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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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법으로 해결하면 바보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의 접근이 변호사의 고용과 소송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진 것과 인맥이 없는 서민으로서는 왠만한 불편과 손해는 차라리 감수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낫다는 의미입니다. 법학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본법을 보았고, 그래도 육법에 대해 한 두 권씩의 책을 통해 훑어보았던 저의 경우라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법률적인 문제로까지 비화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법률적인 판단과 서비스가 특권화되어 많은 돈과 권력의 베일에 가려져 있어 서민들이 접근하기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작 억울한 일을 당해도, 경제적, 사회적인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더욱 빼앗기고 더욱 손해보고 더욱 설움당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국가와 가진 자들의 부당한 횡포로부터 자기 자신만이라도 보호하고자 했던 욕구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90년대 이후에 들어오면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주택임대차 보호법을 위주로 해서 많은 입법과정을 거침으로써 우리들에게 주어진 민법상, 형법상, 헌법상의 권리들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함으로써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활에서 빈번히 생기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 개인적인 경우도 주택임대차로 힘든 상황을 치를 뻔 하였지만 이리 저리 알아보고 찾아본 결과 스스로 간단한 법원절차를 마칠 수 있었고, 임대 반환금을 다행히도 쉽게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법조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특권적인 지위에 놓여져 있었던만큼 그와 관련된 법의 악용과 횡포가 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생활을 짧게 한 경력을 가진 그가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알게 된 미국 헌법의 근본정신과 법조문에 비추어 한국의 헌법의 문제점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단지 우리가 법을 피해서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주어진 우리들의 권리를 알고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우리들을 보다 행복합으로 안내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스스로도 법률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정당한 기본적인 상식수준도 낮추게 되는 것입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의 증가가 결국은 특권화된 법률가들의 권리를 해체시키고 보다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법률서비스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 척박하고 황폐한 법치국가인 한국의 법의 미래도 어느 정도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법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근본적인 힘은 국민들의 법의식 수준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주어진 헌법상의 권리도 국가의 공권력을 통해서 무수하게 무시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개인들이요 시민들이었습니다. 기본권의 제한을 법률로서 그것도 기본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적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무런 절차와 근거를 가지지 않고 간단하게 무시되어 온 것입니다.

  백 명의 죄인을 잡는 것 보다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한 헌법의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법을 아는 법률가들에 의해 악용되어 온 것이 더욱 많은 실정입니다. 역사 속에 묻혀진 우리들의 잃어버린 헌법적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될 수 있으면 멀리하려 했던 법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우리들의 권리를 스스로 찾겠다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 안전하겠다는 이기심을 넘어 우리 사회를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풍토로 만들어 법의 근본정신이 지배하는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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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0-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지만 님은 책 전반부에 걸친 총체적인 해석을 하셨군요^^
이건 사담=>부산에 갔지만 일정을 땡기는 바람에 님에게 연락을 못 드렸구요
대영 시네마 앞에서 님도 찾을 수 없었어요^^
몰운대...결국 못 갔군요. 아쉬운게 많았던 부산여행이었습니다.

달팽이 2005-10-11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여우님의 부산 나들이가 모텔과 분주한 일로만 채워지지 않았기를..^^
 
백일법문 -하 - 성철스님 법어집 1집 2권 성철스님 백일법문
성철 지음 / 장경각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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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이 책을 마음으로 따라가면서 내가 얼마나 깊은 무명의 뻘에서 허덕이고 있는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현재의 내 모습을 처절하게 알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 준 고마움이었다. 상권에서 스님이 준 화두,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를 들고서 있을 때에면 저절로 상념들이 잦아드는 경험을 하곤 하였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끊어지는 화두 속에 망념들이 얼마나 많이 고개를 드는지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마음 속의 망념들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마음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하는 것으로만 없어지지 않는다. 관하는 것은 그 망념들이 더욱 부풀지 않게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화두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몸과 오감으로 느끼는 외부의 경계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것도 나의 생활에서 극한 상황을 맞지 못해서 그런지 그리 크게 느끼지 못한다.  부처도 아니라는 말씀, 마음속의 망념과 외부의 경계가 사라진 중도라고 불리우는 것에 어떤 실체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인데 역시나 화두를 들고 깨어 있을 때 내가 아직 못 느끼는 공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스님의 화두가 주로 마음이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모아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화두를 들고 있다고 느끼는 때에도 오래 묵은 무명의 습이 눅눅하게 묻어나서 마음 속이 깨끗하지 못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 큰 아상덩어리가 만져지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요행을 바라고 공부하겠는가? 그저 욕심없이 한다는 생각없이 공부할 뿐인 것을....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공부에 많은 장애가 된다는 것도 느낀다. 스님이 준 화두를 들고 있는 때에도 뭔가 글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생각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해심은 있다와 없다로 모아진다. 그래서 양변을 여윈 상태가 단순히 말로 가늠할 것이 아님을 이해할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에게 묻는 물음인 것이다.

  성철 스님의 법문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전체에 대한 의문의 씨앗을 마음 속에 심어주는 행위인 것이다. 자신이 지금 처한 상태가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땅으로 걸어가도록 마음을 부추키는 것이다. 삶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의문으로 말이다. 내가 책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것, 버려야 하는 것 모두에 대한 의문이 여기에서 또 한 번 나를 질책한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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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10-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명의 뻘에 빠져 허덕일 때에도
마음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니며 부처또한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고?라고 하니

아니라고 말한다면 털끝만큼도 달리할 수 없지만
해와 달이 밤낮을 바꾸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것이라

진리의 바다를 헤치면서도
마음도 아니고 한물건도 아니며 부처 또한 아니니 이것을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큰도는 일체의 것을 끊고 밤과 낮으로 바뀌니
한 순간에 일만팔천리 벌써 멀어져 버렸네


 
버리지 못한 가난
마지드 라흐네마 지음, 이혜정 옮김 / 책씨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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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직에 들어서서 아이들의 인성을 위한 상담연수를 받을 기회가 많았다. 때로는 교사들이 하는 연수도 있었지만 때로는 상담전문가들이 하는 연수도 받을 수 있었다. 군대에서도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교관생활을 2년 남짓 하였는데 그 때 공군장교 선배로서 김동수 성공전략연구소장과 윤은기 시테크의 저자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의를 들으면서 삶을 활력있고 긍정적으로 살면서 우리 생활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에도 조건을 필요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돈이었다. 보통 전문적인 상담과정을 거치려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의 비용이 드는 것이다. 일반 시민으로서 자신의 인격적인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수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나의 성장과정에서도 가난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는 문제였다. 빈농의 손자로 자란 내가 시골서 하얀쌀밥과 고기를 구경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으며 항상 보리밥속에는 무우나 쑥 고구마 감자 등의 불순물이 섞여 있곤 했다. 이러한 사정이 나아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버지의 도시생활의 시작이었다. 부산으로 옮기고 나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난 후 늦게 들어간 공무원 생활로 최소한 흰 쌀밥은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얼마 후 아버지는 보리밥을 섞어먹는 것이 좋다고 했고 우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조금은 알아버린 가난이 그 시절을 산 누구에게나 경험한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대학생활을 할 때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책을 한 권씩 사면서부터였다. 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용돈이 생기면 항상 절반 이상을 책사는 데 쓰고 있었다.(이 버릇은 아직도 못고치고 있다.) 나도 그 이유를 몰랐다. 왠지 눈에 띄는 책들을 다 사모으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자본론 전집) 호주머니를 찌른 손이 한 움큼의 먼지만 뱉어내었을 때, 그 깊은 좌절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커서 적어도 돈에 찌들리는 생활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난은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이 있다. 그것이 사회문제화될 때에는 주로 상대적인 문제들이 커지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두 가지의 문제가 같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빈곤의 문제도 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의 착취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명암이 더욱 짙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욕구는 끊임없으며 그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재화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절대적인 문제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빈곤과 가난의 문제가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늘 가난은 사람의 영혼을 쪼들게 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감과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가난의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정신적인 가난이 자신의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삶의 좌절감에 빠져 다시는 헤어나지 못하는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동양의 고전 사상을 보면 소요유라든지 빈이락하면서 사는 특별한 정신적인 면들이 보이고 있다.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간소화시키면서도 삶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정신적인 무엇인가가 갖추어질 때 비로소 그것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생존이 바탕이 된 다음의 이야기이다. 현대 사회는 경제의 세계화의 물결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따라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의존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자급자족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터전은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모두 파헤쳐지고 폐허가 되어가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존의 수단마저도 빼앗겨버리고 사회로부터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재화가 필요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런 상태를 벗어난 가난과 빈곤에 대해서는 이제 동양의 고전 사상을 다시 모셔와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나의 삶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재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로 사는 나로서는 주어진 소득으로 만족하고 더 벌기 위해 아둥바둥하지 않고 쓸만큼 쓰면서 남으면 가족들과 나누고 때로는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고 때로는 익명이지만 절대적 빈곤에 처한 사람들과도 나누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조금의 저축과 한달 살림을 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많이 버는 사람보고 부러워않고 비굴해지지 않고 적게 버는 사람보고 으시대지 않고 그저 주어진대로 만족하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사람과 만나면 내 쓸 수 있는 범위내에서 좀 더 쓰면 되고 더 번다고 해서 얻어먹으려는 마음없이 당당하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정작 중요한 것은 가난으로 인해 마음마저 주룩들고 타락하지 않는 것이며, 좀 가졌다고 그것으로 인해 오만해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지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산다. 사람은 대체로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에 맞추어 사는 몸 살림 이면에 정신적인 살림살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때이다.

  P.S 그런데 이 책 번역이 너무 짜증났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을 던져 두었다가 다시 읽곤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마음까지 짜증으로 끝내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좀 더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번역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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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상 - 성철스님 법어집 1집 1권 성철스님 백일법문
성철 지음 / 장경각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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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속의 갈증은 늘 무엇인가를 찾게 만든다. 내 스스로의 본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밝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늘 어두운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만들어내어서 본성을 가리고 그런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것이 느껴질 때에서야 비로소 나를 돌이킨다. 그래서 또 무지한 나는 책을 든다. 더 모르는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불교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나의 본모습을 알지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온전히 경험할 수 없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공부를 가리키는 모든 말들이 나에게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비록 짧은 시간의 공부를 거쳤지만 내가 이른 결론은 내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은 불교의 역사에서 나타난 네 가지의 교학을 중도 사상의 관점에서 꿰어낸 것이다. 근본 불교, 원시 불교, 부파 불교, 선 불교의 내용을 부처님의 중지라 할 수 있는 '중도'의 관점으로 모아낸 것이다. 마음이 짓는 모든 생각들이 '있다'와 '없다'로 모아진다. 그 모든 것이 아니다. 양변의 생각을 떠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묘한 지혜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간에 단편적으로밖에 잘 몰랐던 중도의 개념에 대해서 성철스님의 마음의 경계로서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명쾌한 설명으로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개념적인 이해가 중도에 대한 깨달음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말처럼 양변을 떠났다고 해서 그거을 떠난 어떤 것이 또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증득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 책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이 이 하나의 화두로 모아진다. 세상은 마음으로 그려진대로의 세상이다. 성철스님이 가진 마음으로 설한 교학이 어찌 학문에만 바탕을 두었겠는가? 스님의 마음이 지향한 바대로이지 않겠는가? 

  세상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 그 타오르는 세상 속에 모든 것이 재가 되고 남은 것이 없어야 비로소 열린다. 모든 것이 타오르고 없다는 그 마음마저 없어야 한다. 오직 이 뿐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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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2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일 법문, 사다 놓고는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운 느낌이 들어서....

달팽이 2005-09-2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능력에도 벗어난 책입니다...
그저 읽으면서 마음을 쫓을 뿐입니다.
마음이란 놈은 참 요상해서 우주와도 같은 프리즘을 갖고 있어서
맞추다보면 따라가는 면도 있잖아요..
 

가이없는 풍월은 눈속의 눈이요

다함없는 하늘과 땅은 등불 밖의 등불이러라

버들은 푸르고 꽃은 예쁜데 십만의 집에

문을 두드리는 곳곳마다 사람이 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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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하게 살고싶어
숲 속으로 들어왔더니
길 가던 참새들이 모두 모여든 파란여우네 문칸에서
서성이다가 망설이는 달팽이 한 마리
그러나 지난 밤에 떨어진 봉숭아 꽃잎에
그 님이 다녀갔다 알려주네

달팽이 2005-09-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 문턱에서 북적대는 객의소리
망설이다 서성이다 마음접고 돌아서네
하얀달빛 도화잎에 쏟아져서 반짝이고
그곳에서 파란여우 비친얼굴 보았으니
보고싶은 이내마음 충족되니 돌아서네

어둔이 2005-09-2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산에서 눈을맞고
날라리아 노래하며
등불아래 책을펴고
목청높여 글을읽네
무주공산 밝은달은
홀로뜨고 홀로져도
적막강산 독야청청
천지가득 풍경소리

글샘 2005-09-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을 두드리는 곳곳마다 사람이 답하네...
저는 이 대목을 들으니, 화장실 앞에 선 마음 답답한 나그네 마음에 안타깝습니다.
세 분의 시 문답이 재미있습니다.

달팽이 2005-09-2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발 디딜 아래도 없고 쳐다볼 위도 없는 답답한 마음 꼭 간직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두드릴 문이 어디있는지 알지못하는 어둔이들입니다.
저 또한 선생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돌바람 2005-09-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다 서성인 마음 어디갔나 찾아보니
여기는 또 어딘가 걸음이 멈춰지네
지난 여름 달팽이가 어디 갔나 물었더니
왜 이제왔는가 문 열어주고 기다리네
에헤라, 지나는 사람들아
뒤늦은 걸음을 예다 걸어두고
두런두런 모여앉아 쉬어나가세, 쉬어나가세

*재미있어서 저도. 저 이제야 인사드려요. 꾸벅^^*

달팽이 2005-09-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반가워요...돌바람님..앞으로도 자주 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