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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중용
강희장 / 자유시대사 / 1993년 6월
평점 :
품절
중용에 보면 생이지지한 사람도 있고, 학이지지한 사람도 있고, 곤이지지한 사람도 있으나 지(깨닫거나 완전한 참됨을 이루면)하게 되면 다 같다고 했다. 나는 곤이지지한 범부에 불과함을 늘 느끼고 있지만 이 글을 쓴 강희장은 아홉살 때 이 대학과 중용을 해석하였다. 그가 풀이한 대학의 첫 구절인 격물을 "외부의 물에 대한 욕심을 끊어낸다."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그는 생이지지한 사람이로구나. 단순히 나이로 그를 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삶을 살다보면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이에 맞게 자신의 인격을 가다듬어온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자신의 탐심과 욕심이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져서 아이보다도 못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도 대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단순히 그 사람을 욕하며 피하기 보다는 그를 통해 비춰진 나의 닦여지지 못한 것을 닦으려는 노력을 최근에서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러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도 나는 전혀 어리다고 생각할 수 없는 성숙한 아이들을 보게 되니 그들을 볼 때 나도 그들에게 배우는 바가 없지 않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몸의 나이만으로 세상 사람들과 교우하기엔 너무나도 그 품성이 달라서 몸의 나이를 뛰어넘어 품성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끌리게 됨을 어찌할 수 없다.
지극한 선, 명명덕, 천성, 참됨을 이루는 것 등 등은 비록 표현은 달라도 그것이 가리키는 바가 다르지 아니하다. 여기서 우리는 말이 갈 수 있는 그 끝에까지 가게 된다. 내가 방학을 맞아 비로소 동양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어내려야겠다고 마음먹고 든 첫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역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소감은 내가 이 길에 잘 들어섰다는 생각이다. 대학과 중용의 핵심은 바로 마음공부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자님의 삶과 깨달음이 얼마나 깊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도 또한 깨달은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첫 출발은 자신을 먼저 닦는데 있다. 자신이 완전한 참됨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몸을 평화롭게 할 수 있고, 능히 그런 자이어야 자신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고 자신의 국가를 평화롭게 하며 나아가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문제점을 외부에서 찾고 제도적이거나 사회적인 해결만이 능사인양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길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다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그 밖의 모든 방법 또한 아무 소용이 없음을 눈이 밝아진 다음에라야 비로소 알게 된다.
아홉살에 불과한 신동 강희장이 쓴 글은 아주 힘이 있으며 천지를 호령하는 기상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람은 그가 가진 참됨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생이지지한 사람이다. 비록 몸의 나이는 어려도 그가 이해하고 있는 고전의 깊이나 그가 보는 세상을 향한 눈, 그리고 그가 짧게 살다간 인생은 현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몸과 자아를 초월한 뒤에라야 비로소 참되고 완전한 앎도 가능한 것이며 어리지만 생이지지한 그와의 만남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가 가진 외부적인 편견을 버리고서 말이다.
좀 늦게서야 시작한 글공부가 이젠 좀 더 깊어져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곤이지지한 능력밖에 없는 나로서야 안달할 이유가 없다. 다만 게을리 하지 않을 뿐이고 끊이지 않을 뿐이다. 이젠 고전의 글들이 좀 더 나의 마음속으로 때로는 삶으로서 이해되어지는 바가 생긴다. 삶으로 또는 스스로 체험하고 증험하지 않고서는 머릿속의 이해만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대학, 큰 배움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하늘과 땅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오는 물에 대한 생각이 끊어진 다음에 보이는 진리는 무엇인가? 완전한 참됨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