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삼아 옛 사람의 좋은 문장을 살펴보면 쓰고 있는 문자의 종류가 모두 평범하고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지, 별도로 심오하고 어려운 글자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꺼내와 토론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문장은 절로 우리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이는 다만 그 마음씀과 뜻을 둠이 우리들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법은 반드시 그 마음과 뜻의 묘한 곳을 얻어 안 뒤라야 바야흐로 효과를 볼 수가 있다.

 

                                                                                         - 임상덕, 통론독서작문지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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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그러니까 저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전 쉬운 문자 외에는 모르는 것이 다행인듯 합니다.
그걸 용심이라고 부르는지 첨 알았어요^^

달팽이 2005-09-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심이라는 말은 저도 첨 알았어요..

어둔이 2005-09-2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심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음씀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인생을 살펴내는 마음씀이 있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음 없는데 닿고
살피어 둘러보면 마음을 벗어나는 것이 없지요
오직 마음뿐일 때 마음을 어떻게 써야할까요?
용심도 잘못써면 욕심이 되고 망심이 됩니다.
진정한 용심이라면 그러한 욕심과 망심까지도
두루 살필 수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세상을 담아낼 수 있는 욕심으로 키워내고
일체의 마음이 없는 망심으로 길러내어야 하겠지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앗!!!

어둔이 2005-09-2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상보다는 관상이 좋아야하고 관상보다는 타고난 골상이 복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골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심상이 더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심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마음을 써는 용심만 못하다고 옛어른들은 말씀하시지요
그러니 손금 볼 생각말고 관상 때문에 마음 상하지 말고
턱깍고 키키우지 않아도 타고난 마음의 본성
그 마음을 사랑으로 써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인생의 비밀은 마음의 비밀입니다
그 마음은 누구나에게 있으니 달리 다른 곳으로 쳐다볼 필요없겠지요
사실 책도 볼 필요 없어요. 마음만 뚜렷히 볼 수 있다면
그 마음이 자비 가득 세상에 흘러 넘치게 해야겠지요.
최고의 마음이 홍익인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복받을 생각보다는 먼저 복짓는 마음을 키워냅시다
합장~ 나마스떼!!!!
세상의 모든 사람들 업장해탈하고
세세생생 인간 몸받아 선지식 잘모시고
밝은 날같이 환하게 마음복 많이 짓기를 발원합니다.^!!^

달팽이 2005-09-2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말이 많군요..ㅎㅎ

파란여우 2005-09-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둔이님은 집으로 돌아오시는 중간에
어느 주막에 들리셨던 것 같아요
주모를 잘 보셔요
혹시 감춘 꼬리를 보실 수 있는지....^^
 

  무등산은 높고도 넓어 걸쳐 있는 고을이 일곱이나 된다.

정상에 오르면 북으로는 적상산을 바라볼 수 있고, 남으로는 한라산을 굽어볼 수 있다.

월출산과 송광산쯤은 모두 손주뻘이다.

위에는 열세 봉우리가 있다.

늘 흰 구름이 지키고 있다.

사당이 있는데 무당이 관리한다.

그 말이, "우레나 번개가 치고 비와 구름이 일어나는 변화는 늘 산허리로부터 일어나 자욱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지요. 하지만 산 위에는 푸른 하늘 그대로랍니다."라고 한다.

그 산 됨이 과연 빼어나지 아니한가?

중봉의 꼭대기에 서면 표연히 세상을 가벼이 보고 홀로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픈 마음이 일어나, 인생의 고락이란 마음에 둘 것이 못됨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 정약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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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내려오면
다시 산을 그리워하고
산을 오르면
비로소 커지는
이것을 무엇이라 하는지
나 또한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달팽이 2005-09-2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내려오면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산위에 올라서면
푸른 하늘 그대로랍니다.
삶의 희비애락 속에 파묻힐 때
가끔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 그대로의 모습을 찾는 것

어둔이 2005-09-2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오르지 않아도
만나는 하늘인데
산을 올라보아야 비로소
하늘을 만난듯 하고
산을 내려오지 않아도
딛고 있는 땅인데
산을 내려와서야만 비로소
땅을 바로 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산이 사람을 속이는 건가?
사람이 산을 속이는 건가?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오쇼 라즈니쉬 지음, 장순용 옮김 / 들녘미디어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들은 늘 수많은 문제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동안에도 열가지, 스무가지의 문제가 새롭게 생겨난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방법은 늘 또 다른 문제의 눈더미속에서 헤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쇼 라즈니쉬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그것을 보라고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문제가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빈 바탕에 우리는 우리 존재의 본질을 보게 된다.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우리는 일생동안 지식을 쌓아감으로써 인생의 문제를 보다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식을 쌓아감으로써 우리들이 맞닥뜨리는 것은 보다 많아진 문제이며 보다 복잡해진 문제일 뿐이다. 참다운 지혜는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진리의 문이 놓여져 있다. 그 문 앞에서 우리는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재산, 명성, 지식, 자신의 자아마저도...그러나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들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허상뿐인 자아만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어렵고도 쉬운 일인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외로움을 벗어날 친구들을 가지지 않은 이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 중 고독함을 가진이는 드물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이요 외부로 드러난 것이다. 고독함은 깊은 침묵의 바탕이며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진정한 고독함을 느낄 줄 아는 자만이 비로소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자아로부터의 자유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비로소 삶과 죽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시간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시간이 없는 곳이 바로 영원성의 공간이다. 말이 공간이지 그것은 공간도 없는 곳이다. 과거와 미래가 없는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것은 과거에 얽매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감과 두려움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오직 지금을 온전하게 느끼고 있을 때 나는 뽑은 이의 고통도 느끼지 않았으며, 오로지 책을 읽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온 몸의 세포는 보다 민감해지고 그 뚜렷한 각성 앞에 '있음'의 상태만이 현존할 뿐이다.

  지혜는 바보만이 가질 수 있다. 바보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바보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바보도 없다. 바보라는 생각만으로도 삶과 죽음이 생긴다. 지혜는 삶과 죽음이 사라진 바보 그 자체가 되어야만 수직적으로 우리를 통과해서 생긴다. 어리석음은 그러한 생각없음이다. 지식없음이다. 생각의 뿌리가 잘려나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지혜의 빛을 느낄 수 있다. 뿌리뽑히지 않은 잎을 보라 가지를 보라 뿌리로부터 끝없이 제공되는 양분으로 또 다른 잎을 또 다른 가지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몸착의 뿌리, 자아의 뿌리가 깊다. 그 깊은 뿌리를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걱정하지 마라. 그저 뿌리가 실체가 아님을 보면 된다. 그저 빛의 현존을 느끼면 된다. 순간 순간 현재에 살면서 각성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진리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 눈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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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뤄두었던 치료가 시작되었다.

우선 앞니 하나를 뽑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마취를 하고 잠시 후 부워서 감각이 없는 이를 의사는 뾰족한 송곳으로 이리 저리 힘을 주자 틱 하고 혀 위에 떨어진 이가 느껴졌다.

솜뭉치를 물고 집에 들어서서 책을 읽다가 점점 빠진 이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이 하나 뽑은 곳도 예전에 있었던 자리라는 마음이 통증을 유발하고 비어있다는 허전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아, 오늘은 밥 먹기가 조심스럽구나! 하는 작은 걱정도 생긴다.

작은 이 하나도 이러할진대 몸착이 나에게 주는 두려움은 더욱 크다.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불편해서 어쩌나?

수술은 잘 될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럴 때 가만히 생각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한다.

추석 연휴 여기 저기 오가며 몸따라 마음이 끌려 다녔던 내가

작은 이 하나 뽑고 이렇게 배운다.

자아라는 상에서 벗어나 참된 나에 대한 의문으로 향한 여정이

문득 이렇게 내면에서 시작된다.

뭘, 그리 앞날에 대한 걱정이 심한가?

지금 공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것에 신경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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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0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되실 겁니다...

달팽이 2005-09-20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물만두님..

파란여우 2005-09-2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걱정마세요
달팽이-고마워요. 파란여우님..

달팽이 2005-09-22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훗..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일생의 꿈이자 반드시 거쳐가야 할 인생의 필요조건들이 그에겐 그저 거추장스러운 여행의 짊이었을 뿐이었다. 안정적인 직장과 집, 그리고 배우자와 자식,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그에게는 한번도 눈길주지 않은 자기 밖 세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닥쳐버린 어머니의 죽음과 가족의 파괴, 실명이라는 사건은 그에게서 세상에서 움켜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결핍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언제 다시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책을 들게 하였다. 눈이 보일때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봐두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가진 것으로부터의 자유의 욕망은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였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생의 가치를 찾게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지나온 삶을 어떤 흔적으로도 남기지 않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루 하루를 새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꿈꾸지 않는 삶은 어떤 의미나 가치도 없다. 하지만 그 꿈이 허황된 상상력이 되고 말 것인지 아니면 현실로 만들어 갈 힘이 되는 것인지의 여부는 '용기'에 달려 있다. 꿈과 이상으로 부풀었던 가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고 두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꿈이 그저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기력한 발걸음으로 현실로 되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용기있는 자들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결국은 우리 마음에서 만들어낸 이미지가 현실이 된다. 무기력함은 무기력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용기는 활기차고 자신있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인생의 모든 길 위에는 철학이 있다. 삶의 의미가 있다. 그것이 어떤 길인지는 묻지 않는다. 다만 그 길을 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물을 뿐이다. 호퍼가 걸었던 길 위에서 놓여진 삶의 의미와 깨달음은 내가 걷는 길 위에도 놓여져 있다. 문제는 그 길을 걷는 나의 마음일 뿐이다. 삶은 늘 새롭다. 과거에 의존하지 않는 마음은 현재를 온전하게 느끼게 하고 그 때 하루는 새로운 날들이다. 신비함과 경이로움으로 채워진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가을 하늘 위에 산이 나타난다. 강이 나타난다. 도시가 있고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 그 하나하나의 삶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각 각 제 갈길을 간다. 그 길에서 우리는 옆 사람의 인생을 가타부타하지 않는다. 오직 내 인생만을 문제삼을 뿐이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비바람과 천둥이 치고 있을지 몰라도 나는 오직 내 삶의 비바람과 천둥만을 맞을 뿐이다. 내 하루의 투명한 하늘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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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말고 다른 호퍼 자서전을 읽었거든요.(구판)
행동하는 멋진 철학자라는 판단을 내렸답니다.

달팽이 2005-09-2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입니다. 물론 삶의 마지막 부분은 좀 더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