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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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복합적인 층의 인간관계를 수많게 그리고 다양하게 맺고 산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관계망들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많은 사람을 사귀고 아는 것이 자신의 영향력과 능력인 것처럼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본래 나는 그런 인간관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처럼 소극적이고 사변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은 친구들과의 적당한 거리를 원하고 또 나 자신이 친구들에게 많은 기대나 욕구를 가지지 않는 편이다.

  이 책은 그녀의 삶을 살아온 바탕으로 한  敬友錄이다. 따라서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다. 그녀는 주로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따라서 자신의 욕구에도 솔직하라고 말한다. 친구들의 요구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에는 솔직하게 표현하고 비록 그 친구와 소원해지더라도 그렇게 서로의 성격을 인정하고 수용한 상태에서 유지되는 우정이야말로 오래 갈 수 있다고 한다. 서로에게 어떤 기대없이 사귀고 베푼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간 순간 잊어버리는 관계가 그녀에게는 맞는 인간관계라고 한다.

  그녀의 이런 말이 나에게도 가끔은 들어맞는다. 한 인간이 가진 관계망은 다층적이기 때문에 늘 한 관계에 엮이게 되면 다른 관계들이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때에 따라서 남들의 부탁이나 요구를 거절하는데 능숙하지 못한 나는 오랫동안 친구들과의 기대와 요구 때문에 마음의 걱정을 겪어왔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며 사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감이다. 부모지간에도 부부간에도 친구간에도 때로는 그저 형식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라도 말이다.

  그녀는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려고 하지 말라'라고 했다. 그녀가 얘기하는 인간관계의 기술들은 그녀의 삶의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삶과 인간관계의 기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의 진정하고 가치있는 것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으로만 남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무관심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솔직한 마음을 인정해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자신과는 다른 성격과 개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관계는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은 어렵다. 특히 자신의 이해관계를 내세우게 될 때에는 더욱 그렇다.  될 수 있는 한 인격으로써 사귀려고 해야하며 친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관계의 당사자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기대수준이 다른데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하나의 관계가 또 다른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는 우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해져야 한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판단일지라도...따라서 나같은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 그저 주어진 관계나 근근히 유지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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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인데...

너무 일찍 가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내 대학 시절 경제학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을 가슴에 심어준 사람이었는데...

노동가치이론 연구, 광대의 경제학, 시지프스의 언어,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세기말의 질주, 중국경제산책 등...아직 책꽃이에서 내 대학시절의 사고를 형성했던 책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학교 때 한 번 학교로 방문했을 때 달려가서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세계경제의 전망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치밀하고도 시원한 논리와 카리스마가 강당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압도했던 기억이 난다.

미친 시장의 질주 속에서 한번쯤 우리 인간이 놓여진 존재의 심연을 고민하고 반성해보게 했던 그의 글들과 그만의 통쾌하고도 약간의 독설스러운 글들을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부디 좋은 세상 열어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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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키크더만 2005-09-2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운영님이 돌아가셨어요? 제게도 경제학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인데... 그분 책, 여러권 읽었어요. 중앙일보 칼럼두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자본에 국적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신 분인데.

달팽이 2005-09-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자본에도 국적이 있다고요...그분의 통쾌하고도 시원한 패러독스를 이젠 접할 수 없어 안타깝군요..

작은앵초꽃 2005-09-2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문에서 그 분 칼럼읽는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요. 정말 안타깝네요. 참, 처음 뵙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5-09-2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쑥 댓글 남겨서 죄송합니다만, 이미 즐찾은 오래전에 해 둔 터라 달팽이님은 제겐 좀 낯익은 분이십니다. 정운영 선생님이 타계하셨군요. 한겨레 신문에 경제 칼럼 쓰실 때, 무척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달팽이 2005-09-26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앵초꽃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복돌이님 저도 이미 오래전에 님을 알고 있고 가끔 서재도 구경하곤 합니다. 이렇게 또 글까지 남겨주셔서 영광입니다.
한겨레, 중앙일보에서 읽었던 그의 글을 다시 읽을 수 없게 되어 안타까워요..

파란여우 2005-09-2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도 안녕^^
앗, 달팽이님이야 당연히~~^^
정운영 선생님 저도 팬이었거든요...참 아까운 분여요

달팽이 2005-09-2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판적 경제학자들은 많았지만 내 세대에 만날 수 있었던 두 분이 김수행 선생님과 정운영 선생님이었죠...저에겐...책을 통해서였지만..

waits 2005-09-2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여기서 알게 됐습니다. 정운영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저도 불쑥.. / 올리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달팽이 2005-09-2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영님의 타계라는 사건이 또 새로운 만남을 가져다 주는군요..반갑습니다.
 
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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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늘 새롭다. 보는 풍경이 늘 새롭다.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점 한점 같은 날이 없다.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새롭고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흘러가는 역사의 표정 또한 새롭다. 새로운 책 한 권 드는 내 마음이 새롭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겉모습이야 늘 변하기 마련이지만 푸른 하늘에 떠있는 구름 뒤의 하늘 여전하다. 사람사는 모습은 달라도 살면서 가지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이상과 현실, 꿈과 현실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내 마음 속의 떨림으로 모아지고 그 떨림은 순간 순간이 늘 새로운 것이 된다.

  정민 선생님의 책을 한 권 들었다. 사실 사놓은 지는 오래되지만 목차와 앞부분을 보니 짧은 문장의 글로만 되어서 일정한 체계와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에 가지는 어떤 느낌과 감정이 한 페이지 페이지 분리될것이라 생각하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에 쥔 책은 한 페이지 페이지마다 그냥 읽어내리는 글이 아니었다. 나의 느슨해진 자세를 바로잡게 하고 나의 혼란스러운 정신을 바로세우니 이것은 짧고도 강력한 글이었다.

  모든 가치있는 책들이 그러하거니와 이 책 역시 나의 마음을 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하는 책이 아니었고, 나의 마음 속으로 돌아오게 한 책이었다. 남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세상이 이래서 어떻고 저래서 어떻고 하는 책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 나를 되돌아보고 지금 마음을 가늠하고 단속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우리 선비들에게는 삶의 나태해지고 게을러진 마음을 질책하는 글이었고, 남을 꾸짖는 마음을 돌리어 자신을 꾸짖는 글이었다. 기능인이나 기술자가 되기 위한 글이 아니었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글이었으며 정신과 몸을 바로 세우는 글이었다.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 아니었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수신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우리 삶을 일깨우는 120편의 짧은 문장들로 저자는 우리들의 관성화되고 타성화된 삶을 죽비로 내려치면서 질책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저자 자신을 바로세우는 글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과 자아에 묶여있어 올바르고 참된 생각과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마음속의 양심에 떳떳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한다. 보다 크고 원대한 마음에서 본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위해서 보다 적은 가치들에 매이지 말라고 한다. 비록 많은 글로 이루어진 사상과 이론이 아니지만 자신의 생활속에 인생의 가치를 담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 글들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주말의 오후를 엄숙하게 한다. 경건하게 한다.

  글을 읽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비록 짧은 글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바로세우는 글이 있다. 결국엔 글이 마음이라는 코드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을 바꾸는 코드는 무엇일까? 나아가 사람과의 만남도, 어떤 일을 하고 있어도, 그저 아무일없이 한가롭게 소일해도 마음은 열려 있고 깨어있게 만드는 코드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이런 멋진 글을 접할 때 우리는 갑자기 그 코드의 접속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글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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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9-2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역이 왜 글자가 아닌 코드로 세상을 풀고 있는 것인지, 요즘 곰곰 숙고하고 있습니다. 글로 나타낸 것은 선현들의 사상의 찌꺼기라는 장자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말입니다. 달팽이님의 글에 공감을 느끼면서 신선한 오후를 맞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달팽이 2005-09-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선생님도요..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말했다.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 박지원,  答京之之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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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와 사슴의 무리

쑥대로 이은 집.

창 밝고 사람은 고요한데

배고픔을 참고서 책을 보노라.

 

 

                               - 송시열,  書畵像自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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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9-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쩍 마른 몸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
글을 쓰지도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떨치지도 못하는 나.
이렇게 평생 글이나 읽으며 살리라.

파란여우 2005-09-27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소와 개구리만 친구로 있는 집
그러나 가만 보면 하늘도, 벼 이삭도, 귀뚜리도 있는 집이라네
달은 없어도 별이 있어 풍족하고
저녁먹고 뜨신 숭늉 한 사발로도 뱃속이 따듯해져 오면
읽던 책을 덮고 고양이처럼 잠을 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