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적
디팩 초프라 지음, 도솔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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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이데거는 "위험이 있는 곳에서 우리를 구원할 방법도 함께 성장한다."라고 했다. 개인사를 통해서 보든 세계사를 통해서 보든 그것은 계속되는 진실이었다. 몸이 아파야 자신을 돌아볼 줄 알게 되고 사회적 위기 속에서 부패한 부분을 잘라내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우리는 늘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도 살아오는 동안 몸이 아파서 외출을 자제해야 했던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외출에 신경쓰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질병으로는 나를 돌아볼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말 몸이 불편해서 내 몸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될 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 보다 여유있게 들여다볼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몸을 아프게 했던 내 행동들을 지켜볼 수 있었고, 그 행동을 야기한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 늘 간단한 약과 치료로서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려고만 한다. 하지만 큰 병일수록 그것은 우리들의 생활패턴의 변화를 요구하고 나아가 우리 마음가짐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저명한 심신의학자인 저자는 질병과 건강을 보다 큰 의미로 접근한다. 질병은 몸에서 생긴 이상증세가 아니라 그 증세를 가져오게 한 생활습관과 마음의 태도와 습관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건강이란 몸에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마음의 행복 상태에 있는 상태를 말하고 그에 따라 몸도 행복한 사람을 말한다. 나아가 그는 몸과 마음을 관통하는 생명, 우주적 생명과 맞닿아 있는 상태를 진정한 의미의 건강이라고 말한다.

  앞 장에서 그가 많은 사례를 들어 마음이 질병을 만들어내는 것과 그 마음의 자기 계시로 불치의 병을 낫게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음식을 통한 질병과 질병의 치료에 대해서도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음식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섭취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질병은 마음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마음이 그러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신체적인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우리 의식의 장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용이치 않다는 점에서 명쾌하지는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아무런 과학적이고 현상적인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인체내의 호르몬의 생성과 억제를 통해 뇌 속에서나 신체내에서의 화학물질의 생성과 억제를 통해 우리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이미 어느 정도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나아가 마음을 계발하면 우리들의 질병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수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그의 결론이 멈추지 않는다. 결국 진정한 질병이란 마음의 거짓된 환상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거짓된 자아의 틀을 벗어나 존재의 참된 모습과 맞닥뜨리게 될 때 비로소 참된 건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참된 건강은 우주적 존재의 진화의 방향과 일치한다. 지구상에 생긴 단세포생물에서부터 진화의 가장 정점에 선 인간에 이르기까지 마음은 전체를 인식하는 능력을 더욱 키워왔다. 마음의 기적은 그런 진화의 가장 정점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의식의 본질과 방향을 같이할 때 만들어지는 '우아한 우주'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물음을 멈추게 될 때 세상에 대한 물음도 동시에 멈춘다. 아직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의 존재에 대해 몸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가고 표면의식을 통해 잠재의식으로 들어가 한번도 맞닥뜨리지 못한 나의 존재의 심연속으로 온자신을 던져보아야 알 수 있는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들을 움직이게 한다. 우리들을 살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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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10-13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친정 오빠가 이 책을 읽는 걸 봤었는데...님의 글을 보니 저도 빌려서 한번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달팽이 2005-10-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또 이누아님으로군요...
항상 책읽는 리듬을 맞추어서 글남겨주시고...
책 읽고 페이퍼도 좀 자주 써주셔요...
그래야 자주 들리죠...^^

이누아 2005-10-1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부끄럽군요. 읽고 안 쓰는 리뷰도 있지만 읽다 말거나, 이해가 안 되거나 이런 책도 많고...무엇보다 읽는 양이 얼마되지 않아서...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건데...흑흑...책 좀 읽으라는 질책으로 알고 분발하겠습니다만 님의 책읽기 정도는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어쨌든 충격적인 댓글 읽고 정신이 번쩍 듭니다. 지도편달에 감사, 감사...

달팽이 2005-10-1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양으로만 글을 읽진 않잖아요, 이누아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표현의 양을 떠나서 마음을 맞출 수 있는 분이란 걸 알겠어요.
사람마다 스타일의 차이는 있으니까요..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
소운스님 지음 / 도솔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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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구니의 몸으로 출가한 그녀는 진리를 찾기 위해 속세로 나왔다. 남들은 머리를 깍고 산에 들어가고 절에 들어가서 세상과 끊어진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데 그녀는 오히려 밖으로 나왔다. 참된 진리를 걷기 위해 그녀가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찾아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인생 여정 자체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기나긴 과정이지만 그 구체적인 길은 개개인에게 같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순간 순간 자신에게 펼쳐지는 우주의 작용이 그녀에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였던 것이다.

  오늘, 별다른 일없이 일찍 학교를 나서서 강변로를 달리다 문득 햇살 비치는 금빛 강물을 쳐다보다가 세상이 무엇하나도 의미없음이 없다는 생각이 스쳐지났다. 저 석양, 저 하늘, 저 산들이 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의문을 품고 달리다 어느새 신호등도 걸리지 않고 일찍 도착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장모님을 만났다. 집에 소독을 한다고 와계셨던 것이다. 장모님을 모셔드리고 오는 길은 막혔고  긴 운전이 몸을 피로하게 했지만 오늘 장모님을 모셔다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모님은 차막힐 시간이라서 자신이 혼자 가시려고 먼저 버스를 타려고 나오셨는데 오늘따라 내가 5시 10분에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제 각각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그녀가 수행자로서의 마음의 결심을 했을 때 이미 그녀앞에는 자신의 길이 어떤 모습이든지간에 수행자로서의 삶이 놓여져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학문으로서의 길이 그녀에게 주어졌지만 그것도 수행자로서의 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녀에게 더욱 강조되었던 것은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족한 자신만의 내면의 동굴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처님의 길을 걷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서 낯선 길들을 걸을 수 있는 용기가 그녀에게서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보다 중요한 가치를 위해 나머지 것들을 희생할 줄 아는 용기와 아직 그녀의 인생에서 헤쳐지지 않는 새로운 길을 내는 용기가 그것이었다. 그것은 일반인으로서 진리의 길을 가고자하는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일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나만의 마음의 동굴을 필요로 했다. 그 마음의 동굴안에 정착해야만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하나다. 그 표현이야 어떻게 되든지...하지만 그 길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늦을 수도, 둘러갈 수도, 지름길일수도(그런 길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빠른 길이라고 해서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듯, 나에게 주어진 길에서 순간 순간 삶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험하고 탐험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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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10-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을 판다
자기만의
파들어가기 위해서인지
파나오기 위해서인지

그건 끝을 보아야 알 수있다
그 처음부터...
 

나마스테

내 안의 빛이 당신 내면의 빛을 알아봅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사물을 대할 때에도

자연을 대할 때에도

이것들을 제외한 그 모두를 대해도

나마스테

빛은 빛을 알아봅니다.

그 빛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이야기를 할 때에도

운전할 때에도

책을 펴들고 있어도

잠자는 순간까지

나마스테

그 안에서

당신과 나의 경계는 사라집니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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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10-1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마스테

달팽이 2005-10-1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동감...

파란여우 2005-10-1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도어입니다^^

비로그인 2005-10-1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온 저도, 모든 님들께 나마스테 -()-

달팽이 2005-10-1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마스테..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
크리스틴 브라이든 지음, 김동선 옮김 / 인터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날 길을 가다가 여기가 어딘지 낯설어보여 내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인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걷는 방법을 잊어버려 그 자리에 멈춰서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게 된다면 또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이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질병 중의 하나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고령화 사회의 출현으로 인간은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질병들에 대처해야만 하게 되었고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노인성 치매는 자신뿐만 아니라 24시간 옆에서 지켜보고 보호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사회적인 문제화되고있는 현상 중의 하나다.

  기존에 알츠하이머나 노인성 치매에 관한 책들은 주로 호스피스 활동가들이나 간호원 또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환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의 입장과 관점에서 병의 진행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따라서 이해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간호자의 입장이나 제 3자의 입장에서 편한대로 보았던 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초기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조기치료와 적응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알츠하이머에 맞섰던 당당한 크리스틴의 용기와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알츠하이머를 위시한 노인성 치매 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잘 이해시키고자 한 그녀의 배려심은 이런 기존의 문제점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이 보다 인간적인 존엄성을 갖추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그 어떤 병이라도 그러하듯 병 그 자체와 대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서 먼저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공포가 더욱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병보다 먼저 우울증이 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분노를 표출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때로는 자신을 둘러싼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들을 더욱 왜곡시키고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가 주위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시켜서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왜곡시키지 않음으로써 보다 친근감과 사랑을 길고 깊이 유지할 수 있으며 이런 인간관계의 긍정적인 면이 병에 더욱 능동적이고 자신감있게 대면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죽음에 이르는 병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틴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 병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사명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따라서 병의 진행과정속에서 더욱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이렇게 자신을 뛰어넘는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되면 병과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보다 의미있고 긍정적인 과정으로 이끌 수 있게 됨을 크리스틴은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삶으로 돌아와보자. 나는 과연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비록 열심히 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명히 삶의 방향은 나에게 있다. 그 삶의 방향이 그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어느날 문득 숟가락 드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고, 어느날 문득 길을 걷다가 나의 다리에 내가 넘어지게 되더라도, 나의 사고하는 능력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나의 온 몸의 세포들이 하나 둘씩 죽어갈 때, 바로 그 때에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내 삶의 의미가 있다면 적어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내 몸은 부서지더라도 내 마음은 자유로이 허공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크리스틴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이었다. 나에게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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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모든 신체적 능력과 사고력이 쇠퇴하는 경험들을 천천히 하게 되겠지.

그러면 나는 하나씩 능력을 잃어갈 때마다 아픈 상실감을 느끼게 되겠지.

어느날 문득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지게 되고

어느날 문득 내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몰라보게 되고

어느날 문득 물넘기는 것을 잊어버려 목을 켁켁거리게 되고

어느날 문득 일상생활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될 때,

친구들과 모여 앉아 옛 이야기를 회상하는 시간에

"그 때가 언제였지?" 하는 물음에 "네시 반이야."하는 말을 하고서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될 때

그러면서도 가끔 나의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고 괴로워하며 마음아플 때,

그 때 나는 무엇에 의지하여 남은 삶을 살아갈까?

어떤 용기로 나는 나의 삶을 꿈꿀 것인가?

모든 것이 혼란으로 돌아가 나마저도 잊어버릴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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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10-1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는다고 다 잊혀지는 것이 아니지
몰라본다고 다 모르는 것 또한 아니지
존재한 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안 것은 다시 모르게 되지 않아
몰랐던 것을 알게된다거나
안 것을 모두 다 잊는다면 그건 그건 말이지
나마져도 잊어버릴 그때 만날 나
그 나를 몰라서 하는 소리지
생명의 빈탕에 헤딩하는 소리 그게
나를 알아보고 한바탕 웃는 골때리는 소리 아닌가?
돌!

파란여우 2005-10-11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다고 먹었다
맛없다고 투정한다
어젯밤에 허깨비짓을 했었나 기억도 모른다
태양이 지면 달이 뜨는 일도 기억 안난다
그런 미래를 지금 안다면 준비는 뭘 할까
제 손으로 글 한 줄 읽는 일도 게으름 자가
하기는 뭐 할까
풀이나 뜯자
-이상 여우가 풀 뜯는 소리 들려 드리고 갑니다-

어둔이 2005-10-12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현상으로 부터 벗어나
사자가 들판에서 양떼와 함께 놀고
여우가 풀밭에서 풀을 뜯어도 달리 딴 생각이 없다면
그런 세상이어야 우리가 바라는 대동의 새세상을 만난 것이겠지요

장횡거의 서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지요

하늘과 땅에 가득 차는 것이 나의 몸이요
하늘과 땅이 이끌고 가는 것은 나의 본래 모습이라
무리의 사람들은 나와 한 배에서 난 형제들이고
온갖 것들은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생명이더라



먹고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는 하루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편안한 하루
우리의 노고가 고단치 않는 하루
그 하루 하루를 세상과 함께 하며 살아갑니다

여름철 무성했던 풀들이 가을이 되니
저절로 시들고 쓰러집디다
그런 시간 깊어가는 가을을 어둔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