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40대가 된 한 여인이 자신의 살던 아파트를 팔아서 세계여행을 떠난 이상한 내력이 그녀의 여행에 대한 관심을 더욱 끌었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목차에서부터 그녀가 떠난 세계의 한 곳 한 곳의 풍경과 그것에 투사된 자신의 마음이 똑같은 깊이만큼 방향만 달리했을 뿐 자신의 내면 속에 어떤 떨림을 만들어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여행기는 특별하다. 풍경과 지식에 대한 정보와 그것에서부터의 감정과 정서가  평범한 여행기의 내용이라면 적어도 이 여행기는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낯선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되비추어주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마음의 상태의 섬세하고도 자세한 추적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보다 깊은 상처와 아픔을 건드리면서 그것을 이해해내고 그런 과정에서 마음 내부로 쌓여져왔던 벽을 허물고 세상과 보다 투명하고 있는 그대로의 접촉과 받아들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행 도중 그녀는 아무런 기록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단지 자신의 온 존재로서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에 충실해보겠다는 다짐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여행의 단면 단면들에서 자신에게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할 수 있었을테고 그것은 여행을 통해 보다 훌쩍 성장해버린 그리고 자신에 대해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된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무의식에서 시작된 그녀의 마음 여행은 사랑과 분노 우울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의 원인을 파헤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러한 원인이 형성되었던 시기와 그 당사자들의 마음의 이해와 공감으로부터 상처는 아물게 되었다. 이후에는 그러한 이해와 성숙이 그녀의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게 되었고 자기애, 자기 존중, 몸 사랑, 에로스, 친절, 인정과 지지, 공감 용기와 변화 등의 자신 속의 잠재적인 행복의 씨앗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유아기 때 가지게 되는 경험이 그 사람의 성격형성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따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의 문제행동과 성격의 원인은 치유되지 못한 유년기의 사건에서부터의 정신적인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 성격의 원인이 제대로 이해되기만 해도 그는 더 이상 그같은 상처로부터 계속해서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적어도 그녀에게만큼은 이러한 정신분석적이고 심리치료적인 면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신적 상처와 이상 성격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해도 우리는 그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녀는 결론부분에서 조심스럽게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이 가진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종교로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자신을 바로 아는 데에 있어 과학적인 방법으로서의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한계는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온전히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방법만이 완전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온전하게 내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은 나에게 왜곡되지 않은 모습을 띄고 나타나게 된다. 내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내게 비친 세상도 비뚤게 마련이다. 타인과 관계맺는 것에서부터 일을 하고 사랑을 하게 되고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은 우선 나를 바로 보는 것이다. 나의 대한 모든 의문들이 풀릴 때에 비로소 세상은 그리고 모든 존재는 나에게 온전한 의미로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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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09-1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랜드 베이슨의 [치유]를 따라 감정과 신체치유를 한 후 유아기 때의 경험이 왜 그토록 깊이 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전생으로 해석해내야 하는 걸까요? 그때는 우리 모두가 너무 약했잖아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의 삶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니...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의 이야기가 이 책에 있나 봐요.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 여유가 생기면 한번 보고 싶네요. 제가 궁금해하고, 무언가 읽을까 고민하고 찾을 때면 님이 어김없이 먼저 읽고 리뷰를 남기시네요.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니겠지만 고맙습니다.

글샘 2005-09-19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 대한 모든 의문들이 풀린다...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그런 걸 꿈꾸는 것만으로도 벅찬 느낌입니다. 추석 잘 보내셨나요?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5-09-1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이누아님 가끔 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비슷한 마음의 궤적을 가진분이라 생각을 하곤 하였는데..
글샘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저희학교는 화요일도 임시 공휴일이라 미뤄두었던 일이나 좀 할까 생각합니다.

이누아 2005-09-20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마음의 궤적 때문이 아니라 님의 방대한 독서량 때문은 아닐런지...
 
비파행 - 13억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시인 백거이
백거이 지음, 오세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이 있다. 젊은 엘리트 관료로서 세상에 자신의 유교적 이상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속세의 때묻은 관리들의 질시와 비판 속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변방으로 물러나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했던 한 시인이 있다. 세상의 잘못에 대한 풍자와 과중한 세금과 아전의 착취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의 비애와 연민을 노래하기도 했던 그는 세상에 대한 민중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삶의 어떠한 모습에 처해있던 그 삶을 즐기고 삶 속에서 참된 진리를 추구하였던 구도자였다.

  또 한 사람이 있다. 1200여년의 세월이 흘러 강줄기도 바뀌고 풍경도 바뀌고 마을도 바뀐 그 곳에서 1200년 전의 한 시인이 남겼던 시의 산맥을 거닐면서 오늘의 삶을 돌아다보는 그는 '장한가'와 '비파행'에서 가슴아린 삶의 애절함을 공유하고 '산 속에 숨어사는 선비'와 '술잔을 앞에 놓고'에서 할 일없는 삶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향해 매진하는 구도자를 본다. 또한 그는 솔 숲에서 햇볕을 받고 살기 위해 옆으로 가지를 칠 겨를이 없는 쭉쭉 뻗은 고송의 삶보다 어느 들판에 홀로 자라 이리 저리 가지 뻗으며 한가로이 햇살을 마시며 자라는 어디에 쓸모가 없는 그런 노송의 모습을 본다.

  인생의 좌절이 참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에너지로 바뀌는 순간 그 좌절마저도 삶의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 속에는 좌절이 좌절이 아니요 기쁨은 기쁨이 아니다. 삶은 삶이 아니요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일을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이듯 찰나에 맡긴 이 몸. 부귀는 부귀대로 빈천은 빈천대로 즐기리. 입을 벌려 웃지 못하면 그가 곧 바보라네. 이미 그는 삶의 의미를 깨달아버린 이다. 그의 삶이 이러했기에 국가에 나가서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이상을 세웠어도 그 이상이 좌절되었어도 그것은 그에게 있어 지푸라기의 남김도 없었으리라.

  남자에게 버림받고 설움과 기다림의 오랜 삶을 살면서 비파를 끌어안고 선율을 고르는 여인의 삶... 그 비파의 선율엔 이미 그녀의 인생이 모두 담겨져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서럽고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인생여정이 비파의 선율을 따라 흘러가고 선율 그 자체가 자신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에게 삶의 희노애락이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비수가 아니라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한 편의 파노라마가 아니었을까? 애틋함은 애틋함대로 설움은 설움대로 시의 선율을 타고 가슴에 잦아들지만 그 감정이 나를 해치지 아니하니 이것이 애이불비 낙이불음이 아니던가?

  사람은 진리를 향해있고 그 진리는 사람에게 열려 있다. 삶의 기나긴 하지만 짧은 과정을 거쳐 우리가 도달하는 땅에서 우리는 어제 흘렸던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런지도 모른다.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닥쳐 쓰러진 나무들과 강한 바람이 할퀸 풀들도 또 다른 봄을 맞아 무성하게 돋아나듯이 삶을 지나며 느끼는 상실감과 상처가 나에게서 무한한 것을 만들어내게 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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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1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거이에게 푹 빠진 나날이시군요^^

달팽이 2005-09-16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을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이듯 찰나에 맡긴 이몸.

부귀는 부귀대로 빈천은 빈천대로 즐기리.

입을 벌려 웃지 못하면 그가 곧 바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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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사는 선비는

오랜 세월 도를 지키며

걸을 때는 새끼로 맨 옷을 입고

앉아서는 줄없는 거문고를 타네.

탁한 샘의 물은 마시지 않고

굽은 나무 그늘에서는 쉬지 않으며

티끌만큼이라도 의에 맞지 않으면

천 냥의 황금도 흙같이 여기네.

마을 사람들 그의 품행 따르니

난초 숲에 있는 듯 향기가 그윽하네.

지혜롭든 어리석든, 강하든 약하든

서로 속이고 괴롭히는 일 없네.

그 선비 만나보고 싶어

길을 나서다 멈추어서네.

 

그 선비 반드시 만나야 하랴

그의 마음만 배우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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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9-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로 가려고

안도현의 <강> 전문





나에게로 오려고
흐르는 강과
너에게로 가려고
흐르는 물이

그리워 떠있는 비누방울 세상

하늘 어디쯤에서
은하수 거품으로 빛나랴


이누아 2005-09-1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맑은 시인은 "그 선비 반드시 만나야 하랴/그의 마음만 배우면 되는 것을"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 선비를 꼭 뵙고 싶어요. 그러나 시인처럼 걷다 멈춰 서서 가-만-히 있으면 그의 거문고 소리 들리고, 그의 향기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치 님이 이 시의 선비처럼 느껴지네요.

달팽이 2005-09-13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누아님 마음도 선비에게로 향해 있군요...
 

쇠가 휘면 칼을 만들 수 없고

나무가 굽으면 멍에를 만들 수 없다.

나도 이와 같으니

어리석고 몽매하여 쓸모가 없구나.

달갑게 명예와 이익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숨으리라.

초가에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오로지 거문고와 술을 마주하며 살리라.

몸은 고삐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귀는 세상의 소란함을 떠났다.

한가롭게 거닐며 하는 일 없이

때때로 노자의 글을 읽노라.

근심 없으니 본성은 즐겁고

욕심 적으니 마음은 맑아지네.

이제야 알았노라, 재주 없는 사람만이

진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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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9-1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그루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간 갈비뼈 혼자 쓰다듬는 저녁

나희덕 <어두워 진다는 것>전문




하루 중 진리가 있다면 진리는 저녁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유영모님은 여러 저녁이란 뜻으로 호를 다석으로 지었고
라즈니쉬님도 스스로 그 진리의 아름다운 저녁에 자신의 숨을 거두고 싶다고 했지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서 바보처럼 산다는 것
어두워진다는 것..그래서 삶의모든 것을 다버린다는 것
채우지 않아도 다 버리기만 하면 그곳의 어둠.. 그것이 진리는 아닐지..

노자의 '현지우현' 어리석고 또 어리석게 되는 것
그곳이 모든 오묘한 것이 태어나는 문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가슴 진정 그 모든 것이 자라나는 문이 될 수 있는가?

저녁은 모든 낮의 일을 모두 바보로 만드는 시간
바보!!! 그러려면 바보처럼이 아닌 진짜 바보가 되어야 하지...
바보가 되어야 바보가 없지
그러한 우주의 어둠이 우리들의 저녁이 되어야 하지.



파란여우 2005-09-2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
기꺼이 바보로 살고 싶어요.
그런데 진짜 바보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얼치기 바보인 저는 모릅니다.
몰라서 오늘도 슬픕니다.

어둔이 2005-09-2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쳇!! 바보!!!
바보가 바보 아닌 것처럼
그렇게 슬프한다고 누가 모를 줄 아나!!
바보!!!
슬프하지마 넌 바보니깐
살면서 울지 말란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