고 하면 그것을 아는 내 속의 어떤 존재가 있음으로 그것을 안다고 하겠습니다. 책을 덮으며 비록 도에 관한 많은 문구들은 사라졌지만 도라 불리우는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은 내 마음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말에 매인다는 것은 손가락에 매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에서, 그 손가락에서 헤어나는 길은 몸을 가짐으로해서 생기는 그 몸의 불연속면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것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손가락이 아닙니다. 우선은 사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위함을 깨우쳐야 하는 것이죠. 그런 다음에라야 자연의 도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도가 거대하고도 평온한 바다라면 그곳을 알고 흐르는 강이, 계곡물이 무위의 도입니다.
그 도를 안다면 그래서 그 도에 어긋남이 없다면 그 아는 마음은 온전한 세상과 만나는 길입니다. 비록 현실은 도가 무너져내려 인과 의와 예와 지와 신이 생겨나고 옳고 그름에 의해 알고 모름에 의해 더욱 유위(有爲)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 무너져 내린 도가 우리세상에 어떤 균형맞춤의 재앙을 가져올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사회가 지탱되는 까닭은 바로 그 무위자연의 도를 아는 자들이 그 도로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노자 할아버지가 이 글을 남긴지가 2000년도 훨씬 더 지난 오늘날에도 그 말하는 바가 마치 오늘날의 모습을 그 손바닥위에 올려 놓고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을 보면 도덕경의 말씀이 무수한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꿰뚫는 본질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현상적인 삶인 상대적인 세계를 벗어난 절대적인 세계가 존재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축소판인 우리에게도 상대적인 육신의 존재와 절대적인 존재가 있음을 비추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이 깊을수록 상대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도 깊어집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도의 세계를 향한 탐험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